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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 장수산쪽으로 통하는 길로 웬 사람이 삿갓을 쓰고 걸어가고있었다.

오동통하고 작달막한 키에 뙤약볕을 피하려고 눌러쓴 삿갓은 어찌도 큰지 사람이 가는것이 아니라 커다란 삿갓이 굴러가는듯 하였다.

앞쪽에서 바라보이는 장수산의 령봉인 보적봉과 그와 키다툼을 하는 보장봉, 관음봉을 비롯한 뭇봉우리들은 8월의 찌는듯 한 무더위에 땀을 철철 흘리며 허덕거리면서 행길로 걸어오는 삿갓을 쓴 사람의 꼴을 보고는 어떤 돼먹지 못한 놈이 해괴한 차림으로 무엄하게도 《황해금강》으로 소문난 장수산골안에 함부로 들어서는가 하며 성이 난듯 묵묵히 지켜보고있었다.

삿갓을 쓴 사람은 이런것도 모르고 어슬렁어슬렁 장수산 열두굽이 초입구에 있는 객주집마당으로 들어섰다.

황소뿔도 녹아내린다는 삼복철이라 이 계절에 《황해금강》으로 명성이 높은 장수산 일만경치를 구경하러 오는 길손들은 극히 드물었다.

하여 길손들로 붐비던 객주집은 한적하였다.

삿갓을 쓴 사람은 마당에 들어섰다.

마침 마당에서는 객주집주인인 능마가 달구지바퀴를 수리하고있었다.

삿갓을 쓴 사람은 그앞에 다가갔다.

《저, 이 집에서 하루밤 묵어갈수 있겠는지요?》

능마는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말했다.

《어서 그러시우. 저 토방에 가서 땀이나 들이시우.》

《고맙소이다.》 하고 토방에 다가간 그는 커다란 삿갓을 벗어들고 활활 부채질을 하였다.

다 고친 달구지바퀴를 집 모퉁이에 굴려다 세워놓고 마당으로 나온 능마는 토방에 앉아있는 길손에게 다가서다가 흠칫 걸음을 멈추었다.

능마를 바라본 길손도 깜짝 놀라 입을 벌렸다.

《아니?…》

《엉?…》

능마가 먼저 반겼다.

《이게 뉘시와요. 방아전어른이 아니시우?》

방아전도 반겨 소리쳤다.

《아니? 소금장사를 하던 능마가 아닌가?》

《그렇수다. 내가 능마요.》

《이게 얼마만이야.》

두사람은 손을 맞잡고 반기였다.

사실 그들사이에는 인연이 깊었다.

방아전이 도감영의 호방에서 아전노릇을 할 때 조세와 공물로 받아들인 소금을 빼돌려 능마에게 넘겨주었다.

능마는 그것을 받아가지고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다른 물건과 바꾸어서는 방아전과 나누어먹군 하였다.

그러던 능마가 자기가 집을 떠난 사이에 온 가족이 바다풀을 잘못 먹고 멸살당하는 화를 입게 되였다.

졸지에 홀애비가 된 능마는 이미 하던 소금장사노릇을 줴던지고말았다.

이때부터 능마와 방아전사이의 련계가 끊어졌었다.

그러던 그들이 오늘 뜻밖에 장수산객주집에서 서로 만나게 되였던것이다.

능마가 방아전의 초라한 행색을 훑어보면서 의아해서 물었다.

《그런데 아전어른의 행색이 왜 이꼴이 되였소?》

방아전은 상투를 엮은 머리를 썩썩 긁었다.

《그렇게 됐네. 내 차차 말을 하지. 그런데 능마는 어떻게 여기로 왔어?》

능마는 빙긋 웃었다.

《이 집이 내 집이와요.》

《엉? 그럼 자네가 이 큰 객주집주인이란 말인가.》

《그렇게 되였수다.》

두사람은 오래동안 토방우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해가 진 저녁에는 능마네 집에서 기르던 통닭까지 삶아놓고 회포를 나누며 늦도록 술을 마셨다.

