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45

 

선거유세팀과 함께 동분서주하던 조대풍은 자기의 유세차량에서 정보원의 국장이라는 뜻밖의 손님을 맞이했다.

《공무원의 신분이라 내놓고 후보님을 만날수가 없어 이렇게 차안에서 뵙습니다. 불손한 행동이라 많이 탓하실줄 압니다만 어쩔수 없었습니다.》

그는 조대풍이 안기부의 수장으로 있을 때 어느 작은 부서를 책임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조대풍으로서는 전혀 안목이 없었다.

룡이 개천에 나오면 개미들에게 뜯긴다는 옛말이 불쑥 떠올라 처절한 심정이였으나 조대풍은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옛 상관의 아량을 보이며 말했다.

《형식이 뭐 중요하겠소? 공사다망한분이 이렇게 나를 찾아올적에야 범상치 않은 일이 생겼겠는데 이리저리 에돌것 없이 본론에 들어갑시다.》

《역시 후보님께서는 여전히 예리하십니다.》

그는 치하인지 비꼬는것인지 알수 없는 소리를 늘어놓고는 서류가방에서 신문을 꺼내들었다.

《이제 반시간후이면 배포될것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그가 가리키는 곳을 쭉 내리읽은 조대풍의 볼살이 실룩거렸다. 1987년 홍콩에서 일어난 교민의 《랍북미수》사건을 이전 안전기획부가 조작하였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조대풍은 속이 켕기였으나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대통령선거때마다 흔히 있군 하는 상투적인 흑색선전이요. 정보원에서 이러루한 일에까지 과민하게 반응할줄은 몰랐구만.》

《그럴리가 있겠습니까? 전 이 사건의 진여부를 론하자는게 아닙니다. 이제 이 사건현장을 취재촬영하기 위해 사람들이 홍콩으로 떠난다고 하더군요.》

《그걸 나에게 알려주는 목적이 뭐요? 나더러 당장 이 신문의 발행과 홍콩으로 간다는 취재팀을 막으라는거요?》

《안전기획부는 정보원의 전신이요, 안기부의 치욕은 우리 정보원의 치욕입니다. 제지하는것으로 될 일이라면 벌써 우리가 처리를 했을겁니다.》

그의 말은 진심인것 같았다. 하긴 과거의 불똥이 저들에게 튀는것을 원하지 않을것이다. 아마도 이 사건의 진실이 공개되면 조대풍 다음으로 골머리를 앓아야 하는것이 정보원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걱정하는것은…》 하고 국장이 무겁게 말을 이었다.

《래일 오전입니다.》

《또 무슨 일이요?》

《래일 오전에 이 랍북미수사건의 진실해명을 요구하는 대중시위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 시위에 민가협을 비롯한 재야시민단체들은 물론 강정웅신부를 비롯한 종교계 주요인사들도 합류한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 시위를 주도하는자는 최세진이라고 전국련합이라는 시민단체의 투쟁국장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언론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습니다. 신문이나 홍콩으로 가는 취재팀도 문제이지만 선거를 앞두고 민심과 여론이 우려됩니다. 특히 미군장갑차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폭발적으로 고조된 반미기운이 가라앉기는 고사하고 더욱 절정에로 치달아오르면서 서울주재 미대사관은 물론 CIA본부와 미국방성뿐만아니라 백악관까지도 비상이 걸린 상태입니다. 보수세력후보의 당선을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의 선거전문가들이 훌륭한 계략을 세워준탓에 아직은 락관적이라고 할수 있지만 이것이 선거결과로까지 이어진다고는 누구도 담보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극비에 속하는 내용까지도 주저없이 털어놓는 국장을 바라보며 조대풍은 긴장한 나머지 침을 꿀꺽 삼켰다.

《보수세력에 의한 정권교체를 실현하는데서 관건적인것은 진보세력의 후보단일화에 대응하여 보수계층도 유일후보를 중심으로 하여 결속되는것입니다. 이로부터 조후보님께서 대용단을 내리시여 사퇴선언을 하신다면 그것은 무엇으로도 대신할수 없는 국면전환의 동력으로 될것입니다.》

《뭣이?》

조대풍의 입술이 푸들쩍거리며 대번에 고성이 터져나갔다.

