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전탄수를 떠난 김막동일행은 재령 반대쪽인 봉산쪽으로 얼마간 달렸다.

수십필의 기마대렬이 먼지를 뽀얗게 일쿠며 달리는 모습은 장관이였다.

선두에서 달리던 박중금이 서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벌판가운데로 달려 소나무가 우거진 야산으로 말을 몰았다.

기마대는 그의 뒤를 따라 소나무숲속으로 들어갔다.

소나무숲이 우거진 야산을 넘어서니 병풍같은 바위가 우뚝 서있었다. 그 밑에서는 맑은 물이 퐁퐁 솟아나는 자그마한 못을 이루고있었다.

못가에 이른 그들은 모두 말에서 내렸다.

막동은 함께 온 동료들에게 말했다.

《여기서 좀 쉬구 해가 진 다음에 떠나도록 하자.》

모두 말에서 뛰여내려 말을 끌고 못가에 다가가 물을 먹였다.

어떤 축들은 서로 물장난을 하기도 하면서 웃고 떠들었다.

한바탕 싸움을 치른 그들의 기세는 하늘에 닿을것 같았다.

방금 새파란 잎새를 뾰족이 내미는 잔디밭우에 앉은 김막동은 못가에서 웃고 떠드는 동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 옆으로 박중금이 다가왔다.

《형님, 이젠 큰 싸움을 벌려놓았는데 장차 어떻게 하실 작정이시우.》

《오늘 저녁에 장수산성을 타고앉은 다음에 의겸삼촌이랑 모여앉아 의논들 하자.》

《그게 좋겠어요.》

막동은 박중금을 정겹게 바라보았다.

어딘가 모색도 성품도 수안과 비슷했다.

침착하면서도 영민하고 눈치가 빨랐다.

앞으로 덜렁거리는 윤산이, 봉산이들과 함께 일을 시키면 손발이 잘 맞을것 같았다.

이때 못가쪽에서 박상배의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아니, 너희들은 눈에 콩까풀을 씌웠어? 그래 쌀씻을 물을 흐려놓으면 어쩔테야?》

못가옆에서 웃동을 벗어던지고 몸을 씻고있는 동료들에게 하는 지청구였다.

그속에 끼여있던 봉산이 너덜거렸다.

《이건 어디서 나타난 마고할미야. 그러지 말구 내 이 잔등을 좀 긁어달라구.》

박상배는 얼른 못기슭에 떠다니던 썩은 나무가치를 집어들고 봉산의 잔등을 철썩 때렸다.

그만에야 봉산은 기겁하여 달아났다.

그 모양을 보고 모두 껄껄 웃어댔다.

멀리서 그것을 바라보고있던 김막동과 박중금도 허허 웃고말았다.

한편 삼백명이 실히 될 봉기군을 데리고 떠난 김의겸은 전탄수뒤산에 올라 산룡선을 타고 장수산쪽으로 걸음을 다그쳤다.

수안이 그 일행과 함께 갔다.

평생 억눌려만 살다가 난생 처음으로 량반들을 족친 철간들과 백성들의 사기는 높았다.

그들은 숲속을 걸으면서 웃고 떠들어댔고 어떤 축들은 흥얼흥얼 코노래까지 불렀다.

그들의 앞에서 길안내를 하던 수안은 이따금 품속에서 종이장을 꺼내여 보면서 대오를 이끌었다.

이렇게 흘러가던 대오가 어느 산중턱에 와서 멈춰섰다.

련련히 이어가던 산줄기가 끊어지고 앞에는 벌이 나졌다.

그 벌을 지나면 장수산으로 들어가는 산줄기가 이어져있었다.

산밑에는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마을 끝쪽에 기와를 이은 집 한채가 보였다.

행랑담장에 대문까지 세운것을 보니 이 아근의 땅을 타고앉아 사는 부자집이 헨둥했다.

김의겸은 그쪽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곁에 선 수안과 익선에게 물었다.

《내 생각엔 저 부자집을 타고앉아 밥을 해먹고 가자는거네. 자네들 생각엔 어떤가.》

수안이 걱정스레 말했다.

《그러다가 우리가 장수산으로 간다는 비밀이 새여나갈가봐 걱정이와요.》

그러자 익선이 한마디 했다.

《까짓거 그놈들을 모조리 족쳐버리면 될게 아니요.》

김의겸은 익선의 말을 부정했다.

