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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놈들아, 꼼짝말고 섰거라!》 하는 고함소리와 함께 골짜기우에서 털가죽을 뒤집어쓴 사내들이 손에 칼을 들고 길우에 와르르 쓸어내려왔다.

말허리에 거지게를 걸어놓고 그안에다 물건을 싣고가던 막동이네는 걸음을 멈추었다.

아침에 마방집에서 꾸려준 쌀과 소금, 털가죽을 싣고 재령장수산 객주집에 살고있던 능마네한테로 가던 길이다.

서흥 자비령골짜기를 넘어가서 점심을 먹을 차비로 걸음을 다그치고있었는데 뜻밖에 이런 일을 당했다.

그들은 말을 세운채 앞으로 달려오는 사내들을 지켜보았다.

길목을 지키고있다가 길손들의 짐을 터는 화적패가 틀림없었다.

사내들은 순식간에 막동이네를 둘러쌌다.

털이 부시시하게 돋은 모자를 쓴 사내가 맨 앞에 선 윤산에게 다가섰다.

언제 세수를 하였는지 얼굴에 때가 새까맣게 끼였는데 눈알만 반짝이였다.

《너희들은 어디 사는 놈들이냐?》

평민복을 입은 윤산은 자기들에게 말을 거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에 걸어놓은 거지게끈이 늘어진것을 고쳐매고있었다.

털모자가 꽥 소리쳤다.

《이놈아, 넌 벙어리야? 내 말을 못들었어?》

그 말에 윤산은 이놈을 골려줄 생각이 들었는지 제법 벙어리흉내를 내면서 뒤에 선 봉산을 가리켰다.

털모자가 봉산에게 다가왔다.

《너희들은 웬 놈들이냐?》

봉산이도 윤산이처럼 또 벙어리시늉을 하였다.

털모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것 봐라. 온통 벙어리들뿐이로구나.》

털모자가 그다음에 서있는 수안에게로 왔다.

《이놈아, 너두 벙어리냐?》

수안은 털모자를 말없이 빤히 바라보았다.

털모자는 머리를 기웃거렸다.

《허, 별놈들 다 보겠군. 온통 벙어리판이군.》

털모자는 맨 뒤에 서있는 막동에게 다가섰다.

《너두 벙어리냐?》

막동은 조소어린 눈길로 털모자를 바라보았다.

《이놈들이 누구를 놀리는게 아니야?》

털모자는 씩씩거리면서 윤산의 목덜미를 잡고 귀에 대고 소리쳤다.

《이놈아, 내 말이 들리지 않아? 엉…》

윤산은 갑자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벙어린줄 알았던 사람들의 입에서 갑자기 호탕한 웃음소리가 튀여나오자 털모자는 깜짝 놀라 뒤로 벌렁 자빠졌다.

그 모양을 보며 막동이네는 더 통쾌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짐을 털면서 모두 애걸복걸하는것만 보아오던 화적패들에게 이런 일은 처음이였다.

그들은 모두가 어리둥절하여 서로 얼굴만 마주보며 눈만 껌뻑거렸다. 눈우에 자빠졌던 털모자가 벌떡 일어나 칼을 뽑아들고 윤산에게 소리쳤다.

《이놈아, 우리가 누군줄 알구 놀려대는거야?》

윤산은 조롱하듯 물었다.

《어르신네는 도대체 뉘시우?》

털모자가 으쓱하고 말했다.

《우리로 말하면 황해도땅에 소문난 김막동패란 말이다.》

그 말에 막동이네는 또다시 한바탕 웃어댔다.

약이 오른 털모자는 발까지 구르면서 소리쳤다.

《이놈들이 허파에 바람이 찼나? 웃긴 왜 자꾸 웃어.》

윤산은 털모자에게 다가섰다.

《응, 누가 우리 형님이름을 팔아먹구 돌아치는가 했더니 네놈들이였구나, 오늘 잘 만났다.》

《뭘, 형님? 도대체 누가 형님이란 말이냐?》

《이 맹물먹구 룡트림하는 놈아. 눈에 콩까풀 씌웠니? 똑똑히 봐라. 저기 저 사람이 진짜 김막동이다.》

윤산은 막동을 가리켰다.

털모자는 막동을 쳐다보고나서 코방귀를 뀌였다.

《흥, 네놈들두 거짓말이 제법이로구나. 우리 대장이 김막동이란 말이다.》

윤산은 손을 내저었다.

