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신계에서 수안쪽으로 가느라면 가파로운 령을 넘어야 한다.

아직 령길이 잘 닦아지지 못한데다가 어느 성미 급한 축들이 령으로 곧추 오르는 직선길을 내였는지 한번 오르고나면 사람도 말도 너무도 숨이 차올라 턱방아를 찧었다.

그래서 어느때부터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령을 올라서자마자 있는 마을을 사람들은 방아골이라고 불렀다.

방아골은 신계를 비롯한 황해도 각 고을에서 수안쪽으로 드나드는 외통길이라 수안고을 관청에서 매우 중시하는 곳이였다.

때문에 방아골에 있는 역참의 우두머리 역리는 다른 역의 역리보다 중시하였고 관청에서 신임하는자들만 파견하였다.

그뿐만 아니였다. 이 길목을 타고앉아 있느라면 여러가지 명목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주머니를 털어내기가 그저그만이였다. 그래서 이곳 역리노릇만 몇년 하면 웬만한 부자는 비켜라 하는 정도로 되는 판이니 그야말로 닭알에 빗대놓고 말한다면 노란자위였다.

모두가 탐을 내는 방아역 역리자리를 타고앉은 리악은 죽은 형방인 오대구가 열흘밖에 끼고자지 못한 봉산기생인 그의 후처를 업어다가 아예 제 색시로 만들어놓고 거들먹거렸다.

윤산이네가 매골에서 한씨를 데려간 이튿날 아침이였다.

비록 숫처녀는 아니지만 아직도 생생한 젊음이 넘쳐나는 오대구의 후처인 봉산기생을 끼고 밤을 새우다싶이한 리악은 새벽녘에야 곯아떨어져 해가 동녘하늘에 두서너뽐가량 떠올랐는데도 이불속에 파묻혀있었다.

그때 얼굴이 온통 털이 부시시해서 《털보》라는 별명이 붙은 역졸이 리악의 집 방문을 두드렸다.

《역리님, 계시오이까?》

그제야 잠을 깬 리악이 아직도 잠기어린 목소리로 밖에 대고 소리쳤다.

《누구냐?》

《예, 저올시다.》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

《저, 김막동이가 나타났…》

《뭐라구? 김막동이가-》

리악은 소스라쳐 일어났다.

리악은 머리맡에 벗어놓은 바지를 입고 문을 벌컥 열었다.

《여보게 털보, 그놈이 지금 어디 있어?》

《예, 지금 역참에서 말을 하고있사옵니다.》

《알겠다. 넌 빨리 가서 그놈을 단단히 붙들어두어라, 내 곧 갈테니…》

털보가 허리를 굽신했다.

《알겠소이다.》

문을 다시 닫은 리악은 부랴부랴 옷을 주어입고 눈곱도 떼지 못한채 역참으로 달려나갔다.

아닐세라 털보를 비롯한 역졸들이 털벙거지를 쓴 웬 사람을 빙 둘러싸고 무어라고 고아대고있었다.

헐레벌떡 칼을 빼들고 그들가운데 뛰여든 리악은 소리쳤다.

《막동이 이놈, 잘 만났다.》

《?…》

리악이 역졸들이 단속한 사람을 쳐다보니 막동과는 생판 다른 사람이였다.

리악은 성이 나서 꽥 소리쳤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털벙거지가 벌컥 했다.

《이것 봐라, 누굴 보구 놈이래. 넌 어떤 놈이냐?》

《난 여기 역리이다. 넌?》

《난 봉산관가 군사이다. 왜 그래?》

리악은 빼들었던 칼을 칼집에 집어넣으면서 곁에 선 털보를 질책했다.

《야, 털보, 저놈 보구 막동이라구 한게 누구야?》

털보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예, 방금 저 사람이 제입으로 말했소이다.》

《제입으루?》 하고 놀란 리악이 털벙거지에게 물었다.

