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무슨 일이나 상서롭지 못한 일은 언제나 예상밖에 일어나기가 일쑤이다.

그날따라 체찰사 리철견은 아침 일찌기 눈을 떴다.

창밖에서는 참새들이 나무가지우에 모여앉아 간밤에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는지 끝없이 재잘거렸다.

그는 기지개를 길게 펴고나서 비단이불을 젖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쩐지 이날아침따라 그의 마음은 즐거웠다.

옷을 입고 마당에 나온 그는 신선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안개가 감돌아 흐르는 련못가를 천천히 거닐었다.

오늘따라 련못가에 돋아나는 새순이며 한가로이 물속에서 헤염치는 물고기들이 그의 눈에는 정답게만 보였다.

리철견은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둥둥 뜨는것을 진정할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왜 이럴것인가 하고 생각하던 리철견은 빙그레 웃으면서 이마를 가볍게 때렸다.

(아하, 어제밤 꿈때문이였구나. )

지난밤에 그는 자기 일생에서 처음 보는 희한한 꿈을 꾸었던것이다.

…전탄수물길공사가 훌륭하게 완공되여 저수지의 물이 물길마다 가득차서 출렁이며 흘러내렸다.

물길을 따라 흘러내린 물은 《친경전》이라고 쓴 큰 패말이 박혀있는 논판으로 거침없이 쓸어들어갔다.

그때 하늘에서 금, 은으로 단장한 흰룡마가 나래를 돋히고 훨훨 날아내리더니 제방우에 서있는 리철견을 태우고 하늘높이 솟아올라 어디론가 날아갔다.

구름속을 뚫고 끝없이 날아가던 룡마는 기수를 낮추면서 땅우에 내려앉았다.

그곳은 다름아닌 전탄수밭이였다.

그런데 《친경전》패말이 박힌 논판에는 벼가 벌써 시누렇게 익어 황금물결을 일으키고있었다.

리철견은 너무도 신기하여 논으로 달려가 벼이삭을 움켜쥐였는데 벼알 한알이 복숭아열매만 하였다.

그는 너무도 기이하여 눈을 비비고 다시 보고 또 보았다.

그때 그의 등뒤에서 《하하-》 하고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다보니 아니 글쎄 금관을 쓴 임금이 껄껄 웃으면서 어서오라 두팔 벌리고 서있는것이였다.

리철견이 《상감마마-》 하고 부르며 임금에게 다가가자 임금은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윽고 임금은 금빛이 번쩍이는 함을 열더니 그속에서 임금이 쓴것과 꼭같은 금관을 꺼내여 리철견의 머리우에 씌워주었다.

그리고는 《오늘부터 너는 이 나라의 작은 왕이다. 저길 보아라.》라고 하면서 앞산을 가리켰다.

리철견이 임금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하늘로 날아갈듯이 합각지붕을 한 궁전이 서있는데 지붕에 씌운 청기와들이 해볕에 번쩍번쩍 빛나고있었다.

임금이 리철견의 잔등을 떠밀면서 어서 궁전에 가보라고 하였다.

다시 룡마를 타고 궁전안에 들어서니 울긋불긋 단청을 한 기둥이며 방마다에는 번쩍거리는 장식을 한 장농들이 가득 차있었다.

그가 궁전마당으로 나서니 문무백관들이 그앞에 줄지어 늘어섰는데 선녀같이 날씬한 녀자들이 달려와 그의 손을 잡고 걸어나갔다. …

여기까지 생각을 하던 리철견의 입은 저도모르게 벙글써하게 벌어졌다.

비록 꿈이긴 해도 자기의 앞날을 예언해주는것 같았다.

시작이 절반이라고 그처럼 골머리를 앓던 전탄수물길공사가 거의 마감단계에 들어선것은 사실이였다.

이제 한달만 냅다 밀면 간밤에 꾼 꿈과도 같은 현실이 펼쳐지게 될수도 있는 판이다.

허나 그 한달이 문제였다. 당장 땅에 낟알을 묻어야 할 시절이 닥쳐왔기때문이다.

자기도 낟알을 먹는 놈으로서 백성들에게 낟알을 묻지 말라고 말하기가 곤난한것은 사실이였다.

어떻게 할것인가, 무슨 묘책이 없을가 하고 생각하던 리철견은 문득 한가지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군역에 나온 놈들을 동원시켜 나머지 한달을 채워보자는것이였다.

그러자면 임금의 승인을 받아야 할것이다. 에라 이번엔 관찰사령감을 시켜 어명을 받도록 해야 하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련못가를 거닐고있는데 그의 등뒤로 투닥투닥 발자국소리가 났다.