《내가 이 선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공력을 들였는지 당신은 아는가? 마지막 결승선을 앞두고 나에게 후보사퇴를 하라고? 그럴수는 없소.》

《우리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후보님의 인생에서 이번 대선이 가지는 의의를 모르는바도 아니구요. 후보님은 잘 모르실테지만 당신의 정견과 지향이자 우리들의 립장이며 목표라는것을 알아주십시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정세하에서 수많은 유권자들이 후보님을 통해서 5공시절의 몸서리치는, 실례합니다만 민심의 목소리를 그대로 옮기는것을 용서해주십시오. 공안통치를 상기한다면, 더 나아가서 그것을 비호조장해준 미국까지 겨냥한다면 사태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흥, 당신은 내가 동서남북도 모르고 룡꿈을 꾸고있는줄 아는 모양인데 어처구니가 없소. 바로 그 미국이 지금 나를 지지하고있단 말이요.》

조대풍은 마치 연극배우처럼 어깨를 으쓱하며 머리를 뒤로 한껏 젖혔다.

《그리고 그까짓 신문의 쪼박기사나 한갖 무지렁이같은 백성놈들의 보잘것없는 작당질이 두려워 한생을 반공일선에서 헌신해온 내가 그런 모욕과 수치를 당해야 옳겠소? 그래 당신네는 그저 지켜보고만 있겠다는건가?!》

조대풍이 분통을 터뜨렸으나 국장은 거의나 무표정한 얼굴이였다.

《중도사퇴는 없을것이며 나는 끝까지 갈것이요.》

조대풍은 씹어뱉듯이 뇌까렸다. 그러자 국장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실로 유감이군요. 그처럼 한평생 미국의 의도를 잘 알아맞추고 그 의도를 선두에서 실천해오신 후보님께서 미국의 립장을 제대로 읽지 못하시니 말입니다. 그래 후보님은 제가 지금 한갖 정보원의 위임으로 이런 말을 전달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천만에요. 난 지금 미국대사관측의 의사를 전달하고있습니다.》

《뭐라구?!》

조대풍은 벼락을 맞은듯이 놀라며 되물었다.

《그러면 미국의 뜻이라는건가?!》

《그렇습니다.》

조대풍은 상대를 집어삼킬듯이 노려보다가 머리를 저었다.

《믿을수 없네. 그깐 일로 미국어른들이 나를 버릴수가 없어!》

《후보님께서 정 그렇게 나오신다면 좋습니다. 우리를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는 지금껏 손에 쥐고있던 손가방을 열더니 또 다른 문서를 꺼내 조대풍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차에서 내려 어디론가 총총히 사라졌다.

분을 이기지 못해 씩씩거리며 문서를 펼치던 조대풍은 갑자기 발밑이 크게 뒤흔들리는것 같았다. 지금껏 자기만이 알고있다고 여겨온, 지금까지 권력의 고위층에서 아무도 모르게 축적하여 은닉해온 그의 막대한 자산목록이였던것이다. 만일 이것이 공개된다면 후보직을 포기하는 정도가 아니라 특대형부정축재를 저지른 죄로 종신징역을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무서운것은 다른것이였다. 목록에 올라있는 외국은행의 비밀구좌들에는 미국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며 복무해온 그의 헌신에 대한 표창으로 CIA가 넣어준 자금들이 들어있었다. 따라서 이 비밀을 아는것은 CIA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리기철이가 숨기고있다는 자기의 선거비자금목록이라는것도 CIA의 도움이 없이는 도저히 얻을수가 없는것이였다. 그러고보면 CIA에서는 오래전부터 그의 은닉자산을 깡그리 장악하고 리기철을 시켜 필요할 때 그를 자극하거나 견제하는데 써먹으려 한것이 틀림없었다. 원래 친미분자들을 양성하면서 그들을 후원하는 동시에 치명적인 약점까지 모조리 거머쥐고있다가 만약 비위에 거슬리면 위협을 하고 시끄러워지면 폭로하여 완전히 매장해치우든가 경우에 따라서는 제손으로 제껴버리기도 하는것이 미국의 전통적인 수법이라는것을 조대풍도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만년《국부》로 될 욕망에 들떴다가 하와이로 쫓겨가 죽은 리승만이가 그러했고 《유신》독재자가 그런 전철을 밟았으며 《5공황제》나 그의 후임자도 옥살이신세를 면치 못했다. 어느 누구도 례외가 없이 약속이나 한것처럼 꼭같이 파멸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진 그들의 운명이 남긴 수수께끼를 풀수 있는 대답은 단 한가지였다. 과거에 미국을 위해 어떤 공을 세웠는가가 중요한것이 아니라 현재 미국에 필요한 존재인가 아닌가 하는것이였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조대풍이였지만 설마 미국이 자기를 저버리겠느냐는 헛된 미련과 우직한 성정으로 지금껏 버텨왔었다.

