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정방산 성불사는 이날 명절과도 같았다.

사방에 세워놓은 의장기들이 가을하늘에 펄럭이였다.

군사들이 빙 둘러서서 진을 친 극락전앞에 있는 5층석탑앞에서는 노랑저고리에 분홍치마를 받쳐입은 기생들의 가무가 한창이였다.

성불사 청풍루의 넓은 마루우에는 산해진미가 무드기 쌓인 잔치상이 놓여있었다.

잔치상앞에는 도관찰사 김극검과 감영의 륙방관속들이 주런이 앉아 기생들이 부어주는 술잔을 비우면서 취흥을 돋구었다.

때는 한가위가 훨씬 지나 산에, 들에 단풍이 무르녹는 시절이라 솔솔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낟알향기, 과일향기를 실어와 코안을 간지럽히였다.

한양에서 재상벼슬을 하면서도 《청렴결백》하여 《정직한 관리》로 소문이 난 도관찰사 김극검도 코를 간지럽히며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기분이 뜬것 같았다.

게다가 옆에 있는 륙방관속들과 겨드랑이로 기여들어 귀간지럽게 불어대는 기생들의 단풍놀이 가자는 소리에 귀가 솔깃해진 김극검이다.

때마침 고을순시를 나왔던 참이라 이해 마지막단풍놀이를 여기 정방산에 펼쳐놓았다.

마당에서는 칭챙, 쿵쾅 울리는 징소리와 북소리, 가락맞게 울리는 저대와 장새납소리에 맞추어 무사차림을 한 기생들이 칼을 휘두르면서 무사춤을 추었다.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기생들이 칼을 휘두를 때마다 해빛에 번쩍거렸다.

모두들 장단에 맞추어 엉치를 들썩이면서 좋아라 돌아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극검의 머리에는 문득 며칠전 수안고을에서 올려보낸 첩보내용이 떠올랐다.

김막동이 패당을 지어 방아역에 몰려가 역리 리악의 목을 쳤다는것이였다.

그 생각이 들어서인지 기생들이 흔드는 칼빛이 눈앞에서 번뜩일 때마다 꼭 목덜미에 송충이가 기여오르는것 같았다.

김극검은 엉겹결에 손으로 목덜미를 문질렀다.

저도모르게 흘러나온 식은땀이 목덜미에 내뱄던것이다.

옆에 있던 행수기생 초향이가 김극검의 행동을 보고 재빨리 수건으로 그의 목덜미를 닦아주었다.

《아유, 무슨 땀을…》

본시 성정이 용렬하고 우유부단한 김극검이라 이렇게 진땀을 흘리면서도 감히 칼춤을 그만두라고 소리치지 못했다.

그의 속내를 다 알고있는 초향은 극검의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저 칼춤은 그만두게 하는게 어떠시와요.》

김극검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머리를 끄덕거렸다.

초향이는 옆에 앉아 파리 본 두꺼비처럼 입을 헤 벌리고 칼춤을 보고있는 례방에게 되알지게 소리쳤다.

《례방어른, 어서 저 칼춤을 그만두게 하라요.》

례방은 어안이 벙벙해서 초향을 바라보았다.

초향은 또다시 양양거렸다.

《아니, 관찰사님이 지금 저 칼춤을 보시며 땀흘리는걸 못보아요? 어서 그만두게 하라요.》

그제야 례방은 식은땀을 줄줄 흘리는 김극검을 알아보고나서 마당쪽을 향해 손을 저었다.

《그 춤은 그만두도록 해라.》

례방의 말 한마디에 한창 고조되던 풍악소리도 뚝 멎고 춤가락도 멈추어섰다.

일시에 마당은 조용해졌다.

마당에 서있는 사람들의 눈길은 김극검에게로 쏠렸다.

모여선 사람들의 눈길이 자기한테 몰려들자 김극검은 당황한 눈빛으로 례방에게 물었다.

《가무는 왜 그만두었느냐?》

그 물음에 례방은 황소같은 눈알을 떼룩거렸다.

《관찰사님이 좋아하시는것 같지 않아서…》

《일없다, 계속해라.》

례방이 다시 손짓하자 끊어졌던 풍악이 이어지고 기생들의 칼춤이 계속되였다.

김극검의 옆에 앉은 초향의 얼굴은 금시 새파래졌다.

