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한가위를 이틀 앞둔 날이였다.

이날 무원골 사람들은 언진산 불각사에 다녀올 윤산이네 길떠날 준비를 하느라고 아침부터 바삐 돌아갔다.

봉옥을 비롯한 녀인들은 가을한 조이삭들을 절구에 찧고 키로 까부느라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쓰다싶이 하였다.

막동은 아침부터 봉산이와 수안이와 함께 윤산이네가 타고갈 황부루의 편자를 고쳐신긴다, 치성드릴 좁쌀을 싣고갈 거지게를 엮는다 하며 부산스레 돌아갔다.

해가 소꼬리만큼 떠올랐을무렵에 그들은 윤산이네 길차비를 끝냈다.

황부루의 량옆에 매여단 거지게에는 그들이 정성스레 찧은 좁쌀이 그들먹하게 들어있었다.

반회장저고리에 남빛치마를 받쳐입고 머리를 틀어올린 이순의 차림새는 부자집 마님 못지 않았고 무명바지저고리를 차려입은 윤산이 역시 이목구비가 훤칠한게 부자집 도련님 같았다.

윤산은 눈물이 글썽해서 막동의 손을 잡았다.

《형님, 다녀오겠어요.》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옆에 있던 한씨가 한마디 했다.

《이순이를 잘 돌봐주라구.》

그러자 이순은 한씨의 품에 와락 안기며 흐느꼈다.

《어머니-》

한씨는 눈을 슴벅이면서 말했다.

《이순아, 그만해라.》

곁에 서있는 녀인들도 눈굽을 찍었다.

한씨가 이순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스레 말했다.

《이제 부처님의 점지를 받아 떡돌같은 애를 낳게 되면 우리 웃으면서 살자꾸나. 그래야 먼저 간 선친들도 좋아할게 아니냐.》

《어머니, 고마와요. …》 하고 이순은 목이 메여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한씨는 이순의 손을 다정스레 쓸어주었다.

봉옥은 품에 안고있던 무남이에게 속삭였다.

《무남아, 이순아줌마한테 인사를 해야지.》

무남이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리더니 봉옥의 품에서 벗어나 이순에게로 아장아장 걸어갔다.

《아줌마-》

《무남아-》

이순은 활짝 웃음지으며 무남이를 품에 안고 앵두같이 빨갛게 익은 무남이의 볼에 자기 얼굴을 비볐다.

《무남아, 잘있어.》

《응.》

아이가 없는 이순은 늘 무남이를 무척 귀여워했고 무남이 역시 이순을 친엄마 못지 않게 따랐던것이다.

무남이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이순의 목을 꼭 그러안았다.

《아줌마, 가지마 가지마. …》

《아줌마 인차 갔다온단다.》

《아니야, 난 싫어싫어.》

한씨가 무남이를 넘겨안으면서 달래였다.

《무남아, 아줌마가 이제 한밤 자구 온단다.》

《할마, 그거 정말이나?》

《정말 아니문.》

이윽고 이순을 태운 황부루는 마을을 떠났다.

모두들 따라서면서 잘 가라고 손저어 바래주었다.

막동은 황부루의 고삐를 잡고 부담농을 지고가는 윤산에게 소리쳤다.

《윤산아, 해지기 전에 절에 가닿아야 한다.》

《알겠어요.》

윤산이네 일행을 떠나보낸 다음 얼마 안있어 막동은 봉옥과 함께 쇠부리마을로 떠났다.

그들은 윤산이네와 달리 고을군사들처럼 털벙거지를 쓰고 동달이차림에 말을 타고 나섰다.

막동이 탄 말은 털빛이 푸르고 흰점이 있는 청부루요, 봉옥이가 탄 말은 검붉은 빛이 나는 청가라였다.

무원골로 들어오는 병풍골을 벗어난 그들은 숲속길을 뚫고나와 역참마을로 들어가는 갈림길 근방에 와서야 걸음을 멈추었다.

갈림길에서 동북쪽으로 올라가면 수안고을로 가는 길이고 서남쪽으로 가면 신계쪽으로 가는 길이다.

그러니 신계에서 수안으로 오가는 사람들은 모두 이 길을 리용하는터인데 게다가 한가위를 하루 앞둔 날이여서 여느때보다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쇠부리마을로 가자면 신계쪽으로 가는 길을 따라 이십리쯤 가다가 오른쪽으로 꺾어서 시오리쯤 더 가야 했다.

