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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부터 며칠이 지난 기유년(1489년) 11월 병자일(27일) 한낮이 좀 기울무렵이였다.

해주감영으로는 수십명의 말을 탄 군사들이 물밀듯이 쓸어들어갔다.

그들은 성종의 임명을 받고 내려온 금제사 리계동과 그가 거느린 일행이였다.

관찰사가 일을 보는 선화당 대청안으로 들어간 리계동은 감영안의 관리들을 모두 모이게 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갑자기 조용하던 감영안에서는 복잡소동이 일어났다.

아전들과 사령들이 륙방관속들이 틀고 앉아있는 질청으로 내달렸고 여기저기에서 고함소리, 뛰여다니는 발걸음소리로 한동안 들볶았다.

이날따라 날씨는 찌뿌둥했다.

한바탕 눈이라도 내리려는듯 뿌연 구름이 낀 하늘에서는 해빛 한점 비치지 않았다.

관찰사가 있는 대청앞에 모인 감영의 관료들은 웬일인가 하여 서로 모여서서 수군거렸다.

얼마 안있어 대청안에서 관복을 입은 금제사 리계동과 체찰사 리철견, 그뒤로 어깨가 축 늘어진 관찰사 김극검이 나왔다.

대청마루우에 올라선 금제사 리계동이 마루아래에 두줄로 쭉 벌려 선 관료들에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다들 듣거라. 이제부터 임금의 어지를 전하겠다.

〈나라의 태평과 안전을 도모하려는것은 짐의 뜻이다. 그러나 황해도에서는 짐의 뜻을 잘 받들지 않고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도다. 나라에 충성하는것은 신하의 본분일진대 황해도관찰사 김극검, 재령군수 리지 등은 몇해전부터 잡아들이라는 도적 김일동(막동)일당을 그대로 내버려두어 백성들의 생활에 고통을 주고있다. 심지어 이놈들에게 국록을 타먹는 나라의 관료들까지 치욕을 당하고있으니 이것이 어찌 있을번 한 일인가. 때문에 짐은 자기 맡은 직분을 게을리하고 도적들에게 치욕을 당하여 나라망신을 시킨 도관찰사 김극검, 재령군수 리지를 파직시켜 죄를 따지도록 사헌부와 형조에 지시한다.

황해도감영의 관료들과 군사들, 백성들은 이제부터 도적 김일동무리를 소탕하는데 전력을 기울일것이다. 기유년 11월 올해일. 〉 이상이다. 이제부터 어명을 집행하라.》

리계동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한양에서 내려온 포졸들이 김극검에게 달려들어 관모와 관복을 벗기고 오라를 지웠다.

마루우에 서서 포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있던 리계동은 엄하게 소리쳤다.

《그놈을 당장 옥에 처넣어라! 그리구 이제 곧 재령에 가서 군수 리지놈을 묶어서 오늘 밤중으로 끌고오라!》

포졸들의 우두머리인 포도부장이 대답했다.

《알겠소이다. 당장 재령으로 출도하겠소이다.》

관찰사가 파직되여 오라줄에 묶이는것을 본 관리들은 모두 당장 제목이 떨어지는것 같아 부들부들 떨었다.

범앞에 선 개새끼마냥 바들바들 떨면서 서있는 관리들을 노려보던 리계동이 엄하게 말했다.

《듣거라. 이제 곧 신관 관찰사가 부임된다. 그때까지 도안의 치안은 내가 맡아보겠다. 이제부터 그대들은 나의 령을 따를것이다.》

관리들은 모두 허리를 굽신거렸다.

《알겠소이다.》

리계동은 계속 훈시했다.

《이제부터 온 도안의 관리, 아전, 군사, 역졸, 백성들까지 몽땅 동원시켜서 도적 김막동이를 붙잡아들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하겠다. 형방 왔느냐?》

최형방이 한걸음 나서며 대답했다.

《예잇, 왔소이다.》

《그새 김막동패당을 잡아들인게 있느냐?》

《있소이다. 김막동의 에미와 처 그리고 김막동패당의 우두머리 두놈을 잡았소이다.》

리계동의 얼굴이 금시 밝아졌다.

《그래, 그것을 왜 이제 말하느냐.》

곁에 섰던 체찰사 리철견이 끼여들었다.

《그건 이미 임금께 상주하였소이다.》

《음, 그렇단 말이지.》 하고 리계동은 뒤짐을 진채 대청마루우로 오락가락하였다.

