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막동은 이른새벽에 일어나서 동굴밖으로 나왔다.

산골의 새벽경치는 장쾌하였다.

울뚝불뚝 솟은 바위절벽을 감돌아 새벽안개가 흐르고있었다.

절벽에서 흘러내리는 안개는 마치도 폭포수가 떨어져내리는듯싶었다. 땅우로 가벼이 내려앉는 젖빛안개는 바위돌과 나무, 풀잎들을 조용히 감싸안고 어루만져주다가는 흐르는 내물을 따라 살금살금 걸음을 옮기며 쉼없이 조잘대는 내물과 함께 다정히 속삭이며 흘러갔다.

막동에게 조용히 다가온 안개는 다정히 얼굴을 쓰다듬어주기도 하고 걸음을 옮길 때마다 팔랑팔랑 피여오르면서 길을 비켜주기도 하였다.

그속으로 걸어가는 막동은 자기 몸이 구름속에 둥둥 떠받들려가는듯싶었다.

포근한 안개속에 감싸여 내가에 이른 막동은 두팔을 벌려 맑은 공기를 량껏 들이마셨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시내물 가운데에 들어선 막동은 온몸에 새로운 기운이 쭉 뻗어올랐다.

웃동을 벗어 바위우에 내던지고난 그는 머리를 물속에 푹 잠그고 와락와락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는 수건을 물에 적셔 온몸을 마구 문질러댔다.

돌덩이같이 단단한 그의 몸에서는 김이 물물 피여났다.

그가 한바탕 몸을 씻고있는데 잠에서 깨여난 윤산이와 봉산 리실이, 수안 리실이가 내가로 나왔다.

그들은 서로 웃고 떠들면서 몸을 씻었다.

동굴안에서 흘러나오는 내물은 가을절기인데도 찬기운이 아니라 오히려 훈훈한 기운을 풍겼다.

이때 여기로 다가온 이순이 봉산 리실을 찾았다.

《저, 봉산 리실동생-》

머리를 털던 봉산 리실이가 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왜 그러세요?》

《모두들 함께 와서 아침밥을 잡수세요.》

《알겠어요.》

막동은 그들과 함께 동굴로 돌아오면서 말을 건넸다.

《이보라구 윤산이, 아무래도 이사람들의 이름을 따로 지어야 할것 같애.》

《이름이라니요?》

《거 봉산 리실이, 수안 리실이 하자니까 부르기도 힘들구 틀렸어.》

키가 큰 수안 리실이가 끼여들었다.

《글쎄말이요, 이건 이름이 꼭 같으니 영 불편해요.》

윤산은 머리를 기웃거렸다.

《그냥 리실이라구 부르면 헛갈리겠구 막동형님, 형님생각엔 이 애들의 이름을 어떻게 지었으면 좋겠소?》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거 뭐 힘들게 생각할게 있나, 리실이란 이름은 숨겨두구 봉산이, 수안이 하고 부르면 될게 아닌가.》

윤산은 머리를 썩썩 긁었다.

《봉산이? 수안이? 어쩐지 이름같지 않은게…》

막동이 윤산의 어깨를 툭 쳤다.

《이사람아, 량반들두 제 이름자와 함께 자요, 호요 하면서 두세개씩 이름을 가지는데 우리라구 못 가질게 있나, 부르기 좋게 수안이, 봉산이 하는게 좀 좋아서?》

윤산은 무릎을 툭 쳤다.

《형님말이 옳수다. 형님두 원래 이름이야 김일동인데 마을에서야 어디 일동이라구 불렀어요? 막동이라구 불렀지. 고을량반들도 형님을 막동이라구 부르고있지요.》

막동이 두 리실이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 자네들 생각엔 어떤가?》

《좋아요, 막동형님.》

《나두 좋아요.》

윤산은 허리에 손을 얹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어디 이름을 한번 불러볼가? 얘 봉산아-》

그러자 봉산이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예-잇-》

《얘 수안아-》

《예-잇-》

그들은 마주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하…》

그 웃음소리는 한적하던 골안에 메아리쳐갔다.

아침밥을 먹고난 그들은 길떠날 차비를 하고 나섰다.