그런데 운명의 결정적인 시각에 철두철미 자기를 지지성원하리라고 믿었던 미국이 당장 후보사퇴를 하지 않으면 정계은퇴로만 끝나지 않을것이라는 빨간 신호불을 보내오고있는것이다.

조대풍은 머리를 싸쥐였다.

(미국으로서는 현재의 혼란된 정국을 수습하기 위해 자기들에게 최대한으로 부담이 적으면서도 대신 몇십배나 충실한 노복을 필요로 할것이다. 그런 인물을 내세워 청와대에 보수정권을 들여앉히자는것이 목적일것이다. 비극은 나는 이미 미국의 버림을 받았다는것이다. 말로는 나의 후보사퇴가 종국적인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퇴각, 앞으로의 대승적인 견지에서 고려되는 전략적인 선택, 작은것을 희생하여 큰것을 얻는 고단수의 지략이라고 떠들겠지만 미국이 나에게 등을 돌려댄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내가 이 선거에서 물러난다면 나의 운명은 얼마나 비참해질것인가. 과연 이렇게 중도에서 끝나야 한단 말인가! …) 가슴속 깊은 곳에서 탄식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랭기가 흐르는 지하창고의 문이 벌컥 열리더니 리기철의 살기등등한 모습이 나타났다.

《이게 네가 말한 그 자료냐?》

그가 연희의 눈앞에 문서봉투를 흔들다가 바닥에 쥐여뿌렸다. 김현철은 앞에 떨어진 몇장의 문서들과 사진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교통사고와 관련한 보험서류들과 조사자료들이였다.

《나에겐 그 자료외에는 아무런 문서도 없어요.》

연희가 당돌하게 맞받아 대응했다.

리기철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김현철은 순간 가슴이 한줌으로 졸아드는듯싶었다. 별안간 리기철이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여 연희를 겨누었던것이다. 여느때는 자그마했을 그 총구가 어마어마한 죽음의 마굴입구처럼 확대되여왔다. 금시 불줄기를 토할것 같은 총구는 그들이 한시바삐 벗어나고싶은 저 철문보다도 컸고 당장이라도 자기들 두사람의 생명을 깡그리 빨아들일것 같았다. 온몸이 얼어붙은 연희는 얼굴이 하얗게 질려 금시라도 기절할듯싶었다.

《감히 나를 놀려? 그 대가를 얼마나 비싸게 치르어야 하는지 이제 알게 해주지.》

리기철은 총구를 겨눈채 바싹 다가왔다. 죽음의 시각이 닥쳐왔다. 전률속에 온몸이 굳어졌던 연희는 한순간 자기의 온넋을 빨아들이던 총구의 검은 구멍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지는것을 보았다. 김현철이 그의 앞을 가로막아나선것이였다.

《연희씨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이 원하는 그 자료가 어떤것인지조차도 이 아가씨는 몰라! 그러니 연희씨는 돌려보내고 나와 다시 얘기를 나누어보자.》

리기철이 비웃었다.

《병신같은 자식이 감히 내앞을 가로막아? 난 이미 너와는 할 얘기가 끝났어!》하며 그가 김현철의 가슴을 총구로 내질렀다.

김현철은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를 지르며 가슴을 부여쥐였다. 리기철이 이번에는 권총손잡이로 그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잠시 비칠거리던 김현철이 곧 몸을 다잡았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가 두터운 철문을 요란스레 두들겼다. 리기철은 인상을 찡그렸다. 방해하지 말라고 강조했는데 대체 어떤 놈인가? 문을 두들기는 솜씨로 보아 부하녀석인듯 한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것 같았다. 즐겁지 않은 예감이 갈마들었다.

리기철은 자기를 쏘아보는 두사람에게 뇌까렸다.

《곧 너희들은 죽게 될거다. 둘이 서로 마주보면서 아주 고통스럽게 서서히 죽게 되지. 이것만은 내가 너희들에게 약속해주마.》 리기철은 철문을 쾅 닫고 복도로 나섰다.