그 순간 리계동의 귀전에는 어제 근정전에서 성종이 자기에게 말하던 소리가 울려왔다.

…도적을 잡는 모든 일거리들은 경이 직접 처리하라. 짐은 경을 믿는다. …

리계동은 주먹을 부르쥐였다.

《이렇게 하라. 김막동의 에미와 처는 래일 포도부장이 한양으로 올라갈 때 함께 압송하라. 그리구 다른 놈들은 본관이 직접 심문을 해보고 처리하겠다. 그리구 형방은 지금까지 김막동패거리를 잡는 계략을 꾸민것을 나에게 와서 직접 보고하라.》

최형방이 허리를 굽석거렸다.

《알겠소이다.》

리계동은 앞에 늘어선 관리들을 쳐다보면서 소리쳤다.

《모두 돌아가서 나의 령을 기다리라. 만일 나의 령을 어기는자는 그자리에서 즉결처형하겠다. 돌아들가라!》

리계동의 서리에 찬 목소리에 모두 얼어붙었는지 모여섰던 관리들은 감히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엉거주춤 서서 서로 힐끗힐끗 눈치만 보았다.

리계동이 리철견과 함께 방안으로 들어가서야 그들은 모두 흩어져갔다.

방안에 들어선 리계동은 그제야 털가죽옷을 벗고 호피방석우에 앉아 사방침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앉았다.

먼 로정에 쌓인 피로가 일시에 몰려왔다.

그 모양을 지켜보던 리철견이 입을 열었다.

《금제사는 좀 쉬시오이다. 난 좀 나가봐야겠소이다.》

리계동은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뜨직뜨직 물었다.

《그래 평안도로는 언제 넘어가시려우?》

《상감마마의 어명이 있었으니 래일이라도 당장 떠날가 하오이다.》

《그렇게 서두를거야 있겠소. 며칠 여기서 쉬고 떠나도 되겠는데…》

《고맙긴 하오만 떠나겠소이다.》

굳이 평안도로 떠나겠다는 리철견의 고집에는 그의 약삭바른 타산이 있었다.

지금껏 황해도땅에 와서 전탄수공사와 김막동패거리의 성화에 시살이 났던것이다.

그러던차에 리계동이 금제사로 내려왔으니 리철견은 턱에 붙은 혹을 뗀것과도 같은 심정이였다.

내심을 표현하지 않았으나 어딘가 모르게 좋아하는것이 헨둥하게 알리였다.

밖으로 나가는 리철견을 비스듬히 바라보는 리계동의 심사는 좋지 않았다.

꼭 남이 싸놓은 똥무지우에 주저앉은것 같았기때문이다.

황해도땅은 리계동에게 어쩐지 무슨 살이 붙은것 같이 느껴졌다.

도관찰사로 5년동안 있으면서도 정이라고는 꼬물만치도 붙지 않는 고장이였다.

그에게 있어서 황해도관찰사라는 5년동안의 관직생활은 옥에 갇혀있었던것과도 같이 느껴졌다.

젊어서부터 륙모방치를 들고 발개돌이처럼 바라다니기 좋아하던 그에게 있어서 그 무슨 조회요, 례식이요 하는것이 몸에 배지 않았던것이다.

그가 이렇게 생각을 굴리면서 호피방석우에서 뒹굴고있는데 문밖에서 급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금제사님, 최형방나리가 오셨소이다.》

리계동은 사방침에 몸을 기댄채 말했다.

《들여보내거라. -》

이윽고 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관복차림을 한 최형방이 들어와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금제사님, 문안 드리오.》

리계동은 사방침에 몸을 기댄채 말하였다.

《게 앉거라.》

최형방은 조심스레 두무릎을 꿇고 앉았다.

리계동은 가느스름하게 눈을 뜨고 최형방을 살폈다.

강굴강굴한 털오리들이 한일자로 가로 붙은 눈섭, 그밑에 쪽가래 같이 째여진 눈, 날이 번뜻하게 선 코, 참외씨같이 작은 입, 앙바틈한 자라목, 모든것이 배배 꼬이고 째여진 최형방의 모상은 상판만 보아도 앙칼지고 야심이 만만치 않은자라는것이 대뜸 알렸다.

이런 놈이 일을 쳐도 보통치지 않을 놈이라고 생각한 리계동은 불쑥 이놈을 앞세우면 이번 일이 순조롭게 될수 있겠구나 하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자기와 배심도 맞을것 같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계동은 자리를 고쳐앉으면서 물었다.

