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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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엽에 이르러 평양은 상업의 중계지로 한층 활기를 띠면서 북으로는 개천, 박천, 의주, 동부지대인 원산과 함흥의 물산이 내려오고 남으로부터 부산, 서울, 송도의 상품이 올라와 이곳에서 대대적인 교역이 진행되였다.

대동강의 배길을 리용한 상인들이 해주, 인천, 군산까지 오르내리였고 삼남지방의 쌀이 배에 실려 조선북부지대에서 팔리기 시작하자 선상, 미곡상들이 늘어났고 국가가 통제한다지만 금은붙이와 인삼 같은 귀한 물건들이 비밀리에 매매되면서 붙들리면 옥살이는 물론이고 목까지 내대야 한다는것을 알면서도 밀수행위를 하는 잠상무리들까지 성하게 되였다.

산업혁명이라는 말조차 모르는 봉건적전제국가인 리씨조선의 태내에서 장사군, 다듬어 표현하면 상업가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어벌이 크게 판을 벌리여 거액의 돈을 수중에 거두어들이게 되였으니 심히 락후한 자본의 집중, 집적과정이 형성되고있다고 보아야 할 형편이였다.

이런 결과로 하여 국고의 재정고갈이라는 불가피한 현상이 초래하였고 혹심한 외척세도정치로 형언할수 없이 문란해진 왕정이 매관매직을 서슴지 않아 관리들의 청렴이란 있어보지 못한 말처럼 되여버렸다.

량반과 상놈이라는 엄격한 신분제도를 정치기틀로 삼아온 봉건국가에서 상놈출신의 량반 아닌 량반이 고개를 쳐들게 되고 량반가문에 가긍한 상놈이 생겨나게 된것도 나라의 경제지반이 뒤흔들려 걷잡을수 없는 지경에 이른 사회력사적산물이였다.

당시 평양은 지역면적에 비해 인구밀도가 매우 높았으며 수십만 인총이 오글복작거리는 곳에서 가가호호 자기 힘으로 재간껏 벌어 호구지책하였다.

대동강을 지척에 둔 평양부 룡덕면에는 량반, 부자들이 많이 살았다. 청기와를 올린 지붕날개가 하늘을 뻗치며 올망졸망한 초가집들에 그늘을 던지여 가난한 사람들은 해뜨는것조차 보기 힘들었다.

룡덕면 한복판으로 난 행길을 따라 장대재쪽으로 올라가면 서문장이고 돌아서서 륙로문거리쪽으로 나가면 평양의 유명한 대동강나루가 나진다.

수십척의 장사배들이 배머리를 마주 대고 떠있는 여기가 물우의 장마당이다.

애련당옆으로 난 길은 종로와 사귀면서 경상골쪽으로 올리뻗어 평양부에서 제일가는 사창장에 이르게 된다.

길옆에는 각종 점포와 가게들이 빈지문을 열어놓고 처마밑이나 벽에 초물전, 싸전, 저전 같은 간판을 내붙였다.

시골에서 오는 사람들은 눈이 뒤집혀 인파속을 헤매다 날래기로 소문난 도회지의 소매치기들에게 돈주머니를 털리우고 아우성치기가 일쑤다.

소매치기들에게 짝질세라 덮치개들도 어리숙한체 빌며 기회를 노리다가 공짜를 앗아내지 못하면 보복무기라고 해야 할 주머니속의 모래를 뿌려 떡장사, 지짐장사군들의 하루벌이를 식은 죽 먹기로 망쳐준다.

온전하다는 사람조차 졸지에 머저리로 되여버리는 곳이 사창장마당이라 파는 사람이나 사는 사람이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핏하면 싸움판을 벌려 머리받기며 투석전으로 란장판을 만들군 하였다.

오죽했으면 송도나 서울에서 왔던 패싸움군들까지 사창장에서는 녀자들도 머리받기를 하는데 운이 나쁘면 턱이 빠져나간다는 소문을 폈겠는가.

함경도사람들의 싸움이 질기기로 소문났다면 평안도사람들의 싸움은 기회를 노리다 번개같이 달려드는 범같은 기상이여서 잘못 건드렸다가는 타도의 장사군들이 장사밑천 놓치기 일쑤인데 이것 또한 여기 터세가 심하기때문이였다.

싸구려소리에 귀청이 멍멍해지는 장거리는 발 들여놓기 바쁘게 숨이 막힌다.

고기장사, 어물장사, 초물장사, 피륙장사, 음식장사, 잡화장사에 자리를 잡지 못한 장사군들까지 목판이나 장대기에 물건들을 담거나 꿰들고 겨끔내기로 싸구려타령이니 파는 사람, 사는 사람을 가려보기 힘들 지경이다.