 

정보원 국장이 떠나기 바쁘게 조대풍은 자기의 목에 걸린 올가미가 서서히 조여드는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홍콩에서 벌어진 《랍북미수》사건과 관련한 살해사건의 해명을 위해 검찰에 출두하라는 통지서가 날아온것이였다. 이것 역시 미국의 압력이라는것은 두말하지 않고도 짐작할수 있었다. 조대풍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것 같은 통절함에 몸부림쳤으나 다른 선택이란 있을수가 없었다. 조대풍은 더 늦기 전에 미국의 뜻에 승복하는것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선거유세지로 가던 차량을 곧장 검찰청으로 돌리게 했다. 그런데 차안에서 아직 정황이 급변한것을 알지 못하는 개인변호사가 갑삭거리며 끈질기게 위로했다.

《후보님, 설사 사실이 그렇다고 쳐도 검찰에서 적용할수 있는 죄목은 직무유기죄입니다. 형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정당한 리유없이 자기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그 직무를 유기했을 때에는 1년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년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합니다. 그러나 형법은 이 죄를 물을수 있는 시효를 3년으로 한정하고있습니다. 그러니 후보님이 검찰소환에 응하셔도 검찰측은 후보님을 기소할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변호사가 뭐라고 주절거리든 조대풍은 비서들에게 사퇴보도문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정보원 국장은 이미 래일 오전까지로 시한부를 주었다. 그것 역시 미국이 정해놓은 시간일것이다. 그전까지 조대풍이 알아서 모든걸 스스로 정리하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검찰조사도중에 그의 결심을 흔들리게 하는 일이 일어났다. 질문을 마친 검사가 발라맞추듯이 곰살궂게 이렇게 아뢰인것이였다.

《이젠 다 끝났습니다. 저도 조사모의 회원입니다. 후보님께서는 꼭 힘을 내시고 이번 선거에서 이기셔야 합니다.》

조대풍은 뜻밖이여서 멀뚱멀뚱 쳐다만 보았다. 이자는 지금까지 조사를 하면서도 선거정국에 대해서는 영 깜깜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자기가 천하를 쥐면 그 덕을 보려고 미리부터 선통을 해오는것이 아닌가싶었다. 과연 정세에 이렇게 둔감해가지고 어떻게 검사질을 해먹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하지만 다음순간 《만약》이라는 미련이 급격히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굶주린 개는 몽둥이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력사에는 순응이 아니라 도전으로 성공한자들이 더 많지 않는가!

조대풍은 검찰청의 복도를 지나면서 앙앙불락했다.

(그래, 아직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밀어주고있다. 이들은 모두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는 향수를 그리워하고있다. 래일 오전이라는 시한부는 혹시 비를 품지 못한 마른벼락일수도 있지 않는가. 그래, 아직은 끝나지 않았다. 선거도 며칠 안 남았는데 이대로 물러설수는 없다! 그렇다. 오직 나만이 모든것을 이전대로 되돌려놓을수 있다. 미국이 바라는것도 바로 그것이 아니겠는가! 미국을 위한다는 목적이 확고할진대 수단과 방법이 무슨 상관이랴. 절대로 중도반단해서는 안된다. 내앞에 원자탄이 날아든다고 해도 맞받아 끝까지 가야 한다!)

버림받은 개가 주인을 향해 짖는 격으로 조대풍은 앞뒤를 가리지 않고 광분하기 시작했다.

차에 오른 그는 비서가 내미는 사퇴문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그리고는 흰자위를 번뜩이며 이미 계획되여있던 유세장으로 차를 몰라고 게거품을 물고 떠들었다.

(그래, 이제 나에 대한 보수세력의 지지와 나의 현명한 결단은 미국의 견해를 바로잡을것이다. 미국은 결코 나를 버릴수가 없으며 나 역시 미국이 나를 버리도록 팔짱끼고 구경만 하지 않을것이다.)

조대풍은 비서진에 련락하여 지금 가고있는 유세장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진행할테니 많은 내외기자들을 불러놓으라고 미친듯이 소리를 내질렀다. 마침내 유세장소에 당도한 조대풍은 쥐가 이는 다리를 간신히 다독이고나서 차문을 열고 내렸다. 따스한 해빛이 얼굴을 살뜰히 쓰다듬는것같아 오래간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빙 둘러싼 경호원들밖에서 그의 얼굴을 좀더 가까이 보려고 어깨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움씰거리고있었다. 사진기들을 들고 그에게 초점을 맞추는 축들도 보였다. 그는 제꺽 멋진 자세를 잡으려고 반듯이 편 손을 높이 쳐들었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사진기들의 샤타를 누르는 소리들이 기분좋게 들렸다. 도처에서 번쩍거리며 사진기의 섬광들이 일어났다. 조대풍은 흐뭇했다.

