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경술년(1490년) 정월 초이튿날이였다.

이날 금제사 리계동은 성종의 어지를 받고 황해도에 내려와 붙잡은 김막동일행을 거느리고 한양길에 올랐다.

이날따라 날씨는 스산하였다.

며칠전에 내린 눈바람이 아침부터 윙윙 불어왔다.

장수산골짜기에서 터져나온 골바람은 땅우에 있는 모든것을 쓸어버릴듯 사납게 울부짖었다.

동녘하늘에 해가 소꼬리만큼 솟아올랐을 때였다.

김막동과 김의겸, 박중금을 묶어서 태운 달구지를 가운데에 세우고 앞뒤로 수십명의 관군이 호송하였다.

호송대오가 재령관가의 대문밖을 방금 나섰을 때였다.

관가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선 속에서 소복단장을 한 웬 녀인이 호송대의 앞을 막아섰다.

김막동과 접전을 할 때 땅바닥에 코밀이를 한 상처를 남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무명으로 온 얼굴을 가리우고 눈만 내놓은 리계동은 앞쪽을 바라보았다.

《왜 멈춰섰느냐?》

말을 타고 앞에서 가던 도사 리춘휘가 달려왔다.

《웬 계집이 죄수들에게 차입을 하게 해달라구 하오이다.》

《차입을?》 하고 되물은 리계동은 드러내놓은 두눈을 깜박거렸다.

그래도 한양에서 내려온 관리인데 어차피 죽어야 할 놈들에게 그만한 관용이야 베풀지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리계동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렇게 하도록 하라!》

김막동일행의 앞을 막아선 녀인은 뜻밖에도 해주감영의 기생 초향이였다.

초향은 조심히 김막동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가슴에 품고온 보자기를 풀었다.

보자기안에는 흰 무명으로 지은 버선이 들어있었다.

버선을 꺼내든 초향은 피자욱이 더덕더덕 붙어있고 추위에 새빨갛게 얼어든 김막동의 발에 신겨주었다.

초향은 김의겸과 박중금의 발에도 버선을 신겨주었다.

모여선 백성들도 그들을 호송하는 관군도 숨을 죽이고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다시 막동의 앞에 이른 초향은 모여선 사람들속을 향하여 손짓했다.

그의 몸종인듯 한 처녀애가 두툼한 보짐을 안고나왔다.

초향은 보자기를 풀었다.

그속에는 비취색주전자와 종지가 들어있었다.

처녀애가 부어주는 술을 종지에 받아든 초향은 김이 몰몰 나는 술종지를 김막동의 앞으로 내밀었다.

김막동은 초향을 그윽히 바라보면서 곁에 앉은 김의겸에게 먼저 주라고 턱짓을 하였다.

초향은 막동이가 하라는대로 김의겸의 앞으로 술종지를 내밀었다.

술종지를 받아든 김의겸은 가을호수와도 같이 맑고 그윽한 초향의 눈을 정겹게 바라보고나서 종지의 술을 단숨에 쭉 마셨다.

김의겸은 진정으로 말했다.

《아씨, 고맙소.》

초향은 또다시 술종지에 술을 채워 박중금에게 권했다.

박중금은 당황해하면서 김막동에게 주라고 손짓을 하였다.

김막동은 중금에게 어서 받으라는듯 턱짓을 하였다.

박중금은 할수 없다는듯 술종지를 받아 쭉 마셨다.

《아씨, 이 은혜를 잊지 않겠소이다.》

초향은 다시 술종지를 들어 김막동에게 권했다.

두손바닥을 오라줄에 꿰인 김막동은 술종지를 잡을수가 없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초향의 눈에서는 눈물이 가랑가랑 맺히더니 또그르르 굴러떨어져 피멍이 든 막동의 손을 적시였다.

초향은 발돋움을 하여 막동의 입에 술종지를 가져다대였다.

김막동은 초향이가 부어주는 술을 꿀꺽꿀꺽 마셨다.

《아씨는 도대체 뉘신데 이렇게 은혜를 베푸시우.》

초향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말했다.

《한달전에 재령객관에서 소녀는 어르신을 뵈왔나이다.》

그제야 김막동은 그때 관찰사 김극검의 방에서 자기를 이윽토록 바라보던 기생의 모습이 생각났다.

《아, 생각이 나누만. 정말 고맙소.》

초향은 머리를 숙이면서 나직이 말하였다.

《소녀는 그때 진짜 사나이를 보았사와요. 두령님께서 저의 소원을 풀어주시와요.》

김막동은 저으기 놀랐다.