(에익, 바지저고리같은 령감, 저렇게 주대없는게 어떻게 관찰사까지 되였을가?)

이때였다.

앞마당쪽에서 웬 고함소리가 울리더니 풍창거리던 풍악소리가 뚝 멎고 춤가락도 멈추어섰다.

온 마당이 쥐 죽은듯 조용했다.

청풍루아래에서 벽제소리를 울리며 한양에서 내려온 종사관 홍자하가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들어왔다.

그는 말에서 내리더니 곧장 관찰사앞으로 올라갔다.

김극검은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그앞에 다가선 홍자하는 지고온 참대통에서 어지를 꺼내여 김극검에게 두손으로 받쳐올리였다.

떨리는 손으로 어명을 받아든 김극검의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홍자하는 김극검에게서 어지를 다시 받아 큰소리로 읽었다.

《짐이 이미 여러번 재령전탄수관개공사를 빨리 끝내라고 하였는데 경은 무엇을 하고있는가. 전탄수관개공사는 나라와 왕실의 안녕과 장수를 위한 중대한 일이라는걸 경은 그래 모른단 말인가.

온 황해도민을 다 동원해서 어떤 일이 있어두 명년 봄까지 끝내도록 하라.

그리고 수안사람 김막동이 패당을 지어 관리들을 죽이고 백성들을 야료하였다니 천하에 무도한 놈이다. 군사들을 총동원시켜 그놈을 잡아들여 백성들의 안녕을 도모하도록 하라.

갑진년(1484년) 10월 열닷새》

어명을 받은 김극검은 허리를 굽혔다.

《황공무지로소이다.》

그러자 신하들모두가 《황공무지로소이다.》고 합창했다.

오래간만에 단풍놀이라는걸 조직해서 한바탕 즐겨보려던 김극검과 황해도감영의 관리들은 불에 덴 소처럼 와뜰 놀랐다.

더우기는 황해도에 체찰사로 파견되여온 리철견이 한양으로 올라가서 없는 틈에 단풍놀이를 벌렸는데 그의 종사관인 홍자하가 어명을 가지고 잔치판에 들이닥쳤으니 이야말로 야단이였다.

일이 안되는 놈은 자빠져도 코를 깬다더니 김극검의 일은 정말 배배 꼬이는것 같았다.

김극검은 자기 보다도 한참이나 등급이 아래인 종사관 홍자하앞에서도 벌벌 기였다.

종사관 홍자하는 체찰사 리철견의 말이라고 하면서 가을걷이를 빨리 다그쳐끝내고 11월 초순부터 재령전탄수관개공사에 도안의 백성들을 총동원시키라고 하였다. 그리고 형방과 병방에게는 도감영과 각 고을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김막동일당을 당장 잡아들이라고 야단쳤다.

종사관 홍자하앞에서 도감영의 륙방들은 허리를 굽신거렸고 김극검은 얼굴이 수수떡같이 되여 먼산만 쳐다보고있었다.

한쪽 구석에 몰려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초향은 어쩐지 한갖 종사관앞에서 어물거리는 김극검이 측은해보였다.

초향은 새별같은 눈을 반짝이면서 종사관 홍자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어딘가모르게 건방져보이는듯 한 그의 거동은 초향의 눈에 거슬렸다.

그러면서도 나라에서 중시하는 관개공사는 하지 않고 잔치판을 벌려놓았다고 또 아전을 죽였다는 김막동인가 하는 사람을 잡지 못했다고 야단당할 김극검이 걱정되였던것이다.

(저 종사관이란 사람도 사내이겠지. )

초향의 얼굴에서는 야릇한 웃음이 피여올랐다.

초향의 생각은 옳았다.

그날밤 종사관 홍자하가 류숙한 객관의 방안에서는 초향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늦게까지 흘러나왔다.

이 일이 있어서인지 어쨌든 도관찰사 김극검은 때아닌 때에 벌려놓은 《단풍놀이》잔치때문에 추궁받은 일이 없었을뿐아니라 그런 말조차 나돌지 않았다.

초향의 말대로 겉으로는 어리무던한것 같아도 속에는 구렝이가 들어앉은 김극검이 이것을 모를리가 없었다.

김극검은 한갖 천한 기생이지만 예지가 반짝이는 초향이가 더없이 고마왔고 사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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