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7

 

백씨는 남은 제주로 비돌을 정히 씻었다.

세월이란 얼마나 무정한것인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일을 그는 열두해째 하고있다. 행상걸음이라 비록 청명과 추석에 날을 맞추어 찾지는 못해도 봄가을에 한번씩은 어김없이 남편의 묘소를 찾는 백씨였다.

부부의 정이란 끊기울수 없는 련련한것임을 세월이 흐를수록 더더욱 페부로 느끼는 그다. 고작해서 두해도 나누지 못한 사랑이였건만 안재황은 그에게 있어서 평생토록 살아있을 남편이다. 시집간 녀인이 한 지아비를 섬기는것은 법도라고 하지만 백씨가 안재황을 오늘까지 맘속에 안고 사는것은 법도를 중히 여겨서만 아니라 그가 생전에 남기고간 사랑이 너무도 컸기때문이다.

봉건유교도덕의 압박속에서 나서 살아오는 백씨이지만 워낙 천덕꾸러기이다보니 삼강이니 오륜이니 하는것에 대한 분명한 리해도 없었다. 학문에는 소경이였지만 진심을 알고 의리로 사는 길을 찾는 눈은 밝았다. 가식없는 정을 준 남편을 무작정 받들며 따른 백씨여서 명이 진할 때까지 그 정을 간직하고 살려는 마음만은 변함없었다.

무덤을 한바퀴 돌아보던 백씨는 무슨 생각이 났던지 호미를 들고 잔디가 덮인 묘의 옆구리를 파기 시작했다. 별로 깊이 파지도 않았는데 그속에서 유지로 싼 물건이 나타났다. 두손으로 무슨 귀물이나 되는듯 흙을 정히 털고 싼것을 펼치였다. 고무신 한컬레였다. 색은 검누렇게 탈색되였지만 신창을 보면 신지 않은 신발이라는것이 알렸다.

《여보.》

백씨는 살아있는 남편을 마주한것처럼 나직이 불렀다. 송산숲이 고요로 대답하자 그의 두눈에는 이슬이 핑 고였다.

《당신은 너무도 무정해요.》

생시처럼 남편을 나무린 백씨가 눈시울을 슴벅이자 맺혔던것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아, 구천은 예서 몇리더냐. 홀로 있을 그인 지금 얼마나 외로우랴.

백씨의 생각은 하염없이 흘렀다.

겨울 한철은 대동강이 얼어붙어 안재황에게는 일감이 없었다. 온 집안이 집안에서 보내는 계절이나 같았다. 두 시동생은 봄부터 가을까지 증산쪽에 가서 삯일로 농사를 짓고는 땅이 얼무렵에 조나 수수, 쭉정이가 잔뜩 섞인 벼섬 같은것을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것이 긴긴 겨울 안씨집안을 살릴 식량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겨울은 추위속에서 배곯으며 봄을 기다리는 계절이다. 대동강을 낀 평양의 겨울은 바람이 세차고 맵짜기로 소문이 났다.

안씨집안의 녀자들이 그런대로 겨울살림을 유지했다. 백씨와 두 시누이는 베틀을 잠시도 쉬우지 않았고 시어머니의 물레질소리는 밤낮없이 스르륵거렸다. 무명이라도 짜야 몇푼이라도 벌기때문이다.

안재황은 날씨를 가리지 않고 매일같이 일감을 찾아 헤매였지만 저녁에는 빈손으로 나타나기가 일쑤였다.

백씨는 남편이 늦는 날에는 부엌에서 안절부절하며 기다리기에 속에 재가 앉을 지경이였다. 입은 옷이래야 솜도 변변히 펴지 못한 두루마긴데 바람조차 막지 못할 옷아닌 옷을 입고 나갔으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어느날엔가는 밤이 깊어서야 나타났다.

《다들 쉬오?》

《왜 이리 늦어다녀요? 어서 아궁앞에 앉아요.》

백씨는 부지깽이로 밑불을 긁어내며 나무랐다.

《이걸 받소.》

안재황의 손에서 동전 다섯잎이 나타났을 때 백씨의 마음은 기쁘기보다 이 엄동에 저걸 벌자고 고생했을 남편생각으로 가슴이 쓰려났다.

《서문거리 인력거군령감이 앓더군. 그래서 오늘 하루 빌려가지고 끌었소.》

《제정신이예요? 그 몸으로 인력거를 끌다니.》

《일없소. 집안에서 떨기보다 육신을 놀리니 좋던데 뭐.》

백씨는 돈을 남편의 손에 도로 쥐여주며 증을 냈다.