《소원이라니? 내가 어떻게…》

초향은 남이 들을세라 김막동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댁의 아드님 무산이를 내가 돌보게 해주시와요.》

《예-에?》

김막동은 두눈을 크게 떴다.

초향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틀어올린 머리태를 풀어헤쳤다.

치렁치렁한 머리태를 감아쥔 초향은 그것을 막동의 발밑으로 밀어넣었다.

《그 표적으로 이 머리태를 밟아주시와요.》

김막동은 가슴이 뭉클했다.

얼마나 의롭고 흰눈같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인가.

그는 한갖 기생에 불과한 초향에게서 이토록 성의를 받는것을 그만이 아닌 백성들의 사랑으로 받아들였다.

저 모여선 사람들의 눈길도 모두 초향의 눈길과 꼭 같지 않은가.

김막동은 후두두 떨려오는 가슴을 달래면서 초향의 머리태를 오라줄에 묶인 두손으로 정히 받아들고 쓰다듬었다.

《아씨, 정말 고맙소.》

초향은 눈물이 가득 고인 눈으로 김막동을 쳐다보며 피멍이 든 김막동의 손을 꼭 잡았다.

이때 지금껏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사 리춘휘가 꽥 소리를 질렀다.

《이젠 그만해라!》

초향은 방금 손에 잡았던 새를 놓치기나 한듯 팔딱 놀라며 막동의 손을 놓았다.

초향은 품에서 은장도를 꺼내여 자기의 속치마를 북 찢어내여 피멍이 든 김막동의 두손을 정히 감싸주었다.

초향은 목메인 소리로 말하였다.

《비천한 기생 초향이 두령님을 일찌기 따라나서지 못한게 한이오이다. 이제라도 그 뜻을 따를터이니 부디 옥체만강… 흐흑…》

김막동은 초향에게 머리숙여 인사했다.

《초향아씨, 정말 고맙소이다.》

그 정경을 바라보는 백성들속에서도 가벼운 흐느낌소리가 울려왔다.

그제서야 모여선 사람들의 분위기를 알아차린 금제사 리계동은 도사 리춘휘에게 어서 가자고 손짓을 하였다.

리춘휘가 앞에 선 관군들에게 호령했다.

《어서 가자. 빨리!》

드디여 멈춰섰던 호송대가 다시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길옆에 모여선 백성들속의 여기저기에서 곡성이 터져나왔다.

초향은 두무릎을 꿇고 김막동이네를 향하여 엎드린채 어깨를 떨고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김막동의 눈에서도 김의겸과 박중금의 눈에서도 사나이의 억센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길가에 모여선 초향을 비롯한 백성들은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대로 서서 손저어 바래주었다.

눈보라는 여전히 세차게 불어댔다.

온몸이 묶이운채 달구지우에 앉아서 가는 김막동은 묵묵히 뽀얀 눈보라속에서 흘러가는 산천을 지켜보았다.

생각밖에 초향이 부어준 술을 마신 박중금은 훈훈하게 달아오르는 속을 눅잦히며 태평스레 물었다.

《막동형님, 이자 그 아씨가 대관절 누구요?》

김막동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전에 우리가 재령객관을 칠 때 만났던 기생이야.》

그때까지 말이 없던 김의겸이 끼여들었다.

《정말 쉽지 않은 녀인이야. 하긴 그 녀인만이 아니라 온 황해도백성들이 다 마음씨가 비단결 한가지야.》

김막동도 박중금도 그 말을 긍정했다.

《정말 그렇지요.》

《모두 정이 푹푹 드는 사람들이요.》

박중금이 김막동과 김의겸을 돌아보면서 벙글거렸다.

그들이 한양에 도착한것은 경술년(1490년) 정월 초사흗날이였다.

의금부의 옥에 갇힌 그들앞으로 관복을 차려입은 승정원 좌부승지 리종호가 찾아와 위엄을 돋구면서 성종의 어지를 전달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종강정대왕실록》 236권 21년 1월 정사일(4일)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임금이 직접 쓰기를 〈막동이 어느해부터 강도로 되였으며 전후하여 살해한 사람이 몇명이며 남의 재산을 략탈한것은 몇집이나 되며 남의 처를 빼앗은것은 몇명이나 되는가를 심문할것이다. 네가 이미 큰 죄를 범한것만큼 이제는 조금이라도 숨길수 없으며 원쑤진 사람이나 혐의있는 사람을 거짓으로 끌어들여 자기 패거리들을 은근히 비호할수 없다. 관찰사는 온 도의 주인인데 너는 무엇때문에 도적질한 물건을 빼앗아내려고 화살까지 쏘아댔는가? 관찰사가 도적질한 물건을 주지 않을것 같으면 너는 관찰사를 죽이겠는가? 이에 대하여 끝까지 심문하여 보고할것이다. 〉라고 하였다. …》