술좌석에서 방아전은 자기가 김막동봉기군때문에 하루아침에 아전자리에서 굴러떨어진 이야기며 그동안 도감영 최형방의 령을 받고 김막동패거리를 렴탐하러 다닌다는것까지 능마에게 다 뇌까렸다.

취중에 그는 품속에서 김막동패거리 한명당 무명 40필을 상으로 걸고 그 두목에게는 100필을 걸게 하라는 왕의 지시가 적힌 글쪽지까지 꺼내보였다.

오래간만에 융숭한 대접을 받은 방아전은 흥이 나서 술을 퍼 마시다가 그자리에 꼬꾸라졌다.

제 방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운 능마는 깊은 생각에 잠겨 뒤척거렸다.

그의 귀전에는 방금전 취중에 한 방아전의 목소리가 쟁쟁히 울려왔다.

…김막동패거리들을 잡기만 하면 한명당 무명 40필이라… 그러니 몇놈만 잡으면 벼락부자가 될수 있어, 히히… 그리고 김막동을 잡으면…

그의 눈앞에는 필필이 쌓아놓은 무명더미가 빙빙 돌아갔다.

그 무명필만 깔고앉으면 고을에서 첫째가는 부자가 될수 있다. 이건 하늘이 나에게 내리는 복이 아닐가?

능마는 점점 정신이 맑아졌다.

이때 집뒤에 있는 별채에서 올해 네살잡히는 김막동의 둘째아들 무산이가 잠에 취해 칭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산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능마는 가슴이 섬찍했다.

신계마방집에서 김막동을 처음 만났을 때 본 얼굴이 우렷이 떠올랐던것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능마는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내가 그들을 고발할 생각을 하다니, 그래선 안돼. )

능마는 몸을 뒤쳐 모로 누웠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는 또다시 방아전이 말하던 무명필들이 얼른거렸다.

그 무명필을 받아 물건으로 바꾸면 고래등같은 기와집은 물론 숱한 재산을 불구어놓을수 있다. 게다가 인물고운 첩과 노비들을 두고 일생을 호의호식할수 있지 않은가.

능마의 입은 저절로 벙글써 열리였다.

다음순간 그의 눈앞에는 며칠전 신계마방집에 갔다가 보았던 수안이의 처참한 몰골이 떠올랐다.

며칠전이였다.

그날 능마는 객주집에 오는 길손들을 칠 말린 산나물을 얻어오려고 쌀을 싣고 신계마방집으로 갔다.

오래간만에 자기의 은인인 김영봉을 만난 그는 마방집에서 이틀을 묵으면서 허드레일들을 도와주었다.

이틀째 되는 날 밤이였다.

난데없이 윤산이 창에 찔린 수안을 업고 나타났다.

부상당한 수안을 맞아들인 마방집은 떠들썩했다.

주인인 김영봉은 물론 그의 안해 박순과 수안의 처인 을녀도 모두 어쩔바를 몰랐다.

그때 능마가 수안의 병문안으로 그가 누운 방안에 들어가 상처를 보았다.

창에 찔려 헤집어진 상처자리는 보기에도 끔찍했다.

피를 어찌도 흘렸는지 수안의 얼굴은 백지장같았다.

김막동의 동생벌되는 사람의 누이가 된다는 박옥금이 그런 창상을 처치해본 일이 있다면서 두팔걷고 나서서 수안의 상처에 약을 발라주었다.

옆에서 그 광경을 묵묵히 지켜보던 윤산의 얼굴은 꺼칠한게 퍽 늙어보였다.

능마의 생각은 끝이 없었다.

저 김막동이네가 정말 자기들의 말대루 량반부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수 있을가. 아니, 그건 닭알로 바위치기야. 나라에 관군이 얼마나 많다구. 그걸 다 어떻게 없앨수 있단 말인가. 그러다가 모두 수안이처럼 창에 찔리우고말게야.

생각하면 할수록 김막동이네가 하는 일이 막연하기만 하였다.

그렇다면? 차라리…

여기까지 생각한 능마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밤 뜬눈으로 새운 능마는 새벽하늘이 훤해질무렵 손님방이 있는 앞채에 나가 쿨쿨 자고있는 방아전을 흔들어깨웠다.