(그래, 미국어른들도 인정할건 인정해야지! 내가 대통령이 되는것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고있는가! 이게 바로 오늘의 진실인것이다!)

그가 이것을 확신하며 우멍눈이 아예 없어지게 활짝 웃는 그 순간 경호원들의 짬새로 여러 사나이들이 번개같이 돌진해들어왔다. 그들을 제지시키려던 경호원들이 억센 힘에 떠밀려 바닥에 나뒹굴었다. 한 사나이의 손이 해빛에 번쩍이더니 하얗고 둥근것이 연거퍼 조대풍에게로 날아왔다. 어쩔새가 없이 그의 벗어진 번듯한 이마에 딱 소리내며 부딪치더니 끈적끈적하고 퀴퀴한 악취가 풍기는것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썩은 닭알이였다. 요행 다른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그 사내를 붙잡았다.

《이걸 놔라, 이걸 놔!》 하고 악을 쓰던 사내가 조대풍을 향해 소리쳤다.

《이 살인마야! 우리 어머니를 살려내라! 우리 누이를 살려내!》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차에 오른 조대풍은 숨을 헐떡거리며 누구에게라 없이 물었다.

《대체 어떤 놈이야?》

《미친놈입니다.》

《내가 묻는건 그게 아니야. 누가 조작한거냐구?》

대꾸가 없었다. 잠시후 그만 돌아가는게 어떤가고 비서가 물었다.

《안돼. 이게 어떤 유세인줄 몰라? 당장 갈아입을 옷을 가져와!》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경호원들이 또다시 달려왔다.

《후보님, 빨리 이곳을 피해야겠습니다.》

썩은 닭알을 던진 사내를 경찰에게 인도하려던 도중에 시민들에게 포위되여 종당에는 그들에게 빼앗겼다는것이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그들은 경호원들을 밀어제끼며 조대풍이 있는 차를 향해 밀려오고있는데 그 기세가 무슨 일을 꼭 칠것만 같다고 했다.   《조대풍은 후보사퇴하라!》, 《독재권력을 허용하지 말라!》, 《친미독재 결사반대!》

벌써 저쪽에서 군중들이 밀려오며 웨치는 구호소리가 들려왔다. 반대쪽에서도 거친 고함소리들이 울리더니 어깨들을 겯고 팔을 바싹 낀 시위대오가 나타났다. 자칫 늦잡다가는 포위될 형편이였다. 공포에 질린 유세차량 몇대가 조대풍을 버려둔채 꽁지가 빳빳해서 달아났다. 조대풍은 게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안된다, 이녀석들아! 이게 어떤 유세인줄 몰라?! 그깟 백성놈들에게 밀려 달아나다니! 이 조대풍은 후보사퇴를 안한다! 안해!》

그가 피가 터지게 소리를 쳤으나 차량들은 불을 만난듯이 덴겁을 하여 마냥 질주할뿐이였다.

조대풍은 정신이 아뜩했다. 그가 탄 차량을 향해 돌진해오는 분노한 민중의 파도를 보았던것이다. 그들은 성난 사자들마냥 노도처럼 밀려들고있었다. 물론 그에게로 달려오는 민중은 맨손이였고 웨치는 목소리가 무기의 전부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정치밖으로 밀려나 그 대상으로 되여 순종만을 강요당해온 사람들이 증오를 번뜩이며 철추같은 억센 주먹을 높이 쳐들고 육박해오고있었다. 반대로 그 어떤 위협에도 배심이 든든했던 조대풍은 이들을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기겁하여 쳐다보고만 있었다.

어느 순간 그의 절망은 한계를 넘어서서 죽음이라는 림계선에 들어서고있었다.

조대풍이 탄 차량은 썩은 닭알로 뒤범벅이 된채 부리나케 꽁무니를 뺐다. 죄많은 인생이 민중의 심판을 받고 상전의 버림을 당해 력사가 그어준 멸망의 마지막길로 달려가고있었다.

리기철이 철문을 쾅 닫고 돌아섰을 때 두명의 사내가 겁에 질려 서있었다. 한놈은 강대처럼 바싹 마른 몸에 키가 꺽두룩했는데 공포에 한가득 질린게 마치 하늬바람에 훌 날려가버릴 자세였다. 다른 놈은 앙바틈한 목에 물독처럼 뚱뚱한 녀석이였는데 역시 얼굴이 새파랗게 얼어있었다. 리기철은 물어뜯을듯이 내뱉았다.

