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려아를 맞아들인 마방집 건너방은 떠들썩했다.

막봉의 어머니 홍씨와 영봉의 안해 박순은 려아의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막봉은 막동의 손을 덥석 잡고 머뭇거렸다.

《막동형님, 정말 고맙소이다. 정말…》

영봉이도 막동과 동생들의 손을 잡고 놓을줄 몰랐다.

《난 자네들이 려아를 업어오겠다기에 혹시나 했댔는데 정말 자네들은 옛날 장수들도 찜쪄먹을 사람들이야.》

막동은 자기들에게 진정을 쏟아놓는 그들을 그윽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주인어른, 뭘 그러시우. 까치는 까치끼리 살랬다구 평백성인 우리끼리야 네 일, 내 일이 따로 있어요? 이렇게 도우면서 사는것이지요.》

영봉은 진정으로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 정말 고맙네, 내 앞으로 자네들을 힘자라는껏 도울테니 믿어주게.》

《주인어른, 고맙수다.》

영봉은 막동이네 잔등을 떠밀었다.

《자, 어서들 아래방에 내려가자구. 시장할텐데.》

아래방으로 내려선 그들은 차려놓은 상앞에 주런이 앉았다.

상우에는 흰쌀밥에 생선국이 김을 몰몰 올리고있었다.

놋주전자를 들고 들어온 막봉은 상우에 놓은 술잔들에 돌아가면서 술을 부었다.

그들과 함께 앉은 영봉이 술잔을 들고 말했다.

《갑자기 차리다나니 변변치 않네. 우선 한잔씩 들자구.》

막동은 자기앞에 놓인 술을 쭉 마시고나서 물었다.

《주인어른, 이 막봉이네를 장차 어떻게 하시려우?》

《오늘 이사람들의 혼례나 해주고 생각해봐야겠네.》

《오늘 당장말이요?》

《생각같아서는 잔치를 크게 차렸으면 좋겠지만 할수 없지. 저 려아가 여기에 있다는걸 알면 강부자라는 놈이 가만있지 않을걸세. 그래서 가까운 사람들끼리 모여앉아 조용히 해주어야지 별수 없네.》

그 말을 들은 막동의 생각은 깊어졌다.

가난이라는 죄아닌 죄로 하여 일생에 한번있는 인륜대사인 혼례식도 숨어서 해야 하니 이 얼마나 기막힌 일인가. 도대체 이 세상에 량반부자라는건 왜 생겨나서 이토록 사람들을 못살게 군단 말인가. 그럴수록 가슴만 답답하였다.

막동은 상우에 놓인 물사발을 들어 꿀꺽꿀꺽 마셨다.

《주인어른, 구데기 무서워 장 못 담그겠소. 이왕이면 보란듯이 해주어야지요.》

《구데기 무서워서가 아니라…》

그들은 말없이 밥을 먹었다.

방안에서는 달그락거리는 숟가락소리만 울려나왔다.

박순이 떠다주는 김이 물물 나는 숭늉까지 다 마시고난 막동은 말없이 문밖을 내다보았다.

앞채쪽에서 하루밤 묵은 길손들이 떠나는지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당쪽에서 발자국소리가 나더니 문앞에 와서 멎었다.

《주인어른 계시오이까?》

마방집 심부름군인 능마였다.

해주사람인 그는 원래 소금장사였다.

소금을 지고다니면서 집주인 영봉과도 알게 되였다.

한해전에 온 일가가 바다나물을 잘못 먹고 무리죽음을 당했다.

소금짐을 지고 길에 나섰던 능마는 하루아침에 홀애비가 되고말았다.

그의 불행을 가긍하게 여긴 영봉은 마방집에서 부엌일을 하는 과부를 그에게 붙여주었다.

그리고 장사물계를 아는 능마에게 길손들의 숙식비를 회계하는 일을 맡겼던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영봉은 문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능마는 영봉에게 허리굽혀 인사를 하고 찾아온 사연을 말했다.