《당신 손으로 어머님에게 드리세요. 인력거를 끌었다는 말두 하구요.》

《여보, 그건… 당신이 모르는척 하고 드려야지 아, 내가 그 말을 어떻게 한다구…》

《다시 그런 일 하시겠어요?》

백씨의 두눈은 원망으로 금시 울음을 터칠것 같았다.

《안하지. 정말이요.》

《놀고있는 인력거가 있으면 나한테 알려요. 내가 끌테니…》

《녀자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한다구 그러오?!》

《어서 저녁 드세요. 길바닥에 꼬꾸라져도 내가 당해야지 당신이 그렇게 되면…》

백씨의 걱정과 근심이 너무도 절절하게 마쳐와 안재황은 안해의 두어깨를 꽉 잡고 후더워오르는 가슴에 끌어안았다.

《다신 안그러지요?》

《누구 말이라구 거역하겠소.》

백씨는 남편의 언 손을 모아잡아 자기 품속에 밀어넣으며 말했다.

《이 추운 겨울에 몸간수나 잘하세요. 쌀걱정, 돈걱정은 말구요. 내가 다 한다니까요.》

《허허, 당신이 어떻게…》

백씨는 실없는 소리하는 녀자가 아니다. 겨울이 되니 물이 발라 어디서나 물을 찾는다. 그래서 오늘 도끼를 들고나가 대동강얼음을 까서 구멍을 냈다. 밤새 얼어붙는대도 래일아침엔 품을 들이지 않고 물을 길을수 있다. 부엌일을 시누이들한테 맡기고 자기가 하루만 길어도 온 집안의 하루식량을 사댈수 있다는 타산을 했던것이다. 백씨는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마는 성미였다.

이튿날부터 물지게를 지고 바람사나운 대동강에 나가 물긷기를 시작했다. 장정들도 꺼리는 겨울철 물장사였다.

처음에는 집안사람 누구도 몰랐지만 역시 촉기빠른 둘째시누이가 먼저 눈치채고 말하는 바람에 시아버지가 껑충 놀라 으름장을 놓았다.

《이 동삼에 물장사를 하다니? 죽자고 하는짓이지 뭐냐?! 당장 그만두거라!》

인정은 그렇게 웨쳐도 살자면 안할수 없는 일이였다. 봄부터 가을까지 집에서 나가살다 돌아와서는 겨우내 동무들끼리 밀려다니면서 화투놀이나 하던 두 시아우가 백씨의 정상이 가슴에 걸려 물지게를 앗아메고나서며 시시덕거렸다.

《형수님 눈앞에서는 편안한 날이 없겠어.》

《그래두 난 우리 형수가 좋더라.》

두 시아우가 도와나서니 백씨가 시작한 겨울 물장사가 은을 내서 저녁이면 남자들이 막걸리사발이나마 기울일수 있었다. 가난뱅이가 게을러지면 입에 거미줄치는 길밖에 없다는것을 백씨가 말없이 가르친것이나 같았다.

대동강에 봄이 왔다. 평양의 풍경인 버드나무가 가지들마다 연한 황록색을 띠고 수만오리 비단실처럼 하늘하늘 춤을 춘다. 강뚝에 파아란 햇순들이 고개를 쳐들고 잎속에서 자주빛 구슬알같은 제비꽃이 수집게 웃는다.

바다길, 강길이 열리니 륙로문나루터는 또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때를 만나 평양의 장마당들도 기세를 올려 싸구려소리를 뽑아댄다. 인간세상의 거대한 륜회속에서 개개 인간들의 희노애락도 끝없이 반복되는것이다. 사람들은 이해에 자기들한테 차례질 행복일지 불행일지 알수 없는 길을 따라 허둥거리며 걸어간다.

안재황은 봄과 함께 나루터에 나가 일을 시작했다. 겨울이라는 빈궁계절이 지나자 안씨집의 두 아들은 또다시 농토를 찾아 삯일하러 떠나고 시누이들의 베짜는 소리도 기운차게 울렸다.

백씨는 집안의 크고작은 일을 도맡아안고 쉴새없이 돌아치면서도 남편걱정을 늘 마음 한구석에 안고 살았다. 점심참마다 남편을 만나면 안색을 살피며 병이 생기지 않았나 무던히 왼심을 썼다.

