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30

 

책상우에는 각종 지도와 함께 홍콩과 관련된 자료들이 펼쳐져있었다.

그우에 자와 콤파스, 거리환산표들까지 널려있어 김현철은 마치도 지리학자가 된듯싶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홍콩에 갔다올 결심이였다. 그것도 가장 은페된 방법으로 다녀올 계획이였다. 그는 누군가가 자기를 끈질기게 감시하고있다는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의 은밀성을 강구해야 했다.

김현철은 며칠전에 신문사 경제부 동료기자를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그의 말에 의하면 전경련에 속한 대기업체들의 대표들과 기술진들이 망라된 경제실무대표단이 열흘후에 홍콩을 방문할 예정이라는것이였다.

흥미가 있었다. 그 대표단의 취재진에 포함되여 간다면 감시자들의 의심을 덜 받을수도 있지 않을가? 어쩌면 천재일우의 기회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일반관광객처럼 가는것보다도 덜 위험할것 같았다.

김현철은 최근에 발행된 《기업총람》과 《재계인사록》을 펼쳐들고 실업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료해하기 시작했다. 이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니 뜻밖에도 최세진이 꺽두룩한 모습으로 서있었다.

《최형!》 하고 김현철은 그를 반기며 손을 잡았다.

최세진은 들고 온 과일바구니를 탁자우에 올려놓고는 김현철의 아래우를 깐깐히 살폈다.

《좀 어떤가?》

김현철은 쑥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 소문이 최형한테까지 갔습니까?》

《자식, 형 형 하면서도 정작 필요할 땐 찾지도 않고…》

《실은 보고싶었습니다. 그러나 형도 무척 바쁘지 않습니까?》

《바쁘다고 병문안올 짬도 못 내겠어?》

최세진은 몹시 노여워하면서 그의 어깨며 팔을 조심스럽게 눌러보았다.

《지금도 아프겠지?》

정이 실린 목소리에 김현철은 속이 찌르르했다. 최세진이 격분하여 물었다.

《대체 어떤 놈들인가? 무슨 목적으로 테로했는지 짐작가는것도 없어?》

김현철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속생각을 그대로 말하면 몹시 걱정할것 같았다.

《정말인가?》 거듭 끈질기게 따져묻자 잠시 갑자르던 김현철은 《사실은…》 하고 입을 열었다. 쏘파에 앉아 실눈을 짓고 그의 말을 심중히 듣고난 최세진이 팔걸이를 안타깝게 두드렸다.

《그러길래 왜 혼자 일을 벌린거야? 응?》

김현철은 시무룩이 웃었다.

《난 기자입니다. 기사를 쓰는것이 본분이구요.》

《내가 몇번을 강조했나? 필경 무서운 모략극일수도 있기때문에 일반살인사건으로 가볍게 대하면 안된다구…》

《최형의 말이 맞는것 같습니다. 사실 죽은 녀인의 가족들이 피해를 당한 사실들을 취재할 때에는 인정과 의협심이 많이 동했는데 차츰 파고들어가면서 권력의 엄청난 음모의 마수가 뻗치고있는것을 확신할수 있었습니다. 이젠 나도 알게 모르게 그 마수의 먹이감이 되여버린것이지요.》

《역시 예견했던 그대로군그래.》

《그뿐이 아니였습니다.》

《또 있어?》

김현철은 오장륙부가 뒤틀리는듯 한 고통을 느꼈다. 친부모에 대한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통증을 느껴야 했던것이다. 땅속에 누워서도 눈을 감을수 없는 억울함을 당한 령혼들마저 저들의 흉계에 거리낌없이 리용하고있는 악의 그림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를 참을수가 없었다.

김현철은 입술을 푸들푸들 떨며 말했다.

《최형, 후에… 후에 얘기하겠습니다.》

최세진은 비애가 가득찬 그의 기색을 근심스럽게 살피다가 옆에 있는 탁자의 유리물병에서 물을 따라주었다.

《그래, 기억하는것조차도 괴로우면 후에 말해. 그게 좋겠어.》

김현철이 물을 쭉 들이키고 다소 진정이 되자 최세진은 물었다.

