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다음날이였다.

아침일찍 일어난 막동은 마구간에 나가 말먹이를 주고나서 말편자에 끼인 흙을 쇠꼬챙이로 하나하나 파내주었다.

오늘 수안이와 봉산이를 데리고 먼길을 다녀와야 하겠기에 미리 말들을 준비시키는것이였다.

올해에는 밭에 심은 조와 수수가 어찌도 잘되였는지 곡식을 담아놓을 뒤주가 어방없이 모자랐다.

그래서 오늘 무원골에서 신계쪽으로 반에 반나절 걸음할만큼 떨어진 버들골에 가서 버들가지를 베여다가 뒤주부터 엮기로 작정했던것이다.

버들골이란 이름은 수안이가 붙인것인데 그가 신계에 있는 박순누이네 집에 드나들면서 보아둔 곳이였다.

막동이는 한창 일에 파묻혀 돌아가고있었다.

그때 등뒤에서 봉산이의 볼부은 소리가 울려왔다.

《형님은 또 혼자서… 정 이러시겠어요?》

봉산은 무작정 막동의 손에 든 나무꼬챙이를 빼앗았다.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허, 오늘아침에 봉산이가 또 무옥이 엄마한테 지청구를 들은 모양이지?》

《예, 내가요?》

《그럼 애기아버지가 됐는데 늦잠을 잔다구 말이야.》

《그런 지청구를 들었으면 좋기나 하지요.》

《그럼 자네가 절로 일어났나?》

봉산은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그것두 아니요. 실은… 에, 그만두겠어요.》

막동은 의아해서 물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었나?》

봉산은 당황해하면서 말했다.

《아, 아니요. 일이야 무슨 일…》

막동은 아무일도 없는체 하면서 말발통을 붙잡고 나무꼬챙이로 흙을 파내는 봉산의 팔목을 잡았다.

《내 눈은 못 속여, 그래 무슨 일이 있었나? 혹시 자네가 또 마음 착한 갑녀를 울려놓은게 아닌가?》

《예-에?》

봉산은 펄쩍 뛰였다.

그러나 집에서 있은 일을 말하려 하지는 않았다.

평시에는 쾌활하고 마음씨 고운 봉산이지만 간혹 제 기분에 맞지 않으면 울뚝밸을 잘 썼다.

그래서 갑녀를 더러 울려놓기도 해서 막동에게서 귀따가운 소리를 들은적도 여러번이였다.

이녀석이 또 오늘아침 풀떡거린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한 막동은 봉산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래 무슨 일인지 말하지 않을테냐?》

봉산은 겁에 질린듯 한 눈길로 막동을 쳐다보다가 제풀에 얼굴이 벌개져서 끙끙 갑잘랐다.

《저, 사실은… 아니, 그건…》

《이거 안되겠군, 어서 어머니한테 가자.》

막동이 말하는 어머니는 한씨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막동의 말에 봉산은 더욱 기겁해서 말했다.

《야, 아무일도 없었어요. 사실은…》

처녀때부터 변방에서 말타기를 잘하였고 성미가 괄괄해서 《고구려처녀》라고 불리워온 한씨는 인정이 깊으면서도 엄하였다.

그래서 무원골안에서는 한씨의 말이라면 모두가 따랐고 또 한씨의 엄한 요구앞에서는 누구도 거역하지 못했다.

일전에 봉산이 풀떡거리면서 갑녀를 울려놓은적이 있었다. 그때 봉산은 한씨에게 불리워가서 회초리로 종아리깨나 얻어맞은적이 있었다.

총각도 아니요 애아버지가 된 봉산은 동네사람들앞에서 회초리로 종아리를 얻어맞으면서 혼쭐을 뺐다.

그때 봉산은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굳게 맹세를 다졌다.

그때부터 봉산은 한씨의 말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올만큼 잘들었고 그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쉴 정도였다.

그러는 그가 이제 또 한씨한테 가자는 막동의 말에 어찌 기겁하지 않으랴.

《이녀석이 무슨 일을 저지르긴 저질렀어. 어머니한테 가자는데 꽁무니를 사리는걸 보니.》

봉산은 막동의 지꿎은 물음에 할수 없었던지 마초더미우에 풀썩 주저앉았다.

