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6

 

륙로문나루터는 사창장이나 서문장과는 다른 풍경을 가지고있다. 장마당이 점포나 가게들과 더불어 소매지라면 선창은 도매장소인것으로 하여 매매의 규모가 크고 거래의 방법도 일명 점잖다고 해야 할것이고 장마당처럼 소란스럽지 않았다.

대동강은 그 흐름이 유순한편이며 여울이 많고 기슭은 수심이 얕아 배를 대기가 불편했지만 련광정과 대동문근처의 기슭만은 강바닥에 암초들이 없는데다 물이 깊어 포구로 리용하기 알맞춤했다.

멀지 않게 순조왕때만 해도 이 대동강나루터는 사동과 승호, 강남과 황주쪽으로 가야 할 사람들을 건네주는 일과 크게는 서도의 진상품을 서울에 올려보내기 위해 관가의 배가 리용한 나루터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 와서는 하루에도 수만냥이 오가는 장사터로 변했으니 국가의 기강이 문란해진데도 있었지만 상업발전을 필수적요구로 제기한 시대의 순응이기도 했다.

륙로문나루터에는 하루에 수십, 수백명의 인부들이 모여드는데 대개는 일자리없는 사람들이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힘꼴이나 쓰는 청장년들로서 하루를 벌어 술이나 마시고 패싸움을 일삼는 왈패들이 적지 않았다. 나루터주변에는 인부들의 주머니들을 털어내기 위해 아침부터 각종 음식과 술을 갖춘 장사군들이 주런이 자리잡고 저녁이면 선주나 선상 같은 돈주머니가 묵직한 사람들과 타지에서 온 사내들을 꼬여 기생집으로 이끄는 포주들의 웃음띤 얼굴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고역을 팔고 향락을 사는 세파속에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방종한 인간은 더 방종하게, 탐욕스러운 놈은 더 탐욕스럽게 만들어내는 곳이 이곳 륙로문나루터이기도 했다.

백씨는 어느날 처음으로 남편이 일하는 나루터에 나와서 인부들의 고된 로동을 두눈으로 직접 보게 되였다.

흔들거리는 배다리발판을 타고 쌀가마니를 메나르는 인부들이 개미떼들처럼 줄지어흐른다. 한여름이라 웃저고리를 벗어내친 검붉은 몸에서 땀이 비오듯 흐르고 힘겨움을 이겨내려고 《허구허구- 오른발 들구선 탁배기생각.》 하고 선소리를 먹이면 《어허구여- 저녁이면 멋이로다, 방아찧기.》 하는 걸직한 소리가 꼬리물고 울린다. 평양의 막로동판이 선창일이였다.

백씨는 하나같이 억센 사내들틈에 약골인 남편이 끼워 한푼이라도 벌겠다고 악을 쓴다는 생각에 목이 꽉 메였다. 어떻게 하면 남편공양을 잘할수 있을가. 그의 머리속에서는 이 생각이 하루한시 떠나지 않았다.

어느날 시아버지는 마당에서 농쟁기를 손질하고 시어머니는 지난해의 묵은 수수쌀을 키질하고있었다. 시동생들이 다 나가고 없는 조용한 집이여서 백씨는 터밭김을 다 매고나서 풋강냉이 몇이삭 따가지고 시어머니곁에 가앉았다.

《어머니, 우리 집 강냉이가 잘됐지요?》

자귀질을 하던 시아버지가 먼저 대답했다.

《그게 다 네 손이 걸어서 잘되는 일이다.》

《에그, 노상 며느리칭찬을 입에 올리다 상투우에 올라앉으면 어쩌실려우?》

《그럼 뭐래? 그전에 며늘애가 독 이듯 하고 다니면 되는거지.》

《며느린 시아비 며느리라더니, 쯧쯧.》

시어머니도 속이 좋아서 웃으며 혀를 찼다.