《관가에서 형리어른이 와서 지금 주인어른을 찾고있소이다.》

《형리가? 왜 나왔다는건가?》

《글쎄요. 사령과 군졸들까지 여러명 달구 왔소이다.》

《알겠네, 내 밥을 먹고 나간다구 이르게.》

영봉은 문을 닫고나서 막동이네한테로 얼굴을 돌렸다.

《자네들은 여기서 한잠씩 자라구.》

봉산은 눈이 휘둥그래서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거 혹시 무슨 냄새를 맡구 우리를 잡으러 온것이 아니요?》

털벙거지를 쓴 막봉이 맞장구쳤다.

《그럴수도 있수다. 형님네를 잡으라는 임금의 수배령이 관가마다 떨어졌어요.》

윤산은 막봉의 손을 잡았다.

《아니, 그게 정말인가?》

봉산과 수안이도 놀라운 눈길로 막봉을 쳐다보았다.

올방자를 틀고앉은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놀랄건 없어. 언젠 우리한테 수배령이 내리지 않았댔니? 수안고을 최형방이란 놈이 소동을 피웠다는데… 그때 그놈을 끝까지 잡아서 목매달아야 하는건데…》

막봉은 부산스레 털벙거지를 쓰면서 일어났다.

《내 얼른 나가서 알아보겠어요.》

영봉은 헤덤비는 막봉을 제지시켰다.

《막봉아, 가만히 있거라. 내 나가서 알아볼테니…》

밖에 나갔던 영봉은 얼마 안있어 방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사이 방에 누워 식곤증을 풀던 막동이네는 그가 들어오자 자리에서 일어나앉았다.

영봉은 어처구니가 없는듯 허구프게 웃었다.

《헛참, 노루 제 방귀에 놀란다더니…》

막동이 물었다.

《무슨 일인데…》

《글쎄 저것들이 천개산에 김막동패당이 숨어있다는 소식을 듣구 어제밤에 거기에 갔댔다누만. 미운놈 떡 한개 더 준다고 먹을걸 주었네.》

윤산이 주인에게 물었다.

《천개산에요? 그 산이 어디 있게요?》

《여기서 곡산쪽으로 한나절쯤 가느라면 있네.》

봉산이 끼여들었다.

《거 혹시 그쪽에도 우리 형님과 이름이 같은 패당이 있는게 아니요?》

《글쎄 그야 모르지. 하여간 자네들은 오늘 옴짝말구 있게. 괜히 봄꿩신세가 되지 말구.》

영봉은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지금껏 입다물고있던 수안이 막동에게 물었다.

《형님, 봄꿩신세라는건 무슨 말이요?》

막동은 자리에 벌렁 나가누웠다.

《봄에 꿩이란 놈이 숲속에 가만히 숨어있으면 좋겠는데 제 스스로 울어서 자기를 드러내 화를 당한다는 말이야.》

수안의 눈은 반짝거렸다.

《그러니 우리더러 가만히 숨어있으라는 말이요?》

《그래, 입방아는 그만 찧구 이젠 한잠 푹 자자꾸나.》

막동은 자리에 누운채 선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그들은 어찌도 깊은 잠에 빠졌는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였다.

중천에 뜬 해가 서산쪽으로 약간 기울사 할무렵이였다.

막동이네가 정신없이 자고있는 방으로 집주인 영봉이 들어섰다.

그는 쿨쿨 자고있는 그들을 돌아가면서 두들겨깨웠다.

《이사람들아, 일어들나라구, 어서!》

잠에서 채 깨여나지 못한채 업혀가는 돼지눈이 되여 앉아있는 그들을 본 영봉은 어쩐지 코마루가 찡했다. 저렇게 어질고 순박한 사람들이 오죽했으면 칼을 들고 나섰으랴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영봉은 아직 잠에 취해있는 막동의 손을 잡았다.

