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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산과 봉산이의 죽음에 대한 소식은 바람을 타고 전해지듯 그다음날로 자비령바위골에 있는 김막동이네한테로 날아왔다.

그 소식을 들은 김막동과 김의겸, 박중금을 비롯한 봉기군들은 모두 분노에 사무쳐 펄펄 뛰였다.

그들은 김막동의 손을 잡아흔들면서 당장 달려나가 윤산과 봉산의 원쑤를 갚자고 윽윽거렸다.

김막동은 너무도 억이 막혀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의 가슴은 윤산과 봉산을 잃은것으로 하여 무딘 칼로 마구 헤집어놓는것 같았고 원쑤들에 대한 분노로 설설 끓었다.

막동은 마음을 진정하지 못하고 마당가에서 오락가락하고있었다.

그의 앞으로 김의겸과 박중금이 다가섰다.

김막동은 말없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그들의 눈에는 사나이의 억센 눈물이 어리여있었다.

몇년전부터 사지동거를 약속하고 지금껏 고생도 즐거움도 함께 나누며 뜻을 같이해온 친혈육보다 더 가까운 그들이였다.

김의겸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총두령,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김막동은 입술을 앙다물고 그들을 바라보다가 갈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우선 그 애들의 시신을 찾아서 안장부터 해주어야 하겠어요. 그다음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해보겠어요.》

김의겸도 박중금도 모두 막동의 의견에 찬성하였다.

김막동은 그들과 함께 윤산과 봉산의 시신을 가져올 구체적인 토의를 하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자비령기슭에서 관군차림을 한 70여명의 말을 탄 군사들이 말발굽소리를 요란히 울리면서 재령쪽으로 내달렸다.

모두가 일매지게 관복차림을 한 그들의 일행은 얼핏 보기에는 한양에서 급보를 가지고 내려오는 군사행렬같았다.

그들의 일행은 한낮이 좀 기울사 할 때 재령고을을 지나갔다.

그때 그들의 행렬속에 군교 한명이 말을 타고 끼여들었다.

그는 바로 김막봉이였다.

갑옷에 투구까지 쓰고 말을 타고 달리는 김막동의 옆에 다가선 그는 함께 달리면서 윤산과 봉산이 처형당한 장소와 지금 관군이 매복하고있다는것을 알려주었다.

김막봉의 말은 사실이였다.

봉기군들사이에 의리심이 강하다는것을 잘 알고있는 금제사 리계동은 분명히 김막동패거리가 제 동료들의 시신을 가지러 올것이라고 타산하였다.

하여 리계동은 자기가 관찰사를 할 때 칼재주겨루기를 하면서 낯을 익힌 도감영의 군교인 주효문을 별장으로 승격시켜 그에게 날랜 군사 50여명을 붙여서 룡수산일대에 매복시켜놓았다.

김막봉과 헤여진 그들의 일행은 더욱 박차를 가하여 해주쪽으로 내달렸다.

해가 서산에 기울어질사 할무렵이였다.

저 멀리 앞쪽에서 룡수산정이 드러나보이는데까지 이른 그들은 그 산줄기와 잇닿은 골짜기로 들어갔다.

푸른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진 산골짜기는 순식간에 그들 일행을 덮어버렸다.

그들이 들어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숲속에서 붉은 가사를 걸치고 삿갓을 푹 눌러쓴 동냥중 한명이 지팽이를 짚고 걸어나와 룡수산 형장터쪽으로 걸어갔다.

형장터에는 두개의 장대가 세워져있는데 장대우에 목을 매여단 두개의 시신이 각기 매달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고있었다.

그앞에 이른 중은 푹 눌러쓴 삿갓을 벗고 장대우에 매여달린 시신쪽을 향하여 두손을 모아잡고 머리를 숙였다.

그는 바로 윤산이가 늘 《까까중》이라고 놀려주던 박중금이였다.

그가 두손을 합장하고 한동안 서있는데 갑자기 한쪽옆에서 털벙거지를 쓴 군졸 하나가 나타나 소리쳤다.

《야, 넌 여기서 뭘하는거야.》

그래도 박중금은 못 들은체 하고 입으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우며 서있었다.

박중금에게 다가선 군졸은 쥐고있던 창끝으로 모아쥔 손을 툭 쳤다.