그속에서 이 지방의 사투리들이 그칠새없이 튀여나왔지만 귀에 인박힌 소리라 서로 욕지거리를 해대면서도 팔것을 다 팔고 살것 또한 다 산다.

가름대를 세우고 베, 무명, 모시, 항라, 비단, 당목 같은 천필을 내건 피륙장사군들도 제 물건 사라고 저마다 소리지른다.

《싸구려, 단양모시요- 때는 꾀꼬리 우짖는 봄철이라 젊은 내인들, 꽃같은 처녀들의 저고리감으론 그저 모시이상 없수다. 어서 보고 사시라구요.》

《헛눈 팔지 말구 내 당목을 좀 보시라요. 의주역관을 넘어온 청나라 천이야요. 무명에 비기겠나요. 어서 사가시우.》

《이년, 주둥이에 자갈을 물려야 그만 소리지를테냐?! 그 비싼 당목을 누가 사간다구 피대를 돋구는거야?!》

제 물건 잘 팔려고 손님을 부르는 소리에도 서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총을 쏘아가며 싸움질이다.

《무명 한자에 얼마요?》

《여섯푼아래로는 안돼요. 일곱푼이 제값이니까요.》

《흥정도 귀맛이 좋고 마음이 동해야 하는거외다.》

사는 사람들 역시 무명천 실오리를 뽑아 꼬임새며 질긴 정도까지 가늠하는게 손해볼 생각은 꼬물만치도 없다.

모시며 비단 같은 값이 나가는 천장사군들가운데 30고개를 바라보는 한 녀인이 무명필들을 앞에 놓고 앉아있다.

떠들썩한 주위의 소음에는 무관한듯싶은 녀인은 무명천을 펴놓고는 있지만 눈길은 어디 먼곳에 가있었다.

싸구려소리 한마디 없는걸 보면 장마당이라는델 처음 나온 아낙네 같기도 하다.

든든해보이는 체격과 가리마를 곧게 낸 류달리 검은머리가 눈길을 끌뿐이다.

어떤 남자가 자기 무명천 끄트머리를 들춰들고 살펴보지만 녀인은 가타부타 아무 말도 없다.

《얼마요?》

《사겠나요?》

《값이 맞으면야.》

《다섯푼이 많으면 한푼 깎으시라요.》

《값이 정말 후하외다. 이게 어느 지방 무명이요?》

《박천무명이예요.》

《천이 여간 질기지 않군. 정말 한자에 다섯푼이면 되겠소?》

《그러시구려.》

질이 괜찮은 무명인데다 한자에 한두푼이나 눅은지라 그 사내는 물론 곁따라 다른 사람들도 흥정없이 사기 시작했다.

녀인이 천자를 대고 제꺽제꺽 무명천을 끊어주는데 사는 사람들 눈에도 푼푼히 내준다는게 헨둥하였다.

녀인의 무명 한필이 다 팔리우게 될무렵이 되자 천장사군들이 승악을 부려댔다.

《무명 한자에 다섯푼을 받다니. 분명 미친년이다.》

《그 망할 년때문에 하루해를 넘길 때까지 우린 동전 한잎도 못벌겠다. 당장 우리 자리에서 내쫓아라!》

어느새 달려왔는지 상투머리 중년사내가 녀인의 머리끄뎅이를 틀어잡았다.

《이걸 놓지 못해요?! 제 물건값을 제가 정해 팔았는데 무슨 일로 녀자의 몸에 손을 대는거요?》

녀자면 큰 망신을 당하고있다 해야겠는데 조금도 놀라거나 당황해하는 기색없이 말했다.

《네년이 푼수없이 값을 낮추는 속심은 뭐냐?》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지르는 사내의 팔을 잡아 옆으로 밀어내치는 녀인의 기상은 도고한데다 그 기력이 또한 여간 아니였다.

사내랍시고 녀자를 업신여기며 손을 댔던 상투머리가 손자리가 시뻘겋게 난 제 팔목을 내려다보며 발을 굴러댔다.

《도대체 네년이 장사를 하자고 나온게 옳으냐?》

녀인은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다듬고 놋비녀를 고쳐꽂고나서 일어섰다.

《팔자구 가지고나온 물건을 안구 되돌아가는 사람보구 뭐라는지 아시우?》

《…》

《에이구, 금새가 맞지 않으면 그냥 가지고 가는게지.》

《그렇지 않구. 밑지는 장사를 누가 할가.》

이번에는 천장사군아낙네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들어대며 녀인에게 손가락질을 해댔다.

