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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녘하늘에 해가 노루꼬리만큼 솟아올랐을무렵에야 그들은 쇠부리마을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동구길에 들어섰다.

동구초입에 네귀가 번쩍 들린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솟아있고 그옆으로 게딱지같은 초가집들이 마을 한복판으로 흐르는 시내물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골안의 막바지로 보이는쪽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여오르는데 그것이 이 마을사람들의 명줄이 달려있는 쇠부리터(쇠물녹이는 용해장)였다.

봉옥은 막동에게 쇠부리터가까이의 산탁에 붙어있는 초가집을 가리키면서 그것이 자기 집이라고 하였다.

봉옥은 아버지의 병세가 걱정되여서인지 막동이보다 한걸음 앞서 부지런히 동구길로 내려갔다.

시내물이 흐르는 징검다리를 넘어선 막동은 걸음을 멈추었다.

총총히 앞서가던 봉옥은 걸음을 멈추고 막동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막동오빠, 왜 그래요?》

막동은 빙그레 웃으면서 봉옥에게 말했다.

《봉옥이 먼저 가라구, 내 인차 뒤따라갈테니.》

봉옥은 다짐을 받다싶이 말했다.

《막동오빠, 꼭 우리 집에 들려야 해요. 알겠어요?》

《응, 내 꼭 간다니까. 어서 먼저 가라구.》

그제야 봉옥은 마음이 놓이는지 아버지의 약이 든 보따리를 품에 안은채 집쪽으로 뛰여갔다. 그의 등뒤에서는 외태머리가 흔들흔들 춤을 추었다.

달려가는 봉옥의 뒤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막동은 등에 진 호랑이를 내가에 내려놓고 허리춤에 끼웠던 칼을 꺼내여 바위돌에 썩썩 갈았다.

이때 마을쪽에서 예닐곱살쯤 되는 사내녀석이 코를 훌쩍거리며 막동이 있는쪽으로 다가왔다.

그 애는 길에 누워있는 호랑이를 보더니 큰것이나 발견한것처럼 《호랑이 잡은 장수가 왔어요!》 하고 소리치면서 마을쪽으로 달려갔다.

막동은 애녀석의 행동을 보고 싱긋이 웃으면서 자기 일을 계속했다.

그는 예리하게 날을 세운 칼로 날렵하게 호랑이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능숙한 솜씨로 가죽을 벗겨나갔다.

이때 그의 주위에서 웅성웅성 말소리가 들려왔다.

막동은 범가죽을 다 벗기고나서 허리를 폈다.

어느새 왔는지 수십명의 어른아이들이 오구구 모여서서 호랑이구경을 하면서 찧고까불었다.

《허, 그놈 굉장히 크구만.》

《야! 저 수염을 좀 봐.》

지팽이를 짚고 선 로인이 막동에게 물었다.

《이보라구 젊은이, 이놈을 어디서 잡았나?》

《저 뒤산에서요.》

《옹노를 놓았나?》

《아니요, 때려잡았수다.》

《원, 저렇게 큰놈을 때려잡다니?!》

그 말에 사람들속에서는 탄성이 울려나왔다.

이때 그들의 뒤쪽에서 《아니, 범을 잡았다면서?》 하는 새된 목소리가 울려왔다.

그 소리에 모여섰던 사람들이 량옆으로 쭉 벌려섰다.

그속으로 비단바지저고리를 입은 구시월 수수잎처럼 빼빼 마르고 기가 꺽두룩한 사람이 걸어오고있었다.

막동은 그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눈이 아래로 처진게 신통히도 어제 길가에서 만났던 리악이란 놈과 먹고 게워놓은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응, 네놈이 이 마을아전 리현손이라는 작자로구나. ) 하고 생각했다.

막동에게 다가선 아전은 호랑이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이보라구, 이것을 팔려구 그러나?》

《금새가 맞으면 팔겠수다.》

당시 범가죽 한장이면 폭리를 얻을 때라 아전은 축 처진 눈알을 뒤룩거리면서 고기덩이를 본 개처럼 헤덤볐다.

《여보게, 내 이걸 통채로 사겠으니 어서 우리 집으로 가자구.》

《그럽시다요.》 하고 막동은 선선히 대답했다.

리현손은 따라온 하인들에게 호랑이를 집으로 날라가게 하였다.

솟을대문이 열려져있는 마당으로 막동은 들어섰다.

마루우에 앉아 하인들이 날라온 호랑이를 바라보며 속타산을 하고있던 리현손이 막동을 보고 반기였다.

《이보게 젊은이, 이 호랑이가죽을 얼마나 하려나?》

《어르신은 얼마에 하시려우?》

리현손은 축 처진 눈알을 뒤룩거리다가 말했다.

《호랑이가죽 한장에 무명 열여덟필을 하자는거야, 어떤가?》

그 말에 막동이는 속이 울컥했다.

(호랑이가죽 한장에 무명 열여덟필이라니, 에익, 노랭이같은 령감…)

《어르신은 도대체 물가시세를 알고 사려는것 같지 않구려. 세상에 범가죽 한장에 무명 열여덟필 하는데가 어디 있소?》

《아니, 저거야 젖은게 아닌가?》

막동은 두말없이 범가죽에 고기덩이를 감싸면서 말했다.

《난 물건값도 모르는 사람한테는 팔지 않겠수다.》

막동은 와락 호랑이를 둘러메고 돌아섰다.

막동을 얼려먹어 헐값으로 호랑이가죽을 삼키려고 작정했던 리현손은 마루에서 급히 달려내려와 막동의 손을 잡았다.

