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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감영에서 의금부에 올려보낸 급보의 내용은 좀 틀리긴해도 사실이였다.

량반관료들이 하는 보고놀음이라는건 죄다 저희들편에 유리하게 써넣어 하는것이였다.

그러니 실재한 사실은 세월의 흐름속에 묻혀버리는것이 일쑤였다.

…기유년(1489년) 4월 초하루날이였다.

자비령바위골에 웅거하고있는 김막동한테로 그동안 구월산쪽에 나가있던 박중금과 봉산이가 자기패를 거느리고 찾아왔다.

그동안 구월산일대를 주름잡으면서 량반관료들을 벌벌 떨게 하던 박중금이네는 전과도 있었지만 손실도 적지 않았다.

처음 장수산에서 떠날 때는 백여명이나 되던 대오가 돌아올 때는 절반이상을 잃고 겨우 40명이 되나마나하였다.

그가운데 대부분은 관군과의 싸움에서 죽고 일부는 산속에서 다니는 고통이 심하여 초지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갔기때문이다. 하여 박중금은 김막동패와 힘을 합칠 결심을 품고 찾아온것이였다.

그들의 상봉은 감격적이였다.

그동안 물론 서로 만나지 못한것은 아니였지만 입에 칼을 물고 사지판에서 날뜀을 하고있는 그들로서는 몸성히 만나는것만 하여도 더없는 기쁨이였다.

김막동은 박중금을 얼싸안고 한동안 놓아주지 않았다.

서로 볼과 이마를 맞대고 비벼대면서 상봉의 기쁨과 친혈육과도 같은 뜨거운 정을 나누었다.

박중금이 찾아오게 된 사연을 자초지종 듣고난 김막동은 그의 제의를 쾌히 받아들이였다.

《중금두령, 잘 왔어. 이제부터 우리 함께 손잡구 싸우자구.》

그동안 김막동이 직접 거느리는 패에서도 일정한 손실을 입었던것이다.

봉산과 박중금은 김막동과 김의겸, 박상배의 손을 잡고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갑자기 집안의 식솔이 늘어나자 걱정이 많아진 사람은 봉기군의 식량을 맡아본 박상배였다.

당장 불어난 봉기군들을 배불리 먹여줄 식량이 부족했기때문이였다.

얼마간 저축한것은 있었지만 그것만 가지고서는 며칠갈것 같지 못하였다.

다음날인 4월 2일이였다.

박상배는 초동과 함께 평민복차림을 하고 봉산쪽으로 떠났다.

서흥일대에서도 식량을 구입할수는 있으나 될수록 가까운 지역을 피하였다.

그것은 우선 자기들의 거처지가 관군들에게 로출되기 쉽기때문이였고 다음으로는 그동안 가마소백성들을 비롯한 이곳 백성들의 방조를 많이 받았었기때문이였다.

물론 그 방조라는것이 봉기군들에게 있어서는 받는것보다 주는것이 더 많았다.

봉기군이 어느 고을이나 량반관료들의 집을 들이치기만 하면 자기들에게 필요한 량만 가지고 모두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었던것이다.

박상배는 행길에 나서서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면서 함께 가는 초동을 놀려댔다.

봉기를 처음 일으키던 몇해전만 해도 솜털이 보시시한 애어린 소년이던 초동은 이제는 인물이 끼끗하고 키가 훤칠하게 자란 총각으로 성장했다.

《초동인 좋겠다.》

초동은 눈이 올롱해서 되물었다.

《부두령님, 뭐가 좋겠다는것이예요?》

《이렇게 인물이 훤한 총각을 숱한 처녀들이 넘겨다보겠으니 말이지.》

《보긴 누가 본다구 그래요?》

그때 그들의 앞쪽에서 반회장저고리를 차려입은 처녀가 시녀에게 짐을 들려가지고 마주오고있었다.

그것을 본 박상배는 초동에게 귀띔을 했다.

《초동이, 이제 저 마주오는 처녀를 잘 살펴보라구. 보아하니 어느 부자집 딸인것 같애. 저 처녀두 이제 초동이를 보면 오금이 저려서 못갈수 있어. 잘 보라구.》

《쳇, 부두령님두…》

어느덧 그들사이의 거리가 가까와졌다.

