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저녁녘에 집을 떠난 리악이 헐레벌떡 70리 길을 달려 수안관가에 도착했을 때는 초경을 방금 넘겼을 때였다.

관청문을 열고들어간 리악은 사령을 불러 숙직관리를 찾아달라고 하였다.

마침 고을 형방인 오대구가 숙직을 서고있었다.

한개 고을 형방쯤하면 백성들에게서 빼앗아먹는것이 많아 몸이 피둥피둥 나련만 이놈은 어찌된 영문인지 모가지만 가느다랗게 길었다. 그래서 그를 보고 백성들은 모두 《오대가리》라고 불렀다.

방금 잠에서 깨여난 오대구는 선잠을 깨서인지 골살을 잔뜩 찌프리고 리악을 내려다보면서 퉁명스레 물었다.

《너 이놈,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게 한밤중에 소동이냐?》

리악은 품에서 제 애비가 써준 고소장을 내밀면서 굽석거렀다.

《형방님, 사실은 급한 일이 있어서…》

리악이가 내민 고소장을 등불에 비쳐보던 오대구는 펄쩍 놀랐다.

《너 이놈, 이게 적실하냐?》

《예, 사실이옵니다. 그래서 제가 불원천리로 달려왔소이다.》

자리에서 일어선 오대구는 마루우를 오락가락하면서 리악에게 물었다.

《그러니 막동이 그놈이 지금 그 집에 있겠다?》

《예, 아마 지금쯤은 제 색시를 끼구 잠을…》

오대구는 발로 마루바닥을 쾅 하고 굴렀다.

《에익 괘씸한 놈, 살인을 치구두 뻐젓이 돌아다니면서 장가까지 들어?…》

형방의 눈치를 살피던 리악이 두손을 맞잡고 여쭈었다.

《저에게 군사를 주면 제가 가서 그 년놈들을 묶어가지고 오겠소이다.》

그제야 오대구는 리악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넌 도대체 어떤 놈이냐?》

《예, 쇠부리마을 아전 리현손의 아들인데 지금 역졸로 있소이다.》

《음… 네가 리현손의 아들이란 말이냐?》 하고 오대구는 되물었다.

리현손은 비록 아전이라 해도 나라에서 중시하는 쇠부리터를 다스리는통에 고을관리들은 누구나 알고있었다. 게다가 원래 약삭바른 놈인지라 재산을 긁어모으는데서는 이골이 나서 고을관리들치고 그놈의 등을 쳐먹지 않은 놈이 거의 없었다.

형방 오대구자신도 리현손에게서 적지 않은 뢰물을 받아먹었던것이다.

머리를 수그리고 서있는 리악을 쳐다보는 오대구의 얼굴에서는 삵의 웃음이 슬쩍 비꼈다가 사라졌다.

(이놈을 고을군사로 승격시켜서 막동이녀석까지 잡게 하여 공로를 세우게 한다면 제 애비도 가만히 있지 않을게 아닌가. )

순간 그의 눈앞에는 뢰물보따리를 들고 자기 집에 들어서는 리현손의 꺽두룩한 모습이 떠올랐다.

오대구는 다시 자리에 틀지게 앉아서 리악에게 훈시했다.

《좋다, 내 이제 군수령감에게 이 사실을 여쭐테니 넌 행랑에 가서 좀 기다려라.》

《알겠소이다.》 하고 리악은 물러났다.

급히 행장을 차린 오대구는 번을 서는 사령 두명을 데리고 군수령감의 처소로 향했다.

그들의 일행이 관청에서 얼마 떨어진 군수네 집에 찾아가서 대문을 두드렸다.

얼마 안있어 대문이 찌그덩 열리더니 군수네 집 문지기가 머리를 쑥 내밀었다.

그앞에 다가간 오대구는 그에게 넌지시 말하였다.

《난 오늘밤 숙직당번인 형방이다. 급히 군수령감께 여쭐 말이 있으니 어서 아뢰여라.》

문지기는 머리를 썩썩 긁으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원님이 행수기생과 한방에 들면서 깨우지 말라구 했사온데 이거…》

그 말에 오대구는 약간 주저했다.

