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윤산이네와 함께 길을 떠난 막동은 그들을 따라 부지런히 말을 달렸다.

몇십리 실히 되게 수안고을과는 반대켠인 길을 따라 냅다달리던 그들은 오른쪽 골짜기로 꺾어져 들어갔다.

숲이 우거진 골안으로 얼마쯤 들어가다가 다시 온통 바위투성이인 산을 두개씩이나 넘어 량옆에 칼벼랑으로 둘러막힌 좁은 골안을 따라 몇굽이를 돌고돌았다.

막동은 도대체 여기가 어디쯤 되는지 몰라 윤산에게 물으려 하자 윤산은 말하지 말라는 뜻으로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말에서 내린 일행은 온통 바위돌로 둘러막힌 비좁은 골안의 길도 나지 않은 곳으로 한동안 올라가다가 바위절벽밑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찌도 급히 걸었는지 사람은 물론 타고 온 말들도 땀투성이가 되여 번들거렸다.

절벽밑에 이른 막동은 더욱더 어리둥절하여 사방을 둘러보았다.

윤산은 걱정말라는듯 피씩 웃더니 동료들과 함께 병풍처럼 솟은 바위뒤로 사라졌다.

얼마 안있어 윤산은 다시 나와 자기가 타고온 말고삐를 잡았다.

막동에게 다가온 윤산은 타고온 말고삐를 단단히 잡고 자기를 따라오라는 뜻으로 손시늉을 하였다.

막동은 한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봉옥과 함께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병풍같은 바위뒤로 다가가니 말이 빠져나갈만 한 길이 열려져있었다.

그속으로 윤산이네는 말을 끌고 앞서가고 막동이도 말을 끌고 그들을 따라 들어갔다.

갑자기 동굴안에 들어선 막동은 눈앞이 캄캄하여 한걸음도 내짚기가 어려워 망설였다.

앞쪽에서 먼저 들어간 젊은이가 벽에 홰불을 켜놓아서야 걸음을 옮길수 있었다.

온통 돌투성이인 동굴안을 따라 몇굽이를 돌아서 얼마쯤 걸으니 어디선가 쏴-하는 시내물소리가 들려왔다.

물소리가 나는쪽을 향해 얼마쯤 걸어가니 갑자기 환해지며 밖이 보였다.

그제서야 윤산은 막동을 소리쳐 불렀다.

《막동형님, 이쪽으로 오시우. -》

막동은 윤산의 목소리가 나는 동굴밖으로 나갔다.

막동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기암괴석으로 층층이 쌓은듯 한 절벽짬사이에 뿌리박은 락락장송과 그사이에 새빨갛게 물든 단풍들이 바람결에 하느적거리고있었다.

절벽아래로는 맑은 시내물이 감돌아흐르는데 그야말로 절경이였다.

막동과 봉옥은 기암괴석으로 둘러막힌 경치가 너무도 황홀하여 넋을 잃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윤산은 나무에 말고삐를 매면서 물었다.

《막동형님, 우리 사는데가 어떠시우?》

막동의 입에서는 감탄의 목소리가 튕겨나왔다.

《이거 옛말에 나오는 신선들이 사는 땅에 들어선것 같구만.》

《하… 그러니 내가 신선이란 말이시우?》

《그래, 그래…》

《하긴 우리라구 신선이 못될것두 없지요. 우리도 여기서 신선처럼 살아보잔 말이우다.》 하면서 윤산은 막동의 두팔을 잡아흔들었다.

막동은 마음껏 웃고떠드는 윤산에게 조심히 물었다.

《여기선 막 떠들어두 일없나? 아깐 말두 못하게 하더니…》

윤산은 얼굴을 붉혔다.

