제 2 장

12

 

《송월아! 아이구, 요렇게도 말썽을 부린다구야. 야, 송월아! … 그년이 아예 귀구멍을 틀어막고 살 잡도리야. 송월아! …》

대령강객주집 주인은 고추꿰미를 처마에 박힌 못에 걸지 못해 발뒤꿈치를 쳐들고서 야단스레 송월이를 불러댄다. 주글주글한 무명치마가 큰 엉덩이에 간신히 매달려있고 버선도 한짝이 벗겨진채로 있어 그 모양이 정말 볼만 했다.

《송월아! 이년아, 냉큼 나오지 못하겠니!》

새빨간 고추꿰미를 한손에 쥔 주인이 이제는 고래고래 소리질러댄다.

빨래함지를 이고 부엌에서 나온 송월이가 마루우를 쳐다보며 한손으로 입만 가리울뿐 대답을 안한다.

부엌일을 하던 나이든 녀인이 주인성화에 뛰쳐나왔다.

《이년아, 있으면야 대답을 못해?!》

식모녀인이 송월의 어깨를 철썩 때려주고나서 《송월이 왔수다.》 하고 알린다.

그러자 두팔을 고추꿰미와 함께 처마쪽으로 올려뻗친채 주인이 눈을 가로 뜨고 내려다보는데 성이 독같이 올랐다.

《왔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건 왜 떨궜나요, 내가 다 매달았던건데.》

《저년 주둥일 그저… 바람이 떨궜지 내가 떨궜냐?!》

함지를 내려놓은 송월이가 빨래줄에 눕혀놓은 장대기를 들고왔다.

《이년아, 그걸로 어떻게 한다는거냐? 어서 올라와 걸지 못해?!》

그러거나말거나 송월은 주인이 든 고추꿰미를 장대기로 찔러 크게 품먹이지 않고 처마에 걸었다.

어찌나 맥을 뽑았던지 주인은 마루우에 펄썩 주저앉았다.

《그년 눈은 매눈깔인가… 허허.》

고추, 마늘, 호박오가리를 매달아 붉고 희고 누른색이 한데 어울린 발처럼 보인다. 그속에서 송월에게 눈을 흘기는 주인의 얼굴은 표정을 가려보기 어렵다.

《말똥말똥 쳐다보긴!》

송월은 빨래함지를 이고는 홱 돌아서서 대문밖으로 나가버렸다.

《빤지럽다 빤지럽다 저런 년은 처음이다. 못된 하늘소새끼 상전 쳐다보듯 눈알이 올롱해서… 이년, 그저 들어오기만 해봐라!》

고추꿰미를 안고 한참이나 신고한 주인은 그 화풀이로 그냥 송월을 욕질했다.

《에이구, 그래두 집안일은 그애가 다합네다.》

식모녀인이 공연히 한마디 해서 주인의 화를 더 돋구었다.

《임잔 얼른 들어가 부엌일이나 하게. 점심참이 돼오는데 오라질년 역성이나 들지 말구!》

《밥도 찬도 송월이가 다해놨는걸요.》

《말끝마다 그년 소린가? 봤지, 고년이 내가 처마에 매달린게 깨고소해 쳐다보는걸?!》

《허허, 미움도 커지면 원쑤지간이 된대요.》

식모녀인이 부엌으로 들어가자 주인은 버선을 찾아신고나서 《장대기로 난딱 꿰서 매달줄이야.》 하고 중얼거리다 대문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편안하셨나요?》

《이게 누군가? 응?》

행상짐을 이고 진 백씨가 마당에 들어서자 주인은 버선발로 뛰여나와 맞았다. 원체 노죽이 많은 녀자인데다 방금 송월이를 욕하던 참이라 뒤엉킨 감정으로 금시 울음이라도 터칠듯 한 표정을 한채 백씨의 손을 잡고 마루에 올라와앉았다.

《어데서 오는 길인가?》

《순천을 지나 곧추 오는 길이예요.》

《그러니 내가 보구싶었던게지.》

《일은 잘되나요?》

《객주집 벌이라는게 그저 사람시달림이네.》

《그래두 나같이 오금을 깎아서 벌지야 않지 않나요.》

웃음절반으로 말한 백씨가 지나가는 소리로 물었다.