《장사란 본전을 챙기면 잃는게 없고 한푼이래두 리나면 하는 일이외다. 그걸 모르고 나와들 앉았으니 해저물기나 기다려보시구려.》

녀인은 큼직한 가죽중태기를 싼 보퉁이를 들고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어간다.

《저… 저 요물같은 년이 어디서 사는 누구요?》

《뉘 알겠소. 오늘은 자리를 잘못 잡았지.》

《하필이면 저런게 우리곁에 앉을건 뭐람.》

《누군지야 내가 잘 알지요. 저기 박석골에 사는 백과부야요.》

《살이 뻗친 과부년이였군.》

《헤이구, 사내랍시구. 팔목이나 다치지 않으셨수?》

《그만 약을 올리우! 집을 알아가지구 오늘밤에 덮쳐들어가 일을 칠테다!》

사내꼴이 납작해진 상투머리가 제법 기세를 올리자 아낙네들은 흐아흐아 웃음판을 펴며 걸직한 수작질로 그냥 화를 돋구어댄다.

《누가 타고 누가 깔리우는지 가볼가봐.》

《다듬이방치에 얻어맞고 고의에 오줌이나 눌걸 가지구. 뻔하다니까.》

《백과부의 속곳만 벗기면 천냥돈이 차례질텐데 용기를 내보시라요.》

《그년한테 무슨 돈이 그리 많겠소.》

《내 말을 믿으라니까요. 아, 거기서 그 돈을 쥐기만 하면야 지금같이 살겠수?》

《해볼만 한 놀음이긴 한데 우리 집사람이 너무 승악스러워 그러질 않소.》

《에그, 차라리 그 사타구니에 매단걸 아예 뚝 떼서 나한테 주시구말구려.》

《하하하…》

무명 한필을 해저물기 전에 팔아버리고 일어선 장사군은 박석골에서 사는 백씨성을 가진 녀인이 옳았다.

불우한 인생을 팔자로 타고났는지 14살에 출가하여 16살에 남편을 잃고 일점혈육없이 고독고행살이를 해오는 비천한 과부였다.

백씨는 2살때 부모들의 등에 업혀 경기도 수원땅을 떠나 평양으로 왔다.

아버지 백지용은 대대로 관가와 량반들의 땅마지기를 뚜지며 품삯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가문의 후손으로 천성이 짓밟혀사는것을 피할수 없는 일로 여기는 사람이였다.

향촌을 떠날 때 백지용은 이렇다할 마련을 가지고 평양으로 온것이 아니였다.

경기도 수원땅은 나라의 대궐이 자리잡은 서울에서 지척인데다 물산이 바른데 비해 관가의 가렴잡세가 너무 많아 살아가기 힘겨워서였다.

궁성과 멀어지면 나라에서 부과하는 조세가 좀 적어지리라고 생각할만큼 머리가 아둔했고 평양은 번화하기로 소문난 고장이니 벌이가 괜찮은 일자리를 잡기 수월하리라고 여길 정도로 세상물정에는 등잔을 마주한 소경이나 다를바 없는 그였다.

평양부 룡덕면 박석골안에 생활의 터전이라고 해야 할 초가집 한채를 마련한 백지용은 살아보자고 육신을 갈아바치며 안해본 일이 없었다.

쥐구멍에도 해비칠 날이 있다지만 그의 앞에는 날이 갈수록 적막강산만 막아섰다.

나중에는 짐군노릇으로 평양바닥을 메주 밟듯 하기도 했건만 종내 가난은 피할수 없었다. …

싸전에 들려 수수쌀 다섯되를 사든 백씨는 얼간한 조기 한손까지 흥정끝에 꿰들고나서야 집으로 향했다.

녀인의 몸으로 행상길에 나선지도 어언 10년이 되여온다.

웬간한 남정들도 고달파하는 그 길을 극성스레 걷고 또 걷는 그를 두고 뒤에서들은 젊은 년이 돈에 미쳐 눈에 달이 떴다는둥 돈을 먹고사는 불가사리라는둥 안하는 험담이 없다.

하지만 누가 뭐라든 돈이 없이는 설사 명은 붙어있대도 버러지인생에서 당대 헤여나올수 없음을 뼈에 새기고 변함없이 행상길을 이어온 백씨였다.

동전 몇잎이 없어 그리도 마음씨 고운 남편을 약 한첩 못 써주고 저세상에 보낸것이 그의 가슴속에 평생의 한으로 사무쳐있었다.

백씨의 이번 행상길도 개천, 박천, 의주까지 이어진 먼길이여서 한달하고도 보름이 지난 오늘에야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있다.