《네 이름이 뭐야?》

고을군사보다 한창 아래급인 역졸들이 자기를 보고 반말질하는데 골이 난 털벙거지가 리악을 올곧지 않게 쳐다보았다.

《이건 아까부터 내 이름자를 듣구 왜들 성가시게 굴어, 김막봉이다. 왜 이 야단이야?》

《김막봉?》 하고 되물은 리악이 거적눈을 올리였다.

그러니 김막봉을 김막동으로 털보랑 역졸들이 잘못 들은게 분명하였다.

리악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사내다운 아량을 보였다.

《이거 섭섭하게 됐소이다. 아마 이 애들이 거기 이름을 김막동으로 잘못 듣구 버릇없이 군것 같은데 량해하시우.》

털벙거지도 성을 가라앉혔다.

《그렇소이까? 그런데 김막동이란건 도대체 어떤 놈이요?》

《고을 아전과 형방을 죽인 살인자요.》

《그런 놈이요?》

《우린 몇달째 그놈을 잡으려고 돌아치는데 아직 못 잡아서 이 야단이요.》

털벙거지는 그제야 모든것을 알았다는듯 껄껄 웃었다.

《그래서 아까 내 이름을 듣구 야들이 눈살이 꼿꼿해서 돌아쳤구만. 하…하…》

《웃지 마시우. 남은 속상해죽겠는데…》 하고 리악이 퉁명스레 내뱉았다.

털벙거지가 가지고오던 짐을 잔등에 지면서 말했다.

《난 역참마을 리진사댁에 가우다. 그 집은 우리 고을 병방어른의 누이네 집인데 요즈음 해산을 했다기에 꿀과 미역을 가져다주러 가우다. 그럼 난 가겠소.》

털벙거지는 짐을 지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던 리악이 털보에게 꽥 소리쳤다.

《이놈아, 넌 귀구멍이 어떻게 뚫렸기에 소리 하나 가려듣지 못해?》

《난 그저 김막동이라구 하는줄 알구…》 하며 털보는 우물쭈물했다.

리악은 한동안 털보를 쏘아보다가 (하긴 너같은것한테 속은 내가 한심하지. ) 하는 생각이 들었는지 더 추궁은 하지 않고 윽벼르기만 하였다.

《길목을 단단히 지켜라. 내 밥먹구 나올테니.》

《알겠소이다. -》

털보와 다른 역졸들이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와 밥 한그릇을 게눈 감추듯 하고난 리악은 노전살가치를 뜯어서 입감을 쑤시고 앉아있었다.

밥상을 내가고 들어온 녀편네가 리악의 턱밑에 붙어앉아 물었다.

《그래, 그 막동이란 놈은 잡았어요?》

리악이 말없이 도리머리를 저었다.

《그 원쑤같은 놈을 꼭 잡아야 하오이다. 그놈을 잡기만 하면 내손으로 목을 치겠어요.》

녀편네의 그 말에 리악이 거적눈을 번쩍 떴다.

《아니, 그놈과 네가 무슨 상관이 있다구 그렇게 별러?》

《왜 상관이 없어요? 내 랑군을 죽인 놈인데…》

《아, 그렇지… 하긴 열흘밖에 안 살았어도 랑군이야 랑군이지. 거참 오대구형방어른이 안됐단 말이야.》

녀편네가 툭 내쏘았다.

《비웃지 말아요.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면서.》

리악은 새틋해서 돌아앉는 녀편네의 그 모양이 더 재미가 있었는지 히물거리면서 그러안았다.

《내 하나 물어볼가, 내것 하구 오형방것 하구 어느게 더 좋아?》

리악의 품에 안긴 녀편네는 그 말에 또 생각이 나는지 몸을 꼬면서 말했다.

《엇비슷한게 어디 알수가 있어야지?》

《그것두 몰라, 그럼 내 이제 맛을 보여줄테니 한번 잘 가려보란말야.》

《아니, 이 시퍼런 대낮에…》

《까짓거 상관있어? 자, 어서…》

밤새껏 놀아댄 그들이건만 둘이 다 색광들이라 또다시 숨소리가 높아졌다.

