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김막동일행이 재령 장수산 객주집에 도착한것은 방금 초경이 지날 때쯤이였다.

그들이 객주집마당에 들어서자 능마와 집에 함께 살고있는 봉옥과 한씨, 홍씨와 려아가 나와서 반겨맞았다.

말우에 실은 짐들을 부려 방으로 들여가느라고 한창 돌아가고있는데 재령관가의 군졸로 있는 려아의 서방인 김막봉이 불쑥 나타났다.

김막봉은 집안사람들과 미처 인사할새도 없이 막동의 손을 잡아끌고 뒤마당에 있는 별채로 들어갔다.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것이 분명하였다.

방안에 들어간 그들은 한동안 수군거렸다.

모두가 그들이 들어간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안고 마당에서 서성거렸다.

그때 방문을 열고 막동이 나와 마당에 서있는 봉산과 수안을 방으로 불렀다.

그리고는 한씨에게 말했다.

《어머니, 별일이 없으니 안심하시고 어서 들어가 쉬세요. 우리끼리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래요.》

《알겠다.》

봉옥이 막동에게 물었다.

《저… 저녁밥을 어떻게 하시겠어요.》

《바깥방에 차려놓게. 인차 나올테니.》

막동은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려아의 서방인 김막봉이 급히 달려오게 된것은 그럴만 한 사연이 있어서였다.

김막봉은 마주앉은 막동과 봉산, 수안을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 이자 얼핏 막동형님께 말을 했소만 이제부터 형님네들이 움직이는것을 삼가해야겠어요.》

《…》

《어제 도감영에서 각 고을과 역들에 령이 떨어졌는데 도안의 군사들을 총출동시켜 산과 마을을 다 뒤져서라도 이달안으로 김막동패거리들을 붙잡아들이라는것이요.》

봉산은 처음 듣는 말이 아니라는듯 픽 웃었다.

《우리야 늘 수배받고있는 몸인데 그까짓거 가지구 뭘 그래.》

막봉은 품속에서 종이장을 꺼내놓았다.

《이것을 보시라요. 이게 막동형님의 화상이요. 이걸 고을 군영의 별장들에게까지 다 나누어주었어요. 이번엔 하는 잡도리가 여의치 않아요.》

막동은 말없이 막봉이 펴놓은 자기 용모를 그린 종이장을 들여다보았다.

막봉은 훈시하듯 말했다.

《그러니 이제부터 형님네는 내가 말하는대로 하세요.》

김막동은 막봉의 커다란 눈을 지켜보았다.

《어떻게 하라는건가?》

《이번에 병방이 나에게 군졸 다섯을 데리구 여기 장수산일대를 뒤지라는 령을 내렸지요. 그러니 형님네는 여기 객주집에 묵으면서 길손인체 하구 있으라구요. 용모파기는 내가 직접 하니 슬쩍 지나치면 되니까…》

김막동은 막봉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놈들이 어째서 갑자기 살판친다는건가.》

막봉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잘 모르긴 하겠지만 병방이랑 쑥덕거리는걸 귀동냥으로 듣자니 전탄수관개공사때문에 그러는것 같애요.》

《전탄수공사?》

《그래요. 그건 재령벌 꼭대기에 있는 저수지물이 흘러내리는 전탄수를 여러 갈래의 물길로 째는 공사예요.》

《그것 하구 우리 하구 무슨 상관이냐?》

《이 공사에 온 황해도백성들을 인차 동원시키는데 여기에 형님네가 뛰여들어 훼방을 놓을가봐 그러는것 같애요.》

그제야 막동은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렸다.

막봉의 입에서는 말이 계속 흘러나왔다.

《지금 그 공사장에 수안 쇠부리터 철간들이랑 도안의 철간들이 다 모여들어 공사에 쓸 쟁기들을 벼리고있사…》

김막동은 막봉의 말을 가로막았다.

《가만, 이제 뭐라고 했나. 수안 쇠부리터 철간들이 왔다구?》

《그래요. 벌써 석달째 잡혀요.》

《석달째라구?》

막봉은 의아해서 물었다.

《형님은 왜 그렇게 놀라시나요?》

곁에 앉은 봉산이 끼여들었다.

《그 쇠부리터가 우리 봉옥형수님의 고향일세. 그래서 아는 사람들이 많아.》

막봉은 그제야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래요?! 일전에 나두 거기에 가보았는데 고생이 말이 아니요.》

수안이 퉁명스레 한마디 하였다.

《철간이라는게 노비나 다름없는데 뻔하지요. 누가 곱다구 대우하겠소.》

수안의 말에 모두가 수긍하였다.