숲에서 길가의 동정을 살펴보던 그들은 인적이 없는 틈에 길가에 성큼 나서서 신계쪽으로 말을 몰았다.

얼핏 보기엔 그들의 행장은 고을의 첩보를 가지고가는 군사들 같이 보였다.

봉옥이 탄 청가라는 오래간만에 행길에 나선차라 달리고싶은 욕망이 생겼는지 박차를 가하지도 않았는데 길에 나서자마자 냅다 달렸다.

그 서슬에 봉옥은 말고삐를 꼭 쥔채 어쩔바를 몰라하며 막동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오가는 행길에서 말에서 굴러떨어지기나 하면 그들의 정체가 영낙없이 드러나는 판이다.

막동은 자기가 타고있는 청부루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얼마쯤 달려 봉옥이 탄 청가라를 따라잡은 막동은 봉옥이 잡고있는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제서야 신이 나서 달리던 청가라가 《오흐흥》소리를 지르면서 그자리에 멈춰서서 앞발을 높이 쳐들었다.

봉옥은 눈을 부릅뜨고 입술을 앙다물고 말잔등에 몸을 굽혔다.

막동은 말없이 빙그레 웃으면서 봉옥에게 말고삐를 단단히 쥐라고 눈짓을 했다.

털벙거지를 푹 내려쓴 봉옥은 알았다는듯 눈을 깜빡거리며 생긋 웃었다.

이윽고 그들은 행길에서 벗어나 쇠부리터로 가는 고샅길로 들어섰다.

저 멀리 산너머에서는 쇠부리터에서 솟아오르는 흰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올랐다.

그것을 본 봉옥이가 소리쳤다.

《쇠부리마을이예요.》

《엉?》

《저기 보세요. 저 산너머에 흰 연기가 나는게 보이지요? 저기…》

《음, 보여.》

가던 길을 멈추고 흰 연기가 피여오르는 산너머를 바라보는 그들의 얼굴엔 추연한 빛이 떠올랐다.

쇠부리마을은 봉옥에게 있어서는 태를 묻은 고향이요, 막동에게 있어서도 많은 추억을 불러오는 잊지 못할 고장이였다.

《그새 외삼촌네랑 무고한지 모르겠소.》

《글쎄요.》

《여기를 뜬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년이 되였지.》

《…》

봉옥은 말없이 머리만 끄덕거렸다.

그의 얼굴에선 뜨거운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태여나 처음으로 발자국을 뗀 곳도 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이글거리는 쇠물빛을 처음 본것도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쌍태머리를 따면서 재롱을 부리던 곳도 바로 이 쇠부리마을이다.

그런데 그처럼 자기를 아껴주던 부모들은 지금 한적한 산속에 누워있고 다정하던 이웃들은 얼마나 남아있겠는지.

꿈에서조차 잊지 못해 가슴허비며 제살붙이처럼 아끼고 사랑하던 고장에 왔으니 어찌 눈물을 흘리지 않으랴.

이때 쇠부리마을쪽 굽인돌이에서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울려왔다.

그제서야 황급히 눈물을 거둔 봉옥은 털벙거지를 푹 내려쓴채 말없이 말고삐를 다잡아쥐였다.

막동은 말없이 말을 몰아 앞서가고 봉옥은 그뒤를 따랐다.

그들은 마을로 들어가는 산굽이를 돌아설무렵에야 마주오는 사람을 만났다.

털벙거지를 쓴 역졸 세놈이 고주망태가 되여 비칠거리면서 마주오는데 한놈은 땅딸보요 다른 두놈은 키가 꺽두룩한 놈들이였다.

꺽두룩한 두놈이 땅딸보놈의 두팔을 어깨에 걸고 비칠거리는데 땅딸보는 어찌도 취했는지 머리에 얹은 털벙거지에 매단 꼬꼬마가 허리가 부러져 대롱대롱 흔들거렸다.

《야, 이 땅딸보야, 무슨 술을 이렇게 처먹었니?》

《뭘? 땅딸보라구?》

땅딸보는 그자리에 우뚝 서서 허리에 매여단 륙모방치를 들고 곁에선 키다리를 때리려고 덤벼들었다.