《원, 젊은이두… 어서 내려놓으라구, 다시 흥정해보세.》

막동은 그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이건 사람을 놀리자는거요? 난 싫수다.》

그제야 리현손은 이녀석을 허술하게 보았다가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선지 얼굴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내 말이 노엽다면 삭이라구, 이번엔 자네가 값을 부르게.》

막동이가 따지듯 되물었다.

《내가 값을 부르면 그대로 주겠수?》

《값이 맞으면야 주어야지…》

《정말이시우?》

《아, 정말이라니까.》

막동은 호랑이를 땅우에 내려놓고 말했다.

《이 호랑이가죽 한장에 무명 마흔필을 내시우다.》

그 말에 리현손의 눈은 화등잔만 해졌다.

《무명 마흔필?… 아니, 그거야 너무하지 않나?》

《뭐가 너무해요, 약과지요. 이 호랑이가죽 한장이 본전은 무명 여든필이구 대납을 하면 그 곱이 나온단 말이우다. 그래두 내 생각을 해서 절반으로 깎아서 마흔필을 부른줄 알기나 하시우.》

막동의 말은 사실이였다. 그때 당시 호랑이가죽 한장에 무명 80필이 보통값이였고 공물로 바치는 범가죽을 미처 구하지 못하여 대신 바쳐줄 때는 그 곱절로 값을 치르었다.

리현손도 바로 이걸 노리고 일확천금을 얻으려고 했던노릇이 그만 첫 꼭지를 잘못 떼는 바람에 코를 떼웠던것이다.

족제비도 낯이 있다고 막동에게 코를 떼운 리현손은 아무말도 못하고 얼굴이 벌개서 서있었다.

《어떠시우, 그렇게 하실려우?》 하고 막동이 되물어서야 리현손은 갑자르면서 대답했다.

《어… 어서 그렇게 하자구.》

막동은 범가죽을 끄집어서 리현손의 앞에 내놓았다.

《당장 무명 마흔필을 내놓으시우.》

리현손은 옆에 선 하인에게 무명을 가져오라고 하였다.

하인들이 무명필을 져내다가 막동이 보는데서 마흔필을 재여서 잘라놓았다.

막동은 칼을 들고 호랑이의 넙적다리 두개를 썩둑 잘랐다. 그리고는 나머지고기덩이를 내놓으며 말했다.

《주인어른, 이 고기값으로는 쌀 마흔말을 주시우.》

《?…》

《범고기 한근에 쌀 한말인데 이게 마흔근이니 쌀 마흔말을 주셔야지요. 그것두 고기를 집까지 날라다줄 때는 한말에 한홉씩 덧붙는데 난 그걸 계산 안할테니 마흔말만 내놓으시우.》

리현손은 너무도 사리에 밝은 막동이 앞에 군말없이 쌀을 내주게 하였다.

하인들이 쌀가마니를 내여다가 막동이앞에 내놓았다.

지금껏 마루우에 암고양이처럼 옹크리고앉아 지켜보고있던 리현손의 마누라가 양양거렸다.

《아니, 고기덩어리는 달아보지두 않구 쌀을 주어요? 얘들아! 어서 가서 대저울을 가져오너라.》

하인 하나가 창고에 가서 저울을 가지고 나왔다.

막동은 말없이 고기를 꿰여들고 한손으로 번쩍 들었다.

저울은 신통히도 마흔근을 가리켰다.

막동은 그것을 리현손의 코앞에 내밀었다.

《자, 보시우. 틀림없지요?》

리현손은 입이 쓰거운듯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호랑이를 팔아버린 막동은 자기앞에 놓인 무명과 쌀가마니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주인어른, 심부름군 서너명만 주시우. 품삯은 물겠수다.》

《어서 그렇게 하라구.》 하며 리현손은 그에게 하인 네명을 붙여주었다.

막동은 그들 품값으로 무명 네필을 잘라주기로 하고 쌀과 무명 그리고 남은 호랑이의 넙적다리를 지워가지고 그의 집을 나섰다.

막동은 그들을 데리고 곧바로 봉옥의 집으로 향하였다.

퇴마루우에 서서 막동이 가는 곳을 목을 빼고 지켜보고있던 리현손은 그가 봉옥의 집으로 들어서는것을 보고 삵의 웃음을 지었다.

(흥, 네까짓것들이… 그걸 통채로 삼키고 무사할줄 아느냐?)

봉옥의 집앞에 들어선 막동은 가지고간 물건들을 토방우에 내려놓고 집주인을 찾았다.

《주인어른 계시오이까?》

부엌문이 열리더니 봉옥이 기다렸다는듯 생긋 웃으면서 달려나왔다.

《아이, 막동오빠 오셨군요.》

《봉옥이…》 하고 막동이도 반겼다.

이때 정주방문이 열리면서 상투를 튼 사나이의 얼굴이 나타났다.

《봉옥아, 그사람이 온게 아니냐?》

《예, 왔어요.》

그러자 그는 맨발로 달려나오면서 막동의 두손을 잡고 반기였다.

《이사람 왔구만, 내 봉옥이 외삼촌 김의겸일세. 우리 봉옥이를 구해주어 정말 고마우이. 자, 내 절을 받으라구.》

김의겸이 넙적 땅우에 무릎을 꿇자 당황해난 막동은 그를 안아일으키면서 말하였다.

《어르신이 이러시면 난 무안하우다. 그게 무슨 큰일이라구.》

김의겸은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 험한 세상에 남을 위해 사생결단으로 나선다는게 그리 쉬운 일인가, 정말 고마우이 젊은이.》

막동은 머리를 숙이며 공손히 말했다.