《이보라구, 어서 별채로 가자구.》

《…》

영봉이 그들에게 재촉했다.

《막봉이와 려아가 자네들이 오기 전에는 잔치상을 안받겠다누만. 어서 가자구.》

그제야 막동은 정신이 피끗 들었다. 그리고는 제 이마를 쳤다.

《아차, 내 그걸 깜빡 잊었구만요. 산에 가서 노루라도 한마리 잡아오자고 했댔는데 그만 그 형리인지 한놈이 왔다는 생각에 옴해있다나니…》

《무슨 그런 소릴…》

《아니요. 남의 집경사에 상호부조를 하는건 조상전래의 례법이 아니요. 빈손으로야 어떻게…》

영봉은 막동을 나무랐다.

《이사람, 지금 무슨 말을 해, 그래 죽을 구뎅이에 빠졌던 색시를 구해왔는데 이이상 더 큰 부조가 어디 있다구. 잔말말구 동생들을 데리구 어서 건너가자구.》

잔치상은 소박하면서도 정갈했다.

반나절사이에 박순이며 봉옥이, 을녀 그리고 한씨와 홍씨 등 녀인들이 기울인 정성이 한눈에 알렸다.

잔치상을 받은 신랑, 신부는 첫 술잔을 막동에게 권했다.

그러자 막동은 펄쩍 뛰였다.

《아닐세, 이건 어머님께 먼저 드려야 하우다.》

영봉은 막동에게 권했다.

《그러지 말구 어서 받게. 자네들이 아니라면 이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앉기나 했겠나?》

신랑옷을 입은 막봉은 울먹거렸다.

《형님, 정말 고마와요. 우리 부부는 죽을 때까지 이 은혜를 잊지…》

막봉은 말끝을 맺지 못한채 흐흑 하고 흐느꼈다.

술잔을 받쳐든 려아 역시 머리를 숙이고 흐느꼈다.

《오라버님, 이 신세를… 고맙사와…》

방바닥에 꿇어엎드린 막봉은 어깨를 떨었다.

《형님, 버러지같은 이놈은 지금껏 막돌처럼 남의 발길에 채워서 살아야 하는걸루만 알았어요. 나두 사람대접을 받구보니… 형님, 이놈을 동생으로 받아주세요.》

막동은 눈물이 그렁해서 막봉의 손을 잡았다.

《막봉이, 어서 일어나라구. 이 기쁜 날에 울면 안되네.》

《형님-》 하고 막봉은 막동의 넓은 가슴에 와락 안겼다.

막동은 말없이 그의 잔등을 어루만졌다.

모여앉은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상옆에 앉은 영봉이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막봉아, 그만 그쳐라. 어서 형님한테 술을 권해야지. …》

막동은 려아가 권하는 술잔을 단숨에 쭉 들이켰다.

《처녀총각의 결합은 인생만복의 원천이니 부디 아들딸 많이 낳구 잘살기를 바라네.》

다음술잔은 윤산에게 차례졌다.

신랑신부가 그에게 권하려 하자 윤산은 손을 가로저었다.

《아니, 난 좀 큰 그릇에 주게. 그렇지 않으면 새색시를 다시 자루안에 넣구말겠어.》

윤산의 말에 그만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봉옥이가 국사발을 가져다 려아에게 주었다.

윤산은 사발에 술을 붓는 막봉에게 말했다.

《막봉이, 한방울도 곯지 않게 가득 부으라구. 그렇지 않으면 자네 새색시를 정말 자루에 넣겠네.》

사발을 받쳐든 려아도 얼굴을 붉히며 살짝 웃었다.

윤산은 또다시 너스레를 떨었다.

《아하, 첫날색시가 실없이 웃으면 첫 애기는 령락없이 딸쌍둥이를 낳는다네. 그러니 서방을 만난게 너무 좋아 웃음이 나와두 꾹 참으라구.》

윤산의 그 말에 려아는 더더욱 방실방실 웃으면서 술사발을 내밀었다.