《여기서 너희들하구 찧구까불구 할새가 없으니 길을 비켜. 우린 바쁜 사람들이야.》

털모자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히히, 좋아, 어서 짐들을 내려놓구 가봐.》

윤산은 눈을 꼿꼿이 떴다.

《짐을 내려놓으라구? 별 도깨비가 다 있군, 어서 길을 비켜!》

털모자는 칼을 추켜들고 을러멨다.

《이 칼에 죽지 않겠거든 어서 짐을 내려놓아.》

윤산이 주먹을 부르쥐였다.

《이놈이 아직 우리 맛을 못 봤구나. 정말 못비키겠어?》

《잔말말구 어서 짐을 내려놔. 어서!》

《못 내려놓겠다. 어쩔테야?》

털모자가 쳐들었던 칼로 윤산을 막 내려치려고 하다가 《악-》 소리를 치면서 눈우에 나딩굴었다.

뒤에 섰던 봉산이 던진 돌멩이가 털모자의 코등을 때렸던것이다.

윤산은 털모자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거머쥐고 일으켜세웠다.

털모자의 터진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이놈아, 그래 맛이 어때? 그리구서두 뭘 김막동패라구?》

멱살을 잡힌 털모자는 제 패거리들한테 고아댔다.

《이놈들아, 뭘하구 있어, 들이쳐라!》

윤산은 눈을 부릅떴다.

《이놈이 아직 정신이 덜 들었구나.》

윤산은 털모자를 잡아들어가지고 제 패거리쪽으로 내던졌다.

모여섰던 패거리들이 자기들의 수가 많은것을 믿고 덤벼들려고 하였다.

봉산이는 패거리들을 향해서 소리쳤다.

《이놈들아! 골통이 빠개지겠거든 덤벼들어라!》

패거리들중 한놈이 맞받아 소리쳤다.

《저놈들을 치자!》

그러자 몇명이 칼을 빼들고 달려나왔다.

막동이네는 말옆에 서서 달려나오는 패거리들에게 돌벼락을 안기였다.

달려들던 패거리들은 순식간에 골을 싸쥐고 나딩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패거리들은 주춤거렸다.

윤산은 다시 털모자에게 달려들어 그놈을 끌고 막동의 앞으로 갔다.

《이놈아, 똑똑히 봐라. 이 어른이 김막동이란 말이다.》

털모자는 김막동을 얼핏 보고나서 고개를 수그렸다.

《막동어른, 잘못했시다.》

막동은 털모자를 잡아일으켰다.

《이놈아, 너희 대장이 어디 있어?》

《저 바위골에 있시다.》

《여기서 머냐?》

털모자는 산등성이쪽을 가리켰다.

《저 등성이를 넘으면 인차오이다.》

막동은 털모자의 잔등을 떠밀었다.

《어서 앞서라! 오늘 내 너희 대장을 만나보자.》

그들은 털모자를 앞세우고 산등성이를 넘어갔다.

소나무, 잣나무들이 우거진 수림사이로 해서 골짜기아래로 한참 내려가니 집채같은 바위가 나졌다.

그 바위를 에돌아가니 펑퍼짐한 숲이 펼쳐졌다.

숲 한쪽끝에 초막이 몇개 보였다.

초막앞에는 우등불이 타오르고있었다.

그앞에 털모자를 쓴 사내 두명이 앉아있었다.

우등불옆에 큼직한 돌가마가 걸려있는데 가마안에서는 무엇이 끓는지 뚜껑짬으로 씩씩 김을 내뿜고있었다.

그쪽으로 달려간 털모자가 불앞에 앉아있는 사내에게 다가가서 귀에 대고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불앞에 앉아있던 사내가 벌떡 일어나면서 칼을 빼들고 막동이네쪽으로 홱 돌아섰다.

《이놈들이 감히…》

윤산이 막동의 앞을 막으며 사내앞으로 다가섰다.

《네가 이것들 두목이냐?》

《그래, 내가 두목이다.》

윤산은 그를 쏘아보았다.

《그럼 네가 김막동이냐?》

두목은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막동이네한테 얻어맞아 터진 골을 잡고있는 패거리들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머저리같은것들, 꼴보기 싫다. 내 눈앞에서 사라져!》

얻어맞은 패거리들은 초막쪽으로 우르르 달려갔다.

두목은 윤산이 앞으로 다가서며 씩씩거렸다.