《그저 막동이라구 불러주시오이다. 면구스럽소이다.》

김의겸은 막동의 손을 잡고 껄껄 웃었다.

《내 봉옥이한테서 얘길 다 들었소만 이렇게 만나니 꼭 구면친구를 만난것 같구만.》

막동은 면구스러워 머리를 썩썩 긁었다.

뒤따라 중년녀인이 달려나와 막동의 손을 잡았다.

《내 봉옥이 외삼촌어머니라우. 젊은이, 내 절두 받으시우.》

급해난 막동은 황급히 녀인의 손을 잡았다.

《막동이라구 불러주시오이다.》

부엌문 한켠에서 그 모습을 보고있던 봉옥의 얼굴에서는 함박꽃같은 웃음이 피여나왔다.

막동을 친자식처럼 반겨맞는 외삼촌내외가 한없이 고맙기도 하였고 하루사이에 남다른 인연을 맺은 막동이가 온것이 어쩐지 즐겁기만 하였던것이다.

《이거 얼마 안되지만 봉옥이 아버지약값으로 써주시오이다.》

토방우에 무드기 쌓아놓은 무명과 쌀가마니, 고기덩이들을 바라본 봉옥과 외삼촌 내외는 삽시에 눈이 커졌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굉장한 물건이였던것이다.

《아니, 이 많은것을 어디서…》 하고 김의겸이 물었다.

막동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실은 어제밤에 봉옥이랑 함께 잡은 호랑이하구 바꾼것이오이다.》

외삼촌어머니는 막동이의 두손을 잡고 진정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귀인이 있다더니 자넨 정말 우리 집안의 귀인일세, 귀인이야.》

막동은 어줍게 웃었다.

《자꾸 이러지 마시오이다.》

막동은 쌀가마니와 고기를 부엌에 넣어주고 무명필을 안고서 방으로 들어갔다.

아래목에 병자인 봉옥이 아버지가 누워있었다. 쇠물에 덴 그의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수 없었고 온몸은 시뻘겋게 부풀어올라있었다.

막동은 조심히 병자의 앞에 다가가 문안하였다.

《아버님, 문안드리오이다.》

봉옥의 아버지도 막동이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는듯 드리웠던 손을 약간 들었다.

막동은 그의 옆에 조용히 앉아 방안을 둘러보았다.

웃구석에 자그마한 고리짝 하나가 놓여있고 봉옥이의 애용품인듯 바느질고리가 그옆에 놓여있었다.

그야말로 서발막대기를 휘둘러도 거칠것이 하나없는 가난한 살림이였다.

얼마 있어 봉옥이 미음그릇을 들고 들어왔다.

머리맡에 앉아 미음을 한숟가락씩 떠넣어주는 딸을 이윽히 바라보던 아버지가 가느다란 목소리로 물었다.

《쌀은 어디서 생겨 이렇게 미음을 쑤었느냐?》

《막동오빠가 가져왔어요.》

《그래?!》 하며 봉옥의 아버지는 고마운 눈길을 막동에게 보냈다.

이윽고 아버지에게 미음 한그릇을 다 대접한 봉옥은 빈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내려갔다.

이때였다.

문밖에서 《에헴-》 하고 마른기침소리가 나더니 석쉼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봉옥이 있느냐?》

아전 리현손의 목소리였다.

방안에 앉은 사람들은 잠자코 있었다.

부엌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봉옥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나리님 오셨어요?》

《아버지병세가 좀 어떠냐?… 그건 그렇구 네 애비가 저렇게 페인이 됐으니 이제 다시 일어나긴 좀 힘들게구… 그러니 지금까지 진 빚은 어떻게 하겠니?》

《나리님 그건 이제 제가…》

《그 많은걸 네가 어떻게 갚는다고 그래? 너의 집에 왔던 그 독수리같은 녀석이 가져온 물건이 좀 있겠는데… 하긴 그것 가지고도 어림이 없어. 그러니 여러말 할것 없이 오늘부터 우리 집에 와서 일을 해야겠다.》

《오늘부터 말이와요?》

《그래, 지금 당장 가야겠다.》

방안에서 이 말을 듣고있던 막동이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문을 와락 열고 소리쳤다.

《여보시우, 봉옥인 못 데려가우다.》

그바람에 토방에 앉아있던 리현손이 깜짝 놀라 일어섰다.

《이크, 이거 간떨어지겠구나. 아니, 자네가 여적 이 집에 있었나?》

막동은 험상한 낯빛으로 리현손을 쏘아보며 맨발로 토방에 나섰다.

《어쨌든간에 봉옥이는 데려가지 못하니 그리 아시우.》

그러자 리현손은 거적눈을 올리뜨고 고아댔다.

《아니? 자네가 도대체 뭐길래 이래라저래라 하는거야? 어서 말하라구, 도대체 봉옥이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말이야?》

막동은 리현손을 한동안 쏘아보다가 한손을 홱 내저으면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봉옥이는 내 사람이란 말이요.》

《내 사람이라니?!》

《그 말도 모르겠소? 내 색시란 말이요. 서방이 눈을 펀히 뜨고있는데 색시를 끌고가겠단 말이요?》

리현손은 입을 쩍 벌리고 아무말도 못하였다.

부엌문앞에서 막동의 말을 들은 봉옥은 얼굴을 싸쥐고 부엌으로 들어가 엉거주춤 서있는 외삼촌어머니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눈알을 굴리면서 서있던 리현손은 막동에게 을러댔다.

