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5

 

베보자기를 씌운 함지를 인 백씨는 이른새벽에 집을 나섰다. 행상으로 살아온 그여서 보통걸음에도 치마바람이 일었다. 백씨는 눈감고도 걷는 길이라 헛눈 한번 팔지 않고 내처 걷기만 했다.

장별동 골목길을 나서 달구지재에 올라서니 날은 환히 밝아 다박솔숲속에 난 오솔길이 보였다. 이른새벽부터 울리는 싸구려소리는 대동강을 끼고 가난속에 살아가는 이곳 사람들의 고생을 파는 노래가락이나 같았고 그것이 또한 평양의 류다른 풍경이기도 했다. 수공업과 상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이고보면 그 가락으로 하루가 시작되기마련이다.

백씨는 남편의 묘소를 찾아가는 길이였다. 제물이 담긴 함지를 내려놓은 백씨는 길섶의 작은 바위우에 수건을 펴고 다리쉼이나 할 생각으로 앉았다. 그의 눈길은 종로와 대동문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가슴속에서는 피를 토하는듯 한 한숨이 흘러나왔다.

열두해전 이 달구지재로 남편의 초라한 상여가 구슬픈 곡성을 뒤에 달고 넘었다.

어쩌면 두해도 채 못살고 세상살이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안해를 무정하게 버리고 저 혼자 가버린단 말인가.

세상에 없을 고운 마음씨와 함께 일밖에 모르고 산 남편이였다. 어떤 사내들은 투전노름에 오입질까지 하면서도 장한듯이 녀편네를 구박한다지만 가난이 덕지앉은 집안살림에 불편한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어도 남편은 이마에 주름이랑을 지어본적조차 없었다.

백씨가 안씨가문의 며느리로 들어가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사연이라기보다 그것은 평범한 인연이였다.

백씨가 열네살 나던 임술년 여름 어느날이였다.

소금을 사러 나왔던 그는 서문장을 다 돌아보았지만 값이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햇소금이긴 하지만 너무 비싸다고 생각됐다. 첫물이 지나 소금이 많이 나오면 값은 눅어질것이고 그때 가면 반말 살 돈으로 한말도 더 살수 있다는 타산이 섰던것이다.

장마당을 나서던 그는 어구에서 독을 어깨에 메고 위태롭게 걸어가는 사람을 보았다. 지게 같은것이라도 가지고 나올것이지 저렇게 다루다 깨먹기라도 하면 어쩌는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아닐세라 둥근 독이 어깨우에서 말썽을 부려 몇걸음 못 가고 내려놓는다. 삼베고의를 입은 남자는 마흔살이 넘은 장정인데 첫눈에도 무던한 인상을 주었다. 힘은 모자라지 않지만 생겨먹기를 말짼 독이라 애를 먹는것이였다.

그냥 지나치려던 백씨는 저도 알수 없는 감정으로 머뭇거리며 말했다.

《독을 그렇게 나르시면 어쩌나요. 그러다 깨먹기라도 하면 큰일 아니나요.》

장정은 백씨의 말에 조금도 탓하지 않으며 대꾸했다.

《그러게 말이다. 생각없이 나왔다가 독이 하도 잘 구워져 마음에 들어 샀는데 이렇게 나르기 베찰줄은 몰랐지.》

백씨도 독이 마음에 들었다. 연두색사기물도 곱지만 맞춤한 키에 아구리가 지내 벌어지지 않아 장이나 김치를 담그면 맛이 있을상싶었다. 장맛은 독에 따라간다는 소리를 들으며 살았기때문이다.

《집이 어데나요?》

《안동이야.》

안동이라면 진달래가 많이 피는 골안마을이다. 그러니 여기서 한참이나 가야 할 길인데 시작부터 애먹이는 저 독을 남자가 어떻게 날라가겠는가.

백씨는 끼고나온 보자기속에서 또아리를 꺼내여 머리우에 얹은 다음 장정에게 말했다.

