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그래서 내 생각엔 여기에 모인 우리부터가 재간을 더 익히고 그것을 앞으로 다른 사람들에게도 배워주어 우리 사람을 더 늘구자는걸세.》 하고 김막동이 말했다.

앞에 앉은 윤산이 물었다.

《막동형님, 도대체 우리 사람을 어느만큼이나 늘이자는것이요.》

《거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곁에 앉아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있던 수안은 막동의 말에 꼬리를 달았다.

《막동형님의 말이 옳수다. 전번에 가마소 강부자를 도륙낼 때 그 마을사람들이 단번에 들고 일어나서 우리와 힘을 합치는걸 보지 않았소. 그렇게만 한다면야 백명쯤 모으는건 식은 죽 먹기지요. 윤산형님, 그렇지 않소?》

윤산이 무릎을 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옳아, 그때 난 백성들이 뭉치면 얼마나 큰 힘을 내는가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어.》

막동은 수안을 대견스레 바라보았다. 비록 말은 적어도 언제 봐야 침착하고 영민하고 인정깊은 수안이였다.

문득 막동의 눈앞에는 무원골에 있을 때 이순에게 먹이겠다고 산 자라가 들어있는 옹배기를 들고오던 수안의 모습이 선히 떠올랐다.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신통히도 수안이가 내가 하자던 말을 했다. 가마소마을 사람들처럼 함께 들고일어난다면 그 힘을 당할 놈이 없을게다.》

그러자 그때까지 그들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있던 봉산이 엉뚱한 소리를 하였다.

《까짓거 온 나라 백성들이 다 들고일어나면 이놈의 세상이 콱 뒤집힐게 아니요.》

막동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오죽 좋겠나. 한데 그게 어디 쉽게 되는 일이냐. 그러니 이제부터 우리가 준비를 잘하고있다가 때가 되면 들고일어나야 하는거다. 이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그제야 사미승 박중금도 모든것을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렸다.

《이제야 모든것을 알겠수다. 막동형님이 상배를 전탄수부역터에 보낸거랑, 여기 바위골에 틀고앉아 조련을 하자고 하는거랑 말이요. 형님들의 말을 들으니 힘이 솟수다. 한번 본때있게 해보자구요.》

흥분한 박중금이 벌떡 일어서다나니 머리에 올려놓았던 털모자가 툴렁 떨어졌다.

반들반들한 까까머리가 드러나 해볕에 반짝거렸다.

그 모양을 본 그들은 배를 그러쥐고 웃었다.

《하…하…하.》

눈물을 찔끔 흘리며 웃고있던 윤산은 박중금을 그러안고 돌아가며 놀려댔다.

《이 까까중아, 넌 얼마나 좋겠니. 머리털이 하나두 없으니 서캐 낄 일두 없구 머리감을 걱정두 없구. 나 하구 머리를 바꾸지 않겠나? 하…하.》

윤산에게 안긴 박중금은 얼굴이 불깃해지더니 눈물을 줄줄 흘렸다.

한참 박중금을 안고돌던 윤산의 눈이 커졌다.

《아니? 너 우는게 아니야?》

윤산의 품에서 풀려나온 박중금은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쿨쩍거렸다.

막동은 윤산을 질책했다.

《윤산아, 롱도 지나치면 진담이 된다. 동생을 보고 까까중이 뭐냐.》

박중금은 벌떡 일어나 막동의 손을 잡았다.

《형님, 그러지 마시우. 그래서 우는게 아니요.》

《엉? 그럼…》

박중금은 또다시 윤산의 손을 덥석 잡고 목메여 말했다.

《형님, 고맙수다.》

윤산은 어리둥절하여 아무말도 못했다.

박중금은 옷자락으로 눈물을 뻑 씻고 말했다.

《난 지금껏 스무해를 살면서 언제 한번 사람대접을 못 받았소. 그런데 오늘 이렇게 나같은것두 사람대접해주구 까까중이라구 허물없이 놀려주니 그것이 너무 고마와…》

그 말에 막동이도 윤산이도 봉산이도 수안이도 모두 눈시울이 불깃해졌다.

박중금은 울먹이며 자기의 과거사를 말하기 시작하였다.

… 박중금의 부모들은 모두 노비출신이였다.

스무해전 곡산관가의 병방네 집 행랑방에서 중금이 태여났다. 중금의 부모들은 병방네 집 솔거노비들이였다.