그들은 누가 들을세라 귀속말로 한동안 쑥덕거렸다.

그로부터 얼마후 손님방문이 삐써 열리더니 삿갓을 눌러쓴 방아전이 나와 새벽안개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해가 소꼬리만큼 솟아올랐을무렵이였다.

장수산객주집대문밖으로 지게를 진 능마가 빠져나와 장수산성이 있는 고개너머 골짜기쪽으로 스적스적 걸어갔다.

다박솔이 우거진 나지막한 둔덕을 넘어 골짜기아래에 이른 능마는 류다르게 우뚝 서있는 느티나무아래에 가서 지게를 벗어놓고 땀을 들이였다.

그때 숲속에서 버스럭소리가 나더니 농민복차림을 한 두사람이 나타났다.

한놈은 방아전이였고 다른 한놈은 농민복차림을 한 도감영의 최형방이였다.

빈 절에 구렝이모이듯 느티나무아래에 모인 세놈은 머리를 맞대구 한동안 수군거렸다.

얼마 안있어 최형방이 품에서 종이쪽지를 꺼내서 능마에게 주었다.

《이건 무명필을 너에게 준다는 증서이다. 무명은 거사를 한 다음에 주겠다.》

능마는 떨리는 손으로 그것을 받아쥐였다.

《알겠소이다.》

최형방은 능마에게 오금을 박았다.

《넌 그년들을 절대로 놀래워선 안된다. 아무일이 없는듯이 시치미를 뻑 떼고있어라. 알겠는가.》

《알겠소이다.》

《좋다. 그럼 래일 다시 만나자.》

이윽고 세사람은 뱀새끼 꼬리사리듯 느티나무아래에서 사라졌다.

다음날 나절가웃이 될무렵이였다.

장수산객주집쪽으로 말을 탄 군사 수십명이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갔다.

맨앞에는 관복차림을 한 최형방이 달리고있었다.

이윽고 객주집앞에 이른 군사들은 다짜고짜로 대문을 부시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때 객주집 토방우에서는 김막동의 어머니인 한씨와 안해인 봉옥이 마주앉아 두부망질을 하고있었다.

말에서 내린 최형방은 자기들을 의아해서 쳐다보는 한씨와 봉옥이 앞으로 다가갔다.

《네가 김막동의 에미냐?》

한씨는 약간 놀라면서 대답을 피했다.

최형방이 또다시 꽥 소리쳤다.

《네가 김막동이 에민가 말이야!》

한씨는 모든것을 짐작한듯 걷어올린 저고리소매를 내리면서 나직이 대답했다.

《그렇수다.》

《넌 김막동의 녀편네냐?》

봉옥은 눈을 내리깐채 대답했다.

《그래요. 그런데 왜 그래요?》

《왜 그러느냐구? 그래 그걸 나한테 물어? 쌍것들.》

최형방은 따라온 군사들에게 소리쳤다.

《야, 이것들은 김막동의 에미와 처다. 당장 묶어라!》

군사들은 토방우에 올라가 한씨와 봉옥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한씨가 무섭게 소리쳤다.

《이게 무슨짓이냐. 왜 죄없는 사람들에게 달려드는거냐?》

그의 불호령소리에 달려들던 군사들이 주춤했다.

마당에서 최형방이 소리쳤다.

《뭘 꾸물거려, 그년들을 빨리 묶어라!》

군사들이 한씨에게 다가들었다.

그때 품에서 은장도를 꺼내든 봉옥이 한씨의 앞을 막아나서며 소리쳤다.

《어머니를 다치지 말아!》

서슬푸른 은장도를 본 군사들은 눈이 퀭해졌다.

앞에 섰던 군교 주효문이 장검을 빼여들고 봉옥의 앞에 다가섰다.

《야, 이것봐라. 그래 칼겨루기를 해보자는거야?》

군교 주효문은 도감영군사들속에서 칼을 제일 잘 쓰는자였다. 언젠가 전 관찰사 리계동과 칼겨루기를 한적이 있는자였다.

주효문은 장검을 들었다가 날래게 획 내리그었다.