《에라, 형님한텐 숨기지 못하겠군요. 사실은…》

《자꾸 사실, 사실 하지 말구 어서 말해라.》

봉산은 또다시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집에서 있은 일을 말했다.

오늘 새벽이였다.

원래 새벽잠이 많은 봉산은 오늘따라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데 옆에서 자던 갑녀는 온데간데 없고 어린 무옥이만 새근새근 잠을 자고있었다.

봉산은 아마 아침밥 지으러 나갔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잠에 취한채 비틀거리면서 밖으로 나갔다.

뒤간에 가서 변을 보고 돌아오던 봉산은 깜짝 놀랐다.

어스름한 새벽빛에 마당 한쪽에 웬 사람이 쭈그리고앉아있는것이 눈에 띄웠던것이다.

황급히 그쪽으로 다가가서 보니 갑녀였다.

갑녀는 무슨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아니면 웬일인지 쭈그리고앉아 왝-왝 토하고있었다.

기겁한 봉산은 갑녀를 붙들고 물었다.

《갑녀, 왜 그래?》

갑녀는 황급히 입을 씻고나서 사양했다.

《아이, 일없어요. 어서 들어가 쉬세요.》

봉산은 어쩔줄 몰라 갑녀를 붙잡고 서성거렸다.

《아니, 왜 그래 엉?》

《일없어요, 어서 쉬세요.》

봉산은 부엌으로 달려가 동자질을 하고있는 정씨를 찾았다.

봉산의 말을 듣고 달려나온 정씨는 갑녀에게 다가가 잔등을 두드려주었다.

정씨는 봉산을 쳐다보면서 의미있게 웃었다.

《이사람 마음놓게. 어서 들어가 쉬라구.》

《…》

정씨는 우두커니 서있는 봉산을 이끌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이사람, 그렇게두 모르겠나?》

《?…》

《무옥이 에미가 또 애기를 설었어. 이제 무옥이한테 동생이 생겼단 말이야.》

그 말에 봉산은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말도 못했다.

그리고 어쩐지 쑥스러운 생각도 불쑥 들었고 여직껏 늦잠만 자고있던 제자신이 창피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길로 내가에 나가 세수를 하고 말을 돌보자고 나왔던것이다.

그의 말을 들은 막동은 껄껄 웃으면서 솥뚜껑같은 손으로 봉산의 잔등을 철썩 때렸다.

《아이구, 봉산이네 집에 경사가 났구나 응? 하…》

봉산은 쑥스러운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봉산아, 오늘부터 네 색시를 잘 돌봐주거라. 그리구 색시한테 일러라. 아이를 낳거들랑 쌍둥이, 아니 삼태자를 낳으라구 말이다.》

《예-에? 삼태자요?》

《그럼, 낳을바엔 삼태자를 낳으라구 해라. 이 무원골에 농사가 잘돼서 먹을것두 많겠다. 뭘 걱정할게 있냐? 좌우간 우리 무원골이 흥할 징조로다.》

봉산은 눈을 크게 뜨고 되물었다.

《형님은 아이가 생기는게 그렇게도 기쁘시우?》

《그렇지 않구. 세상에 이보다 더 길한 소식이 어디 있단 말이냐. 량반부자가 없는 여기서 우리 소리를 치면서 살아보잔 말이다. 어때 좋지?》

막동은 정말로 기뻤다.

무원골에 또다시 새 생명이 태여난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코노래라도 부르고싶은 심정이였다.

아침밥을 먹은 그들은 군복차림을 하고 허리에는 칼을 차고 나섰다.

그것은 혹시 산속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그렇고 더우기는 버들골까지 달리면서 무술도 익히자는데 있었다.

그들은 뒤따라 나온 녀인들과 아이들의 바래움을 받으며 길을 떠났다.

허나 그들은 이것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리별이 될줄은 꿈에도 몰랐다.

한편 병풍골에서 말을 타고 허겁지겁 산속을 헤매면서 내달린 리악은 저녁늦게야 방아역으로 돌아왔다.