《그건 우리가 드러날가봐 그래요. 저 바깥골안은 병풍처럼 둘러막혀서 기침소리 한번만 내두 골안을 쩡쩡 울리지요. 그래서 조심하는거지요.》

《그럼 여기는 일없나?》

《아까 우리가 들어온 동굴문을 막아놓기만 하면 하늘이 무너지게 소리를 쳐두 일없지요.》

막동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거 참 신통하구만.》

《어떠시우, 마음에 드나요?》

《이처럼 좋은 곳을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 정말 희한한 곳이로구만.》

《나두 형님이 마음 들어 하실줄 알았수다, 어서 가자요.》 하면서 윤산은 막동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디로 간단 말이냐?》

《우리가 살고있는 집으로 가자요, 어서요.》

막동과 봉옥은 윤산이를 따라갔다.

절벽밑을 에돌아 조금 가니 또 절벽이 막아섰는데 그밑에 동굴이 하나 있었다.

동굴앞에서는 윤산이와 함께 온 젊은이들이 웬 처녀와 함께 마주서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윤산은 그쪽에 대고 소리쳤다.

《이순이, 여기 누가 오는가 보라구!》

처녀가 막동이네쪽으로 바라보다가 반기면서 달려왔다.

《아이, 막동오빠- 》

막동은 어안이 벙벙하여 달려오는 처녀를 보고만 있었다.

《아니?…》

처녀는 달려와 막동의 손을 잡고 반기였다.

《막동오빠, 절 모르겠어요? 윤산오빠랑 같이 종살이를 하던 이순이예요.》

그제야 막동은 그를 알아보았다.

《아니, 그럼 네가 그 〈벙어리〉란 말이냐?》

《예, 그래요.》

막동은 놀랐다. 윤산이랑 종살이를 할 때는 빛을 받지 못한 풀잎처럼 시든데다가 말조차 잘하지 않아 늘 이순이라는 이름대신에 《벙어리》라고 부르던 처녀였다.

그러던 그가 몇달사이에 활짝 피여난 함박꽃같이 청초하고 활달한 처녀가 되였으니 막동이가 첫눈에 어찌 알아볼수 있었으랴.

막동은 모든것이 놀랍기만 하고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아 이순의 손목을 쓸어주기만 하였다.

옆에 선 윤산은 이순에게 봉옥을 소개했다.

《이순이, 어서 인사해. 막동형님의 색시야.》

이순은 봉옥에게 다가가 허러굽혀 절을 하였다.

《정말 잘 오셨어요. 전 막동오빠와 한마을에서 살던 이순이예요, 》

봉옥은 이순이의 손을 다정히 잡았다.

《난 봉옥이라고 해요. 정말 반가와요.》

《나도 혼자서 적적했는데 이젠 언니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난 이제부터 언니라고 부를테예요. 좋지요 언니!》

《고마와요.》

두 녀자는 마치도 오랜만에 만난 친자매들처럼 서로 손을 맞잡고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했다.

윤산은 이순에게 재촉하였다.

《이순이, 배고파죽겠어. 어서 밥을 차려.》

그제서야 이순은 알겠다는듯 샐쭉 웃으면서 《언니, 어서 가자요.》 하면서 봉옥의 손을 잡고 그들앞을 지나 동굴쪽으로 달려갔다.

막동은 윤산에게 물었다.

《윤산이, 이거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저 이순인 어떻게 여기까지 오구…》

《아하 형님두, 그 성급한 성미는 여전하구만요. 좌우간 가서 주린 배나 채우고 서로 실컷 이야기를 하자구요.》

막동은 자기가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어선지 빙그레 웃었다.

《그렇게 하자구, 배도 출출한데…》

이윽고 그들은 동굴앞에서 밥상에 마주앉았다.

막동은 자기앞에 차려놓은 밥상을 보고 또 한번 놀랐다.

새까맣게 옻칠을 하고 자개박이수를 놓은 상우에 놋그릇, 놋종지들을 차려놓은 칠첩반상에다가 놋수저까지 받쳐놓았던것이다.

웬만한 고을군수도 받아보기 힘든 희한한 음식상이였으니 지금까지 인생의 막바지에서 굴러다니던 막동으로서는 감히 손이 떨려 수저를 잡을수가 없었다.