아마 종놈들이겠지 하고 생각하며 리철견은 돌아보지도 않고 련못만 들여다보았다.

어쩐지 좋은 생각만 떠오르는 기분을 깨기 싫었던것이다.

그때 등뒤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체찰사어른…》

그제야 리철견은 천천히 머리를 돌리다가 깜짝 놀랐다.

뜻밖에도 관찰사 김극검이 서있었던것이다.

어찌도 급히 달려왔는지 숨이 차서 씩씩거리는데 허리띠도 미처 매지 못한 관복의 옷자락이 너펄거렸다.

《관찰사령감이 이 새벽에 어떻게?》

김극검은 헤덤벼치며 미처 말도 못하고 손만 내저었다. 우유부단하면서도 속이 엉큼한 김극검이 이쯤 헤덤벼치면 무슨 일이 나도 보통 일이 나지 않은것이다.

리철견은 머리칼이 곤두섰다.

《웬일이시오, 관찰사령감.》

그제야 김극검도 목구멍이 좀 열리는지 말을 더듬었다.

《크… 큰일이 났수다. 큰일이…》

《?…》

《그… 글쎄 전탄수공사장에서…》

《뭐라구? 전탄수공사장에서?》

《예, 포…폭동이 터졌다오.》

《뭘? 폭동이? 언제?》

《어…어제요. 이 일을 어쩌면 좋겠소?》

그 말을 듣는 리철견은 눈앞이 아찔했다.

귀구멍이 멍멍하고 눈앞에 무수한 별찌들이 반짝거렸다.

관찰사가 무어라고 말하는지 도무지 들리지도 않았다.

리철견은 눈을 꼭 감고 약간 진정해서야 귀구멍이 열리면서 관찰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안 쇠부리터놈들이 주동이 되여서 폭동을 일으켰는데 관청을 불태우구 관리들을 때려죽이고 백성들을 다 달구서 꽁무니를 내뺐다는구려.》

리철견은 아무말없이 김극검을 쳐다보다가 자기가 속옷바람이라는 느낌이 들자 손을 휘저었다.

《내 옷을 입고 나올테니 관찰사령감은 어서 선화당에 나가서 륙방 관속들을 다 모이게 하시우.》

《알겠소, 그럼 기다리겠소.》

김극검은 옷자락을 훨훨 날리면서 뛰여갔다.

방안으로 달려들어온 리철견은 장안에서 관복을 꺼내여 황황히 주어입었다.

선화당은 초상난 집 한가지였다.

첫새벽에 벼락치듯 하는 호령을 받고 달려나온 감영의 륙방관속들은 웬일인가 해서 모두들 눈이 퀭해있었다.

륙방관속의 우두머리인 리방이 앞에 나서서 점고했다.

리, 호, 례, 병, 형, 공 순서로 점고를 하는데 호방 홍대남은 전탄수공사장에 나가있는터라 리방은 례방부터 찾았다.

《례방 왔느냐?》

례방은 분명히 앞에 서있는데 대답이 없었다.

새벽잠을 채 깨지 못했는지 선자리에서 끄덕끄덕 졸고있었던것이다.

그옆에 섰던 병방이 옆구리를 꾹 찔렀다.

그제야 례방은 펄쩍 놀라 잠에서 깨여났다.

그 모양을 바라보던 공방이 시까슬렀다.

《엊저녁에 기생집에 가더니 밤을 새운 모양이군.》

그 말에 다른 관리들이 키득거렸다.

리방이 그들에게 오금을 박았다.

《키득거리지들 말아, 지금 관찰사령감이 뿔이 났다.》

그 말에 관리들은 목을 움츠리고 황급히 입을 막았다.

이윽고 관찰사가 들어있는 방문이 드르릉 열렸다.

관찰사와 함께 체찰사 리철견, 종사관 홍자하가 나와 마루우에 버티고 섰다.

김극검이 륙방관속들에게 말했다.

《듣거라, 어제 낮에 재령 전탄수공사장에서 백성놈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래서 호방 홍대남과 재령 병방은 폭도들의 손에 절명했다. 이건 우리 도안에서 가장 불미스러운 일이다. 어떤 일이 있어두 폭도들을 진압하구 도안의 치안을 유지해야 한다. 이제 너희들은 각기 자기 관청에 달려가서 아전, 군교, 라장, 군뢰, 사령들을 모두 딸려가지고 이 자리에 모여야겠다. 어물거리는 놈은 그자리에서 처벌할테다. 돌아들가라!》

관찰사의 방으로 다시 들어온 리철견의 머리는 복잡했다.