《송월인 잘 있겠지요?》

주인은 마치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린듯 손사래질부터 했다.

《말마오? 어이구, 그게 나이차면서 성미가 어찌나 되알져가는지 대꾸질하기가 일쑤요. 여간 매끄럽지 않아 무슨 일 한가지 시키재도 열두번 고래기를 질러야 되는데다 힝힝 치마바람까지 일구지, 고 오목눈을 가로뜰 때면 오뉴월에도 찬서리맞는것 같다오.》

굿타령같은 긴 사설을 들으며 백씨는 허허 웃을뿐이다. 지금 그의 속궁리는 딴 곳에 가있다. 도매점을 차리자니 앉혀놓을 맞춤한 사람이 없어 생각하던중 송월이가 떠올랐다. 나이도 열다섯이고 이악한 계집애여서 꽤 감당해낼것 같았다.

점을 찍어놓고 찾아온 걸음이지만 데려가겠다고 서뿔리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그였다. 10년 가까이 송월이를 기른 객주집 주인이 아닌가. 그사이 송월이가 무슨 일인들 안했으랴만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준 값을 어떻게 부를지 모를 녀자다. 만약 그와 같은 형편에 빠지면 사람몸값을 흥정하게 될테니 좋은 일이 못되고 손해볼 생각은 조금도 없는 백씨였다.

《나라는게 행상벌이가 고작이니 크게 돕는 일도 못해서 미안해요.》

속심을 감춘 그 말에 주인은 한수 더 떴다.

《생각 같아선 어느 기생집에 팔아치우고싶지만…》

백씨는 주인의 말을 탓하지 않으며 응대했다.

《그런다구 큰 리는 못 볼거예요. 기생집에서나 좋아할 일이지.》

《하긴 그래. 세상 뒤소리는 어떻게 하겠나.》

변덕스럽고 타산밝은 주인의 마음을 눙쳐놓은 백씨가 화제를 돌렸다.

《여기 장에선 어떤게 잘 팔리나요?》

《그저 그러루하네.》

《안성붓배기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놋그릇개비 말인가?》

《예.》

《정주놋그릇개비는 가끔 보았지만 남도 놋그릇엔 캄캄이지.》

《한번 보시려나요?》

《가져왔나?》

백씨는 순천장에서 절반 팔고 남은 붓배기를 꺼내놓았다. 해빛을 받아 놋그릇들이 번쩍거리는통에 주인은 대번에 욕심을 냈다.

《대접은 국수그릇에 제격이겠구 술잔이 사내들 흥을 돋구겠네. 광채가 도는게 희한하네그려.》

《마음에 들면 가지시라구요.》

그 소리에 그릇개비를 량손으로 덥석 쥔 주인이 기생때 버릇같이 주름진 얼굴에 애교를 담으며 물었다.

《비싸겠지? 나한텐 눅게 불러달라구.》

백씨는 마주보며 아무 내색없이 웃기만 했다. 거저 주기는 아깝지만 내놓아야 한다. 송월이를 순순히 데려가자면 욕심을 채워주는수밖에 없다.

《가지라지 않나요.》

《가진다는건? …》

《흥정없이요.》

《흥정도 안하면? …》

《송월일 맡겨 고생시키는데 거저 받으시라구요.》

《역시 평양 백씨는 통이 큰 녀자야. 의리가 깊고 도량이 넓고… 허허허.》

앉은자리에서 공짜를 받아안은 주인이 너무 좋아 백씨를 춰올리는 말만 입에 올리였다.

제 물건 거저 내놓은 일이 없는 백씨지만 지금은 이쯤해놓고 속으로 저울질해댔다. 송월이를 맡겨 고생시킨다는 말뜻을 가리지 못하는 녀자다. 붓배기는 공짜로 주더라도 송월이를 흥정없이 데려가야 한다. 쉽게는 안될 일이니 덤비지 말고 오늘 안되면 후날을 기약해야 한다. 송월이를 다루기 힘들어한다는걸 안것만도 다행이다. 술장사, 음식장사나 해먹을 녀자야. 제 속을 그렇게 쉽게 드러내놓으니 말이다.

