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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어느날 저녁무렵이였다.

쇠부리마을 아전 리현손의 집 대문이 찌그덩 열리면서 털벙거지를 쓴 웬 사나이가 들어섰다.

거적눈을 한 그의 얼굴은 보자기로 코를 둘러싸놓아 누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사나이는 마루우에 닁큼 올라서서 정주방문을 열면서 안에 대고 소리쳤다.

《누가 있어요?》

방안에 들어앉아 마누라와 함께 문서장을 놓고 회계를 튕기고있던 리현손이 놀라운 눈길로 되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사나이는 마루우에 풀썩 앉으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누군 누구야요? 나야요.》

《나라니?…》

사나이는 털벙거지를 벗어던지면서 말했다.

《나란 말이예요. 이젠 제 아들까지 잊었어요?》

그제야 사나이를 지켜보고있던 마누라가 기겁하듯 소리쳤다.

《아니, 너 악이 아니냐?》

《그래요.》

그는 리현손의 아들 리악이였다.

마누라는 엎어질듯 달려나와 제 아들을 부여잡고 수선을 떨었다.

《악아, 그런데 이게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 코는 왜 이렇게 됐느냐, 엉?》

리악이도 제 몰골을 드러내놓기가 쑥스러운듯 머리를 돌렸다.

《그렇게 됐어요.》

제 아들을 올곧지 않은 눈길로 쳐다보던 리현손이 울컥 성을 냈다.

《너 이놈, 또 어느 기생년한테 붙었다가 매질 당한게 아니냐?》

 리악은 볼이 부어 두덜거렸다.

《체, 아버진 알지두 못하면서…》

《모를게 있냐? 거야 뻔한 노릇인데…》

《아니야요. 도적잡으러 나갔다가 그놈한테 이렇게 됐어요.》

《뭐라구?》

그 말에 리현손은 약간 성을 가라앉히였다.

마누라가 아들의 손을 잡아끌고 방안으로 들어와 그의 얼굴에 싸맨 천을 풀었다.

《얘야, 어디 좀 보자.》

머리를 수그리던 리악은 아버지가 펼쳐놓은 문서장들을 얼핏 보다가 깜짝 놀라며 문서장 하나를 집어들었다.

《아버지, 이게 무슨 문서예요?》

리현손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것말이냐? 그건 봉옥이 서방되는 놈한테서 받은거다.》

《뭐라구요? 봉옥이 서방?》

그러자 곁에 있던 마누라가 물었다.

《야, 넌 왜 그렇게 불에 덴 소새끼처럼 놀라니?》

《어머닌 몰라서 그래요. … 내가 이렇게 된건 저 봉옥이년때문이란 말이예요.》

《뭘?》 마누라도 리현손도 펄쩍 놀랐다.

리현손이 다급히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됐다는거냐. 어서 말하지 못할가!》

리악이는 끙끙 갑자르며 띄염띄염 말했다.

《봉… 봉옥이 서방이라는 이 막동이놈이 날 때렸단 말이예요.》

리현손은 막동이의 이름이 씌여진 문서장을 내흔들었다.

《이… 김막동이란 말이냐?》

문서장을 들여다본 리악은 울분에 차서 말했다.

《옳아요, 이놈이예요. 이놈이 날 이렇게 만들었어요.》

《뭘? 이놈이?》

리현손은 억이 막혀 아무말도 못하고 서있었다.

리악은 눈을 펀뜻 뜨고 봉옥이네 집쪽을 바라보았다.

《이놈은 살인친 놈이예요.》

《엉? 살인을 치다니?》

《이놈은 저 수안에서 제 상전을 죽이고 도망친 놈이예요. 지금 온 고을에 이놈을 잡으라는 수배령이 내렸단 말이예요. 그래서 나두 이놈을 잡으러 나갔다가 이렇게 됐어요.》

리현손은 너무도 뜻밖이라 입을 벌린채 아무말도 못했다.

리악은 악이 나서 고아댔다.

《아버진 그런 놈이 뻐젓하게 봉옥이 서방이 되였는데 가만 있는단 말이예요? 내 당장 가서 족치고말겠어요.》

리악은 당장이라도 달려나가 일을 칠것처럼 윽윽거렸다.

정작 달려나가지는 못하면서 우리안에 갇힌 승냥이처럼 방안에서만 돌아가는 제 아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리현손의 머리는 복잡하였다.

자기가 다스리는 쇠부리마을에 수배령까지 내린 녀석이 살고있는것을 관가에 고발하지 않고있다가는 제 모가지가 뎅겅 날아날수 있다.

하지만 그녀석이 한달안으로 호랑이 세마리를 정말 잡아다바치면 그보다 더 큰 횡재는 없는것이다.

거적눈을 치뜨고 이리저리 생각을 굴리고있는데 리악이는 제 애비의 속심을 알아차리기나 한듯 을렀다메였다.