윤산이 막동에게 아침밥을 먹고나서 골안주변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했던것이다.

윤산은 앞장에서 걸어가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하였다.

그들이 바위절벽굽이를 에돌아나서니 넓다란 공지가 나섰다.

사방이 벼랑으로 둘러막히고 가운데는 열흘갈이남짓한 새초밭이 펼쳐졌다.

그리고 왼쪽 절벽밑으로는 시내물이 자그마한 못을 이루면서 흘러내렸다.

오른쪽으로는 절벽아래로 소나무와 이깔, 분비나무들이 빼곡이 들어섰는데 그야말로 사람살기에는 그저그만이였다.

막동이 사방을 둘러보면서 감탄했다.

《옛말에 바위절벽이 둘러막히고 복숭아꽃이 핀 마을을 보구 무릉도원이라고 했다는데 여기야말로 무릉도원일세. 여길 보구 뭐라구 부르나?》

윤산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여긴 수안과 신계사이에 있는 골안이 분명한데… 까짓거 상관있어요? 우리가 이름을 붙이면 되는거지요.》

막동이 이쪽저쪽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 양지쪽에는 집을 짓고 이쪽 아래에 있는 새초밭은 갈아엎구 밭을 만들면 그저그만이겠어.》

모두들 머리를 끄덕거렸다.

막동은 윤산과 봉산이, 수안이의 손을 잡고 웨치듯 말했다.

《우리 여기에 집을 짓구 밭을 개간하구 마음껏 살아보자구, 량반도 부자도 없으니 오죽 좋은가?》

《당장 집부터 짓자요.》

《하긴 여기서 살면 관리놈들도 막동형님을 찾아내지 못할거예요.》

막동은 껄껄 웃었다.

《그럴거야. 우리 며칠내에 귀틀집을 번듯하게 지어놓구 잔치를 하자구.》

윤산은 눈을 깜빡거렸다.

《형님, 집을 몇채나 짓겠어요?》

《두말할게 있나, 이 골안의 주인은 우리들이니 각기 집 한채씩 차례지게 짓자는거다. 어떠냐?》

봉산은 눈이 커졌다.

《그럼 나와 이 수안이한테도 집이 차례진단 말이요?》

《그럼 자네들두 장가갈 나이가 되였으니 이제 집을 지어놓구 어디 가서 얌전한 처녀들을 하나씩 업어오란 말일세.》

그 말에 봉산이도 수안이도 입이 벙그레해졌다.

막동은 앞에 나서서 걸어갔다.

《자, 어서 저쪽으로 가서 집터를 잡아보세.》

그들은 막동을 따라 나무들이 우거진 숲쪽으로 갔다.

집자리로 알맞춤한 양지쪽에 이른 막동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하였다.

《예로부터 집자리는 좌청룡우백호 배산림수한 곳이 제일이라고 하였거늘 여기가 알맞춤하다.》

수안은 놀라운 눈길로 막동을 보면서 물었다.

《막동형님, 그건 무슨 말이요?》

막동은 빙그레 웃으면서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우리 나라에는 옛날에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단다. 그 나라는 국력이 강하구 부유해서 세상에 이름을 떨쳤지. 그때 우리 조상들이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방위신으로 동쪽은 청룡, 서쪽은 백호, 남쪽은 주작, 북쪽은 현무라고 하였지.

그러니 좌청룡우백호라는 말은 남쪽을 마주하고 섰을 때 왼손쪽은 동쪽이요, 오른손쪽은 서쪽이란 뜻이구 배산림수는 뒤에는 산이요, 앞에는 물이라는 뜻이다.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란 말이다.》

봉산은 막동을 희한하게 쳐다보았다.

《난 지금껏 형님두 우리와 같은 상놈인줄 알았사온데 이제 보니 선비님이시우다.》

윤산이 봉산의 어깨를 툭 쳤다.

《이보라구, 이 막동형님은 어려서부터 글공부도 하구 칼쓰기도 배우구 거 뭐라더라 옳지, 문무를 겸비했단 말이다. 그러니 어렵게 대하란 말이야.》

윤산의 말은 사실이였다.

막동은 어려서부터 자기 형인 수동과 함께 아버지의 슬하에서 글공부와 무술을 익혔다.