《오늘도 쌀이 들어왔나요?》

《그럼, 지난해 남도지방에도 가물이 들었다누만. 쌀값이 곱으로 뛰여오를거요.》

《힘에 부치면 쉬면서 해요.》

《한겨울 노전바닥에서 딩굴었는데 쉰다는게 말이 되오?》

《제 몸간수는 제가 해야 해요.》

《고생하는건 당신이요.》

《나야 힘이 남아돌아가는 녀자가 아니나요.》

《그건 제 소리구 당신 짚신 앞코가 사흘도 못 가서 날이 끊기우는걸 차마 못 보겠소.》

《그건 내 걸음이 세차서야요.》

《허허, 남들처럼 고무신이래두 신겨줘야겠는데.》

《공단저고리도 입히고싶겠지요?》

안재황은 백씨의 거칠어진 두손을 잡고 쓸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신발을 어느날 신겨준다?》

《새빠진 소리. 고무신 살 돈이 있으면 당신 몸보신에 쓰게 저에게 줘요.》

《그럴것 같아 당신 몰래 내가 벌써 샀지.》

안재황이 자랑삼아 말하자 백씨는 놀란 눈을 크게 떴다.

《정말이예요?》

《음.》

《무슨 처사를 그렇게 해요? 누이들이 알면 뭐라겠어요? 오늘 저녁에 와서 나한테 몰래 내놔요. 둘째시누이를 신겨야겠어요.》

《안돼!》

안재황은 처음으로 화를 벌컥 냈다. 자기 성의를 너무도 몰라줘서 노엽다는것이다.

백씨는 답답할만큼 고지식한 남편을 쥐여박고싶기도, 껴안아주고싶기도 했다.

《내가 그 신발을 먼저 신으면 안씨집안의 며느리가 아니예요.》

좋은 소리도 할 때가 있다는것을 아는 백씨여서 다짐이나 하듯 말하고는 여느때같지 않게 웃음조차 남겨주지 않고 돌아섰다.

초여름해가 그물그물 기울어지고 뜰안에 선 은행나무 상수리에서 저녁까치가 부산스레 울어댈무렵 안씨집안에 변괴가 들이닥쳤다.

안재황이 인부들의 등에 업혀 나타나자 온 집안이 정신없이 아우성쳐댔다. 약질인 안재황이 종시 쓰러진것이다. 강기슭에 피를 토했는데 그 광경을 본 사람들모두가 너무 끔찍하여 어쩔바를 몰라했단다. 말만 들어도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겠는지가 방불히 안겨와 백씨는 눈앞이 캄캄해났다.

방안에 들여다눕힌 안재황의 정상은 참혹했다. 푹 패인 눈확은 온통 검푸른 빛으로 뒤덮였고 창백한 얼굴엔 피기라고는 찾아볼수 없었다.

《재황아, 눈을 떠라!》

시어머니가 울먹이며 애타게 찾을 때마다 백씨는 자기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부엌 한가운데 망두석같이 서서 두주먹만 떨었다.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 내가 왜 선창일을 말리지 못했던가. 제 서방이 귀하다고 하면서도 매일같이 고된 일을 하는 그의 앞을 막아서지 못했으니 미련둥이가 아니고 뭔가. 이제 와서 발을 구르며 가슴을 쥐여뜯는다고 중병든 남편을 일으켜세울수 있으랴.

《이년아, 어서 의원집에 갔다오지 못해?!》

닥달질을 당하는건 시누이들이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의원이 나타났다. 백씨는 정지문짬으로 가슴을 조이며 들여다보았다.

한동안 맥을 짚어보던 의원이 《허- 병을 너무 길렀수다. 기가 진해가는데다 가슴에 랭이 잔뜩 몰렸으니 풀기가 어렵겠는데…》 하고 가망없는 한숨소리를 낸다.

백씨는 저도 모르게 두눈을 감았다. 하늘땅이 뒤집히며 빙빙 휘둘러대는통에 문설주를 꽉 움켜잡았다. 하늘이여, 굽어보살펴 천혜를 베풀어주옵소서. 이년이 피면 피, 살이면 살, 뼈면 뼈, 가진것을 다 내놓을테니 내 남편만 살려주옵소서. … 천지신령에게 빌고 또 비는 그의 마음은 불안과 공포로 떨고있었다.