《무슨 일이야? 어떤 경우에도 내 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이미 말했는데 벌써 잊었어?》

두 녀석은 제가끔 대꾸했다.

《변이 났습니다.》

《큰일입니다.》

대체 무슨 일인데 이녀석들이 덴겁을 하는걸가? 리기철은 재촉했다.

《뭐냐? 어서 말해!》

강마른자가 말했다.

《웬 사람들 한무리가 이곳으로 밀려옵니다!》

뚱뚱한 녀석도 보탰다.

《그 김기자를 찾는것 같습니다.》

《한무리라고는 하지만 백명도 넘어보인다고 합니다.》

리기철은 얼떠름했다. 대체 이녀석들이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이곳은 파산되여 페업한 공장지구에서도 제일 한귀퉁이에 치우쳐있는 외진 건물이였다. 평소에 인적이란 전혀 없어 은페지로서는 그저그만인 이곳으로 웬 사람들이 갑자기 몰려온단 말인가?

《무슨 일인지 똑바로 얘기해!》

그가 눈을 부라려서야 녀석들은 정신을 차리고 말을 했다. 1차감시소에서 은밀히 련락을 보내온데 의하면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 다짜고짜로 공장구내로 우르르 들어오더라는것이였다. 그리고는 여러패로 나뉘여 여기저기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는 잡도리가 뭔가 꼭 알고있는 눈치라고 했다. 더 늦기 전에 김기자를 찾아내야 한다고 떠들어대는것을 분명 들었다는것이였다. 그들이 말하는 김기자란 틀림없이 김현철이라는것은 불보듯 뻔했다. 얼마후면 이 지하창고의 출입문으로 달려들지도 모른다.

리기철은 지금의 정황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부하들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려는듯 머리우에서 빈 도람통같은것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리는 소리, 법석 떠드는 웨침이 들렸다.

리기철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다.

그는 손전화기를 들고 박영준을 찾았다. 그라면 이곳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놓을수 있을것이다.

그 시각 박영준은 마지막사품을 들고 회사의 사무실을 나서고있었다. 이 방에서 그는 조대풍을 도와 불철주야의 나날을 보냈다. 이제는 모든것이 끝나고 회사의 간판도 내린 뒤였다. 며칠후이면 그는 이전 상관의 지시에 따라 정보원으로 복귀하게 될것이였다. 문턱을 넘어서려던 그는 손전화기의 진동을 느꼈다. 리기철의 호출이였다. 한번… 두번… 박영준은 전화를 받을념을 하지 않고 손전화기를 들여다보기만 하였다. 아마도 김현철이 구금된 지하창고쪽으로 최세진네 패가 몰려간 모양이다. 그래서 리기철이 불에 덴것처럼 급히 호출하고있을것이다. 여느때 같으면 전화를 받았을 박영준이였으나 지금은 쓴웃음만 지었다. 한을 남기고 떠나간 불행한 사람들의 력사를 바르게 남기겠다는 김현철의 당돌한 생각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의 지지와 공감을 불러일으킬것이였다. 거기에는 박영준의 《공로》도 한몫 끼여있을지 몰랐다. 물론 박영준이 김현철을 살리도록 도와준것은 그가 고와서가 아니였다. 아니, 생각 같아서는 리기철의 손에 명줄이 끊어지게 내버려두고싶은 생각이 열백번도 더 들었다. 그러나 정보원에서는 선거정국에 파격적인 충격이 될만 한 일들은 최대로 억제시키라고 했다. 선거가 박두한 시점에서 《랍북미수》사건을 추적해온 기자가 살해된다면 제2의 박종철사건으로 떠오를수 있었고 이에 따른 민심의 분노와 폭발은 군부《정권》의 바통을 충실히 계승해온 보수세력의 머리우에 고스란히 들씌워지리라는것은 뻔한 일이였다.