《너희들이 저렇게 만들었어?》

윤산은 그 말에 동문서답했다.

《네가 김막동이가 맞아?》

《…》

《왜 말이 없어! 네가 맞아?》

두목은 대답이 없이 윤산을 쏘아보았다.

두사람의 눈길이 서로 부딪쳤다.

윤산을 쏘아보던 두목의 눈빛이 갑자기 놀라움으로 반짝였다.

《아니, 이게 누구야? 날 모르겠어?》

윤산이도 의아한 눈길을 지었다.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꼭 찍어 말하기가 힘들었다.

두목이 머리우에 올려놓았던 털모자를 벗었다.

그러자 까까머리가 나타났다.

《나요, 언진산 불각사에서 만났던 사미승이란 말이요.》

그제야 윤산이도 그를 알아보았다.

《아! 사미승?》

《그래 내가 사미승이요. 하…》

두사람은 서로 손을 맞잡았다.

사미승이 껄껄 웃었다.

《세상이 넓구두 좁다더니… 여기서 만나다니…》

윤산은 막동에게 사미승을 소개했다.

《막동형님, 내가 이순이와 함께 불각사에 갔을 때 만났던 사미승이요.》

막동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럼 이순이를 함께 묻어주고 떠났다는 …》

《예, 그렇수다.》

막동은 사미승의 손을 잡았다.

《이거 정말 반갑네.》

사미승은 막동의 얼굴을 뜯어보며 물었다.

《이자 뭐라구 했소. 분명히 막동이라구 하지 않았소?》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내가 김막동이요.》

사미승은 갑자기 땅바닥에 엎드렸다.

《막동어른, 내 절을 받으시우. 그리구 어른의 이름자를 빈걸 용서하시우.》

막동은 사미승의 손을 잡아 일으켜주었다.

《어서 일어나시우.》

두사람은 손을 맞잡고 껄껄 웃었다.

《이렇게 내 동생 윤산이를 도와준 사람을 만나니 꼭 구면친구를 만난것 같소이다.》

사미승은 송구스러워했다.

《이러지 마시오이다. 무슨 도와준 일이 있다구… 어서 안으로 들어가서 통성이나 하자구요.》

사미승은 막동이네를 초막안으로 이끌었다.

초막안은 밖에서 보기보다 한결 정갈했다.

방 한쪽옆에 단을 쌓은 잠자리가 있는데 그우에는 보기 드문 호피가죽이 씌여있었다.

앞에는 자개박이문양을 새긴 차대가 놓이고 그우에는 놋으로 만든 초대가 서있었다.

그옆으로 노루가죽을 씌운 의자가 몇개 놓여있었다.

방안에 들어선 윤산이 사미승에게 이죽거렸다.

《하! 이거 밖에서 보기와는 다른걸. 웬간한 향리방보다 더 훌륭한데…》

사미승은 노루가죽을 씌운 의자를 내놓았다.

《방이 루추해서 안됐소이다. 어서 앉으시우.》

막동은 방안을 두루 살펴보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패거리들중 한사람이 불가치를 들고 들어와 초대에 불을 달았다.

그러자 방안이 한참 환해졌다.

사미승은 윤산에게 말했다.

《그때는 이름자도 모르고 헤여졌는데 오늘 통성부터 하자구요. 난 곡산사람 박중금이요.》

《난 수안사람 윤산이요. 우리 막동형님도 수안사람이요.》

막동은 뒤따라들어온 봉산과 수안이를 그에게 소개했다.

《이사람들은 내 동생들인데 이쪽 사람은 봉산이구 저쪽 사람은 수안이요.》

사미승은 그에게 머리를 숙이였다.

《이렇게 만나서 반갑수다.》

봉산과 수안도 빙그레 웃으며 머리를 숙였다.

이때 문이 열리고 골짜기에서 처음 만났던 털모자가 자그마한 단지와 종지 몇개를 들고 들어와 상우에 놓았다.

사미승이 그에게 말했다.

《이사람 상배, 어서 인사하라구.》

털모자는 모자를 벗고 허리를 굽혔다.

《난 곡산사람 박상배요. 올해 스물두살이요.》

사미승은 말을 덧붙였다.

《우리 패거리 부두령이요.》

윤산은 그를 보고 의아해하였다.