임금의 지시로 하게 된 전탄수공사는 물론이요 잡아들이라는 김막동패거리도 아직 잡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폭동까지 일어났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이 일이 임금의 귀에까지 들어가면 자기는 어제밤 꿈에서 타본 룡마는커녕 즉시에 봉고파직되여 천길나락에 떨어지는판이다.

리철견은 떨리는 손으로 재령군수가 띄워보낸 글쪽지를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리철견은 호락호락 넘어질 위인은 아니였다.

속에서는 무능한 관찰사 김극검에 대한 불만이 끓어올라 밸이 꿈틀거렸다.

우선 현장에 내려가보구 결심을 하자, 이렇게 생각한 리철견은 번쩍 머리를 들었다.

그는 홍자하에게 급히 재령으로 출동할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

리철견은 홍자하가 나가자 어쩔줄 몰라 서성거리며 서있는 관찰사 김극검에게 말했다.

《내가 재령에 직접 나가볼테니 관찰사령감은 륙방관속들은 물론 사령에 이르기까지 임무를 주어 폭도들이 숨은 곳을 찾아내도록 하시오.

그놈들이 있는 곳을 알기만 하면 도안의 군사들을 총동원해서 짓부셔버려야 하겠소. 끝으로 부언할건 나라에 상주하는건 좀 참아야 하겠소. 내가 갔다온 다음에 상주를 해도 해야 하오.》

김극검은 심중히 대답했다.

《그렇게 합시다.》

말을 탄 리철견의 일행은 재령쪽으로 향한 길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맨앞에서는 종사관 홍자하가 달리고 그뒤에 리철견, 최형방이 나란히 달렸다.

그뒤로 열댓명의 무장한 감영의 군졸들이 말을 타고 따라갔다.

어찌도 급히 달렸는지 해가 소꼬리만큼 솟아올랐을무렵에는 벌써 재령관가의 문앞에까지 가닿았다.

재령군수 리지는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리철견에게 다가와 말고삐를 잡았다.

《원로에 수고로이 오셨소이다.》

리철견은 인사도 나눌 사이없이 다짜고짜로 물었다.

《전탄수공사장에서 란이 났다는게 적실하냐?》

재령군수 리지는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사실이옵니다.》

《흥, 십고십상을 맞는 군수라고 쭐렁거리더니 꼴 좋게 됐다.》

십고십상이란 도관찰사가 해마다 도안의 원들의 치적을 조사하여 상, 중, 하로 평가하는데 5년이상 상의 성적을 받은 고을원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재령군수 리지는 지금껏 2년동안 관찰사 김극검의 치적평가에서 상을 맞았으니 십고십상이라기보다 사고사상이라 해야 옳을것이다.

그러나 리철견은 후줄근해서 서있는 재령군수 리지가 신통히도 관찰사 김극검과 한바리에 실어도 어느쪽도 기울지 않을 놈이라 십고십상을 맞은 놈이라고 조롱을 한것이였다.

재령군수 리지는 얼굴이 수수떡같이 되여 아무말도 못하고 우두커니 서있었다.

화가 동한 리철견은 그에게 소리쳤다.

《그래 폭동소식을 어느 놈이 가져왔느냐?》

《예, 방아전이라구 홍대남호방의 부하이오이다.》

《방아전? 그놈이 어디 있어?》

《지금 리방이 있는 길청에…》

리철견은 말우에서 훌쩍 내려섰다.

《그놈을 당장 여기로 끌어오라! 그리구 병방을 시켜 고을군사들을 몽땅 불러모아 여기로 데려오라.》

《알겠소이다. 그런데 저…》

《무슨 일이냐?》

《병방은 어제 전탄수공사장에 나갔다가 폭도들에게 죽었소이다.》

그제야 리철견은 재령군수 리지가 써보낸 글쪽지를 본 생각이 떠올랐다.

《꼴 좋다. 한개 고을 병방이라는게 폭도들에게 맞아죽었으니… 그럼 군교이든 뭐든 있을게 아니냐?》

《옛, 알겠소이다. 군교 한명은 돌에 맞아 골이 깨지구 한명은 펀펀하오이다.》

《그놈들을 다 데려오라, 빨리!》

리지는 황황히 대문밖으로 사라졌다.

얼마후 피딱지가 붙은 천쪼박을 머리에 감은 군교와 땅딸보 방아전 그리고 신수가 펀펀한 군교 김막봉이 리지를 따라 들어왔다.

