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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막동형제가 방아역 역리인 리악을 요정낸 소식이 한양에까지 가닿아 조선봉건왕조의 9대왕인 성종의 귀에까지 들어간것은 갑진년(1484년) 9월 열닷새날이였다.

이날 한양에 있는 왕궁에서는 임금의 참석하에 조회가 한창 벌어지고있었다.

무슨 중요한 문제를 론의하는지 이날따라 조회는 한낮이 다 되도록 계속되였다.

옥좌에 앉은 성종은 앞에 서있는 황해도 체찰사 리철견에게 물었다.

《그래 재령전탄수관개공사는 언제면 끝낼수 있는고?》

키가 훤칠하고 이마가 벗어진 리철견은 얼굴에 비하여 보잘것없이 작은 눈을 반짝거리면서 왕에게 아뢰였다.

《금년가을부터 겨울내내 내몰아도 명년 봄까지는 안될것 같소이다. 빨라서 래후년 봄쯤에 가야 될듯 하오이다.》

성종은 눈을 크게 떴다.

《왜 그렇게 늦잡는단 말이냐? 짐은 경의 말을 듣고 년초에 하삼도에서 백성들을 이주시켜 황해도에 많이 보내주었는데 그들만 동원시켜도 공사는 벌써 끝냈을게 아닌가.》

리철견은 넓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문질렀다.

《상감마마께서 성은을 베풀어 하삼도(충청, 전라, 경상)에서 백성들이 이주해온것은 사실이나이다. 그런데 그 이주민들이라는게 장정이 없는 과부나 다 늙어빠진 홀애비들이 태반이고 게다가 남도에 살던 그들이 북쪽에 처음 오다나니 생소해서 아직 안착이 못되였소이다.》

성종은 그 말이 새삼스러운듯 리철견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게 사실인가?》

《사실이옵니다. 신이 직접 몇개 고을을 확인하여보았나이다.》

성종은 앞에 선 대신들쪽에 대고 물었다.

《호조판서 왔느냐?》

왕의 물음에 그곁에 서있던 내시가 소리쳤다.

《호조판서를 찾으신다. -》

대신들속에서 한 관리가 나서서 허리를 굽혔다.

《판서어른은 몸이 불편하여 출석하지 못했소이다. 신은 호조참판이오이다.》

성종은 그에게 물었다.

《경은 금년초에 하삼도에서 평안도와 황해도에 백성들을 이주시킨 수자를 알고있는가?》

《알고있소이다.》

《그럼 말해보라.》

호조참판은 끼고온 장부책을 펴들고 읊조렸다.

《에, 황해도에는 충청도에서 1만 2천 30호, 전라도에서 5천 80호, 경상도에서 8천 3백 73호 도합 2만 5천 4백 83호를 이주시켰소이다. 그리고 평안도에는…》

《그만해라. 그래 그것들이 모두 과부이거나 늙은 홀애비들인가?》

호조참판은 장부책을 또다시 들여다보면서 대답했다.

《그가운데 과부세대는 183호, 홀애비세대는 82호이오이다. 나머지는 량주가 다 있는 온전한 가호이나이다.》

성종은 리철견에게 머리를 돌렸다.

《호조에서 말하는것과 경의 말이 왜 이렇게 차이가 심한고?》

리철견은 작은 눈으로 호조참판을 쏘아보고나서 말했다.

《명부에는 그렇게 올라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소이다. 신이 알아본데 의하면 이주령이 떨어지자 군수, 륙방, 아전들에게 뢰물을 섬겨바쳐서 빠진 놈, 고을관리의 일가친척이라고 빠진 놈, 권세를 부려 다른 놈이 대신 이주한 놈, 별의별 놈이 다 있소이다.

이렇게 제일 힘이 약한 과부들과 늙은 홀애비들만이 쫓겨왔소이다.》

그러자 곁에 있던 호조참판이 체찰사 리철견에게 삿대질을 했다.

《령감은 무얼 안다고 상감마마앞에서 아무말이나 탕탕 하는거요?》

리철견이 대답질을 하였다.

《그래 내가 못할 말을 했소? 정말로 임금님께 충성하는 신하라면 이실직고를 해야 하지 않는가.》

《뭐라구? 그럼 내가 간신이란 말인가?》

《간신도 무서운 간신이요.》

두 신하가 옥신각신 하는것을 본 성종은 엄하게 소리쳤다.

《그만들 해라. -》

그 소리에 두 신하는 입을 다물었다.

성종은 목덜미가 벌겋게 충혈된 리철견을 넌지시 바라보았다. 비록 말은 거칠어도 언제나 무엇이든지 숨길줄 몰랐고 지어 귀맛좋은 소리를 해야 할 자리에서조차 좋은 말을 할줄 몰라 남들의 오해도 쉽게 사는 그였다.