《좋네, 자네가 봉옥이 서방이라니 그럼 자네가 이 집 빚을 갚아내겠나?》

막동은 거침없이 내쏘았다.

《좋수다, 내가 다 갚지요. 빚이 도대체 얼마요?》

《자네가 잡은 호랑이값 두배는 되네.》

막동은 퉁명스레 대답했다.

《내 한달안으로 그런걸 세마리 잡아다주겠으니 걱정마시우.》

그 말에 리현손은 입이 귀밑까지 째졌다.

《그게 정말인가?》

《사내가 한입 가지구 두말 하겠소.》

리현손은 황급히 주머니에서 종이장을 꺼내들고 문서를 만들며 중얼거렸다.

《장부일언은 중천금이라… 자네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아나?》

《사내의 말 한마디가 천금보다 무겁다는 소리지 뭐요.》

《응? 그래?! 그러고보니 자네는 영 까막눈은 아니구만… 자, 여기에 자네 이름을 쓰고 지장을 찍게.》

막동은 주저없이 큼직하게 자기 이름을 써놓고 엄지손가락으로 먹물을 푹 찍어 내리찍었다.

리현손은 문서장을 들여다보더니 쾌재를 불렀다.

《좋아, 우린 약조를 했으니 난 가겠네. 색시를 데리구 재미를 실컷 보라구.》

리현손은 흥얼거리면서 제 집쪽으로 걸어가다가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막동이쪽으로 돌아서서 또다시 말했다.

《이보라구, 봉옥이 서방! 단단히 약속했네. 꼭 한달안으로 빚을 갚아야 하네.》

막동은 그쪽에 대고 퉁명스레 말했다.

《걱정마시우다.》

리현손이 사라진 다음에도 막동은 토방우에 못 박은듯 서있었다.

그의 심중은 복잡했다. 자기로서는 당장 급한 모퉁이를 넘기자는 생각에서 말이 나가는대로 했는데 봉옥이는 어떻게 생각할지 정작 내뱉고보니 너무도 엄청난 말이였다.

막동의 이마에서는 진땀이 내돋았다.

어느새 나왔는지 봉옥의 외삼촌 김의겸이 말없이 막동의 손을 잡아 방안으로 끌어당겼다.

방안에 들어선 막동은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김의겸이 그옆에 앉으면서 물었다.

《막동이 이사람, 자네 이제 한 말을 내가 진짜로 믿어두 되겠나?》

그 말에 막동은 《예? 사실 그건… 그건…》 하면서 끙끙 갑잘랐다.

《아니, 왜 그러나, 어서 속시원히 말을 하게.》

《난, 그저 저놈이 봉옥이를 데려가겠다기에 그걸 막는다는게 그만…》

김의겸은 빙그레 웃음을 지으면서 어쩔바를 몰라하는 막동을 이윽히 지켜보다가 부엌쪽에 대고 말하였다.

《여보, 거 봉옥이를 데리구 좀 올라오라구.》

그 말에 의겸의 안해가 봉옥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방안에 들어선 봉옥은 얼굴을 푹 수그린채 서있었다.

그것을 본 의겸은 《봉옥아, 네 삼촌어머니곁에 좀 앉아라. 내 긴히 의논할 문제가 있다.》라고 하였다.

봉옥은 치마로 무릎을 감싸며 외삼촌어머니 등뒤에 앉아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채 앉았다.

봉옥이 들어서는것을 본 막동이 역시 얼굴이 수수떡같이 벌개져서 올방자를 틀고앉은채 어쩔바를 몰라했다.

김의겸은 자리에 누워있는 봉옥이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매형, 난 이자 막동이 이사람이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데 매형생각은 어떠시우?》

봉옥이 아버지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봉옥이 급히 다가가 부축하였다.

《저사람의 말대루 됐으면 나두 맘편히 눈을…》

그러자 김의겸은 봉옥에게 물었다.

《봉옥이 네 생각은 어떠냐?》

봉옥은 얼굴을 숙인채 아무말이 없이 손톱여물만 썰었다.

그 모습을 본 김의겸이 어서 말하라고 봉옥에게 재촉했다.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외삼촌어머니가 봉옥을 두둔했다.

《아니, 이게 무슨 물건흥정이라구 그렇게 생나무 꺾듯 하시우. 좀 생각을 해봐야 할게 아니요.》

《생각은 무슨 생각, 방금 이사람이 말하는걸 들었으면 제 생각이 있었을게 아닌가.》

《원 당신두, 번개불에 콩닦아먹겠수다.》

《뭐라구?》

이속에서 급해난것은 막동이였다.

《아니, 이러지들 마시우다. 난 그저 봉옥이를 못 데려가게 하느라고 말한다는게 그만 엄청난 소리를 했는데 딴마음을 먹은건 아니오이다.》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선 막동은 누구에게라 없이 말했다.

《봉옥이를 저 구렝이같은 놈네 집에 보내선 안되우다. 내 무슨 수를 써서라두 열흘안으로 빚을 갚아놓을테니 그리들 아시우. 그럼 난 가겠수다.》

막동은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문가로 다가섰다.

이때 막동의 등뒤로 봉옥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막동오빠, 서세요.》

그 말에 막동은 흠칫 놀라면서 엉거주춤하였다.

그에게 다가선 봉옥은 막동의 허리춤에 꽂은 작은 칼을 뽑아서 내밀면서 말했다.

《나를 버리고 가시려거든 이 칼로 저를 죽이고 가세요.》

막동은 놀라운 눈길로 봉옥을 쳐다보았다.

봉옥의 초롱같이 맑은 눈에서는 뜨거운 사랑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있었다.

