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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산은 가물가물 타고있는 고콜불을 바라보며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지금 그는 수안고을에서 보내온 기별을 받고 부두령들인 익선과 수안을 기다리던 참이다.

몇해전 수안고을 룡담에서 군수이하 관리들을 족쳐버리고 쇠부리터 사람들을 여기 무원골에 감쪽같이 이주시켜놓았다.

그리고 자기는 봉기군을 거느리고 수안, 신계 등 산골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옮겨가면서 량반부자들을 족쳤다.

윤산은 수안땅에 들어설 때 고을관리들은 물론 마을마다 독버섯같이 틀고앉아있는 부자들을 모조리 쓸어버릴 작정을 하였다.

그의 이러한 타산은 부두령들인 익선과 수안의 찬동을 받았다.

이리하여 윤산은 자기의 고향인 노루골로부터 쇠부리골, 수리골, 아방골, 매골 등 온 수안땅을 주름잡으며 나다녔다.

그들은 주로 깊은 밤을 리용하여 부자집들을 습격하고 감쪽같이 사라지군 하여 관가에서 아무리 눈에 쌍심지를 켜고다녀도 도무지 종적을 알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 싸움도 결코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순조롭게 이루어진것은 아니였다.

몇년동안 산속에 숨어다니면서 활동하다나니 그것이 고달파서 달아나는축들도 더러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달아난자들의 밀고로 난데없이 기습을 당하여 봉기군을 잃기도 하였다.

게다가 새로 부임되여온 수안군수 김귀정이라는 놈은 보통 로회한 놈이 아니였다.

그는 한때 도감영에서 형리노릇을 하였다.

그때 감영안의 형리들가운데서 모략을 잘 꾸며서 《김갈량》이라고 불리웠다.

그러던 그가 언젠가 운마산에서 윤산이네한테 걸려들어 이마를 깨는통에 개코망신을 하였다.

그후에 아득바득 기여올라 수안군수자리에까지 올라앉은 김귀정은 윤산이네패를 요정낼 앙심을 품고 별의별 모략을 다 꾸미고있었다.

그런 놈이 어떻게 윤산이네가 무원골에 둥지틀고있는것을 렴탐하였는지 래일 아침 고을안의 군사들을 끌고와 기습하려고 한다는것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하고 윤산이 골똘히 생각하고있을 때 부두령들인 익선과 수안이가 방안으로 들어왔다.

《윤산두령, 무슨 일이 생겼나?》

방에 들어서는 익선의 물음이였다.

윤산은 그들을 둘러보면서 고을에서 날아온 소식을 이야기하였다.

《조금전에 수안고을에 있는 우리 사람들한테서 련락이 왔는데 군수라는 놈이 래일 군사들을 총출동시켜 이 무원골을 기습한다우.》

그 말에 익선과 수안은 펄쩍 놀랐다.

《아니, 그놈이 어떻게 여길 알아냈단 말이요?》

《우리 패에서 도망친 놈들이 말했을수 있어.》

윤산은 심중한 낯빛으로 말했다.

《내 그래서 앞으로의 일을 작정하자구 부두령들을 찾은거요.》

익선과 수안은 말이 없었다.

너무도 갑자기 부닥치는 일이라 당장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던것이다.

윤산이 먼저 자기가 생각한것을 말했다.

《내 생각엔 그놈들이 여기로 들어오기 전에 쳐야 한다고 보는데 부두령들의 생각엔 어떤지…》

익선이 반문했다.

《들어오기 전에 친단 말이요?》

《예, 그놈들이 고을에서 떠나 여기로 오자면 분명히 수리골 외통길로 빠져오겠는데 난 거기에 미리 매복했다가 먼저 치자는거요.》

잠자코있던 수안이 말했다.

《그게 그럴듯 하오이다. 그렇게 하면 이 무원골이 피해를 보지 않을수 있수다.》

익선은 걱정스레 말했다.

《그게 좋긴 한데 우리 인원이 작아서 꽤 견딜만 하겠나. 전에처럼 백명이라면 몰라두 지금은 그 절반도 못되지 않아.》

윤산은 머리를 썩썩 긁었다.