《그렇다구 우리와 같은 백성들을 죽일수는 없지, 저 집에두 노비가 있구 심부름군들이 있겠는데…》

수안이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아직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이 사람들은 잘 모르고있으니 혹 말하더라도 전탄수공사장에 간다고 꾸미는게 어떠시우?》

김의겸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게 좋겠다. 익선아, 네가 철간 몇을 데리고 가서 저 집을 먼저 타고앉아라!》

익선은 싱긋 웃었다.

《알겠수다. 내 밥까지 다 지어놓을테니 천천히 오시우다.》

잠시후 익선을 따라 열댓명의 철간들이 산을 내렸다.

어느덧 서산에 해가 기울어 땅거미가 슬금슬금 못가로 기여들무렵이였다.

…점심 겸 저녁을 해먹은 김막동일행은 림시로 몇개 패를 뭇고 윤산과 봉산, 박중금과 박상배 등을 림시패장으로 정하고 말을 타고 산을 내렸다.

장수산쪽으로 가는 길가에 나선 막동은 패별로 달리게 하였다.

제일 앞에 박중금이 달려가고 얼마간 동안을 두고 윤산이네패, 그 다음은 봉산이네패 또 그 다음은 박상배네패, 마지막패는 김막동이 거느리고 달렸다.

누가 보아도 역마가 달리는것처럼 하여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자는데 있었다.

김막동일행은 자정이 거의될무렵에 장수산성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남문앞에 이르렀다.

달빛이 없는 그믐밤이였다.

하늘의 뭇별들이 남문우에 씌운 합각지붕을 희미하게 비쳐주고있었다.

남문이 멀리에서 바라보이는 골짜기에 이른 그들은 김의겸이네를 기다렸다.

지금쯤이면 야음을 타고 작은 장수산기슭에 와닿았을것 같은데 웬일인지 그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말에서 내린 김막동은 성안에서 흘러내리는 시내가바위우에 걸터 앉았다.

어디선가 훈훈한 바람이 불어왔다.

하염없이 재잘거리면서 흘러내리는 시내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김막동은 그린듯이 앉아 김의겸이네를 마중하러간 윤산과 봉산이를 기다렸다.

보리밥 한솥을 짓고 남았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작은 장수산쪽에서는 수풀을 헤치는 소리가 나더니 윤산과 봉산이가 김의겸과 수안이와 함께 나타났다.

그들을 먼저 발견한 김막동은 개울을 흘쩍 뛰여넘어 마중갔다.

《왜 이렇게 늦었어요?》

김의겸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으면서 말했다.

《거 숱한 장정들을 끌고온다는게 헐치 않구만. 도중에 밥을 해먹구 오다나니 좀 늦었네. 오래 기다렸나?》

《아니요. 우리도 방금전에 왔어요.》

김막동은 김의겸의 어깨너머 뒤쪽을 바라보았다. 뒤따라 올줄 알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김막동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왜 오지 않아요?》

김의겸은 실쭉 웃으면서 수안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수안은 두손을 모아쥐고 입에 가져다대고 소리를 냈다.

《뻐꾹- 뻐꾹-》

그러자 언제 왔는지 숲이 와슬랑거리더니 수백개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막동은 너무도 신기하여 김의겸을 쳐다보았다.

김의겸은 빙그레 웃었다.

《예까지 오면서 저 사람들에게 교련을 좀 시켰네. 모두들 어찌도 극성인지 당장이라도 싸움을 할것 같애.》

막동은 입을 딱 벌렸다.

《그래요?! 역시 삼촌은 무관을 했으면 제격이였겠는데…》

그것은 김의겸이 젊어서 한때 무과에 급제하여 벼슬살이한것을 념두에 두고 하는 말이였다.

《내가 무관을 했으면 자네가 아마 내 목을 치겠다고 덤벼들었을게 아닌가.》 하고 김의겸은 가볍게 롱을 하였다.

그 말에 모두 조용히들 웃었다.

관군이 지키고있는 성밖이라 여느곳처럼 웃고 떠들고 할수 없었던것이다.

막동은 김의겸과 잠시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윤산이와 봉산이 그리고 수안이, 상배, 익선을 곁으로 불렀다.

《이제부터 자네들은 관군의 별장으로 가장해야겠네.》 하고 말을 뗀 막동은 그들에게 함께 온 사람들을 적당히 다섯패로 나누어 림시로 대오를 편성하고 각기 한개 대오씩 맡게 하였다.

이윽고 그들은 긴 행렬을 짓고 성문쪽으로 향하였다.