그때 쿵쿵 마당을 울리는 발소리가 나더니 문이 벌컥 열렸다.

리악이 놀라운 눈길로 문이 열린쪽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문앞에는 고을관청의 최형리가 당장 잡아먹을 기상으로 노려보면서 그 앞으로 다가왔다.

리악은 벌떡 놀라 엉거주춤 일어섰다.

최형리가 리악을 쏘아보다가 그의 귀뺨을 갈겼다.

《이놈아, 잡으라는 도적은 안 잡구 대낮에…》

리악이 《아이쿠-》 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주저앉았다.

최형리는 꽥 소리를 질렀다.

《이놈아, 어서 나와!》

아닌밤중에 홍두깨라고 뜻밖에 따귀를 맞은 리악은 속이 불끈하였다.

(아니, 한갖 고을의 형리인 주제에…)

《아니, 이건 무슨짓이야?》

최형리가 종이장을 리악의 앞에 내흔들면서 맞받아 소리쳤다.

《이놈아, 이게 뭔줄 알아. 군수어른의 령이다. 꺼떡하단 어떻게 되는줄 알지?》

그 소리에 리악은 한풀 죽었으나 성이 풀리지 않았는지 말없이 최형리를 노려보았다.

이때 마당으로 털보를 비롯한 역졸들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와서 주런이 섰다.

리악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당에 주런이 둘러선 역졸들을 휘둘러 보고난 최형리가 목청을 돋구었다.

《다들 듣거라. 군수어른의 령이 내렸다. 내가 이제부터 읽겠다.

〈어제낮에 매골 최부자네 집에 들이닥친 도적떼가 자칭 도감영의 형리라고 하면서 거기에 숨어살던 김막동의 에미를 잡아갔다. 그리고 최부자에게는 곤장을 쳐서 사족을 못쓰게 만들었다. 내가 도감영에 알아본데 의하면 거기에서는 형리를 파견한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러니 이놈들은 김막동의 도적패거리가 분명하다. 어진 임금님의 밝은 정사가 펼쳐져 태평성세를 노래하고있는 이때에 감히 도적의 무리들이 날치고있으니 이게 어디 될말이냐? 그러니 고을안의 군사들과 역참들의 역졸 할것없이 모두가 떨쳐나서서 김막동일당을 열흘안으로 잡아내야 하겠다. 이 일에서 공로를 세운자는 후한 상을 줄것이며 게을리한자는 그 누구를 물론하고 형벌을 가할것이다. 계묘년 10월 임술일〉, 이상이다.》

군수의 령을 들은 리악은 거적눈을 번쩍 떴다. 어디 가서 가만히 숨어살줄 알았던 김막동이 아직도 날뛰고있다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최형리는 또다시 목청을 돋구었다.

《에, 고을의 지시에 따라 이 방아역은 내가 맡았다. 이제부터 나의 령을 거역하는자는 그 즉시에 선참후계하겠다. 먼저 목을 베고 후에 보고하겠단 말이다, 알겠어? 그러니 당장 출동준비를 해가지고 역참에 모이라. 오늘부터 이 주변의 산과 골짜기를 모조리 뒤져보아야 하겠다.》

그날부터 리악을 비롯한 방아역 역졸들은 물론 온 고을의 군사들과 역졸들이 떨쳐나서 수안땅의 마을과 마을, 산과 골짜기들을 샅샅이 뒤지였다.

고을에서 파견된 최형리는 악악거리면서 리악이네를 다그어댔다.

그가 그러는데는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다.

그는 바로 윤산이네가 죽도록 매를 친 최부자의 아들이였던것이다.

허나 그들은 수안땅에서 백리나 더 떨어진 무원골에 깊숙이 자리잡은 막동이네를 찾아낼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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