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8

 

안재황의 장례를 치른지도 한달이 지나갔다. 가난한 안씨일가는 장례로 진 빚에 치여 한층더 허덕이였다.

남편을 잃은 뒤 백씨에게서 달라진것이 있다면 사라진 웃음뿐이였다. 집안일은 전보다 더 알뜰하게 하면서 점심참이면 여전히 집을 비웠다. 시부모도 시누이들도 그가 남편생각이 나서 선창에 나가 울다가 들어오는것으로만 여기였다.

안재황의 죽음은 백씨에게 있어서 형언할수 없는 슬픔이지만 속에는 모진 마음이 자리잡고있었다. 깊은 밤, 리문리려인숙마당을 나설 땐 돈이 원쑤라고 통탄한 그였지만 돈이 없으면 못산다는 생각, 그 돈이 가난뱅이를 짐승만도 못하게 만든다는 제나름의 리치를 깨달았고 제 힘으로 돈을 벌어 가슴에 맺힌 한을 풀고야말리라 굳게 마음먹었던것이다.

백씨는 점심참에 나루터로 나가군 했다. 그런다고 집안사람들이 생각한것처럼 강변에 앉아서 울기 위해서가 아니였다. 남편을 죽인 나루터지만 그곳에서 녀자가 할 일감을 찾았다.

나루터에서는 도매한 물건들을 매매장소에 날라야 했기에 항상 일손이 필요했다. 쌀이며 물고기 같은것은 달구지로 날랐지만 피륙이나 잡화따위는 등짐으로 점포들에 넘겨주었다.

백씨는 점심참에 녀자들이 나르기 좋은 일감을 찾아 짐나르기를 시작했다. 상인들은 남자들과 달라 물건잃을 일도 없는 녀자인지라 주저없이 그를 부려먹었는데 품값은 남자들의 절반밖에 안주었다. 백씨는 그 시간에 온 평양바닥을 누비였다. 학당골, 계리, 문무골, 상영동, 도제동, 전주골, 소관동… 그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루터의 하루 흥정은 점심무렵에 거의나 아퀴를 짓고 큰 짐들만 늦게까지 부리웠다.

백씨는 옹근 한달동안이나 삼복더위속에서 발부리에 불이 일게 짐을 이고 지고 뛰여다니였다. 그러느라니 장사군들을 알게 되였고 장사라는게 어떤것인지도 어지간히 터득했다.

백씨는 한달이 넘어서야 손에 빚을 물 돈을 쥐게 되였다. 한숨이 나가면서도 인정많은 시집을 떠나야 할 때가 되였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련광정아래 대동강가에 앉아 소리없이 울었다.

세상에 나보다 더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녀자가 어디에 있겠는가. 14살에 시집와서 두해도 넘기지 못하고 청상과부가 되였으니 살아갈 앞길도 막막하지만 끝없이 외로울 인생으로 하여 혼백이 된 남편만 찾게 되였다. 그렇게 짧은 정을 주고갈바엔 생긴것도 없는 이 몸을 구박이라도 했더라면 이다지 가슴쓰리지 않을것이다. 얼마나 안해를 생각했으면 고된 일을 하면서도 고무신을 사뒀겠는가. 그날 점심참에는 고무신때문에 언짢은 소리까지 했는데 남편에게 한 마지막말이 되여버렸다. 사람이란 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하는가부다. 차라리 그 진정에 고맙다고 했던들 저승을 편한 마음으로 갔을게 아닌가. 시부모들도 시동생들도 고무신이 누구를 신기자고 산것임을 말을 안해도 다 알고있었다.

상주없는 상여를 따르는 그의 손에는 사연많은 그 고무신이 들려있었다. 그것은 남편이 남기고간 마지막 정이고 사랑이였다.

백씨는 무심히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여보, 당신의 자손 하나 남기지 못한 녀자이니 시집에 남아있을 명분도 없어 오늘로 나가겠어요. 이 몸은 비록 안씨집안을 뜨지만 숨지는 날까지 당신의 안해로 살테예요. …

저녁밥까지 다 지어놓은 백씨는 시부모앞에 가서 공손히 무릎을 꿇었다.