《아까는 얼굴이 온통 새까매서 누군줄 모르겠더니 그 깨여진 코를 보니 알겠구만.》

박상배는 코를 싸쥐고 말했다.

《개구리 호박잎에 뛰여오르듯 해서 안됐소이다.》

사미승이 단지뚜껑을 열고 종지에 술을 부었다.

《이렇게 형님들을 만난걸 뜻깊게 새길겸 한잔씩 들자구요.》

그들은 자기앞에 놓인 술종지들을 들어마셨다.

막동은 박상배의 어깨를 툭 쳤다.

《이보게 부두령, 아까는 참 안됐구려.》

박상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송구해하였다.

사미승이 박상배를 소개했다.

《이사람은 나와 동향사람이요. 서흥가마소에 사는 강부자네 종노릇을 하다가 뛰쳐나왔소.》

윤산이 놀라듯 물었다.

《아니? 가마소 강부자말인가?》

사미승이 의아해하였다.

《그놈을 아시우?》

윤산은 머리를 끄떡이였다.

《그놈을 알아도 잘 알지.》

그제야 사미승이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윤산의 손을 덥석 쥐였다.

《그럼 그놈을 도륙낸게 윤산형님네가 아니요?》

윤산은 막동을 얼핏 쳐다보았다.

《실은 우리 형님이랑 함께 했네.》

사미승과 박상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형님네들이? 정말 고맙수다. 우리의 원쑤를 갚아주어서…》

박상배는 막동에게 다가서서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막동어른, 고맙소이다. 그놈은 내 부모를 잡아먹은 짐승이요. 내 그래서 원쑤를 갚자고 이 길에 나섰는데 듣자니 그놈이 하루아침에 말을 탄 군사들한테 맞아죽었다는게 아니겠소. 그래서 난 너무 기뻐 눈물까지 흘렸수다. 막동어른, 내 절을 받으시우.》

박상배는 땅바닥에 엎드려 막동에게 큰절을 하였다.

막동은 황급히 그의 손을 잡아일으켰다.

《이러지 말구 어서 일어나게.》

박상배는 막동의 손을 잡고 눈물을 줄줄 흘리였다.

곁에 앉은 사미승이 박상배의 가슴속에 맺힌 기막힌 사연을 말했다.

…박상배의 부모들은 강부자네 집에 매인 솔거노비였다. 량반부자 집에 매인 노비들은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짐승 한가지였다.

몇달전 어느 봄날에 있은 일이였다.

그날 강부자는 일가족속들을 데리고 경치좋은 가마소로 들놀이를 나갔다.

그때 상배는 아버지와 다른 노비들과 함께 강부자를 가마에 태우고갔다.

며칠째 열이 나서 앓고있는 상배의 아버지는 앓는 몸을 가까스로 부지하며 겨우 따라갔다.

상배는 앓는 아버지가 걱정스러워 아버지의 가마채까지 두손으로 받쳐들고갔다.

집을 떠나 얼마쯤 가다가 고개길에 오를 때였다.

가마우에 앉아서 비칠거리면서 따라오는 상배 아버지를 본 강부자는 소리쳤다.

《이놈아! 잔꾀를 부리지 말구 어서 가마채를 메라.》

상배의 아버지는 할수없이 상배가 들고있는 가마채를 어깨에 메고 고개길에 올랐다.

헐떡거리면서 겨우 고개마루에 오른 상배의 아버지는 선자리에서 비칠거리였다.

그바람에 가마가 흔들거렸다. 가마안에서 강부자가 고함을 쳤다.

《야! 이놈아! 가마를 온전히 못 메겠냐?》

그러자 상배의 아버지는 더는 지탱하지 못하고 비칠거리며 쓰러지고말았다. 가마가 한쪽으로 쏠리면서 그안에 앉아있던 강부자가 땅바닥으로 내리굴렀다.

성이 독같이 난 강부자는 쓰러진 상배의 아버지에게 달려들어 욕설을 퍼부으면서 발로 사정없이 짓밟았다.

상배와 음식그릇을 들고 뒤따라오던 상배의 어머니가 강부자를 붙들고 사정하였다.

강부자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나중에는 몽둥이로 상배 아버지의 잔등을 마당질하듯 두들겨팼다.

쓰러진 상배의 아버지는 찍소리 한마디 치지 못하고 그자리에서 절명했다.

상배와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시신을 붙들고 목놓아울었다.