《어머니.》

《왜?》

《제가 점심을 날라다줄가 하는데…》

《그건 무슨 생뚱같은 소리냐?》

《식은 밥보다 더운 밥이 나을게구… 이 더운 여름철에 랭국이라도 풀어 가져가면 한결 잡숫기가 헐할텐데.》

수건을 푹 내리쓰고 키질하던 시어머니가 고개를 돌렸다.

《서방걱정을 하는 소리냐?》

《…》

《일하는델 가봤냐?》

고개를 수그린 백씨는 따든 강냉이이삭만 매만진다.

《우리 재황이 색시야 잘 만났지.》

감심한 시아버지 소리이다.

《네 맘결은 곱다만 매일 끼니를 나른다는것도 여간한 일이 아니지만 집안형편에 뭘 가져다먹이겠니?》

《그건 제가 할게요. 반찬 한두가지야 더 만들지 못하겠나요. 잡곡밥에 된장을 잡숫기보다는 낫겠지요.》

백씨는 진정 남편이 걱정되고 위해주고싶어 말했다. 시어머니는 백씨의 어깨를 만지며 코물을 삼켰다.

《낳은 에미도 못하는 생각을 네가 하는구나.》

《그래서 부부간엔 촌수가 없다는게야.》

시아버지는 며느리 말이면 다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라 로친네가 할 말을 어렵지 않게 대신했다.

《오늘 점심부터라도 당장 그리하려무나.》

《재황인 점심밥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수.》

《며느리가 괜히 첫물풋강냉이를 땄겠소? 궁냥이 그렇게 좁아서야…》

《허허, 난 이젠 죽어두 되갔수다. 이런 며느리가 있으니.》

백씨는 시부모들의 승인을 받은지라 얼굴을 붉히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삶은 풋강냉이와 오이랭국을 그릇에 싸든 백씨는 나루터로 걸음을 재촉했다. 남편얼굴 한번 더 보고 그 웃음 한번만 더 안아도 사는 보람이 커지는 그였다.

나루터의 점심시간이 되여온다. 하나같이 동가슴을 드러낸 사내들이라 와서고보니 제 남편 찾기도 조련치 않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나기까지 했다.

《여보게 신양울뚝이! 막걸리부터 마시세.》

《경상곰보야, 어제 밤 투전에서 진 술을 내야지.》

《마시는 재미에 살고 취하는 흥에 세상이 바둑판만 해보이질 않나.》

가대기군들이 상스러운 입으로 별명을 불러대는가 하면 걸직한 육담을 되는대로 지껄여댄다.

눈이 밝은 백씨는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않고 껑충한 키에 구부정한 자세로 그늘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안재황의 모습을 띄여보고 언덕길로 종종걸음을 놓으며 내려가서 남편과 마주섰다.

《아니, 당신이 어떻게?…》

안재황은 무척 놀랐다.

《어서 가자요.》

《어딜 가자는거요? 점심이나 먹구선 짐을 또 날라야 할텐데.》

영문도 모르고 따라가며 안재황이 물었지만 백씨는 그런 말은 들으려고도 안했다.

소나무 두그루와 싸리숲에 둘러싸여 사방이 막힌 곳에 이르러서야 백씨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제 먼저 앉아 보자기를 펼쳤다. 큼직한 놋대접에 담은 오이랭국과 메운 나물채,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풋강냉이 세이삭이 눈에 뜨이자 안재황은 선자리에서 어정대며 뜨직뜨직 말했다.

《풋강냉이가 정말 먹음직하구만. 헌데 부모님 점심은 어떻게 하구 여길 나온거요?》

《어서 앉기나 하세요.》

《나한텐 좋지만 늙은이들이 노염이라도 타면…》

《제가 그렇게도 마련없는 년같이 여겨지나요?》

《가라고 합데?》

《래일부터는 밥곽을 들고다니지 않게 하래요.》

《우리 오마니가?…》

《부모님이 다 승낙했다니까요.》

그제야 안재황은 속에 걸린 근심을 풀고 자리에 나앉았다.