막동의 아버지는 사람이 사람구실을 바로하자면 글을 알아야 하고 나라를 지키자면 무술을 익혀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형제에게 어려서부터 글공부와 무술을 배워주었다.

동생들에게 신이 나서 하는 윤산의 말을 듣자 막동의 눈앞에는 불쑥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자식들에게 엄하면서도 깊은 호수와도 같이 웅심이 깊은 잊지 못할 아버지였다.

봉산이 막동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형님, 형님을 미처 몰라본 이 어리석은 놈을 욕해주시우다.》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봉산아, 우리 이제 집을 다 지어놓구 글공부두 하구 무술도 배우자. 내 아는껏 다 배워줄테다.》

봉산과 수안은 너무 기뻐 껑충껑충 뛰였다.

드디여 그들은 웃동을 벗어던지고 집터를 닦았다.

종살이 고역속에서 못해본 일이 없는 그들인지라 아무일에서나 막힘이 없었고 손발이 잘 맞았다.

지금 그들은 량반집종이 아니라 인적없는 골안의 주인이 되여 자기들이 사는 집을 짓는것이니 어찌 흥이 나지 않으랴.

점심전에 벌써 집터 네개를 다 닦고 내가에서 바위를 굴려다가 주추까지 박아놓았다.

봉옥이와 이순이가 가져온 점심을 먹고난 그들은 한숨 돌릴새도 없이 나무찍기에 달라붙었다.

막동과 윤산은 도끼를 휘둘러대며 기운차게 나무를 찍어냈다.

봉산과 수안이는 넘어진 나무들을 다듬어 집터마다에 날라다 쌓아놓았다.

쩡쩡 울리는 도끼소리는 한적하던 골안에 메아리쳐갔다.

남정들에게 뒤질세라 봉옥과 이순이도 그들의 주위에서 맴돌면서 일손을 거들어주었다.

집짓기를 시작한지 엿새째되는 날 저녁무렵이였다.

마지막순서로 수안이가 들 네번째집 방바닥 진흙매질을 한창하고있을 때였다.

내가에 물을 길러 갔던 이순이가 정신없이 뛰여들면서 기겁하여 소리쳤다.

《저… 저기 어떤 놈이…》

《?…》

막동이네는 하던 일을 멈추고 이순을 쳐다보았다.

이순이 벌벌 떨면서 말을 못하였다.

윤산은 흙묻은 손으로 이순이를 잡고 되물었다.

《이순이, 무슨 일이야? 어서 말해!》

그제야 이순이도 놀란 가슴이 좀 진정된듯 했다.

《저기 첫집 마당에 웬놈이 기웃거리고있어요.》

《뭐라구?》 하고 막동이 달려나갔다.

그뒤를 따라 모두 마당으로 나가 이순이가 가리키는쪽을 바라보았다.

이순이의 말대로 그 집 마당에서는 웬 시꺼먼 물체가 우물거리고있었다.

그쪽을 지켜보던 막동이 미소를 지었다.

《이순이가 오늘 기막힌 손님을 모셔왔다.》

《손…손님이라니…》 하며 이순의 눈이 올롱해졌다.

《저 손님이 자기를 잡아 집잔치에 써주시오 하고 제발로 찾아왔단 말이야. 저건 사람이 아니라 메돼지야.》

그제야 웬 나쁜놈이 왔는가 해서 긴장해졌던 그들의 얼굴에서 화기가 돌았다.

막동은 아직도 마당가에서 끙끙거리면서 돌아가는 메돼지를 노려보면서 보면서 말했다.

《윤산이는 저쪽 나무에 올라가서 저놈을 유인하라구. 내가 옆에 숨었다가 돌탕을 먹일테니.》

《알겠수다.》 하고 대답한 윤산은 마당 반대쪽에 서있는 이깔나무로 소리없이 다가가 잽싸게 기여올랐다.

막동이와 함께 여러번 사냥을 함께 한 윤산은 벌써 막동의 말 한마디에 그 뜻을 알아차렸다.

메돼지란 놈은 자기를 해치려고 달려드는 놈한테는 우직스레 맞받아나가는 성질이 있는것이다.