이순은 놋주전자를 들고나와 번쩍거리는 놋술잔에 찰찰 넘치게 술을 부어서 막동에게 권하였다.

《막동오빠, 어서 이 잔을 드세요.》

막동은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잡고 묵묵히 잔에 담긴 맑은 술을 들여다보았다.

막동은 마치도 자기의 인생이 이 술잔에서부터 새로 시작되는듯 한 느낌이 불쑥 들었다.

곁에서 윤산이가 한마디 했다.

《막동형님, 어서 드시우다.》

그래서야 막동은 술잔을 쭉 비웠으나 수저를 들어 음식을 들 생각은 하지 못하였다.

그 모습을 이윽토록 지켜보던 윤산은 빙그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난 형님이 밥을 다 든 다음에 말하려고 하였는데 아무래도 해야겠군요.》

《?…》

《막동형님, 어서 맘놓구 음식을 들면서 내 말을 들으시우.》 하면서 윤산은 여기까지 오게 된 사연을 말하기 시작하였다.

…윤산과 이순이가 송부자네 집에서 뛰쳐나온것은 막동이가 그 집을 불질러놓은 이튿날이였다.

전날밤 자정이 넘어서부터 일어난 불은 다섯칸짜리 본채를 다 삼켜버려 재무지로 만들었다.

윤산을 비롯한 종들이 달라붙어 고간과 창고, 행랑방으로 번지는 불길을 겨우 꺼버렸다.

불속에 뛰여들어 물을 퍼붓고 갈구리로 불티들을 긁어내느라고 몸이 재투성이가 된 윤산은 불이 꺼지자 토방에 주저앉아 한숨을 돌리고있었다.

밤새껏 불을 끄라고 고아대면서 돌아가던 송부자가 어디에 갔다가 왔는지 서슬푸른 기상으로 윤산에게 달려와서 당장 잡아먹을것처럼 노려보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윤산이 너 이놈, 네가 막동이놈하구 한짝이 돼가지구 불을 놓았지? 이놈.》

송부자는 가죽채찍으로 윤산을 사정없이 마구 내리쳤다.

윤산은 아무말도 못한채 그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송부자는 입에 거품을 물고 윽윽거리면서 쓰러진 윤산의 잔등을 계속 내리쳤다.

윤산이 입고있는 옷은 갈기갈기 찢어져 넝마쪼각이 되였고 맨살이 드러난 그의 잔등에서는 피가 랑자하게 흘러내렸다.

윤산이 정신을 차린것은 해가 서산에 질무렵이였다.

어쩐지 잔등에 시원한 감을 느끼면서 눈을 뜨고보니 행랑방에 마구 내던져지다싶이 한 자기의 잔등에 이순이와 부엌어멈이 무엇인가 발라주고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윤산은 저도모르게 설음이 북받쳤다. 일곱살때 부모를 여의고 부모들이 갚지 못한 빚대신에 송부자집 종으로 끌려와서 스물이 된 총각으로 자라도록 언제 한번 사람다운 대접을 받아본적이 없는 윤산이였다.

산에 나무를 하러 다니면서 막동을 알게 되여 그와 친숙하게 지내면서 세상살이에 인정이란것도 있다는것을 처음 알게 된 윤산이였다.

송부자집 강아지보다도 못한 수모와 멸시를 받으면서 살아오던 윤산은 매맞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이순이와 부엌어멈을 보니 너무도 그 인정이 고마와 목메여울었다.

그뿐이 아니였다. 늘 짐승취급을 당하여도 억울한 매를 맞아도 어데 가서 하소연할 곳 없고 아픈 상처를 따뜻이 처매줄 부모도 없는 자기의 신세가 너무도 가련하여 서러움이 북받쳤다.

이순이도 부엌어멈도 눈물을 흘리면서 터지고 찢겨진 윤산의 잔등에 산에서 뜯어온 송진을 발라주었다.

부엌어멈이 윤산의 잔등을 다독이며 타일렀다.