그에게 있어서 집이란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간 집이고 양자로 들어온 오라비네 부처가 사는 집이다. 그의 부모는 가난살이에 아들들을 다 잃고 유일하게 남은 자식이건만 딸이라고 해서 그를 사람취급조차 하지 않았다.

백씨가 6살 나던 해 어느날 있은 일이다.

어린 그의 눈에는 아버지가 끌고다니는 손수레가 무척 신기하게 보였다. 아무리 무거운 짐도 그우에 실리면 쉽게 움직여가기때문이였다.

그날 아버지의 뒤를 몰래 밟은 백씨는 손수레의 짐을 끄는 아버지의 모습을 처음 보았다.

말린 어물짐은 부피가 여간만 크지 않아 금시 쏟아질것 같이 기우뚱거리며 움직여가고있었다.

아버지가 끄는 손수레가 장대재를 오르고있었다.

힘이 부쳐서인지 수레는 자주 뒤걸음질쳐댔다.

백씨는 그제야 아버지의 고생을 느꼈으며 그렇게 한푼두푼 번 돈으로 집안이 좁쌀죽이나마 먹으며 산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어린 백씨는 입술을 옥물고 뒤에서 수레를 밀기 시작했다. 날 때부터 뼈대가 든든해서인지 그는 어른들이 이고다니는 동이로 물을 길어도 힘든줄을 몰랐다.

손수레가 고개마루에 올라서자 앞으로 기울어지며 멎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내뿜는 아버지의 긴 숨소리가 들려왔다.

백씨는 한숨 돌리고 갈 생각으로 앉을자리를 찾는 아버지앞에 불쑥 나섰다. 뒤에서 밀어줬으니 용타고 칭찬해주길 바라며 배시시 웃었다.

아버지는 제 딸을 한참이나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마직수건으로 얼굴을 문지르고나서 버럭 역증을 냈다.

《이년아, 여긴 왜 나타났냐?》

《…》

《궁상스러운 계집애같으니, 어서 가! 네 에미한테로 가라!》

아버지의 관자노리에서 지렁이같은 피줄이 시퍼렇게 살아나며 무정한 고함질이 터졌다. 언제 한번 애모쁜 정을 기울여주는 일이 없는 아버지다.

고개를 폭 떨구며 돌아서는 철부지 딸애의 등뒤로 아버지의 짜증기어린 목소리가 그냥 뒤따랐다.

《어찌자구 집안에 저런 계집애만 살아남았는지. 어이구, 팔자두… 고현눔들같으니. 아비 먼저 가버리다니.》

탄식절반 울화가 절반인 그 소리에는 가난속에 잃은 두 아들에 대한 원망과 함께 녀자라면 무턱대고 비천하게 여기는 심리가 깔려있었다.

부녀간의 정도 봉건관념의 속박을 당하지 않을수 없는 세월이였다.

그 이듬해, 고역살이로 몸져누운 아버지가 림종에 이르게 되였다.

아버지는 빛을 잃어가는 눈길로 백씨를 더듬어보며 마디마디 힘겹게 말을 이었다.

《이 험한 세상에 불쌍한 너를… 남기고 가는구나. …》

이것이 아버지가 딸에게 주고 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되는 사랑이였다.

백씨는 이따금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던 일이 생각나군 했다.

수원에서 온 백씨촌 남자들이 상여를 멨다. 상주가 없는 장례였다.

그때 자기가 울었던지는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사람이 죽으면 나무통에 담겨 어디론가 간다는 무서운 광경만이 생각될뿐이다. 목숨과 함께 백씨라는 성밖에 준것 없는 아버지는 이렇게 그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다.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다를바 없이 봉건적인 남존녀비관념이 골수에 들어찬 녀자였다.

백씨는 뼈도 굳지 않은 어린 8살때부터 집안일을 도맡아하였다. 부엌일과 터밭일, 물레질과 베짜기, 산나물캐기에 콩나물기르기, 물긷기, 나무 해오는 일… 부닥치는 집안일은 온통 그가 맡아안고 팽이 돌듯 했다.

그렇게 눈섭 맞붙여볼새없이 일해도 화풀이같은 어머니의 욕설은 그쳐지는 날이 없었다.

《집안에는 남자가 있어야 한다. 그게 사람사는 집이지. 기둥없는 집이 어떻게 서있는단 말이냐?》

어머니의 입에서 이런 짜증이 때없이 터져나올 때면 백씨는 세상에 녀자로 태여난것이 불행이고 죄라는 생각으로 온몸을 떨군 했다.

