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황해도 관찰사 리계동은 이날따라 아침 일찌기 선화당에 나왔다.

계절은 방금 한로를 넘긴 때이라 선화당 마당에 서있는 해묵은 은행나무의 황이 든 잎새들에서는 찬이슬이 함초롬히 매달려 동켠에서 솟아오르는 해볕에 번뜩이고있었다.

누런 은행나무 잎새들이 한벌 깔린 마당가로 머리를 수그린채 땅만 보면서 느적느적 걸음을 옮기던 리계동은 목이 선뜻한 감을 느끼자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황급히 목덜미에 손을 가져가니 방금 나무에서 떨어진 이슬을 머금은 은행나무잎이 손에 잡혔다.

그는 무심중에 손에 든 나무잎을 세세히 들여다보았다.

노랗게 변색된 나무잎에 빛살모양의 잔줄무늬가 항라처럼 촘촘히 새겨졌는데 뱅글뱅글 돌릴 때마다 여러가지 무늬가 아롱졌다.

그것을 바라보는 리계동의 마음은 어쩐지 쓸쓸해졌다.

해묵은 잎새가 마치도 자기 처지와 같이 느껴져서이다.

나무아지에 굳게 붙어 기상을 자랑하듯 비바람에도 끄떡없던 푸른 잎새가 아니라 가느다란 새바람에도 견디지 못해 땅바닥에 나딩구는 황이 든 잎새,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이리저리 날려가다가 개울가에 처박혀 썩고야마는 락엽…

지금 리계동의 처지는 황이 든 은행나무잎새와 다를바없이 되였다.

한때는 그에게도 푸른 잎새와도 같은 번창한 시절이 있었다.

본적지가 한양인 그의 가문은 력대로 무관출신들이였다.

그래서인지 리계동은 어려서부터 책보다도 말타기를 좋아했고 쩍하면 동리아이들과 주먹질을 하여 사람들속에서 망종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았다.

그가 포도청의 포교노릇을 할 때에는 한양성안의 소문난 왈패였다.

그러던 그가 병조참판을 거쳐 도관찰사벼슬에까지 올라 당당히 사대부의 계렬에 들어서게 된것은 시독관을 하는 장인 황보의 뒤받침이 있은 덕이였다.

시독관이라면 왕이 공부를 하는 경연청의 벼슬이라 하루 강론을 마치면 그 뒤끝엔 시국이야기와 잡사가 터져나오기마련이였다.

황보는 이 기회를 리용하여 외동사위인 리계동을 은근히 추천해주었다.

그가 고와서가 아니라 무남독녀인 제 딸 황씨때문이였다.

본시 성정이 왈패에 가까운 리계동이 밤낮 도적을 잡는다고 륙모방치를 들고 한양성안은 물론이요 경향각지를 메주밟듯 돌아치면서 제 색시 하나 옳바로 돌보아주지 않았다.

그것을 지켜보던 황보가 사위를 한곳에 안착시켜 집안살림살이도 돌보고 벼슬살이도 하게 할 심산으로 어느 기회를 봐서 왕을 알현했던것이다.

황보의 뒤받침에 의해 병조에서 벼슬살이를 하게 된 리계동은 한동안은 엉치가 시려서 돌아가더니 점차 안착은 되였건만 엉치에 다른 뿔이 삐여져나오기 시작하였다.

륙모방치를 들고다닐 때에는 두드려패는것밖에 모르던 그가 그노릇을 그만두자 논다니들에게 빠져들었던것이다.

포교시절에는 집과 오래동안 떨어져있어 제 색시의 속은 태워도 소박하지는 않았는데 벼슬살이를 하면서는 얼굴이 밴밴한 녀자들을 잡아흔들어 녀편네의 속을 박박 긁어냈다.

벼슬이 높아지면 그 체면에 주색잡기는 좀 하더라도 부잡스럽지는 않겠지 하고 생각한 황보는 사위를 도관찰사자리에까지 올려앉혀놓았다.

그러자 한동안은 소리가 없어 이젠 됐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웬걸 이번에는 어느 기생년한테 빠져 제 색시같은것은 소 닭보듯 하였다.

리계동의 본댁인 황씨는 그 꼴이 보기 싫다고 본가집에 달려와 붙어살다싶이 하였다.

그러다가 얼마전에는 온 관청이 떠나갈듯 하게 남편과 싸움을 하여 소문을 냈다.