《그건 사실이요. 난 우리 인원이 적기때문에 미리 유리한 곳에 숨었다가 냅다 치자는것이요. 그렇지 않다간 승산이 없소. 그렇다구 우리를 죽여줍사 하구 목에 떨어지는 칼을 앉아서 받을수야 없지 않소.》

익선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건 두령의 말이 옳아. 그런데 대관절 그놈들이 몇이나 될가?》

《글쎄 그거야 어디 짐작할수 있어야지.》 하고 윤산은 덤덤히 말했다.

수안의 초롱같은 눈이 반짝거렸다.

《내 생각엔 아마 백명은 못될것이요. 한 륙칠십명쯤 될거라구 보는데…》

익선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건 어떻게 짐작한거야?》

《원래 고을군사는 50~100명정도인데 이 수안같이 산골고을에는 몽땅 합해야 80명정도일것이요. 그런데 관가경비요, 창고경비요 뭐요 하고 떼놓고나면 그쯤될것이라고 볼수 있지요.》

윤산이 무릎을 툭 쳤다.

《그쯤된다면야 힘들것두 없어. 지금 우리 인원을 가지구두 얼마든지 족칠수 있지.》

수안은 윤산의 말을 긍정했다.

《옳수다. 장수산에서 배우지 않았나요. 〈적의 력량이 많다 하여 겁을 먹을것이 아니라 적들을 골탕먹이기 위한 전술을 써야 한다. 적이 움직일 때에는 예상치 않았던 곳에 매복하여 기습을 벌려야 한다. 〉라구 말이요.》

익선은 어줍게 웃었다.

《난 아무래두 철이나 녹일 놈이지 머리 쓸 일은 못할 놈이야. 수안인 이렇게 배운걸 줄줄 외우면서 써먹는데 난 도무지 외울수 없으니 허…허…》

세사람은 가볍게 웃었다.

이날밤 그들은 이렇게 작정했다.

윤산과 수안은 밤중으로 수리골 외통길에 봉기군을 거느리고 나가 관군을 족친 다음 곧바로 자비령바위골에 있는 총두령패와 합세한다.

익선부두령은 무원골에 아녀자들이 대다수인것만큼 그들을 피신시키기 위한 준비를 해두었다가 련락이 있을 때 움직이도록 한다는것이였다.

그들이 토의를 마치고 문밖을 나서니 시간은 벌써 자정에 가까왔다. 하늘에는 흰 구름속에 싸인 달이 희붐히 빛을 뿌리고있었다.

윤산은 문밖에서 희미한 달빛속에 사라져가는 익선과 수안을 이윽토록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얼마후 윤산이 거느린 봉기군은 무원골아녀자들의 바래움을 받으면서 길을 떠났다.

무원골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등성이에 오른 윤산과 수안은 깊은 생각에 잠겨 골안을 내려다보았다.

달빛에 번뜩이며 흘러가는 시내와 그옆에 주런이 서있는 집들과 푸른 이삭 설레이는 밭…

보면 볼수록 잊지 못할 정회를 불러오는 고장이다.

문득 그들의 눈앞에는 여기에 처음으로 와서 김막동이랑 모두 모여 행복하게 살던 나날들이 우렷이 떠올랐다.

그때는 얼마나 살기 좋았던가.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놈들이 없는 세상에서 너나없이 모두가 주인이 되여 정을 나누고 기쁨을 나누며 고락을 함께 해온 그 시절…

정녕 잊지 못할 시절이였다.

그렇듯 따스하고 부드럽고 정다운 보금자리를 하루아침에 량반부자들에게 모조리 빼앗겼으니 이것을 어찌 참는단 말인가.

그들의 눈은 달빛을 받아 번뜩이였다.

그들이 수리골 외통길에 당도하였을 때에는 새벽별들이 졸고있을무렵이였다.

6월의 무더위속에 달려오다나니 봉기군은 온통 물주머니가 되다싶이 하였다.

윤산과 수안은 새벽어둠을 타고 외통길에 나서서 지형을 살폈다.

수안쪽에서 내려오는 외가닥길이 오불꼬불 뻗어오다가 여기에 와서는 자라모가지처럼 좁아졌다.