그러자 봉옥은 《아-》 하고 신음소리를 내면서 손에서 은장도를 떨구었다.

주효문이 칼등으로 봉옥의 손을 내려쳤던것이다.

군사들은 한씨와 봉옥에게 왁 달라붙어 오라줄로 꽁꽁 묶어놓았다.

한씨는 꽁꽁 묶이운채 최형방을 쏘아보았다.

《넌 에미도 없느냐? 왜 죄없는 사람을 이렇게 묶는거냐?》

최형방은 얄궂은 미소를 지었다.

《흥, 죄가 없다구? 폭도두목을 낳아 온 나라에 소문내게 한게 죄가 아니란 말이야!》

《내 아들은 폭도가 아니다.》

《뭐라구, 이년이?》 하더니 최형방은 말채찍으로 한씨를 후려갈겼다.

한씨의 이마가 터져 피가 나왔다.

이것을 본 봉옥이가 피타게 소리쳤다.

《이놈아, 죄없는 늙은이는 왜 때리는거냐?》

봉옥에게 돌아선 최형방은 능글거렸다.

《네년은 막동이 색시라지. 막동이 그놈이 색시는 꽤 고운걸 끼고 놀았는걸.》

봉옥은 능글거리는 최형방의 낯짝에 침을 뱉았다.

《퉤, 더럽다. 이놈아!》

봉옥에게서 침벼락을 맞은 최형방은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 쌍년이? 죽어봐라!》

최형방은 채찍으로 봉옥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채찍에 얻어맞은 봉옥의 얼굴과 잔등에서는 피가 터져나왔다.

한동안 미친 놈처럼 날뛰던 최형방은 한씨와 봉옥을 말잔등에 태우고 바줄로 비끄러매라고 소리쳤다.

그리고는 집안에서 어물거리는 능마도 끌어내여 폭도들과 한짝이라고 하면서 채찍을 둬번 갈겨놓고 함께 묶어가라고 고아댔다.

최형방은 한씨와 봉옥이, 능마를 묶어 말에 비끄러매가지고 객주집을 나왔다.

객주집앞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그속에는 삿갓을 쓴 방아전도 끼여있었다.

말우에 앉은 최형방이 그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다들 듣거라. 이놈들은 폭도 김막동의 에미와 녀편네 그리구 그것들을 숨겨준 주인놈이다. 이제부터 김막동패와 내통하는 놈들은 모두 죽여버릴테다. 대신 그놈들의 행처를 알리는 사람에게는 무명 100필을 상으로 줄테다.》

모여선 사람들은 수군거릴뿐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최형방이 이렇게 내놓고 큰소리를 친데는 음흉한 모략이 숨어있었다.

그것은 김막동의 어머니와 처를 붙잡았다는 소식이 퍼지면 즉시 숨어있던 그들이 달려나올것인데 그때 그들을 모조리 잡자는것이였다.

그리고 능마를 함께 붙잡은것은 그를 더 잘 위장시켜 김막동패거리속에 깊숙이 박아놓자는것이였다.

최형방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재령관가로 뻐젓이 들어갔다.

재령관가에는 관찰사 김극검이 몇몇 군사를 거느리고 내려와있었다.

최형방이 관가에 들어서자 김극검은 오래간만에 껄껄 웃었다.

《역시 최형방의 솜씨가 괜찮아. 수고했다.》

김극검은 최형방을 데리고 재령군수 리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선 김극검은 앞으로 다가와 나푼절을 하는 초향에게 한마디했다.

《초향아, 어서 최형방에게 술을 쳐라. 오늘 최형방이 큰 공을 세웠단 말이다.》

초향은 최형방을 보며 생긋 웃었다.

《그렇사와요? 최형방님, 수고하셨사와요.》

《수고까지야 뭘.》

최형방은 관찰사령감이 총애하는 기생한테서 칭찬을 받는것이 멋적은듯 이렇게 한마디했다.

초향은 주안상을 들고들어와 최형방의 앞에 놓고 술잔에 술을 찰찰 넘치게 부어 내밀었다.