마주오던 처녀들은 한낮에 행길에서 사내들과 마주치는것이 쑥스러운듯 멀찌감치에서부터 머리를 숙이고 오고있었다.

그들과 거의 마주칠무렵이였다.

박상배는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였다.

그러자 마주오던 처녀들은 깜짝 놀라 머리를 들었다.

그 순간 반회장저고리를 입은 처녀와 초동이 얼핏 마주보았다.

초동을 마주본 처녀는 황홀한 눈길로 마주걸어오는 초동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오히려 초동이 편에서 쑥스러워 얼굴을 돌리고 그 처녀의 앞을 지나갔다.

그래도 처녀는 그자리에 선채로 초동의 뒤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박상배는 그 모습을 보고 초동을 툭 쳤다.

《초동이 돌아다보라구. 저 처녀가 자네를 보더니 오금저려하는걸.》

그 말에 초동은 뒤를 돌아다보았다.

그런데 정말 박상배의 말대로 처녀가 아마도 초동이의 미모에 홀딱 반했는지 이쪽을 바라보며 그자리에 서있었다.

초동은 되돌아서서 머리를 기웃거리며 걸었다.

《쳇, 난 알지도 못하는 처녀인데…》

박상배는 껄껄 웃었다.

《그게 뭔줄 알아? 그게 바루 처녀총각이 보는 선이라는게야.》

《선이란건 또 뭐나요?》

박상배는 제법 수염발을 내리쓰는척 하면서 너스레를 떨었다.

《에, 선이라는건 한자로 어여쁘다는 선자를 쓰는 말인데. 에, 처녀총각이 서로 만나 말하기에 앞서 누가 더 어여쁜가 하는것을 보는것이란 말일세.》

《쳇, 부두령님두 로총각인데 그걸 어떻게 아시나요.》

《이녀석아, 총각이니까 그것을 알지.》

《그래, 부두령님두 그 선이란걸 본적이 있나요?》

《있어두 많지.》

《예-에? 정말이나요?》

《그럼, 꿈에서 많이두 봤지. 하…》

《예-에? 아니…》 하며 초동은 자기를 놀리는 상배에게 달라붙어 겨드랑이를 잡았다.

상배는 《아야야.》 하며 달아나고 초동은 상배를 따라달렸다.

상배를 따라잡은 초동은 그를 닁큼 안아 새파란 싹이 뾰족뾰족 나오는 길옆 잔디밭에다 넘어뜨렸다.

둘은 서로 엉켜돌며 사람을 놀리겠느냐 아니 안그러마 하면서 한동안 딩굴다가 그우에 네활개를 펴고 누웠다.

봄하늘은 푸르청청하였다.

박상배는 저도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야, 하늘이 정말 맑구나. 우리 마을 가마소물같구나.》

초동이 맞장구쳤다.

《정말 그래요. 전날 막동총두령님을 따라 마을에 갔다가 가마소를 보니 물이 맑은게 꼭 저 하늘같이 맑더구만요. 그런데…》

초동은 갑자기 하던 말을 끊고 하늘만 바라보았다.

박상배는 의아해서 초동을 바라보았다.

초동의 시원하고 큰 눈에 눈물이 글썽하게 어려있었다.

박상배는 몸을 반쯤 일으키고 초동에게 물었다.

《아니, 초동아 너 우는게 아니야?》

그제야 초동은 팔소매로 눈물을 뻑 씻고 빙그레 웃었다.

《사실, 이제 부두령님이 가마소소리를 하길래 전날 막동총두령님과 거기에 갔다가 들은 부두령님의 어머니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막동총두령님이?》

《예, 막동총두령님은 부두령님의 부모님들이나 우리 부모들모두가 다 억울한 원한을 품고 땅에 묻혔다고 하면서 이제 량반부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구 잘살아보자고 하셨어요.》

박상배는 초동의 무릎을 철썩 쳤다.

《옳다. 그런 날이 이제 오겠지. 그땐 내 초동이한테 멋진 색시를 얻어주겠어.》

《부두령님은 장가를 안드시구요?》

《나? 나도 물론 장가를 들어야지. 그때 우리 마음씨 고운 색시들을 맞아들여서 아들딸 많이 낳구 부자놈들 부럽지 않게 살아보자꾸나.》

《야, 정말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겠나요. 그런데 부두령님, 그런 날이 오긴 올가요?》

초동의 물음에 박상배는 말문이 막혔다가 어정쩡하게 입을 열었다.