그때까지 아무말도 없이 앉아있던 김막동이 입을 열었다.

《막봉이 이사람, 자네 그쪽으로 갈일이 없나?》

막봉은 머리를 기웃했다.

《글쎄요. 이번 수색이나 끝나면 어떨런지. 왜 그래요?》

《만일 그곳에 갈일이 있으면 내 부탁할 일이 있어서…》

《그렇다면야 우정 일거리를 만들어서라도 가야지요.》

《자네야 군졸인데 일거리를 마음대로 만들수 있겠나?》

막봉은 머리를 쓱쓱 긁었다.

《내 쑥스러워서 이 말은 안하자구 했는데 저 형님, 내 그사이 군교가 되였어요.》

막동은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이거 우리 막냉이가 큰 어른이 된걸 응, 하하…》

곁에 앉은 봉산이 막봉의 잔등을 철썩 때렸다.

《이사람아, 진작 그 말부터 해야지. 군교라, 대단해… 하하…》

수안이도 막봉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야, 우리 형제들속에서두 〈관리님〉이 나오구 희한한데… 막봉이, 늦게나마 내 인사를 받게.》

수안이 벌떡 일어나 막봉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급해난건 막봉인지라 그는 수안의 팔목을 잡고 애원하다싶이 하였다.

《형님, 쑥스럽게 이러지 마시우. 그까짓거 뭐라구.》

수안은 펄쩍 놀랐다.

《이사람아, 우리 같은 상놈의 처지에서 군교이면 어딘가, 대단하지 대단해… 그런데 어떻게 군교자리를 따냈나?》

막봉은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쓱쓱 긁었다.

《올가을 고을에 바치는 세미를 운반할 때 화적들이 덤벼들지 못하게 하면서도 허실이 없게 했다구 군수가 한자리 주었어요.》

막동은 막봉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하긴 우리라구 군교를 못할것두 없지. 막봉이, 앞으로 더 큰 어른이 되라구.》

그러자 봉산은 롱을 걸었다.

《그럼 앞으로 이 막봉이와 우리가 맞서싸우게 되는게 아니야?》

수안이 그 말을 곁들었다.

《그러게 말이요. 그럴바엔 차라리 오늘 결판을 짓는게 어때?》

막봉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내 그래서 이 말만은 안하자구 군복두 안 입구 왔는데… 에익, 이제라두 그만두겠어요.》

막동이 만류했다.

《무슨 소릴 해. 자네가 군영에 틀고앉아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늘처럼 관가소식두 귀띔해주니 좀 좋은가. 그런 생각일랑 싹 거두라구.》

모두들 막봉의 승급을 놓고 한창 웃고 떠드는데 밖에서 려아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저, 어서 나와 저녁을 드세요.》

봉산이 이마를 쳤다.

《아차,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줄 모른다더니 새색시가 랑군을 보구싶어 목빠지게 기다리는것두 모르구…》

막동은 자리에서 급히 일어났다.

《봉산이 말이 옳다. 여기 앉아 찧구까불구 할새가 없다. 어서가자.》

그들은 막동의 뒤를 따라 바깥방으로 나와 저녁밥을 먹었다.

막동은 막봉의 잔등을 떠밀어 려아가 사는 방으로 들여보내고나서 한씨와 봉옥이가 있는 방으로 갔다.

그때까지 등잔불앞에 앉아 길쌈질을 하고있던 한씨와 봉옥이가 그를 맞았다.

막동은 한씨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몸은 좀 어떠세요.》

한씨는 하던 일을 멈추었다.

《난 일없다. 그래 무슨 일이 생겼니?》

《아무일도 없어요.》

한씨는 막동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에미눈은 못 속인다.》

막동은 빙그레 웃으면서 한씨에게 방금전에 막봉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였다.

한씨는 막동의 손을 잡고 말했다.

《내 생각엔 막봉이 그사람이 하라는대로 하는게 좋겠다. 액운은 피하는게 상책이니라.》

《알겠어요, 어머니.》

한씨는 오금을 꺾으면서 일어섰다.

《난 좀 자야겠다. 어서 자거라.》

한씨는 웃방으로 올라갔다.

방안에는 봉옥과 막동이만 남았다.

막동은 말없이 등잔불에 비쳐진 봉옥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무원골에서 참변을 당한 이후에 처음으로 안해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는 막동이였다.

그사이 봉옥은 퍽 축이 갔다.

가을호수같이 그윽한 눈가에 잔주름이 생겼다.

기름기가 찰찰 돌던 봉옥의 머리칼도 광택을 잃었다.