《저한테 이여주세요. 제가 날라다 드리겠어요.》

《정신없는 소리, 얼마나 무겁다구.》

《빈 독이 무거우면 얼마 무겁겠나요. 좀 올려놔주기만 하세요.》

《허- 내 길가에서 귀인 만나는가부다.》

장정은 독을 들어 또아리우에 가로놓았다.

백씨는 두손으로 아구리와 밑굽을 잡고 일어섰다. 머리우에 이기만 하면 무슨 물건이든 다 나르는 그여서 장정이 애먹던 독이지만 쉽게 걸음을 뗐다.

《체넨 어디서 사나?》

《박석골이예요.》

《몇살인가?》

《열네살이예요.》

백씨의 걸음을 따라서기조차 바빠하며 장정은 혀를 찼다. 나이보다 조숙한데다 체격이 미끈한게 근력도 보통 아니였기때문이였다. 결국 장정은 무거운 짐을 길가에서 만난 처녀에게 맡기고 말동무나 되여 따라가는 판이다.

《박구리야 평양의 노란자위지. 살기가 여간 좋지 않겠지?》

《글쎄요. 돈많은 사람들이나 좋겠는지 없는 사람들이야 어디 사나 같은걸요.》

《그 말도 맞네.》

백씨는 무거운 독을 이고도 쉬자는 소리 한번 없이 안동까지 내처 왔다.

《저게 내 집이야.》

바라보니 삼간짜리 초가인데 손질을 제대로 하지 않아 볼품이 없었다.

장정이 앞서 삽짝문을 열며 큰소리로 수선을 피웠다.

《여보, 마누라! 빨리 나와보소.》

《웬일로 이리 야단이시우?》

안주인이 방안에서 나오며 물었다.

《이 독을 어서 받아내리오, 어서.》

《아니, 독은 어디서…》

《어서 받으라니.》

나이든 부처간이 법석대며 백씨의 머리우에서 독을 내리워 토방우에 놓았다.

《전 그만 가겠어요.》

수건으로 땀을 씻은 백씨가 선자리에서 돌아서려고 하자 장정이 큰일이 난듯 말렸다.

《앉아서 숨이나 돌리구 가게. 그 먼길을 한숨도 쉬지 않구 내처 왔는데 오죽 힘들겠나. 여보, 어서 찬물 한그릇 떠오우.》

영문을 전혀 모르는 안주인은 시키는대로 부엌에서 물그릇을 들고 나왔다.

《고마와요.》

사양없이 받아들고 물을 한모금, 두모금 마시는 백씨의 모습을 보며 장정은 제 처에게 눈짓을 했다. 처녀가 어떤가 하는 의미였는데 안주인은 왕청같은 말을 하였다.

《물바른 고장이라 미지근해서 맛은 없을거네.》

《괜찮아요. 그럼 가보겠어요.》

《아니 아니, 이고온 품삯이라도 받아야지.》

《제가 뭐 품삯 바라고 도왔게요?》

백씨는 인사를 남기기 바쁘게 서둘러 사라졌다.

《저 체넨 누구요?》

장정은 독을 쓸어만지며 제 소리만 했다.

《며느리만 잘 만나면 이 독의 장은 정말 달거요.》

장정은 그길로 백씨의 뒤를 쫓아 집을 알아냈다. 과부의 딸이라는 흠은 있지만 가장의 주장으로 그해 가을 혼례가 이루어졌다. …

제물이 든 함지를 인 백씨는 송산쪽으로 향했다.

야산등성이를 올라서니 멀리 앞으로는 대동의 넓은 벌이고 오른쪽 룡산에서 흘러내리는 강줄기가 앞을 막았다. 따뜻한 볕아래 녀인들이 빨래하기 좋고 복더위에 아이들이 자맥질을 할 땐 무던하게 굴다가도 장마철만 되면 무서운 재난을 날라오는 강이다. 해마다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수재의 원흉이라 송산일대에서는 강 귀신제까지 지낸다. 변변한 이름조차 갖춘게 없는 보통강의 이 지류에는 솔뫼다리가 있을뿐인데 한해에 한번씩 떠내려가는 다리아닌 다리인데다 관가에서 관심조차 돌리지 않아 지금같은 계절에는 아이, 어른 할것없이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건너다닌다.