《그건 저… 우리가 자꾸자꾸 량반부자놈들을 죽이느라면 될수… 있지뭐.》

《그럼 또 다른 량반부자가 생기지 않나요?》

《또 생긴다구? 그건 저… 생겨나면 또 없애치우지뭐. 그러느라면 끝장이 날거야.》

《그럴가요?》

《그럼, 막동총두령님두 그랬어. 우리가 그놈들을 때려부시느라면 꼭 좋은 날이 온다고말이야.》

《그래요?》

박상배는 벌떡 일어나서 초동의 몽톡한 코를 꼭 눌러주면서 말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다더니 빨리 가자. 이러다간 길가에서 해를 넘기겠다.》

초동은 몸에 붙은 검불을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초동을 지켜보던 박상배가 물었다.

《초동아, 너 돌주머니를 어떻게 했니?》

초동은 급히 허리를 매만지다가 이마를 치면서 방금 누워있던 밭으로 달려가 풀어놓았던 돌주머니를 찾아들고 달려왔다.

박상배는 돌주머니를 초동의 허리에 매여주었다.

《우린 어딜 가두 이걸 잊어서는 안된다. 이건 우리의 무기야. 너 칼은 있니?》

초동은 싱긋 웃으면서 품속에 감춘 칼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봉산고을 입구에 거의 갔을 때였다.

고을어구에 있는 합각지붕을 한 집앞에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고있었다.

박상배와 초동은 웬일인가 하여 모여선 사람들을 헤집고들어가 보았다.

그런데 그안에서는 차마 눈을 뜨고 보지 못할 광경이 펼쳐졌다.

일산을 씌운 사인교가 한옆에서 나딩굴고 그옆에서는 네명의 노비들이 웃옷을 벗기운채 매를 맞고있었다.

몸이 다부지고 볼이 축 처진 주인놈이 채찍을 들고 쌍욕을 퍼부으면서 마구 때렸다.

《이 짐승같은 놈들아, 눈깔이 멀어서 이 시퍼런 대낮에 마님을 태운 가마를 엎어놓는단 말이냐? 이놈들, 죽어봐라.》

한옆에서는 비단치마저고리를 입은 녀편네가 락태한 고양이상이 돼서 양양거렸다.

《그놈들을 아예 때려죽이고말아요. 미친놈 같은것들…》

보아하니 허기진 노비들이 가마를 메고 가다가 휘청거려 가마에 탔던 녀편네를 놀래운것이 분명하였다.

주인이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노비들의 잔등에서는 뱀새끼혀바닥같은 시뻘건 줄이 쭉쭉 그어졌다.

어떤 곳에서는 피가 터져 랑자하게 흘러내렸다.

이것을 보는 박상배의 눈에서는 어지러운 환영이 떠올랐다.

꼭 몇해전 자기가 아버지와 함께 가마를 메고 가다가 억울하게 매를 맞던 그때의 광경이 펼쳐진것만 같았다.

박상배는 이를 악물며 눈을 꼭 감았다.

주먹을 움켜쥔 손은 와들와들 떨렸다.

초동이가 그러는 박상배의 손을 꽉 잡고 진정하라고 흔들었다.

사람의 심리란 참으로 묘하다.

곁에서 누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싶은 충동이 생기는것이요 반대로 하라고 하면 더 쭐나서 못하는것이 인간심리의 묘한 작용인것 같다.

사실 초동은 너무도 흥분한 박상배를 진정시키려고 그의 손을 꽉 잡았는데 박상배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붙는 불에 키질하는 격이 되였던것이다.

박상배는 무작정 초동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나가 채찍을 휘두르는 부자의 팔목을 거머쥐였다.

《여보시오, 이거야 너무하지 않소.》

팔목을 잡힌 부자는 씩씩거리면서 소리쳤다.

《이놈아, 넌 어떤 놈이기에 간참이냐?》

박상배는 눈을 부릅뜨고 부자를 쏘아보았다.

《이들도 사람인데 이렇게 때려서야 되겠소?》

부자는 상배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려고 안깐힘을 쓰면서 고아댔다.