14살에 출가한 딸이 시집살이를 두해도 못하고 친정으로 돌아온 뒤부터 어머니의 심사는 더욱 사나와졌다.

딸이 살아보겠다고 온갖 궂은일을 다하여 모은 푼전으로 행상길에 오를 때에도 험한 욕설을 마구 퍼부어댔다.

《모질다모질다 세상에 너같은 년도 있다더냐? 계집년이 무슨 큰돈을 벌겠다고 제 어미를 짐승우리같은 집에 처박아두고 걸음이 떨어지느냐? 네년이 귀신한테 홀려 길에서 명을 다 살지 않나 두고봐라!》

백씨는 이미 강심을 먹고나선 행상길이라 어머니의 심정이 리해되지만 걸음을 돌려세울수 없었다.

그렇게 몇해가 지나 어머니의 밥상에 이따금 흰쌀밥에 고기반찬이 오르게 되였다. 행상길에서 돌아온 딸이 상을 잘 차려가지고 들여오면 어머니의 낯색과 말투도 달라졌다.

《네 고집을 내가 어떻게 꺾겠니. 허다만 나도 이젠 늙어서 혼자서는 집건사를 못하겠구나.》

떠돌아다니는 딸의 고생을 민망하게 여기며 마음이 무던한 데릴사위를 맞아 외손자도 보고 오붓이 살고싶어하는 어머니의 내심이 느껴져 가슴이 뭉클해졌지만 단마디로 잘라매는 백씨였다.

《난 두벌 시집갈 사람이 못돼요.》

《어이구, 세상도 벼락을 맞았는지 달라지는터라 수절이라는 말도 이젠 한물 져서 과부신세도 면하더구나. 더 늦지 말구 마음을 고쳐먹어라.》

그럴 때마다 마음이 흔들리는것을 백씨도 어쩔수 없었다. 아무리 비천한 몸이기로서니 녀자로 세상에 나서 자식낳이도 못해보고 한뉘를 산다는것은 서글픈 일이 아닐수 없기때문이였다.

그새 행상으로 번 돈이 천냥도 넘겠다, 대동이나 순안쪽의 좋은 땅이나 사서 새살림을 시작하면 궁색하지 않게 살수도 있는 그였다.

하건만 속에 걸리는것은 돈이 없어 약 한첩 써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남편이다.

세상에 나서 살틀하고 뜨거운 정이라고는 남편한테서 비로소 처음 느껴본 백씨다.

이제 다른 사내를 서방으로 맞는다면 비명에 저세상으로 간 그이의 혼백이 외로워할것이고 그런 죄를 짓고서 어떻게 청청하늘을 쳐다보며 산단 말인가.

백씨는 마음을 도사려먹고 도리머리를 저었다.

어느날 어머니가 수원에서 사는 아버지 사촌형제의 아들을 양자로 삼겠다는 결심을 내비쳤다. 늘쌍 집을 비우고 행상길에서 살다싶이 하는 백씨로서는 어머니의 뜻을 따를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되여 모녀간이 살던 집에 사내라고 생겨났는데 나이는 백씨보다 두살 아래요, 한다리를 찔룩찔룩 저는 반병신이지만 오라비라고 불러야 했다.

집안에 양자가 들어온 후 어머니는 손자 보는 일이 급해 서둘러 며느리를 맞았는데 한해를 넘기기 전에 소원풀이를 하였다.

양자 백길복과 며느리가 집안의 주인이 되였다. 오라비벌 되는 사내는 부실하지만 내천면 신양리 매돌쟁이네 딸인 그의 처는 시어미한테 손자를 안겨준 다음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타산이 밝은데다 독기가 있어 백씨쯤은 손아래벌 대하듯 하려들었다.

《아니 누이요, 한집안살림에 그렇게 딴 재산 꿍져두면 오마니는 뭐 우리만 모시라는건가요?》

행상길에서 돌아오면 매양 눈알을 뙤록뙤록 굴려대며 백씨에게 입버릇처럼 생트집을 부려가지고있는 녀자다.

벌어둔 돈을 자기 손에 쥐여달라는 수작을 내놓고 하는 소리에 백씨는 속이 부글부글 괴여오르지만 꾹 참군 한다. 언제든 집안싸움이 터질 날이 올거라는 불안한 생각을 묻어두고 산다.

백씨는 박석골안의 자기 집이 보이는 길가에서 멎어섰다. 지난해 이무렵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돐제날도 가까와오기에 이번에는 행상길 중도에 돌아서서 온다.

집을 바라보던 그는 문득 얄미운 젊은 부부의 얼굴이 떠오르자 들고가던 수수쌀마저 길가에 내동댕이치고싶은 심정을 누를길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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