《넌 형방이 되기 전에 무얼 했느냐?》

최형방은 앙바틈한 목을 움츠리면서 말했다.

《수안고을에서 형리노릇을 하다가 김막동 그놈을 잡는데 나왔다가 이렇게…》

《그러니 김막동 그놈때문에 네가 벼락출세를 한셈이로군. 그건 그렇다치구 그래, 김막동인지 한 그놈을 잡으려고 지금까지 어떻게 했냐?》

리계동의 물음에 최형방은 누가 들을세라 목소리를 낮추어 수군거렸다.

최형방은 방아전과 능마를 렴탐군으로 박아넣어 김막동의 어머니와 안해를 붙잡은것과 또 그것을 미끼로 김막동패거리의 두령 두명을 사로잡은것과 앞으로 어찌어찌 하겠다는것까지 다 말하였다.

그 말을 듣는 리계동은 자기나름으로 생각을 굴리였다.

젊어서부터 사람들을 잡아족치는데 이골이 난 그로서는 벌써부터 근질거려 저도모르게 손바닥을 슬슬 비볐다.

최형방의 말을 다 들은 리계동은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하자. 내 아까도 말한것처럼 김막동의 에미와 처는 래일 한양으로 압송해라. 폭도 두놈은 내가 직접 심문을 해보고 처리하겠다. 능마라는 놈은 너의 말대루 처리해라. 그리구 이제부터는 나와 손잡고 어떤 일이 있어두 올해안으로 김막동 그놈을 잡아야 하겠다. 알겠냐?》

최형방은 굽신거렸다.

《알겠소이다. 금제사님의 말을 들으니 이제야 그놈들을 잡을것 같소이다. 지금까지야 어디…》

리계동은 불쑥 되물었다.

《지금까지 어쨌다는거냐?》

《지금까지야 김막동 그놈을 잡으라고 소리만 쳤지 실지 몸을 놀리지는 않았소이다. 그러다나니 도적에게 몰려 기생계집의 치마폭에 기여들어 숨기까지 하였소이다. 그래두 우리가 몇놈 잡아서야 겨우 체면을 유지하였지 그렇지 않구서야 어디… 이젠 금제사어른이 척 틀고 앉아서 직접 끌고나가시니 모든 일이 얼음우에 박밀듯 쭉쭉 풀려 나갈것이오이다.》

리계동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오금을 박았다.

《네가 남의 가려워하는데를 긁어줄줄 아는 놈이로구나. 그러나 이봐, 나한테는 가려운데가 없으니 긁어줄 필요가 없어. 그리구 난 기생년치마폭에 싸여서 숨을줄은 더욱 모르니 다시 내앞에서 그런 소리를 지껄였다가는 네 목을 자를줄 알아라. 어서 돌아가서 내 지시대로 하라.》

최형방은 뱀이 꼬리사리듯 방에서 사라졌다.

다음날이였다.

선화당앞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포도부장일행을 떠나보낸 리계동은 한동안 대청마루에 서있었다.

포도부장은 전 관찰사 김극검과 재령군수 리지, 김막동의 어머니인 한씨와 안해인 봉옥을 압송해가지고 떠났다.

한양에서 내려온 포졸들외에도 50여명의 감영의 군사들이 뒤따랐다.

옹근 하나의 싸움을 할만 한 인원이였다.

간혹 그 소식을 렴탐해가지고 김막동패거리가 달려들 우려가 있었기때문이다.

대청마루우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포도부장일행을 지켜보던 리계동은 그들의 모습이 눈부리에서 사라진 다음에야 마당에 쭈그리고 서있는 최형방에게 눈길을 돌렸다.

《최형방, 그 폭도놈들을 끌어내라.》

《알겠소이다.》

최형방은 곁에 선 옥졸들에게 소리쳤다.

《그놈들을 끌어오라.》

얼마 안있어 오라줄에 묶이운 윤산과 봉산이가 옥졸들에게 끌리워왔다.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였다. 얼굴은 온통 퍼렇게 멍이 들었고 피자욱이 얼룩진 옷자락은 째져 맨살이 벌겋게 드러나있었다.

그들을 노려보던 리계동이 엄하게 소리쳤다.

《머리를 들고 나를 보라.》

그들은 상투가 풀어져서 온 얼굴을 뒤덮을 머리를 들고 리계동을 바라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속에서도 눈빛만은 총총히 빛났다.