맨앞에는 관복차림을 한 김막동과 김의겸이 말을 타고갔다.

그 뒤로 말을 탄 사람들이 따라섰다.

맨뒤에 창과 칼을 찬 사람들이 렬을 지어 들어갔다.

별빛에 무수한 창끝이 번쩍거렸다.

그 모습은 하나의 군사행렬같이 보였다.

박중금이 말에서 내려 성문으로 달려가 문을 두드렸다.

한참 두드려서야 성문안에서가 아니라 문루우에서 거센 사내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거 누구야?》

박중금은 그쪽으로 대고 소리쳤다.

《도감영에서 병방나으리의 행차이시다. 어서 문을 열어라.》

문루우에 있는 놈이 되물었다.

《병방어른이? 어제두 병방어른이 보낸 사람이 왔다갔는데?》

그 말에 박중금은 말문이 막혔다.

예상치 않았던 물음이였던것이다.

말우에 앉은 김막동이 소리쳤다.

《이놈아, 문을 열라면 열게지 무슨 잔말이 그리 많으냐? 지금 나라에 란이 나서 병방어른이 직접 오신단 말이야. 어서 열어라! 그렇지 않다간 네 목부터 치겠다!》

그제야 문루우에 있는 놈이 황황히 대답했다.

《란리요? 예… 예, 알겠소이다. 이제 곧 열겠소이다.》

문루우에 있는 놈이 아래로 내려오는지 소리가 없었다.

이제 성문을 열겠지 하고 모두 긴장하게 기다렸다.

말을 탄 김막동과 김의겸은 서로 마주보았다.

그런데 또다시 문루우에서 소리가 났다.

《병방님, 그런데 성문열쇠를 성장님이 가져갔소이다.》

이것 또한 난사였다.

김막동이 그놈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아! 그럼 그렇다고 할게지 왜 방금 당장 열겠다고 했느냐?》

그놈이 무슨 냄새를 맡고 오그랑수를 쓰는게 분명하였다.

문루우에 있는 놈은 우물쭈물하였다.

이번에는 김의겸이 엄하게 소리쳤다.

《이놈아! 내 한양에서 내려온 선유사가선대부이다. 너 이놈 그쯤하면 내가 누구인줄 알겠지. 어서 빨리 문을 열어라!》

문루에 있는 놈은 찍소리 못하고 아래쪽을 내려다만 보았다.

김의겸의 말에 속이 덜컥한것이였다.

김막동이 뒤쪽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별장 있느냐? 저놈이 역적이 분명하다. 당장 문루에 올라서 저놈의 목을 쳐라!》

그 소리에 문루에 있는 놈이 기겁해서 소리쳤다.

《제발 이러지 마시우. 사실은 오늘 성장님이 그 누가 와두 열어주지… 말라구 해서… 이제 당장 열겠소이다.》

조금 있더니 성문안쪽에서 덜컥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드디여 성문이 찌끄덩 열리였다.

김막동과 김의겸은 서로 마주보며 저도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김막동은 가볍게 말을 몰아가면서 말고삐를 쥐고 성문옆에 서있는 박중금에게 짐짓 소리쳤다.

《중금별장, 군사들이 다 들어온 다음에 성문을 닫구 그놈을 끌어오라.》

《알겠소이다.》

김막동의 뒤를 따라 폭동군은 유유히 성안으로 들어갔다.

두개의 산이 맞붙다싶이 한 성입구는 비좁았지만 조금 들어가니 넓은 공지가 나졌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막히고 큰 옹배기처럼 드넓은 공지가 펼쳐졌는데 그야말로 천험요새였다.

그것을 보는 김막동은 문득 무원골로 들어서는 감을 느꼈다.

신통히도 무원골과 비슷했던것이다.

고전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장수산성은 석축인데 둘레는 8천 9백 15자이고 천연암석으로 둘러막혀있으며 성안에는 7개의 샘과 군수창고가 있다고 서술하였다.

넓은 공지를 가운데에 놓고 산기슭쪽으로 여러채의 건물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마 병쟁기창고들과 식량창고들인 모양이다.

그들이 넓은 공지를 바라보며 한동안 서있는데 박중금이 문루우에 있던 놈을 끌고와서 김막동앞에 꿇어앉혔다.

김막동은 말우에 앉은채 그에게 물었다.

