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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나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생겨나는 법이다.

한점의 작은 불티가 큰 산을 태워버리듯 사람이 살아가는데서도 사소한 일을 소홀히 하다가 큰일을 저지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것이다.

하기에 예로부터 이것을 경계하는 성구, 속담들이 많이 나왔고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도 늘 그런 경구들을 자주 입에 올리군 하는것이다.

김막동봉기군이 희생된 동료들의 복수전으로 온 황해도땅을 들쑤셔놓다싶이 한지도 20여일이 지난 기유년(1489년) 섣달 그믐날이였다.

감쪽같이 장수산에 옮겨앉아 그사이 쌓인 피로도 풀고 다음번 싸움준비를 하던 김막동은 이날밤 장수산가까이에 있는 능마의 객주집으로 내려갔다.

병에 걸려 앓고있는 김의겸의 병문안도 하고 앞으로의 일도 의논할겸 겸사겸사해서 내려왔던것이다.

한달만에 만난 그들은 두손을 맞잡고 어쩔줄 몰랐다.

김막동은 객주집 별채에서 재령군교 김막봉의 안해인 려아와 함께 있는 다섯살난 둘째아들 무산이도 안아보았다.

김의겸과 함께 자리에 누운 김막동은 앞으로의 일을 두고 밤새껏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이밤이 자기들에게 있어서 마지막밤이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이미 그들을 배반한 능마는 겉으로는 온갖 성의를 다하는체 하면서 속으로는 어떻게 하면 이들을 고발할것인가 하며 딴꿈을 꾸고있었다.

두사람의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으려는듯 한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온 능마는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그때였다.

누군가가 객주집대문을 달랑달랑 두드렸다.

능마가 대문으로 다가가 문을 여니 천만뜻밖에도 방아전이 문앞에 서있었다.

그를 본 능마는 방아전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쑥덕거리였다.

잠시후 방아전은 삵의 웃음을 지으면서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밖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김막동은 새벽닭이 길게 홰를 칠무렵에야 주섬주섬 길떠날 차비를 하였다.

그때였다.

주막집대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두사람이 어둠을 타고 주막집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마당을 에돌아 집뒤로 돌아갔다.

뒤문을 통해 김막동과 김의겸이 있는 방앞에 이른 그들은 방안의 동정을 살폈다.

그러다가 그들중 한사람이 함께 온 사람의 멱살을 잡아쥐고 방안으로 무작정 달려들어갔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방에 앉아있던 김막동과 김의겸은 깜짝 놀라 일어섰다.

멱살이 잡힌 놈은 방아전이였고 방아전을 끌고 들어간 사람은 재령군교 김막봉이였다.

김막봉은 낮은 소리로 다급히 말했다.

《형님, 이놈이 렴탐군이요. 그리구 능마가 우릴 배반했소. 지금 관군이 이 집을 꽉 덮었수다.》

《뭐라구?》 김막동도 김의겸도 펄쩍 놀랐다.

김막동이 막봉에게 다급히 말했다.

《막봉아, 아래방에 있는 능마를 잡아오너라.》

김막봉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아래방으로 내려갔다.

잠시후에 잠에 취한 능마의 멱살을 잡고 막봉이 방으로 들어왔다.

김막동은 능마와 방아전을 심문했다.

서슬푸른 김막동의 칼날밑에 선 능마와 방아전은 그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고백했다.

그 말을 들은 김막동은 가슴을 쳤다.

《아, 내 눈이 멀었지. 이런 놈을 벗으로 믿고있다니. 능마 이놈아, 너도 사람이냐? 이 인두겁을 쓴 짐승같은 놈아.》

능마는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아무말도 못하고 벌벌 떨기만 하였다.

김막동은 너무도 통분하여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가 어찌도 세괃게 입술을 깨물었는지 그의 입에서는 선지피가 흘러나왔다.

곁에 있던 김의겸이 침착하게 말하였다.