《물부터 마시구 랭국에 밥 말아 잡숴요.》

안재황은 꼭 어린아이같이 백씨가 시키는대로 했다.

《조밥을 된장으로만 먹을 땐 목이 메더니…》

《병풍나물 메운거예요.》

《맛이 상긋하구만. 당신도 함께 들기요.》

《난 부모님과 함께 먹고 떠났어요.》

조밥 한그릇을 랭국에 말아 다 먹은 안재황은 백씨가 주는 풋강냉이를 받았다.

《내가 깜빡 잊었네.》

종발을 찾은 백씨가 저가락으로 풋강냉이에 건뎅이젓을 발라주었다.

《거 별맛이구만. 풋강냉이를 건뎅이젓에 발라먹긴 처음인걸.》

백씨는 안재황이 먹는 모습을 기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고된 일에 얼마나 허기졌으면 저리도 달게 먹겠는가. 남들은 외상음식도 먹지만 집살림이 걱정되여 음식을 사먹는다는 말조차 모르는 남편이다. 같은 사낸데 그럴라니 오죽하겠는가. 가난이 한창 젊은 사람을 주접이 들게 만들었다. 녀편네라도 온전하면 친구도 없이 외롭게 구석진 곳을 찾아서 혼자 점심을 먹게 하지는 않을것이다. 백씨는 남편의 정상이 가슴에 마쳐올수록 죄스러운 마음을 거둘수 없었다.

《에- 오늘 점심엔 배가 놀라 무슨 일인가 할거요.》

점심을 다 먹은 안재황은 두손으로 배를 쓸며 하품을 해댔다.

《곤하실텐데 좀 쉬세요.》

《하긴 다들 한잠 자고나서야 일을 시작하니까.》

그릇개비를 보퉁이에 싸서 옆에 밀어놓은 백씨가 안재황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말했다.

《그럼 누우세요. 자, 제 다리를 베고 허리를 펴세요.》

《어서 가보오.》

《싫어요. 조금이라도 곁에 있다 갈래요.》

헤여지기 아쉬워하는 안해의 심정을 헤아려 순박한 눈을 끔쩍이고난 안재황은 《당신두.》 하며 사위를 둘러보고는 안심되는듯 백씨의 다리를 베고 누웠다.

백씨는 두손으로 남편의 상투밑을 살근살근 긁어주며 물었다.

《좋지요?》

《정말 좋아. 베개를 벤것보다 더 편하구만.》

《나야 살집이 좋은 녀자가 아니나요.》

편안히 누운 안재황은 백씨의 손을 잡아 가슴우에 올려놓고 살뜰히 쓸어주며 말했다.

《당신이 이렇게 곁에 있으니 힘든것도 피곤한것도 다 가셔지는구만.》

《매일 올게요.》

《정말?》

《좋아요?》

《나한텐 당신밖에 없소.》

《저에게도 당신밖에 없어요.》

그날부터 백씨는 매일 남편의 점심을 날랐다. 그렇다고 며느리로서 시집일을 등한히 하는적도 없었다. 오히려 시누이가 하다가 피곤해 자리에 누우면 베틀에까지 올라앉았다. 그의 일솜씨가 하도 걸싸니 이웃들모두가 입을 모아 칭찬하고 부러워했다.