《이게 약방문이요. 하루이틀내로 써야 명을 보존할수 있소.》

의원이 제 손으로 쓴 약방문을 읽어주는데 백씨는 들어도 모를 소리였지만 인삼과 부자라는 약재이름만은 가려들을수 있었다. 삼이 든 약이라면 값이 얼마일가?

《한번에 한첩씩 스무첩을 쓰되 탕약으로 달여서 복용하도록 하시우.》

《어이구, 돈은 얼마나 드나요?》

앞뒤로 숨이 막힌 시어머니가 묻는 말이다.

《많아서 일곱냥이면 될거외다.》

가지고온 침대를 몇곳에 꽂았다 거둔 의원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곱냥… 어디서 그 많은 돈을 구할수 있을가? 아무리 돈이 귀하단들 사람목숨보다야 클텐가.

백씨는 남편을 살리겠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정신을 가다듬었다. 한냥을 벌자고 두달이 넘도록 삯빨래를 하지 않았던가. 두달이 아니라 열두달을 꼬박 죽기내기로 일해서라도 남편의 목숨만 건지면 된다는 생각을 한 백씨는 주먹을 부르쥐고 일어섰다.

《얘 며늘애야, 이 밤중에 어델 가느냐?》

미처 대답할 경황이 못된 백씨는 리문리려인숙을 향해 정신없이 달음질쳐갔다.

백씨를 맞아준 사람은 려인숙식모였다.

《주인님 계셔요?》

황황히 묻는 말에 식모는 고개부터 저었다.

《어델 갔어요? 오겠지요?》

《평천리에 갔는데요. 룡강쪽에서 보낸다던 쌀이 오지 않아 갔으니 오늘밤은 게서 묵을거예요.》

백씨는 오금의 맥이 탁 풀리였다. 하늘같이 믿고 왔는데 주인이 없으니 어쩐단 말인가.

《어멈, 누가 왔소?》

미닫이문을 열고 마루에 나서는 사람은 려인숙주인의 아들이다.

《저, 주인님을 뵙자고…》

식모는 말허리를 서둘러 끊어내치고 부엌으로 사라졌다.

《아, 누군가 했더니… 만나야 할 사람은 만나는 법이지요.》

마주서기조차 싫은 사내지만 백씨에겐 지금 그것을 가릴 형편이 못되였다. 급하면 아무한테나 기대를 걸게 되는것이다.

《어떻게 왔소?》

원체 말투가 건방진 사내가 제 집 마루를 대청만큼이나 여기며 내려다본다.

《돈을 좀 돌려쓸가 해서…》

《돈?…》

사나이는 첫마디부터 시들한 소리로 반문하고나서 코방귀뀌듯 말했다.

《돈을 꿔달라는 소린데 돈도 사람을 봐가며 꿔주는거요.》

천하고 가난한 놈에겐 빚도 내주지 않는다는 소리다. 한마디로 갚지 못할 사람에게는 빚을 지우지 않는다는 말이다.

《급한 일이 생겨서 그러니 제발 좀 꿔주세요. 내 이 집 빨래를 두달 넘게 했는데 1년 아니 그보다 더 해드려서라두 꼭 갚겠어요.》

백씨는 려인숙주인 아들이 주머니에 일곱냥쯤은 어렵지 않게 가지고있으리라 생각하며 각박한 처지에서 굴욕감을 삼키면서 사정했다.

《삯빨래군이야 많지. 그것두 자주 바꿔야 품삯을 떨굴수 있는거요.》

잘사는 놈이 가난한 사람 부리는 방법을 뻔뻔스레 지껄여대니 이 백씨라는 녀자 알기를 버러지만큼이나 여기는것이다.

《제일 낮은 품삯을 받지요.》

물러설 길이 없는 백씨라 비굴한 사정을 할수밖에 없었다.

마루우에 선 사내는 백씨를 잠시 내려다보고나서 말했다.

《일곱냥이라… 큰돈은 아닌데…》

《돌려만 주시면 이 집의 일을 무엇이든 다하겠어요.》

《무슨 일이든 다하겠단 말이지.》

《네.》

려인숙 아들은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거만하던 말투까지 바꾸었다.

《그럼 우리 서로 정을 통해보자구. 하루밤만 보내면 일곱냥을 리자없이 꿔주겠소.》

《?!…》

백씨는 너무도 아연하고 억이 막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남편을 생사기로에 둔 녀자에게 돈 일곱냥에 몸을 팔라니 이놈도 사람인가. 하지만 빈손 들고 돌아가면 남편의 생사는 기약할수 없지 않은가.