그 불길이 어찌도 열렬하고 뜨거웠던지 막동은 감히 마주볼수가 없었다.

봉옥은 여전히 막동을 쳐다보면서 나직이 말했다.

《오빠, 난 산에서 오빠가 주는 호랑이피를 마실 때 벌써 오빠와는 절대로 헤여지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그러니 오빠는 마음대로 갈수가 없어요. 제 혼자 가시려면 어서 나를 죽이고 가세요.》

막동은 황황히 봉옥의 손을 잡았다.

《봉옥이, 이러면 안돼. 봉옥이두 내가 숨어다니는 몸이라는걸 알지 않아.》

봉옥은 타는듯 한 눈으로 막동을 쳐다보며 고집스레 말하였다.

《그런걸 난 생각하고싶지도 않아요. 난 오빠가 어딜 가든 따라갈테예요. 하늘끝까지라도 말이예요.》

그 말에 막동은 코허리가 시큰해지고 머리가 핑 돌았다.

지금껏 막바지인생으로 누구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던 자기를 사람답게 대해주고 자기의 온몸을 다 바치려는 봉옥의 진정이 가슴에 사무쳐왔던것이다.

어쩐지 막동은 울고싶었다. 심장을 쾅쾅 두드리며 속시원히 울고싶었다. 그러나 왜서인지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만 심장만이 쿵쿵 방망이질을 할뿐이였다.

《글쎄 그러면 그렇겠지. 하… 하…》 하고 호탕하게 웃는 김의겸의 웃음소리가 그의 등뒤에서 울려왔다.

그제서야 막동은 정신을 차렸다.

김의겸은 껄껄 웃으면서 봉옥이 아버지를 돌아보며 말했다.

《됐수다.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구 오늘 당장 잔치를 하는게 어떠시우, 매형?》

봉옥이 아버지는 머리를 끄떡이며 가까스로 말했다.

《글쎄… 그런데… 갑자기 잔치를 하자니 뭐가 있어야 할게 아닌가.》

막동은 얼굴이 벌개서 아무말도 못하고 머리만 긁적거렸다.

김의겸은 봉옥이 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잔치라는게 별게 있겠소. 우리같은 백성들이 량반부자들처럼 요란히 차릴수는 없는거구요, 그저 있는대로 차려놓구 부동녀서 하구 앉아서 상을 받으면 되는거지, 그렇지 않소? 매형! 》

곁에 있던 김의겸의 안해는 오히려 한수 떴다.

《왜 우리라구 잘 차리지 못하겠소. 이왕이면 세상을 들었다놓게 차립시다요.》

《엉? 어떻게…》

《마침 막동이 저사람이 가져온 무명이랑, 쌀이랑 있는데 그거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릴수 있어요.》

김의겸은 마누라의 손을 덥석 잡으면서 반기였다.

《그렇지, 그거면 되지 뭘 주저할게 있나. 당장 준비를 해서 저녁엔 얘들이 상을 받게 하자구.》

김의겸의 안해도 남편의 손을 맞잡아흔들었다.

《알겠수다. 어서 분부만 하시우, 내 마을내인들과 함께 잔치준비를 할테니.》

《하… 하… 하…》 하고 김의겸은 너무 기뻐 집이 떠나갈듯 껄껄 웃었다.

이때 봉옥이 조용히 말했다.

《저… 외삼촌, 상을 받는건 좀…》

김의겸은 의아해서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아버지의 병도 아직 낫지 못했는데 그건…》

김의겸은 그제야 알겠다는듯 머리를 끄덕였다.

《네 말뜻은 알만하다. 그러나 그것만 부모에게 효도하는게 아니다. 부모를 기쁘게 해주는게 효도야. 그러니 내 말대루 하자. 맞지요? 매형!》

봉옥의 아버지도 머리를 끄덕이며 딸을 불렀다.

《봉옥아, 웃방에 있는 고리짝에서 보자기에 싼것을 가져오너라.》

봉옥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인채 대답하였다.

《알겠어요.》

봉옥은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고리짝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여 아버지앞에 내놓았다.

아버지는 옆에 앉아있는 봉옥의 외삼촌인 김의겸을 쳐다보면서 힘겹게 말하였다.

《이보라구, 그걸 좀 풀어보라구.》

김의겸은 봉옥이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보자기에 싼것을 풀었다.

그속에는 은비녀와 은장도 그리고 단검이 들어있었다.

그런데 그 모든것을 어찌도 정성들여 만들었는지 모두가 정교하였다.

해빛을 받아 반짝이는 물건들을 이윽히 지켜보던 아버지는 띠염띠염 말을 했다.

《그건 봉옥이가… 시집갈 때 주어서… 보내려구 준비했던거네… 이걸… 저 애들에게…》

김의겸은 봉옥이 아버지의 손을 부여잡았다.

《알겠수다. 매형은 언제 이런걸 다… 하하… 난 당장 잔치를 하자고 하면서두 례장패물을 어떻게 할가 하구 은근히 걱정을 했는데 이게 있으니 됐수다.》

김의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부터 서둘러야 하겠다. 내 이제 쇠부리터에 가서 아버지 결의형제되는 사람들에게 이 일을 알려야겠다. 마누라는 빨리 상차릴 준비를 하라구.》

외삼촌어머니는 웃방에서 무명필을 꺼내여 봉옥이 앞에 내놓았다.

《봉옥아, 이걸루 우선 너와 신랑의 옷부터 지어야겠다.

내 얼른 가서 봉산집이랑 동네아낙네들을 데려올테니 넌 신랑의 몸부터 재놓아라.》

외삼촌내외가 다 나가자 봉옥은 아버지를 자리우에 편안히 눕히고 웃방으로 올라갔다.