이러한 상태에서 선거에 돌입하는 경우 그 후과는 상상하기도 두려웠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이 방안을 선택하지 않을수 없었다. 말하자면 무기명신고자의 명의로 김현철의 행처를 최세진에게 알려주는것이였다. 그는 전화를 하면서 김현철을 구원하고나면 랍치자가 누군가를 알게 될것이라고 암시해주었다. 조대풍이가 하루아침에 비루먹은 하늘소의 신세가 되여버렸으니 그의 심복이였던 리기철까지 먹이감으로 던져주고 사태를 완화시키는것쯤은 그리 큰 손실이 아니였다. 이제 김현철이나 리기철이 캄캄한 그 지하창고에서 살아나오겠는지, 싸늘한 시체로 변하겠는지는 그들자신의 운수에 달려있었다.

또다시 호출음이 바쁘게 울렸다.

박영준은 손전화기를 안락의자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렸다. 이젠 리기철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조대풍이나 마찬가지로 그도 성쌓고 남은 돌이 되여버렸다. 이 선거에서 미국이 보여준 평가가 바로 그러했다. 박영준은 어리석은 조대풍이나 리기철처럼 처신하지는 않을것이다. 그들이 보여준 실책은 박영준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유지하기 위한 격전에서는 단호하고 무자비해야 하며 사소한 관용과 아량도 불허해야 했다. 또 이전과 같이 완력과 권세로만이 아니라 지능과 인내성도 발휘해야 하는것이였다. 머지않아 바라던 때가 오면 박영준은 자기의 관록과 이 교훈까지 발동하여 미국과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적대시하고 공공연히 반대해나서는 김현철과 같은자들을 모두 도람통안에 쓸어넣고 콩크리트로 다진 후 누구도 영원히 찾아낼수 없게 서해의 감탕밭속에 매몰해치울 결심이였다. 그때는 결코 오늘의 리기철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것이다. 그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박영준과 통화가 이어지지 않자 리기철은 별안간 공포를 느꼈다. 어쩌면 이 지하창고가 자기의 무덤으로 될지도 모른다는 섬찍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출구는 비상통로까지 포함하여 단 두개뿐이였다. 탈출이냐 포로냐 하는 문제는 이미 시각을 다투고있었다. 이제 빠져나가지 못하면 어쩔수없이 이곳에 갇힌 꼴이 되고말것이다.

리기철은 일이 참 묘하게 뒤틀려진다고 한탄하며 김현철과 연희가 있는 방을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뇌까렸다.

《자식들, 무슨 큰일이 났다고 부들부들 떠는거야?! 내가 밖의 녀석들을 저지시킬테니 너희들은 가두어놓은 년놈들을 처치해버려. 더이상 쓸모가 없으니까!》

그의 지시대로 철문쪽으로 다가가던 부하들은 또다시 뭔가 부셔져내리는듯 한 소리를 듣고 질겁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그런데 그들의 눈에 비껴든것은 비상통로쪽으로 황황히 달려가는 리기철의 뒤모습이였다.

(개자식! 우릴 죽음의 함정에 몰아넣고 혼자 살겠다구?!)

서로 마주보던 그들은 약속이나 한듯이 몸을 홱 돌리고는 상전의 뒤를 쫓아 허겁지겁 뛰여갔다.

 

바닥없는 어둠의 심연, 이 세상 모든 음향은 자취를 감추어버린듯… 그 무엇도 볼수 없고 귀로도 가려들을수 없는 지옥의 나락같았다. 이 심연, 이 고요뒤에서 무엇이 기다리는것인가. 김현철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희미한 불빛이 새들어오는 철문쪽을 쳐다보았다. 일각이 삼추같았다. 이제 저 문이 다시 열리면 죽음은 또다시 무서운 공포를 앞세우고 달려들것이다. 만일 김현철 혼자였다면 이다지도 두렵지는 않을것이였다. 죽음을 앞둔 이 시각 그의 심중을 괴롭히는것은 연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이였다! 김현철은 아직도 오돌오돌 떠는 연희를 껴안은 손에 은근히 힘을 주었다. 이런 연약한 처녀에게 총구를 내대던 리기철의 포악무도한 낯짝이 떠올라 입속으로 《비렬한 놈!》 하고 부르짖었다. 격노와 울분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런데 난 연희를 위해 무엇을 할수 있는가? 또 앞으로 무엇을 할수있단 말인가?)

김현철은 무맥하고 속수무책인 자기가 이때처럼 저주스러워보인 때가 없었다. 차라리 총구나 막아설것이 아니라 리기철에게 달려들어 그자의 멱살을 물어메쳐야 했을것이였다. 리기철은 이제 고통스럽게 죽을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갔다. 그것은 단순한 협박이 아닐것이다.

(어떻게든 연희를 살려야 한다. 지금은 이렇게 앉아 죽음을 기다릴 때가 아니다.)

