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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현손의 말은 사실이였다. 봉옥이네 잔치를 치른 다음날부터 아버지의 병세는 점점 더해갔다. 막동과 봉옥은 밤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 아버지를 정성껏 간호하였고 결의형제를 맺은 사람들은 물론 온 쇠부리마을이 떨쳐나서서 좋다는 약은 다 구해다가 써보았지만 이미 병이 기울어진 상태이라 백약이 무효였다.

그들이 잔치를 치른지 이틀째되는 날 아침이였다.

봉옥이 떠주는 미음 한그릇을 달게 먹은 아버지는 가까스로 몸을 일으켰다.

봉옥이가 다급히 아버지를 불렀다.

《아버지, 왜 그러시나요, 네, 아버지?》

봉옥을 이윽토록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구석에는 맑은 물이 고이더니 텅텅 부은 량볼로 주르르 흘러내렸다.

봉옥은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의 량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한동안 가쁜숨을 몰아쉬던 아버지는 봉옥의 곁에 앉아있는 막동의 손을 잡고 쳐다보았다.

아버지는 가까스로 《막동이… 이사람 고… 맙… 네. 앞… 으… 루… 부디 잘살라구… 그리구 봉옥이를… 부탁하…》 하더니 머리를 툭 떨구었다.

막동은 다급히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아버님, 왜 이러시오이까?》 하며 잡아흔들었다.

봉옥이도 아버지의 가슴을 부여잡고 목메여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어서 눈을 뜨세요. 아버지!》

그러나 아버지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봉옥은 곁에 있는 김의겸을 붙잡고 마구 흔들었다.

《외삼촌,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주세요. 네, 외삼촌!》

김의겸은 봉옥의 몸을 꼭 부여잡았다.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주르르 흘러나왔다.

봉옥은 기절하듯 아버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태를 쳤다.

《아버지, 아버지가 이렇게 가시면 난 어찌하나요. 엄마아버지가 다 없으니 난 어떻게 살아요. 아- 아버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막동의 눈에서도 눈물이 뚤렁뚤렁 떨어졌다.

불쑥 그의 눈앞에는 몇달전에 비명으로 죽은 자기 아버지의 처참한 모습이 떠올랐다.

량반부자들을 위한 사냥을 하다가 벼랑에서 떨어져죽은 아버지와 쇠부리터에서 쇠를 녹이다가 불쌍하게 죽은 봉옥이 아버지나 다 같이 가난한 백성이였다.

어찌하여 가난한 백성들은 이렇게 기막힌 죽음만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가, 어찌하여 우리는 이렇게 뭇짐승만도 못한 천대와 멸시만을 받아야 한단 말인가.

막동은 이런 생각으로 속이 끓어올라 두주먹을 꽉 틀어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봉옥이 아버지의 장례는 온 쇠부리마을사람들이 떨쳐나서 치르었다.

봉옥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기간 쇠부리터의 불을 끄고 모두 봉옥이네 집에 모여와 고인과 작별하였다.

그들의 한결같은 움직임앞에 아전 리현손도 쇠부리감독을 나와있던 향청의 관리들도 찍소리를 못하였다.

자칫하다가는 그들의 가슴속에 흐르는 불보다 뜨거운 용암이 분출할가봐 겁이 났던것이다.

그간 막동은 그들속에 있으면서 서로 돕고 위해주는 뜨거운 인정미와 그들의 뭉친 힘이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새롭게 느꼈다.

…막동은 새벽녘에 저도모르게 잠에서 깨여나 물끄러미 천정을 쳐다보았다.

그는 옆에서 자고있는 봉옥의 숨소리를 듣고 머리를 돌렸다.

문에서 비쳐드는 달빛이 봉옥의 얼굴을 비쳐주었다.

막동은 정겨운 눈길로 봉옥을 지켜보았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고 귀여운 봉옥이였다.

막동은 문득 봉옥이를 업고 달려서 숲속에 눕혀놓고 그의 얼굴을 처음 보았을 때의 생각이 났다.