《그러니까 자네곁을 유령처럼 떠도는자들이 문태석랍북미수사건과 련관되여있다는거지?》

《예. 그렇게 짐작은 가는데… 참, 리해되지 않는게 있습니다.》

《뭔가?》

《나의 취재기사는 이미 기각이 되여 구태여 날 건드릴 리유가 없을텐데… 혹시 기사가 기각된걸 몰랐을가요?》

김현철은 자기가 기사를 제출했을 때 부장이 취한 태도와 처음에는 보류되였다가 그후 완전히 기각당한 과정에 대해 빠짐없이 들려주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그의 이야기를 듣고 추리하던 최세진은 가볍게 머리를 한번 끄덕이더니 말했다.

《초조해난걸세.》

《예?!》

《바빠난거지.》

《무슨 뜻인지?!》

최세진은 문득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오늘부터 대통령후보들의 유세가 시작되지?》

《예?! 벌써 그렇게 됩니까?》

김현철은 고개를 들어 달력을 쳐다보았다. 최세진의 말이 옳았다. 최세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함께 가볼데가 있다고 하였다.  김현철이 벌려놓은 일감들을 가리키며 바쁘다는 표정을 짓자 최세진은 흥분한 어조로 덧붙였다.

《자넬 테로한자들을 알것 같애!》

김현철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정말입니까? 누굽니까?》

《따라오게!》

거리에 나선 최세진은 택시를 불러세웠다. 김현철과 함께 택시에 오른 그는 운전사에게 시청광장앞으로 가자고 하였다. 시청앞에 도착한 그들은 택시에서 내렸다. 광장에는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가설무대 같은것이 세워져있었는데 그 주변에는 많은 행인들이 모여있었다. 프랑카드도 길게 드리워져있었지만 멀어서 그런지 알아볼수 없었다. 가까이로 다가가자 확성기의 소리가 귀청을 울렸다.

《여러분, 정치라는게 무엇입니까?》

생각없이 길을 가던 사람들의 심중을 확 끌어당기는 큰소리였다. 뒤이어 무슨 풍각같은 음향이 따랐다. 김현철은 누군가의 《대통령》선거유세장근처에 왔다는것을 이내 깨달았다. 유세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오늘 이 사회에서 신념은 쓰레기취급을 받고있습니다. 건국의 주추돌로 되여온 반공리념은 차츰 퇴색해지고 주적관념은 희박해지고있으며 과거에 피를 흘리며 나라를 지킨 현충렬사들이 외면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있습니다. 기강도 도덕도 무너져 반공일선에서 헌신한 열혈남아들이 비웃음의 대상으로 되고있습니다. 과연 이 땅우에 단 한시간이라도 평화와 안정이 깃든적이 있었습니까? 단 1분이라도 눈물이 마른적이 있었습니까?》

한쪽에서 빈약한 박수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웬 일인가싶었는지 길가던 사람들도 두세명씩 다가와 인파는 점점 불어났다. 무슨 귀맛좋은 소리를 들을가 해서 몰려드는것 같았다.

《누굽니까?》

김현철이 묻자 최세진은 계속 들어보라는 시늉을 하였다. 확성기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옛사람인 공자는 말했습니다. <먹을것도 둘째이고 군사도 둘째이다. 백성에게 신임을 잃게 되면 설자리가 없는것이다.> 이렇듯 량식과 군사가 풍족할지라도 백성이 신뢰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는 이미 나라가 아닙니다. 왜냐? 나라의 주인은 바로 국민이기때문입니다. 국민으로서 의무에만 시달리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국민은 더이상 그 나라를 믿지 않을것입니다. 신념이 없는 사회, 신뢰를 잃은 사회, 기강이 해이된 사회를 지금부터 제가 바꾸겠습니다. 여러분은 국민으로서 의무만 다하십시오. 국민의 생명안전도 권리도 제가 담보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지금껏 단 한번도 마음놓지 못한 안보와 누려보지 못한 권리, 안정되고 향상되는 민주주의권리를 제가 찾아드리겠습니다. 저는 기호 7번. 대통령후보 조대풍입니다!》

조대풍?!

김현철은 놀랐다기보다는 어리둥절했다.

(조대풍이 과연 저런 말을 할수가 있단 말인가? 어떻게?!)

까마귀가 백로로 다시 태여났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놀라지는 않았을것 같았다. 그가 잘못 듣지 않았나싶어 귀를 기울였으나 이미 한차례의 유세연설이 끝났는지 확성기로 쿵짝거리는 음악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왔다. 조대풍의 그 무슨 치적을 자랑하는 소리 같은것도 섞여 들려왔다.

《이젠 그만 돌아가잡니까?》

김현철이 실망한 어조로 묻자 최세진이 뜻밖의 말을 내뱉았다.