마침 역참마을에는 털보의 련락을 받은 수안고을 최형방이 고을군사들까지 거느리고와서 기다리고있었다.

새로 임명된 최형방은 3년전에 윤산이네한테서 매를 맞고 장독이 올라 죽은 매골 최부자의 아들이였다.

몇달전까지 형리로 있던 그는 군수의 눈에 들어 형방자리까지 타고앉았었다.

김막동패거리라고 하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이를 부드득 갈면서 애비의 복수를 벼르던 그인지라 리악이한테서 막동이네 본거지에 대한 말을 듣자마자 그밤으로 홰를 켜들고 길을 나섰다.

날이 훤히 밝아서야 병풍골에 도착한 그들은 골바닥에서 지고온 아침밥을 먹었다.

최형방은 군사들의 사기를 돋구어준다면서 그들에게 반주로 술 한사발씩 먹였다.

밤새껏 헐떡거리면서 달려온 군사들은 주린 배에 술과 밥으로 포식을 하고나자 모두 윽윽 거리면서 큰일이나 칠것처럼 떠들어댔다.

왁자지껄 고아대는 군사들에게 다가간 최형방은 꽥 소리를 쳤다.

《조용들 하라.》

그러자 술독이 올라 얼근해서 고아대던 군졸들이 모두 함구무언했다.

최형방은 그들을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이제 우리가 붙들려고 하는 김막동패거리로 말하면 3년전에 우리 고을 오형방을 비롯해서 숱한 사람들을 죽인 놈들이다.

그래서 나라에선 이미 3년전에 수배령을 내려 이놈들을 붙들라고 했는데 아직까지 못 잡고있었다.》

그 말에 군사들은 수군수군하였다.

최형방은 곁에 서있는 리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던차에 이 방아역 역리가 끝끝내 이놈들의 소굴을 렴탐하였으니 참으로 나라에 충실한 사람이다.》

그 말에 리악은 파리를 본 두꺼비마냥 입이 쩍 벌어졌다.

《오늘 김막동도적패당을 붙잡는데 모두가 용맹을 떨치라. 그놈들을 붙잡는데서 공을 세운자는 벼슬도 주고 후한 상을 줄테다. 이건 내가 군수령감과 약조를 한거다. 생포를 하면 좋은것이요, 막 부득이한 경우에는 죽여도 좋다. 알겠는가.》

《알겠소이다.》

최형방은 리악을 돌아보면서 훈시했다.

《자, 이제부터는 네가 앞장에 서라.》

《알겠소이다. 그런데…》

《뭐냐?》

《컴컴한 굴속으로 들어가야 하니 홰군들을 앞세워야 할가 하나이다.》

《그렇게 하자. 가자!》

리악은 앞장에 서서 군사들을 이끌고 절벽앞으로 다가갔다.

바위밑에는 리악이 꽂아놓은 나무꼬챙이가 그대로 있었다.

리악은 그앞으로 다가가 바위돌을 밀어제꼈다.

그러자 시커먼 굴아구리가 열려졌다.

컴컴한 아구리는 꼭 독사가 입을 쩍 벌리고있는것 같아 모두 주춤거렸다.

리악은 홰를 켜들고 굴안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얼마쯤 들어가자 쏴- 하고 내물소리가 들려왔다.

리악의 뒤를 따라 군졸들이 칼과 창을 비껴들고 따라들어갔다.

물소리가 울려오는쪽으로 다가가던 리악은 흠칫 멈춰섰다.

동굴밖이 보였기때문이다.

뒤따르던 최형방이 리악에게 물었다.

《이놈들이 동굴안에 있다더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리악은 거적눈을 슴벅거렸다.

《글쎄요, 분명히 여기로 들어왔는뎁쇼.》

최형방은 리악을 쏘아보았다.

《네 눈으로 직접 봤어?》

《그, 그렇소이다.》

최형방은 군사들에게 동굴안을 모조리 뒤져보라고 호령했다.

홰를 켜든 군사들이 동굴안을 뒤졌건만 굴안에서 샘솟아 나오는 물밖에 더는 아무것도 없었다.