《아버님, 어머님, 그새 저를 친딸처럼 귀히 여겨주시였는데 그 사랑에 보답 못하고 하직인사를 올립니다.》

백씨의 거동만 주시해오던 시부모들은 눈물절반, 한숨절반으로 아무 말도 못했다. 안씨가문의 대라도 이었다면 막아나서련만 어쩌는 도리가 없었던것이다.

《너를 데려다 고생만 시켰으니 이 어미는 눈물밖에 앞서는게 없구나.》

《아마두 네 팔자는 이 늙은것이 망쳐놓은가부다.》

시어머니의 주름진 얼굴로도 시아버지의 수염발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형님, 가지 말아요.》

두 시누이가 설음을 터치며 진정을 토했다.

백씨는 돈의 전부를 시부모앞에 내놓았다.

《이 돈을 받으십시오. 제가 점심참마다 점포와 가게들의 짐을 날라주고 번것이니 달리 여기지 마시고 장례로 진 빚을 갚아주십시오. 그래주면 떠나는 저의 마음도 조금 가벼워질겁니다.》

작은 무명보퉁이 하나를 들고 떠나는 백씨를 안씨집안은 눈물로 바래웠다.

유교를 국가의 리념으로 삼아온 이 나라에서 녀자의 신분적지위는 삼종이라는 두 글자속에 법화되였으니 출가전에는 아버지에게 복종하고 시집가면 남편에게 복종하고 늙으면 아들에게 복종하는것으로서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녀자의 의무는 여지없는 순종이였다. 그런 녀자들중에서 자식없는 과부란 의지할 곳도 복종할 곳도 없는 가장 비천한 존재로서 길가의 돌멩이나 마찬가지의 신세였다.

백씨가 바로 그 꼴이 되여 녀자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친정의 문안으로 다시 들어서게 되였으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정경이 련일 펼쳐졌다.

《이년아, 집구석에 처박혀있거라. 죽어서나 올것이지 무슨 천벌을 받았기에 시집을 나와 이 어미를 찾아왔느냐. 동네가 부끄럽다. 과부된 딸을 둔 어미몰골을 그리도 자랑하고싶으냐! 어이구, 내 팔자야. 령감잃구 힘들게 키워보냈더니 이 망할 년이 과부팔자 이었노라구 장한듯이 나타나 속을 박박 허벼주는구나.》

아침에 시작된 어머니의 욕설과 한탄은 하루종일 그쳐지지 않았고 그 지청구에 어느 하루 편안한 날이 없었다. 게다가 동네에서까지 서방을 잡아먹은 살이 센 청상과부라는 흉문까지 나돌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욕설과 세상악담이 무서워 생존길을 찾지 않을 백씨가 아니였다. 돈을 벌어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고야말 결심으로 백씨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낮에는 남의 집 베틀을 빌려다 무명낳이를 하면서 콩나물을 길렀고 집담둘레에는 약초를 심었다. 날이 어두워지면 동네사람들의 눈을 피해가며 콩나물이나 두부따위를 장사군들에게 헐값이다싶이 넘겨주었다.

그가 기다리는것은 밤이였다. 남 다 자는 그밤이 와야 비난과 뒤시비의 눈총들로부터 얼굴을 감출수 있었고 살아나가기 위한 일을 궁리할수 있는 기회가 생기였다. 기구한 운명의 길에 들어선 청상과부의 눈물겨운 생활이였다.

지금같이 옴지락거려 가지고서는 돈을 벌기는커녕 하루 세끼 죽벌이도 못하겠다고 생각하며 마음먹고 나선것이 뜨물장사였다. 박석골주변에는 륙로문선창이 있는지라 음식점들이 많아서 뜨물을 버리는것이 제일 걱정거리였다. 그러니 물건을 사지 않고 팔수 있는 장사였지만 늘 악취속에서 살아야 하는 힘겨운 일이였다. 험한 일을 피하여서는 돈벌이를 할수 없다고 생각한 백씨는 마음을 도사려먹고 그 일을 시작했다.