《너희 성장이 어디 있느냐?》

《예, 저 삼치골병영에 있소이다.》

《그런데 어째서 오늘 문을 열지 말라고 했느냐?》

문지기는 말을 못하고 끙끙 갑잘랐다.

《어서 말하지 못하겠느냐? 이놈!》

그제야 문지기는 벌벌 떨면서 입을 열었다.

《예… 사… 실은 오늘 성장님이 장가를 드시는 날이오이다.》

《너희 성장이 여적 총각이였느냐?》

《그… 그게 아니오이다.》

《그런데 장가든다는것은 무슨 해괴한 소리냐?》

《예, 오늘 첩을 하나 업어왔소이다. 그래서 잔치를…》

《뭐라구? 첩을?》 하고 막동은 되물었다.

곁에 섰던 김의겸이 엄하게 물었다.

《천하에 무도한 놈 같으니. 나라에선 란이 났는데 군량미를 탕진하면서 첩잔치까지 한단 말이냐?》

문지기는 아무말도 못하고 엎드린채 벌벌 떨기만 하였다.

김막동은 문지기에게 물었다.

《여기 군사들은 다 어디 갔느냐?》

《예, 모두 잔치에…》

《그럼 군사들이 오면 들게 될 처소는 어디냐?》

《예, 그건…》

《냉큼 일어서서 말하지 못할가.》

그제야 문지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문지기는 키가 꺽두룩하고 팔다리가 긴 놈이였다.

그는 공지옆에 있는 집들을 가리켰다.

《저기 첫번째부터 여섯번째 집까지오이다.》

《그 나머지 집들은 무엇이냐?》

《그건 다 량식창고들이오이다.》

김막동의 얼굴에는 느슨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이쯤하면 여기에 틀고앉아 몇달이라도 견딜만 하였던것이다.

김막동은 그 자리에서 윤산이와 봉산이, 박중금과 박상배 그리고 익선이를 불렀다.

그들이 모여오자 문지기가 들으라는듯 령을 내렸다.

《별장들은 군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모두 처소에 들게 해야 하겠다. 윤산별장은 첫번째 집으로 가라.》

《알겠소이다.》

《봉산별장은 두번째 집, 중금별장은 세번째 집, 상배별장은 네번째, 익선별장은 다섯번째 집이다. 알겠는가!》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알겠소이다.》

《군사들을 자리잡게 하고 곧 나한테로 오라. 난 삼치골병영에 있겠다. 기마대는 나를 따르라! 가자!》

김막동과 김의겸은 말을 탄 동료들을 데리고 문지기를 앞세우고 성장이 있다는 삼치골로 향하였다.

성안에 겹쌓은 또 하나의 성문을 지나 올라가니 맑은 물이 고여있는 자그마한 룡소가 나졌다.

룡소옆에 있는 고샅길을 따라 얼마쯤 올라가니 불빛이 흘러나오는 집이 보였다.

웬만한 고을의 동헌만큼 큰 건물이였다.

그들 일행이 대문앞에 이르니 안쪽에서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사내들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성을 지키는 군졸들이 잔치에 몰려와 먹자판을 벌린 모양이였다.

그들은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섰다.

문이 활짝 열린 방안에서는 군졸들이 길다란 상앞에 모여앉아 권커니작커니 하며 목청을 돋구고있었다.

막봉이 보낸 련락에 의하면 산성을 지키는 군사가 모두 30명가량 된다고 하더니 방안에 있는 놈들을 얼핏 보니 그놈들이 다 모인듯했다.

문지기가 집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막동은 그를 불러세웠다.

《가만!》

문지기가 흠칫 놀랐다.

《성장이 어느 놈이냐?》

문지기는 웃방 가운데 앉아있는 놈을 가리켰다.

몸이 퉁퉁하고 온 얼굴에 뒤덮이다싶이 털이 가득한 구레나룻이였다.

이때였다.

정지방 문이 열리더니 소복단장을 한 녀인이 마당으로 나왔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얼굴을 싸쥐고 어깨를 떨면서 슬피 울었다.

문지기가 막동에게 귀띔했다.

《성장님이 데려온 첩이옵니다.》

《?…》

《이 아래마을 권부자네 종이였는데 성장이 안오겠다는걸 강제로 빼앗아왔소이다.》

그러고보면 문지기는 키는 꺽두룩한데 입도 헤프고 아첨기가 보통 아닌 놈이였다.

그는 김막동이 정말 병방인줄 믿고있었다. 그래서 바싹 붙어야 제 목을 건사할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시키지도 않았는데 줄줄 내리 풀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성장의 마누라는 고질병에 걸려서 앓는데 지금은 페병치료하러 본가집에 갔다는것이다.