중금의 어머니는 중금을 낳은 다음날부터 병방네 집일에 끌려다니다나니 어린 그는 젖 한모금 변변히 먹지 못하고 자랐다.

중금의 손우에 누이가 있었는데 그는 여덟살때 다른 량반집 노비로 끌려가서 생사여부를 알수 없었다.

중금이 세살나던 해에 있은 일이다. 해종일 밭에 나가 일하다가 집에 돌아온 그의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 어린 중금이가 집기둥에 매여있는데 그의 입에 걸레가 틀어박혀있었다.

종일 젖 한모금도 못 먹은 어린 중금이가 너무 배가 고파 울어대니 주인집마누라가 시끄럽다고 아이를 기둥에 비끄러매고 입을 틀어막았던것이다.

숨이 막혀 싸늘하게 식어가는 어린 중금을 안은 그의 어머니는 반정신이 나갔다.

뒤따라 달려들어온 중금의 아버지와 다른 노비들의 도움으로 지옥의 대문앞에까지 다 갔던 어린 중금이 겨우 소생하였다.

그때부터 중금의 어머니는 열이 나면서 시름시름 앓더니 한달도 채 못 넘기고 죽고말았다.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때부터 중금은 병방네 집일을 시작하였다.

그가 하는 일이란 부엌에 장작을 날라다주거나 마당을 쓰는 일이였다.

고생속에서 살아온 중금이여선지 어려서부터 뼈대가 굵어졌고 아홉살때부터는 산에 가서 나무를 한지게씩 해오군 하였다.

그가 열아홉살 나던 해 설을 앞둔 어느날이였다.

그날 집주인은 설맞을 차비를 한다고 하면서 중금이네 부자와 머슴군들을 산판으로 내몰아 짐승사냥을 시켰다.

옷도 변변히 입지 못한데다가 아침에 죽물을 먹고 해종일 눈덮인 산판을 헤매던 중금의 아버지가 그만 깊숙한 눈구뎅이에 빠졌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중금의 아버지를 겨우 꺼냈으나 그는 마지막숨을 쉬고있었다.

중금의 아버지는 가까스로 숨을 몰아쉬면서 품속에서 동가락지 하나를 꺼내놓았다.

《중금아, 이게 네 엄마가 끼던 동가락지다. 너의 누이에게도 이것과 꼭 같은 가락지를 주었으니 후에 꼭 찾아봐라. …》

중금의 아버지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한채 숨을 거두었다.

그날밤 중금은 주인놈이 자는 방에 뛰여들어 그의 가슴에 칼을 박아놓았다.

그리고 그길로 뛰쳐나와 이곳저곳 떠살이를 하다가 절간에 들어가 중이 되였다.

그후 언진산 불각사에서 윤산과 이순을 만난 후에 그곳을 뛰쳐나왔던것이다…

박중금의 과거사를 다 들은 막동은 그의 손을 으스러지게 틀어잡았다.

《자네나 우리나 처지는 꼭 같애. 그래 누이는 찾았나?》

박중금은 한숨을 내쉬였다.

《못 찾았어요. 죽지나 않았는지…》

《이제 우리 함께 찾아보자구. 아니 이 세상을 발칵 뒤져서라도 찾아내자구.》

《고마와요, 막동형님.》

막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의 가슴에 쌓인 원한을 푸는것은 저 짐승같은 량반부자들을 쳐없애는 길밖에 다른 길은 없다. 이를 악물고 일어서야 하는게다.》

막동은 허리에 찬 칼을 빼들고 곁에 세워둔 말에 올라타 앞으로 내달렸다.

그의 뒤를 형제들모두가 말을 타고 따랐다.

훈련장으로 쓰이는 공지에 이른 그들은 윤산의 지휘하에 돌팔매질연습을 벌렸다.

너럭바위우에 그려놓은 목표를 향하여 무수한 돌들이 쉼없이 날아갔다.

한낮이 다 기울도록 자비령바위골 골안에서는 칼날이 부딪치는 소리, 돌멩이가 날아가는 소리, 윽윽대는 고함소리가 그칠새 없이 울려나왔다.

나절가웃이 다 될무렵이였다.

자비령으로 통한 산길로 등에 보짐을 진 웬 사내가 올라오고있었다.

그는 막동의 령을 받고 전탄수공사장에 갔다오는 박상배였다.