키다리는 비틀거리며 달려드는 땅딸보의 동가슴을 긴 다리로 걷어찼다.

땅딸보는 길가에 나딩굴더니 땅바닥에 코를 박은채 까딱하지 않았다.

키다리는 저놈이 혹시 죽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선지 땅딸보곁에 달려가 잡아흔들었다.

그런데 죽지 않았나 생각했던 땅딸보는 땅에 코를 박은채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있었으니 그야말로 술귀신도 왔다가 울고갈 광경이였다. 두 키다리가 땅에 엎드려 코를 골고있는 땅딸보를 억지로 일쿼세우려고 서로 부둥켜안고 매삼질을 하고있었다.

막동은 말을 타고 그앞으로 다가갔다.

비좁은 고샅길이라 피할수도 없게 되였다.

막동은 말을 멈추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웬놈들이 한낮에 술처먹구 돌아치는거냐?》

그 소리에 두 키다리가 머리를 들고 눈을 게슴츠레 뜬채 쳐다보았다.

《너희들은 어디 있는 놈들이냐?》

막동의 엄한 목소리에 정신이 들었는지 키다리 한놈이 허리를 굽히며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였다.

《예… 저… 방아역 역졸들…올시다.》

《뭘? 방아역?… 그런데 어딜 갔다오는거냐?》

《예, 저… 헤헤… 쇠부리터 아전어른 첩의 생일이여서 거기에 갔…다, 헤헤…》

막동은 또다시 큰소리로 꾸짖었다.

《이놈아, 입다물어라.》

그바람에 벌쭉거리던 키다리가 황급히 손으로 제아가리를 틀어막았다.

《도적들이 살판치는 이때에 역은 지키지 않구 대낮에 술처먹고 다녀? 이 고현놈들… 너희 역리는 어디 있냐?》

《예… 저… 아직 쇠부리터에…》

《뭘? 역리도 함께 밀려다닌단 말이냐?》

《…》

막동은 키다리를 노려보다가 머리를 획 돌려 봉옥을 얼핏 보고나서 청부루의 배허벅을 툭 차면서 소리쳤다.

《빨리 가자!》

청부루는 그자리에서 펄쩍 놀라 땅바닥에 나딩구는 땅딸보를 훌쩍 뛰여넘어 평보로 달리기 시작하였다.

뒤에 있던 봉옥은 아무말없이 막동을 따라 달리였다.

그들이 말을 달려 쇠부리마을이 한눈에 안겨오는 나지막한 등성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뒤따르던 봉옥은 막동에게 소리쳤다.

《저 무남이 아버지, 좀 서세요.》

그 말에 막동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막동의 곁에 온 봉옥은 근심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역리놈이 아전네 집에 있다는데 혹시…》

《나두 지금 그 생각이네. 그놈들의 눈에 띄우면 피차 좋지 않을거란 말이야.》

쇠부리마을쪽을 이윽토록 지켜보고있던 봉옥은 눈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저, 그놈들한테 들키면 이 마을에 말편자를 가지러 온다고 하세요.》

《말편자를?…》

《저, 아버지네 형제패 다섯번째동생 아저씨가 생각나지요?》

《다섯째동생? 말편자소리를 하다가 동생소린 또 뭐요?》

《바로 그 다섯째동생되는 익선아저씨가 말편자를 마름질해요. 그래서 관가에서 자주 찾아오지요.》

《그렇소?! 익선아저씨라?》

막동은 생각이 나지 않는듯 머리를 기웃거렸다.

《저, 우리 잔치때 주례를 서던…》

그제야 막동은 3년전에 바로 이 쇠부리마을에서 잔치를 할 때 앞에서 주관하던 익선의 모습이 떠올라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럼 그 아저씨네 집부터 들려보자구.》

《그러자요.》

드디여 그들은 등성이를 내려 마을쪽으로 말을 몰아갔다.

그들이 둔덕을 내려 마을어구에 들어설 때였다.

마을입구에 있는 아전네 집뒤에 있는 뒤간에 갔던 방아역 역졸인 털보가 바지춤을 잡아매며 나오다가 말을 타고오는 군사들을 보고 황급히 안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역리인 리악이 아전과 함께 음식상에 마주앉아 수작질을 하고있었다.

《저 역리님, 이거 큰일났수다.》

《…엉?…》

리악은 손에 고기뼈다귀를 쥔채 거적눈을 펄쩍 떴다.