방안에는 막동과 봉옥이만 남았다.

막동은 지금까지 벌어지고있는 일이 꿈만 같아 눈만 껌벅거리며 묵묵히 노전발만 내려다보고있었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계셔요. 얼른 일어서요. 그래야 옷을 재지요.》 하는 봉옥의 목소리가 울려와서야 막동은 머리를 들었다.

봉옥은 보조개를 살짝 지으면서 사랑스럽게 내려다보고있었다.

막동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봉옥이, 고마와.》 하며 그를 와락 그러안았다.

막동의 넓은 품에 안긴 봉옥도 《막동오빠!》 하며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막동은 끓어오르는 격정으로 가슴이 설레여 아무말도 못하고 봉옥의 잔등만을 어루만졌다.

막동에게 몸을 맡긴 봉옥의 눈에서는 맑은것이 방울방울 흘러내렸다. 그러는 그의 눈앞에는 어제저녁에 자기와 막동이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봉옥의 어깨가 가볍게 떨리는것을 감촉한 막동은 그의 두어깨를 잡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면서 의아해서 물었다.

《봉옥인 우는게 아니야?》

봉옥의 얼굴은 웃고있으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렇게 막동오빠를 만나니 너무 기뻐서…》

막동은 봉옥의 귀여운 얼굴을 영영 새겨넣으려는듯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투박한 손으로 그의 볼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다정히 닦아주었다.

막동은 옷을 재는 봉옥이가 하라는대로 움직이였다.

팔을 들라면 팔을 들고 돌아서라면 돌아서는 그의 행동은 꼭 어머니앞에 선 어린애같았다. 그러는 막동의 모습을 보는 봉옥의 얼굴에서는 웃음이 떠날줄 몰랐다.

이때 봉옥이네 집으로 동네녀인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막동과 봉옥을 번갈아보면서 이구동성으로 떠들어댔다.

《에그, 봉옥인 새서방을 맞더니 입이 귀밑까지 째졌구나. 호호…》 하고 봉산집아낙네가 놀려댔다.

그러자 옆에 있던 녀인이 맞장구를 쳤다.

《아니, 왜 안그러겠수. 이런 끌끌한 총각을 새서방으로 맞이했으니… 나같으면 이렇게 덩실덩실 춤을 추겠수다.》 하며 부엌바닥을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그 모양을 바라보며 모여섰던 녀인들이 와-하고 웃어댔다.

봉산집녀인이 녀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까짓거, 우리라구 밤낮 죽지부러진 새들처럼 쪼들려서만 살겠수. 오늘 봉옥이 잔치상을 보란듯이 차려놓구 우리도 이 세상에 있다 하구 소리치면서 즐겨보자구요.》

《아니, 그러다가 저 노랭이 아전령감의 귀가 터지는걸 볼라구요?》

《그 령감귀가 아니라 복통이 콱 터지게 놀아보자구.》

봉산집의 그 소리에 녀인들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찬동을 하면서 제각기 일손을 잡았다.

잔치준비를 하는 녀인들의 입에서는 이야기가 끝없이 흘러나왔다.

막동은 듣자니 봉옥이를 구원해가지고 함께 올 때 산에서 이미 봉옥이가 너무 고와 늘 업고다니겠다고 했다는데 그게 정말인가 하면서 놀려대는 녀인들속에서 한동안 땀을 빼다가 겨우 밖으로 나왔다.

막동은 저고리깃을 제끼고 푸-하고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가없이 맑고 푸른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었다.

이따금 불어오는 가을바람에 울긋불긋 단장을 한 나무들이 살랑살랑 몸을 흔들었다.

마당가에 조약돌로 테두리를 한 꽃밭에서는 들국화들이 바람결에 한들한들 춤을 추었다.

막동에게는 이 모든것들이 자기를 축복해주는것 같아 벙글써 입을 벌리고 정겹게 바라보았다.

막동은 봉옥이의 알뜰하고 깨끗한 마음이 깃들어있는 꽃밭에 다가가 바람결에 한들거리는 들국화속에 얼굴을 내댔다. 연보라빛 들국화꽃송이들은 그의 볼을 정겹게 어루만졌다.

어쩐지 이 모든것들이 즐겁기만 하였다.

가을향기에 흠뻑 취해있던 막동은 뒤에서 울려오는 발자국소리에 깨여나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을 바라보았다.

저쪽에서 외삼촌 김의겸이 량손에 푸드득거리는 닭을 한마리씩 잡아들고 오고있었다.

막동이 성큼성큼 다가가서 그것을 받아들려고 하자 의겸은 만류했다.

《손을 대지 말라구, 잔치상을 받기 전엔 신랑이 잔치음식에 손을 대지 않는 법이네.》

《예-에?》

《허허, 이런 생둥이라구야. 자넨 그저 가만히 앉아있으라니까.》

김의겸의 얼굴에서도 노상 웃음이 떠날줄 몰랐다.

부엌으로 들어가는 김의겸을 바라보던 막동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이 마당 한옆에 패다말고 무져있는 나무단에 미치자 이제야 할일을 찾았다는듯이 성큼 그쪽으로 다가가 도끼를 잡았다.

그는 맨 속옷바람으로 도끼를 휘둘렀다.

그가 도끼를 한번씩 휘둘러댈 때마다 통나무가 쩍쩍 갈라졌다.

쩡-쩡 울리는 도끼질소리는 온 쇠부리골안을 뒤흔들어놓는듯 하였다.