《바로 저자야!》

김현철은 갑자기 무슨 말인가싶어 최세진을 쳐다보았다.

《분명 저자네 패거리들이 널 테로했어!》

너무 뜻밖이여서 선뜻 믿을수가 없었다. 그래도 한다하는 《국회》의원이며 명색이 《대통령》후보라는자가 일개 신문기자인 자기를 테로했다는것이 잘 믿어지지 않았다.

《설마…》

최세진이 격노한 눈길을 던졌다.

《설마라구?! 방금 저자가 한 유세연설을 듣고도 몰라? 조대풍이 누구인가? <국가안보>와 <국위선양>의 간판을 내걸고 군부파쑈독재를 유지, 연장하기 위해 권모술수의 왕초가 되였던자야! 민주주의를 폭압으로 짓밟아뭉개고 우리의 민주화동지들을 학살한 주범이야! 그런데 뭐 설마라구? 그 설마속에서 바로 파쑈독재가 또다시 고개를 쳐들고있다는걸 왜 몰라?》

최세진은 분을 삭이지 못해 씩씩거렸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김현철은 그가 너무 과격해진것이 놀라왔다. 하긴 조대풍이 《대통령》후보로 나섰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저런 파렴치한 유세연설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아무리 의사표현의 《자유》가 있고 《선거공약》과 함께 람발되는 유세연설이라 할지라도 사람마다 제 푼수에 어울리는 말이 있는 법이다. 조대풍의 연설은 그야말로 철면피와 후안무치의 극치라고밖에는 달리 표현할수가 없는것이였다.

방에 들어선 최세진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TV를 켰다. 거기서도 선거유세 비슷한것이 방영되고있었다. 화면중심에 걸려있는 프랑카드가 시야에 비껴들었다.

《가자, 으뜸의 나라로! 조대풍과 함께!》

조대풍의 선거유세와 관련한 편집물 같았다.

유세참모인듯 한자가 기자들에게 조대풍의 출마동기에 대해 설명하고있었다.

《국민의 마음을 위로해드리고 희망을 만들어 국민이 편안하게 살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것이 우리 후보님의 유일무이한 출마동기입니다.》

잠시 말을 끊었던 그자는 중요한것을 잊었다는듯 묻지도 않은 대답을 빠른 말씨로 내쏟았다.

《오직 우리 후보님만이 굳건한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나라의 안보를 담보하고 용공불순세력들을 척결하여 평화와 안정을 수호할것이며 용서와 화합의 정신에서 지역과 리념, 세대간 갈등을 해결하고 동시에 서민의 편에 서서 일자리를 창출하실것입니다.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이전에 후보님께서 관직에 계실 때 말입니다. 길거리에 즐비한 이동식간이매대들이 서울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꽤 많은 사람들이 철거론을 떠들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보님께서는 그 매대 하나에 한 가족의 생계가 걸려있다, 큰길에 있는것이 보기 흉하다면 안쪽의 골목으로 들어가게 하면 된다는 견해를 강력히 주장하시고 종시 관철하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사회라는게 똑똑한 사람들만 사는 곳이 아니다, 힘없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도 살아가는게 바로 사회이다, 힘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들을 생각해주어야 좋은 사회가 이루어진다라고 말입니다.》

《조대풍후보가 대통령선거에 나설 자격이 있다고 보십니까?》

어느 한 기자가 묻자 그자는 낯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꾸했다.

《후보님께서는 공직을 떠난 지난 십여년간 인생의 가장 낮은 장소에서 많은분들의 고통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회개하고 참회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이미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셨고 심심한 회개를 마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 후보님처럼 의지가 강하시고 솔직하시고 너그러우신분은 드물겁니다. 자격유무는 국민 여러분이 이번 선거에서 결정할것입니다.》

김현철은 참담한 심정이였다. 과연 이게 현실이란 말인가! 무슨 선거유세라기보다 가면무도회를 보는듯 했다.

《사람이 살다보면 이런 일도 겪는군요.》

김현철이 기가 막혀 나직이 중얼거리는데 최세진이 화를 벌컥 냈다.