《세상돌아가는 이야기나 좀 하지요.》

백씨가 말머리를 돌리자 주인은 온 얼굴에 화색을 띠우며 말재주를 부려댔다.

《달도 차면 기우는 때가 있듯이 세상일도 그와 다를바 없다네. 하늘에 닿았던 량반님들 세도가 진해가는 세월이라 기막힌 일들이 생기는것도 놀라운게 없지.》

말꼭지를 떼고 말주변자랑을 해대던 주인이 갑자기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임자, 두달전에 여기 왔다가 왜 들리지 않고 갔나?》

백씨는 덤덤히 웃으며 응수했다.

《길이 바빠서요.》

《고을형방 체면을 납작하게 만든걸 내가 모르는줄 아는가봐.》

《소문이 돌았나요?》

《그 행상내인이 평양 백과부라는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네.》

《웬걸요. 장거리 말을 귀동냥했겠지요.》

《헤헤, 그건 옳아. 헌데 그 형방님이 참 안됐어.》

《안되다니, 무슨 일이 있었게요?》

백씨는 속에 짚이는게 있어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뒈졌다네. 천벌이 내렸지. 어이구,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예? …》

《박천고을과 장거리를 들었다놓던 기상은 어데 가고… 하루밤새 피투성이로 됐으니…》

백씨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오산골짜기에서 만났던 젊은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생명을 구원해준 그 은인이 빈말을 한게 아니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살인죄인을 찾았나요?》

《사또께서 령을 내려 소동을 부려보지만 원체 바람같이 날아왔다 바람같이 사라졌으니 용빼는 재주가 있다던가. 박천고을의 화근단지를 없애줬으니 고맙다고나 해야 할 판인데.》

백씨는 길게 한숨을 내쉬였다.

《범도 잡아놓으면 불쌍하다던데요.》

안도감을 이렇게 번져놓은 백씨는 그 젊은이가 무사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임자가 송월일 좀 타일러주게. 고분고분 내 말을 잘 들으라구.》

백씨는 흥 하는 소리가 나오려는것을 참았다.

《기생집에 팔아치우겠다더니요?》

《해본 수작이구.》

뻔뻔스러운 그의 이 말에 백씨는 은근히 화가 동했다. 붓배기를 공짜로 삼키고 송월이를 내놓지 않겠다는 심사로 말하지 않는가. 네가 기르기는 했다만 송월이는 내가 데려가지 않나 두고봐라. 그는 이렇게 마음먹으며 내키지 않는 웃음을 지었다.

《기른 정이 크지 내 말을 들을라구요.》

《아닐세. 고 계집애가 늘 기다리는건 임자야.》

《그걸 어떻게 아시우?》

《내 눈이야 속일라구.》

《모를 소리외다.》

가슴 한모퉁이가 시큰해난 백씨가 송월이를 한시바삐 만나고싶어나는 마음을 꾹 눌렀다. 탐내는 기색을 내비치지 말아야 했다.

《그애가 어데 있나요?》

《빨래하러 갔다네.》

《바람도 쐴겸 내 좀 나가보구 올가요?》

《어서 그러게.》

객주집을 나선 백씨는 강쪽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그는 걸음마다 한번씩 웃군 했는데 자기도 왜 그러는지 알수 없었다. 그저 눈앞에서 얼른거리는건 붓배기다. 그 무거운 짐을 지고 지름길 타다가 목숨을 잃을번 하지 않았는가. 고마운 젊은이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은 불귀의 객이 되였을게다.

백씨는 저도 모르게 발을 굴러댔다.

죽을 고비를 겪으며 나른 놋그릇개비를 욕심사나운 객주집주인년에게 돈 한푼 못 받고 받쳐올렸다. 송월이를 이번 길에 데려가자는 성급한 마음이 그렇게 했다.

이번엔 내가 밑졌다. 하지만 봉창은 하고야말겠다. 속으로 벼른 그는 천성인 침착성을 되찾아 궁리를 몰아갔다. 송월이가 지금처럼 자질구레한 말썽이나 일으켜서는 주인 손아귀에서 벗어 못난다.

속이 열린 백씨는 억센 두다리를 움직이며 중얼거렸다.

《밑지면서 하는게 장사지.》

처서가 지나 백로를 바라보는 가을하늘아래 푸른 비단필같은 강이 흐른다.