나루터로 매일 오가는 길이 백씨로서는 우리안에 갇혀살던 새가 창공을 만난것이나 같았다. 살자고 별별 일을 다하는 사람들도 보았고 남 부끄러운짓을 해가며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백씨의 마음은 오로지 제 남편이 다른 남정들처럼 든든해서 안씨집안의 큰 기둥으로 되게 해야 한다는 한가지였다. 그러자니 날마다 들고다니는 변변치 못한 밥과 찬이 속에 걸렸고 장마당을 지날 때면 늘 눈앞에 욕심나게 얼른거리는것이 검정닭이였다. 돈만 있으면 살이 진 큰 놈을 한마리 사서 곰이라도 해주면 얼마나 좋겠는가. 노상 그 생각을 하며 살던 백씨는 우연히 륙로문선창으로 가는 길옆에 있는 리문리려인숙의 안주인을 알게 되였다. 손님들이 많이 드는 집이여서 빨래감이 밀려 걱정이라는 소리에 삯빨래를 할 결심을 했다. 남편에게 점심밥을 주고 돌아서서 빨래감을 받아쥐면 강이 코밑이라 제꺽 빨아치울수 있었다. 품삯이라야 몇푼 안되지만 한두달 모으면 검정암닭 한마리는 쉽게 살수 있다.

리문리려인숙과 약조한 이튿날부터 백씨는 점심참에 두가지 일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힘이 남아돌아가는지라 시간이나 품을 크게 들이지 않고도 안주인이 만족할만치 시원스레 일을 해제껴주었다. 품삯은 매일 받았다. 작은 실개천도 흐르다 막히는 목이 있듯이 범상히 흐르던 안씨집안의 생활에서 생각 못한 일이 생겼다.

어느날 점심시간이 썩 지난 후 려인숙일을 다하고 대문을 나서는데 이 아근에서는 보기 드문 양복쟁이가 앞을 막아섰다.

《오늘 품삯은 받았나?》

처음 보는 사내라 백씨는 의아한 눈으로 마주보기만 했다. 상투까지 잘라버린걸 봐선 개명한 량반 같은데 백주에 술냄새를 풍기며 머리얹은 녀자에게 반말질이니 백씨 성미에 은근히 화가 치밀어 곱지 않게 보며 타박을 주었다.

《뉘신데 난데없는 품삯소리나요?》

《아, 내가 자기소개를 안했소그려. 내가 이 집의 아들이요.》

《몰라봐서 안됐어요.》

《나야 여러번 봤지요.》

《글공부깨나 했을분이 남의 집 녀편네를 훔쳐보는가요?》

《눈길이 절루 갑디다. 래일 조용히 만나지 않겠소?》

세상에 나서 난봉군 있다는 말은 들었어도 직접 마주하기는 처음인지라 백씨는 구렝이를 만난듯이 오싹 소름이 끼쳐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백씨가 려인숙의 아들과 마주쳤을 때 묘한 일치로 둘째시누이가 곁을 지나갔을줄이야…

안씨집안의 생활은 별일없이 지나가는듯싶었다.

인간됨됨이 다 하나같이 편안한 사람들이여서 백씨는 마음고생을 모르고 시집에 정을 묻고 살았다.

쉬파리 무서워 장 안 담그는 집이 없듯이 백씨는 려인숙의 난봉군아들이 두려워 삯빨래를 그만둘 생각도 없었다. 한푼이라도 더 벌어 남편공대를 정성스레 하고픈 마음뿐이였다.

화기넘치던 집안에서 웃음이 스러져갔다. 둘째시누이가 까닭없이 시름시름 앓았던것이다. 누구보다 백씨와 마음이 잘 맞는 시누이였는데 웬일인지 마주보면 눈길을 피하고 어디 아픈가고 물어도 대답을 안했다. 저녁상을 차려 들어가면 《난 형님과 먹겠어.》 하며 밥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나오군 하던 시누이인데 상머리에 나앉지 않고 골방에 누운지도 이틀이 지나갔다. 그가 밤마다 짱짱 울리던 베틀소리도 가뭇 사라지고 집안공기는 날이 갈수록 무거워만졌다.

백씨로서는 시누이가 무슨 병을 앓는지 알수 없어 은근히 속이 탔다. 시집살이에, 남편걱정에 이래저래 마음을 쓰느라 눈코뜰새 없는 판에 몸져누운 사람까지 생겼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에그, 저 계집애가 상사병을 만난게 아니우?》

자리를 펴고 누운 시어머니가 한숨을 앞세우며 시아버지에게 건네는 말에 《내 팔자에 상사병 만나면 그걸루 시집간줄 알구 죽겠어요.》 하는 시누이의 대답질이 건넌방에서 잇달았다.