룡덕면의 음식점들에서 뜨물을 날라 집짐승을 많이 기르는 평천리나 토성랑쪽에 가서 파는데 한동이에 한푼 받기조차 힘들었다.

백씨는 낮은 피하고 밤부터 날밝기 전까지 뜨물나르기를 했다. 팔자사나운 불쌍한 딸의 천하디천한 그 일에 어머니는 가슴을 두드려댔지만 그는 춘하추동 어느 하루도 번지지 않고 뜨물을 나르며 밤마다 백리길을 걸었다.

처음에는 동이를 리용했지만 시집살이때 겨울철 물장사를 하던 일이 생각나 지게를 지고 초롱으로 날랐다. 물보다 무거운 뜨물이여서 한행보에 여섯동이가 넘게 나르게 되면서부터 푼전은 더 번다지만 육신의 고생은 비길데 없이 막심하였다.

련광정에서 경상골쪽으로 가며 려각과 기생집들이 많았다. 대다수 선상, 보부상 같은 나그네들을 치르는 곳이여서 식객과 유흥객들이 많아 미처 뜨물을 쳐내지 못해 야단하기에 백씨는 그곳으로 자주 갔다.

오늘도 지게에 큼직한 초롱 두개를 매단 백씨는 집을 나서자 련광정 웃쪽의 려각에서 뜨물을 받아 평천리로 날라갔다. 힘꼴이나 쓰는데다 걸음이 빠른 그는 자정이 되기 전에 한행보를 하고 두번째로 뜨물을 받아 지고 돌아섰다.

칠월칠석이 지난지라 밤하늘에는 외로운 반달이 차겁게 빛나고 집집의 처마며 대문마다에 초롱등이 내걸려 밤길은 그리 어둡지 않았다.

뜨물지게를 진 백씨는 비지땀을 흘리며 수굿하고 걸었다.

삼복철에 들어선지라 강바람조차 더운 기운을 몰아왔다.

지게끈은 베적삼 입은 량어깨를 파고들고 흔들거리는 무거운 초롱은 온몸을 누르고 휘뚤댄다. 뜨물이라는게 물은 거의나 없고 음식찌꺼기들이여서 량쪽초롱에 한말씩 매단것이나 같아 몹시 무거웠다.

나르는 뜨물은 몇푼벌이나 겨우 되지만 받는 사람들은 물이 많이 섞이면 한푼도 아깝다고 손을 내젓는다. 그러니 짐이 무거울수록 좋은 뜨물이라 해야 할것이고 몇푼씩이라도 주는 사람들의 눈에 차자면 지금같이 구역질나는 냄새와 무거운 짐에 눌려 시달려야 하는것이다.

평양바닥에서 아무리 가난한 살림을 하는 사람들이래도 이 일만은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한것은 농사군이 인분을 나르는것보다도 천한 잡역으로 여겼기때문이다. 백씨는 이런 일을 세해가 넘도록 하고있다. 그러니 평양의 수만인총중에서 제일 하바닥인생살이를 하고있는셈이다.

그라고 왜 머리를 쳐들고 살고픈 생각이 없으며 자기의 처지에서 오는 굴욕감을 느끼지 못하겠는가. 눈앞에서 약 한첩 써보지 못한채 숨지던 남편모습이 얼른거릴 때면 백씨는 사무친 원한으로 이를 갈았다. 돈을 벌어야 한다. 돈이 있어야 사람이요, 사람답게 살수 있다. 내 기어코 돈을 벌어 남편의 무덤을 크게 쓰고 죽는 날까지 제사를 받들테다.

청녀못근처에 이른 그는 울컥 치받쳐오르는 울분으로 하여 뜨물지게를 내려놓고 풀섶에 주저앉았다.