이제 윤산이가 나무에 올라 놀래우면 메돼지는 정신없이 윤산에게 달려든다.

그때 옆에 숨었던 막동이가 불의에 돌벼락을 들씌우면 되는것이다.

막동은 주먹만 한 날이 선 돌 몇개를 골라쥐고 나무뒤에 숨어 윤산이쪽으로 손을 흔들었다.

이윽고 나무에 오른 윤산이 몸을 일으켜 메돼지의 대가리를 돌로 때렸다.

펄쩍 놀란 메돼지는 아니나다를가 윤산이 있는쪽으로 곧바로 내달렸다.

메돼지가 막동이 숨어있는 나무앞을 지날 때였다.

막동은 익숙한 동작으로 메돼지의 대가리를 돌로 깠다.

불의에 타격을 받은 메돼지가 약간 비칠거리는 틈을 타서 막동은 연거퍼 돌을 날렸다.

어찌나 드세차게 돌벼락을 맞았는지 메돼지는 윤산이가 올라가 있는 나무밑에 채 이르지 못하고 넘어져서 버둥거렸다.

이때 나무우에 있던 윤산이 뛰여내리여 메돼지의 배허벅을 힘껏 걷어찼다.

지금껏 뒤에서 그들의 모습을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봉옥과 이순이, 봉산과 수안이는 서로 손을 맞잡고 환성을 질렀다.

봉산이와 수안이는 윤산이쪽으로 달려가면서 소리쳤다.

《잡았다. -》

넘어진 메돼지는 새끼송아지만 하였다.

《야-큼직해요!》 하며 봉산이 다가오는 막동에게 자랑했다.

수안은 막동의 손을 덥석 잡았다.

《형님돌팔매질은 귀신 한가지예요. 난 그 재주를 꼭 배우겠어요.》

《그렇게 하자꾸나.》

그들쪽으로 달려온 봉옥이와 이순이도 넘어진 메돼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야, 정말 커요.》

《송아지만 해요.》

봉산은 한발로 메돼지를 밟고 서서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이놈이 정말 우리가 집을 다 지은걸 알고 온게 분명해요. 고맙수다 메돼지량반님, 이렇게 와주셔서…》

그 소리에 모두 와-하고 한바탕 웃었다.

봉산의 말대로 메돼지가 나타난것도 정말 신통했다.

오늘까지 집손질을 하면 새집들이를 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집앞에 찾아온 메돼지를 잡았으니 세상에 이처럼 일이 척척 들어맞는게 어디 있단 말인가.

막동은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이제 조금만 손대면 수안이네 집이 다되니 우리 그 일을 제꺽 끝내구 이놈을 잡아 불에 구워먹으면서 한바탕 잔치를 차려보자구.》

그의 말에 모두들 신이 나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남정들은 메돼지의 다리를 하나씩 잡고 내가에 가져다놓았다. 봉옥이와 이순이는 저녁준비를 서둘렀다.

어느덧 수안이의 집 방바닥 매질까지 다 하고난 그들은 봉옥이와 이순이가 성의껏 차려놓은 상앞에 둘러앉았다.

한옆에는 메돼지고기를 구워먹을 우등불이 활활 타고있었다.

막동의 귀띔을 받은 봉옥이 상우에 아직도 김이 물물 나는 메돼지 피를 담은 종지를 각기 하나씩 차례지게 놓았다.

막동은 자기앞에 놓은 종지를 잡고 말했다.

《난 오늘 이자리에서 우리 서로 의형제를 맺자고 하네. 이건 우리모두가 같은 피줄을 타고난 형제라는 뜻이네. 우리 이 피를 마시구 앞으로 서로 돕고 이끌면서 여기서 남부럽지 않게 살아보자구.》

막동은 먼저 피를 꿀꺽꿀꺽 마셨다. 그뒤를 따라 윤산이도 봉산이도 수안이도 마셨고 봉옥이와 이순이도 마셨다.

피를 마시는 그들의 얼굴에는 서로 의지하여 인생의 먼길을 변함없이 함께 걸으려는 굳은 맹세가 력력했다.

윤산은 자리에 일어서서 신중하게 말했다.

《오늘 우리가 서로 형제가 된 이상 상하구별을 명백히 하구 앞으로 살아가자는거요.