최형방은 동굴밖을 가리켰다.

《이놈들이 분명히 저쪽으로 도망쳤을것이니 나가보자. 역리가 앞서라!》

《예, 예.》 하며 리악은 앞장에 서서 동굴밖으로 나갔다.

밖에 나간 리악은 굴안에 대고 소리쳤다.

《형방님, 여기에 발자국이 있소이다.》

《뭐라구?》

최형방은 동굴밖으로 나와 리악이 가리키는것을 보았다.

시내가의 모래톱에 말발자국과 사람발자국이 또렷이 찍혀있었던것이다.

최형방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음, 이놈들이 여기로 도망친것이 분명하다. 야! 발자국을 따르라!》

리악은 칼을 빼들고 발자국을 따르기 시작하였다.

그뒤로 서른명가량의 군사들이 졸졸 따라갔다.

시내물을 따라 도래굽이를 돌아선 리악은 또다시 걸음을 멈추고 황급히 몸을 숨겼다.

《무슨 일인가?》

최형방이 꽥 소리쳤다.

리악은 조용하라는듯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최형방더러 빨리 오라고 손짓했다.

최형방이 리악에게 다가가자 리악은 그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형방님, 저기 그놈들의 소굴이 있나이다.》

《뭐라구? 어디?》

리악은 도래굽이에 몸을 숨긴채 목만 빼들고 앞쪽을 가리켰다.

최형방도 목만 빼들고 내다보았다.

과연 리악의 말대로 시내가옆에 네채의 살림집이 보였다.

《음, 여기가 그놈들의 소굴이 분명하구나.》

리악은 칼을 빼들고 흥분에 떠서 말했다.

《당장 달려들어 족쳐버리는게 어떠시와요?》

최형방은 도리질을 하였다.

《가만, 무작정 들이치다가는 랑패를 볼수 있다. 저놈들이 보통내기가 아니란 말이다.》

《예, 그건 사실이와요.》

최형방은 허리에 손을 얹고 오락가락하며 생각을 굴리다가 그를 지켜보고 서있는 군졸들에게 호령했다.

《리악이, 넌 털보랑 방아역졸들을 데리고 첫번째 집을 치라. 그리구 나머지 세집은 우리가 맡겠다.》

《알겠소이다.》

《모두 숲속에 몸을 숨기고 저놈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다가들었다가 내가 신호를 하면 일시에 들이치라.

반항하는자는 즉시에 죽여버리구 집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려라. 알겠는가?》

최형방의 령에 따라 리악을 비롯한 군졸들은 숲속에 몸을 숨긴채 은밀히 마을로 다가들었다.

얼마전에 막동을 비롯한 남정들을 버들골에 떠나보내고 아녀자들만 남은 마을은 조용하였다.

방금 아침밥을 먹고 설겆이들을 하고있을것이다.

숲속에 몸을 숨기고 집앞에까지 다가간 군졸들은 모두 최형방이 있는쪽을 쳐다보았다.

도래굽이에 나선 최형방이 손짓을 하자 군졸들이 일시에 일어나 집들에 달려들었다.

첫번째 집에 달려든 리악은 칼을 빼든채 무작정 문을 잡아챘다.

그바람에 부엌문짝이 나가 떨어졌다.

부엌에서 설겆이를 하던 봉옥은 깜짝 놀라 문쪽을 바라보다가 다시한번 놀랐다.

문앞에는 꿈에서조차 나타날가봐 걱정하던 흉악한 원쑤인 리악이 칼을 빼들고 서있었기때문이다.

이때 밖에서 최형방의 호령소리가 울려왔다.

《집안에 있는 놈들을 모조리 끌어내라!》

삽시에 조용하던 마을에는 소동이 일어났다.

술기운에 떠있는 군졸들이 꽥꽥 고아대면서 아녀자들을 밖으로 끌어냈다.

봉옥을 알아본 리악은 흉물스레 웃었다.

《봉옥이, 이게 얼마만인가? 그새 더 예뻐졌는걸. 히히…》

봉옥은 입술을 앙다물고 리악을 쏘아보았다.

리악은 꽥 소리쳤다.