물도 강기슭의 바위며 돌들도 하나같이 정갈하다. 듬성듬성 벌려앉은 녀자들의 빨래방치질소리가 가락맞게 울린다. 그들속에 끼여든 발가숭이애들이 물장구를 칠 때마다 구슬같은 물방울이 락화처럼 흩날린다.

흰바위옆에 빨래질을 끝냈는지 한 처녀가 강물에 발을 잠근채 팔짱을 끼고 조는듯 앉아있다. 송월이다.

조용히 곁에 다가간 백씨가 놀래우지 않으려고 낮은 소리로 찾았다.

《송월아.》

송월은 자고난듯 한 눈으로 백씨를 쳐다보다 《어마?》 하며 황황히 일어나 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세월이란 참으로 빠르구나 하는 생각에 눈시울을 슴벅인 백씨가 송월의 고운 얼굴과 몸매를 쓸어보았다. 동전 한잎을 덮쳤다가 그악스러운 내 손에 걸려 혼이 났었지. 그게 얘가 일곱살때로구나. 볕에 타서 깜둥강아지같던 살결이 이제는 백옥같이 희여졌으니 뭇사내들이 탐을 낼 처녀다.

《그새 어떻게 지냈냐? 어서 앉거라.》

송월의 손을 쥔 백씨는 제 먼저 앉았다. 치마폭으로 무릎을 덮은 송월은 고개를 수그릴사 하고 아무 말도 없다. 반갑다면 이 나이때 얼마나 호들갑을 떨텐가. 성미는 예전 그대로다.

《송월아, 객주집이 마음에 들지 않니?》

《…》

《주인오마니 말도 잘 안 듣는다면서.》

《시키는 일은 다하는데요 뭐.》

타일러서 들을 아이가 아니다.

백씨는 문득 여덟살 철부지때 송월이가 묻는 말에 입을 꼭 다물고 서있던 모습이 생각났다. 혹시 이애도 나처럼 가슴속에 한을 품고 사는게 아닐가? 언제 한번 속을 털어놓는걸 보지 못했다. 사람이란 상처입은 마음을 쉽게 말로 옮기게 되지 않는가부다.

《네가 보고파 왔는데 반가와하는것 같지 않구나.》

송월은 그 말을 부정이나 하듯 서둘러 물었다.

《언제 오셨습니까?》

《금방 오는 길이다.》

《전전달엔 왜 들리지 않고 가셨습니까?》

《응? …》

객주집주인이 묻던것과 꼭같은 소리여서 백씨는 무심히 웃었다.

《너도 알고있었구나. 장사길이란 그런 때도 있는걸 어쩌겠니.》

《그날저녁 전… 처음 만났던 황철나무옆에 서서… 평양쪽을 바라보며 혼자서 울었습니다. …》

송월은 울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백씨는 속이 얼얼해나 긴숨을 내쉬였다. 얼마나 인정에 주렸으면 그랬으랴. 그래서 정으로 사는게 사람이란 말도 생겼을테지. 그는 송월의 동그란 어깨를 정담은 손으로 쓸어만졌다.

《내가 무정했구나. 날 탓해라.》

《…》

《송월아, 난 너를 잊은적 없었고 어느때든 꼭 곁에 데리고살련다.》

백씨의 진정에 송월의 목소리는 울음을 터뜨릴듯 떨리였다.

《정말입니까?》

《그래, 내가 애초부터 너를 끼고있지 못한건 행길에서 헤매는 신세여서였고 지금 와서 성큼 안고 돌아서지 못하는건 때가 되지 못했기때문이다.》

송월은 까딱 움직이지 않는다. 말귀를 새기느라고 무던히 애쓰는게 알렸다.

《그때라는건 언제 옵니까?》

송월은 강물속에 어린 제 얼굴을 보며 물었다.

《사람이 마음먹은 다음에야 때를 마련하지 못하겠느냐.》

《그때까지 전 여기서 살아야 합니까?》

《살되 술심부름 같은걸 바로하고 몸을 더럽히지 말아야 내곁에 온다.》

강물에 비낀 송월의 눈동자가 커진다. 심중의 파문이 인것이다. 낳아준 어머니의 모습을 이 순간에 찾아보는 그였다. 불쌍하면서도 원망하게 되는 어머니다.