시누이를 부둥켜안고 울던 생각이 어제일같았다. 그래도 그때의 눈물뒤에는 웃음이 뒤따르지 않았던가. 정성도 기울일 곳이 있었고 밤이면 남편의 품이 기다려주었다. 이제는 남은것이란 하나도 없다. 외로운 이 심사, 고독한 이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것인가.

대동강바람은 련광정추녀를 스치고 감영쪽에서 들려오는 풍경소리는 그에게 서글픈 심회를 날라왔다. 밤바람에 술렁대는 숲가에 자리잡은 청녀못을 들여다보노라니 못에 깃든 옛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느 옛적 이곳 마을에 최씨성을 가진 악착한 부자가 있었는데 12살 난 어린 청녀를 빚값으로 끌어다 종살이를 시키면서 온갖 구박을 다했다고 한다. 그 집 녀편네라는게 얼마나 심보가 고약한지 하루에도 열두번 청녀를 들볶아댔다. 부엌설겆이를 끝내면 아이를 보지 않는다고 앙탈질이고 아이를 업으면 소여물을 끓여라, 마당을 쓸어라, 물을 길으라… 사람의 몸이 열개라도 감당 못할 일을 어린 청녀에게 다 들씌웠다.

그러던 어느날, 부자녀편네는 아이를 달래는 청녀에게 당장 빨래를 해오라고 호령했다. 청녀는 아이를 내려놓고 대동강빨래터로 나갔다.

이 일을 어이하랴. 청녀가 빨래하러 나간 사이에 장난세찬 애녀석이 못가에서 놀다가 그만 물에 빠져죽었으니…

빨래를 하고 돌아오니 녀편네가 두눈이 화등잔같이 되여 아들녀석을 찾아오라고 야단을 피웠다. 부자집에서 쫓겨나오다싶이 한 청녀는 아이를 찾아 사방을 헤맸으나 못에 빠져죽은 아이를 찾을수가 없었다. 승악스러운 녀편네는 청녀가 제 아이를 대동강에 데리고 나가서 빠뜨려죽였다고 미친 생억지를 부리다못해 화풀이로 청녀를, 그 어린것을 못에 처넣었다.

청녀의 원한이 깃든 못에서 그후 기이한 일이 생겼다.

청녀가 죽은 이튿날, 갑자기 못에서 삼단같은 물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부자녀편네가 못가로 달려나왔다.

그때 다시 조용해진 못가운데로 청녀가 나타나 추상같이 말했다.

《이래도 내가 네 아들을 대동강에 빠뜨려죽였느냐?!》

청녀의 두손에는 부자의 아들애가 들려있었다.

부자녀편네는 선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남편인 부자놈도 정신병자가 되여버렸다.

그때부터 버드나무숲속의 이 작은 못은 청녀못으로 불리우며 오늘까지 원한서린 사연을 전해온다.

가난때문에 12살에 죽은 청녀, 옛말의 청녀가 오늘도 얼마나 많은가. 모두 돈없는 설음이고 천대이고 원한이다. 돈밖에 모르는 이 세상을 살아가자면 오직 제 손으로 돈을 버는 길밖에 없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바랄수 없다.

그가 이런 마음을 굳히고있을 때 등뒤에서 초롱이 자빠지는 소리와 함께 악에 받친 고함이 요란스레 들려왔다.

《어느 놈이 사람다니는 길에 이 더러운걸 놨어? 세상에 이렇게 심보가 고약한 놈이 어데 있느냐!》

고함질은 술에 취한 한놈이 하는데 뒤따라 혀꼬부라진 소리와 너털웃음이 장단맞춰 울린다.

너무도 놀란 백씨는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났지만 걸음은 못 떼고 우둘우둘 떨기만 했다.