량쪽에 우뚝 서있는 산코숭이가 쑥 나와있었다.

매복하기에 그저 그만이였다.

산세를 두루 돌아보면서 그들은 구체적인 전술을 세웠다.

산 오른쪽에는 윤산이 봉기군을 데리고 매복하고 왼쪽에는 수안이 봉기군과 함께 매복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산속에 널려있는 바위돌을 굴려와 쌓아놓았다가 첫 타격을 바위돌로 하고 그다음 돌진하여 기습하기로 하였다.

이렇게 작정한 그들은 패를 절반으로 갈라 각기 량쪽산에 올라 싸움준비를 하였다.

봉기군들은 사기가 올라 통나무를 찍어다 고여놓고 그속에 바위돌들을 무져놓았다.

동녘하늘에서 해가 솟아오를무렵이 될 때에야 싸움준비를 끝낸 봉기군들은 모두 숲속에 숨어 쉬면서 고을에서 내려오는 관군을 기다렸다.

어느덧 동산에 해가 빠끔히 얼굴을 내밀었다.

새벽이슬을 함뿍 머금은 숲속의 나무잎과 풀잎들이 해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숲속의 온갖 새들도 사람들이 조용하던 숲에 난데없이 나타난것이 이상하다는듯 나무가지를 옮겨앉으며 열성스레 재잘거렸다.

해가 토끼꼬리만큼 솟아올랐을 때에도 고을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풀숲에 누워 앞을 살피고있던 윤산은 혹시나 해서 목을 빼들고 고을쪽으로 뻗어간 길쪽을 바라보았다.

길쪽에서는 아직까지 개미 한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은 윤산은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혹시 이놈들이 다른 길로 가지 않았을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앞쪽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관군이 나타났다는 신호였다.

윤산은 급히 일어나 몸을 숨기고 앞쪽을 바라보았다.

아닐세라 수안고을쪽에서 내려오는 길가로 창과 활, 칼로 무장한 관군이 쓸어내려오고있었다.

윤산이 나직이 소리쳤다.

《관군이 나타났다. 싸움준비를 하라!》

봉기군들은 벌떡벌떡 일어나서 싸움준비를 갖추고 행길로 내려오는 관군을 지켜보았다.

관군은 아무런 기미도 알아채지 못한채 그들이 매복하고있는 곳으로 점점 다가왔다.

맨앞에 말을 탄 두놈이 오고있는데 누런 갑옷에 투구까지 쓴것을 보아 모름지기 고을원과 병방이 틀림없었다.

윤산은 천천히 앞에 놓았던 활을 집어들고 어깨에 멘 동개에서 화살 한대를 뽑았다.

관군이 그들의 매복권에 다 들어서자 윤산은 시위에 화살을 걸어 맨앞에서 걸어오는 말을 겨누었다.

이제 그가 쏜 화살이 말의 엉치에 꽂히면 말이 놀라서 울부짖을것이다. 이것을 신호로 하여 량쪽에서 돌벼락을 들씌우게 되여있었다.

윤산은 활시위를 힘껏 당겼다놓았다.

핑-소리를 내며 날아간 화살은 맨앞에 걸어가는 말의 궁둥이에 들어박혔다.

그러자 말은 펄쩍 놀라 오흐흥 소리를 지르며 앞발굽을 쳐들었다.

그 바람에 말에 탔던 놈은 투구가 벗겨지며 땅바닥에 나딩굴었다.

이때 골짜기 량옆에서 텅텅 도끼소리가 나더니 통나무가 벗겨지면서 그안에 채웠던 돌들이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산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듯 쏟아지는 바위돌들은 관군의 머리우에 날아떨어졌다.

아무런 방비도 없이 걸어가던 관군들은 갑자기 쏟아지는 돌벼락에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맞아죽고 깔려죽었다.

조용하던 골짜기에서는 순식간에 비명소리가 일어났다.

수안의 말대로 칠십명가량되는 관군서렬은 순식간에 무너졌다.

관군들속에서 일대 혼란이 일어나서 비명을 지르고있을 때 윤산은 장검을 빼들고 소리쳤다.

《놈들을 쳐라!》

봉기군은 와-함성을 지르면서 골짜기아래로 내리달렸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관군들이 앞뒤로 내빼기 시작하였다.