그것도 시퍼런 대낮에 기생년을 끼고놀다가 당한 소동이라 떡은 돌면 돌수록 작아지고 말은 돌면 돌수록 덧붙는다고 없는 남편의 흉티까지 덧붙어 고을관아는 물론 조정에까지 알려지게 되였다.

게다가 일이 안되는 놈은 소발자국에 고인 물에도 엎어져죽는다고 그가 관할하는 수안고을에서 김막동을 비롯한 화적패들이 형리를 죽이고 도망쳤다는 급보까지 조정에 올리닿았다.

하여 하루아침에 리계동은 도적을 잡아들이라는 왕의 어명과 기생년을 가까이하여 량반체면을 깎은 그와는 상종도 하지 않겠다는 장인의 통첩을 동시에 받게 되였다.

왕명을 집행하지 못하면 반역이요, 장인과 결별하면 꼭지 떨어진 외호박신세라 리계동은 녀편네에게 잡혀서 퉁퉁 부어오른것을 끌고서 선화당에 나와서는 도적을 잡으라고 고아대고 집에 들어가서는 녀편네를 얼리느라 급급했다.

그러나 김막동이네 동아리들이 무슨 조화를 부렸는지 숱한 군졸들과 아전들을 풀어 도안의 곳곳을 샅샅이 훑었으나 땅속에 스며든 물같이 그 종적을 찾을수 없게 되였다.

게다가 집에만 들어가면 앵돌아진 녀편네가 암고양이처럼 웅크리고앉아 양양거리는터이라 안팎으로 몰린 리계동은 얼굴만 점점 숯등걸같이 꺼매졌다.

이제 머지않아 조정에서 관료들의 성적에 따라 승급, 해임을 결정하는 도목정사가 있게 되겠는데 이대로 나가다가는 영낙없이 목이 떨어질 판이다.

그래서 지난밤에도 잠자리에 누워 이리 궁싯, 저리 궁싯 하다가 깊은잠에 들지 못하고 일어나 동자아치가 차려준 밥을 대충 먹고 아침 일찌기 선화당으로 나온것이다.

손에 들었던 황이 든 은행잎을 훌쩍 던져버린 리계동은 마당을 쓸고있던 관노들이 땅바닥에 엎드려 아침인사를 하는것을 일별한채 관청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들어간 그는 돗자리우에 가부좌를 하고 동창으로 내다보이는 울긋불긋 단풍이 든 수양산을 점도록 바라보았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관노들과 마당구석에서 서성거리던 사령들이 목을 움츠리고 저들끼리 수군거렸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관찰사가 저렇게 말도 없이 황건력사처럼 앉아있을 때는 분명히 마른하늘에서 벼락치듯 무슨 일이 난다는것이다.

이것은 그가 이곳 관찰사로 있은 삼년동안에 그들이 터득한 관습이였다.

그가 이럴 때 잘못 걸려들기만 하면 곤장 열대는 보통이요 쉰대쯤 맞아야 풀려나는데 그것도 하졸자리에 붙어있으면 다행이요 그자리에서 쫓겨나기가 일쑤였다.

하여 그들은 황황히 관찰사의 눈을 피하여 구석들을 찾아다녔다.

동켠에 해가 토끼꼬리만큼 솟아올랐을 때였다.

그때까지도 방안에 돌미륵같이 앉아있던 리계동은 《관찰사님께 문안드리오.》 하는 합창소리를 듣고서야 머리를 돌렸다.

대청마루아래에 고을의 륙방관속들이 량켠에 갈라져 주런이 늘어서서 읍을 하고있었다.

한동안 말없이 그들을 하나하나 일별하던 리계동의 눈길이 서쪽반렬에 서있는 형방에게 멈춰섰다.

《형방 왔느냐?》

리계동이 말하자 그의 량켠에 서있던 급창사령들이 청높이 소리쳤다.

《예잇-형방 나오랍신다!》

그러자 몸이 뚱뚱한 형방이 뚱기적거리면서 한걸음 앞에 나서 허리를 굽혔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그 말을 들은 형방이 황소눈깔만 한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뚱기적, 뚱기적 걸어오는데 꼭 푸주간의 스무동이들이 물독이 굴러오는것 같았다.

앞으로 걸어나오는 형방의 모양을 지켜보던 리계동은 갑자기 속에서 울컥하고 밸이 솟구쳐올랐다.