그래서 아래마을 권부자네 종으로 있는 처녀를 첩으로 데려왔는데 실제는 첩이 아니라 심심풀이도 할겸 부자집 딸인 제 마누라의 몸종으로 두자고 한다는것이다. 그런데 처녀가 어찌도 독한지 그 내막을 알고 악마같은 성장에게 오지 않겠다고 하면서 몇번이나 죽으려고 하던것을 군졸들이 겨우 붙들어왔다는것이였다.

김막동은 문지기가 주절거리는 소리를 귀등으로 들으면서 방안을 예리하게 살폈다.

저놈들을 모두 얽어매놓아야 성을 틀고앉으려는 계획이 실현될수 있기때문이였다.

방안에 있는 성장과 군졸들은 마당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제 흥에 겨워 떠들어대고있었다.

김막동은 조용히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 함께 온 동료들에게도 말에서 내리라고 손짓했다.

모두가 말에서 내리자 그는 몇사람을 시켜 말들을 마당에 끌고나가 매여놓게 하였다.

그들이 이러고있는데도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미도 느끼지 못하고있었다.

천험요새나 다름없는 성안에 무슨 일이 벌어지겠느냐 하는 태도였다.

방안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족쳐버릴 준비를 다 갖춘 김막동은 박중금에게 눈짓했다.

박중금이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한양 선유사님 출도야-》

그 소리가 떨어지기 바쁘게 마당에서 기다리고있던 동료들이 방안으로 달려들어가 군졸들을 짓밟아때려엎고 모조리 오라를 지워놓았다.

박중금은 성장에게 달려들어가 그놈의 턱수염을 움켜쥐였다.

《이놈아, 한양에서 선유사님이 출도하셨다. 어서 나와!》

박중금이 성장을 끌고와서 김막동과 김의겸의 앞에 꿇어앉혔다.

그런데 성장놈은 어찌도 술을 처먹었는지 땅바닥에 코를 박고 드르렁드르렁 코를 곯았다.

이놈이 무슨 꾀를 쓰지 않는가 하여 김막동이 발로 그의 잔등을 걷어찼다.

그래도 그놈은 모로 넘어진채 코를 곯았다.

김막동과 김의겸은 허거프게 웃고말았다.

이런 놈을 믿고 나라의 한개 성을 맡긴 봉건정부의 처사가 어처구니 없었던것이다.

김막동은 박중금에게 말했다.

《이놈을 끌어다 고방에 처넣어라!》

《알겠소이다.》

박중금은 문지기를 불러 창고가 어딘가고 물었다.

문지기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진 성장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말했다.

《저, 여기에 옥이 있소이다.》

《옥? 그게 어디 있냐?》

《저 뒤켠에…》

《됐다. 거기로 가자.》

박중금은 성장을 질질 끌고가서 뒤마당에 있는 옥에 처넣었다.

나머지 술에 취해 넘어진 군졸들도 모두 옥에 처넣었다.

생각했던것보다 너무도 일이 순조롭게 풀려나가 맹랑하였다.

김막동은 넓은 마당같은 병영마루에 앉아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김의겸도 그옆에 앉으며 빙그레 웃음지었다.

방안에 들어간 박중금이 몇사람을 불러들여 지저분한 방안을 거두게 하였다.

김막동은 김의겸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삼촌, 이밤으로 패를 짜는게 어떠시우.》

《그게 좋겠다.》

《내 그래 윤산이랑 모두 오라고 하였수다.》

그때 대문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윤산이 웬 녀인을 등에 업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그뒤를 따라 봉산과 수안이, 박상배와 익선이 들어섰다.

김막동이 의아해서 물었다.

《그게 웬 녀자냐?》

윤산을 대신해서 봉산이가 말했다.

《이자 이쪽으로 오는데 저 룡소쪽에서 인기척이 나는게 아니겠어요.》

《…》

《그래서 그쪽으로 가보니 이 녀자가 물속으로 기여들어가는게 아니나요.》

《그래서?》

《우리가 달려가니 벌써 물안에 빠져들어갔어요. 그런걸 이 윤산 형님이 업어내왔어요.》

김막동은 그제야 윤산이가 온통 물참봉이 된것을 알아보았다.

《그 녀자를 내려놓아라.》

박중금이 달려가 윤산의 등에서 녀자를 안아 마루우에 눕혀놓았다.