동뚝에 민들레꽃이 한벌 뒤덮였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황소의 영각소리가 초목이 생기띠는 계절을 알리고있다.

치마꼬리를 걷어올려 허리춤에 밀어넣은 백씨는 고무신을 벗어들고 얕은 물목을 찾아 천천히 강을 건넜다.

지난해 홍수때 다리는 떠내려가고 나무기둥들만이 볼품없이 서있었다. 평양부에는 감영이 있고 대동땅에는 군수며 관리나부랭이들이 무수히 있지만 백성들의 고생에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수재는 평양사람들이 안고사는 눈물겨운 생활이요, 하늘이 주는 재난이였다.

소나무가 많아 송산이라지만 산을 오르자면 분지나무, 노가지나무 성화에 애를 먹는다. 백씨는 한손으로 잡관목들을 헤치며 한걸음씩 옮겼다.

안재황의 묘는 송산 오른쪽등성이 남향쪽 솔숲에 자리잡고있었다. 청명에 와보지 못했으니 풀이 우거질수밖에 없다.

백씨는 가지고온 낫으로 벌초를 시작했다. 드세찬 그의 손이 자그마한 나무뿌리만 잡혀도 사정없이 뽑아내쳤다. 베여낸 잡풀을 말끔히 들어낸 다음 그는 무덤을 손빗질해댔다. 10여년세월이 흘러 상돌밑굽에는 검은이끼가 자라고있다.

백씨는 제물을 차리였다. 가지수는 많지 않아도 지성이 담긴게 알린다. 찜, 구이, 부침, 적에 고기와 물고기, 과일도 있지만 유난히 눈에 뜨이는것은 진달래꽃 두송이를 편 수수지짐 한짝이다. 유명한 납청잔에 술을 부어 올려놓은 백씨는 조용히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그의 심중은 고혼이 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고있었다.

세월도 세상도 부부의 정을 갈라놓고 하나는 저승에, 하나는 이승에 두었으니 이보다 더 통분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불러도 대답이 없고 정을 기울여도 받으실줄 모르니 갈수록 가슴을 저미는것은 생전에 거친 음식만 대접한것이고 림종에조차 약 한첩 써드리지 못한거예요. 당신의 원망소리는 열두해나 내뒤를 따르지만 어느 한시도 잊지 않고 산 내 마음을 당신은 모를거예요. …

백씨의 눈앞으로 안재황의 모습이 생시런듯 다가왔다.

《내 구천에서 살아도 당신과 나눈 정만은 잊지 못하오.》

백씨의 얼굴로 한줄기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내린다. 그리운 남편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추억의 장막 한겹을 헤쳐본다.

안재황의 가문은 안동골안에서도 본이 다른 안씨여서 문벌관념이 강한 세월이라 외롭게 살았지만 마음씨들이 고와 집안은 화목하였다.

며느리가 들어온 후로 안씨집안의 하루는 백씨의 걸찬 일솜씨에 탄복한 시부모가 《새아기는 벌써 새벽물을 길러 나갔다.》 하며 자식들을 들볶는것으로 시작되군 하였다.

인총많은 평양은 우물이 많지 못한 곳이여서 물이 모자라 물걱정으로 살았다. 대동강을 끼고있는 이 도시에 물지게군들이 많은것도 그때문이다. 물장사가 반업인 집들이 적지 않았다.

백씨는 어뜩새벽에 일어나면 아궁에 불을 지피고 물지게부터 지였다. 함석판으로 만든 초롱은 빈통만 해도 한관이 훨씬 넘는데다 커놔서 네동이 물이 들었다. 그러니 한행보에 여덟동이나 되는 물을 긷는셈이다. 안동에서 대동강까지 제일 가까운 길은 경제리 웃말 솔숲길을 따라 조천석이 있는 강기슭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턱밑같지만 왕복 두번을 오가느라면 물초롱에 눌린채 땀주머니가 되여버렸다.