이때 머리우에서 묵직한 무엇이 넘어지는듯 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김현철은 귀를 강구었다. 누군가의 투닥거리는 발자국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차 멀어져갔다. 김현철은 한가닥의 기대를 안고 철문으로 다가갔다. 문에 귀를 바싹 붙이고 엿들어보았으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살며시 문을 밀어보았다. 삐걱 소리가 나며 철문이 조금 열렸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문이 걸려있지 않았다. 그러면 총을 들고 위협하던 리기철이라는자는 분명 밖에 있을것이다. 김현철은 주먹을 더욱 꽉 틀어쥐였다.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것이 아니라 맞받아나가야 한다! 그는 큰숨을 들이쉬고나서 다시 힘을 주었다. 삐거덕! … 아까보다 더 큰소리가 났으나 여전히 기척이 없었다. 드디여 한사람이 나갈만큼 틈이 생겼다. 김현철은 목을 조금 내밀고 밖을 살폈다.아무도 없었다. 리기철이도, 그 끄나불들도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김현철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먼저 밖으로 나왔다. 희미한 불빛아래 긴 지하복도가 쭉 뻗어있었다. 우둘투둘한 벽체는 습기가 배여 거멓게 젖어있었다. 궁륭식천정에서 물방울이 똘랑똘랑 떨어졌다. 우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와 발자국소리같은것이 들리는것 같았다. 그래도 지하도에는 그림자 하나 얼씬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생긴게 분명했다.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온것일지도 모른다. 어느새 따라나온 연희가 김현철의 팔을 살그머니 쥐였다. 그도 연희의 작은 손을 꼭 감싸쥐였다. 그리고 서로 마주보았다.

《조용히 내뒤를 따르시오.》

김현철은 이렇게 속삭이고나서 먼저 한걸음 내짚었다. 그런데 연희가 앞을 가로막았다.

《제가 들어온 길을 알아요. 그러니 제가 앞설게요.》

김현철은 불같이 뜨거운것이 욱 치밀었다. 눈굽이 확 달아올랐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희미한 저 지하도의 굽인돌이에서 죽음의 비수가 불시에 날아올지도 모른다. 또 그뒤의 어느 구석에서 발사된 죽음의 연덩이가 가슴을 뚫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위험천만한 길을 연희는 제가 앞서겠다고 한다. 연희도 이 걸음이 생명을 기약할수 없는 위험천만한 길이라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눈시울이 빨갛게 달아오른 그는 김현철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새기려는듯 또렷한 눈동자로 쳐다보고있었다. 김현철은 불현듯 눈물이 치솟았다. 어쩌면 최후가 될지도 모를 이 순간에 속에 품고있던 말을 꼭 남기고싶었다. 사랑한다고, 연희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싶었다. 죽음을 앞둔 이 시각 오직 그 말만이 간절히 끓고있었다.

《연희씨!》 하고 살뜰하게 불렀으나 끝내 가슴속을 꽉 채우고있는 그 말만은 왜서인지 털어놓을수가 없었다. 김현철은 자기의 심장에 쪼아박듯 외웠다.

《연희씨, 이제 다시 밖으로 나간다면 난 반드시 해내고싶은 일이 있습니다. 기어이 내 손으로 밝혀내야 할 또 하나의 진실이 나를 기다리고있습니다.》

연희가 그의 얼굴에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대답했다.

《그래요. 현철씨는 꼭 해낼거예요. 전 믿어요!》

김현철은 그를 꼭 포옹하고나서 제 먼저 앞섰다. 연희가 재빨리 따라나섰다.

《아니! 우리 함께 나가요. 걸음도 마음도 나란히, 살아도 죽어도 언제나 나란히!》

이렇게 그들은 한덩어리가 되였다. 지하도는 끝없이 길고 또 길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그처럼 무서워보이고 끔찍하게 여겨졌던 그 길이 이제는 무조건 가야만 하는 운명의 길처럼 다가들었다. 벌건 불빛이 희미하게 내려비치는 누기찬 지하도로 서로 의지한 두사람은 한걸음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고있었다. 그들은 더이상 두렵지 않았다. 마치도 이글거리는 하나의 불덩어리가 흐르는것 같았다. 드디여 지하도의 끝에 있는 계단까지 오른 김현철은 육중한 철문을 힘차게 밀어제꼈다. 눈부신 해살이 그들의 머리우로 쏟아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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