《저 등성이로 군사들이 오고있수다. 혹시 우릴…》

도적이 제발 저리다고 역을 비워놓고 여기로 와서 술을 퍼먹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다고 생각되여 땅딸보와 키다리를 먼저 보낸 리악은 속이 덜컥 했다.

리악은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아닐세라 등성이로 말을 탄 군사 두명이 집쪽으로 오고있었다.

그것을 본 리악은 사시나무떨듯 다리를 떨면서 털보에게 재촉했다.

《야, 털보야, 내 옷을 가져오너라.》

털보가 가져다주는 옷가지들을 바들바들 떨면서 황급히 주어입은 리악은 또다시 문틈으로 내다보았다.

그런데 집으로 들어올줄 알았던 군사들이 집앞을 지나서 마을쪽으로 가는것을 보자 리악은 맥이 빠져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역리님, 왜 그러시우?》

털보의 물음에 리악은 오히려 역정을 냈다.

《이놈아, 네 눈엔 콩까풀을 씌웠어? 젠장…》

털보는 머리를 썩썩 긁었다.

《난 또 우리한테 오는 군사들인가 했수다. 그런데 저놈들은 대체 어떤 놈들이우?》

《낸들 알겠어? 젠장 술맛이 다 떨어졌다.》

그러자 아전의 젊은 첩이 리악에게 다가서면서 손을 잡아끌었다.

《아유, 역리님두, 별 역증을 내시와요. 어서 상앞에 나앉으시와요.》

계집의 앞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리악이라 그제야 웃도리를 벗어던지고 상앞에 나앉았다.

젊은 첩은 술잔에 술을 채워 리악에게 권하면서 종알거렸다.

《오늘이야 작은 한가위명절이나 같은데 어서 드시와요.》

술잔을 받아서 목을 한껏 젖히고 틀지게 마시고난 리악은 상우에 있는 닭다리를 뜯으면서 한옆에 엉거주춤 서있는 털보에게 소리쳤다.

《야, 넌 망두석처럼 서있지 말구 어서 나가 그게 어떤 놈들인가 알아봐라.》

《알겠소이다.》

털보는 황급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한편 말을 달려 익선이네 집앞에 이른 막동과 봉옥은 말에서 내려서서 말을 끌고 마당에 들어섰다.

마당 한켠에 있는 야장간에서는 딱딱 하는 마름질소리가 울려나왔다.

그앞에 다가간 막동은 안에다 대고 사람을 찾았다.

《주인 있소?-》

그러자 야장간 삽작문이 빠끔히 열리더니 온통 숯검댕칠을 한 대여섯살쯤 되여보이는 사내녀석이 얼굴을 내밀었다가 군사차림을 한 막동이네를 보자 황황히 문을 닫았다.

야장간에서 울리던 마치소리가 멎더니 삽작문을 불쑥 열고 중년사나이가 나왔다.

그는 익선이였다.

《도대체 뉘시우?》

익선의 모습을 본 봉옥은 더 참지 못하고 달려가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다섯째아저씨, 저예요. 봉옥이예요.》

《봉옥이라니?…》

봉옥은 머리에 썼던 털벙거지를 벗었다.

그제야 봉옥을 알아본 익선이는 반갑게 소리쳤다.

《아니, 이게 누구냐 엉? 봉옥아-》

《아저씨-》

봉옥은 익선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익선은 눈을 슴벅거리면서 말했다.

《난 네가 어디 가서 죽은줄로만 알았더니… 이렇게 살아있었구나. 살아있었어. …》

곁에 섰던 막동이도 벙거지를 벗고 허리굽혀 인사를 하였다.

《형님, 잘 있었어요?》

막동을 알아본 익선이는 반갑게 소리쳤다.

《이게 누군가? 막동이 이사람…》

두 사내는 서로 손을 부둥켜잡은채 어쩔줄 몰라했다.

익선은 야장간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어서 나오우. 여기 누가 왔나 보라구.》

삽작문을 열고나오는 녀인을 본 봉옥은 먼저 반겼다.

《언니, 저예요. 봉옥이예요.》

익선의 안해도 봉옥을 알아보고 두손을 맞잡았다.

《이게 누구야? 봉옥아-》

《언니-》

두 녀인은 서로 얼싸안았다.