다른 집 같으면 남정네들이 해주는 물긷기를 제 혼자서 첫새벽에 꼭꼭 세번씩 하는 백씨로 하여 부엌의 드무에는 늘 물이 차있었다.

시집은 시부모와 함께 시아우 넷에 누이가 둘씩 되는 큰 식솔인데 다 모여 밥을 먹을 때는 며느리가 엉덩이를 들여밀 자리도 없었다. 백씨는 노상 부뚜막에 앉아 상에 올리고 남은것으로 살았다. 시누이들이 욕을 먹고 부엌으로 내려오면 다시 올려 떠미느라 수선스럽긴 했지만 며느리의 자리를 정한 백씨여서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에이구, 며느리 일솜씨를 보느라면 너희들이 시집살이할 꼴은 보이지 않는다.》

《형님이 그러는데 우리도 구실한대요.》

어머니의 잦은 지청구에 주눅들줄 모르는 누이들이 이렇게 개구리 합창하듯 대꾸하여 온 집안을 웃길 때면 안재황은 슬며시 백씨와 눈길을 맞추군 했다. 색시라지만 힘들지 않느냐는 따뜻한 말 한마디조차 해주기 어려울만큼 보는 눈에 열린 귀와 입이 많아 제편에서 시집살이에 시집살이를 하는 남편의 그 눈길 한번이면 백씨는 만시름이 덜리고 육신의 고달픔도 짚검불같이 날아났다.

시집온 이듬해 계해년 3월삼짇날이였다.

시집사람들은 황주에서 사는 친척집 대사에 모두 가고 집에는 백씨와 안재황이 남았다. 남편도 함께 가게 작정되여있었으나 륙로문나루터에 배들이 밀려 품삯이 오르는 때여서 집을 뜨지 못했다.

《한 사날 둘이서 재미있게 살거라.》

《내 그래서 맏이는 떨궈두니 며늘아가야, 네가 맡아 잘 시중해라.》

시어머니의 다심한 말끝에 시아버지까지 싱긋 웃으며 덧붙이는통에 부끄러워난 백씨는 시누이들 등뒤에 숨어버렸다.

집이 텅 비다싶이 되여버리니 백씨로서는 몸건사하기가 더 어려웠다.

남편이 마늘밭바자를 손질할 사이에 얼른 상을 차려 방안에 들여다놓은 백씨는 부엌문을 빠금히 열고 내다보았다.

허우대만 큰 남편이다. 누긋한 성미그대로 일도 스적스적, 웃어도 벙글써, 말을 한마디 해도 좋다는건지 싫다는건지 아리숭하다.

《어서 아침 드세요.》

얼굴도 못 내밀고 말하고나서 그는 남편의 동정만 살폈다. 성미가 어쩌면 저리도 늘어졌는지 자기 같으면 한숨에 다할 일을 만지고 또 만지니 답답하기만 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오?》

안재황은 마당에서 세면을 하며 안해에게 불쑥 이렇게 물었다.

이제야 일을 끝냈으니 언제 방안에 들어와 수저를 들가 하는 생각에 옴해있던 백씨는 뒤늦게야 영문모를 남편의 말을 새겨보며 고개를 기웃거렸다.

《이건 뭐요? 나 혼자 먹으라는건가? 어서 들어오우.》

《난 여기서 먹어요.》

《버릇이 붙었구려. 하두 식솔많은 집이다나니… 게서 혼자 딴 음식 먹는건 아니요?》

《어서 들기나 하세요.》

《말귀도 어둡구만. 이런 때만이라두 마주하고 먹어보면 못쓴다오?》

탓하는 말인지 얼리는 소린지 가려듣기 힘들어 잠시 주저하던 백씨는 용기를 내여 토기옹배기에 담은 조밥누룽지를 더운물에 말아들고 들어갔다.