《이놈들은 내 집 노비다. 노비는 사람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은 박상배의 두눈에서는 시퍼런 불줄기가 쏟아져나왔다.

《뭘?! 노비는 사람이 아니라구?!》

《그래, 아니다. 어서 이 손을 놔라!》

박상배는 부자의 팔목을 더 우악스레 틀어잡아비틀면서 소리쳤다.

《노비가 사람이 아니면 뭐란 말이냐. 이 짐승같은 놈아, 어디 죽어봐라!》

박상배는 부자놈의 팔을 삑 돌려놓았다.

그러자 부자의 어깨에서 우드득 뼈가 빠개지는 소리가 났다.

부자는 팔을 그러안고 나딩굴면서 나 죽는다고 고아댔다.

흥분할대로 흥분한 박상배는 부자가 떨구어놓은 채찍을 쳐들고 부자를 후려갈겼다.

《이놈아! 노비가 사람이 아니라구?》

박상배가 채찍을 휘두를 때마다 부자는 아우성을 쳤다. 채찍은 부자의 면상도 갈겨놓아 얼굴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였다.

리성을 잃은 박상배는 부자가 채찍에 맞다 못해 정신을 잃고 너부러졌는데도 사정없이 내려쳤다.

너무도 뜻밖에 일어난 일이라 모여섰던 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하여 아무말도 못하고 박상배만 쳐다보았다.

초동이 달려나가 박상배를 껴안고 막아서야 박상배는 채찍질을 그만두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줄곧 《노비가 사람이 아니란 말이야?》하는 말이 쏟아져나왔다.

충혈된 눈에서는 여전히 분노의 불길이 이글거리고있었다.

이때였다.

모여섰던 사람들속에서 누군가가 《군졸들이 온다!》 하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저저마다 박상배와 초동에게 어서 피하라고 소리쳤다.

그제야 리성을 되찾은 박상배는 속으로 이마를 쳤다.

(아뿔사, 내가 무슨 일을 저질렀담. )

박상배는 초동에게 소리쳤다.

《초동이, 어서 피하라. 내가 저놈들을 막겠어.》

초동은 막무가내였다.

《아니와요. 나두 함께 싸우겠어요.》

《안돼! 어서 피하라.》

초동은 대답을 하지도 않고 허리에 찼던 돌주머니를 풀어 손에 쥐고 고집스레 서있었다.

벌써 저 앞쪽에서 군졸들이 륙모방망이를 휘두르며 달려오는것이 눈에 띄였다.

박상배는 재빨리 초동의 손을 잡고 집옆에 있는 초가집뒤로 사라졌다.

그뒤쪽으로 자그마한 등성이가 뻗어있었다.

고함을 지르면서 달려온 군졸들은 초가집을 포위하고 그들에게 조여들었다.

얼핏 세여보니 열댓명쯤 되였다.

등을 서로 마주대고 선 상배와 초동은 자기들한테로 다가서는 군졸들을 쏘아보았다.

그놈들의 상판이 또렷이 보이게 되자 그들은 손에 잡고있던 돌멩이를 던졌다.

그러자 거의 동시에 량쪽에서 다가들던 군졸들이 《아이쿠.》하면서 골을 싸쥐고 넘어졌다.

군졸들은 약간 주춤거렸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들은 연방 돌을 날렸다.

순식간에 일여덟명의 군졸들이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그짬에 박상배와 초동은 등성이로 올리뛰였다.

군졸들이 돌에 맞아 아우성치고있을 때 군영에서 털벙거지를 쓴 군졸들이 수십명 또 쓸어나왔다.

군졸들은 와와 함성을 지르며 박상배네를 추격하였다.

하여 이름없는 봉산땅의 나지막한 둔덕에서는 수십명의 군졸들과 두명의 봉기군간의 싸움이 붙었다.

고을 병방, 형방까지 말을 타고 나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지휘하였다.

넓은 들판가운데 작은 섬과 같이 솟아있는 등성이는 박상배네의 피난처가 되지 못했다.

둔덕을 포위한 군졸들이 윽윽거리면서 그들에게로 조여들었다.

군졸들은 박상배와 초동이가 던지는 돌벼락에 골이 깨졌지만 악악거리면서 찰거마리같이 달라붙었다.

