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방아역 마을에는 군졸들로 한벌 덮이다싶이 하였다.

원래 대여섯명의 역졸들이 말을 먹여 기르면서 지키고있던 이곳으로 오늘은 수안고을 군졸들이 거의다 떨쳐나서 밀려왔다.

역리의 방에 앉아 마당에서 돌아치는 오합지졸과 같은 군사들을 바라보는 최형방의 귀전에는 군수령감의 호된 목소리가 따갑게 들려왔다.

…어제 저녁이였다.

그동안 해주감영에 다녀온 군수는 오자마자 김막동패거리를 붙들지 못하고 오히려 거기에 동원된 군사 태반을 잃었다는 말을 듣고 동헌이 떠나가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최형방 너 이놈,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고. 잡으라는 도적은 잡지 못하구 오히려 고을군사들만 사자밥으로 밀어넣었으니 네놈은 죽어 마땅하다.》

최형방은 얼굴이 새까맣게 되여 벌벌 떨었다.

군수는 최형방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이놈아, 대가리는 왜 달구 다녀? 책략을 꾸미라구 붙어있는것이 대가리야. 네 대가리는 메돼지대가리보다두 못해. 그러니 아녀자 몇을 죽이구 돌아치다가 아까운 군사들만 산귀신으로 만들지, 등신같은 놈.》

《…》

《나무는 뿌리채 뽑아버려야 더 자라지 못하는 법이야. 그런데 뿌리는 둬두구 아지만 잘라버렸으니… 미련한 놈, 이거야 잠자던 호랑이의 수염을 다쳐놓은 격이 되지 않았나 말이다.》

《…》

《다른게 없다, 고을군사를 총 출동시켜 막동이네 패거리를 꼭 산채로 잡아서 내앞에 끌어다놓으라. 최형방, 알겠느냐?》

최형방은 허리를 굽신거렸다.

《알겠소이다.》

《이번까지 막똥인지 쇠똥인지 하는 그 패당을 붙들지 못하면 네놈의 목을 치겠으니 그리 알라!》

이리하여 밤중으로 군사들을 거느리고 방아역으로 달려왔고 이제 점심이나 먹이고는 무원골로 쳐들어갈 계획이였다.

최형방이 생각에 잠겨 멍청히 밖을 바라보고있는데 그곁으로 털보가 다가섰다.

《형방님, 역리님이 점심을 드시러 오라고 하시와요.》

최형방은 오금을 펴고 일어섰다.

《저 군졸들은 밥을 먹였냐?》

《예, 지금 댓집에 나누어 밥을 짓는데 이제 인차 먹게 될것이와요.》

《지금은 일각이 천추같은 때이니 빨리 서둘러라.》

《알겠소이다.》

최형방은 허리에 찬 칼을 빙 돌려 옆에 붙여놓고는 방에서 나와 마당에 내려섰다.

그러자 마당에 널려있던 군졸들이 꼿꼿이 섰다가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최형방은 그것을 본체만체 하고 역리 리악의 집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였다.

그때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신계쪽에서 오는 길가로 군사들이 탄 다섯필의 말이 먼지를 뽀얗게 일구면서 달려왔다.

마당 여기저기에 널려있던 군졸들이 저저마다 목을 빼들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말들이 어찌도 빨리 달리는지 순식간에 역마당으로 들이닥쳤다.

다급히 달려온 말들은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오흐흥 소리를 지르면서 앞발을 높이 쳐들며 멈춰섰다.

역사앞의 마루에 앉아있던 털보가 벌떡 일어서서 눈이 퀭하여 말에 탄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말우에서 한 사람이 털보에게 소리쳤다.

《역리가 어디 있느냐?》

소리치는 사람을 마주보던 털보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두손을 바들바들 떨면서 비명을 질렀다.

《막…막동이다!》

털보가 채 소리도 치지 못했는데 말에서 휙 하고 오라줄이 날아가 그의 목에 털썩 걸렸다.

말을 탄 군사가 그것을 나꾸어채서 당기자 털보는 썩은 나무 꺼꾸러지듯 마루우에 자빠져 개 끌려오듯 질질 끌려왔다.

털보의 말대로 말을 탄 군사들은 무원골의 원한을 풀러온 막동과 그의 동생들인 윤산과 봉산, 수안이였다.

다른 한 사람은 무사복차림을 한 봉옥이였다.

봉옥은 무원골에 들어온 관군이 아이들과 녀인들을 무참히 죽이는것을 목격한 사람이였다. 그는 마을에 기여들었던 원쑤들을 모조리 잡아내겠다고 떼를 써서 따라왔던것이다.

수안이가 던진 오라줄에 목이 매여 질질 끌려온 털보에게 김막동이 물었다.

《이놈아, 역리가 어디 있어?》

땅바닥에 밀리워 흙투성이가 된 털보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자기 집에서 점심밥을…》

봉옥은 털보에게 야무진 목소리로 따졌다.

《최형방도 거기 있느냐?》

털보는 고개를 조아리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그렇소이다. 한번만 살려주시우.》

이 광경을 목격한 군졸들이 병쟁기를 들고 우르르 막동이네 주위를 둘러쌌다.