그에게서 눈을 뗀 성종은 앞에 선 신하들을 둘러보았다.

《재령전탄수관개공사문제는 오늘 경연에서 강론이 끝난 다음 더 론의해보자. 그러니 경들은 자리를 뜨지 말고 기다릴지어다.》

《알겠소이다.》

성종이 옥좌에서 내려 내시들에게 떠받들려 들어가자 모여섰던 신하들도 제각기 물러났다.

리철견은 곁에 선 호조참판을 소 닭보듯 하다가 돌아서서 밖으로 나왔다.

그가 대궐밖으로 나오니 종사관 홍자하가 기다렸다는듯이 다가와서 귀속말로 뭐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리철견의 얼굴은 즉시에 컴컴해졌다.

종사관 홍자하와 함께 왕궁안에 있는 림시처소에 돌아온 리철견의 심중은 착잡했다.

방금전에 조정에서 심중하게 론의된 재령전탄수관개공사문제는 왕이 직접 내미는 일이였다.

여기에 왕이 관심을 모으게 된것은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재령벌에서 나는 쌀은 왕실의 기본식량이기때문이다.

리철견이 귀동냥으로 들은데 의하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봉건왕조의 왕실가문이 재령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것은 태조(리성계)가 먼저 왕조(고려왕조)에서 벼슬을 할 때부터라고 한다.

그때 개경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리성계는 어느날 신하들과 함께 황해도 곡산쪽으로 사냥을 하러 나갔었다.

하루종일 말을 몰아가면서 사냥놀이에 빠졌던 리성계는 날이 너무 어두워져서 개경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였다.

하여 곡산에서 사는 강씨성을 가진 부자집에서 하루밤 묵게 되였다.

이날 저녁 리성계는 강씨네 집에서 처음으로 재령쌀로 지은 쌀밥을 맛보았는데 참으로 별맛이였다.

기름기가 찰찰 도는 밥은 목구멍에 넣기만 해도 절로 넘어갔다.

지금까지 산해진미란 진미를 맛볼대로 맛본 리성계이지만 이 쌀밥만은 난생처음 먹는것이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여 리성계는 강부자네 집에 자주 드나들었고 나중에는 그의 딸을 후실로 맞아들였다고 한다.

이때부터 리성계는 재령쌀로 지은 밥만 먹었고 조선봉건왕조의 왕자리에 올라앉은 다음부터 왕족들모두가 먹게 되였다.

하여 당시에는 항간에서 재령쌀로 지은 밥을 리씨들인 왕족만 먹는 밥이라고 하여 《리밥》이라고 불렀다.

어느 왕 때인지는 모르나 한번은 왕이 직접 재령벌에 행차하여 보습을 들고 논을 갈았다고 하여 지금 그곳에는 《친경전》(왕이 직접 밭갈이를 했다는 밭)까지 생겨났다.

그런데 몇해째 가물이 들어 벼농사가 잘되지 못하여 왕실에 쌀을 보장하는것이 난문제로 되였다.

성종은 이것을 풀려고 손탁이 센 리철견을 황해도 체찰사로 파견해서 전탄수관개공사를 벌리게 하였던것이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리철견이 황해도에 내려가 공사를 책임지고 온 황해도땅을 뒤집다싶이 하면서 백성들을 내몰았으나 공사는 별로 진척되지 못하고있었다.

제일 걸리는것이 인력이였다.

그래서 금년초에는 임금의 어명으로 하삼도 사람들을 황해도에 강제이주시켰으나 그것마저도 이리 빠지고 저리 빠져서 과부나 늙은 홀애비들이 태반이였던것이다.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속이 타는데 외눈에 눈병이라더니 이번엔 수안에서 사는 김막동이 자기 패당을 거느리고 와서 방아역 역리를 죽였다는 소식까지 날아들었다.

지금껏 다른 지방에서는 폭도들이 들고일어났다 해도 황해도만은 조용했었다.

몇년전에 김막동패거리가 한때 날뛴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리철견이 황해도 체찰사로 작년에 내려갔을 때에는 조용했던것이다.

김막동패거리에 대한 소식은 어쩐지 리철견에게 불안감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이 지른 불티가 관개공사에 부역으로 동원된 사람들속에 튀였다간 큰 야단인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관개공사는 망하는 판이요, 관개공사를 망치면 리철견 자기의 목이 달아나는 판이다.

(어떻게 하든 김막동패거리를 없애버리던가 쫓아버려야 한다. )

이렇게 생각한 리철견은 자기가 먼저 임금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찾아가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리철견은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왕이 강론을 받고있는 경연청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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