《멋있어! 임자 오늘 소향이와 놀아보려다 뜨물쓰고 헤염치는 격이 됐네그려.》

《이 사람아, 너무 놀려대지 말게. 저 친구 심사가 오죽할텐가. 소향이한테 잘 보이자구 새옷을 떨쳐입구 나서지 않았댔나.》

《어디 좀 보자구. … 어이구, 공단조끼에서 향내가 아니라 썩은내가 풍기는구만. 가관은 가관일세. 헤헤헤.》

《그만들 약을 올리게! 어쨌다는거야. 냄새가 좋은데 뭘… 흐흐흐 아하하, 진수성찬인데?! 여기다 펴놓구 또 한잔… 하세나. 이크! 보라구, 소뼈다귀가 다 있지 않나.》

백씨는 무슨 정신으로 그들앞에 나섰는지 모른다. 갓 쓰고 비단조끼를 입은 두사람외에 양복쟁이도 보였다.

세놈은 먹이감을 본 이리떼같이 백씨에게 달려들었다. 뜨물을 뒤집어쓴 젊은 량반놈이 술기운에 광기가 뻗쳐 백씨의 머리채를 휘감아쥐고 둘러메쳤다.

《량반을 더럽힌 이년! 네년이 일부러 우리가 뒤집어쓰라고 길에 내놓은 심사가 뭐냐?! 무엄하고 괘씸한지고!》

땅에 쓰러진 백씨를 기운껏 도리깨질하듯 짓밟고 손찌검을 해대고도 성차지 않은지 신음소리조차 못내는 그에게 부랑배들은 입에 담지 못할 쌍욕까지 마구 퍼부어댔다.

《그년 서방곁에 가지 못하게 궁둥이를 아예 짓이겨놓으라구.》

《어랍쇼. 이년이 속은 살아서 이를 갈아대네그려. 알몸뚱이를 만들어가지구 청녀못에 처박아야지.》

《이 쌍년아, 량반 어려운줄 이젠 알겠느냐? 대답해라! 머리를 풀어헤치고 잘못했다구 빌어라!》

《그년이 여간 독종이 아닐세. 아예 기를 꺾어버려라!》

세놈은 저희네 말대로 안한다고 살인칠 기상으로 또다시 밟고 차고 두들겨패댔다.

백씨는 점점 흐려지는 의식속에서도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으로 풀이 돋은 땅을 악을 쓰며 꽉 긁어잡았다. 아, 이 억울함을 어디에 하소한단 말인가!

《이보라구, 그년 아주… 젊었네그려. … 못에는 물도 있겠다. 멀끔하게 씻어낸 다음 재미를 보세. … 어떤가? 성진우? 생각없어?》

《더럽네. 물에 씻는다구 때낀 거렁뱅이몸에서 썩은 내가 없어질가.》

백씨는 아픔보다 더한 고통으로 몸부림쳤다.

성진우!… 죽어도 잊지 못할 이름이다. 리문리려인숙 주인 아들놈! 짐승만도 못한 놈에게 다시 짓밟히우니 이 원한을 언제면 풀소냐?! 참을수 없는 모욕으로 하여 치를 떨던 백씨는 의식을 잃고말았다.

《이년이 뒈…뒈진게 아닌가?…》

술에 취한 놈들도 급기야 겁이 더럭 났던지 백씨에게서 물러났다.

《빨리 가세. 청녀못옆에서 이런짓을 했은즉 흉한 징졸세.》

세놈은 정신을 잃은 백씨를 팽개치고 사창쪽 골목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백씨는 한참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온몸은 만신창이 된데다 육신은 천근같이 무겁고 사지가 쑤셔대며 쓰려났다.

무심한 달만이 밤하늘에서 굽어보고있었다. 나무숲을 헤가르며 부는 바람소리조차 백씨에게는 귀신의 울부짖음같이 들리였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였다. 두손으로 땅을 짚고 앉은채 돌처럼 굳어져있다. 풀어헤쳐진 머리카락사이로 내비치는 얼굴은 창백할뿐 아무런 표정도 어려있지 않다. 이따금 그의 두손이 갈구리같이 되여 땅만 허벼댄다. 손끝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도 허비고 또 허빈다. 그러다 지쳤는지 하늘만 멍청히 쳐다본다.