《저것 보지, 웃지 말라는데 더 웃누만. 에라 모르겠다. 이 윤산이 딸쌍둥이 술을 먹는다.》

윤산은 술사발을 두손에 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그 모습을 본 막동의 가슴은 뭉클했다.

자기는 가슴이 타다 못해 재만 가득 안고있으면서도 막봉의 혼례식을 즐겁게 해주려고 우스개소리를 하는 윤산의 그 마음이 더없이 갸륵했던것이다.

그 순간 막동은 윤산의 앞에 있는 려아가 이순이같이 보였다.

얼굴생김새며 성품이 어딘가 모르게 이순이와 비슷했다.

그토록 불쌍하게 자라온 이순이, 그가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막동의 가슴은 쓰리고 아팠다.

이렇게 시작한 잔치는 해가 서산에 기울어서야 끝났다.

잔치가 있은지 이틀째 되는 날 아침이였다.

영봉의 방에는 막동이네 형제들과 막봉이 그리고 능마가 서로 마주앉았다.

영봉은 마주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내 어제 능마를 재령쪽으로 심부름을 보냈댔네. 실은 이전부터 나에게 장수산 객주집을 팔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그것을 알아보려구 말일세.》

《…》

《거기서 답변이 왔는데 지금 당장이라두 오라누만, 그래 내 생각에는 이 능마와 함께 녀자들을 거기로 빼돌리자는거네. 자네들 생각은 어떤가?》

막동이 찬성했다.

《제 생각엔 그게 좋을것 같수다. 꼬리가 길면 잡힌다구 여기에 그냥 머물러있어서는 안되겠수다.》

영봉은 두손을 마주비볐다.

《마침 재령쪽 벌방에는 금년초부터 하삼도사람들이 이주해온것이 많아서 아직 호적등본도 변변치 않네. 이틈에 들어가 틀고앉으면 좋을상싶네.》

윤산이도 맞장구를 쳤다.

《그게 좋을듯 하우다. 거기에 객주집을 차려놓으면 우리도 나다니기가 편안할것 같수다. 막동형님, 그렇게 합시다.》

막동은 머리를 끄덕였다.

그들은 장수산 객주집으로 능마의 부부와 한씨와 봉옥이, 홍씨와 려아를 보내기로 하였다.

을녀는 마방집에 남아서 동자질을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막봉은 이길로 재령관가에 들어가 군졸노릇을 계속하면서 막동이네와 련계를 짓기로 약속하였다.

김막동을 비롯한 남정들은 나라에서 수배를 받고있는 몸이니 지금 당장은 여기저기 옮겨가면서 살기로 작정하였다.

그동안 말없이 이야기만 듣고있던 능마가 입을 열었다.

《저 옮길바엔 빨리 해야 할것 같수다. 어제 재령에 갔다오면서 듣자니까 가마소 강부자가 이 마방집을 눈독들이고있다고 합디다.》

막동이 다급히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요?》

《강부자네 하인들가운데 내가 소금짐을 지고다닐 때 아는 사람이 한명 있지요. 어제 길가에서 만났댔는데 그가 하는 말이 막봉이 어머니가 여기에 있다는걸 알구 려아를 분명히 끌고갔을거라구 했다나봐요.》

영봉은 주먹을 부르쥐였다.

《무지막지한 그놈이 꼭 무슨 일을 치긴 칠걸세. 그러니 그놈한테 언질을 주지 않게 하는게 상책일세.》

막동은 영봉을 바라보았다.

《까짓거 오래 끌게 있어요? 오늘 낮에 제꺽 옮겨가는게 좋을것 같수다.》

이리하여 이날 낮으로 그들은 재령 장수산입구에 있는 객주집으로 떠나갔다.

신계에서 재령까지 하루반나절길이라 그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 막동이네는 군사차림에 말을 타고 멀찌감치에서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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