난 우리 형제의 맏이는 막동형님이고 둘째는 이 윤산이가 되구 셋째는 서로 나이는 같아두 두달 먼저 난 봉산이, 넷째는 수안이로 하자는것이요. 어떻소?》

모두가 좋다고 박수를 쳤다.

막동은 동생들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자, 우리 서로 손을 잡아보자구.》

막동의 손우에 윤산과 봉산이, 수안이가 차례로 손을 얹었다. 그들은 서로 손을 굳게 잡고 흔들었다.

옆에 있던 봉옥이 술이 담긴 주전자를 이순에게 주면서 어서 부으라고 권했다.

이순은 남정들앞에 다가가 봉옥이가 시키는대로 종지에 술을 부었다.

막동이 종지에 담긴 술을 이윽히 지켜보면서 입을 열었다.

《내 동생들과 한가지 의논할 일이 있네.》

모두 말없이 막동을 쳐다보았다.

《난 오늘 이 술을 둘째인 윤산이와 저 이순이의 혼약술로 마시자는걸세. 그리구 오늘밤부터는 서로 함께 지내게 하구 며칠안으로 당장 잔치를 하자는걸세. 어떤가?》

봉산과 수안이는 물론 봉옥이도 모두 그렇게 하자고 손벽을 쳤다.

이순은 너무도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며 봉옥의 등뒤에 얼굴을 숨겼다.

그런데 당사자인 윤산이 손을 내저었다.

《형님, 그건 안되오.》

《?…》

누구보다 좋아할줄 알았던 윤산이가 이렇게 나오자 모두 의아해했다.

《이사람 윤산이, 그건 무슨 소린가?》

윤산은 말없이 머리를 숙였다.

《그럼 저 이순이가 싫단 말인가?》

막동이 다그쳐 물었다.

윤산은 머리를 숙인채 도리질만 하였다.

《그런데 왜 안된다는건가? 응, 윤산이?》

윤산은 머리를 숙인채 대답이 없었다.

곁에 앉은 봉산과 수안이가 윤산의 어깨를 흔들었다.

《둘째형님, 속시원히 말하시우.》

《윤산형님, 도대체 왜그러시우?》

머리를 숙인 윤산의 어깨가 가볍게 떨렸다.

막동은 눈이 커졌다.

《아니, 자네 우는게 아닌가?》

윤산은 눈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들고 목메여 말했다.

《형님과 동생들이 나를 생각해주는 그 마음은 정말 고맙수다. 그러나 이순이와 혼인하는것만은 아직…》

막동은 속이 벌컥 했다.

《그건 무슨 소린가 응? 윤산이?》

그제서야 윤산은 주먹으로 눈을 뻑 씻고나서 말했다.

《난 막동형님의 어머니를 모셔다놓구 어머니앞에서 혼인을 맺었으면 해서요. 나나 저 이순이는 여태 부모가 누군지 모르고 송부자집종살이를 하였수다. 그래 부모의 사랑을 모르지우다. 나두 어머니앞에서 혼인이란걸 맺어보구싶어서 그러우다.》

이 말을 들은 막동은 가슴이 뭉클했다.

봉산과 수안이도 말없이 눈을 슴벅거렸다.

봉옥은 자기 품에 안겨 흐느끼는 이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소리없이 울었다.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그리웠으면 억대우같은 윤산이가 저렇듯 눈물을 흘리는것인가.

이 세상에 사랑이란 물건이 있어서 그것을 다 합쳐 산과 강을 이루어도 어머니의 사랑, 아버지의 사랑에는 비길수도 없는것이다. 그렇듯 크고 큰 사랑의 샘줄기를 한모금도 못 마시고 살아왔으니 윤산이나 이순이가 이 뜻깊은 좌석에서 그토록 갈망하는것은 너무도 응당하였다.

막동은 눈물이 나오는것을 꾹 참고 입을 열었다.