리철견은 손가락으로 방아전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네가 방아전이냐?》

《그렇소이다.》

《어제 있은 일을 사실대루 말해라.》

방아전은 겁에 질린 눈길로 어제 관청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자초지종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쌀에 돌을 섞은 이야기만은 슬쩍 빼놓았다.

이야기를 다 듣고난 리철견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되물었다.

《그러니 나쁜 쌀을 주었다구 트집을 걸구 일어났단 말이지, 그 쌀이 어떤 쌀이냐?》

앞에 섰던 리지가 입을 열었다.

《그 쌀은 작년 가을에 환곡으로 받아들여 저축했던것이온데 그다지 나쁜건 아니오이다.》

《그런데두 트집을 걸었단 말이냐?》 하며 리철견은 방아전을 쏘아보았다.

얼결에 리철견과 눈을 마주친 방아전은 너무도 당황하여 몸둘바를 몰라했다.

방아전을 쏘아보는 리철견은 속으로 (옳지, 이놈이 무슨 작간질을 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방아전. 군수의 말은 나쁜 쌀이 아니라고 하는데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바른대로 말하지 못할가?》

방아전은 기가 죽어 얼굴이 금시 컴컴해졌다.

에라 죽은 홍대남에게 넘겨씌우자 하는 생각에 입을 열었다.

《저 사실은 호방어른이 집에 대사가 있다고 쌀 몇섬만 내라구 해서 쌀에 돌을…》

《그러니 네가 돌을 섞었단 말이냐?》

《아, 아니오이다. 그건 호방어른이 시켜서…》

리철견은 발을 탕 굴렀다.

《이놈아! 죽은 사람에게 죄를 넘겨씌우자고 하는걸 내가 모를것 같으냐? 이 생쥐같은 놈아! 네놈때문에 폭도들이 들구일어났단 말이다. 두말할것 없다. 저놈을 이제 당장 목을 잘라라.》

그 말에 방아전은 기겁하여 바들바들 떨었다.

리철견을 따라온 군졸들이 달려들어 방아전을 꽁꽁 묶어놓았다.

리철견은 피칠갑을 한 천으로 머리를 처맨 군교에게 눈길을 돌렸다.

《넌 어떻게 돼서 대가리가 터졌냐?》

군교는 겁에 질린 눈길로 대답했다.

《우리가 폭도들을 에워싸고있었는데 그놈들이 갑자기 돌을 던지는 바람에 이렇게 되였소이다.》

《너만 대가리가 깨졌냐?》

《아니올시다. 마흔명이나 되는 군졸들이 모두 이렇게 되였소이다.》

《마흔명이?》

《그렇소이다. 내 생각엔 그놈들이 이미부터 잘 훈련된 놈들같소이다.》

리철견은 더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곁에 섰던 최형방이 리철견에게 말했다.

《체찰사님, 그 폭도들속에 김막동패가 끼여든게 분명하오이다.》

《뭘? 김막동패?》

《그렇소이다. 김막동의 색시가 수안 쇠부리터가 고향이여서 그놈들과 련계가 깊으오이다. 그런데 군졸들이 모두 골통이 깨진걸 보니…》

리철견은 최형방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것하구 골통이 깨진것하구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워낙 김막동패거리의 솜씨가 돌팔매질을 잘하는것이옵니다. 이건 분명히 수안 쇠부리터철간들과 김막동패와 합세한것이오이다.》

그 말을 들은 리철견은 속이 뜨끔했다.

언제부터 잡아들이라는 김막동을 아직도 못잡았는데 이것들이 폭도들과 합세하였다면 이보다 더 큰일은 없는것이다.

그럴수록 온 도가 벌컥 뒤집히다싶이 하면서도 김막동을 잡아들이지 못하는 관찰사 김극검에 대한 불만이 가득차올랐다.

그는 자기앞에 김극검이 서있기나 한듯 최형방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최형방, 언제부터 잡아들이라는 김막동 그놈을 왜 못잡아들이는가? 그러니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았는가. 네가 나라앞에 목을 내놓아라.》

최형방은 기가 질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체찰사 리철견의 부릅뜬 눈에서 뿜어나오는 독기는 주위의 모든것을 마비시킨듯 그앞에 서있는 사람들은 숨소리 하나 제대로 내지 못하였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리철견은 군교 김막봉에게 눈길을 돌렸다.