길옆에 난 고샅길에 들어선 그는 뒤를 돌아보면서 주위를 살피다가 집채같은 바위뒤로 사라졌다.

바위골에 들어선 상배는 드넓은 공지에서 칼을 휘두르고 내던지는 동료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초막앞에서 동료들을 한줄로 세워놓고 말타는 연습을 시키고있는 막동을 보자 곧장 그쪽으로 달려갔다.

막동의 앞에 다가간 상배는 끄덕 인사를 했다.

《두령어른…》

막동은 상배를 보고 반기였다.

《언제 왔나?》

《방금 도착하는 길이요.》

《그래 어서 초막에 들어가 쉬여라. 내 인차 들어갈테니.》

《알겠어요.》

상배는 곧장 초막안으로 들어갔다.

막동은 자기가 하던 일을 봉산에게 맡기고 상배가 들어간 초막으로 뒤따라 들어갔다.

막동이 초막안에 들어서자 상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냥 앉아있어라. 그래 그 사람을 만났댔냐?》

《만났어요. 참 어진 어른이더군요.》 하며 상배는 품속에서 봉투를 꺼내 막동에게 주었다.

《이게 그 어른이 보내시는 봉서요.》

막동은 봉서를 받아 뜯어보았다.

김의겸이 보내는 편지였다.

… 막동이 이사람 잘 있었나?

일전에 봉옥이가 찾아온걸 뜻밖에 만나서 자네들이 겪은 사정을 다 들었네. 그 이야기를 듣구 익선이랑 쇠부리터사람들은 모두 치를 떨었네. 그 사이 자네들이 복수한걸 듣구 탄복도 했지. 참 잘했네. 우리라구 밤낮 무지렁이처럼 살수야 없지. 자네들의 의거에 온 황해도땅이 들썩했으니 장한 일이야. 자네가 보낸 편지를 받구 내 동료들의 의향을 물으니 모두 찬성이야. 알맹이는 언제 거사를 하는가 하는것인데 그건 좀 생각해보자구. 내 생각엔 거사를 여기 공사장에서부터 시작하는게 좋을것 같구만. 때가 되면 기별할테니 지금은 조용히 기다리게. 분별없는 소동은 피하는게 좋겠어. 그리구 자네가 말한대루 짬짬이 병쟁기를 몰래 벼리구있네. 마지막으로 부탁하고싶은건 앞일을 잘 타산하라구. 장차 응거할 곳이랑, 먹고사는 일이랑 말일세. 앞으로 자주 련계를 맺자구.

김의겸 서…

편지를 다 읽고난 막동의 가슴은 설레였다.

쇠부리터사람들이 합세하겠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없었던것이다.

원래 쇠부리터일을 하는 철간들은 힘이 세고 의지가 강하고 의협심이 많아서 굳게 뭉쳐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을 잘 알고있는 막동은 천하를 얻은것만큼 기뻤다.

상배를 돌려보내고 자리에 앉은 막동은 다시한번 김의겸이 보낸 편지를 읽어보면서 생각에 잠겨있었다.

읽어볼수록 다심한 김의겸의 마음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원쑤를 갚을 계획을 똑똑히 세우지 못한 자기가 부끄러웠다.

당장 거사를 한다 해도 장차 웅거할 곳도 없이 돌아친다는것은 맹랑한 일이였다.

무원골과 같이 든든한 터가 있어야 마음놓고 싸울수 있는것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너무도 단순한 리치였다.

그럴수록 앞일까지 생각하며 진심으로 충고해주는 김의겸이 고마왔다.

막동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초막안으로 윤산과 박중금이 들어왔다.

윤산은 자기들이 들어오는것도 미처 느끼지 못하고 그린듯이 앉아있는 막동을 보고 의아해서 물었다.

《아니 형님, 무슨 일이 생겼소?》

그제야 제 생각에서 깨여난 김막동은 그들을 반기였다.

《자네들인가? 마침 잘 왔네.》

박중금이 섭섭하다는듯이 물었다.

《형님, 종이장두 서로 맞들면 가볍다는데 도대체 무슨 일루 벙어리 랭가슴앓듯 하시우. 무슨 일인지 이 까까중이 알면 안돼요?》

김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일이 생겨두 아주 큰 일이 생겼네.》

《예-에?》

《엉?》

막동은 그들에게 김의겸이 보내온 편지를 내보였다.

머리를 맞대고 편지를 본 윤산과 박중금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피여났다.