성미가 괴벽한 군수령감의 비위를 거슬리게 하였다가는 자기 목도 무사치 못할수 있었던것이다.

다음순간 그의 눈앞에는 어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막동에게서 맞아죽은 아전으로 말하면 군수령감이 한양에서 부임되여올 때 끼고온 놈인데 그에게 여간 충실한 놈이 아니였다.

그놈을 앞에 내세워 자기 재산을 본때있게 늘쿼볼 심산이였는데 그가 덜컥 맞아죽었으니 군수령감은 하루에도 두세번 속이 끓어올라 참지 못할 지경이였다.

그런데 살인을 친 막동이를 잡기는커녕 행처도 모르고있는지라 어제아침 모임시간에 군수의 엄한 호령앞에 오대구는 쩔쩔 기면서 땀을 뺐다.

《그놈을 이삼일안으로 잡아다가 내앞에 놓지 않으면 형방은 그 즉시 파직인줄로 알라. -》 하고 소리치던 군수의 호령소리가 지금 오대구의 귀전에 쟁쟁히 울려왔다.

오대구는 군수네 문지기에게 말했다.

《들어가서 사또께 살인친 막동이라는 놈의 행처를 알아냈다고 여쭈어라.》

문지기는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이고 문안으로 사라졌다.

잠시후 문지기가 다시 나오더니 형방에게 군수령감이 찾는다고 전해주었다.

문지기를 따라 군수가 자고있는 방문앞에 이른 오대구는 방쪽에 대고 말하였다.

《사또님, 분부대로 대령하였소이다.》

별안간 방문이 드르륵 열리더니 웃옷을 대충 걸친 군수가 상반신을 내밀고 소리쳤다.

《그래, 막동이라는 놈이 어디에 있다구?》

《예, 쇠부리마을에 있다고 하옵니다.》

《쇠부리마을이면 엎디면 코닿을덴데 여적 그놈이 거기에 숨어있는것도 모르고 형방은 도대체 뭘하고있었어?》 하고 또다시 군수령감의 욕질이 시작되였다.

오대구는 아무말도 못하고 꺽두룩한 모가지를 푹 수그리고 쏟아지는 욕설을 고스란히 받았다.

한창 기염을 토하던 군수는 오대구의 꺽두룩한 모가지를 쏘아보며 꽥 소리쳤다.

《뭘 그렇게 멍청해서 서있어? 이제 당장 형방이 직접 고을군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그놈을 잡아다가 내앞에 가져다놓아라.》

그제야 오대구는 꺽두룩한 목을 들고 군수를 쳐다보았다.

《알겠소이다. 그런데 저…》

《또 뭐냐?》

《예, 방금 이 기별을 쇠부리마을 아전 리현손의 아들이 가지고왔는데 그녀석을…》

《그놈이 어쨌단 말이냐?》

《그녀석을 고을군사로 소속시켜 데리고갈가 하오이다.》

오대구는 그 경황속에서도 제 리속을 차릴줄 아는 놈이였다.

그의 말을 들은 군수는 달콤한 잠자리를 빼앗기는것이 시끄러운듯 소리쳤다.

《마음대로 해라. -》

《알겠소이다. 제가 직접 그놈을 잡아가지구 오겠소이다.》

오대구는 허리를 굽신거리고 돌아섰다.

그로부터 얼마후 수안관청이 발칵 뒤집히다싶이 소동이 일어나더니 드디여 막동을 잡으러 떠나는 군사들의 행렬이 떠났다. 그 일행은 모두 30명이였다.

맨앞에는 제법 전장에 나가는듯 갑옷과 투구를 쓴 오대구가 말을 타고 위엄스레 갔다.

리악은 고을군사로 승격된것이 기뻐서인지 입을 헤-벌리고 오대구가 탄 말고삐를 잡고 옆에서 졸졸 따라갔다.