《이사람 윤산이, 그만하라구, 자꾸 울면 상처가 아물지 못해.》 그럴수록 윤산의 어깨는 더더욱 물결쳤다.

이순이가 또 그를 달래였다.

《윤산오빠, 울음을 그쳐요. 자꾸만 우니 상처가 더 터져…》

이순이도 설음이 북받쳐 말을 잇지 못했다.

윤산의 터진 상처를 보는 이순의 가슴도 갈기갈기 찢어지는듯 하였다.

지금껏 송부자집 종살이를 하면서 이순이도 자기와 같이 부모없는 고아라고 하면서 친누이동생처럼 늘 돌봐준 윤산이였다.

그래서 살아가기 힘든 고역살이속에서도 이순은 늘 윤산을 자기의 친오빠로, 부모처럼 마음속으로 믿고 의지하며 살아왔던것이다.

그런 사람이 아침에 송부자에게서 개때려잡는듯 한 억울한 매를 맞아 피터지는것을 보고 가슴이 막 찢어져 그자리에서 달려나와 우물가에 앉아 울고 또 울었던것이다.

이때 밖에서 송부자녀편네의 째지는듯 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부데기야! 어딜 갔어, 이 쌍년이!》

부데기는 이순의 별명이다. 송부자네는 그에게 이순이라는 이름이 있건만 종한테 무슨 이름이냐 하면서 부엌데기라는 의미로 이렇게 불렀던것이다.

자기를 찾는 소리에 이순은 깜짝 놀라 일어서서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이윽고 송부자녀편네의 악을 쓰는 소리와 매질소리가 울려왔다.

《이년아, 집을 다 태워먹구 무슨 맘이 편해서 자빠져있냐? 이 쌍년아!》

어디를 맞았는지 이순이의 비명소리도 들려왔다.

《아야, 마님, 그게 아니와요.》

방안에서 그 소리를 들은 윤산은 울분이 치솟아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옆에 있던 부엌어멈이 황급히 윤산의 손목을 잡았다.

《이보라구, 참으라구 어서!》

부엌어멈에게 손목을 잡힌 윤산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다가 방안구석에 있는 걸이대가 눈에 띄우자 부엌어멈을 물리치고 그것을 잡아쥐고 달려나가려고 하였다.

부엌어멈은 윤산의 다리를 부여잡고 필사적으로 말렸다.

《참으라구 참아, 그러다가 큰 경을 쳐.》

윤산은 피터지게 울부짖었다.

《어멈, 이걸 놓아요, 더는 못 참겠어, 어서!》

《안돼, 안돼!》

《놓으라요! 놓아요!》

윤산은 그자리에 주저앉으면서 부엌어멈의 어깨를 마구 잡아흔들었다.

《어멈, 우린 짐승이 아니라 사람이란 말이야요, 사람!》

머리희도록 송부자집에서 부엌데기로 살아온 어멈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부엌어멈은 치마자락으로 눈굽을 훔치며 밖으로 나갔다.

윤산은 터져나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다음순간 그의 머리속에는 자기도 막동이처럼 원한풀이를 하고 어디론가 달아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팔베개를 하고 방에 누운 윤산은 광솔불에 시커멓게 그슬린 천정을 바라보았다.

천정 한쪽 구석에 친 거미줄에 걸려 귀뚜라미가 버둥거리는것이 눈에 띄였다.

얼기설기 늘여진 거미줄속에 걸린 귀뚜라미가 빠져나오려고 발버둥질하는데 그럴수록 거미줄은 점점 조여들었다.

한동안 발버둥치던 귀뚜라미가 힘이 진했는지 꼼짝달싹 하지 못하고 데룽데룽 매달렸다.

그것을 옆에서 지켜보기나 한듯 왕거미 한마리가 슬슬 기여나와 귀뚜라미를 덮쳤다.

그것을 본 윤산은 그 벌레가 꼭 자기같이 생각되였다.

송부자라는 《거미》가 칭칭 감아놓은 거미줄에 윤산이라는 《벌레》가 걸려들어서 꼼짝달싹 못하고 버둥거리고있는것이다.