《어서 나와, 이 쌍년!》

봉옥은 침착하게 걷어올렸던 저고리소매를 풀어내리면서 밖으로 나왔다.

방안에 뛰여든 털보가 한씨와 무남이를 밖으로 끌어냈다.

무남이는 너무도 겁에 질려 《할만.》하면서 한씨의 품에 파고들었다.

봉산이네 집마당에도 무옥이를 등에 업은 정씨와 갑녀가 끌려나왔다.

봉옥의 앞에 다가선 리악은 털이 부시시한 손으로 그의 턱을 쳐들었다.

《그래 막똥인지 쇠똥인지 한 놈은 어디 갔어?》

봉옥은 리악의 손을 뿌리쳤다.

《이년아, 대지 않을테냐?》

봉옥은 여전히 리악을 쏘아보면서 아무말도 안했다.

리악은 악이 나서 소리쳤다.

《이년아, 말하지 않을테냐?》

《…》

리악은 봉옥의 주위를 빙빙 돌면서 빈정거렸다.

《흥, 나하군 말하기 싫단 말이지, 좋다. 내 오늘 네년을 깔아뭉개놓고야말테다.》

리악은 봉옥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갑자기 달려들어 그의 저고리를 움켜잡았다.

순간 봉옥은 리악의 귀뺨을 호되게 후려갈겼다.

그바람에 리악은 비칠거렸다.

악이 난 리악이 또다시 달려들려고 하자 봉옥은 어느새 품에서 장도칼을 뽑아들었다.

《이 더러운 놈, 달려들기만 해라. 내 네놈의 목을 찔러죽일테다.》

이때 뒤에 섰던 털보가 륙모방망이로 봉옥의 어깨를 내리쳤다.

불의에 타격을 받은 봉옥은 《아-》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그것을 본 한씨와 무남이가 소리치며 달려왔다.

《애에미야-》

《엄마-》

한씨는 쓰러진 봉옥이를 잡아흔들었다.

《무남 에미야, 정신차려라. -》

그러나 봉옥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한씨는 리악을 쏘아보았다.

《이놈아, 어째서 죄없는 사람을 때리는거냐?》

리악은 한씨에게 빈정거렸다.

《네가 막동이 에미냐?》

《그렇다. 내가 에미다.》

《그 쌍놈의 자식이 무슨 일을 친줄 알기나 해?》

한씨는 봉옥이 떨군 은장도를 움켜잡고 일어서서 리악의 앞으로 다가들었다.

《안다. 제 아버지를 죽인 원쑤를 갚았는데 그게 무슨 죄냐?》

머리를 풀어헤친 한씨가 리악의 앞으로 다가들자 리악은 비실비실 뒤걸음을 치면서 소리쳤다.

《야, 저년의 칼을 빼앗으라!》

털보가 한씨에게 달려들어 칼을 잡은 손을 움켜쥐였다.

그러자 한씨는 손을 잡은 털보의 손목을 이발로 물어뜯었다.

털보는 기겁해서 소리치면서 물러났다.

한씨는 마주선 리악을 쏘아보면서 소리쳤다.

《이 원쑤놈아, 내 칼을 받아라.》

한씨는 비록 나이든 몸이지만 익숙한 동작으로 손에 들었던 은장도를 리악을 향해 내던졌다.

리악이 기겁하여 몸을 피하는통에 은장도는 리악의 왼쪽팔굽을 찔렀다.

리악은 팔꿈치를 움켜잡고 소리쳤다.

《저년을 죽여라!》

털보가 또다시 한씨에게 달려들어 륙모방망이로 내리쳤다.

정수리를 얻어맞은 한씨는 피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악에 받친 리악은 어쩔줄 몰라 엉엉 울고있는 무남이를 움켜잡아 방안으로 집어던졌다.

그리고는 막동의 집에 불을 질렀다.

삼단같은 불길이 순식간에 집을 휘감았다.

한편 봉산이네 집에 달려든 군졸들도 정씨와 갑녀에게 행패질을 하던 끝에 그들을 때려눕혀 방안에 넣어둔채 불을 질렀다.