목에 칼을 쓰고 임금의 어지를 전달받은 김막동은 너무도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여보시오 좌부승지어른, 난 강도도 아니며 도적도 아니요. 지금껏 내가 죽였다면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량반부자들을 죽였을뿐이요. 그리구 지금껏 남의 물건을 빼앗았다면 그건 다 백성들의 피땀을 짜낸 량반부자들의 물건을 빼앗았을뿐이요. 그리구 어리석게두 남의 처를 빼앗았다고 하는데 사람이 어찌 그런짓을 할수 있겠소? 그리구 관찰사를 죽이려 했댔는가고 물었는데 솔직히 고백하건대 내 손에 잡혔으면 죽이려고 하였소. 다행히도 도망을 쳤길래 살려주었을뿐이요. 임금님께 그대로 전해주시오. 나는 강도도 아니고 도적은 더욱 아니라고말이요.》

김막동의 말을 들은 좌부승지 리종호는 그의 사리정연한 대답앞에 더 말을 하지 못하였다.

경술년(1490년) 1월 임술일(9일)이였다.

이날 성종은 좌부승지 리종호의 말을 듣고 대노하여 아무말도 하지 않고있다가 도승지 리극균이 김막동의 어머니 한씨와 그의 안해인 봉옥을 어떻게 처리하겠는가 하는 물음에 이렇게 대답했다.

《에미가 아들을 가르치지 않고 은근히 그의 악행을 도와주었으니 징벌하지 않을수 없다. 그의 에미와 처를 다 먼섬에 종으로 보낼것이다.》

경술년(1490년) 1월 신미일(18일), 성종은 승정원 도승지 한건, 좌부승지 리종호, 좌승지 홍흥, 우승지 신종호, 동부승지 정경조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막동 등은 이름은 강도라고 하지만 반역보다 더 심하다. 여러차례 심문하지 말고 래일 사형에 처할것이다.》

그다음날인 임신일(19일) 아침이였다.

한양 형장터가 있는 인왕산으로 향한 신무문으로는 관군들의 삼엄한 경계속에 온몸이 터지고 찢긴 세 사나이가 걸어가고있었다.

그들은 김막동, 김의겸, 박중금이였다.

이날따라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펑펑 쏟아져내렸다.

인왕산기슭 형장터에 이른 그들은 하염없이 쏟아져내리는 눈을 함뿍 맞으면서 호탕하게 웃었다.

그들의 호호탕탕한 웃음소리는 눈장막에 싸인 인왕산봉우리를 쩌렁쩌렁 울리였다.

바로 그 시각 신계에서 평안도로 향한 길우로는 짐과 사람을 실은 석대의 달구지가 힘겨웁게 굴러가고있었다.

첫번째 달구지에는 김영봉과 그의 안해 박순이 타고있었다.

두번째 달구지에는 이불우에 누운 수안과 그의 안해 을녀와 박옥금이 타고있었다.

세번째 달구지에는 김막동과 헤여질 때의 옷차림 그대로인 초향이가 막동의 둘째아들인 다섯살난 무산이를 품에 껴안고 가고있었다.

그옆에 애기를 업은 려아와 김막봉의 어머니 홍씨가 앉아있었다.

초향의 품에 안긴 무산이는 하염없이 쏟아지는 눈을 손으로 받으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줌마는 누구시와요?》

《나?…》 하고 초향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채찍을 들고 소를 몰아가던 김막봉이 대신 입을 열었다.

《아줌마는 너의 작은엄마다.》

《그럼 우리 엄마나?》

초향은 무산이를 꼭 껴안으며 속삭였다.

《그래 이제부턴 내가 너의 엄마다.》

초향의 품에 안긴 무산은 《새 엄마》의 고운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눈물은 달구지를 타고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도 모두 흘러내렸다.

 

×

 

이렇게 7년간에 걸치는 김막동농민봉기군의 정의로운 투쟁은 끝났다.

그들의 의로운 투쟁은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당시 봉건통치의 지반을 크게 뒤흔들어놓았으며 량반통치배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다. 뿐만아니라 인민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투쟁에로 고무추동하는 투쟁의 기치로 되였다.

김막동이네가 그처럼 바라고 바라던 량반부자가 없는 세상이 이 땅에 도래하기까지는 아직도 오랜 세월이 남아있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먼 후날 평안도에서 일어난 농민봉기군의 주동인물이 황해도에서 이주한 사람이였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는 알수 없으나 모름지기 해서바람(황해도바람)을 일으켰던 사람들의 후손들이였을것이라고 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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