《이놈아, 무얼 중얼거려. 저놈들은 반역죄를 지은 놈들이란 말이야.》

그제야 박중금은 군졸을 쳐다보면서 엄하게 말했다.

《무엄하도다. 석가존께서는 살생을 하면 지옥에 들어가 류황불가마속에서 타죽는다 하였소이다. 나무아미타불.》

그러자 군졸은 코방귀를 뀌였다.

《흥, 죽으면 다지 지옥은 무슨 말라빠진 지옥이야. 어서 가기나 해.》

박중금은 속에서 불이 이는것을 겨우 참으며 삿갓을 집어썼다.

그가 돌아서서 가려고 할 때였다.

산기슭쪽에서 고함소리가 울려왔다.

《야, 그놈이 수상하다. 여기로 끌고오라!》

그 소리를 들은 군졸은 창을 비껴들고 박중금을 툭툭 쳤다.

《야, 저리로 가자. 어서!》

박중금은 군졸을 한번 얼핏 보고나서 그가 가리키는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기슭에는 움푹 패인 웅뎅이가 있는데 그우에 소나무아지들을 얼기설기 놓아서 잘 알리지 않았다.

관군이 윤산과 봉산의 시신을 가지러 오는 김막동이네를 잡으려고 매복한 곳이였다.

군졸에게 등을 밀리워 그쪽으로 간 박중금은 움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얼핏 보아도 40~50명가량 되는 군졸들이 군데군데 화로불을 피워놓고 덤불을 깔고 앉아있는데 더러는 자빠져 자고있고 더러는 앉아서 한담을 하고있었다.

웅뎅이에서 관복차림을 한 사람이 나오더니 박중금의 아래우를 한참이나 훑어보다가 소리쳤다.

《야, 너 어디서 오는 중이냐?》

박중금은 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수안 언진산 불각사에서 사는 중이올시다.》

《그런데 여기로 왜 왔어?》

《시주를 받으러 해주로 가던 길이오이다.》

그러자 관복을 입은자는 또다시 박중금을 훑어보았다.

《그럼 제 갈 곳으로 갈게지 왜 여기에 와서 시끄럽게 굴어? 너 혹시 김막동의 렴탐군이 아니야?》

박중금은 금시초문인듯 중얼거렸다.

《김막동이라니요? 그게 어떤 사람이슈?》

관복차림을 한자는 시끄러운듯 말했다.

《모르면 됐어. 어서 가봐. 시끄럽다.》

박중금은 속으로 무엇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돌아섰다.

해가 서산에 노루꼬리만큼 솟아있을무렵이였다.

룡수산 형장터로는 갑옷에 투구를 쓴 사람을 앞세우고 70여명의 군사들이 말을 타고 달려왔다.

그들은 김막동일행이였다.

말을 타고 형장터에 이른 그들속에서 몇명이 떨어져나와 장대우에 매달려있는 시신쪽으로 달려가고 나머지는 곧바로 산기슭에 있는 웅뎅이쪽으로 달려가 에워쌌다.

장대있는 곳으로 달려간 김막동과 김의겸을 비롯한 봉기군들은 장대를 넘어뜨리고 윤산과 봉산의 시신을 정히 받아내렸다.

그들은 눈도 채 감지 못한채 굳어져있었다.

흰 무명필을 펴놓고 그우에 윤산과 봉산이를 눕혀놓은 김막동은 목메여 그들을 찾았다.

《윤산아! 봉산아! 너희들이 죽다니. 아-》

김막동은 윤산을 부둥켜안고 몸부림쳤다.

그의 귀전에는 원쑤를 갚아달라고 웨쳤다는 윤산의 마지막목소리가 쟁쟁히 울려왔다.

옆에 서있는 김의겸의 얼굴에서도 봉기군들의 얼굴에서도 주먹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김막동이 주먹을 떨면서 울부짖었다.

《윤산아! 봉산아! 우리 기어이 너희들의 원쑤를 갚아주겠다.》

이윽고 윤산과 봉산의 시신을 무명천에 정히 싸서 안고 두명의 봉기군이 말우에 올랐다.

윤산과 봉산의 시신을 안은 봉기군들과 함께 김의겸을 비롯한 몇사람이 말을 타고 형장터에서 재빨리 빠져나갔다.