최형리는 눈에 달이 떠가지고 꽥꽥 소리쳤다.

《집들을 모조리 불살라버리라. 도적놈들의 씨종자를 모조리 죽여버리라!》

순식간에 온 마을은 불길에 휩싸였고 삼단같은 불길과 검은 연기가 온 무원골을 메워버렸다.

군졸들은 불뭉치를 들고 미친듯이 돌아치면서 불을 질렀다.

마침 물을 길러 샘터에 갔다가 돌아오던 을녀는 이 광경을 보고 너무도 놀라 그자리에서 기절하고말았다. 그바람에 을녀는 불행을 다행히도 면할수 있었다.

막동이네가 마을이 불에 타고있는것을 알게 된것은 집들이 불에 달려 한창 타고있을 때였다.

베여낸 버들나무가지를 단으로 묶고있던 수안이가 갑자기 소리쳤다.

《형님, 저게 웬 연기요?》

그 말에 막동이도 봉산이도 허리를 폈다.

《저게 마을쪽이 아니요?》

봉산은 눈이 화등잔만 해서 소리쳤다.

《옳다. 마을에 무슨 변고가 생긴것이 분명하다. 빨리 가자.》

그들은 황급히 말을 타고 마을을 향해 내달렸다.

그들을 태운 말들은 숲속을 꿰질러 쏜살같이 내달렸다.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둔덕우에 올라선 막동이네는 깜짝 놀랐다.

네채의 집이 모두 불속에 잠겨있었던것이다.

그리고 마당에서 오락가락하는 군졸들이 눈에 띄웠다.

막동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 원쑤놈들이?》

옆에 차고있던 돌주머니를 움켜잡은 막동은 말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막동을 태운 청부루는 네굽을 높이 들고 습보로 내달렸다.

그뒤를 따라 칼을 빼든 봉산이와 수안이가 쏜살같이 내달렸다.

마을앞에 이른 막동은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놈들아!》

막동은 말을 타고 놈들속으로 내달리면서 돌멩이를 던졌다.

그가 손을 휘두를 때마다 군졸들은 이마빡이나 볼을 싸쥐고 꺼꾸러졌다.

그들을 발견한 리악이 소리쳤다.

《막동이다! 저놈을 잡으라!》

군사들이 우르르 막동이쪽으로 달려들었다.

어느새 칼을 빼든 막동은 군사들속으로 말을 달리면서 칼을 휘둘렀다.

뒤따라 달려온 봉산이와 수안이도 돌아가면서 군졸들을 족쳤다.

순식간에 열댓놈의 군졸들이 땅바닥에 너부러졌다.

이것을 지켜본 최형방이 소리를 쳤다.

《야! 어서 동굴쪽으로 피하라!》

리악과 최형방은 걸음아 날 살려라 앞장에 서서 동굴쪽으로 달아났다.

막동은 달아나는 군사들을 뒤쫓아 또 여러놈을 잡아죽였다.

동굴앞에 이른 막동은 그자리에 멈춰섰다.

뒤따라온 봉산과 수안은 막 동굴안으로 들어가려고 헤덤볐다.

막동은 팔을 벌려 그들을 막았다.

봉산은 목메여 소리쳤다.

《형님, 놓으라요. 저놈들이 사람들을 다 죽였어요!》

수안과 봉산은 막동의 가슴을 주먹으로 쾅쾅 두드렸다.

마을로 돌아온 막동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너무도 처참하여 아무말도 못하였다.

그때까지 마당에 쓰러진 봉옥이도 한씨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다.

봉산은 연기가 피여나는 집속에 뛰여들어 정씨와 갑녀, 무옥이를 찾으면서 헤덤볐고 수안은 자기대로 을녀와 아이를 찾아 재더미속을 뒤지며 돌아갔다.

이때 숲속에서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을녀의 잔등에 업힌 무성이가 잠에서 깨여나 울고있었던것이다.

허겁지겁 숲속으로 달려간 수안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을녀와 무성이를 안고나왔다.

재더미속을 뒤지던 봉산은 불속에서 꺼멓게 타죽은 정씨와 갑녀의 시신을 보고 그자리에서 기절하여 쓰러졌다.