《이놈아, 빨리 나오지 못할가!》

으르렁거리는 리계동의 목소리가 어찌도 큰지 널마루를 드렁드렁 울리였다.

《너 이놈, 언제부터 잡는다는 막똥인지 쇠똥인지 한 패당을 잡았느냐?》

《아직…》

뚱뚱한 몸에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쇠소리가 형방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뭐라구?》

《예, 아직 못 잡았소이다.》

《넌 밥처먹구 뭘하는 놈이냐, 엉?》

《글쎄 숱한 포졸들을 내몰았는데두 무슨 귀신의 조화인지 도저히 행적을…》

잘못했다는 말 한마디 없이 오히려 제편에서 구구히 변명하는데 골이 난 리계동이 꽥 소리쳤다.

《이놈아, 오새없는 시골아낙처럼 무슨 말이 많느냐? 당장 그 작당들을 잡아오지 못할가!》

《예, 알아들었소이다.》

《너는 이제 당장 수안에 내려가서 그놈들을 산채로 잡아오든지 아니면 시체라도 끌어다놓으란 말이다. 그렇지 못할 땐 네 목이 붙어있지 못할줄 알아라. 그놈들을 잡지 못하면 아예 내 눈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 알겠냐?》

《알겠소이다.》

형방은 연신 허리를 굽신거렸다.

시에미 역정에 개옆구리 찬다고 요즈음 이래저래 심사가 뒤틀린 리계동은 형방을 싸리말같은 놈이라느니 길가의 망두석보다 못한 놈이라느니 하고 한참 욕을 퍼붓고야 직성이 좀 풀렸는지 제자리로 들여보냈다.

《그다음 호방 왔느냐?》

《예잇- 호방 나오랍신다!》 하고 급창사령들이 소리치자 옆에 장부를 낀 호리호리한 호방이 갑신거리면서 리계동의 앞으로 다가왔다.

《요즈음 각 고을들에서 세미를 얼마나 받아들였느냐?》

호방은 호릿한 몸에 손가락에 침을 발라 장부를 번지면서 말했다.

《에-봉산, 재령 등 여섯개 군에서 절반정도이구 신계, 토산, 문화 등 다섯개 군에서는 절반을 좀 넘게 바쳤소이다. 그리구…》

리계동이 자질구레 번지는 그의 말이 듣기 싫은듯 손사래를 쳤다.

《됐다, 그만해라! 제일 못 바친데가 어디냐?》

《예, 그건 수안군인데 이제 겨우 3할정도 바친줄 아뢰오.》

《뭐라구? 또 수안이냐? 도적이 나온것두 수안, 조세를 못 바친것두 수안, 도대체 수안군수는 뭘하고있으면서 국록을 타먹어?》

《글쎄…그건…》

《그놈이 주색잡기에 미친게 아니냐?》

《글쎄 그렇기까지야…》 하고 호방이 슬쩍 리계동을 쳐다보고나서 머리를 조아렸다.

참새머리에 굴레라도 씌울정도로 약삭바른 호방과 눈길을 피끗 맞춘 리계동은 속이 띠끔했다.

똥묻은 개 겨묻은 개 나무란다고 제 체면에 누굴 훈시하느냐 하는듯 한 눈길이였다.

리계동은 갑자기 아직도 부어있는 가운데것이 쿡 쏘아남을 느꼈다.

생각같아서는 생쥐같은 그놈을 콱 때려라도 주고싶었으나 그럴수 없는 처지라 리계동은 이놈 어디 두고보자 하고 윽벼르면서도 꾹 참고 말머리를 돌렸다.

《어서 수안에 아전들을 보내서 독촉을 해라.》

《예, 벌써 파견했사옵니다. 그런데…》

《그런데 또 뭐냐?》

《고을창고들에 세미를 운반하자니 일손이 모자라는데 군졸들을 좀 동원시켰으면 하나이다.》

군졸들을 세미운반에 동원시키자는 호방의 속심은 다른데있었다.

군졸들을 동원해서 제놈이 속을 채우려고 긁어모은 세미를 따로 숨겨두자는것이였다.

백성들을 동원시키면 말이 날것이고 여러 고을의 군졸들을 엇바꾸어 세미운반에 동원시키면 그 속내를 알아차릴수 없기때문이다.