울퉁불퉁 근육이 튀여난 막동의 몸에서는 땀이 번지르르 흘러내렸다.

막동은 잠간사이에 둬바리 실히 될 장작을 무드기 패놓았다.

그때 봉옥이 수건과 물그릇을 들고 그에게 다가왔다.

《막동오빠, 물을 들고 땀을 좀 씻으세요.》

막동은 허리를 펴고 봉옥이 주는 물사발을 받아서 벌컥벌컥 마시고나서 수건으로 얼굴에 돋아난 땀을 씻었다.

《막동이 이사람, 이젠 나무를 그만 패라구, 그러다가 이 집이 장작더미에 아예 묻혀버리고말겠네.》

어느새 문을 열고 내다보며 하는 의겸의 말이였다.

그 문사이로 방안에서 일을 하던 녀인들이 모두 내다보다 산더미같이 패놓은 장작무지를 바라보고는 혀를 찼다.

그들을 본 봉옥은 부끄러워 물사발을 들고 황급히 부엌으로 들어갔다.

《원, 조금 있으면 머리를 얹어야겠는데 부끄러워하긴.》 하며 봉산집아낙네가 봉옥을 놀려댔다.

《아니, 봉산집에선 처녀때 부끄러움을 안탔수?》 하고 김의겸이 봉옥을 두둔했다.

《부끄럽긴요. 나보다 샌님같은 우리 령감이 오히려 부끄러워합디다.》

《그래서 어떻게 했수?》

《그래서 내가 그 령감 손목을 끌구 잔치상앞에 앉았지요.》

《하…하…하…》

《글쎄 그 령감이 어찌도 쭐났는지 첫날밤엔 어쩐줄 아시우?》

《어떻게 했게요?》

《둘이 신방에 들었는데 아, 이 령감이 저고리고름을 풀어줄 생각은 하지 않구 잔뜩 머리를 틀어박구 앉아있질 않겠수.》

《그래서요?》

《내가 앵돌아져서 〈도대체 왜 그러시오이까. 내가 싫어서 그러시오이까. 〉 하고 들이댔더니 그 령감이 〈아니, 아니요. 난 좋아. 〉 하길래 〈그런데 왜 그렇게 쭐나게 앉아서 그러시오이까. 꽃을 꺾어야지. 〉라고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꽃? 꽃을 꺾어다달라우? 내 제꺽 꺾어다주겠소. 〉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는게 아니겠수. 그래서 내가… 에이, 그만 두겠어요.》

그의 말을 듣고있던 김의겸과 녀인들이 봉산집에게 재촉했다.

《무슨 말을 하다가 중도에서 그만 두시우. 어서 하우다.》

《어서 마저 하셔요.》

《그다음엔 어떻게 했게요?》

봉산집은 그들의 성화에 못이기는체 하면서 입을 열었다.

《나야 밖으로 나가려는 령감을 와락 부여안구 〈꽃은 그렇게 꺾는게 아니오이다. 〉 하구 넘어졌지요.

한참만에야 령감이 하는 말이 〈이게 꽃을 꺾는거요?〉 하고 묻질 않겠수.》

그 말을 듣고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하…하…하…》

《호…호…호…》

김의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 꽃은 오히려 봉산집에서 꺾은셈이로구만, 하… 하…》

《나야 꽃을 꺾었을게 뭐유, 싱아대를 꺾었지.》

그 말에 또다시 한바탕 웃어댔다.

《하…하… 봉산집은 역시…》 하며 김의겸은 껄껄 웃었다.

마당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막동은 빙그레 웃었다.

그때 남새를 담은 광주리를 인 김의겸의 안해가 마당으로 들어섰다.

《아니, 령감은 혹시 봉산집에 반한게 아니시우? 말끝마다 봉산집, 봉산집 하는걸 보니…》

막동은 얼른 그에게 다가가 광주리를 받아내렸다.

봉산집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

《이보라구, 저 령감이 나한테 반하긴 반한것 같애.》

《그래요?》

《글쎄 저 흉측한 령감이 날더러 첫날밤에 있은 일을 자꾸만 말하라구 하질 않겠나. 아마 봉옥이가 시집을 가니 저 령감두 나한테 장가들려는가봐.》

《그럼 그 집 령감은 어떻게 하구요?》

《까짓거, 그 조그마한 령감 내 염낭에 감춰넣구 잔치상을 받아야지 뭐.》

《그래요? 그럼 내 푸짐히 상을 차려드리리다. 령감두 어서 새옷을 입구 오시우다.》

그들의 말에 사람들은 또다시 웃었다.

봉산집은 갑자기 이마를 치면서 《아이구, 이 정신 봐라. 떡쌀이 다 탄다!》 하면서 부엌으로 달려내려갔다.

그제야 녀인들도 제각기 자기 일손을 잡았다.

정오를 넘겨 해가 서산으로 기울사할무렵에 그들은 잔치상을 차리기 시작하였다.

상우에는 두마리의 삶은 통닭이 쌍을 이루고 마주섰고 여러가지 과일들과 떡이며 과줄이 주런이 놓여있었다,

상앞에 선 김의겸은 허리에 손을 얹고 음식을 날라오는 녀인들에게 훈시했다.

《외과내식이라구 바깥쪽으로는 과일들을 놓구 안쪽으로는 음식들을 놓으라구.》

《알겠수다. 어서 고을 아전처럼 훈시만 하시우.》 하고 봉산집녀인은 그의 말을 받으면서 음식그릇들을 이리저리 옮겨놓으며 조화를 맞추었다.