《이놈아, 그래 우리모두를 네가 불었니?》

능마는 기여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막봉군교와 신계마방집은 안불었…》

《뭐야? 이놈아, 그건 왜 안불었어. 이 개같은 놈아.》 하고 막봉은 분노에 차서 말하며 능마의 동가슴을 걷어찼다.

김의겸은 년장자답게 침착스레 말했다.

《막봉이 이 사람, 내 말을 명심해서 들으라구. 자네는 이제 밖에 나가 우리와는 인연이 없는체 하고 뒤수습을 하여야 하겠네. 산에는 아직 박중금두령이 있으니 그와 손잡고 우리의 거사를 끝까지 성사시켜야 하네.》

김막동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막봉아, 이제 남은건 너와 박중금이다. 둘이 손잡구 꼭 우리가 이루려던 뜻을 성사시켜라. 우리가 못하면 자식대, 손자대에 가서라도 이놈의 세상은 뒤엎어야 한다. 그 길만이 우리가 무지렁이같이 짓밟혀 살지 않는 길이다.》

김막봉은 와락 막동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형님, 나도 여기서 형님들과 함께 싸우다가 죽겠어요.》

김막동은 막봉의 두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야 막봉아, 무슨 소릴 하는거냐. 정신차려라. 정신을… 자, 시간이 없다. 인제는 헤여지자. 어서!》

김막동은 막봉의 두어깨를 밀쳤다.

막봉은 눈물을 머금고 그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형님들, 뒤일은… 그럼 잘…》

막봉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뿌리면서 뒤문으로 나갔다.

김막동과 김의겸은 말없이 앉아 장검을 옷자락으로 닦았다.

등잔불밑에서는 서슬푸른 칼날이 번뜩이였다.

번뜩이는 칼날을 바라보는 막동의 눈앞에는 이 몇해동안 지나온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와 형님 그리고 애어린 초동이와 박상배, 윤산이와 봉산이, 창에 찔린 수안이며 정씨와 갑녀의 얼굴, 무참히 죽은 어린 아들인 무남이…

그런가 하면 지금 자기앞에 오라를 지고 앉아있는 능마에 대한 적개심이 불타오르기도 하였다.

종개 한마리가 온 강물을 흐려놓는다더니 저놈때문에 우리의 뜻이 꺾어졌다고 생각하니 분통이 터졌다.

지금도 그의 귀전에는 능마가 의심스럽다던 박중금의 목소리가 쟁쟁히 울리였다.

(아,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

김막동은 생각할수록 통분했다.

김막동은 무심결에 옆에 앉아있는 김의겸을 쳐다보았다.

김의겸은 태연히 앉아 잡고있는 장검에 티가 묻을세라 조심히 닦고있었다.

얼결에 눈을 들다가 자기를 쳐다보는 김막동과 눈을 마주친 김의겸은 빙그레 웃었다.

김의겸의 웃는 얼굴을 보느라니 김막동의 가슴은 어쩐지 저려왔다.

《삼촌의 병을 고쳐드리지도 못하구, 이 못된놈을 용서하세요.》

《허허… 별말을 다하누만. 난 자네를 만난것이 얼마나 다행인줄 몰라. 그래두 이 근간에 우린 난생 처음 사람답게 살아봤어. 난 어쩐지 저 능마같은 놈이 가련해보이누만. 이중살이를 하자니 얼마나 고달팠겠나.》

김막동은 증오의 눈길로 두팔이 묶이운채 쭈그리고 앉아있는 능마와 방아전을 쏘아보았다.

《너희들은 차라리 이 세상에 나오지 않을걸 그랬다.》

이때였다.

대문밖에서 웬 목소리가 울려왔다.

《김막동 이놈아! 너희들은 포위되였으니 순순히 나오거라. 어서!》

김막동과 김의겸은 서로 의미있게 마주보았다.

김막동은 천천히 일어나 늘 차고다니던 돌주머니를 옆에 찼다.

드디여 그들은 꽁꽁 묶은 방아전과 능마를 앞세우고 객주집마당에 나섰다.

어느새 날이 밝았는지 동켠 하늘에 해가 토끼꼬리만큼 솟아올라 사방은 환했다.