(밉다면 깨꼬한다더니 이놈아, 내가 네 속내를 모르는줄 아느냐? 이 앙큼한 놈. )

이렇게 속생각을 하며 윽벼르던 리계동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건 안된다. 이제 도안의 군졸들을 몽땅 출동시켜 임금님께서 어명으로 내려보낸 도적잡이를 해야겠다. 그러니 세미운반엔 백성들을 동원시켜라. 다만 재령에서 나는 옥백미를 한양궁실에 바칠 때만 군졸을 쓰게 하라. 물러가라.》

《알아들었삽니다.》

호방이 머리를 조아리면서 제자리에 들어갔다.

《병방 왔느냐?》

《예잇-병방 나오랍신다!》하는 급창사령의 소리가 길게 울렸다.

서쪽반렬에서 투구와 갑옷을 입고 칼까지 찬 병방이 무게있게 앞으로 나왔다.

《그래 오늘 하자는 감영군사들의 교련은 어찌 되였느냐?》

《예잇, 룡수산 훈련터에 준비되였소이다.》

리계동은 자기가 무관출신이여서 그런지는 모르나 그래도 선화당의 륙방관속들가운데 그중 믿음이 가는자가 있다면 이 병방이였다. 어딘가 모르게 무관다운 기질과 기풍이 있었던것이다.

《그렇단 말이지. 오늘은 내가 직접 교련장에 나가보겠다.》

《알겠소이다.》

《그럼 오늘조회는 이만하자. 물러들 가라.》

《예잇-물러가랍신다!》

급창사령의 목소리에 선화당 마당에 주런이 섰던 륙방관속들과 아전들모두가 우르르 물러났다.

오래간만에 무사복차림으로 말에 올라 선화당을 나선 리계동은 어쩐지 전신에 기운이 쭉 뻗어오르고 한바탕 말을 타고 내달릴 욕망이 살아올랐다. 그동안 안팎으로 몰려 등꼽새처지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제 신세를 한바탕 털어버리고싶었던것이다.

리계동은 뒤에 붙은 병방에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한마디 이르고는 타고가는 황부루의 배허벅을 걷어찼다.

그러자 황부루는 어흐흥 하고 앞발을 들었다놓더니 앞으로 내닫기 시작하였다.

말허리에 몸을 붙인 리계동은 익숙한 솜씨로 황부루의 배허벅에 박차를 가하였다.

길가의 황토먼지를 뽀얗게 날리면서 황부루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렸다.

리계동의 옆으로는 길가의 나무들이 휙휙 지나갔다.

주마간산이라고 말을 타고 달리면서 언듯언듯 스쳐지나는 단풍이 든 산경치는 볼수록 장쾌하였다.

단숨에 고을에서 25리 떨어진 자성진에 이른 리계동의 얼굴은 4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20대의 홍안의 젊은이처럼 빨갛게 달아올랐다.

룡수산 훈련터앞에 각양각색의 군복을 입은 군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가 관찰사가 말을 타고 달려오는것을 보고 기겁하여 대오를 짓느라고 부산스레 돌아쳤다.

뒤따라 말을 타고 달려온 병방이 대렬앞에 서서 호령을 하여 대오를 정돈하였다.

말이 군사이지 어중이, 떠중이가 모여든 오합지졸 한가지였다.

리계동이 돌로 쌓은 룡수산 성벽에 있는 루대에 오르자 군사들의 교련이 시작되였다.

첫 교련은 군사들이 마주벌리는 창격전이였다.

서로 찌르고 막고 하는것을 보니 정규적인 교련을 받지 못한 시골 군사라는것이 한눈에 알렸다.

다음은 군졸들이 칼부림질을 하는데 말이 칼부림이지 공연히 칼을 휘두를뿐 신통하지 않았다.

루대에 서서 그 모양을 지켜보던 리계동이 계단아래로 성큼 내려서서 앞에 서있는 털벙거지를 쓴 군사에게 다가가 장검을 받아쥐고 소리쳤다.

《누구든 나와 맞설자는 나서라.》

군사들이 모두 의아한 눈길로 리계동을 빤히 쳐다보았다.

리계동이 칼을 쳐들고 다시 한번 호기있게 소리쳤다.

《자, 나와 겨루어볼 군사가 없는가?》

이때 옹기종기 모여선 사람들을 헤집고 털벙거지를 쓴 군졸 한명이 나섰다.