첫 타격에 관군이 무리로 녹아나는것을 보고 기세가 충천한 봉기군은 달아나는 관군들을 붙들어 칼로 내리치고 창으로 찔렀다.

싸움판에 뛰여든 윤산은 앞에서 어물거리는 관군들을 족치면서 투구를 쓴 놈들을 찾았다.

말에서 떨어진 놈은 정신을 잃었는지 땅바닥에 너부러진채 버둥거리고있었다.

다른 한놈이 허둥거리는 말고삐를 거머쥐고 앞쪽으로 내빼려고 서두르고있었다.

이것을 본 윤산은 날래게 활을 겨누어 말을 쏘았다.

화살이 말의 배허벅에 들어박혔다. 그에 놀란 말은 발굽을 쳐들면서 허둥거렸다.

그쪽으로 달려간 윤산은 장검으로 덴겁하여 허둥거리는 말잔등에 매달려있는 놈의 어깨를 내려쳤다.

그때 윤산의 뒤에서 다급한 웨침소리가 울려왔다.

《두령님, 위험하오이다.》

윤산은 무엇엔가 걸채여 넘어졌다. 수안이 뒤에서 윤산을 덮쳤던것이다.

《아-》 하는 수안의 신음소리가 났다.

윤산은 다급히 수안을 안고 일어섰다.

수안의 잔등에 창이 박혀있었다.

어떤 놈이 윤산을 노리고 던진 창을 수안이 제몸을 날려 막았던것이다.

수안의 잔등에 꽂힌 창을 뽑아든 윤산은 사납게 소리쳤다.

《어느놈이, 어느놈이 던졌어!》

봉기군들이 갑옷을 입은 놈을 끌고왔다.

맨앞에서 말을 타고가다가 굴러떨어진 놈이였다.

《이놈이 부두령에게 창을 던진 놈이오이다. -》

《뭐라구?》 윤산은 두눈을 부릅떴다. 그리고는 장검을 높이 쳐들었다.

《이놈아-》

그때 수안이 소리쳤다.

《두령님, 잠간만…》

윤산은 팔을 잠간 멈추고 수안을 돌아다보았다.

수안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자 봉기군들이 부축해주었다.

윤산의 앞에까지 온 수안은 갑옷입은 놈을 향해 물었다.

《네가 원이냐?》

그놈은 말없이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성이 난 윤산은 장검끝을 그놈의 입에 가져다댔다.

《이놈아, 넌 어떤 놈이냐?》

그놈은 와뜰 놀라면서 중얼거렸다.

《난… 난 병방이요. 병방…제발 목숨만…》

윤산이 다시 물었다.

《그럼 저놈이 원이냐?》

윤산은 방금 자기가 칼로 내려친 놈을 턱으로 가리켰다.

《오…옳소이다.》

옆에 있던 봉기군이 다급히 소리쳤다.

《아니…부두령님…》

윤산이 그쪽으로 돌아다보았다.

수안이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윤산이 달려가 수안을 잡아흔들었다.

《부두령, 정신차리라. 부두령…》

수안은 대답이 없이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수안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윤산은 입술을 앙다물고 일어서서 소리쳤다.

《그놈을 당장 이리로 끌어오라!》

봉기군들이 갑옷을 입은 놈을 윤산의 앞으로 끌어왔다.

윤산의 얼굴에서는 푸들푸들 경련이 일어났다.

《이놈아, 네놈이 무슨 일을 쳤는지 알아! 에익!》

윤산은 장검으로 그놈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칼에 맞은 그놈은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면서 그자리에 꼬꾸라지고말았다.

이날 싸움에서 관군은 봉기군의 기습에 의하여 거의다 전멸되다싶이 하였다.

이 싸움이 후날 력사기록에 김막동봉기군의 《수안싸움》으로 전해졌다.

싸움을 끝낸 윤산은 봉기군을 거느리고 김막동이 있는 자비령쪽으로가 아니라 신계쪽으로 로정을 바꾸었다.

부상당한 수안을 그의 안해인 을녀가 있는 신계마방집에 데려다가 병구완을 시키자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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