둔덕우에 선 박상배와 초동은 비장한 결심을 먹고 품속에서 칼을 꺼내들었다.

《이놈들아! 덤벼들테면 들어라! 모조리 죽여버릴테다!》

그러자 포위환을 좁히던 군졸들이 주춤거렸다.

뒤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병방이 소리쳤다.

《살을 날려라!》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방에서 그들을 향하여 화살이 날아들었다.

나무 한그루 없는 민둥산에 그들이 의지할 곳은 없었다.

그들에게 날아간 화살은 먼저 초동의 잔등을 꿰였다.

련이어 박상배의 가슴에도 날아가 박혔다.

그들이 화살에 맞고 비칠거리는데 군졸들이 왁 달려들어 덮쳐버렸다.

군졸들은 그들을 오라줄로 꽁꽁 묶어놓았다.

화살에 맞은 박상배의 가슴에도 초동이의 잔등에서도 붉은피가 줄줄 흘러내려 옷자락을 흥건히 적시였다.

그때 둔덕아래에서 방망이를 든 군교 한명이 올라오면서 소리쳤다.

《비켜라!》

모여섰던 군졸들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군교는 헐레벌떡 달려와서 박상배를 향해 몽둥이를 쳐들고 소리쳤다.

《이놈이 내 형님을 죽였다. 내 이놈을 죽여버릴테다!》

리성을 잃고 덤벼드는 군교는 방금전에 길가에서 박상배의 채찍에 맞아죽은 부자의 동생이였다.

군교는 몽둥이를 박상배의 머리를 겨누고 달려들어 힘껏 내리쳤다.

순간 박상배는 몸을 슬쩍 피했다.

온몸에 힘을 주어 방망이를 내리치던 군교는 방망이가 빗나가자 제풀에 앞으로 꼬꾸라졌다.

땅바닥에 넘어졌던 군교는 다시 벌떡 일어나 박상배에게 미친개처럼 달라붙었다.

온몸이 꽁꽁 묶인 박상배는 어쩔수없이 군교에게 멱살을 잡혔다.

《이놈아, 왜 우리 형님을 죽였어. 말해라!》

군교는 주먹으로 련속 박상배의 얼굴을 때렸다.

박상배는 이를 악물고 군교를 쏘아보다가 안깐힘을 쓰면서 군교의 사타구니를 힘껏 걷어찼다.

불의에 사타구니를 얻어맞은 군교는 비명을 지르며 벌렁 자빠졌다.

박상배는 울분에 차서 소리쳤다.

《왜 죽였는가구? 노비가 사람이 아니라고 멸시하기에 죽였다. 이놈아!》

박상배는 꽁꽁 묶이운 몸이지만 자빠진 군교에게 달라붙어 그의 배때기를 힘껏 짓밟았다.

《이놈아, 노비가 왜 사람이 아니란 말이냐? 노비도 사람이다. 사람이야!》

군졸들이 달려들어 박상배를 붙들어 꿇어앉혔다.

군교는 다시 일어나 박상배의 목을 두손으로 거머쥐고 내리눌렀다.

《이 쌍놈아, 죽어봐라!》

군교가 미친개같이 길길 뛰는 바람에 옆에 섰던 군졸들도 미처 말못하였다.

둔덕아래에서 형방이 소리쳤다.

《그놈을 죽이지 말라!》

그러나 군교는 막무가내였다.

군교에게 멱살을 잡힌 박상배의 얼굴은 새까맣게 질리였다.

곁에서 이 광경을 본 초동은 자기를 붙들고 서있는 군졸들을 밀어내고 군교에게 달려들어 엉뎅이를 걷어찼다.

《이 개같은 놈아-》

그 바람에 군교가 박상배의 목을 놓아주었다.

꺼멓게 질린 박상배는 두눈을 부릅뜬채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초동이가 목메여 소리쳤다.

《상배형님. 형님!》

그래도 상배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초동은 몸부림치며 소리쳤다.

《상배형님, 아-》

박상배는 말 한마디 못 남기고 절통하게도 군교의 손에 목이 눌리워 죽었다.