몸이 호리호리하고 키가 훤칠한 그는 보기에도 날파람있어보였다.

그로 말하면 도감영의 군졸들가운데서 칼쓰기에 유명한것으로 소문난 주효문이였다.

그는 올해 스물세살이였다.

계동이 그를 이윽히 지켜보면서 물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주효문이라 하옵니다.》

《그래? 좋다. 어디 한번 맞서보자.》

리계동이 칼을 쳐들고 나서자 효문이도 칼을 들고 마주섰다.

교련에 참가했던 군사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만났다고 그들의 주위에 우르르 몰려들었다.

리계동이 먼저 몸을 날리며 효문의 어깨를 내리쳤다.

효문은 날쌔게 몸을 피하면서 리계동에게 역습을 들이댔다.

리계동은 날아오는 칼을 자기 칼로 황급히 쳐서 막고 또다시 공격기회를 노리면서 빙빙 돌아갔다.

서로 맞붙었다 떨어졌다 하면서 공방전을 30여합 하였으나 서로의 재주가 엇비슷하여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주위에 모여선 군사들속에서는 그들이 재치있는 동작을 할 때마다 가벼운 탄성이 일어나군 하였다.

칼을 마주대고 빙빙 돌던 주효문이 갑자기 칼을 빼면서 계동의 옆구리를 내질렀다.

그 찰나에 몸을 획 돌린 계동이 잽싸게 칼을 휘둘러 효문의 털벙거지우에 꽂힌 상모를 베여버렸다.

그러자 효문이 칼을 버리고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관찰사님, 제가 졌소이다.》

리계동이 빙그레 웃음지으면서 너그럽게 말했다.

《어서 일어나거라. 네 솜씨가 그만하면 고을 군사치고는 괜찮아.》

리계동의 칼쓰는 솜씨를 본 감영의 군사들은 눈이 휘둥그래져서 저마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야, 관찰사님의 칼재주가 보통이 아닌데?》

《한양에 있을 때 병조참판을 했다지 않아.》

군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대는 찬탄의 목소리를 등뒤로 들으며 리계동은 천천히 루대우에 올라섰다.

병방이 황급히 그의 뒤를 따르면서 칭찬을 고여올렸다.

《관찰사님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오이다. 그 솜씨면 아직 전장에 나서도 일도량단이 문제없는줄 아옵니다.》

리계동은 저도모르게 으쓱했다.

《몇해동안 손에서 칼을 놓았으니 인젠 솜씨가 서틀어졌네.》

《아니오이다. 방금 어르신과 시합을 한 효문이로 말하면 우리 감영안의 군사들가운데서 엄지손가락에 꼽히는자인데 그를 이겼으니 관살사님의 솜씨야말로 국보로 될만 한 재주인줄로 아옵니다.》

《무슨 국보까지야 뭘…》

리계동은 사양했으나 내심은 아직도 자기 솜씨가 괜찮다는 자부로 그들먹해졌다.

그래서 그런지 기분도 저으기 둥둥 떴다.

허렁청한 선화당에 앉아 골치아픈 정사를 보기보다 밖에 나와 시원한 바람을 쏘이면서 한바탕 땀을 흘리고나니 어쩐지 무거웠던 몸도 한결 가벼워지는것 같았다.

그러자 문득 리계동의 머리속에는 골치아픈 관찰사노릇을 하기보다는 군영에서 벼슬을 하는것이 낫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이때였다.

고을쪽에서 말발굽소리를 요란히 내면서 사령 하나가 달려와 리계동의 앞에서 뛰여내려 무릎을 꿇고 여쭈었다.

《관찰사님께 아뢰오. 방금 한양에서 어명을 가지고 관원이 래임하였소이다. 관찰사님께서 선화당으로 빨리 듭시라 하나이다.》

리계동은 저으기 놀랐다.

《뭐라구? 한양에서 어명이 내렸다구?》

《그렇소이다.》

리계동의 손끝은 저으기 떨렸다.

벼슬을 파직시킨다는 어명이 내릴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때문이다.

리계동은 지그시 눈을 감고 놀란 가슴을 조금 눅잦히고나서 뉘에게라없이 소리쳤다.

《내 말을 끌어오라!》

리계동을 따라다니는 사령 하나가 그가 타던 황부루를 끌어왔다.

말없이 말잔등에 올라앉은 리계동은 병방에게 훈시하였다.