어머니는 살아보려고 딸자식이 있다는것을 숨겨가며 서울량반의 첩이 되였다.

이붓아비나 같은 사람이 나타나면 송월은 강아지처럼 숨어살았다. 토방밑이나 개우리에 몸을 감춰야 했다. 짐승도 아닌 산 사람을 감춰두고 살수 없는노릇이고 그 일이 들장나자 이붓아비라 해야 할 사람은 어머니를 개패듯 했다.

《이년아, 날 속여! 네년이 내 돈으로 제 딸년을 먹여살렸단 말이냐, 죽일년 같으니!》

《용서하십시오. 그것두 사람인데 살아야 하지 않습니까. 저 어린걸 버리면 천벌을 받습니다.》

《천벌은 네년이나 받아라!》

어찌나 지독스레 두들겨팼는지 어머니는 소경이 되였다. 홀지에 집도 가산도 다 빼앗긴 모녀는 길가에 나앉게 되였다.

어린 딸의 손목에 이끌려 평양바닥을 헤매며 동냥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운명은 비참했다.

《송월아, 내가 너를 왜 낳았겠니. 어미구실도 못하니 살았댔자 너한테 고생밖에 시킬게 없구나.》

어느날 어머니는 송월에게 장도칼 한개를 넘겨주며 이 말을 하고는 대동강에 몸을 던지였다.

어머니의 인생은 스물세살에 이렇게 끝났다. …

얼마나 무맥하고 불쌍한 어머니인가. 송월은 자기도 어머니처럼 될가봐 걱정됐다. 한편 그 어머니의 원한을 풀어줄수만 있다면 죽음도 무섭지 않다는 독한 마음을 먹으며 자다가도 일어나 장도칼을 틀어쥔다.

《송월아, 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느냐?》

《제 앞길도 쉽게 걷지는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원, 애두…》

아직은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송월의 말이긴 해도 사람의 운명을 뉘 알랴 하는 이상한 불안이 백씨의 심중을 휘감았다. 어쨌든 기구한 운명을 타고난 두 녀자가 마주앉은것은 사실이였기때문이다.

《송월아, 너희네 객주집에 의주상인이 오지 않더냐?》

궁상스러운 생각을 피하려고 짐작없이 백씨가 물었는데 송월의 얼굴에 놀라는 빛이 어렸다.

《의주상인이라면…》

《아느냐?》

《혹시, 성이 도가인…》

《네가 그 사람 성씨까지 아는구나. 왔댔냐?》

제 입으로 흘린 말이라 송월은 머리부터 끄덕이며 대답했다.

《지난달에… 왔어요. 주인과 무슨 회계를 하고나서 급히 갔습니다.》

《음-》

백씨는 오늘에야 객주집주인이 잠상줄과 련결되여있다는걸 알았다. 아무때든 걸려들겠지. 내 빚을 갚지 않고는 배겨내지 못할테니까.

《자주 오는 모양이구나.》

《그 전달에는 평양과 서울량반들을 모시고 와서 밤새 술마셨습니다.》

《저런, 의주장사치가 대단해졌는걸.》

시뭇이 웃는 백씨를 송월은 조심스럽게 훔쳐보았다. 송월이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면 백씨이고 만나고싶은 사람이 있다면 도원국이다.

겉으로 보기에도 린색한 장사군인 도원국인데 송월에게만은 남다른 정을 기울이군 했다. 피뜩 잠간 왔다가면서도 꼭 만나 분이나 머리기름 같은것을 주고 갔다.

《너를 보면 내 마음이 이상해진다. 돈에 미쳐 돌아가다나니 제일 고와했던 동생을 종시 잃어먹었구나.》

도원국은 뾰족한 수염을 흔들며 이런 개탄을 여러번 하였다.

송월이가 도원국을 만나고싶어하는것은 잔정이나 바래서가 아니였다. 뭔가 꼭 알아낼것이 있었던것이다.

《점심도 먹어야지, 이젠 들어가자.》

백씨의 그 말에 송월은 빨래함지를 이고 일어섰다.

《송월아, 이제부터 내 하는 말을 새겨듣거라.》

두사람의 걸음은 천천히 움직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