뒤따라 달려온 봉산형방이 말에서 뛰여내려 박상배에게 다가가 발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박상배는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성이 독같이 난 형방은 곁에서 씩씩거리는 군교의 뺨을 철썩 때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이놈아, 저걸 죽이면 어떻게 해. 망할놈 같으니.》

형방은 군졸들에게 소리쳤다.

《이놈들을 빨리 옥에 걷어넣어라!》

봉산관가에서 박상배네를 붙들었다는 소식이 황해도감영의 최형방의 귀에까지 들어오게 된것은 그날밤이였다.

그동안 그는 재령고을의 객관에 틀고앉아 김막동패거리를 잡아들이는 일을 총괄하고있었다.

최형방은 그자리에서 당장 봉산고을로 달려가려고 하다가 약간 주저하였다.

아무래도 밤길을 떠나는것이 미타했던것이다.

어느 산모통이에서 두억시니같은 김막동패거리가 자기 목을 겨누고있는듯 한 예감이 불쑥 들었다.

그러지 않아도 저녁밥을 먹는데 난데없이 까마귀떼가 날아와 궁상스레 울부짖던 생각까지 났다.

당장 떠나려고 관복을 입고 나섰던 최형방은 급보를 안고 달려온 봉산 형리에게 래일 아침에 갈테니 그놈들을 단단히 지키라고 이르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때마침 그날밤 재령 관청경비당번이였던 군교 김막봉이 이 소식을 알게 되였다.

김막봉은 한밤중에 몰래 빠져나와 이 소식을 가마소마을에 띄웠다.

가마소마을사람들은 김막동이네와 긴밀한 련계를 맺고있었던것이다.

자비령바위골에 있는 김막동이네가 이 소식을 듣게 된것은 동녘하늘이 희붐히 밝아올무렵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는 돌아오고 남았을 박상배네가 오지 않아 걱정을 하고있던 김막동은 그 소식을 전해듣고 펄쩍 뛰였다.

김막동은 그길로 김의겸의 처소로 달려갔다.

그가 문밖에 이르니 방안에서 쿨럭쿨럭하는 기침소리가 울려나왔다.

몇해동안 산에서 싸우다나니 올해 마흔을 넘긴 김의겸은 천식증에 걸린것이다.

그동안 좋다는 약을 모두 얻어다 먹였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재발하군 하였다.

김의겸은 아닌새벽에 불쑥 들어선 김막동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원래 촉기가 빠르고 영민한 그는 인차 직감했다.

《총두령, 상배네한테 일이 생긴게 아닌가?》

《그래요. 봉산관가에 잡혔다 하오이다.》

《음, 어쩐지 예감이 좋지 않다 했더니…》 하고나서 김의겸은 또다시 줄기침을 하였다.

김막동은 아래목에 놓인 단지에서 더운물을 한쪽박 떠주었다.

《아무래두 마을에 내려가 치료를 받으셔야 하겠어요.》

김의겸은 더운물을 한모금 마시고나서 말했다.

《이제 며칠 있으면 일없네. 그건 그렇구 총두령은 어떻게 할 결심이나?》

김막동은 자기가 생각한 박상배네 구출안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김의겸은 껄껄 웃었다.

《적을 기만하잔 말이지. 좋은 생각이네. 그러되 기마대만 데리구 가는것이 좋을것 같네.》

《알겠소이다. 그럼 다녀오겠소이다.》

김막동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김의겸이 따라나왔다.

《총두령, 매사에 주의해야 하네.》

《알겠소이다.》

김막동은 돌아서서 박중금과 봉산이가 있는 처소쪽으로 걸어갔다.

그곳으로 가면서 그는 김의겸에 대해 생각했다.

자기가 김의겸을 만난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막동에게 있어서 김의겸은 미더운 모사였고 형님이였으며 웅심깊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어떤 일이 부닥쳐도 그와 마주앉아 토론하면 막히는 일이 없었고 풀리지 않는 일이 없었던것이다.

동녘하늘이 훤히 밝아올무렵이였다.

봉산쪽에서 뻗은 행길로는 털벙거지에 관복차림을 한 열필의 말이 먼지를 일으키며 속보로 내달렸다.

아침밥을 짓던 아낙네들과 새벽잠이 없는 로인들은 문지방에 나서서 말타고 달리는 군사들을 심상하게 바라보고있었다.

황해도땅에서는 근간에 자주 있는 일이라 모두 범상하게 여기였다.