칼을 빼들고 말우에 오른 김막동은 관군이 숨어있는 산기슭으로 달려갔다.

박중금을 비롯한 봉기군들에게 포위된 관군은 웅뎅이안에서 오글거리며 벌벌 떨고있었다.

그곳으로 달려간 김막동은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한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쳐라!》

그처럼 사랑하는 동료들인 윤산과 봉산을 잃은 봉기군들의 분노는 하늘에 닿았다.

막동의 호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웅뎅이안으로는 봉기군들이 내던지는 돌벼락이 떨어졌다.

순간 웅뎅이안에서는 아비규환이 일어났다.

돌멩이에 얻어맞아 골이 깨져 넘어지고 그것을 피하겠다고 이리저리 돌아치는 놈으로 별의별 놈이 다 있었다.

그때 웅뎅이안에 놓여있던 화로가 넘어지면서 관군이 깔고앉았던 짚검불에 불이 달렸다.

그러자 웅뎅이안에서는 삼단같은 불길이 솟아올랐다.

관군들은 단말마적으로 발악하며 웅뎅이에서 달려나왔다.

밖에 있던 봉기군들은 나오는족족 놈들을 장검으로 내리쳤다.

《이건 윤산두령의 몫이다!》

《이건 봉산부두령의 몫이다!》

이날 관군과의 접전에서 김막동이네는 웅뎅이속에 있던 관군 50여명을 모조리 족쳐버렸다.

이 와중속에서 유독 한명만이 살아났다.

그는 별장 주효문이였다.

벌써 대세를 보고 안되겠다고 생각한 주효문은 날쌔게 별장관복을 벗어버리고 돌에 맞아 대가리가 깨여진 놈에게서 흘러나오는 피로 얼굴을 피칠갑을 하고 한쪽 구석의 주검밑에 숨어있었던것이다.

룡수산 형장터에서 윤산이네의 복수를 한 김막동일행은 밤을 타서 재령 장수산줄기의 하나인 봉산 동쪽 구보질산으로 들어갔다.

세면에 날카로운 벼랑이 있는 구보질산은 천험의 요새였다.

오직 산으로 오르는 동쪽면만 막으면 어느쪽으로도 관군이 달려들수 없었다.

구보질산에 들어간 김막동이네는 다음날 양지바른 둔덕에 땅을 파고 윤산과 봉산이를 안치했다.

그들과 영결하면서 김막동을 비롯한 봉기군들은 량반부자들과 끝까지 싸울것을 굳게 다짐하였다.

그날은 기유년(1489년) 11월 30일이였다.

한편 김막동이네가 해주감영가까이에까지 나타나 백주에 관군을 족치고 제 동료들의 시신까지 빼앗아갔다는 소식을 들은 리계동은 우리에 갇힌 사자마냥 펄펄 뛰였다.

리계동은 온 황해도땅의 군수들로부터 아전들에 이르기까지 관료들은 물론 군사들까지 모두 김막동이네 행처를 알아내여 기습하라는 령을 내렸다.

그리고 도사 리춘휘를 시켜 김막동이네를 도와주고있다는 서흥 가마소사람들을 비롯하여 그들과 련관이 있는자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한양으로 끌어가도록 하였다.

이에 대하여 《성종강정대왕실록》 234권 20년(1489년) 12월 정미일(24일)조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도사 리춘휘가 황해도에서 강도들을 압송해가지고왔다.

임금이 사상자가 많다는 소리를 듣고 우부승지 리종호를 시켜 나가보게 하였는데 그가 갔다와서 보고하기를 〈도적의 무리가 70명인데 죽은자가 15명, 죽게 된자가 2명, 나머지는 뭇매질에 발가락이 떨어지고 정갱이가 깨진자가 아주 많습니다. 〉고 하였다. …》

금제사 리계동과 함께 한양에서 내려온 도사 리춘휘와 서흥군수와 군졸들이 무고한 가마소마을사람들을 붙잡아다가 고문하여 한양으로 끌고갔다는 소식을 김막동이네가 전해들은것은 그 일이 벌어진지 닷새후였다.