왜 그렇지 않으랴.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떡돌같은 아들을 졸지에 잃고 생활의 보금자리마저 모조리 털리우고 둥지털린 새 신세가 되였으니…

막동은 말없이 봉옥의 손을 잡았다.

봉옥은 막동을 쳐다보았다.

눈 한쪽 구석에 맑은것이 반짝이더니 그것이 점차 한가득 고여 량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막동은 봉옥의 량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투박한 손으로 닦아주었다.

봉옥은 흐느끼며 막동의 넓은 가슴에 안겼다.

막동은 잔물결 일으키는 봉옥의 어깨를 한동안 쓰다듬어주었다.

잠속에서 막동은 꿈을 꾸었다.

…저수지뚝이 툭 터지면서 산더미같은 물이 사품치며 쏟아져나왔다.

그 물결속에 수안 쇠부리터사람들이 모두 빠져 아우성치고있었다.

그들속에는 봉옥의 외삼촌 김의겸도 있었다.

김의겸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강녘에 서있는 막동에게 소리쳤다.

《막동아- 날 좀 살려달라. -》

막동은 긴 장대를 집어들고 허겁지겁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막동이 내민 장대를 김의겸이 가까스로 잡게 되였는데 또다시 집채같은것이 김의겸을 집어삼켰다.

김의겸은 또다시 물속에 빠져 아우성쳤다.

《막동아- 봉옥아, 날 좀 살려달라. -》

힘이 진한 막동은 장대를 쳐들고 김의겸에게 다가가다가 그만 물속에 잠긴채 천길나락으로 떨어졌다.

《악-》…

막동은 누군가 자기 몸을 흔드는 바람에 잠에서 깨여났다.

눈을 떠보니 곁에서 자던 봉옥이였다.

《무남이 아버지, 왜 그러세요. 어디 편찮으세요?》

막동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었다.

《아니, 그저 꿈을 좀…》

《무슨 꿈을 꾸었길래 신음소리를 막 내세요?》

봉옥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막동을 내려다보았다.

막동은 아무일 없다는듯 눈을 끔뻑거리며 봉옥을 끄당겨 품에 안았다.

막동의 품에 안긴 봉옥은 그제야 마음이 놓이는지 안도의 숨을 호-하고 내쉬였다.

뒤울안에서 새벽닭이 길게 홰를 쳤다.

《꼬끼요. -》

막동은 품에 안긴 봉옥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쇠부리터사람들이 전탄수공사장에 끌려나왔다누만.》

《그게 사실이와요? 언제 나왔대요?》

《벌써 석달이 되였대.》

《외삼촌두 나왔을가요?》

《아마 나왔을거야.》

《전탄수공사장은 어디에 있사와요?》

《여기에서 멀지 않아.》

《그래요?! 그럼 내가 한번 찾아가보겠어요.》

막동은 근심스레 물었다.

《이 추운 날씨에 일없겠어? 더구나 홀몸두 아닌데.》

그 말에 어둠속에서도 봉옥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일없어요. 내가 홀몸이 아니란걸 어떻게 알았어요.》

막동은 늘 하던 버릇대로 빙그레 웃었다.

《나두 애아버진데 그쯤한걸 모르겠나. 몇달째인가.》

《오늘까지 두달열흘째예요. 그런데…》

《왜 그러나?》

봉옥은 말없이 한숨만 내쉬였다.

막동은 의아해서 물었다.

《어서 말하라구. 무슨 일인데?》

《어쩐지 겁이 나요. 이 애를 또…》

그 말에 막동은 대답을 못했다.

봉옥의 걱정은 공연한것이 아니였다. 량반부자들과 사생결단으로 싸우자고 나선 자기들의 앞길에 무슨 일이 또 생길지 예상할수 없었다.

순간 막동은 어쩐지 봉옥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자기와 같은 사내를 서방으로 삼아 고생만 시키는것 같아서였다.

막동은 봉옥을 꽉 껴안았다.

《봉옥이, 이 못된놈을 만나 고생만…》

봉옥은 막동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런 말 마세요. 그런 말은 듣기조차 거북해요.》

막동은 봉옥을 사랑스레 쳐다보았다.

봉옥은 막동의 이마를 쓸어주면서 물었다.

《윤산이와 봉산이는 장차 어쩔테예요. 이제라도 새 가정을 이뤄주어야 하지 않겠어요.》

《글쎄, 그 애들이 어디 쉽게 제 색시들을 잊을 사람들이요?》

《그건 사실이예요. 그렇다구 한뉘 혼자 살게 내버려둘수야 없지 않아요?》

그들의 방에서는 새벽까지 소곤소곤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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