그들은 동녘하늘에서 해가 토끼꼬리만큼 솟아올랐을무렵에 봉산고을입구에 들어섰다.

길가는 사람에게 동헌이 어딘가고 물어본 일행은 곧장 동헌쪽으로 말을 달렸다.

앞에서 달려가 말에서 뛰여내린 봉산이가 굳게 닫겨있는 대문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자 안쪽에서 누군가 소리쳤다.

《누구야!》

봉산은 맞받아 소리쳤다.

《도감영에서 나온 형리다. 어서 문을 열어라!》

그제야 찌끄덩 소리가 나면서 대문이 열렸다.

그들은 말을 탄채로 동헌뜨락으로 달려들어갔다.

마침 대청마루에 관복차림을 한 관리가 서있었다.

김막동은 그에게 소리쳤다.

《넌 뭘하는 놈이냐?》

김막동의 서슬푸른 기상에 기가 눌리웠는지 관료는 쩔쩔 기였다.

《예… 이 고을 형방올시다.》

《너 이놈, 마침 잘 만났다. 어제 여기서 폭도들을 잡았다지?》

《예, 두놈을 잡…》

김막동은 그의 말허리를 끊으며 소리치다싶이 하였다.

《우린 그놈들을 압송해오라는 령을 받고 왔다. 어서 내놓아라. 시간이 없다.》

봉산형리는 그 말에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런데 저 감영에서…》

마당에 섰던 봉산이 무작정 마루에 달려올라가 형방을 잡아 뜨락으로 밀쳐버렸다.

《이놈아, 내놓으라면 내놓을것이지 무슨 잔말이 많아.》

형방이 기웃거리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이들보다 한발 먼저 재령관가에 있던 도감영의 최형방이 여기에 왔던것이다.

방금전에 방안에서 잡아온 놈들을 끌어내라는 최형방의 령을 받고 문을 나서는참인데 김막동이네가 들이닥친것이다.

동헌뜨락에서 왁작 떠드는 소리에 놀란 최형방은 문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깜짝 놀랐다.

지금껏 붙잡겠다고 몇년째 찾아 헤매던 김막동이네가 관복차림을 하고 뻐젓이 나타났던것이다.

최형방은 관청안을 둘러보았다.

마침 아래방에서 방안청소를 하느라고 어물거리는 사령 하나가 눈에 띄였다.

최형방은 그에게 다가가서 귀를 붙들고 다급히 말했다.

《얘야, 지금 저 뜰안에 온 놈들이 김막동패거리다. 빨리 뒤문으로 빠져나가서 병방에게 알려라. 고을군사를 총 출동시켜서 여기로 빨리 오라고말이다. 어서!》

그의 말을 들은 사령은 《알겠소이다.》 하고는 뒤문으로 바람같이 사라졌다.

말에서 내려선 김막동은 봉산형방에게 소리쳤다.

《어서 옥문을 열어라!》

봉산형방은 어슬렁어슬렁 옥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옥사쟁한테 말했다.

《어서 옥문을 열어라.》

《알겠소이다.》

옥사쟁이가 옥문을 열자 뒤에 섰던 봉산이와 봉기군 셋이 옥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들은 무작정 바닥에 쓰러진 박상배와 초동이를 그러안았다.

봉산은 박상배를 부여안고 소리쳐 불렀다.

《상배야-상배야-》

두눈을 부릅뜬 박상배의 몸은 싸늘했다.

다른 봉기군들이 초동을 부여안고 찾았다.

《초동아-초동아-》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초동이 역시 대답이 없었다.

한참 찾아서야 초동의 눈이 바르르 떨리였다.

봉기군들이 초동의 몸에 묶은 오라줄을 끊고 밖으로 안아내왔다.

초동을 본 김막동은 급히 다가가 부여안았다.

《초동아-내가 왔다. 초동아-》

초동은 가까스로 눈을 뜨고 김막동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간신히 말했다.

《총두령…》

초동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막동의 품에 안긴채 머리를 떨구었다.

김막동은 초동을 부여안고 소리쳤다.

《초동아, 초동아-눈을 떠라!》

독약을 묻힌 화살에 맞은 초동은 독기운이 온몸에 퍼져 더는 소생하지 못하였다.