《윤산이, 난 자네의 그 마음을 미처 몰랐네. 이제 내가 어머니를 모셔온 다음에 자네들의 잔치상을 차리자구. 그렇다구 언제 모셔올지 모를 어머니를 기다리면서 자네들이 이렇게 숨박곡질을 할거야 있나? 이젠 자네들이 들어가 살 집도 마련되였는데 말일세.》

윤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형님, 내 이길루 동생들과 함께 가서 어머니를 모셔오겠수다.》

《엉? 지금 당장말인가?》

《까짓거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구 당장 말을 타고 가서 모셔오겠수다.》

봉산과 수안이도 따라 일어서서 당장 갔다오겠다고 떠들어댔다.

막동은 그들을 쳐다보면서 타일렀다.

《동생들은 우물에 가서 숭늉을 찾겠구만. 앉으라구, 좀 생각해보자구.》

윤산이 우격다짐으로 고집을 부렸다.

《형님, 어머니를 모셔오는 길루 내 이 동생들의 색시감들도 업어오겠수다.》

《뭐라구? 그건 또 무슨 소린가?》

《난 이 동생들의 집을 지으면서 생각이 많았댔는데 내가 아는 역참마을에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쌍둥이자매가 있지요.》

《뭘? 쌍둥이자매?》

옆에 앉아 이야기를 듣던 봉옥이 생긋 웃으면서 말했다.

《윤산동생, 동생들이 그 자매가 마음에 드는지 알아보지도 않구 그렇게 생나무꺾듯 하세요?》

윤산은 벙긋 웃었다.

《우리가 그 집에 몇번 드나들어서 이 동생들도 그 자매를 알고있어요.》

막동은 봉산과 수안이를 바라보았다.

《동생들은 그들을 정말 알고있나?》

봉산이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어줍게 말했다.

《윤산형님과 함께 그 집에서 밥을 몇번 해먹기두 했어요.》

《그러니 그 처녀들을 보긴 보았겠구만.》

수안은 얼굴이 벌개서 말했다.

《보긴 했는데… 말은 못해봤지요.》

막동은 윤산에게 되물었다.

《자네들은 언제부터 그 집을 알게 되였나?》

윤산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럴만 한 사연이 있었수다.》

…한달전 어느날이였다.

그날밤 윤산은 수안이랑 함께 멀리 봉산쪽에 나가 량반들이 섬겨바치는 봉물짐을 빼앗아가지고 돌아오는길에 역참마을 뒤산을 지나게 되였다.

그런데 산기슭에서 웬 녀자들의 애절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앞서가던 윤산이 걸음을 멈추고 자세히 보니 해묵은 소나무밑에서 두 처녀가 서로 부둥켜안고 슬피 울고있었다.

그들의 울음소리가 어찌도 처량한지 차마 발걸음을 뗄수가 없었다.

윤산은 지고있던 짐을 벗어놓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처녀들은 곁에 사람이 다가오는것도 모르고 서럽게 울기만 하였다.

윤산은 그들을 놀래우지 않으려고 헛기침을 깇었다.

쳐녀들은 겁에 질려 서로 부둥켜안고 오돌오돌 떨면서 윤산을 쳐다보았다.

윤산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니 마음을 놓으시우.》

그래도 처녀들은 아닌 밤중에 갑자기 나타난 사내를 경계어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윤산은 처녀들앞에 있는 바위턱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이 한밤중에 왜 여기서 울고들있소. 누가 죽었소?》

윤산의 다정한 물음에 다소 안정을 느꼈는지 한 처녀가 입속말로 말했다.

《아니와요.》

《그럼 집에 도적이라두 들었소?》

《그것두 아니와요.》

《그럼 왜 여기서 이렇게들 우는거요?》

그러자 처녀들은 눈굽을 씻으면서 호-하고 한숨을 내쉬였다.

무슨 일이 있는것이 분명하였다.

무슨 일인가 호기심이 동한 윤산이 또다시 물었다.

《무슨 일인지 말을 하라구. 혹시 내가 도울수도 있는지 알겠소.》

이렇게 윤산이가 진정으로 물어서야 한 처녀가 말했다.

《우린 요 아래에서 사는 쌍둥이자매와요. 그런데 래일아침 우린 생리별을 해야 해요. 그래서…》

윤산의 눈이 커졌다.

《생리별이라니?… 그건 어째서요?》

지금껏 말이 없던 처녀가 입을 열었다.