봉산 구보질산으로 처소를 옮기고 보다 본격적인 싸움준비를 하고있던 김막동은 그 소식을 전해듣고 그 즉시로 봉기군을 출동시키려고 서둘렀다.

겨울에 접어들면서 또다시 천식증이 발작한 김의겸은 숨가쁘게 헐떡거리면서 김막동의 처소로 찾아왔다.

《총두령, 서흥관가를 치는건 좀 삼가해야 하겠네.》

《?…》

《모두 흥분해서 떠든다구 총두령까지 함께 흥분해서는 일을 그르치네.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법일세.》

《예? 의겸삼촌, 저놈들이 가마소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었다고 모두 한양으로 끌고가서 주리를 틀고있는데 우리가 가만히 있어야 한단말이요. 그렇겐 못해요.》

김의겸이 흥분해서 《이보라구!》 하고 소리를 치다가 또다시 잔기침을 연방 터쳐놓았다.

김막동이 그의 잔등을 한참 두들겨주어서야 겨우 기침을 멈추었다.

《날씨가 찬데다가 찬 곳에 있으니 기침이 더하시군요. 듣자니 잡혀갔던 능마가 매를 좀 맞고는 풀려나왔다는데 아무래도 그 집에 내려가서 치료를 받으셔야 하겠어요. 좋기는 신계마방집으로 가시면 제격이겠는데 …》

김의겸은 손사래를 내저으면서 헐떡거렸다.

《내 걱정은 말구 자네 일부터 돌보라구. 요즈음처럼 자네가 펄펄 뛰면서 돌아치다가는 일을 그르칠가봐 두려워. 가마소사람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나도 가슴이 터지네. 하지만 그곳으로 가겠다는것은 호박쓰고 돼지우리에 들어가는것이네. 그곳이 리계동 그놈이 파놓은 함정일수 있다는것을 생각해보았나?》

그 말에 김막동은 펄쩍 놀랐다.

《예? 함정이라구요?》

《그렇네. 우리가 해주 형장터에 갔을 때가 생각 안나나. 그때 재령군교 막봉이가 알려주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찌될번 했나.》

김막동은 속으로 이마를 쳤다.

김의겸의 말이 그른데가 하나도 없었던것이다.

그때 재령에서 김막봉을 만났기 망정이지 분한 마음만 앞세우면서 해주로 곧장 달려갔더라면 영낙없이 일을 쳤을것이다.

이렇게 놓고보면 리계동 그놈이 우리를 끌어내려고 꾀하는것이 분명하였다.

김막동은 저도모르게 김의겸의 손을 꽉 틀어잡았다.

《삼촌, 내가… 내가 너무 헤덤비는것 같수다.》

김의겸은 막동의 손을 쓸어만졌다.

《이 어려운 모퉁이에 내가 몹쓸놈의 병에 걸리다나니 그만…》

김막동은 진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 날 용서하시우다. 이제부터 삼촌의 말을 명심하고 잘 싸울터이니 너무 근심마시우다.》

《총두령!》

《삼촌!》

두 사나이는 서로 억세게 손을 맞잡았다.

이때 김막동의 처소로 박중금이 들어왔다.

《총두령님, 떠날 준비가 다 되였소이다.》

김막동이네와 손을 잡고 함께 싸우면서 윤산과 제일 가까이 지내던 박중금은 윤산을 잃은 다음부터는 분별을 잃을 정도로 헤덤볐다.

그래서 요즈음 김막동이도 박중금이 헤덤벼치는 바람에 그 장단에 적지 않게 춤을 추었던것이다.

김막동은 박중금을 이윽히 쳐다보면서 말이 없었다.

방안의 이상한 공기를 느낀 박중금이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 생긴게 아니요?》

김막동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거사는 중지해야 하겠네.》

《중지하다니요?》

《그게 놈들이 파놓은 함정일수 있단 말이야.》

박중금은 눈을 크게 떴다.

《함정이라구요?》

《그래, 전번에두 그놈들이 매복하고있지 않았나. 우리가 미리 렴탐을 했으니 망정이지. 이번에도 이놈들이 분명히 복병했을거네.》

김막동의 말에 박증금은 아무말이 없이 머리를 끄덕거렸다.

김의겸이 누구에게라없이 말을 했다.