《어서 앉소.》

치마폭을 포개고 모로 앉은 백씨는 자기 밥그릇을 감춘채 남편이 술 들기만 기다렸다. 밥상우에 차렸다는게 고작해서 조밥에 토장국이요, 찬이란 종발에 담은 건뎅이젓이 전부다.

안재황은 백씨가 옆구리에 돌려놓은 옹배기를 넘겨보고나서 군말없이 밥을 먹고 일어섰다.

《오늘은 부엌이나 거두고 잠을 실컷 자보오.》

《대낮에 잠자는 녀자가 어디 있어요?》

《허허, 제가 늘 잠이 제일 그립다구 하구선 그러누만.》

거짓말을 모르는 남편이다. 밤이 깊어야, 그것도 집안사람들이 다 잠든 다음에야 남편의 체취를 느껴보는 그였다. 그때마다 《졸려요. 잠이나 실컷 자봤으면.》 하고 남편의 팔을 베고 어리광 피우듯 말하군 했다. 집이 조용한 때 그 소원이라도 풀라는 소리다. 얼마나 고마운 진정인가.

아침에 나루터로 나가면 해저물어서야 돌아오던 안재황이 점심참도 되기 전에 느린 걸음으로 싱글거리며 나타났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낮잠이나 실컷 자라구 하구선 정말 늘어빠지게 자는가 보자고 일찍 오는게 아닐가? …

백씨는 남편의 웃음앞에서 별생각을 다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 날이요. 배주인은 갈길이 바쁜지라 품삯을 곱으로 올린데다 말린 어물이여서 세사람이 한배 짐을 벌써 다 부렸거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오?》

새빠지게 아침에 한 말을 또 묻는다.

《무슨 날인지는 딱히 몰라도 고된 일을 반나절은 안하게 됐으니 좋은 날이지요.》

《당신 그 고운 맘에 내가 살지.》

안재황은 웃음을 거두지 못하며 토방우에 올라 들고온 자루를 내민다. 그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며 백씨는 주는대로 받았다.

《찰수수가루요. 한되는 잘될거요.》

《어머님이 그새 먹을 좁쌀이랑 수수랑 마련해주고 떠나셨는데…》

《허허,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오?》

《아침부터 같은 말씀만 자꾸 하시니…》

《삼짇날이요. 우리도 화전을 부쳐먹어보기요.》

백씨는 껑충 놀랐다. 시부모가 없는 사이에 색다른 음식을 해먹는다니 말이나 되는가.

《어쩌자구 그런 음식을… 저, 부모님 오신 다음에 만들어먹는게 어때요?》

안재황의 순박한 두눈이 정을 함뿍 담고 백씨를 쓰다듬어보았다.

《여보, 당신 그 마음이면 부모님도 감심하실거요.》

백씨는 남편의 그 말에 울음이 쏟아질것 같아 고개를 푹 숙이며 부엌으로 들어가버렸다.

안재황은 제 손으로 토방우에 멍석을 펴고 화로를 가져다놓은 다음 숯을 피울 준비를 했다.

남편의 고마운 성의를 받아들여 수수가루를 묽게 반죽하며 백씨는 소리없이 울었다. 얼마나 정에 그리워 살아왔던가.

《여보, 어서 내오우.》

남편이 또 다그어댄다. 그 성미에 오늘같아본 때가 없었다. 지짐감이 든 작은 양푼을 들고나온 백씨는 안재황의 따스한 눈길에 고개를 숙였다.

《여보, 당신은 얼른 진달래꽃잎을 따오. 지짐은 내가 지지지.》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양푼을 멍석우에 놓고 돌아서는 백씨를 보고 안재황은 물었다.