《사회의 눈과 귀라는 기자라는게 그런 얼뜬하고 미적지근한 사고밖에 못해? 그러니까 야밤중에 죽도록 얻어맞고도 대체 왜 맞았는지, 누가 자기를 때렸는지도 잘 모르는게 아닌가!》

최세진은 씩씩거리며 욕을 계속했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극우보수세력은 대포를 꺼내들고있어. 그 대표적인물이 바로 조대풍이야. 이자들은 공개적으로 민족공동의 합의인 6. 15공동선언까지 헐뜯고 시비하는 판이야. <6. 15식통일은 통일이 아니다!>, 이게 바로 조대풍이네 패거리들의 넉두리지. 그런데 이 넉두리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고있어.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보수세력이 뭉치고있다는 의미야. 만일 온 겨레가 바라는 평화통일이 이룩되면 이 땅우에 저들이 설자리를 영원히 잃게 된다는것을 모르지 않겠지. 그자들이 바라는것은 뭔가? 력사를 6. 15이전시대로 돌려세우겠다는거야. 그래서 우리 겨레가 서로 반목질시하고 증오와 대결의 악순환에서 영원토록 벗어나지 못하게 하자는것이지. 이래야만 상전인 미국의 의도를 집행할수 있고 저들의 파쑈권력을 되찾을수 있으니까.》

김현철은 정신이 번쩍 드는것 같았다. 물론 그도 보수세력들의 로골적인 반공선전에 대해 모르는것은 아니였으나 최세진의 말을 음미해보느라니 불현듯 앞을 가리고있던 장막같은것이 걷히는것만 같았다.

최세진은 가슴이 타드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나서 말을 계속했다.

《생각해보게. 6. 15공동선언이 채택된 후 우리 겨레가 얼마나 기뻐했나? 자네도 기자이니 모르지 않겠지? 말그대로 우리 민족의 통일운동사에 커다란 분수령을 이룬 선언이자 통일로 향하는 력사에 가장 큰 획을 그은 사변이였지. 남과 북사이에 우리 민족끼리라는 통일의 대원칙이 확정되고 정치, 군사적긴장이 크게 완화되여 협력과 교류가 얼마나 활성화되였던가. 그런데 올해초에 미국이 북을 <악의 축>으로 지명하고 광란적인 북침전쟁연습에 매달리면서 남북관계도 랭각상태에 빠져들지 않으면 안되였지. 북의 립장으로서야 공동선언을 함께 채택한 일방이라는 우리 당국이 미국의 눈치를 보며 그에 동조하고있으니 자기들에 대한 모욕과 배반이상으로 느낄수밖에 있는가. 하지만 4월초에 우리측 특사를 대범하게 받아들여 공동선언의 정신을 재확인하고 그에 토대하여 남북관계를 원상회복할데 대한 공동보도문이 합의, 채택되도록 아량을 보여주었지. 그래서 중단되였던 대화와 협력의 길이 다시 열린게 아닌가. 이것만 봐도 북의 진정한 민족애를 알수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공조야말로 남북관계해결의 근간이라는것을 깨달을수 있지. 미국과 이 땅의 보수세력은 이걸 달가와하지 않고 한사코 깨뜨리자는걸세. 그래 우리 겨레가 힘을 합쳐 마련한 6. 15의 소중한 열매를 무참히 짓밟고 빼앗으려고 외세와 작당한 파쑈독재의 잔당들이 앞에서는 겉발린 웃음과 요설로 사람들을 기만하고 돌아앉아서는 시퍼런 칼을 우리의 잔등에 박으려고 날뛰는걸 두눈을 펀히 뜨고 보면서도 아직까지 설마타령인가!》

김현철은 갑자기 머리칼이 쭈뼛 일어서는것을 느꼈다. 깡패들의 기습을 처음 당했을 때 느꼈던 공포심이 어느 사이엔지 되살아났던것이다. 그리고 과거에 군부독재의 공포와 억압통치의 상징이였던 조대풍이 《대통령》후보로 나선것자체가 청산과 반성을 모르는 이 사회의 불행이라고만 여겨왔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통절하게 느껴졌다.

이것은 한갖 어리석음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무수한 피와 살륙을 용인하는 범죄가 아니랴싶었다. 그것말고도 더 무서운것이 있었다. 조대풍이네를 비롯한 이 땅의 보수패거리들이 《대통령》선거에 도전할 정도로 아직 세력이 막강하고 자기들의 체제를 유지하며 운영해나가고있다는것이였다.

그자들은 《정권》이 바뀌였어도 자기들의 옛시절을 그리워하면서 의기투합되고있으며 서로 긴밀히 협력하고있었다.