《병법에도 복병한 적은 피하라고 했어. 그리고 적이 서두르지 않을 때는 제편의 힘을 믿고 버티고 앉아 우리가 달려들걸 기다리고있는것일세. 이런 때는 적의 예상치 않은 곳을 들이쳐서 그놈들의 허점을 밝혀내야 하네. 그다음 그곳을 찔러야 이길수 있네. 그러니 이제라도 서흥에는 사람을 보내여 미리 렴탐을 해가지고 쳐두 쳐야 하네.》

말을 겨우 마친 김의겸은 또다시 줄기침을 깇었다.

박중금이 달라붙어 김의겸의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김막동은 어떤 일이 있어도 김의겸의 병을 치료할 대책을 세워야 하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삼촌, 아무래도 안되겠수다. 다문 며칠이라도 능마한테 가서 안정을 해야 하겠어요.》

막동의 말에 박중금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능마한테요? 난 어쩐지 그 사람이 마음에 차지 않수다.》

《왜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어?》

《아니요. 모두가 잡혀가서 나오지 못했는데 그 사람 하나만 빠져나왔다는것이 도무지…》

김막동이 벌컥 어성을 높였다.

《그럼, 박두령은 그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는거요?》

《그렇수다. 어쩐지 …》

《그만하라구. 우리가 사지동거를 하면서 서로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싸우겠나. 롱으로라도 그런 소릴 하지 말라구. 능마도 우리와 같은 상놈인데 아무렴 환장을 했다구 량반부자의 편에 선단 말인가. 형편이 어려울 때일수록 서로 굳게 믿어야지 그렇지 않다간 아예 망하구 마네.》

김막동의 말을 들은 박중금은 머리가 숙어졌다.

지금까지 사지동거를 하면서 함께 싸워온 동료들에 대한 김막동의 믿음은 천년바위와도 같이 억세고 드팀이 없었던것이였다.

하긴 이렇게 남을 자기보다 더 믿는 우애심이 있어 먼저 간 동료들모두가 김막동을 보호하고 서로 굳게 다진 맹세를 저버리지 않은것이 아닌가.

그럴수록 박중금은 잠시나마 동료를 의심한것이 죄스럽고 부끄러웠다.

허나 그들은 처지가 같고 뜻을 같이한다고 말로만 해서가 아니라 마음속 깊은 곳까지 서로 통하고 동료를 위해서는 자기 목숨도 서슴없이 바치는 사람만이 진짜 동료이라는것을 미처 깨닫지 못하였다.

이날 그들은 앞으로의 일을 토론하였다.

추위속에서 천식증으로 헐떡이는 김의겸은 얼마동안 능마네 집으로 내려가 병치료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봉기군은 금제사 리계동이 매복을 조직했을수 있는 서흥으로가 아니라 그와 반대방향인 황주를 들이치기로 작정하였다.

봉산 구보질산에서 떠난 김막동일행은 산길을 톺아 황주로 향하였다.

섣달 그믐날을 얼마 앞둔 때이라 지척을 분간하기가 힘든 칠칠야밤이였다.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올무렵에야 황주고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에 이른 그들은 구체적인 토의를 하였다.

대오를 두패로 갈라 김막동은 관가가 있는 동헌을 들이치고 량곡창고를 들이쳐서 식량을 빼내기로 하였다.

박중금이 거느린 패는 군영을 들이치고 옥을 짓부시고 갇힌 사람들을 구원한 다음 창고에 달려가 량식을 함께 지고 빠지기로 하였다.

그들은 새벽어둠을 타고 황주동헌과 그옆에 떨어진 군영으로 말을 몰아갔다.

김막동일행이 동헌대문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난데없는 말발굽소리에 꺼덕꺼덕 졸고있던 문지기가 깨여나 앞으로 나서서 소리쳤다.

《어디서 오는 군사들이요?》

말우에 앉은 김막동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난 김막동이다. 너희 고을원을 만나러 왔다.》

그러자 문지기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지 헤실거렸다.

《헤헤… 김막동이가 아니라 김막동을 잡으러 나온 군사들이겠지. 내가 모를줄 알구 헤헤…》

말우에 앉은 김막동은 문지기가 노는 꼴이 우스워 껄껄 웃었다.