캄캄한 어둠속에서도 군사들이 메고가는 서슬푸른 창끝이 번뜩이였다.

밤새껏 길을 달려 그들이 쇠부리마을에 당도했을 때는 동녘하늘에서 해가 삐죽이 얼굴을 내밀무렵이였다.

순식간에 봉옥의 집을 포위한 다음 오대구는 갑옷차림으로 문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던 리악이가 오대구에게 귀띔했다.

《형방어른, 주의하소이다. 막동이 그놈이 보통 힘이 센 놈이 아니웨다. 자칫하다간…》

그 말에 오대구는 약간 주춤하며 황급히 옆에 찬 장검을 빼여들고 문쪽에 대고 소리쳤다.

《막동이 이놈, 어서 나오지 못할가!》

방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오대구가 또다시 소리쳤다.

《막동이 이놈, 어서 나오너라!》

그래도 아무런 기척도 없자 오대구는 어서 문을 열라고 리악에게 눈짓했다.

리악은 살금살금 토방우에 올라가서 정지방문을 힘껏 잡아챘다.

분명 걸려있을줄 알았던 문이 활짝 열리는 바람에 리악은 토방우에 나딩굴었다.

방안에는 아무런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오대구는 토방에 뛰여올라 방안으로 신을 신은채 달려들어갔다.

그안에는 막동은커녕 그림자도 없었다.

오대구는 토방우에서 기여일어나는 리악에게 꽥 소리쳤다.

《이놈아, 막동이가 정말 여기에 있었단 말이냐?》

《예? 그건 사실이오이다.》

《너 이놈, 나한테 거짓말을 했지?》 하며 오대구는 리악의 목에 장검을 가져다댔다.

그 서슬에 기겁한 리악은 범을 본 개새끼처럼 벌벌 떨면서 말하였다.

《감… 히… 뉘앞이라구 그… 그런 거짓말을 하겠소이까.》

《그런데 왜 없는가 말이다. 샅샅이 뒤져서라두 막동이 그놈을 내앞에 내놓으란 말이다.》

리악은 기겁하여 방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부엌으로 달려내려갔다.

얼마 안있어 리악이는 부엌바닥에 나딩구는 음식찌꺼기들을 들고들어왔다.

《이놈들이 눈치를 채구 밤새 도망을 친게 분명하오이다. 이제 즉시 뒤쫓아가느라면 잡을수 있소이다.》

오대구는 성이 독같이 나서 리악의 멱살을 거머쥐고 소리쳤다.

《이놈아, 혹시 네놈이 빼돌리구 우리를 야료하느라구 그런게 아니냐?》

덜미를 잡힌 리악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형방님, 이거 너무 억울하오이다. 아무렴 제가 그런짓을…》

리악이를 거머쥐고 노려보는 오대구도 이놈이 그런짓을 하지는 않았을것이라는 믿음은 갔으나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막동이를 놓친것이 분하기 짝이 없었다.

오대구의 눈앞에는 막동이를 잡아오라고 소리치던 군수의 노기띤 얼굴이 불쑥 솟아올랐다.

《그래 그놈이 어디로 도망친줄 알구 잡는단 말이냐?》

리악은 거적눈을 올리뜨면서 중얼거렸다.

《여기 쇠부리터루 들어오는 길은 방금 우리가 온 길밖에 없소이다. 그러니 분명 그놈들이 우리와 마주칠가봐 숲속에 숨어서 달아난게 분명하오이다.》

《좋다, 이번까지 거짓말을 했다간 네놈을 아예 죽여버릴테다.》

《예… 예, 알겠소이다.》

오대구는 모여온 군사들에게 말하였다.

《이놈들이 멀리 달아나지는 못했을거다. 생각같아서는 이놈의 집에 불을 콱 지르고싶지만 소동을 피우면 그놈과 내통한 놈들이 련락을 할것이니 숲속을 뒤지면서 조용히 빠져라. 리악이! 네가 앞에 서라! 어서!》

하여 그들은 황급히 오던 길을 되돌아서서 숲속으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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