집밖에는 말을 탄 리계동을 비롯한 관군이 겹겹이 늘어섰는데 해볕에 창과 칼이 번뜩이였다.

그들을 본 최형방이 소리쳤다.

《순순히 손들고 나오는게 좋아. 그렇지 않다간 죽여버리겠다.》

김막동은 말없이 그들을 쏘아보다가 천천히 장검을 쳐들었다.

그러자 둘러싼 관군들이 칼과 창을 쳐들었다.

김막동은 관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똑똑히들 보라. 더러운 변절자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가를 말이다!》

김막동의 손이 번뜩이자 앞에 섰던 능마의 모가지가 땅바닥에 툴렁 떨어지더니 몸집이 모로 꺼꾸러졌다.

그와 동시에 김의겸의 장검도 번뜩이였다.

그의 앞에 서있던 방아전 역시 능마와 같이 목없는 귀신이 되여 자빠졌다.

이것을 본 관군이 들이덮치려고 앞으로 나섰다.

그때였다.

말우에 앉아있던 금제사 리계동이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가만! 모두 섰거라!》

그 소리에 관군이 모두 그자리에 멈춰섰다.

리계동이 큰소리로 말했다.

《금군령 리현손이 왔느냐?》

대오속에서 관복차림을 한 리현손이 삐여져나왔다.

《예잇, 여기 왔소이다.》

리계동이 그에게 호령했다.

《가까이에 가서 저놈이 김막동이가 맞는가를 확인해라!》

《알겠소이다.》 하고 리현손은 제법 거드름을 피우면서 대문밖으로 다가왔다.

김막동은 자기앞으로 다가오는 리현손을 쏘아보았다.

김막동의 앞에 다가선 리현손은 입술을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쳤다.

《막동이 너 이놈, 오늘 마침 잘 만났다. 그래 내 아들을 죽이구두 무사할줄 알았느냐 이놈, 오늘은 내 손에 죽어봐라.》

김막동은 태연하게 껄껄 웃었다.

《그래. 잔인하고 포악무도한 네 아들을 내가 죽였다. 네놈두 오늘 내 손에서 살아서 돌아갈줄 아느냐? 이 백성들의 등껍질을 벗겨먹는 흡혈귀같은 놈아.》

리현손은 등뒤에 서있는 관군을 믿었던지 제법 발을 굴렀다.

《뭐라구 이놈, 씹어먹어도 씨원치 않을 이놈!》

뒤에 있던 리계동이 소리쳤다.

《리현손! 말씨름을 그만하구 돌아오라!》

그 말에 리현손은 씨근덕거리면서 돌아섰다.

그때였다.

김막동이 손을 홱 내저었다.

그러자 돌아서서 걸어가던 리현손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김막동이 던진 돌멩이가 그의 정수리를 때렸던것이다.

어찌도 세게 얻어맞았는지 리현손의 골은 빠개져서 그자리에서 찍소리 한마디 못하고 즉사하였다.

너무도 뜻밖의 일을 당한 관군은 모두 의아해 서있었다.

그때 칼을 빼든 김막동이 성난 사자와 같이 달려나왔다.

《이놈들아! 해볼테면 해보자!》

앞에서 말을 타고있는 종사관 박산에게 달려든 김막동은 그가 미처 손쓸 사이도 없이 달려들어 장검으로 허리를 내려쳤다.

말우에서 박산이 굴러떨어졌다.

김막동은 날래게 말우에 올라타고 자기에게 모여드는 관군을 향하여 장검을 휘둘러댔다.

관군 몇명이 쓰러지자 달려들던 관군들이 주춤거렸다.

그 틈을 타서 김막동은 리계동을 향하여 말을 내몰았다.

불의에 달려드는 김막동을 본 리계동은 급히 말을 돌렸다.

리계동에게 달려든 김막동은 그의 몸집을 겨누고 장검을 내리쳤다.

리계동은 자기에게 떨어지는 장검을 자기 칼로 막으며 몸을 피하다가 그만 땅우에 떨어지면서 코밀이를 하였다.