《최형방님, 어서 드시와요.》

최형방은 엉겁결에 술잔을 받아들고 김극검을 쳐다보았다.

김극검은 느슨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들라구. 최형방.》

《고맙소이다.》

최형방은 술잔을 단숨에 쭉 비웠다.

저가락에 편육 한쪼박을 집어들고있던 초향은 생글거렸다.

《형방님, 어서 입을 벌리시와요.》

최형방은 어쩔줄 몰라하는데 김극검이 권고했다.

《어서 안주를 씹으라구.》

최형방은 메돼지같은 입을 쩍 벌리고 초향이 넣어주는 안주를 받아 쩝쩝 씹었다.

배속끝에까지 술기운이 가닿자 여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들이 있는 방에서는 해가 기울어 땅거미가 기여들 때까지 웃음소리, 술잔찧는 소리가 계속 울려나왔다.

한편 동헌에서 한씨와 봉옥이, 능마가 잡혀오는것을 직접 목격한 군교 김막봉은 깜짝 놀랐다.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어서 빨리 이 소식을 막동형님에게 알려야 한다. )

이렇게 생각하며 모대기고있던 김막봉은 무작정 병방을 찾아갔다.

김막봉은 병방에게 신계에 있는 형님이 갑자기 앓는다는 련락이 왔는데 가보고 오겠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미전부터 앞으로를 생각해서 병방에게 마방집을 운영하는 김영봉이 쌀섬깨나 밀어넣어준터라 병방은 가타부타 하지 않고 즉석에서 승낙을 했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병방은 막봉에게 자기의 말을 타고 갔다오라고 선심까지 베풀었다.

병방의 말까지 빌려탄 김막봉은 자비령바위골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갔다.

막봉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은 김막동을 비롯한 두령들은 깜짝 놀랐다.

윤산과 봉산, 박중금은 윽윽거리면서 당장 재령관가를 들이치자고 떠들어댔다.

김막동과 김의겸은 말없이 서로 마주보았다.

성미가 급한 윤산과 봉산은 그들에게 마구 들이댔다.

《총두령님, 생각해볼거나 있나요? 내 이 봉산이를 데리구 가서 어머니와 형수를 빼내올테니 어서 령을 내리시우다.》

《어서 그러시우다. 때를 놓치면 안되오.》

말없이 앉아있던 김의겸이 입을 열었다.

《총두령, 이 사람들을 보내서 우선 구원하구 보는게 어떻겠나?》

김막동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난 어쩐지 그놈들이 놓은 덫에 걸리는것 같은게 께름해서 그러오이다. 그놈들이 어떻게 그걸 알아냈는가 하는것이요.》

윤산은 성급하게 한마디했다.

《그것두 어머니랑 만나봐야 알게 아니요. 어서 령을 내리라요.》

(윤산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들을 만나야 내막을 알수 있는건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끌어내려고 파놓은 함정이라면…)

김막동은 이렇게 생각하며 대답을 피했다.

봉산이가 떠들어댔다.

《여느때는 씨원씨원하던 총두령님이 오늘은 웬일이시오? 어서 령을 내리시우다. 정 안내리겠으면 내 혼자서라도 가겠어요.》

봉산은 벗어놓았던 옷을 입으면서 문앞으로 다가갔다.

김막동은 헤덤벼치는 봉산을 제지시켰다.

《봉산아, 좀 가만 있지 못하겠니? 그렇게 헤덤비다가는 다된 일도 그르쳐.》

지금껏 말이 없던 박중금이 한마디 했다.

《총두령님, 이렇게 하는게 어떠시우?》

《?…》

《막봉이를 먼저 보내서 관군의 내막을 미리 렴탐하게 하구 우린 기마대만 나가서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될것 같은데…》

그 말에 김막봉이 찬성했다.

《그게 좋겠어요. 내가 한발 먼저 가서 그놈들의 동태를 알아가지구 나올테니 형님들은 동구밖에서 기다리다가 행동을 하시라요.》

이마에 손을 얹고 묵묵히 듣고만있던 김막동은 드디여 결심을 내렸다.