《어서 올라오라는데두.》

유혹의 손을 앞에 둔 백씨의 심중은 납덩이같이 무겁다. 눈을 꾹 감고 몸을 내대서 남편부터 살려야 하지 않을가? 그뒤에는 무슨 낯짝으로 남편을 쳐다보며 한지붕밑에서 살겠는가. 청녀못기슭에서 시누이와 그러안고 울던 일이 불현듯 생각났다. 순간이나마 바람앞의 초불같이 흔들렸던 자기 마음으로 해서 백씨는 치가 떨렸다. 그냥 돌아서려다 문득 물었다.

《성함을 어떻게 부르나요?》

《나? 허허… 성진우라 하네.》

《내 가슴에 피로 새겨둘테요. 이 치욕을 살아서 씻지 못하면 죽어서라도 기어이 씻을테니 다시 만나요.》

리문리려인숙을 뛰쳐나오다싶이 한 백씨의 앞으로 식모가 다가왔다. 어두운 밖에서 기다리고있은 모양이다.

《집에 불상사라도 생겼수?》

《…》

백씨는 식모의 동정어린 물음에 눈물이 왈칵 솟구치는것을 겨우 참았다.

《제가 무슨 정신으로 여길 왔는지 모르겠어요. …》

《저놈은 사람의 종자가 아니외다. … 나도 다 들었수.》

그 소리를 뒤에 남기고 걷는 백씨의 가슴속에서 한을 품은 피덩어리가 꿈틀 솟구쳤다. 그는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아, 돈! 돈이 무엇이기에 사람이 짐승같이 취급되여 울어야 하고 돈이 무엇이기에 생사람이 죽어야 하는가! 아, 돈이 원쑤로구나!

백씨가 집안에 들어서니 림종에 이른 안재황의 주위에 모여앉은 집안식구들이 어데 갔댔느냐 묻지도 못한다.

《재황아, 너를 앞세우고 이 아비는 어떻게 살라는거냐!》

《어이구, 하늘도 무심하구나!… 내 아들을 뺏어가려구 하다니…》

백씨는 안재황의 머리맡에 무릎을 꿇고앉았다.

늘 봐야 벙글써 웃음만 짓던 얼굴, 남한테 해를 줄줄 모르는 어진 마음을 안고산 사내가 한창나이에 마지막숨을 몰아쉬니 이보다 더 기막히고 원통한 일이 또 어데 있는가.

백씨는 오른손 약지를 뼈부서지는 소리가 나게 물어뜯어 솟구쳐나온 시뻘건 피를 안재황의 입에 떨궈넣었다.

며느리의 그 행동을 본 집안사람들이 노전바닥에 머리를 박으며 울음을 터뜨리였다.

여보, 한몸이 되여 두해도 채 못살아본 이 안해의 피를 받으세요. 깡그리 다 드릴테니 제발 일어나주세요. 백씨는 남편의 입에 손가락을 물린채 마음속으로 빌고빌었다.

《어머니, 오라버니가 눈을 떠요.》

둘째시누이가 말했다.

안재황이 정말 눈을 떴다. 검푸르던 눈확에 얼마간 생기가 도는듯싶다.

《재황아!…》

시어머니가 목메여 찾자 안재황의 두눈은 집안사람들을 둘러보고나서 힘겹게 손을 쳐들더니 장농을 가리켰다.

《뭘 찾아달라는게 아닐가요?》

《어데서?…》

《장농을 가리키는걸 봐선…》

《어서 열어라.》

장농속에는 입던 누더기옷과 잡동사니뿐이다. 둘째시누이가 그속에서 베천으로 싼것을 꺼냈다.

《오라버니, 이거예요?…》

안재황의 두눈은 옳다는 의사를 보냈다.

《어서 풀어라, 그게 뭔지.》

베보자기속에서 고무신 한컬레가 나왔다.

백씨는 자기를 주자고 사둔 고무신을 보자 남편의 명은 예서 끝나고말거라는 예감으로 하여 정신이 아찔하여 의식을 잃었다.

《아가야!》

《며늘애야!》

《형님!》

다급한 부름소리를 들으면서도 백씨는 남편의 입에 물린 손가락만은 뽑지 않았다.

동이 터올무렵에 안재황은 숨을 거두었다. 높낮이가 다른 피타는 곡성이 돈만 아는 더러운 세상을 절규하며 새벽하늘가로 처절하게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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