《저런 망할 계집같으니, 속이 시퍼래가지구 드러누워 무슨 못된 마음으로 곁사람들을 괴롭히느냐!》

늦도록 짚신을 삼으며 앉았던 시아버지가 좀해서 안하는 욕까지 해댄다.

백씨는 낮에 반되쯤 되게 사온 흰쌀로 죽을 한그릇 쑤어가지고 누이가 든 골방으로 찾아갔다.

《어서 들어요. 어떡하든 낟알을 넘겨야지 몸이 견디겠어요.》

《…》

《어디가 아픈지 나한테 말해줘요.》

반듯이 누워 천정만 바라보던 시누이가 모로 돌아누우며 한숨을 쉰다.

《형님, 속에 없는 치성은 드려도 세상 눈은 못 속이지요?》

《그건… 무슨 소린가요?》

《해본 소리예요.》

동생이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서던 맏시누이가 왈가닥거리는 성미에 동생의 새망스런 소리를 듣고 성을 발칵 낸다.

《빨리 치성을 드려서 날 집에서 내쫓으렴.》

그 소리가 집안을 순간에 벌둥지로 만들었다.

《이년들아, 그건 이 어미 들으라는 수작들이냐? 헌신짝도 짝이 있다는데 때가 되면 털고 가버리면 될게 아니냐!》

자리를 차고일어난 시어머니가 방바닥까지 두드려댔다.

《허- 이 무슨 괴이한짓들인가! 한밤중에 청승맞게 계집들 목소리만 높으니…》

가장은 가장이다. 시아버지의 언성이 높아지니 모두 기가 눌려 잠자코 있는데 아무말없이 있던 안재황이 한마디 했다.

《집안이 편안하자면 녀자들이 조용해야 해요.》

그 소리에 앓아누운 둘째시누이가 시들한 목소리로 대꾸질했다.

《오라버니같은 무골호인이 집건사나 바로하겠어요.》

백씨의 귀에도 그 말만은 듣기가 거북한 정도가 아니였다. 아무리 무던한 오라비란들 이다지야 하찮게 여길수 있는가.

《누이, 욕할 일이 있으면 나한테 해요.》

백씨의 불만표시는 이것이 고작이였다.

《…》

《죽을 두고가니 꼭 먹어요.》

안씨집안에서 처음 있어보는 싸움 아닌 싸움은 앓아누운 둘째시누이로 해서 이렇게 생겨났다. 그날 밤 집안사람모두가 제나름의 생각으로 편안한 잠을 자지 못하였다.

이튿날도 백씨는 남편의 점심을 나르고 려인숙의 빨래를 해다주었다. 이러기를 벌써 두달을 넘겼다. 오늘 품삯까지 합치면 한냥이나 된다. 한냥이면 닭도 사고 속에 넣을 찹쌀이며 황기 같은것도 푼푼히 흥정할수 있다.

기쁜 마음으로 려인숙대문을 나서던 백씨는 둘째시누이와 면바로 마주쳤다.

《누이가 어떻게? 그 몸으로…》

창백한 낯빛의 시누이가 가시같은 눈길로 찌를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형님, 나 좀 보자요.》

《집에 무슨 일 생겼어요?》

《일이야… 형님이 알겠지요.》

백씨는 영문도 모르며 시누이가 가는대로 따라걸었다.

《어델 가요?》

시누이는 대답도 하지 않고 비척비척 수양버들이 우거진 청녀못쪽으로 향했다. 엿새 가까이 때식을 건느며 앓느라 기운이 빠진 누이가 신음소리를 내며 풀섶에 주저앉는다.