《아니 이거야 우리와 힘을 합치자는 좋은 소식이 아니요?》 하고 윤산이 물었다.

《마지막 글줄을 잘 읽어보게나.》

《?…》

김막동은 자책어린 어조로 말했다.

《내가 지금껏 복수할 생각만 하면서 앞을 내다보지 못했어. 청맹과니였단 말이네. 의겸형님이 편지에서 귀띔했으니 망정이지 헛 참…》

윤산이 투정비슷하게 한마디 했다.

《그걸 가지구 옴해있단 말이요? 원, 형님답지 않게.》

《아니야, 이건 정말 큰 일이야. 무원골과 같은 곳이 우리에겐 있어야 한단 말일세. 그래야 거기에 발붙이고 싸움을 벌릴수 있단 말이네.》

박중금이 수긍했다.

《형님말이 옳아요. 우리가 앞으로 큰 일을 벌리자면 그런 발판이 있어야 하지요. 저 재령 장수산성이 어떨가요?》

《장수산성?!》

《예, 내 까까중노릇을 하면서 여러곳을 다녀봤는데 좋기는 장수산성이 제일이지요. 온통 바위투성이 절벽인데 신통하지요. 산성으로 들어가는 길목만 든든히 뻗쳐놓으면야…》

《그런데 거기가 지금 비여있나?》

《아니요. 관군의 쌀창고랑 병쟁기창고랑 주런이 들어있지요.》

《도대체 관군이 어느만큼이나 있게?》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윤산이 끼여들었다.

《형님, 그거야 려아 서방을 시키면 제꺽 알게 아니요?》

막동은 무릎을 쳤다.

《그렇지, 막봉이 그 사람이 할수 있겠군. 하… 당장 그에게 기별을 띄워야겠네.》

박중금이 신이 나서 말했다.

《거기 지형은 내가 훤히 아우다. 거길 타고앉았다가 수틀리면 산발을 타고 사면팔방으로 다 뻗어나갈수 있수다.》

박중금의 말은 사실이였다.

《대동여지도》에 의하면 장수산에서 서남쪽으로 잇닿은 산줄기에는 달마산을 주봉으로 하는 산줄기가 동북쪽으로 련이어 뻗어 천태산, 마산이 나란히 있고 거기서 다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쪽은 송림산, 동북쪽으로는 검산이 있다.

또한 재령에서 동쪽으로는 봉산, 서흥 등지로 산줄기가 련이어 뻗어있고 멸악산을 주봉으로 하여 동서쪽으로 성불산, 운봉산, 운달산이 있다.

다시 멸악산에서 동북쪽으로는 상차령, 황동산, 고정산, 오도산, 가령산, 웅파산, 구정산이 있다.

그러니 장수산을 타고앉으면 얼마든지 황해도일판의 산발을 다 톱을수 있었다.

김막동은 즉시 마당에서 돌팔매질연습을 시키고있는 수안을 초막안으로 불러들였다.

수안이 초막에 들어오자 막동은 그에게 재령관가에서 군교노릇을 하는 막봉에게 보내는 글을 써서 주었다.

수안은 빙그레 웃으면서 초막밖을 뛰여나갔다.

막동은 수안의 뒤를 따라나가면서 신칙을 했다.

《수안아, 막봉이를 만나거든 일이 틀어지지 않게 하라구 해라. 그리구 려아한테두 자주 가보라구 일러라.》

《알겠어요.》

수안은 바위쪽으로 나는듯이 달려갔다.

막동은 흐뭇한 눈길로 그를 바래주었다.

뒤따라 나온 윤산과 박중금은 손을 저어주었다.

수안이 바위너머로 사라지자 김막동은 누구에게라없이 말을 했다.

《거사할 때가 점점 다가드니 이제부터 조련을 다그쳐야겠다.》

막동은 말타기연습을 시키는 곳으로 걸어갔다.

윤산과 박중금은 돌팔매질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그때부터 한달남짓한 동안 자비령바위골에서는 말타기와 활쏘기, 돌팔매질 연습이 그치는 날이 없었다.

그 나날 동료들의 재주는 눈에 뜨이게 높아져서 인제는 더 배울것이 없을 정도로 되였다.

동료들의 재치있는 재주를 보는 김막동의 가슴은 한없이 부풀어올랐다.

이만한 재주이면 천하대적이 덤벼든다 해도 무서울것이 없을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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