지금 그 《거미》가 《벌레》를 덮쳐먹으려고 기여오고있는것이다.

윤산은 소스라쳐일어나 벽에 매달려있는 보따리를 내렸다.

보따리에는 스무해동안 살아온 그의 재산이 모두 들어있었다.

윤산은 황급히 보자기를 풀었다.

그안에는 누덕누덕 기운 덧옷 한벌이 포개여져있었다.

윤산은 덧옷 팔소매에 손을 쑥 밀어넣더니 천쪼각으로 싸맨 물건을 꺼내였다.

그가 싸맨 천쪼각을 풀자 그속에서 서슬푸른 단검이 나왔다.

윤산은 천쪼각으로 단검을 조심히 닦았다.

그 칼은 몇해전에 막동과 함께 사냥을 나갔을 때 그가 기념으로 준것이였다. 단검을 거머쥔 윤산의 눈에서는 푸른 빛이 번뜩이였다.

그날밤이였다.

덧옷을 입은 윤산은 조용히 문을 열고 밖을 살피였다.

이따금 앞산에서 소쩍새의 울음소리가 들려올뿐 사방은 고요했다.

하늘중천에 뜬 초생달이 재무지로 변한 송부자집을 희미하게 비쳐주고있었다.

밖에 나선 윤산은 불타버린 집터 뒤쪽에 있는 고간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송부자네가 림시로 꾸려놓은 부엌이였다.

지금 그곳에서는 이순이가 불에 그슬린 그릇들을 닦고있었다.

밤을 새워서 그릇들을 다 닦으라는 불호령이 떨어졌던것이다.

이순은 뒤에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수세미에 재가루를 묻혀 놋그릇을 열심히 닦고있었다.

윤산은 낮은 목소리로 이순이를 찾았다.

《이순이-》

이순이는 한밤중에 자기를 찾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다보았다.

《누구예요?》

《나야, 윤산이야.》

《아이, 윤산오빠.》

《쉿, 이순이 내 말을 명심해들어.》 하고 윤산은 이순의 귀에 대고 무엇이라고 속삭였다.

그 말을 듣고있는 이순의 눈은 유난히 반짝였다.

이순이 알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자 윤산은 어둠속에 몸을 숨겼다.

행랑방쪽으로 다시 온 윤산은 품에서 칼을 빼들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안에서는 송부자가 코를 골면서 자고있었다. 집도 재산도 다 불탄 뒤라 화김에 술을 퍼먹다나니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취해자빠졌다.

네활개를 펴고 자고있는 송부자를 쏘아보던 윤산은 손에 잡은 칼로 그의 목을 겨누고 한손으로 그의 옆구리를 더듬었다.

갑자기 송부자가 무엇이라고 잠꼬대를 하면서 옆으로 돌아누웠다.

윤산은 칼을 더 높이 들었다가 그가 깨여나지 않았다는것을 알았는지 조심히 송부자의 옆구리에 매달린 고간열쇠뭉치끈을 잘라냈다.

열쇠뭉치를 가지고 밖으로 나온 윤산은 그길로 고간쪽으로 다가가 쇠를 열고 그안으로 들어갔다.

얼마후에 윤산은 등에 무엇인가 한짐 지고나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윤산은 동구밖에 있는 소나무숲속까지 한달음으로 달려와 짐을 진채로 나무밑에 털썩 주저앉았다.

송부자에게서 얻어맞은 상처자리가 쑤셔나기 시작하여 저도모르게 입에서 신음소리가 나왔다.

이때 길가쪽에서 인기척이 났다. 희미하게 비쳐지는 달빛에 보따리를 들고 다급하게 걸어오는 이순의 모습이 보였다.

윤산은 그를 조용히 불렀다.

《이순이야?》

숨가쁜 이순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윤산오빠!》

윤산은 짐을 지고 마주달려나갔다.

《이순이, 이쪽으로!》

윤산을 알아본 이순은 마주 달려왔다.