《누이, 여긴 왜?… 어서 집으로 가자요.》

《형님, 버릇없이 군다구 욕하지 말아요.》

《욕은… 내가 구실 못하는게 있으면 탓하라요.》

《형님이 려인숙에 다닌지 퍼그나 됐지요?》

따지고드는 시누이의 목소리에 서리가 꼈다.

내뒤를 밟았는가? 무슨 죄된 일을 했다고 얼음같이 찬 소리를 던지는걸가? 영문을 알수 없는대로 백씨는 응대부터 하였다.

《그래요.》

《언젠가 마주했던 양복쟁이를 지금도 만나요?》

《뭐?!…》

백씨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것 같았다. 생각만 해도 구역질나는 그 일을 떠올리는걸 보면 시누이가 뭔가 오해하는게 분명하다. 그렇다면?… 순간 그의 가슴은 너무도 억울하여 부들부들 떨리기만 했다. 행실이 부정한 계집으로 알았단 말인가. 분명 난봉군녀석이 지껄인 말도 다 들었을것이다. 세상에 이보다 기막힌 일이 어데 있는가.

《대답해줘요.》

버드나무를 짚고섰던 백씨는 맥없이 펄썩 주저앉으며 나무에 고개를 박고 소리없이 울기부터 했다.

《눈물이 대답으로는 안될거예요.》

《알아요. … 알아요. … 누이가 그만큼 여기니 집안식구들모두가 같은 생각일테니 내가… 나가겠어요. …》

《형님은 날 뭘로 알아요?! 나한테는 오라버니도 형님도 다 귀중하단 말이예요!》

백씨는 품에 간수했던 동전잎들을 꺼내여 시누이의 손에 쥐여주었다.

《받아요. 집에 둔것까지 모두 한냥이예요.》

《이건 뭐예요?》

《오라버니 몸을 좀 보세요.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요? … 난… 그 돈으로 닭곰이라도 해주자는게 내 소원이였어요. … 알아둬요. … 그 돈은 점심참마다 내 뼈심들인 깨끗한거예요. … 두달 열흘을…》

백씨는 머리를 흔들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말했다.

얼마나 갸륵한 마음인가. 가난한 집안의 맏며느리로 남편걱정이 얼마나 컸으면 그처럼 자기 몸을 혹사했겠는가. 시누이는 속이 좁고 경망한 자기 행실이 너무나 죄스럽고 형님이 하도 돋보여 백씨의 품에 와락 안겨들었다.

《형님, 이 부실한 년을 욕해줘요. … 내가… 내가… 미쳤던가봐요. 하도 어질어빠진 오라버니여서… 형님이 마음에 차 하지 않는가 여겼으니 날 죽여 저 못에 처넣어요!…》

《내 마음을 알아만 준다면 더 바랄게 없어요. …》

《형님, 우리 오라버니는 복이 있어요. … 고마워요.》

《누이두 참, 나한텐 평생 의지하고 살분이 그이 한사람이예요.》

백씨는 수건으로 시누이의 눈물을 닦아주고 시누이는 형님의 거친 손을 자꾸만 쓰다듬었다.

청녀못 물우에 두 녀인의 미소어린 얼굴이 비꼈다.

《형님, 이번 일을 집안사람들에겐 절대로 말하면 안돼요.》

백씨는 시누이가 사랑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입이 무거운가. 열흘이 되도록 속을 앓으면서도 옮기지 않았으니 참으로 생각깊은 처녀다. 시집살이가 힘들다는 말은 대개 시누이 치마바람때문에 나온 소리라는데 착한 우리 시누이들은 오히려 내게 웃음을 주고 힘을 주지 않는가.

《누이, 장마당에 가자요. 닭은 누이가 골라요. 오늘은 술도 한병 사야겠어요. 며느리라는게 고정하신 아버님께 술 한번 바로 대접 못했어요.》

《그보다 내 병이 갑자기 나았으니 뭐라고 할가요?》

《호호호… 그야 누이 병이지 내 병인가.》

두 녀자는 다정한 웃음을 나누며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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