그들의 얼굴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한동안 오래간만에 만난 반가움으로 해서 얼싸안고 돌아가던 익선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봉옥에게 물었다.

《그래 외삼촌네를 만나봤냐?》

《아니와요. 여기로 곧장 오는 길이예요.》

《그건 왜?》

곁에 섰던 막동이 말했다.

《이 마을 아전네 집에 방아역 역리인가 한 놈이 군사들을 데리고 왔다기에 그놈들을 피하느라구.》

익선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니 우리 집에 말편자를 신기러 오는척 했단 말이지.》

《그래요.》

《잘했네, 방아역 역리놈이 왔다면 주의해야 하네. 그놈이 누구인줄 아나?》

《?…》

《이 쇠부리마을에서 아전노릇을 하던 리현손의 아들 리악이란 놈이네.》

그 말에 막동은 펄쩍 놀랐다.

《리악이 그놈이?!…》

막동의 눈앞에는 3년전 봉옥과 함께 도망치다가 붙들려서 곤경을 치르던 일들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때 도망을 치다가 윤산이 쏜 화살에 죽었는줄 알았는데 그놈이 살아있다니!

막동의 눈앞에는 말상에 거적눈인 리악의 모색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막동은 저도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였다.

익선은 막동과 봉옥에게 재촉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구 어서 안으로 들어가라구. 자네들이 타고온 말은 내 마구간에 매여놓을테니… 어서.》

막동이네는 말안장에 매여온 짐보따리를 풀어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한편 리악에게 내쫓기워 음식상옆에 앉아보지도 못하고 나온 털보는 입을 삐쭉이 내민채 아전네 집대문을 열고 길가에 나섰다.

도대체 이놈들이 어디 갔을가 생각하며 손바닥만 한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익선이네 집쪽에서 눈길을 멈추었다.

군사차림을 한 두사람이 마당에 서있었던것이다.

그것을 본 털보는 저도모르게 코방귀를 뀌였다.

《흥, 그놈들이 누군가 했더니 말편자를 신기러 온 놈들인걸…》

털보는 되돌아서서 대문을 열고 들어와 안방에 대고 소리쳤다.

《역리님, 그놈들은 말편자박으러 온 놈들이요.》

안방에서 리악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요전번에 역리님의 말에 편자를 붙인 놈의 집에 갔는뎁쇼. 그러니…》

《긴말 말구 토방에 앉아서 그놈들이 언제 돌아가나 지켜보란 말이야.》

털보는 또다시 입을 삐쭉이 내밀었다.

《그러지요.》

털보는 마루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방안에서는 아전의 젊은 첩의 간드러진 웃음소리가 문짬으로 새여나왔다.

리악이 아전네 집을 제집 드나들듯 하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리악의 애비인 리현손이 한양으로 올라갈 때 이 집을 수안고을에서 장사치로 소문난 지금의 아전에게 넘겨주었다.

장사에서는 누구에게라 없이 뒤지지 않았고 재물도 잔뜩 모아놓았지만 신분이 낮다나니 량반들한테 이리저리 재물을 뜯기우던 그가 리현손이 한양으로 올라간다는 말을 듣자 그의 턱밑에 다가들었었다.

리현손은 뢰물을 듬뿍 받고 수안군수에게 봉물짐을 들썩하게 밀어넣어 그에게 아전자리와 집을 넘겨주었던것이다.

그는 한갖 장사치에 불과하던 자기가 아전자리에 올라앉게 되자 원래 살던 수안고을집에는 본댁을 두고 젊은 첩을 끼고 쇠부리마을에 왔다.

이것을 턱에 걸고 리악은 아전네 집에 제집 드나들듯 하게 되였던것이다.

털보는 마루우에 멍멍개처럼 멍청히 앉아있자니 은근히 속이 뒤틀려나서 기둥에 몸을 기댄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때 그의 발밑으로 주인집 강아지가 기여나와 맴돌면서 낑낑거렸다.

은근히 화가 난 털보가 강아지를 발로 걷어찼다.

강아지는 어찌도 드세게 맞았는지 깽깽거리면서 발밑에서 맴돌아쳤다.

방안에서 젊은 첩의 토라진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아니, 강아지가 왜 그래. -》

그 소리에 펄쩍 놀란 털보는 강아지새끼를 닁큼 안아 배를 문질러주면서 능청을 부렸다.