《하…하… 하긴 네놈이 내가 김막동이라면 어떻게 믿겠어?》

김막동의 뒤에 섰던 봉기군들속에서도 웃음이 터져나왔다.

문지기는 대문을 활짝 열어제끼면서 헤실거렸다.

《그야 그렇지. 김막동인지 김쇠똥인지 하는 그놈이 제아무리 난다긴다 하여두 여기가 어디라구 나타난단 말이야.》

그러거나말거나 김막동은 대문안으로 말을 몰아들어갔다.

뒤따르던 봉기군 하나가 문지기의 목덜미를 거머쥐였다.

《이놈아, 알긴 잘 안다. 똑똑히 보아라. 저 어른이 바루 너희들이 찾고있는 김막동이다.》

그 말에 문지기는 기겁해서 부들부들 떨었다.

그 봉기군의 된주먹에 얻어맞은 문지기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동헌대청앞에 이른 김막동은 말에서 내려 칼을 빼들고 뒤따라온 봉기군들에게 소리쳤다.

《동헌안을 모조리 뒤져서 살아있는 놈들을 용서치 말고 쳐라.》

김막동은 선참으로 고을원이 일을 보는 방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방안은 텅 비여있었다.

그런데 그와 붙어있는 옆방에서 인기척이 났다.

《누구냐, 이밤중에 사또방에 함부로 들어오는 놈이.》

김막동이 소리나는쪽으로 다가가 잇달린 문을 열어제꼈다.

고을관료들이 저녁마다 숙직번을 서는 방이였다.

속옷바람의 관리가 이불밖으로 목을 내놓고 누워있었다.

김막동은 말없이 성큼 뛰여들어 이불우를 짓밟으면서 그놈에게 다가갔다.

《이놈아, 넌 도대체 뭘해먹는 놈이냐?》

그놈은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 말했다.

《혀… 형방이 올시다.》

《형방이면 김막동이를 잡으러 나다녀야지 여기서 계집을 끼고 잠만 자고있어. 덜된놈.》

《저… 오늘이 숙직번이 되여서…》

김막동은 호되게 소리쳤다.

《이놈아, 내가 네놈들이 찾고있는 김막동이다. 이 칼을 받아라.》

김막동은 사정없이 그의 목을 내리쳤다.

동헌안의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와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막동이 주위를 예리하게 살피면서 지켜보고 서있는데 박중금이네가 달려간 군영쪽에서도 고함소리와 창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왔다.

얼마 안있어 봉기군들이 마당으로 나왔다.

김막동은 그들에게 물었다.

《더 살아남은 놈은 없느냐?》

《없소이다. -》

《그럼 관가에 불을 질러 우리가 왔다는것을 다 알게 하라!》

김막동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봉기군 몇이 관가부엌으로 달려가 불붙는 장작개비들을 들고나와 관청의 여기저기에 불을 달았다.

12월의 찬바람을 타고 관청의 여기저기에서 불길이 타래쳐오르기 시작하였다.

솟아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며 김막동은 속으로 웨쳤다.

(윤산아, 봉산아, 너희들도 이 불길을 보아라. 너희들의 원한을 푸는 이 불길을 말이다. )

관청을 활활 불태우며 솟아오르는 불길을 바라보는 김막동의 가슴에서는 저 불길로 량반부자들이 살판치는 이 세상을 기어이 불태워버리리라는 일념이 더 세차게 타올랐다.

이윽고 말에 오른 김막동은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군영으로 가자!》

그들은 말을 달려 동헌과 잇닿은 군영으로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박중금의 지휘하에 자고있던 관군을 족치고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박중금이 왼팔을 그러잡고 말우에 앉아있었다.

김막동이 그쪽으로 말을 몰아가면서 다급히 물었다.

《아니, 어딜 다쳤니?》

박중금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젠장, 저놈의 칼에 팔을 좀…》

박중금이 탄 말발굽아래에 관복을 입은 군교 한놈이 넘어져있었다.

김막동은 황급히 옷자락을 칼로 찢어 박중금의 팔을 싸매주었다.

황주관가와 군영을 기습하고 많은 식량까지 로획한 김막동일행은 말을 타고 길을 에돌아 봉산 구보질산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이 교묘하게 자기들의 로정을 숨기면서 구보질산으로 슴새여들어왔건만 그것을 지켜보는 《눈》들이 도처에 숨어있는줄을 생각하지 못하였다.