이윽고 그의 두눈이 산 사람의것 같지 않게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과연 사람사는 꼴이냐. 이렇게나 명을 잇자고 악을 쓰며 뜨물을 나른다 하여 내 팔자가 달라질텐가. 돈! 돈은 사람을 죽이는 악귀나 같은것이다. 가난뱅이꼴에 돈벌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오늘같은 일을 당하지 않았는가. 아아! 이 눈먼 하늘아, 세상을 굽어살펴보느냐. 뼈를 깎으며 일하는건 누구기에 손에 흙 한점 묻히지 않는 놈들이 농사짓고 무명짜는 사람들을 개처럼 짓밟도록 내버려두는거냐!

꺼져내리는것 같은 땅을 짚고 일어선 백씨는 휘청휘청 대동강을 향해 걸어나갔다. 그의 귀에는 물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희미한 달빛속에 보이는것은 저승사자가 부르는 오솔길이였다.

여기로 곧추 가면 남편을 만날수 있을가. 그리운 내 님, 그이를 다시 만나 살림을 펴고 다정한 부부가 된다면… 가야 해. 그이곁에 있으면 설음도 가셔지고 웃음이 다시 피겠지. … 치마자락이 강물에 부풀어오르며 온몸을 아득한 죽음의 심연속으로 이끌어 간다.

여보, 내가 가요. 헤여지고보니 내가 살아있다는것이 죄였어요. 어서 마중오세요. 저녁이면 보내주던 싱글웃음, 따뜻이 안아주던 그 품을 돌려주세요. 그리워요, 당신이 내게 부어준 살뜰한 정이… 당신의 그 사랑이 한시도 내곁을 떠난적 없으니 오늘은 이 몸을 받아주세요. …

대동강물이 허리를 휘감고 흐른다. 한걸음 내짚으면 수중고혼이 되는 길이요, 뒤로 물러서면 치욕의 생지옥이 시뻘건 혀를 내밀고 기다린다. 그때 백씨는 안재황의 목소리를 들었다.

《여보, 어데로 가오?》

《당신을 찾아가요.》

《황천 만리길을 당신이 어떻게 혼자서 온다고 그러오.》

《가시밭 억만리라도 님 그리워 가는 길인데 왜 힘들겠어요.》

《오지 마오!》

《내가 보고싶지 않아요? 싫어졌어요?》

《여긴 망령들의 세상이요.》

《나도 망령이 되겠어요.》

《이승에 내 한을 남겨두고 오겠다는거요?》

《당신의 한을 내 힘으론 풀어드릴수 없어요.》

《그러니 우리 둘은 이승에서 만나 절통한 한만 남겼구려.》

《당신 품에 안기면 다 잊어질거예요.》

《부탁하는데 오지 마오. 여기에도 악령들이 살고있소. 하늘이 벌을 준다는것도 다 거짓말이요. 돈과 권세로 백성들의 피눈물을 자아내던 악착한 놈들이 예서도 날친다오. 이승과 저승은 대문 하나 사이를 뒀을뿐이요. 살아서 풀지 못한 한을 죽어서는 절대로 풀지 못하오. 내 말이 들리오? 너무 일찍 내곁으로 올 생각을 마오. 당신이 그런 마음을 먹는다면 내 뜻을 어기는거요.》

백씨는 선자리에서 움직일줄 몰랐다.

아, 남편의 혼백이 나를 오지 말라는구나. 이승살이가 고역살이임을 그라고 왜 모르랴. 하건만 너무도 젊은 안해이고 고생만 시킨것이 마음에 걸려 차마 지옥으로 부르지 못하는구나. 내 남편 하나를 하늘처럼 믿고 살았으니 어찌 그이의 뜻을 어길수 있단 말인가. 명을 보존하고 먼저 간 남편의 한을 풀어드려야 그이곁에 내가 갈수 있다. 죽어서는 안된다.

혼몽에서 깨여난 백씨는 그제야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가슴 저미는 통곡을 터뜨렸다.

심야의 강반, 인간세상사에는 무심한 강물이 불행한 녀인의 하염없는 눈물과 애끓는 곡성을 싣고 어둠속으로 끝없이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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