《그렇게 하자. 막봉이는 먼저 떠나거라. 난 이 두령들과 함께 뒤따라 가겠다. 네 말대루 동구밖에서 만나자. 그다음행동에 대해서는 거기서 결정하자.》

이렇게 합의한 그들은 김막봉을 먼저 떠나보내고 얼마 안있어 기마대만 거느리고 바위골을 떠났다.

몸이 불편해서 그들을 따라서지 못하는 김의겸이 한동안 따라나오면서 바래주었다.

김막동일행은 자정이 좀 지나서 재령고을 동구밖에 가닿았다.

얼마 안있어 먼저 떠났던 김막봉이 그들에게 달려왔다.

김막봉은 막동을 보자 한숨을 푹 내쉬였다.

《형님, 이 일을 어쩌면 좋소.》

김막동은 다급히 물었다.

《무슨 일이 생겼냐?》

《글쎄 그놈들이 어머니랑 모두를 해주감영으로 끌고갔대요.》

《뭐라구? 언제?》

《날이 어두워서 인차 떠났다고 해요. 최형방이란 놈이 직접 거느리고 갔다 하오이다.》

《관찰사두 함께 갔대?》

《아니요. 그놈은 객관에서 오늘밤 자구 래일아침에 간대요.》

윤산이 끼여들었다.

《형님, 그놈들이 어두워서 떠났으면 얼마 가지 못했을것이우다. 내가 봉산이와 함께 뒤쫓아가겠수다.》

김막동은 막봉에게 물었다.

《그놈들이 얼마나 되나?》

《얼마 되지 않아요. 한 열명이나 되겠는지…》

봉산이가 무릎을 쳤다.

《그렇소? 그럼 됐구만. 나와 윤산형님이 가서 구해오겠수다.》

김막동은 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이렇게 하자. 나와 중금부두령은 객관을 들이쳐서 도관찰사놈을 도륙내겠다. 그러니 윤산두령과 봉산부두령은 그놈들을 뒤쫓아가라. 바위골에서 만나자.》

《알겠수다. 그럼 우린 떠나겠수다.》하고 윤산은 성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김막동은 그들을 불러세웠다.

《가만 여보게들, 너무 덤비지 말구 침착해야 된다. 그리구 형세가 불리하면 피해야 한다. 서뿔리 죽을 생각을 하지 말구, 알겠어?》

윤산과 봉산은 빙그레 웃었다.

《알겠수다. 막동형님, 마음을 놓으시라요.》

《막동형님, 너무 걱정마시우. 내가 어머니와 형수님을 꼭 모시고 오겠어요.》

《고맙다.》

그들은 말우에서 서로 허리를 굽혀 부둥켜안고 작별인사를 한 다음 헤여졌다.

김막동은 어둠을 타고 해주쪽으로 달려가는 윤산과 봉산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며 서있었다.

싸움길에 나선 그들에게 있어서 작별이란 야릇한것이였다. 이렇게 헤여졌다가 다시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기때문이였다.

그들을 바래주고 관찰사가 있다는 객관쪽으로 가는 김막동의 눈앞에는 어쩐지 방금 헤여진 윤산과 봉산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았다.

김막동은 다시한번 그들이 간쪽을 돌아다보았다.

함께 가는 박중금이 위로했다.

《총두령님, 마음을 놓으시라요. 그 형님들은 꼭 해낼거우다.》

김막동은 말없이 객관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관찰사가 묵어있다는 객관은 재령동헌에서 얼마간 떨어진 야산밑에 있었다.

그곳까지 길안내를 한 김막봉은 그들과 헤여져 군영으로 돌아갔다.

앞으로를 위해서 로출시켜서는 안되기때문이다.

…푹신한 이부자리에 누워 정신없이 자고있던 김극검은 옆에서 다급하게 찾는 초향의 목소리에 잠에서 깨여났다.

《무슨 일이냐?》

초향은 다급히 말했다.

《폭도들이 왔다 하오이다.》

그 말에 김극검은 눈이 뒤집혔다.

《뭐라구? 폭도들이?》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밖에서 고함소리가 울려왔다.