금제사 리계동이 내린 령과 김막동이네한테 내건 무명필이 방아전이나 능마와 같이 물욕에 빠진자들의 욕심에 심한 자극을 주었던것이다.

황주관가가 불에 타고 형방과 고을군사들이 무리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금제사 리계동은 심사가 좋지 않았다.

제딴에는 김막동과 한동아리인 가마소백성들을 미끼로 그들을 끌어내여 족치려고 작정하고 이번에는 틀림없을것이라고 속으로 장담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김막동이 가마소마을이 있는 서흥이 아니라 그와 반대방향인 황주를 들이쳤다는 소식이 날아왔다.

그 소식을 들은 리계동은 속으로 김막동 이놈이 보통놈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체찰사 리철견이 7년동안 그와 씨름질한것이 리해되기도 하였다.

그럴수록 김막동패거리를 잡아내는것이 막연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김막동봉기군 《소탕작전》을 직접 지휘하고있는 리계동은 한때 관찰사 김극검이 혼쌀났다는 재령관가 객관에 틀고앉아 이렇게 전전긍긍하고있었다.

그는 가물가물 타고있는 등잔불을 바라보며 묵묵히 앉아있었다.

이때 그의 방으로 종사관 박산이 들어왔다.

《금제사님, 그놈들의 근거지를 알아냈소이다.》

리계동은 눈을 번쩍 떴다.

《뭐라구? 그게 어드메냐?》

박산은 누가 들을세라 리계동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봉산 구보질산이라고 하오이다.》

리계동은 황급히 방구석에 밀어놓았던 이곳 지형을 그린 지도를 펼쳐놓았다.

박산이 비쳐주는 등잔불아래에서 봉산땅을 찾아본 리계동은 무릎을 쳤다.

《음, 여기서 하루길도 못되는 곳이로구나. 이밤으로 당장 출동해야 하겠다. 종사관, 당장 출동준비를 갖추라!》

《알겠소이다.》

박산은 다급히 밖으로 뛰여나갔다.

이날밤 금제사 리계동은 자기가 직접 갑옷에 투구를 쓰고 백여명의 관군과 함께 어둠을 타고 봉산 구보질산까지 갔다.

이날 봉산 구보질산에서의 싸움에 대하여 《성종강정대왕실록》 234권 20년(기유년) 12월 신묘일조에는 이렇게 기록되여있다.

《…금제사 리계동이 급보를 올리였다.

〈신은 도적 김일동(막동) 등이 봉산의 동쪽 구보질산에 있다는 말을 듣고 곧 봉산군수와 함께 길을 나누어가지고 추격하였더니 적들이 험준한 산꼭대기를 먼저 차지하였습니다.

관군이 방패를 안고 곧추 올라가는데 산꼭대기로부터 400~500보쯤 못미쳤을 때였습니다.

삐쭉 내민 바위있는 곳을 적들이 먼저 차지하고있다가 악 소리와 함께 돌을 굴리고 활을 쏘고 험한 지형에 의지하여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였습니다.

적들이 활과 삿갓을 버리고 골짜기로 내려가면서 달아났습니다.

관군이 추격하였으나 따라잡지 못하였습니다.

적들이 건너편 큰 산에 자리를 잡았을 때는 이미 어두워졌을 때였습니다.

신이 군사 주효문 등을 산기슭에 매복시키고 기다리게 했더니 효문 등은 적들을 만나자바람으로 전투를 벌림으로써 지휘를 어기였습니다. 적들은 효문의 말을 빼앗아가지고 달아났습니다. … 신이 도적을 추격하여 재령의 장수산까지 갔으나 적들이 어디로 갔는지 놓치고말았습니다. …〉》

이날 구보질산에서 관군을 족친 김막동봉기군은 근거지를 재령 장수산골짜기로 옮겨갔다.

장수산열두굽이 계곡마다에는 봉기군이 웅거할 기묘한 곳들이 적지 않았던것이다.

그들이 어찌도 감쪽같이 사라졌는지 금제사 리계동은 관군을 거느리고 재령, 봉산, 서흥일대의 산이란 산을 참빗훑듯 하였으나 근 한달동안 헛물만 켜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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