리계동이 윤산을 가리키며 물었다.

《넌 어디서 사는 누구냐?》

윤산은 조소어린 눈길로 리계동을 쳐다보았다.

《난 수안사람 김막동이다.》

리계동은 펄쩍 놀랐다.

《그게 정말이냐? 거짓말이지?》

윤산은 리계동을 비웃었다.

《흥, 거짓말이면 듣지 말구려.》

그 말에 리계동의 얼굴에서는 피줄이 툭툭 튀였다.

당장이라도 달려들어 한대 후려갈기면 씨원하련만 량반이라는 체면이 있어 그러지도 못하고 주먹을 부르쥐고 우들우들 떨기만 하였다.

가까스로 마음을 눅잦힌 리계동은 이번에는 봉산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넌 또 누구냐?》

봉산이 역시 리계동을 쏘아보면서 챙챙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봉산사람 김막동이다.》

봉산의 입에서도 같은 말이 터져나오자 리계동은 끝내 참지 못하고 꽥 소리쳤다.

《뭐야, 이 도적놈같으니…》

그 말에 봉산이가 맞받아 소리쳤다.

《우리가 도적이면 너희들은 강도이다. 백성들의 피땀을 빨아먹는 이 날강도야!》

《이놈, 아가리를 닥치지 못해!》 하고 소리치면서 리계동은 발을 탕 굴렀다.

그가 어찌도 마루바닥을 힘있게 굴렀는지 그 소리에 마당에 서있던 최형방이며 옥졸들이 깜짝 놀랐다.

성이 나서 씩씩거리던 리계동은 곁에 서있던 종사관 박산에게 소리쳤다.

《어서 내금위 리현손을 오라고 해라!》

종사관 박산이 급히 대청안으로 들어갔다.

리계동은 또다시 윤산이네를 노려보았다.

《이놈들, 그래 자기네가 김막동이라구… 모조리 목을 칠테다.》

윤산은 리계동을 얄궂게 쳐다보며 코웃음을 쳤다.

《흥, 그래 우리 목을 치겠다구? 내 목을 치기 전에 네 모가지건사나 잘해. 네 목도 얼마 가지 못할테니…》

《뭐야, 이놈이…》 하고 리계동이 고함을 질렀다.

리현손을 데리고 들어온 종사관 박산이 리현손에게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저놈들가운데 누가 진짜 김막동인가.》

리현손은 먼저 봉산에게 달려가 얼굴에 드리운 머리카락을 헤쳐보았다.

그러자 봉산은 리현손의 얼굴에 침을 퉤 뱉았다.

《퉤, 더러운 놈, 비켜라! 내가 김막동이다!》

뜻밖에 침벼락을 받은 리현손은 봉산의 멱살을 거머쥐였다. 옥졸들도 봉산에게 달라붙어 마구 때렸다.

그래도 봉산이는 악이 나서 소리쳤다.

《이놈들아, 내가 막동이다. 막동이야. -》

리현손은 다시 윤산에게 다가가서 이번에도 침벼락을 맞을가봐 두려웠던지 곁에 선 군졸들의 창을 빼앗아 그 자루로 윤산의 얼굴을 헤집었다.

윤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놈아, 그래 내가 김막동이 아니란 말이냐?》

리현손은 왈칵 성을 내였다.

《뭐야? 이 도적놈같으니.》

윤산은 오히려 껄껄 웃었다.

《여보시오 량반님, 혹시 눈에 콩까풀을 씌운게 아니요. 내가 김막동이가 아니면 누가 김막동이요. 혹시 량반어른이 김막동이 아니시우? 하…하…》

리현손은 약이 올라 잡았던 창을 들어 윤산을 내리쳤다.

순간 윤산이 몸을 한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리현손이 내려친 창이 땅바닥을 힘껏 때리며 자루가 부러지면서 그만 땅바닥에 넘어졌다.

그 꼴을 바라보면서 윤산은 더 크게 웃었다.

《하…하…하…》

리계동은 리현손이 놀아대는 꼴이 민망스러워 거기에서 눈길을 떼고 최형방을 보면서 소리쳤다.

《형방, 저놈들을 당장 옥에 처넣어라!》

《알겠소이다.》

최형방은 옥졸들에게 어서 끌고가라고 손짓했다.

윤산은 옥졸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소리쳤다.

《이놈들아, 내가 김막동이니 그렇게 알구 있어라!》

그들이 끌려가자 최형방이 리계동에게 다가서서 말했다.