막동은 불쑥 봉옥의 볼에 자기 볼을 마주대고 살살 문대였다.

그제야 봉옥이도 잠에서 깨여났는지 막동이의 넓은 가슴에 안겨들었다.

봉옥이를 품에 안은 막동은 구름타고 훨훨 날아가는것만 같았다.

참으로 행복한 밤이였다.

서로 품에 안고 한밤을 보내는 그들은 이밤이 천년만년 길고길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고 생각하였다.

어디선가 새벽을 알리는듯 동네집 닭이 길게 홰를 쳤다.

그때 마당으로 쿵쿵 발자국소리가 울려오더니 문앞에 와서 멎었다.

이윽고 나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봉옥이 있느냐? 봉옥아-》

잠결에 그 소리를 들은 막동은 불쑥 일어났다.

《거 누구시우?》

《나야 외삼촌이다. 좀 일어나거라.》

그 소리에 그들은 황급히 일어나 옷을 입고 걸어놓은 문을 열었다.

김의겸은 급히 달려왔는지 씩씩 황소숨을 쉬면서 자리에 앉았다.

그의 얼굴에서는 땀이 줄줄 흘렀다.

《이렇게 새벽잠을 깨워서 안됐다.》

《…》

김의겸은 마주앉은 막동의 손을 잡고 말하였다.

《막동이 이사람, 자네들은 이제 곧 자리를 떠야 하겠네.》

《예-에?》 하고 봉옥과 막동은 의아한 눈길로 마주보았다.

《방금전에 저 리현손이네 집에서 부엌데기로 살고있는 애가 나한테 왔댔다.》

《…》

《그 애가 하는 말이 리현손놈이 지금 막동이 자네를 붙들 흉계를 꾸미고있다누만.》

《예-에? 나를요?》 하고 막동은 눈이 휘둥그래졌다.

김의겸은 숨을 돌리면서 어제저녁 리현손네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었다.

이야기를 마친 김의겸은 마른침을 꿀꺽 넘기고나서 말하였다.

《내 생각에는 너희들이 급히 자리를 떠야 하겠다. 어느 깊은 산골에 들어가 숨어살아라. 쥐구멍에두 볕들 날이 있다구 그러느라면 우리도 가슴펴구 살 때가 있겠지.》

그의 말을 주의깊게 듣고있던 막동은 머리를 들었다.

《알겠어요. 내 봉옥이를 데리고가서 고생을 시키지 않을터이니 외삼촌, 걱정하지 마시오이다.》

《고맙네.》

그들은 황급히 길떠날 차비를 하였다.

봉옥은 부모들이 넘겨준 유일한 유물인 고리짝안에 당장 살림살이들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고 이불안을 뜯어서 쌌다.

그들이 한창 길떠날 차비를 하고있는데 김의겸의 안해가 보따리를 안고 헐레벌떡 들어왔다.

보따리에는 아직도 김이 몰몰 나는 보리밥이 들어있었다.

어느덧 행장을 다 꾸린 그들은 마당으로 나와 외삼촌 내외앞에 마주섰다.

김의겸은 다심한 눈길로 고리짝을 진 막동의 멜끈을 바로잡아주면서 말하였다.

《자리를 잡거든 소식을 알리라구.》

《알겠어요.》

김의겸 안해는 봉옥의 손을 잡고 쓸어주면서 눈물을 흘렸다.

《봉옥아, 이렇게 헤여지면 또 언제 만나겠냐?》

남복차림을 한 봉옥은 오히려 그를 위안했다.

《외삼촌어머니, 걱정마세요. 제가 꼭 다시 찾아뵙겠어요. 그때까지 앓지 마세요.》

《오냐, 내 꼭 기다리겠다.》

막동과 봉옥은 그들에게 허리를 굽혀 절을 하였다.

그들은 집을 한바퀴 돌고나서 뒤산으로 올라 새벽어둠속에 사라졌다.

김의겸과 안해는 어둠속에 사라져가는 그들을 점도록 바래주면서 오래도록 서있었다. 김의겸내외는 그들이 가는 앞길에 행복만이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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