《윤산오빠! 오래 기다렸어요?》

《아니, 나두 방금 오는 길이야.》

이순은 짐을 지고 마주선 윤산에게 걱정스레 물었다.

《윤산오빠, 그렇게 짐을 지고 상처가 아프지 않아요?》

《일없어, 이건 우리가 먹을 쌀과 천이야. 까짓거 송부자놈한테서 빼앗았지뭐.》

《그러다가 큰일나지 않겠어요?》

윤산은 빙그레 웃었다.

《일은 무슨 일? 이제부터 우린 송부자네 종이 아니란 말이야. 걱정말어.》

《정말 그렇게 될수 있을가요?》

《되지 않구, 자 어서 가자구.》

《어디루?…》

《그건 후에 보기로 하구 빨리 여기를 뜨자.》 하며 윤산은 앞서서 걸었다.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둔덕에 오른 그들은 다시한번 돌아다보았다. 종살이고역속에서 헤매던것을 생각하면 몸서리치는 고장이지만 정다운 이웃들과 생활의 추억을 남겨주는 산천은 그들이 발걸음을 선뜻 옮길수 없게 하였던것이다. …

윤산은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나서 막동에게 권했다.

《막동형님, 어서 밥을 드시우.》

막동은 말없이 머리를 끄덕이고 수저를 들어 밥을 먹기 시작하였다.

밥을 다 먹은 막동은 윤산이와 젊은이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더 들었다.

윤산은 하던 말을 계속하였다.

《그날밤 우린 한달음으로 마을을 벗어나 북쪽으로 내처 걸었지요. 언젠가 형님이랑 밤에 사냥을 나갔을 때 형님네 아버지가 북극성을 가리키면서 저 별이 있는쪽으로 가면 북쪽인데 가면갈수록 수림이 우거졌다는 말이 생각나서 우린 도중에 밥을 해먹으면서 꼬박 닷새를 걸었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여기 병풍골어귀쯤이 되던것 같아요.》

막동은 윤산에게 되물었다.

《그런데 이사람들은 어떻게 만났나?》

옆에 앉아 지금까지 윤산의 이야기를 듣고있던 몸이 다부진 젊은이가 앞질러 말했다.

《이 윤산형님은 우리들의 은인이지요.》

《은인이라니?》

젊은이가 윤산에게 말했다.

《윤산형님, 그 이야기도 마저 하시우.》

윤산은 빙그레 웃으며 말꼭지를 뗐다.

…윤산이네가 길을 떠난지 닷새째되는 날 아침이였다.

온통 바위투성인 인적없는 골짜기에서 쪽잠을 자고있는 윤산에게 이순이가 허겁지겁 달려와 흔들어깨웠다.

《윤산오빠, 저기 죽은 사람들이 있어요.》

그 소리에 윤산은 눈을 번쩍 떴다.

《뭐라구?》

《저기 시내가에 죽은 사람들이 있단 말이예요.》

《죽은 사람들?…》

《두명이예요.》

윤산은 이순을 따라 바위짬을 빠져나와 시내가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정말 온통 피투성이가 된 두 사내가 엎어져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간 윤산은 조심히 흔들었다.

《여보시오- 여보시오-》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윤산은 그들의 앞가슴에 손을 밀어넣었다.

미세한 심장의 박동이 알리였다. 두사람 다 죽은것은 아니였다.

윤산은 그들을 안아다가 바위밑에 눕히고 이순이더러 빨리 미음을 쑤라고 일렀다.

산속에서 헤매다가 초기를 만나 허기져 쓰러진 사람들이라는것이 대뜸 알렸던것이다.

윤산과 이순은 한사람씩 맡아서 그들의 입에 미음을 떠넣었다.

낟알들이 속안에 흘러들어와서인지 그들은 미음 한그릇씩 다 넘긴 후에야 간신히 눈을 떴다.