강부자는 명절날 들놀이기분이 상한다고 하면서 함께 따라온 가병들을 시켜 상배 아버지의 시신을 산골짜기로 내버리라고 하였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상배는 피눈물을 삼키면서 강부자를 태운 가마를 메고 걸었다.

생긴 모양이 꼭 가마처럼 생겼다고 하여 가마소라고 부르는 그곳 경치는 아름다왔다.

깎아세운듯 한 절벽우에 피여난 꽃들, 그아래에 감돌아흐르는 내물, 금방 천필을 넣으면 파란 물이 들것 같은 새파란 맑은 물, 마치도 한폭의 그림같았다.

고을에서 제일 손꼽히는 경치라 이날 가마소에는 봄놀이하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노비들이 힘겹게 메고온 쪽배우에 올라앉은 강부자는 마누라와 여러 부자들과 함께 진탕망탕 마시며 즐기였다.

상전의 온갖 시중을 들면서 뛰여다니는 상배의 얼굴에도 음식그릇을 날라가는 상배 어머니의 얼굴에도 눈물이 비오듯 하였다.

취흥이 올라 거나해지자 강부자는 상배 어머니를 찾았다.

《고마야, 고마 어디 있어?》

고마란 상배 어머니의 별명이였다.

원래 노비는 이름조차 변변한것이 없었다.

상배의 어머니를 고마라고 하는것은 그가 강부자네 강아지들을 기르는 노비라고 하여 강아지의 이름과 함께 불렀다.

가마소여울의 한옆에 쭈그리고앉아 상배와 함께 소리없는 눈물을 흘리고있던 상배의 어머니는 자기를 찾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술에 취한 강부자는 그를 보고 소리쳤다.

《이년아! 그렇게 찾는데도 대답을 안해. 어서 이리 와서 소리를 해라.》

상배의 어머니는 상배의 손을 잡은채 움직이지 않았다. 상배의 어머니는 원래 노래를 잘하였다.

하여 처녀시절부터 지금까지 강부자네 솔거노비로 있으면서 놀이판마다에서 노래를 부르군 하였다.

오늘도 강부자는 상배 어머니를 놀이판에 와서 노래를 부르라고 단장시켜 끌고왔다.

제아무리 상전한테 매인 노비라 하여도 제 남편까지 생죽음을 당한 억울한 심정을 안고 어떻게 노래를 부를수 있단 말인가.

그는 옴짝하지 않고 머리를 숙인채 서있었다.

강부자가 또 소리쳤다.

《이년아! 귀구멍에 말뚝을 처박았어? 어서 이리 와!》

그 소리에 그는 머리를 들었다.

순간 너무 울어 팅팅 부은 그의 눈에서는 이상한 빛이 번뜻 지나갔다.

그는 상배의 손을 꼭 잡고 속삭이듯 말했다.

《상배야, 이 원쑤를 갚아라.》

그리고는 천천히 가마소우에 떠있는 쪽배앞으로 다가갔다.

그제야 강부자는 히죽이 웃으면서 쪽배에 함께 탄 부자들에게 말했다.

《얘가 우리 집 노비년인데 소리가 명창이요.》

배에 함께 타고있던 부자들이 손벽을 치며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댔다.

《거 강부자가 신통한 노비를 차고있소이다.》

《얘야, 어서 한소리 뽑아보아라.》

부자들의 칭찬에 민충이 쑥대에 오른것만큼 시뚝해진 강부자는 그의 남편의 죽음같은건 안중에도 없는듯 했다.

《고마야, 어서 배에 올라 한소리 뽑아라.》

상배 어머니는 물녘에서 배까지 주런이 엎디여 다리를 놓은 남자노비들의 잔등을 밟고 지나 쪽배우에 올라갔다. 취기가 잔뜩 오른 부자들은 저저마다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질렀다.

부자들의 한복판에 들어선 상배의 어머니는 방긋 웃었다.

《아니, 이렇게 소가녁에서야 무슨 소리가 나오겠어요. 저 가마소 한가운데 배를 띄우고 불러야 노래도 나오지요.》

그 말에 배에 탄 년놈들은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어서 배를 몰아라.》

《그게 좋겠어요.》

남자노비들이 물속에서 쪽배를 시퍼런 물이 빙빙 도는 소 한가운데로 밀어갔다.

배가 소 한가운데 들어섰다.