《아마 나처럼 먹지 못해 그런것 같수다.》

그 말에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첩년이 문을 드르륵 열더니 술사발과 이것저것 음식을 모아담은 그릇을 들고나왔다.

《이봐, 자네는 술먹구 이건 강아지를 주라구.》

엉겹결에 그것을 받아든 털보는 은근히 부아가 났다.

《난 맨술만 먹으면 딸꾹질이 나서…》

《호호… 별 능청스러운 놈이 다 있다. 조금 있어! 안주를 내다 줄테니…》

첩년은 털보를 조롱하듯 쳐다보더니 치마바람을 휭 일으키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조금있더니 안방문이 열리고 첩년이 앉은채로 콩나물이 담긴 접시를 내밀었다.

그러자 털보는 또다시 능청을 부렸다.

《술안주야 고기로 해야지 이걸 먹으면 인차 취하는뎁쇼.》

《흥, 그주제에 입은 높아서…》

첩년이 쫑알거리더니 뜯다가만 닭고기그릇을 내밀었다.

털보는 이게 웬떡이냐 하면서 술을 반사발쯤 꿀꺽 마시고 닭고기를 통채로 들고 물어뜯었다.

게걸스레 먹는 털보의 모양이 재미가 있는지 첩년이 털보를 조롱어린 눈길로 쳐다보았다.

한참 고기를 뜯다가 자기를 지켜보는 눈길을 느낀 털보는 머리를 쳐들고 《헤…헤》 하고 웃었다.

첩년은 손벽을 치면서 깔깔거렸다.

《저것 보지, 신통히 북술개같다니까. 하…하…》

그러거나말거나 털보는 부지런히 고기를 뜯으면서 주린 배를 채우느라 급급했다.

삶은 닭의 삭뼈까지 아삭아삭 다 씹어먹은 털보는 그제야 배가 좀 차는지 게트림을 하면서 기름묻은 손을 바지에 썩썩 문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마루우에 벌렁 누워 코를 골던 털보는 별안간 귀청째지는듯 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이놈아, 지키라는건 안 지키구 낮잠만 자느냐? 이놈.》

털보의 눈앞에는 리악의 험상스러운 얼굴이 나타났다.

털보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어느새 해는 서산에 기울고 사방으로 땅거미가 금방 기여들무렵이 되였다.

《이놈아, 어서 그놈네 집에 가서 그것들이 여즉 있는지 갔는지 알아보란 말이야.》

리악의 호된 소리에 놀란 털보는 황급히 일어나 주인에게 쫓기우는 개새끼마냥 대문쪽으로 비실비실 달아났다.

길가에 나선 털보는 길게 기지개를 켜고나서 스적스적 익선이네 집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익선이네 집근방에 거의 다가간 털보는 흠칫 놀라 목을 움츠리면서 길가에 있는 해묵은 느티나무뒤에 몸을 숨겼다.

익선이네 집쪽으로 웬 내외간이 다급히 걸어가는 모습이 눈에 띄였던것이다.

털보가 느티나무뒤에서 빠끔히 얼굴을 내밀고 바라보니 그들은 익선네 집으로 곧추 들어갔다.

털보는 주위에서 누가 보는 사람이 없는가를 살피고나서 땅거미가 기여드는 어둠을 타고 익선네 집앞으로 다가가 개바자옆에 붙어섰다.

익선네 집 정지방에서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이게 누구냐? 봉옥아-》

《외삼촌, 그새 잘…》

《오냐, 난 네가 소식이 없길래 어디 가서 꼭 죽은줄만 알았구나.》

《삼촌어머니-》

《봉옥아-》

방금 들어간 내외간과 오래간만에 만나는 인척들인 모양이였다.

방안에서는 두런두런 말소리가 울려나왔다.

《이사람, 그새 왜 기별이 없었나.》

《외삼촌, 정말 안됐어요.》

《됐네, 사연이 있었겠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구 이렇게 펄펄 살아있는 자네들을 보니…》

밖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있는 털보도 어쩐지 가슴이 뭉클했다.

아마 그에게도 남의 반가움을 놓고 느낄줄 아는 감정이 쪼박지라도 있었는지. …

어둠을 타고 개바자밑에 숨어 방안에서 들려오는 말소리를 멍청히 듣고있던 털보는 부엌문을 열고나온 아낙네가 옹배기에 담았던 구정물을 내버리는줄도 모르고있었다.