녀자를 들여다보던 김막동과 김의겸은 깜짝 놀랐다.

그는 성장이 오늘 데려왔다는 첩이였던것이다.

김막동은 중금에게 말했다.

《어서 안방에 옮겨다눕혀라.》

박중금은 정신을 잃고 늘어진 녀자를 안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정돈된 방안으로 김막동과 김의겸 등 여러 사람들이 모여앉았다.

김막동은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둘러보면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우리는 량반부자들을 쳐없앨 뜻을 가지고 싸워왔다.

오늘 우리는 보다 큰 싸움을 위해 여기로 왔다. 난 그래서 이 자리에서 두령들을 선발하여 패를 뭇자고 하는데 자네들 생각은 어떻나?》

《그게 좋겠수다.》

《이젠 사람도 많아졌는데 아무래도 통솔하는 사람들이 있어야지요.》

모두 이구동성으로 김막동의 말을 찬동했다. 김막동이 먼저 자기 의견을 내놓았다.

《내 생각은 우리 총두령으로는 의겸삼촌으로 하자는건데 자네들 생각엔 어떤가?》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김의겸이 부정했다.

《아니, 안되네. 그것두 말이라구 해? 내가 의견을 내놓을테니 들어들 보라구.》

《아니, 삼촌…》

《글쎄 내 말을 들어보게. 싸움을 벌리자면 군사가 있어야 하구 군사를 거느리자면 지휘부가 있어야 하네. 지휘부가 든든하면 백전백승이요, 지휘부가 약하면 백전백패하는 법이네. 이렇게 하자구. 내 생각엔 총두령으로는 김막동으로 하고 부두령으로는 윤산이, 봉산이, 수안이, 박중금이, 박상배, 익선이로 하자는거네. 》

김막동이 의아해서 물었다.

《그럼 삼촌은 뭘 하시겠다는거요?》

《난 총두령밑에서 모사노릇을 하겠네. 그래두 군사를 움직이는 물계야 내가 좀 알지. 그래, 내 생각이 어떤가?》

모두들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날 새벽까지 진행된 지휘부모임에서는 이렇게 결정했다.

부대명칭을 황해도농민봉기군으로 하고 총두령 김막동, 두령 윤산(1패 두령), 두령 박중금(2패 두령), 총부두령 김의겸(모사), 부두령 리수안(1패 부두령), 부두령 리봉산(2패 부두령), 두령 박상배(3패 두령), 부두령 홍익선(3패 부두령)으로 하였다.

기마대는 총두령 김막동이 맡기로 하였다.

그리고 총두령 전달병으로는 초동이를 시키기로 하였다.

다음날 아침이였다.

장수산성안의 넓은 공지에서는 봉기군대렬편성을 하였다.

편성에 앞서 모여온 사람들을 세여보니 모두 삼백예순다섯명이 되였다.

먼저 사람들의 이름을 등록하고 패를 나누었다.

매개 패를 백명으로 하고 그 안에서 다시 50명씩 갈라서 분패로 나누었다.

대렬편성이 끝나자 패별, 분패별로 정렬시켰다.

온 부대가 모인 앞에서 김막동이 지휘부성원들을 발표하였다.

매개 패별로 두령들을 발표하고 마지막으로 김막동이 자기를 소개하자 대오속에서는 환성이 터져나왔다.

《야- 김막동이다!》

《저 사람이 김막동이란 말이요? 야!》

그사이 온 황해도를 들었다놓아 사람들은 김막동의 이름만 들어왔지 실지는 그가 누군지 모르고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명성이 자자한 사람이 우리 대장이라니 모두들 손을 맞잡고 환성을 질렀다.

김막동은 1패, 2패, 기마대는 기본전투부대로, 3패는 식량조달 및 물자보급대로 선포하였다.

이렇게 닻을 올린 황해도농민봉기군은 이날부터 다른 령이 떨어질 때까지 장수산성안에서 군사조련을 하기로 하였다.

이때부터 한적하던 장수산성안에서는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울려나왔다.

장수산성 성장 장호필은 한낮이 기울어서야 술에서 깨여났다.

흐리멍텅하게 눈을 뜨고보니 온 몸이 꽁꽁 묶이운채 옥에 갇혀있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옥안에는 함께 술을 처먹은 부성장과 군졸들이 모두 묶이운채 우거지상이 되여 앉아있었다.

장호필은 한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는 문지기 키다리에게 물었다.