《무슨 일이요?》

《잠간 갔다오겠어요.》

백씨는 뒤말은 하지 않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저 사람이…》

안재황이 영문을 몰라하는 사이에 백씨는 술 한병을 들고 나타났다. 저고리고름에 매고 아끼던 동전 한잎이 술이 되여 남편앞에 놓이니 백씨의 마음은 기쁘기 그지없었다.

파란 숯불이 솟구치는 우에 지짐판을 올려놓고 들깨기름을 두르니 고소한 냄새에 젊은 부부는 정겹게 마주 웃었다. 발기우레한 수수지짐이 달아오른 철판우에서 자글자글 끓자 안재황은 코날개를 벌름대며 말했다.

《당신 손으로 꽃잎을 펴오.》

백씨는 평생 처음 해보는 화전이지만 정성스레 꽃잎을 펴놓았다.

《원래 화전이라면 찹쌀이 제격이겠지만 우리 형편에서 이것도 좋지. 노상 집안일로 고생인데 어서 드오.》

안재황이 저가락으로 화전을 집어 놋바리뚜껑에 놓아주며 다심하게 말했다.

《덤비지 마세요.》

이번에는 백씨가 남편을 나무리며 사기잔에 술을 부어 두손으로 받쳐올렸다.

《어서 드세요.》

《고맙소.》

안재황이 술을 달게 드는것을 보며 백씨는 소곳이 모로 앉아 화전을 맛있게 먹었다.

《오늘 아침 나루로 나가는데 그때 벌써 량반님네들은 돗자리를 짐군들에게 지우고 기생들과 함께 모란봉으로 오르더군. 삼짇날 화전놀이 가는 행차였소. 지금쯤은 뚱땅거리며 야단법석일거요. 허- 세상이 생겨먹기를 그런걸 어찌겠소.》

몸이 허약한데다 주량이라고는 보잘것없는 안재황이라 술 석잔에 낯색이 진달래꽃보다 더 붉어졌다. 그는 술잔을 밀어놓고 지짐이 맛있다면서 그것만 먹었다.

백씨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보고 또 보았다. 얼마나 순박한 사람인가.

《이젠 들어가 누우세요.》

《그러지.》

술 반병도 못 마신 안재황은 시키는대로 방으로 들어갔다. 백씨는 풍로를 먼저 거둔 다음 그릇개비들을 가시기 시작했다. 둘이서 먹은 뒤끝이니 크게 거둘것도 없어 기름묻은 손을 씻는데 남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 어서 들어오우.》

그의 가슴은 후두둑거렸고 온몸이 짜릿짜릿해나서 움직일 힘조차 생기지 않았다.

《들었소? 어서.》

《가요. …》

백씨는 갈린 목소리로 겨우 대답하고나서 남편의 곁으로 갔다.

《어서 앉소.》

한무릎을 꿇고앉은 백씨는 남편의 얼굴을 마주볼수 없어 눈길을 깔았다.

《당신이 이 큰집의 살림을 안고 정말 고생이 많소.》

백씨는 남편의 그 말이 너무도 고마와 노전바닥에 눈물을 떨구었다.

안재황의 옆에 누워 잠들었던 백씨는 골목길에서 들려오는 《가마나 초롱 때시오-》 하는 소리에 눈을 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은 그는 남편의 모습을 굽어보았다. 반쯤 입을 벌린 사내는 코를 골며 단잠에 들었다. 여윈 목, 가슴살을 헤치고 드러난 갈비뼈, 백씨는 두손으로 남편의 몸을 쓸어만지였다. 걸리는것마다 뼈마디다. 어쩌면 몸이 이리도 약할가. 이 몸으로 힘겨운 가대기군노릇을 하자니 얼마나 힘들랴.

백씨는 이 남편에게 의지해살아야 하겠기에 더없이 소중함을 느꼈고 녀편네구실 못하는 자기로 하여 가슴이 쓰렸다.

여보,내 기어코 당신의 몸을 추켜세우겠어요. 부탁하건대 몸을 돌보며 일하세요. 당신만 믿고 사는 저를 생각해주세요.

그는 애절한 감정을 누를길 없어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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