《금제사님, 소신이 저놈들과 내통한 능마란 놈을 통해 알아본데 의하면 이제 웃던 그놈은 수안사람 윤산이란자이고 다른 한놈은 봉산사람 리실이란 놈이오이다.》

《그래?! 그런데 왜 자기들이 김막동이라고 하는거냐?》

《제놈들의 두령을 비호하느라고 하는것이오이다.》

《괘씸한 놈들, 저놈들을 오늘 백성들이 몽땅 모인앞에서 당장 목을 쳐라. 그래서 대역부도죄가 엄하다는것을 알리구 또 그런 놈들을 도와주는 놈들도 용서치 않는다는것을 보여주게 해야 하겠다. 당장 집행해라.》

최형리는 눈이 올롱해졌다.

《알겠소이다. 그런데 참형이야 나라의 승인이 없이 어떻게…》

《먼저 목을 베고 후에 보고하라는것은 상감마마께서 나에게 내린 특령이다. 그러니 잔말 말구 당장 집행하라.》

리계동의 그 말에 최형방은 깜짝 놀랐다.

《알겠소이다. 당장 하…하겠소이다.》

리계동과 갈라져 자기 처소로 돌아가는 최형방은 속이 한줌만 해졌다.

그것도 모르고 그에게 불쑥 역빠르게 말을 했으니 나를 어떻게 보겠는가 하는 생각이 명치끝에 걸려 알찌근해졌다.

이날 오후였다.

해주감영에서 북쪽으로 얼마 떨어진 룡수산밑으로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따라 날씨는 서있는 사람의 코를 베여갈 정도로 맵짰다.

그 생김새가 마치도 룡대가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룡수산이라고 부르는 이 산속에 감영의 군사들이 군사조련을 하는 련병장이 있었다.

넓은 공지에 각양각색의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있었다.

공지 한가운데 흙으로 쌓은 단이 놓여있는데 그것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서 웅성거리고있었다.

얼마 안있어 뿔나팔소리와 둥둥 북소리가 감영이 있는쪽에서 들려오더니 기치창검을 번뜩이며 걸어오는 군사들의 행렬이 보였다.

행렬가운데는 머리가 흩어져내려 온 얼굴이 가리워진 두명의 장정이 맨발바람으로 천천히 걸어오고있었다.

피자욱이 얼룩덜룩한 꿰여진 옷자락이 바람결에 흩날렸다. 그때마다 드러나보이는 새빨간 살은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을 아프게 하였다.

서로 손을 굳게 잡고 걸어오는 그들의 얼굴은 태연하였다.

그들은 다름아닌 윤산과 봉산이였다.

그뒤로 칼을 빼여든 네명의 하수인이 따라서고 또 그뒤로 관복을 입은 최형방과 형리들이 위엄있게 따라섰다.

술렁거리던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다가오는 행렬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일행은 넓은 공지 한가운데 있는 단앞에 이르렀다.

얼굴을 알아볼수 없게 괴상망측하게 화장을 한 네명의 하수인들이 두명씩 윤산과 봉산의 량겨드랑이를 끼고 단우에 올라가 꿇어앉혔다.

단을 중심으로 창을 든 군사들이 벌려서고 뿔나팔과 북을 멘 열명의 취타수들이 그앞에 벌려섰다.

조금 있더니 감영쪽에서 말발굽소리를 요란히 내면서 갑옷차림을 한 네명이 달려왔다.

말이 발굽을 칠 때마다 갑옷에 다닥다닥 붙은 철닉들이 왈랑절랑 소리를 내였다.

그들은 금제사 리계동과 종사관 박산, 내금위 금군령 리현손, 도사 리춘휘였다.

곧바로 단앞에 이른 리계동은 자기를 기다리며 서있는 최형방에게 시작하라는 뜻으로 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최형방은 단우에 올라서서 모여선 백성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에-조용들 하라. 이제부터 황해도의 도적인 김막동패거리의 두목 수안사람 윤산과 봉산사람 리실에 대한 사형집행을 하겠다. 이놈들로 말하면 지난 7년간 온 황해도땅을 메주밟듯 하면서 량반관료들은 물론 백성들까지 잡아죽이고 수많은 물건들을 강탈한 천하에 없는 강도들이다. 그러므로 〈경국대전〉에 밝혀있는 형벌조항에 따라 이 도적들에게 참형을 가할것을 결정한다. 형집행은 즉석에서 집행할것이다.》

최형방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모여선 사람들은 술렁거리였다.