《야! 꺽다리,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문지기 역시 우거지상이 되여 대답했다.

《한양에서 선유사가 내려왔소이다. 숱한 군사들을 거느리구…》

《언제?》

《어제밤에 왔소이다. 나라에 큰 란이 터졌다고 하면서…》

《뭘? 란이 터졌다구?》 장호필의 눈은 화등잔만 해졌다.

나라에 란이 터진것두 모르구 밤새껏 술놀이를 했으니 이거야말로 큰 일이다.

당장 군법에 걸려 목이 날아나게 되였던것이다.

문지기의 말에 속이 까매진 장호필은 눈앞이 아찔했다.

그때 옆에 있던 부성장이 문지기에게 물었다.

《선유사가 어명을 보이더냐?》

《예? 어명이요. 그런건…》

《이놈아, 이 성안으로는 어명이 없인 군사를 들여밀지 못하게 된걸 넌 모른단 말이냐?》

그것은 사실이였다.

당시 봉건정부에서는 나라의 군사창고들이 반란군에 의하여 털리우는 일들이 한두번이 아닌것으로 하여 임금의 어명이 없이는 그 어떤 군사도 창고가 있는 성안에는 들어오지 못하게 되여있었다.

다만 창고검열을 하는 관리들만 그것도 나라의 옥새가 찍힌 임명장을 보이고 들어오게 되여있었던것이다.

문지기는 어정쩡하게 대답을 했다.

《난 그저 란이 터졌다구 하면서 빨리 문을 열라기에…》

그 말에 장호필이 와락 성을 냈다.

《머저리 같은것. 그것두 확인안하구 왜 들여놓아. 죽일 놈같으니…》

문지기는 얼음판에 자빠진 황소같이 눈알만 뒤룩거렸다.

이렇게 옥신각신하고있는데 옥문이 찌그덩 열렸다.

군복을 입은 군졸 하나가 나타나 안에 대고 소리쳤다.

《성장이 어느 놈이야?》

장호필은 얼결에 대답했다.

《예, 여기 있소이다.》

《선유사님이 찾으신다. 어서 나와.》

장호필은 엉거주춤 일어서서 밖으로 나왔다.

군졸을 따라 병영앞에까지 나온 장호필은 마루우에 앉아있는 두 관리를 바라보고 깜짝 놀랐다.

그중 한사람은 어디선가 꼭 본 사람같았다.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린채 그들앞에 다가가 무릎을 꿇고앉았다.

마루우에 관복을 입고앉은 사람은 김막동과 김의겸이였다.

김막동이 장호필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네가 여기 성장이냐?》

《예, 성장 장호필이라 하나이다.》

김의겸이 눈을 치떴다.

《장호필? 여기 오기 전에 무슨 벼슬을 했느냐?》

장호필은 허리를 굽석거렸다.

《룡양위에서 사용으로 있었소이다.》

《룡양위에서?》 하고 김의겸은 반문하였다.

《예, 그렇소이다.》

《그럼 네가 룡양위에서 사용노릇을 하던 장호필이란 말이냐?》

그 말에 장호필은 머리를 들고 김의겸을 쳐다보았다.

《그때 교련관을 하던…》

김의겸은 장호필을 노려보았다.

《그래, 내가 네밑에서 교련관을 하던 김의겸이다.》

원쑤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10년전에 원쑤지고 헤여진 그들은 뜻밖에도 여기에서 만났다.

10년전 무과에 급제한 김의겸은 량인출신이라고 하여 룡양위의 제일 낮은 교련관을 하였다.

그때 장호필은 정9품관인 사용벼슬을 하였다.

사용이라고 해서 별로 높은 벼슬은 아니였지만 품계도 없는 교련관보다는 한참이나 높았다.

어느날 장호필은 군사들을 조련시키는 훈련장에 나와 교련관인 김의겸에게 군사 몇명을 달라고 하였다.

장호필은 자기 집에 장작을 날라가려고 그런다고 하였다.

김의겸은 그런거야 종들을 시켜야지 군사들을 시켜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거절하였다.

장호필은 그 자리에서 김의겸에게 쌍욕을 퍼부었다.

한창 혈기에 넘쳐있던 김의겸도 가만히 있지 않고 대들었다.

장호필은 별 천한 놈이 상급에게 대든다고 하면서 너 이놈, 네 모가지가 얼마나 붙어있는가보자고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달아났다.

그 일이 있은지 얼마후 김의겸은 교련관에서나마 밀려나 일반 군졸이 되였다.