《그놈을 잡아 묶어라!》

그 소리를 들은 김극검은 사시나무 떨듯 두다리를 와들와들 떨면서 초향을 바라보았다.

《초…초향아, 이럴 땐 어쩌면 좋냐, 엉?》

초향의 눈은 반짝거렸다.

《우선 화를 면하고 보시와요.》

《엉? 어떻게…》

《날 따라 오시와요.》 하고 초향은 단속곳바람인 김극검의 손을 잡고 뒤문으로 나갔다.

집뒤채에 부엌칸이 있었다.

김극검의 손을 잡고 부엌에 들어선 초향은 아궁을 막아놓은 키를 들고 김극검더러 어서 아궁으로 들어가라고 하였다.

급해난 김극검은 부엌아궁에 머리부터 들이밀었다가 재채기를 하면서 머리를 뽑았다.

그러자 김극검의 얼굴은 온통 검댕이로 매닥질해놓은것처럼 되였다.

다급한 경황속에서도 김극검의 몰골을 본 초향은 웃음이 나왔다.

《아유-령감두, 머리부터 넣지 말구 다리부터 넣으시와요.》

김극검은 돌아서서 다리부터 아궁에 밀어넣었다.

김극검이 아궁안에 다 들어가자 초향은 키를 가져다 아궁을 막았다.

《꼼짝말고 가만히 계시와요. 저놈들이 가면 데리러 오겠사와요.》

《그…그래.》

초향은 얼른 부엌에서 나와 침방으로 들어가 누웠다.

그때에 문이 벌컥 열리면서 홰를 든 사내들이 달려들어왔다.

초향은 기겁해서 일어나 앉았다.

김막동이 그에게 물었다.

《관찰사령감은 어디 있어?》

초향은 말없이 뒤문쪽을 가리켰다.

그제야 뒤문이 열린것을 발견한 김막동은 뒤따라온 봉기군들에게 손짓했다.

네댓명의 봉기군들이 뒤문으로 달려나갔다.

김막동은 초향이를 쏘아보며 물었다.

《네가 숨겨놓은것 아니냐?》

그 말에 초향은 간이 콩알만 해졌다. 꼭 자기가 한 행동을 지켜보고 묻는것 같아서였다.

홰를 들고 곁에 섰던 박중금이 소리쳤다.

《이년아, 빨리 말하지 못해!》

그래도 초향은 바들바들 떨면서 말을 못했다.

《이년을 그저…》 하며 박중금이 발을 쳐들었다.

김막동이 박중금을 제지시켰다.

《중금아, 그만해라. 그까짓 계집년이나 짓밟아선 뭘하겠니?》

박중금이 쳐들었던 발을 내려놓자 초향은 한숨을 호- 하고 내쉬면서 불빛에 어린 김막동을 쳐다보았다.

숱진 눈섭, 어글어글한 두눈, 애기주먹만한 코와 두툼한 입술, 모든것이 큼직큼직한 김막동의 모색은 사내다왔다.

김막동은 자기를 빤히 쳐다보는 초향에게 물었다.

《넌 누구냐, 첩이냐 기생이냐?》

초향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대답했다.

《기생…이와요.》

《기생이면 너두 우리와 같은 상놈이구나. 상놈이야 상놈의 편을 들어야지 량반편에 들어? 정말 그놈이 어디에 숨었는지 모르냐?》

초향은 속을 바재였다.

폭도라고 해서 무섭게만 보아왔던 김막동이네는 정작 만나고보니 그들은 점잖은 사내들이였던것이다.

그때 뒤문쪽으로 나갔던 봉기군들이 다시 들어왔다.

《총두령님, 그놈이 어디로 내뺐는지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소이다. -》

김막동은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고나서 초향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내 오늘은 그놈을 찾지 못해 그냥 간다만 앞으로 꼭 만나게 될게다. 그놈을 만나거든 일러라. 우리 백성들도 사람이다. 그렇게 백성들을 못살게 굴다가는 꼭 천벌을 받는다고말이다. 그리구 너두 한갖 비천한 기생인데 이놈의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똑바로 보구 살아라. 우린 량반놈들이 말하는 〈폭도〉도 아니고 〈도적〉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빼앗긴걸 모두 찾자는 사람들이야.》

김막동이 나가자 뒤따라 홰를 켜든 박중금과 봉기군들이 우줄우줄 따라나갔다.