최형방은 목청을 돋구어 소리쳤다.

《에, 이번엔 황해도 도적 김막동을 잡으라는 상감마마의 특명을 받고 도에 내려오신 금제사어른께서 하시는 훈시가 있겠다.》

리계동은 말우에 앉은채 모여선 백성들을 둘러보면서 소리쳤다.

《듣거라. 본관은 황해도 도적괴수 김막동을 잡아들이라는 상감마마의 특명을 받고 여기로 왔다. 이제부터 김막동패거리를 잡아들이는데 적극 협력하는자는 그 공로여하에 따라 무명 100필부터 150필까지 상을 주겠으니 여기에 남녀로소 관계없이 적극 떨쳐나서야 하겠다. 반대로 도적괴수 김막동을 비롯한 그 패거리들을 도와주는자들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오늘 여기에 잡힌자들처럼 목을 벨것이다. 이 모든것은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고 백성들을 어여삐 여기시는 임금님의 높은 뜻이니 모두 그리 알고 처신들을 바로하라!》

리계동의 말이 끝나자 최형방은 군사들쪽에 대고 소리쳤다.

《형을 집행하라!》

이윽고 뿔나팔을 쥔 군사들이 나팔을 불었다.

《붕-부응-》

나팔소리에 이어 북소리가 울렸다.

《둥…둥…둥…》

그러자 손잡이에 방울이 달린 작두날같은 칼을 빼여든 두명의 하수인들이 무릎을 꿇고 앉은 윤산과 봉산의 곁에 다가서서 칼을 어깨우로 쳐들었다.

이제 북소리가 다시 한번 울리면 당장 내려칠 판이였다.

그때였다.

난데없이 산기슭에서 기둥같은 회오리바람이 땅우에 지저분하게 널려있는 나무잎과 검불가지들을 휘말아올리며 윤산이네가 있는쪽으로 불어왔다.

회오리바람은 삽시간에 온 사형장을 휩쓸었다.

그러자 모여선 사람들은 물론 군사들속에서도 혼잡탕이 일어났다.

한바탕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자 사형장에는 천만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단우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윤산과 봉산은 간데없고 오히려 그옆에서 칼을 들고 위엄을 떨치며 서있던 두명의 하수인이 칼에 맞아 쓰러져있었던것이다.

리계동을 비롯한 관리들도 모여선 백성들도 모두 눈을 비비며 어안이 벙벙하여 서있었다.

그때 단뒤에서 칼을 든 윤산과 봉산이 무섭게 달려나오면서 최형방과 말을 탄 리계동에게 달려들었다.

최형방에게 달려든 봉산은 칼을 쳐들어 힘껏 내리쳤다.

《이놈아, 받아라. -》

최형방이 기겁하여 몸을 피하는통에 칼끝이 그의 왼쪽팔소매를 찢어놓으면서 손을 긁어내렸다.

그 서슬에 봉산은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한편 리계동에게 달려든 윤산 역시 칼을 들어 말을 탄 그의 몸을 겨누고 내리쳤으나 말이 놀라 펄쩍 뛰는통에 칼이 빗맞아 말의 배허벅을 찔렀다.

그러자 말이 앞뒤발을 쳐들면서 요동을 쳤다.

그 서슬에 말을 타고있던 리계동이 땅바닥에 나떨어졌다.

그에게 달려든 윤산은 사정없이 리계동의 동가슴을 짓밟았다.

모여섰던 군사들이 달려들어 윤산과 봉산을 붙들었다.

윤산은 젖먹은 힘을 다하여 소리쳤다.

《이놈들아! 네놈들이 꼭 망하는 날이 있을게다. 이 원쑤를 갚아달라!》

윤산의 목소리는 룡수산정까지 쩌렁쩌렁 울려퍼져 산울림으로 메아리쳐갔다.

…원쑤를 갚아달라. …원쑤를 갚아달라. …

이리하여 김막동을 따라 량반부자가 없는 무원골과도 같은 세상을 만들려는 소박한 꿈을 안고 손에 칼을 잡고 황해도 방방곡곡을 주름잡아달리던 윤산과 봉산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당시 사람들은 그날 사형장에서 일어났던 신기한 돌개바람을 두고 윤산과 봉산이 불어온 바람이라고 하여 11월에 난데없이 불어오는 돌개바람을 보면 윤산과 봉산의 이름자에 다같이 산자가 붙었다 하여 《두산바람》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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