《병방, 교련을 계속하라.》

《알겠소이다.》

리계동은 자기가 탄 황부루의 배허벅을 툭 걷어찼다.

《가자!》

리계동을 태운 황부루가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선화당으로 돌아가는 리계동의 심중은 착잡했다.

그의 눈앞에는 어쩐지 아침에 집어보던 황이 든 은행나무잎이 얼른거렸다. 그런가하면 도적을 잡지 못했다고 추궁하는 어명을 읽는 관원의 모습이며 암고양이같이 앙앙불락하던 안해의 징살스러운 얼굴과 능구렝이같은 장인령감의 흉물스러운 얼굴도 떠올랐다.

리계동은 그 모든것을 털어버리려는듯 눈을 꾹 감고 머리를 흔들었다.

순간 그의 속에서는 불뭉치같은것이 불쑥 치밀어오르면서 숨이 가빠났다.

저도모르게 말고삐를 으스러지게 틀어쥔 리계동은 이를 악물고 황부루의 배를 힘껏 걷어찼다.

황부루는 갈기를 날리면서 앞으로 내달렸다.

그가 선화당에 이르자 대청마루우에 한양에서 내려온 관원이 틀지게 앉아서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리계동은 그의 앞에 조심히 다가가 읍을 하고 섰다.

이윽고 관원이 둔중한 목소리로 임금의 어명을 내리읽었다.

《짐이 여러차례에 걸쳐 황해도안에서 일어난 도적을 잡을데 대하여 어지를 내려보냈으나 그에 대한 아무러한 보고도 없으니 높은 국록을 받고있는 신하로서 매우 무엄하도다. 나라의 안녕을 위협하는 사악의 무리가 창궐할 때 한개 도를 맡은 관리로서 속수무책으로 전전긍긍하고있으니 심히 상서롭지 못한 일이로다.》

어명을 받고있는 리계동의 얼굴은 시커멓게 죽었고 입술은 초들초들 말라들었다.

관원의 목소리가 계속 울려나왔다.

《그대가 어명앞에 충정을 고일 대신 배은망덕을 하고있으니 심히 안된 일이로다.

지은 죄를 따지면 봉고파직시켜야 마땅한 일이지만 그대가 왕년에 쌓은 치적과 황보의 어진 마음을 헤아려 그대를 관찰사직에서 중추부동지사로 좌천시키니 어여삐 여기는 성은에 보답해야 할지어다.》

말을 끝낸 관원이 리계동에게 임금의 어명이 적힌 종이장을 내주었다.

무릎을 꿇고앉아 떨리는 두손으로 어명을 받아든 리계동은 이마가 땅바닥에 닿도록 머리를 조아리였다.

《임금님의 하해같은 성은은 백골난망이로소이다.》

급창사령이 뽀르르 리계동의 앞으로 다가와 두팔을 부축하고 궐패가 붙어있는 방안으로 데리고갔다.

궐패란 임금을 상징한 《궐(闕)》자를 써붙인 패쪽이다. 매달 초하루와 보름날에 관찰사이하 신하들이 궐패가 있는 방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는것이 상례이다.

오늘과 같이 어명을 받은 날인 경우에도 그앞에 인사를 올리는것이 제정된 절차였다.

사령을 따라 방안에 들어가 궐패앞에 넙적 엎드린 리계동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당장 목이 떨어지는줄 알고있었는데 사태가 급전하여 궁중의 경호와 군사에 대한 사무를 보는 관청인 중추부의 종2품관인 동지사로 좌천되였으니 그럴만도 하였다.

리계동은 목메인 소리로 울부짖었다.

《상감마마, 고맙소이다. 상감마마의 크나큰 성은에 이 몸을 깡그리 다 바쳐서 보은하겠나이다.》

그로부터 며칠후 리계동은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에 올랐다.

비록 금의환향은 못되여도 소시적부터 흔적을 남긴 한양으로 가는 그의 마음은 새삼스러웠다.

사인교에 올라 여러필의 부담마까지 딸려서 가는 그의 일행은 많지는 않았다.

흔들거리는 사인교안에서 흘러가는 산천을 바라보는 리계동의 눈에는 추연한 빛이 어려있었다.

허나 그는 몇해후에 이 고장에 다시 내려와 김막동이네한테 혼쭐을 빼게 될줄은 아직 모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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