《넌 어떻게 펀펀히 살아있느냐?》

《소인은 어제 관가경비를 섰소이다.》

《좋다, 네가 거느리고있는 군졸들을 몽땅 데리고 여기로 오라!》

《알겠소이다.》 하고 대답한 김막봉은 대문밖으로 사라졌다.

리철견은 말우에 다시 올라타고 소리쳤다.

《군수는 말에 올라 저놈들을 데리구 나를 따르라. 전탄수공사장에 나가보아야 하겠다.》

이윽고 리철견은 재령군수 리지를 앞세우고 전탄수공사장으로 떠났다.

여느때 같으면 기치창검을 높이 들고 사령들이 앞서가며 물렀거라 비켰거라 하고 벽제소리를 요란히 울리면서 행차를 했을 그들이다.

그러나 오늘은 그럴 경황이 되지 못했다.

한동안 말을 달려 공사장에 이른 리철견은 깜짝 놀랐다.

관청으로 쓰던 건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빈 재더미만 남았는데 아직도 실연기가 부실부실 피여오르고있었다.

철간들이 쇠를 벼리던 집도 기둥이 뽑히운채 모로 자빠졌고 여기저기 내버린 질통이며 농쟁기들이 주런이 널려있었다.

마치도 거센 폭풍이 불어 땅우에 있는 모든것을 뒤엎어놓은것 같았다.

리철견은 갑자기 벙어리가 된듯 입을 다물고 공사장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서는 이글이글한 불길이 타오르고있었다.

며칠전에 와보았을 때만 해도 제법 자리가 잡혀있던 공사장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였고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수습한단 말인가, 문제는 여기서 소요를 일으킨 폭도들을 잡는것이다.

그놈들을 짓뭉개지 않고서는 전탄수공사를 더 하지 못한다.

리철견은 이렇게 생각하며 말없이 현지를 돌아보았다.

공사장을 한바퀴 돌아보고 관청이 있었던 자리에 돌아온 리철견은 골살을 찌프렸다.

폭도들에게 매맞아 죽은 관리들의 시체가 그대로 재더미에 묻혀있는것이 눈에 띄웠던것이다.

리철견은 뒤따라오는 재령군수 리지를 바라보며 말고삐를 당겼다.

《너는 어제 여기에 안왔댔는가?》

재령군수 리지가 어물거렸다.

그 꼴을 지켜보던 리철견이 버럭 성을 냈다.

《넌 도대체 뭘하고 사는 놈이냐? 한개 고을의 치안을 맡았는데 폭동이 일어났다면 벌써 나와봐야 할게 아닌가.

저걸 보라! 관리들의 시체가 아직도 나딩굴고있는데 저렇게 내버려두어야 옳은가말이다.》

리지는 말우에서 굽석거리며 변명했다.

《예, 저… 사실은 오늘아침에 나와보자구 하댔는데 체찰사님이 뜻밖에 오셔서 이렇게… 인차 수습을 하겠소이다.》

리지는 말을 돌려 뒤따라오는 군교 김막봉에게 시체들을 어서 치우라고 훈시를 하였다.

여직껏 말이 없던 종사관 홍자하가 리철견의 옆에 다가서서 낮은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 일을 바로 잡자면 그 폭도들을 알아내여 싹 쓸어버려야 하오이다. 그렇지 않다간 앞으로두 계속 애를 먹일것 같소이다.》

리철견은 입을 꾹 다문채 군졸들이 맞아죽은 관리들의 팔다리를 하나씩 들고 둔덕밑으로 가는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종사관 홍자하는 계속 중얼거렸다.

《폭도들을 잡자면 그놈의 얼굴을 잘 알고 행처를 렴탐할 놈들이 있어야 하오이다. 그러니 김막동의 얼굴을 아는 최형방과 방아전의 목을 당장 칠것이 아니라 그놈들을 내세워 폭도들을 찾아내도록 해야 할것이오이다.》

리철견은 그 말을 들었는지, 못들었는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한쪽에서 군졸들에게 관리들의 시신을 옮겨놓도록 일을 시키는 군교 김막봉은 리철견이네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엿듣기 위해 귀를 바싹 도사리고있었다.

리철견을 비롯한 관리들은 군교인 김막봉에 의해서 자기들이 지껄이는 소리가 그대로 김막동봉기군에 들어가는줄 꿈에도 몰랐다.

그것도 모르고 재령관가에 다시 돌아온 리철견은 종사관 홍자하의 건의대로 당장 목을 치려던 방아전을 풀어주었다.

방아전은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기어이 폭도들을 찾아내겠다고 맹세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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