《이 앤 내 동생인데 래일아침 빚에 팔려 봉산으로 가구 난 이 마을 부자집 부엌데기로 끌려가와요.》

《그럼 집엔 아무도 없소?》

《아버진 병으로 돌아가시고 앓고있는 어머니만… 흐흑…》

처녀는 흐느꼈다.

윤산은 동정어린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쩐지 처녀들이 당하는 슬픔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들모두가 자기와 같이 지지리 고생을 하던 이순이처럼 느껴졌다.

순간 윤산은 어떻게 하든 이들을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윤산은 그들에게 진심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빚을 갚으면 서로 헤여지지 않을수 있소?》

《빚을 갚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데 빚갚을 길이 없어서…》

윤산은 바위에서 벌떡 일어섰다.

《내가 도와줄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구.》

윤산은 급히 봉산이랑 있는쪽으로 달려가 짐을 지고 그들과 함께 처녀들한테로 다가갔다.

처녀들은 불쑥 짐을 지고 나타난 그들을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윤산은 무작정 처녀들보고 집으로 가자고 말하였다.

이날밤 윤산은 자기들이 지고오던 봉물짐을 고스란히 넘겨주어 빚을 갚게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여 그들은 그후 그 집에 짐을 숨기기도 하고 밥도 몇번 해먹었던것이다. …

윤산이 자신있게 말하였다.

《그러니 내가 그 집 어머니와 이런 사정을 이야기하면 좋아하면 했지 반대는 안할것이우다.》

막동은 머리를 끄덕거리면서 수안과 봉산에게 물었다.

《그래 동생들 생각엔 어떤가?》

그들은 얼굴이 벌개서 뒤통수만 손으로 긁적거렸다.

아마 싫지는 않은 모양이였다.

막동은 무릎을 쳤다.

《좋네, 오늘저녁에 당장 가서 업어오자구.》

《아니, 형님이 직접 가실려구 그러시우?》

《동생들 일인데 내가 가지 않으면 누가 간단 말인가?》

윤산이 손사래를 쳤다.

《형님은 안되우다. 지금 형님을 잡겠다구 온 고을 군사들이 쫙 퍼졌겠는데 그러다가 어쩔려구 그러시우? 내가 동생들과 함께 갔다오겠수다.》

봉산과 수안이도 막동을 막아나섰다.

《형님은 안되우다. 어서 윤산형님 하자는대로 하시우다.》

이순이도 만류했다.

《막동오빠, 그렇게 하세요. 예?》

윤산이 막동에게 또다시 권고했다.

《우리가 어머니와 쌍둥이처녀들을 업어올테니 형님은 그사이 봉옥형수님이랑 함께 잔치차릴 준비나 하시우. 늦어두 래일밤엔 꼭 오겠수다.》

그들의 한결같은 간청에 의해 막동은 그냥 남기로 하였다.

수안이가 불쑥 막동에게 물었다.

《막동형님, 이제부터 우리가 여기에서 살자면 무슨 이름이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름? 글쎄 무어라고 붙였으면 좋을가?》

윤산을 비롯한 모두는 그거야 맏이인 막동이가 지어야 한다고 우겨댔다.

막동은 새삼스레 새로 지은 집이며 골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머리속에는 이곳을 처음 돌아보면서 아버지가 들려준 《무릉도원》이야기가 떠올랐던것이 생각났다.

《내 생각에는 이곳이야말로 우리같은 가난뱅이들이 마음펴고 살 곳이라고 생각해. 그래서 난 여기를 옛말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라는 뜻으로 무자와 원자를 합쳐 무원골이라고 했으면 하네.》

그 말에 모두들 찬성했다.

봉산이는 벌떡 일어서서 《무원골아-》 하고 길게 소리쳐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저녁노을 비낀 하늘가로 메아리쳐갔다.

윤산은 상우에 놓인 술이 담긴 종지를 번쩍 들었다.

《자, 형님, 동생들, 이제부터 우린 무원골의 주인들이니 한종지씩 마시자요.》

그들은 모두 자기앞에 놓인 술종지들을 잡아들어 요란하게 맞쫏고 단숨에 들이켰다.

그들은 초경이 다되도록 메돼지고기를 구워먹으면서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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