쇠부리마을사람들의 한결같은 지성에 떠받들려 잔치상은 부자집잔치상 못지 않게 훌륭하게 차려졌다.

상주위에 모여선 사람들은 저저마다 잔치상이 멋있다느니 하며 한마디씩 하였다.

얼마 안있어 일을 마친 봉옥 아버지와 결의형제를 맺은 남정들과 마을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결의형제패에서 제일 마지막인 다섯째동생 익선이 앞에 나서서 잔치를 주관했다.

그가 《신랑신부 현신이요!》 하고 길게 소리쳤다.

그러자 흰 명주옷차림을 한 봉옥이와 막동은 나란히 걸어나와 상앞에 섰다.

소복단장을 한 봉옥은 한떨기의 함박꽃같았다. 그옆에 무명바지저고리를 산뜻하게 입고 서있는 막동 역시 끼끗하고 준수한게 남아다왔다.

모여선 사람들은 저저마다 박수를 치면서 그들을 축복하였다.

익선은 또다시 길게 소리쳤다.

《신랑신부 맞절이요!》

그 말에 봉옥과 막동은 어쩔줄 몰라했다.

곁에 섰던 김의겸이 귀띔했다.

《서로 마주서서 절을 하라는 소리이니 그렇게 하라구.》

막동과 봉옥은 서로 마주서서 맞절을 하였다.

그들의 행동을 지켜보던 익선은 다음순서대로 소리쳤다.

《례물을 주고받으시오!》

그들의 뒤에 섰던 젊은 녀인들이 나와서 봉옥에게는 단검을 쥐여주고 막동에게는 은장도를 쥐여주었다.

익선은 막동에게 말했다.

《신랑이 신부에게 은장도를 채워주시오. -》

막동은 그의 말대로 수실로 맨 은장도를 봉옥이의 허리에 매여주었다.

《이번에는 신부가 신랑에게 단검을 채워주시오. -》

그의 말에 따라 봉옥은 수실로 맨 단검을 막동의 허리에 채워주었다.

자리에 누워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봉옥이 아버지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는 모여선 사람들도 저저마다 눈굽을 찍었다.

잔치를 주관하던 익선이도 목이 메여오고 눈물이 나는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결의형제의 맏이인 봉옥이 아버지가 고아인 그를 친동생처럼 돌봐주고 지난해에는 바로 이자리에서 성례를 치러주었던것이다.

그처럼 인정깊고 친형제같은 봉옥이 아버지가 이렇게 누워서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저려오고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옆에 섰던 김의겸이 옆구리를 찔러서야 익선은 다음순서로 이어갔다.

《이번에는 혼주상배하시오. -》

혼주상배란 신랑신부가 서로 결혼술을 나누라는 말이였다.

봉옥은 먼저 술잔에 술을 부어 막동에게 내밀었다.

막동은 그것을 받아 단숨에 쭉 마셨다. 그리고는 술잔에 술을 찰랑찰랑 차넘치게 부어 봉옥에게 넘겨주었다.

봉옥은 떨리는 손으로 술을 받아들고 어쩔줄 몰라하였다.

이때 옆에 있던 봉산집아낙네가 분위기를 돌려세우려는듯 우스개소리를 하였다.

《봉옥이, 그걸 꼭 마셔야 첫 아들을 낳는다네. 단숨에 마시라구.》

옆에 섰던 녀인들도 맞장구를 쳤다.

봉옥은 얼굴을 붉힌채 잠시 주저하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머리를 돌려대고 단숨에 잔에 담긴 술을 쭉 마셨다.

모여선 사람들은 저저마다 박수를 치면서 한마디씩 했다.

《잘한다. 역시 봉옥인 쇠부리마을사람답다.》 하고 남정들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히야, 봉옥이의 첫 아이는 틀림없이 떡돌같은 아들이다!》 하며 녀인들은 좋아라 박수를 쳤다.

이리하여 잔치분위기는 한결 흥그러워졌다.

익선은 더한층 높은 목소리로 길게 소리쳤다.

《마감으로 부모존배요. -》

막동과 봉옥은 술잔을 들고 자리에 누워있는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아버님, 이 술을 받으시오이다.》

김의겸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 앉은 아버지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을 받아들고 정겹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애들아, 부디 잘살아라. 너희들을 보니 난 이젠 여한이 없다.》

아버지는 가까스로 술을 마시였다.

둘째 잔은 외삼촌인 김의겸이 받았다.

김의겸은 신랑신부가 부어주는 술을 쭉 마시고나서 환히 웃으면서 말하였다.

《아무리 세상살이 어려워두 자식이 재산이라, 난 너희들이 아홉아들에 외동딸을 낳아가지구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암, 그렇구말구.》

《이보게들, 외삼촌의 말을 새겨들으라구.》 하면서 모여선 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

신랑신부가 부어주는 술을 차례차례로 마신 사람들은 모두 잔치상옆에 차려놓은 손님상에 주런이 둘러앉아 음식을 들었다.

술잔이 오고가고 떡그릇과 음식그릇이 왔다갔다 하면서 어느덧 취흥이 오르자 모두들 떨쳐일어나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봉산집아낙네가 함지박에 담겨있는 물에 바가지를 띄워놓고 치는 장단과 익선이 불어대는 구성진 퉁소소리에 맞추어 남녀로소모두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돌아갔다.

그들의 우렁찬 노래소리와 웃음소리는 한적하던 쇠부리마을 골안을 한바탕 들었다놓았다.

자리에 누워있는 봉옥이 아버지의 얼굴에도 잔치상앞에 나란히 앉은 봉옥과 막동의 얼굴에도 웃음이 담뿍 어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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