김현철은 사색을 모았다. 1987년의 문태석《랍북미수》사건, 당시의 안전기획부 부장이였던 조대풍, 그리고 그해말에 있은 《대통령》선거… 이번 취재를 통하여 김현철은 1987년당시에도 조대풍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려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그런자가 오늘날 또다시 《대통령》이 되고저 하고있다. 옛꿈을 버리지 못하고 꿈틀거리는 그자에게 가장 두려운것은 자기의 어두운 과거가 밝혀지는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1987년의 괴이한 《랍북미수》사건을 추적하는 한 기자의 행동이 눈에 거슬리고 그것을 가로막아보려고 이중삼중의 압박을 가해오는것일지도 모른다. 지난날 시민들의 민주화의 꿈을 군사쿠데타로 더럽히고 그 싹마저 미국제땅크로 깔아뭉갠것으로도 모자라 한개의 도시를 피로 물들이는 만행도 서슴지 않던 야수들이 한순간에 지나지 않는 감옥살이로 과오를 씻었다며 꿀발린 요설로 민중을 우롱하고있는것이다!

김현철은 조성된 정황을 치밀하게 분석종합해보았다. 깡패들의 공격이 있은 후 신문사로 《빨갱이》의 씨종자가 적화선전을 하고있다는 신고가 있었고 그 신고자의 신분은 아직도 드러나지 않았다. 하다면 신고자는 어떻게 피덩이로 교회에 내던져진 김현철의 부모들을 찾아냈을가. 유일하게 김현철의 부모를 알고있는 라경숙은 영원한 비밀로 묻어버리려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고 김현철을 찾는 친척과 같은 연고자들이 나타난것도 아니다. 하다면 김현철의 출생의 비밀을 알수 있는자들은 누구인가. 강정웅신부는 아버지가 억울하게 《간첩》이라는 루명을 쓰고 처형되였다고 했다. 라경숙이 전한 말에 의하면 어머니도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면 그때 아버지를 《간첩》으로 몰고 어머니를 살해할수 있은것은 누구인가. 당시의 중앙정보부일것이다. 그러면 중앙정보부의 비밀기록을 찾아내 내 행처를 찾았다는 결론밖에 남지 않는다. 정보부의 오래된 과거의 비밀을 들춰낼 정도로 유력한자들이라면 역시 그 계통이 아니겠는가!

사고가 여기까지 미치자 푸른 섬광이 김현철의 머리속을 번쩍 스쳤다.

그렇다! 그자들이다. 바로 안기부의 우두머리였던 조대풍과 그와 련관된자들이 꼬리를 드러낸것이다!

김현철의 가슴속에서 분노가 용암처럼 괴여올랐다. 단순히 테로를 당해서만이 아니였다. 자기의 부모들을 억울한 죽음으로 내몰고 30여년세월 무주고혼이 되여 떠돌게 한 파렴치한자들이 드디여 피묻은 얼굴을 드러낸것이다. 절대로 용서할수 없었다! 눈굽이 따가웠다. 격노의 눈물이 뜨겁게 고여올랐다. 김현철의 가슴속에서 한 대학생의 고문학살사건에 격분하여 거리에 뛰여나갔던 그 시절에 자주와 민주, 통일의 꿈을 안고 피를 토하며 거리에 쓰러졌던 사람들의 절규를 담아 목이 터지게 부르던 투쟁가요가 다시 울려나오고있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 없고 기발만 나붓겨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여나서 웨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지금껏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꽃나이청춘을 바쳤던가. 자주와 민주, 통일을 위해 그들은 자기의 붉은 피를 거리에 뿌리지않았던가. 귀중한 생명을 바치며 그들이 애오라지 바란것은 개인의 치부나 명예가 아니였다. 정의와 량심과 진리였다. 그런데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던 맹약들은 어디로 가버렸는가. 어떻게 되여 조대풍과 같이 파쑈권력으로 민중을 교살하던 살인마들까지도 또다시 권력을 되찾겠다고 사람들을 기만하는 유세놀음을 벌리고 피묻은 칼을 다시 꺼내드는가! 이것은 참을수 없는 우롱이고 수치다!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틀어쥔 김현철의 가슴속에서는 피가 끓었다.

《최형, 고맙습니다. 이제야 원쑤가 누구인지 똑바로 알았습니다.》

최세진은 기대와 믿음이 가득 실린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우린 동지다! 우리는 이 땅에 또다시 피를 부르는 파쑈독재를 맞받아 끝까지 싸워야 한다!》

김현철은 강잉히 부르짖었다.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조대풍과 같은 악마들이 이 땅우에 어떤 죄악의 흔적을 남겼는지 반드시 밝혀낼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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