막동은 그들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놀라지들 말아, 내가 바로 너희들이 잡겠다고 하는 김막동이다.》

그러자 군졸들속에서 소요가 일어났다.

《저놈을 잡아라. -》

그 소리가 터지기 바쁘게 막동의 손이 언뜻하더니 소리친 군졸이 《아이쿠-》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넘어졌다.

어느새 날아왔는지 막동이 던진 돌멩이가 그의 입을 때렸던것이다. 이발이 부서진 그의 입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그것을 본 군졸들의 태도는 각이했다.

어떤 축들은 겁에 질려 몸을 사렸고 어떤 축들은 병쟁기를 들고 접전하려고 들었다.

막동은 그들을 향하여 소리쳤다.

《네놈들은 우리와 한번 해보자는것인데 어디 덤벼봐라. 우선 이것부터 받아라!》

막동이 던진 돌멩이가 맨앞에서 다가들던 군졸의 이마를 때렸다.

그러자 그놈은 이마를 싸쥐고 너부러졌다. 깨여진 이마에서는 피가 샘솟듯 하였다.

이것이 신호가 되여 막동의 옆에 있던 동생들이 다가드는 군졸들속으로 말을 몰았다.

그들이 군졸들을 한번 꿰질러지나가며 팔을 휘두르자 땅바닥에는 여러개의 모가지가 툴렁툴렁 익은 돌배떨어지듯 하였다.

그 광경을 본 군졸들은 모두 겁에 질려 흩어졌다.

막동은 그들에게 소리쳤다.

《우리는 구태여 너희들과 싸우려 하지 않는다.

모두 손에 든 병쟁기들을 내앞에 가져다놓고 물러서라! 그렇게 하지 않는자는 용서치 않겠다!》

막동의 추상같은 호령에 군졸들은 모두 막동의 앞에 창과 칼을 비롯한 병쟁기들을 무드기 쌓아놓았다.

막동은 병쟁기를 버린 군졸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들의 원쑤도 아니요, 도적도 아니다. 도적놈은 오히려 백성들을 못살게 구는 량반부자놈들이다. 이걸 똑똑히 알라. 만약 앞으로 너희들속에서 다시 우리를 붙들러 오는 놈이 있으면 모두 저놈들처럼 될게다.》

막동은 방금 자기네한테 덤벼들었다가 목없는 귀신이 되여 땅바닥에 나딩구는 군졸들의 시체를 가리켰다.

그것을 본 군졸들은 사시나무 떨듯 하였다.

《모두들 제집으로 가던지, 어디로 가던지 마음대루 하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군졸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면서 뿔뿔이 달아났다.

막동은 오라줄에 목이 매여있는 털보에게 소리쳤다.

《이놈아, 어서 역리네 집으로 가자, 앞서라!》

털보는 겁에 질린 눈길로 막동을 보고나서 굽신거리면서 앞장에 섰다.

역리 리악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앞에 이른 막동은 방안에 대고 소리쳤다.

《역리 있느냐? 어서 나오너라!》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막동은 또다시 소리쳤다.

《역리 있느냐. 어서 나와!》

그제야 방안에서 리악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어떤 놈이야?》

막동은 곁에 있는 봉산과 수안이에게 눈짓했다.

말에서 뛰여내린 그들은 칼을 빼들고 마루에 올라섰다.

막동은 다시 문에 대고 소리쳤다.

《네놈이 그렇게 찾고있는 김막동이 왔다. 어서 나오라!》

《뭐라구? 막동이라구?》 하면서 리악은 문을 벌컥 열어제꼈다.

리악은 자기앞에 정말로 무사복차림을 한 막동이 서있는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막동은 조소어린 눈길로 리악을 쳐다보았다.

《내 오늘 네놈들과 계산할것이 있어서 왔다. 어서 나와!》

리악은 문지방에 두손을 뻗치고 선채로 막동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김막동 이놈, 오늘은 내 손에서 못 빠진다.》

막동의 옆에 있던 봉옥이 소리쳤다.

《이놈아, 나도 왔으니 어서 나오라!》

그제야 봉옥을 알아본 리악은 얄궂은 웃음을 띠였다.

《이것 봐라, 봉옥이 네년두? 네년이 목숨이 질기긴 질기구나.》

봉옥은 입술을 옥물고 리악을 쏘아보다가 소리쳤다.

《내 네놈을 죽이기 전에는 죽을수가 없어 이렇게 살아왔다. 이 천하에 찢어죽일 놈아!》

그 말에 리악은 가슴이 찔리는지 말없이 봉옥을 노려보았다.

막동은 리악에게 또다시 소리쳤다.

《이놈아, 네놈이 지금 여기에 끌어온 군졸들을 믿고 흰소리치는것 같은데 그놈들은 이미 우리가 요정을 냈으니 그리 알고 어서 나와!》

리악은 오히려 허세를 부렸다.

《네가 아무리 난다긴다해두 그렇게는 안될걸. 오늘 너희들은 그 군사들한테 꼼짝 못하고 잡힐것이니 미리 손을 드는것이 좋을게다.》

막동은 호탕하게 웃었다.