김의겸이 자기의 상급인 상호군(정3품)을 만나 내가 왜 파직되였는가고 들이댔다.

그러자 상호군의 말이 가관이였다.

네가 버릇없이 관료를 야료했기때문이라는것이다.

그 말을 들은 김의겸은 선자리에서 군복을 벗어던지고 룡양위를 뛰쳐나왔다. …

그때 사용이였던 장호필이 지금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앉아있는것이였다.

《장호필! 그래 넌 늘 하늘이 높은줄만 알았지 비구름이 끼여 비가 내린다는건 몰랐느냐?》

《…》

《그러니 그사이 네 벼슬도 별로 오르지는 못했구나. 성장이나 사용이나 다 같은 9품관이니 말이다.》

장호필은 원래 낯짝이 두터운 놈이였다.

그는 땅바닥에 넙적 엎드려 애걸복걸 하였다.

《선유사님,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으니 한번만 용서해주시오이다.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말이오이다.》

김의겸은 그 몰골을 보며 껄껄 웃었다.

《하…하… 이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지 뭐가 내리는지 분간못하는놈아, 똑똑히 봐라. 뭘 내가 선유사라구? 하…하…》

곁에 앉은 김막동이도 마당에 주런이 선 폭동군들도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장호필은 김의겸의 옆에 앉은 김막동이 선유관인줄 알고 막동의 앞에 엎드려서 중얼거렸다.

《선유사님, 한번만 용서해주사이다.》

그 바람에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마당에 서있던 윤산이 한마디 했다.

《이놈아, 내가 선유사이다. 나한테 인사를 해라. 그러면 용서해줄테니.》

장호필은 그 말에 눈만 껌벅거렸다.

그 모양은 흡사 오라줄에 묶이워 죽일 때를 기다리는 개새끼 한가지였다.

윤산이 또 한마디 하였다.

《이놈아, 왜 물 건너가는 개새끼처럼 눈만 멍청히 뜨고 쳐다만 보는거냐. 어서 절을 해라!》

장호필은 죽는것보다 까무라치는것이 낫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윤산의 앞에 굽석 절을 하였다.

《선유사님, 한번만 용서해주시오이다.》

그 바람에 더 큰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

여느때는 관료라고 으시대며 돌아치던 놈이 죽을 구뎅이에 빠지게 되자 비렬하게 돌아치는 모양이야말로 가관이였다.

김의겸이 장호필에게 엄하게 말했다.

《장호필 이놈, 나를 똑똑히 보아라. 내 너같은 놈을 이 세상에서 쓸어버리려고 나선 사람이다.》

그 말을 듣고서야 장호필은 펄쩍 놀랐다.

《그럼 반란군?》

《반란군이 아니라 너같은 량반관리들을 쳐없애는 의군이다. 의군!》

장호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여보시오. 이 일은 제발 그만두시오이다. 나라의 군수창고를 털면 그건 역적죄를 짓는것으로 되오이다.》

《네놈이 창고를 털어먹는건 애국이냐?》

《그것하구 이것하구는 서로 다르오이다. 나라앞에 반기를 드는건 역적이 되는것이오이다. 그리구 닭알로 바위치기 한가지오이다. 제발 그 일은 그만두시오이다.》

김막동이 버럭 소리질렀다.

《이놈아 닥쳐라. 미친개 아가리에선 미친소리만 나온다더니… 그래 우리가 네놈의 그 소리를 들을것 같으냐, 이놈을 당장 끌어가라!》

군복을 입은 봉기군들이 장호필을 끌고갔다.

장호필은 봉기군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아우성쳤다.

《선유사님, 아니 대장어른, 한번만 살려주시우-》

김막동은 옥에 갇혀있는 군졸들을 모두 끌어내여 심문했다.

그들가운데 부성장이라는 놈을 내놓고는 모두가 평백성들로서 장수산성에 수자리로 끌려나온 사람들이였다.

막동은 비밀이 새여나가는것을 념려하여 당분간 그들을 옥에 가두어놓게 하였다.

그리고 성장 장호필과 부성장은 봉기군전체가 모인 앞에서 목을 잘라 처단하였다.

이렇게 장수산성을 타고앉은 김막동봉기군은 다가오는 큰 싸움을 위하여 부지런히 군사훈련을 다그쳤다.

훈련에서는 한때 룡양위에서 교련관까지 해본 경험이 있는 김의겸이 큰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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