그제야 윤산은 그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더부룩한 머리며 때가 낀 목, 살구씨 같은 장알이 툭툭 박힌 손바닥, 썩살이 박힌 발바닥… 그들도 자기와 같이 종살이를 하는 사람들이 분명하였다.

윤산은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자네들은 어떤 사람들이요?》

몸이 좀 다부지고 키가 작은 젊은이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우린 부역 공사판에서 도망을 쳤… 고맙…》

윤산은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니 이들은 부역으로 끌려나갔다가 몰래 도망친 사람들이였던것이다.

그들은 미음을 두그릇씩 먹고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자기 소개를 하였다.

키가 작은 젊은이는 봉산사람이고 키가 큰 사람은 수안사람이였다.

재령쪽에서 벌려놓은 수로파기공사장에서 서로 리실이라는 이름이 꼭 같아서 친한 사이가 되였는데 알고보니 둘이 다 종살이를 하는 처지였다.

그들은 공사일이 너무 고되고 배가 고파 공사장에서 쓸 나무를 찍으러 나왔다가 도망을 쳐서 산속에 숨어있으면서 먹을것을 찾아 헤매다가 허기져 쓰러졌던것이다.

윤산은 그들의 처지가 너무도 가긍하여 지고온 쌀을 퍼서 먹이면서 며칠동안 성의껏 돌봐주었다.

며칠이 지나서야 그들의 몸이 추섰다.

봉산 리실이와 수안 리실이는 너무도 고마와 윤산과 이순이의 손을 잡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

두 리실이는 이제부터 윤산을 형님으로 모시고 윤산이 가는데가 그 어데건 따라가겠다고 애원하였다.

이리하여 그들은 서로 형제지간을 맺고 함께 행동하기로 약속하였던것이다. …

여기까지 말을 한 윤산은 막동에게 젊은이들을 소개했다.

키가 작고 다부진 젊은이는 봉산 리실이고 키가 좀 크고 이마가 벗어진 젊은이는 수안 리실이라는것이였다.

그 말을 들은 막동은 껄껄 웃었다.

《거참 신통하군. … 이름이 꼭 같다니, 하…》

윤산은 막동의 손을 덥석 잡았다.

《막동형님, 이젠 여기서 나랑 함께 살자구요. 난 형님을 친형으로 모실테니.》

막동이도 윤산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윤산이, 정말 고맙네. 그런데 내가 형님구실을 꽤 해낼수 있을가?》

《그건 걱정마시우다. 저 동굴안에 우리 형제가 먹고남을 쌀이랑, 천이랑 다 장만해 두었수다.》

《엉? 그 많은걸 어떻게?》 하고 막동이 물었다.

윤산은 빙그레 웃었다.

《그건 다 량반부자어른들이 우리한테 선사한것이지요.》

《?…》

《저 말들과 우리가 입은 갑옷, 그릇가지와 밥상, 쌀, 천 몽땅 이 황해도 량반부자님네가 우리한테 바친것이우다.》

막동은 저으기 놀랐다.

《그러니 자네들이 도적이 되였단 말인가?》

《량반들의 말대루 하면 우리가 도적이지만 우린 도적이 아니라 의적이지요.》

《의적이라니?》

《백성들의 피땀이 스민 물건을 빼앗아서 주인들에게 돌려주었으니 의적이 아니고 무엇이요?》

《?…》

《우린 량반들의 봉물짐을 털어서 우리같이 못사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거든요. 그래서 곳곳에 우리와 친한 사람들이 많아요. 형님이 잡혀가는것두 그네들이 알려주어 구원했어요.》

막동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윤산이 자네 말이 옳다. 실지 도적놈은 량반부자놈들이다. 그놈들은 백성들을 마구 죽이고도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는 악귀들이지…》

이렇게 말하는 막동의 눈에서는 증오의 빛이 번뜩이였다.

그들은 밤늦도록 마주앉아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들만이 아니였다. 봉옥이와 이순이도 자매같이 얼굴을 맞대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밤은 막동이네에게 있어서 후날에도 두고두고 잊지 못해하는 뜻깊은 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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