마침 막동이 달려와 봉산을 끌어냈기에 망정이지 그 역시 불속에서 타죽을번 하였다.

쓰러진 사람들가운데서 제일먼저 정신을 차린것은 을녀였다.

을녀는 곡성을 터치면서 마을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들에게 말하였다.

막동은 수안이와 을녀와 함께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봉옥이와 한씨, 봉산이를 간호하느라 정신없이 돌아쳤다.

신고끝에 봉옥이와 한씨, 봉산이도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목메여울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막동은 속으로 피눈물을 삼키였다.

그럴수록 행복의 요람을 모조리 빼앗아간 원쑤놈들에 대한 증오로 가슴이 뒤번져졌다.

더우기 봉옥이한테서 방아역 역리인 리악이와 고을의 최형방놈이 쳐들어왔댔다는 이야기를 듣고나니 당장이라도 달려가 그놈들의 목부터 쳐야겠다는 복수심으로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일어난 봉산은 막동의 앞가슴을 부여잡고 소리쳤다.

《형님, 이 원쑤를 어떻게 갚으면 좋겠소. 저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짐승보다 못한 놈들이요. 아-》

막동은 봉산의 어깨를 움켜잡고 소리쳤다.

《봉산아, 그만하거라. 우리 기어이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원쑤를 갚자. 그놈들을 그대로 두고서는 절대로 우리가 편히 살수가 없다. 이제부터 손에 칼을 들구 원쑤들을 모조리 족쳐버리자.》

봉산은 손등으로 눈물을 뻑 씻고나서 말했다.

《형님말이 옳소. 난 이제부터 울지 않을테요. 나두 손에 칼을 들구 형님을 따라서겠소.》

수안이도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말하였다.

《형님, 나도 손에 칼을 잡겠수다.》

막동은 그들의 손을 움켜잡았다.

《잘 생각했다. 우리 원쑤를 꼭 갚자.》

옆에 앉아있던 한씨가 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무남 애비, 이사람들아, 원쑤들과는 한하늘을 이고 살지 못하는 법이다. 어서들 떠나라구. 여기 걱정은 말구, 우리 아녀자들도 자네들을 힘껏 돕겠네.》

막동은 한씨의 두손을 꼭 잡았다.

《알겠어요, 어머니.》

한씨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고있는 봉옥과 을녀를 돌아보면서 엄하게 타일렀다.

《어서 눈물을 거두라구. 운다고 죽은 사람들이 되살아나는게 아니야. 이를 악물구 물고뜯는 한이 있더라도 원쑤를 꼭 갚아야 해.》

그들은 피눈물을 흘리면서 재더미속에서 타버린 정씨와 갑녀 그리고 무남이와 무옥이의 시신을 찾아내여 양지바른 언덕우에 묻어주었다.

그리고 언진산 불각사에 간 윤산이네가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밭에 있는 곡식을 모두 거두어들이기로 하였다.

슬픔을 증오로 바꾸고 일어난 사람들은 가을걷이를 무섭게 해대였다.

그날부터 이틀째 되는 날에 윤산이 돌아왔다.

그런데 옥동자를 낳을 명처방을 안고 돌아올것을 기다리는 이순은 함께 오지 못하였다.

막동은 윤산을 붙들고 다우쳐물었다.

《윤산아, 이순이는 어떻게 하구 혼자 오나? 엉?》

윤산은 터갈라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막동과 마을사람들이 윤산에게 다우쳐물었건만 윤산은 갑자기 벙어리가 된듯 굳게 닫은 입을 좀처럼 열려고 하지 않았다.

며칠사이에 늙은이처럼 변해버린 윤산은 멍청히 하늘만 쳐다보다 그자리에 풀썩 쓰러졌다.

막동은 다급히 윤산을 껴안았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윤산은 좀처럼 피여나지 못하였다.

모두가 달라붙어 윤산의 팔다리를 주물러주며 애타게 찾았다.

윤산에게 분명히 무슨 사달이 난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이순이는 어떻게 되였단 말인가.

막동의 속은 바질바질 타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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