상배의 어머니는 천천히 일어나 물녘에 서있는 상배를 이윽토록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이윽고 그의 입에서는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에헹 에헤요 어절싸 좋구 좋다

봄바람 불어오니 산에도 들에도 꽃이라

흥이 나게 흘러나오던 노래소리가 갑자기 뚝 끊어졌다.

맑고 고운 그의 노래소리에 취해있던 부자들도 심부름군들도 모두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이때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상배 어머니가 치마를 걷어올려 머리에 뒤집어썼다. 그리고는 《상배야-》 하고 소리치며 깊고깊은 물속으로 풍덩 뛰여들어갔다.

그바람에 배가 끼우뚱거리며 배전에 앉아있던 부자 두놈이 함께 빠졌다.

순간에 가마소에는 아비규환이 일어났다.

물녘에 서있던 노비들이 물에 빠져 아우성치는 제 상전들을 구원하느라고 헤덤벼쳤다.

한편 배우에 앉은 놈들도 죽는다고 아우성쳤다.

물녘에 서있던 상배는 《어머니-》 하며 물속으로 뛰여들었다.

허나 어찌된 영문인지 상배와 노비들이 물속에 들어가 찾고찾았으나 상배 어머니의 시신을 찾아내지 못하였다.

이리하여 상배는 한날한시에 량부모를 잃은 고아가 되고말았다.

그날밤 상배는 원쑤를 갚아달라는 어머니의 유언을 가슴에 안은채 강부자네 집을 뛰쳐나왔다.

그후 상배는 우연히 사미승인 박중금을 만나게 되였고 부모들의 한을 씻어줄 기회만을 노리고있었다.

그러던차에 강부자가 도륙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던것이다. …

사미승의 이야기는 끝났으나 모두들 말이 없었다.

한옆에서 털모자를 쓴 박상배가 눈물을 소매로 뻑 씻었다.

《막동어른, 내 한가지 청이 있으니 들어주시겠수.》

《뭔데?》

《나에게, 아니 우리모두에게 형님네 그 돌재주를 좀 배워주사이다.》

《돌재주를?》

《그렇수다. 사실 여기에 모인 패거리들은 모두 나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요. 그런데 정작 싸우자니 재주가 없어 그러우다.》

막동이 박상배의 손을 꼭 잡았다.

《자네의 처지나 우리의 처지나 매 한가지네. 동병상련이라구 같은 병을 앓는 사람들끼리 서로 동정해주구 도와주는게 옳지. 내 기꺼이 도와주겠네.》

박상배와 사미승 박중금의 입은 쩍 벌어졌다.

《막동어른, 정말 고맙수다.》

사미승 박중금이 막동에게 간청했다.

《막동어른, 차라리 우리들을 모두 동생으로 받아주시우. 우린 어른을 두령으로 모시겠수다.》

막동은 그 청을 막지 못하고 동생들을 쳐다보았다.

《글쎄, 자네들의 생각은 어떤가?》

윤산이 말했다.

《막동형님, 난 반대가 없수다.》

봉산과 수안이도 찬성했다.

《나두 반대가 없어요.》

《나두 찬성이요.》

막동은 껄껄 웃었다.

《동생들이 좋다면 나두 찬성일세. 우리 함께 손잡구 량반부자가 없는 세상을 만들어보자구.》

사미승 박중금은 막동의 손을 잡고 눈물이 글썽해서 말했다.

《형님, 고맙수다. 내 앞으로 죽을 때까지 형님을 따르겠다는걸 목숨을 걸구 맹세하우다.》

그들은 또다시 종지에 술을 부어들고 앞으로 사지동거할 맹약을 다지면서 마시였다.

이날 막동은 사미승 박중금이네한테 윤산을 떨구어두어 그들에게 여러가지 재주들을 배워주기로 하고 바위골을 떠났다.

바위골을 떠나 능마에게로 가는 막동의 가슴은 마냥 설레였다.

가마소부근 마을사람들의 뭉친 힘을 보고 뜻을 이루자면 사람들이 많아야겠다고 늘 생각하던 일이 풀려나가기 시작했기때문이다.

막동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부터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을 더 많이 모아들이자. 그리고 그들에게 재주를 배워주어 모두 펄펄 뛰는 군사로 만들어 어디 한번 맞서보자. )

그의 마음을 헤아려서인지 한겨울답지 않게 하늘의 해가 따스하게 비쳐주었다.

그 해볕을 받으면서 막동이네는 능마한테로 가는 걸음을 다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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