그들이 나가자 초향은 한숨을 호-하고 내쉬며 잠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이 나간쪽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의 눈앞에는 방금전에 보았던 김막동의 모습이 삼삼히 떠올랐다.

김극검을 비롯한 관리들이 천하에 몹쓸놈이라고 하던 김막동이다. 그런데 정작 만나보니 김막동이야말로 의젓하고 호호탕탕하고 뜻이 있는 사내대장부였다.

순간 초향의 머리속에는 방금 김막동이 말한것처럼 김극검이 꼭 천벌을 받을것만 같은 생각이 불쑥 들었다.

그때 뒤문쪽에서 초향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초…초향아-》

돌아다보니 아궁속에 숨어있던 김극검이였다.

얼굴이며 옷에 온통 검댕이칠을 한 그의 몰골은 꼭 물독에 빠졌다가 나온 쥐새끼 한가지였다.

어쩐지 초향에게는 김극검이 가련하게 보였다.

방금전에 만났던 김막동과는 대비조차 안되는 가련한 몰골이였다.

김막동은 억센 아지를 펼치고 우뚝 서있는 소나무라면 김극검은 이슬에 젖어 초췌하게 늘어진 풀잎사귀였다.

한편 재령 갈림길에서 김막동이네와 헤여진 윤산과 봉산을 비롯한 봉기군들은 해주쪽으로 향한 길을 따라 어둠을 뚫고 질풍같이 내달렸다.

그들이 천마산줄기가 뻗어내린 산골짜기에 난 소로길에 들어섰을 때였다.

저쯤앞에서 말을 타고가는 사람들의 뒤모습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것을 발견한 윤산이 말허벅을 걷어차며 나직이 소리쳤다.

《저놈들이다. 빨리-》

그의 말에 모두가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내달렸다.

골짜기의 좁은 협곡을 따라 그들이 거의다 따라갔을무렵이였다.

갑자기 량옆 산에서 와-하는 함성소리가 나더니 윤산이네 일행의 머리우에 집채같은 쇠그물이 내리덮였다.

너무도 갑자기 당한 일이라 윤산이네는 미처 방비할 사이도 없이 머리우에 내려덮친 쇠그물속에 빠져들어 오도가도 못하였다.

그들이 쇠그물을 헤치려고 허둥버둥하는데 수많은 관군들이 쓸어나와 덮쳐들었다.

어쩔새없이 관군에게 꽁꽁 묶이운 신세가 된 윤산은 울부짖었다.

《아-원통하구나. 놈들의 함정에 빠져들다니.》

꽁꽁 묶이운 그들의 앞에 나타난 최형방은 시물시물 웃으면서 이죽거렸다.

《이놈들, 이렇게 잡힐줄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 엉? 하…하…》

봉산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이놈아, 그만 너스레를 떨어라. 개같은 놈…》

최형방은 봉산을 쏘아보았다.

《이놈이? 아직도 속은 살아서… 얘들아! 저놈을 되우쳐라!》

《예-잇.》 하더니 포졸 두명이 봉산에게 달려들어 말채찍으로 후려갈겼다.

순식간에 봉산의 옷자락이 째여지고 그속에 뻘건 살이 드러났는데 채찍에 맞아터진 살속에서 흘러나오는 피가 희미한 달빛속에 번뜩이였다.

그것을 본 윤산은 꽁꽁 묶이운채로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봉산을 때리는 두 관군을 걷어찼다.

《이놈들아, 그만하지 못하겠어?》

윤산의 발길에 채운 관군은 길가에 너부러져 버둥거렸다.

윤산은 또다시 달려들어 버둥거리는 관군의 목을 마구 짓밟았다.

여러놈이 달려들어서야 성난 사자처럼 길길이 날뛰는 윤산을 겨우 제지시켰다.

이날 윤산이네는 관군에게 끌려 해주감영의 옥에 갇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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