김막동은 초동을 봉기군들에게 맡긴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제야 이들의 내막을 알아차린 봉산형방과 옥사쟁이가 황황히 뒤걸음질하며 내빼려고 하였다.

그것을 본 김막동의 눈에서는 불이 펄펄 일었다.

《이놈들아, 게 섰거라. -》

봉기군들이 달려가 그들을 붙들어서 끌고왔다.

김막동은 허리에서 장검을 뽑아들었다.

《이 천하에 더러운 원쑤놈들아-》

김막동의 칼이 해볕에 번뜩이자 봉산고을 형방의 모가지가 툴렁 떨어졌다.

김막동은 련이어 옥사쟁이의 목을 장검으로 내리쳤다.

《이건 초동이의 몫이다. -》

관청안에서 문짬으로 그 광경을 목격한 최형방은 당장 칼이 자기 목에 떨어지는것 같았다.

두다리가 매시시해서 방바닥에 주저앉았던 최형방은 황급히 뒤문쪽으로 벌렁벌렁 기여나가서 솔숲이 우거진 동헌 뒤산에 바라올라가 몸을 숨겼다.

초동을 가슴에 안고 말우에 오른 김막동은 봉산에게 소리쳤다.

《봉산아, 저 옥에 불을 질러라!》

봉산이와 봉기군들이 관청부엌에 달려가 불덩어리를 가지고나와 초가이영을 올린 지붕에 올려던졌다.

삽시간에 이영에서 불길이 솟구쳤다.

그때 대문을 지키고있던 박중금이 소리쳤다.

《총두령, 관군이 여기로 오고있소.》

김막동은 칼을 빼들고 소리쳤다.

《그놈들을 맞받아나가서 쳐라!》

봉기군들은 일제히 말에 올라 대문밖으로 달려나갔다.

김막동은 초동을 품에 안은채 칼을 휘두르면서 관군을 맞받아 앞에서 달리였다.

그뒤로 박상배를 품에 안은 박중금과 봉산이 그리고 봉기군들이 줄지어 내달렸다.

김막동은 마주오는 군사들속으로 말을 몰아 뛰여들어 장검을 휘둘렀다.

한적하던 봉산고을 장안은 순식간에 결전장으로 변하였다.

친혈육과도 같이 사랑하던 동료들을 잃은 봉기군은 천백배의 복수심을 안고 관군을 무찔렀다.

고함소리와 창과 칼이 맞부딪치는 소리로 온 고을장안이 떠나갈듯 하였다.

김막동을 비롯한 봉기군들은 성난 사자와도 같았다.

그들의 험악한 기세앞에 관군은 맥을 추지 못하였다.

고을장안 곳곳에 봉기군의 칼에 맞아 너부러진 시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있었다.

얼마 남지 않은 관군이 흩어져서 달아났다.

성이 난 봉기군들은 그들을 뒤쫓아 달려가 모조리 족쳐버렸다. 하여 이날 봉산고을의 군졸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한바탕 싸움을 치르고난 봉기군은 관청창고를 들부시고 주인을 잃고 돌아치는 관청의 말잔등에 식량가마니를 듬뿍 실었다.

그리고 나머지는 싸움구경을 나왔던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해가 하늘중천에 떠오를무렵에 그들은 자기들의 목적지인 자비령바위골 반대쪽으로 떠나갔다.

만약 경우를 생각하여 적들의 눈을 속이자는것이였다.

이것은 봉기군에서 세워놓은 활동준칙이였다.

지금껏 솔숲에 숨어서 이 광경을 지켜본 최형방은 김막동봉기군들이 사라진쪽을 눈여겨 살피고나서야 이발을 사려물고 자리를 떴다.

그다음날 몇개 고을의 수백명군사를 거느린 최형방은 봉기군이 사라진쪽으로 달려가 산과 골짜기를 참빗 훑듯하였으나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하였다.

이렇게 헛물을 켜고 재령관가에 돌아온 최형방은 한양에 보내는 급보를 작성하여 관찰사 김극검에게 보냈다.

그것이 또 관찰사의 손에서 가공되여 한양까지 올라가 리철견의 손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

대체로 봉건정부에 올라가는 보고라는것이 이렇게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작성되는것이 당시사회에서 있은 보편적인 현상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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