《미꾸라지가 룡이 될 꿈을 꾼다더니 하… 네놈이야말로 천하에 천치바보같은 놈이다. 윤산아! 네 말뒤에 숨은 그놈을 보여주어라.》

윤산이가 말뒤에서 목이 묶이운채 벌벌 떨고있는 털보를 끌어당겨 리악의 앞에 내세웠다.

《이놈아, 어서 말해라.》

털보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역리님… 고을에서 온 군졸들은 한명두 없수다.》

그 말에 리악은 펄쩍 놀랐다.

《뭐라구? 그게 사실이냐?》

《예, 더러는 죽구… 모두 도망을…》

털보의 말을 들은 리악은 눈앞이 아찔했다.

리악은 당황한 눈길을 어디에 둘지 몰라 허둥거렸다.

막동이가 마루우에 있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얘들아, 그놈을 끌어내라!》

봉산과 수안이가 리악의 멱살을 부여잡고 끌어당기자 리악은 두손으로 문턱을 떡 뻗치고 발악했다.

그러자 성이 난 봉산은 리악의 허벅다리를 걷어찼다.

《아이쿠-》

리악은 다리를 그러쥐고 방금까지 먹다가 만 밥상우에 나동그라졌다.

방안으로 달려들어간 봉산과 수안은 리악의 목에 오라줄을 씌워가지고 끌고나왔다.

마당에 끌려나온 리악을 보고 봉옥이 소리쳤다.

《최형방은 어디 있어?》

리악은 모르겠다는듯 머리를 흔들었다.

《그놈도 마저 잡아야 한다.》

막동은 소리쳤다.

그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모두 리악의 집을 샅샅이 뒤졌으나 그놈은 그림자도 없었다.

막동은 리악에게 따졌다.

《최형방이 어디 갔어?》

리악은 기여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에서 오기 좀전에 밖으로 나갔는데 모르겠소.》

《분명히 여기서 점심은 먹었어?》

《먹었소.》

그들이 또다시 집안팎을 뒤졌으나 최형방은 어디에 숨어들어갔는지 도무지 찾을길 없었다.

그때 최형방은 밥을 먹고난 후에 뒤가 마려와 뒤간에 들어가있었다. 리악의 집에서 변고가 나자 나오지 못하고 뒤간에 주저앉아 떨고있었던것이다.

막동이네는 미처 뒤간까지 뒤질 생각은 못하였다.

집안팎을 다 뒤져서도 최형방을 끝내 찾아내지 못한 막동이네는 리악과 털보의 모가지를 매여 끌고나왔다.

곁에서 동생들이 이놈들이 무원골에 가서 못된짓을 한것처럼 리악의 집을 불태워버리자고 막동에게 말했다.

막동은 윽윽 벼르는 동생들을 보고 말했다.

《내 생각에도 이놈의 집을 불태우고 씨종자를 다 잡아죽였으면 씨원하겠다. 그러나 그건 인두겁을 쓴 짐승들이나 할짓이다. 우린 그런 짐승은 아니니 그냥 가자.》

그 말에 동생들은 더 우기지 못하고 주먹을 부르르 떨면서 막동을 따라나왔다.

방아역 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둔덕에 이른 그들은 목매여 끌어온 리악이와 털보를 땅바닥에 꿇어앉혔다.

리악과 털보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 하였다.

막동은 그들의 가련한 몰골을 쳐다보면서 엄하게 소리쳤다.

《이놈들아, 네놈들은 살려주기엔 너무나도 엄청난 죄를 지었다. 아마 네놈들을 살려주면 저 하늘이 천벌을 내릴게다. 저놈들의 목을 사정없이 쳐라!》

윤산이 리악의 목을 치려고 칼을 쳐든 순간 봉옥이 소리쳤다.

《가만, 그 칼을 이리 줘요.》

윤산에게서 칼을 빼앗아든 봉옥은 리악의 앞에 다가섰다.

《이놈아, 이건 네놈한테 억울하게 죽은 우리 무원골의 아이들과 녀인들의 몫이다. 그리구 차라리 너같은 놈을 낳지 말았어야 할 네 에미의 몫이다. 받아라!》

봉옥은 이를 악물고 사정없이 리악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봉옥의 칼을 맞은 리악은 그자리에 푹 꼬꾸라졌다.

그처럼 부드럽고 인정미가 넘쳐나던 봉옥에게서 처음으로 뭇귀신도 벌벌 떨게 독이 오른 모습을 본 막동을 비롯한 남정들은 더욱더 비분강개해졌다.

그들은 리악과 털보의 모가지를 나무우에 매달아놓은채 저주로운 방아역을 떠났다.

막동이네가 리악의 집을 나선 다음 뒤간에서 나온 최형방은 숲속에 몸을 숨겨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허둥지둥 고을쪽으로 달아나던 최형방은 동구밖 둔덕우에 서있는 나무가지에 매달려 데룽거리는 리악과 털보의 모가지를 보고 기절하듯 넘어졌다.

한참만에야 일어난 최형방은 네발걸음으로 그곳을 벗어나 수안고을로 줄행랑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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