그러다가 구정물벼락을 맞고서야 흠칫 놀란 털보는 얼굴이며 옷에 흐르는 구정물을 뻑뻑 씻었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달려들어가 도륙을 내고싶었지만 워낙 주먹이 센 철간들을 마구 건드렸단 뼈다귀도 못 추릴수 있다는것을 알고있는 털보는 제풀에 두덜두덜거리면서 아전네 집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찌쿵-소리를 내면서 아전네 집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 털보는 몸을 으스스 떨면서 에취- 하고 재채기를 하였다.

그바람에 코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털보는 코에서 흐르는 코물을 옷소매로 뻑 씻었다.

온몸에서 풍기는 구정물냄새를 맡았는지 아전네 집 강아지가 달랑달랑 달려나와 털보의 바지자락을 물어당겼다.

털보는 자기에게 매달리는 강아지새끼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어정어정 방앞에 이른 털보는 또 한바탕 재채기를 하였다.

그리고나서 리악을 찾았다.

《저, 역리님.》

등잔불을 켜놓은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한낮동안 주지육림속에 파묻혀있다나니 아마 모두 술에 취해 자빠져있는 모양이다.

은근히 약이 오른 털보는 어성을 높여 리악을 찾았다.

《역리님, 계시우?- 》

그제서야 방안에서 부스럭소리가 나더니 잠에 취한 리악의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게 누구냐?》

《소인이오이다.》

《누구라구?》

《털보요. -》

방문은 여전히 열리지 않고 목소리만 울려나온다.

《갔던 일은 어떻게 됐어?》

털보는 약간 주밋거리다가 대답했다.

《저, 낮에 왔던 놈들은 그림자두 보이지 않구 딴 년놈들이…》

《딴 놈들이라니. 그건 무슨 가을뻐꾸기같은 소리야. -》

《예, 웬 년놈들이 서로 만나 지껄이는데 무슨 봉옥이라던지. …》

《뭐라구?!》

문이 벌컥 열리면서 속옷바람인 리악의 몸뚱이가 나타났다.

얼핏 방안을 들여다본 털보는 입을 쩍 벌렸다.

먹다 남은 상우에는 아직도 음식들이 그들먹하게 쌓여있었다.

털보는 혼이 나간 놈처럼 서서 음식상만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야! 이놈아, 묻는 말엔 대답 안하구 뭘 그렇게 봐?-》

리악의 멱따는듯 한 소리에 정신을 차린 털보는 허리를 굽신거렸다.

《예, 웬 년놈들이…》

《이놈아! 이제 봉옥이라구 했지?》

《예, 분명 봉옥이라구두 하구 무슨 외삼촌이라구두 하구…》

《분명히 들었겠다?》

《이 귀때기로 똑바로 들었수다. 그걸 듣다가 구정물벼락까지 맞았는뎁쇼.》

리악은 와닥닥 마루우로 달려나와 털보의 멱살을 걷어쥐였다.

《분명히 봉옥이라구 했지?》

멱살을 잡힌 털보는 낑낑 갑잘랐다.

《그건… 그건 사실이요.》

리악은 털보의 멱살을 놓고 먹이를 본 승냥이새끼마냥 마루우를 오락가락 하였다.

《음… 봉옥이란 말이지.》

거적눈을 부릅뜨고 마루우를 오락가락하는 리악은 속으로 윽별렀다.

(봉옥이년이 왔으면 막동이놈두 달구왔을게구. … 이놈들 이번엔 내 손에서 못 빠진다. )

리악은 마치도 제앞에 서있는 털보가 막동이기나 한듯 그를 노려보며 이발을 사려물었다.

리악의 험상한 몰골을 쳐다본 털보는 비실비실 뒤로 물러났다.

털보가 비실거리면서 물러가는 모양을 노려보던 리악은 두손을 맞잡고 속을 다잡았다.

(이놈들을 이번엔 놓치지 말아야 하겠는데… 어떻게 할것인가?)

어느사이에 솟아올랐는지 서켠 하늘에 한가위달이 쇠부리마을을 비쳐주고있었다.

리악은 옷을 걸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오락가락하였다.

그 모양은 흡사 먹이감을 앞에 두고 기회를 노리는 이리새끼 한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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