《아버지, 이제 저놈을 관가에 고발하지 않구 가만히 놔두었다간 큰코 다치는줄 아시우.》

《…》

《지금 새로 부임한 수안군수가 어떤 사람인줄 아시우. 한양 의금부에서 벼슬살다가 왔는데 도적잡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우다. 게다가 한양에 세줄도 든든히 잡고있어요.》

《…》

《그러니 이제라도 빨리 저놈을 군수령감한테 고발해서 잡게 한다면야 아버지를 좋게 볼것이구 또 그 령감 밑구멍에 뭘 좀 밀어넣으면야 그 세줄을 타구 한양에 가서 벼슬까지 할수 있단 말이예요.》

《그 군수령감이 정말 그렇게 할수 있을가?》

《있구말구요. 요전번에두 군수령감입술에 붙은 밥알처럼 맴돌던 아전 하나가 그 령감의 추천으로 한양에 벼슬하러 올라갔어요. 의금부 뭐라든지… 하여간 시골아전에 비하겠수?》

그 말에 리현손은 귀가 번쩍 열렸다.

《그게 사실이냐?》

《예, 내가 직접 군졸들을 데리구 이사짐을 한양까지 날라다주고 왔는데요 뭐.》

《그렇단 말이지.》 하고 리현손은 생각에 잠겨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누라가 끼여들었다.

《령감, 그까짓 호랑이가죽이구 뭐구 집어치우구 저놈을 빨리 고해바치라구요.》

리악이 눈이 휘둥그래져서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예요?》

《글쎄 저놈이 봉옥이년한테 올 때 호랑이를 한마리 잡아가지구 왔단다. 그런데 네 아버지가 그놈한테서 봉옥이네가 진 빚대신에 호랑이 세마리를 잡아바치겠다는 계약서를 받아냈지. 그래서 지금 저렇게 속궁냥을 하고있지 않냐.》

리악은 어처구니가 없다는듯 툴툴거렸다.

《헛참, 그까짓 호랑이 세마리하구 제 모가지를 바꾼단 말이예요?》

리현손은 발끈했다.

《이녀석, 그게 무슨 말본새냐? 제 애비보구 모가지가 뭐냐? 모가지가…》

리악은 얼굴이 벌개서 아무말도 못했다.

리현손은 아들과 마누라를 흘겨보며 말했다.

《호랑이 세마리가 보통 약차한 재산인줄 알아? 내 생각엔 저놈이 호랑이를 잡아다가 바친 다음에 관가에 고해바쳐 묶어가게 하자는거다. 이렇게 하면 꿩먹구 알먹기가 아닌가 말이다.》

마누라가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령감, 그거 좋은 생각이웨다. 그게 좋겠수다. 히히.》

리악은 코방귀를 퉁 쳤다.

《흥, 그러다가 저놈이 딴사람들한테 잡히면 게두 구럭두 다 놓치구 된벼락만 맞게 되요.》

《뭐라구? 하긴 그것도 영 틀린 소린 아니다.》

《글쎄 다른 길은 없어요. 저놈을 제꺽 관가에 고해바쳐 벼슬길을 여는게 제일 땅수야요.》

리현손은 말없이 눈알만 굴리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무릎을 탁 쳤다.

《네 말도 일리가 있다. 이렇게 하자.》

《어떻게요?》

《내가 관가에 고소장을 보낼테니 네가 가서 바치구 군졸들을 끌구 와서 그놈을 네가 직접 잡아바쳐라. 그러면 나두 너두 다 상을 탈게 아니냐.》

《헤헤, 그것 참 좋은 생각이시우다.》

《그런데 저놈을 이 쇠부리마을에서 붙들어선 안된다.》

《그건 왜요?》

《여기 놈들이 겉으론 어리숙해 보여두 속은 쇠돌보다 더 딴딴한 놈들이야. 더구나 이번에 봉옥이 애비가 죽었을 때 보니까 그놈들이 만만치들 않아.》

《봉옥이 애비가 죽었어요?》

《어제 쇠부리마을이 다 떨쳐나서 장례를 치렀다. 그러니 막동이 그놈을 여기서 붙잡자구 하다간 큰 변이 날수 있다. 내 생각엔 분명 저놈이 움직일것이니 가만히 렴탐하구있다가 외딴데서 붙들어라. 그러면 그놈들이 우리 내막두 모를게 아니냐.》

《그것 참 좋은 생각이시우다. 거 머리가 팽이 한가지군요. 뱅뱅 잘 돌아가는게… 헤… 헤…》

마누라가 훈수했다.

《그렇게 돌지 않으면야 벼슬을 하겠냐. 앞으로 큰 벼슬을 할 머리이신데 호…호》

미물도 자기를 칭찬하면 좋아한다고 리현손은 파리를 본 두꺼비처럼 입을 쩍 벌리고 벌쭉 웃었다.

《헤…헤…헤…》

《히…히…히…》

《해…해…해…》

방안에서는 세 년놈이 머리를 맞대고 웃는 웃음소리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허나 그들은 지금껏 자기들의 말을 엿듣고있는 사람이 있는줄은 꿈에도 몰랐다.

리현손의 집 부엌데기인 처녀가 물을 떠가지고오라는 분부를 받고 문밖에 나갔다오다가 그들의 이야기를 자초지종 다 들었다. 그는 봉옥이의 소꿉시절동무였다.

얼마후였다.

리현손이 써준 고소장을 품에 넣은 리악은 슬며시 집에서 빠져나와 부지런히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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