김막동은 말을 몰아 관군속으로 이리저리 몰고가면서 칼을 휘둘렀다.

땅에 떨어진 리계동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저놈이 탄 말을 활로 쏘아라!》

그러자 김막동을 향하여 화살이 비오듯 쏟아졌다.

김막동은 말잔등에 바싹 엎드려 날아오는 화살을 이리저리 피하였다.

그때 김막동에게 날아오는 여러대의 화살이 그가 탄 말에 들여박혔다.

말은 앞발굽을 쳐들고 비명을 지르다가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김막동은 땅우에서 자기에게 달려드는 관군과 칼싸움을 하였다.

기회를 노리던 별장 주효문이 김막동이 장검을 비껴들려고 하는 순간 창으로 내려쳤다.

김막동의 장검이 동강이 났다.

끊어진 칼자루를 쥔 김막동은 그것을 주효문의 면상을 향하여 힘껏 던졌다.

주효문은 날래게 몸을 피하느라고 했건만 끝이 뭉청 떨어져나간 칼자루는 주효문의 오른쪽눈을 때렸다.

김막동이 맨주먹인것을 본 관군 여럿이 그를 안고 넘어지면서 덮쳐들었다.

한편 김막동과 함께 대문밖으로 달려나온 김의겸은 최형방을 향하여 돌진했다.

몸은 비록 병에 걸려 쇠약해도 칼재주에 능한 김의겸은 최형방에게 달려들어 장검으로 그의 허리를 문질렀다.

최형방이 악 소리를 치면서 쓰러졌다.

그때 옆에 있던 도사 리춘휘가 몽둥이로 김의겸의 어깨를 내려쳤다. 불의의 타격을 받은 김의겸은 그자리에 풀썩 꼬꾸라졌다.

관군들이 그에게 달려들어 오라줄로 묶어놓았다.

말에서 떨어져서 코밀이를 한 리계동은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으면서 소리쳤다.

《김막동 그놈의 손바닥에 구멍을 뚫어라.》

여러명의 관군이 김막동에게 달라붙어 엎어놓고 두손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두손바닥을 뾰족한 창으로 내리찔렀다.

김막동은 《이놈들아-》하며 몸부림쳤건만 수십명의 관군이 그를 깔고있는터라 어쩔수 없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리계동이 또다시 소리쳤다.

《그 손바닥구멍에 오라줄을 넣어서 묶어라.》

이리하여 김막동은 손바닥에 구멍이 뚫리고 오라줄에 꿰여 관군에게 끌리워갔다.

그가 수십명의 관군에게 포위되여 얼마간 끌려갔을 때였다.

갑자기 등뒤에서 웨침소리가 울려왔다.

《이놈들아! 우리 두령을 못잡아간다!》

김막동이 돌아다보니 말을 탄 박중금과 봉기군 여럿이 장검을 휘두르면서 달려들고있었다.

그것을 본 김막동은 안타깝게 소리쳤다.

《중금아, 오지 말라! 오지 말라!》

그러거나 말거나 박중금은 쏜살같이 관군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관군의 무리속에 뛰여들어 칼을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막동형님, 어디 있소. 중금이가 왔소!》

박중금이 휘두르는 칼에 또다시 여러명의 관군이 쓰러졌다.

그 광경을 본 리계동은 고함을 쳤다.

《활을 쏘라. 활을!》

날아드는 화살에 그처럼 펄펄 뛰던 박중금도 쓰러지고말았다.

그것을 본 김막동은 애타게 소리쳤다.

《중금아, 이놈아! 왜 여기로 온단 말이냐. 아-》

이리하여 봉기군 총두령인 김막동과 두령들인 김의겸, 박중금은 관군에게 붙잡혀 가까이에 있는 재령관가로 끌려갔다.

능마를 자기처럼 믿으면서 그를 소홀히 한탓에 김막동은 너무도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된것이다.

이날은 성종 21년 경술년(1490년) 정월 초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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