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3 장 어둠속의 동쪽

29

 

웬 사람이 쓰러져있었다.

차디찬 도로의 한구석에 모로 뒤엎어져있었다. 사위는 숨막힐 정도로 쥐죽은듯 괴괴했다. 어두운 밤거리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오가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 연희는 가슴을 조이며 다가갔다. 심장이 콩콩 높뛰였다. 무서웠다.

《이보세요.》

쓰러진 사람곁에 바투 다가가 손끝으로 살며시 흔들었다. 아무런 감촉도 없었다.

귀를 강구었다. 숨소리조차도 들리지 않는다.

《이보세요, 어서 일어나세요.》

사내의 양복어깨를 쥐고 당겼다. 연희에게 등을 돌리고 모로 누웠던 사내가 털써덕 돌아누웠다. 어둠속에 온몸의 피가 깡그리 빨린듯 유난스레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훤칠한 이마며 우뚝한 코마루, 곱슬머리…

낯익은 얼굴이였다.

(현철씨?! …) 다시 찬찬히 보았다. 분명 그였다. 연희는 가슴이 후두둑 널뛰였다.

(왜 차거운 맨땅에 누워있어? 취한걸가?)

연희는 두손으로 사내의 가슴을 흔들었다.

《이봐요. 현철씨, 이게 대체 무슨 일이예요?》

별안간 끈쩍끈쩍한 감촉이 느껴졌다. 손바닥에 뭔가 끈기있는 액체같은것이 게발려있다. 이건 뭘가? 연희는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고 달빛에 비쳐보았다.

악!- 외마디소리를 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피였다. 사람의 붉은 피였다. 그제서야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 김현철이 누워있는 자리에도 그리고 자기의 발밑에도 온통 붉은 피로 가득하여 여간 스산하지 않았다.

《현철씨, 대체 무슨 일이예요? 누가 현철씨를 이렇게 만들었어요? 어서 깨요. 눈을 떠요!》

그의 몸을 흔들던 연희는 한시바삐 병원으로 후송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급히 그의 상체를 추켜세우고 어깨를 들이밀었으나 그는 맥없이 바닥에 미끄러졌다. 연희는 다급하게 허덕이며 그의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키고 자기의 연약한 어깨를 들이밀었다. 그런데 이번에도 스르르 미끄러져내렸다. 연희는 안타까이 웨쳤다.

《죽지 말아요. 제발… 이제 병원에 가면 돼요. 내 눈앞에서 제발 죽지 말아요. …》연희는 사납게 몸부림쳤다.

… 머리맡에서 불그레한 빛이 보였다. 탁상등이였다.

(여기가 어디지?)

활랑거리는 가슴을 누르며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기의 방이였다. 온몸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꿈이였구나! … 어쩜 꿈도 그렇게 끔찍한것을…)

연희는 두근거리는 심장부위를 슬며시 누르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매시시한 다리를 끌고 창문가로 다가가 문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불고 하얀 창가림이 날렸다. 그러나 가슴은 여전히 답답했다.

(꿈은 일종의 예언이라는데… 혹시 정말 무슨 일이 생긴건 아닐가? 아니야.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길수는 없어.) 하고 자체로 위안하며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해보았다. 그럴수록 더욱 불안스러웠다. 연희는 끝내 침대옆에 놓인 상두대우에서 자기의 손전화기를 찾아쥐였다.

(제발 다른 일이 없어야 하겠는데…)

심장이 또다시 고동쳤다.

(아냐, 단지 꿈일뿐이야! 꿈은 사실과 반대라고 했지.)

연희는 스스로 자기를 납득시키려 했다. 그런데도 자꾸만 불길한 예감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이제는 전화를 걸기조차 서슴어졌다. 김현철이 거리에서 깡패들에게 매를 맞고 병원으로 실려갔던것도 벌써 한달전의 일이다. 그런데 연희에게는 혹시 그가 어두운 밤거리의 어딘가에 또다시 피흘리며 쓰러져있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던것이다. 두어번 심호흡을 크게 하고나서 번호를 눌렀다. 긴 신호음이 갔다. 받지 않는다.

(신호가 가는데 왜 받지 않나?)

호흡이 빨라졌다.

(정말 무슨 일이 있는것 아냐?)

다시 호출했다. 그리고 또다시… 무려 다섯번만에야 《여보시오…》 하는 잠에 취한 소리가 들려왔다. 귀익은 소리였다. 현철이였다!

《왜 이제야 전화를 받아요?》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인 어조로 톡 내쏘고는 끊어버렸다. 어느새 뺨으로 눈물이 흘러내리는것을 깨닫고 놀랐다. 그는 손등으로 얼른 눈물을 닦았다. 김현철이 전화를 되걸어왔으나 받지 않고 아예 전원을 꺼버렸다. 활랑거리던 가슴이 차츰 진정되여갔다. 연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제서야 밤바람이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벌써 가을선기가 나는것 같았다. 어두운 하늘에서는 쟁반같은 보름달이 빛나고있었다. 창문을 닫고 침대로 돌아와 모포를 덮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다. 시계를 보니 아직 일어나기엔 이른 시간이였다. 눈을 감고 일부러 잠을 청하는데 걸죽한 묵같은것이 느물거리며 안개처럼 밀려오다가 그속에서 불쑥 밀차에 누운 웬 사람이 나타나 다가오고있었다. 시체처럼 축 늘어뜨린 팔, 누룩처럼 시누렇게 뜬 얼굴, 동공이 풀린 눈동자, 삐뚤어진 큰 입… 라주정신병원에서 본 문태석의 모습이다! 연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슴이 다시 활랑거렸다.

이전 같았으면 문태석《랍북미수》사건취재를 계속해서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였을 그였다. 하지만 라주병원에서 문태석의 모습을 보고나니 더럭 겁이 났다. 그래서 돌아올 때 연희는 이런 생각을 했다.

(진실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단지 현철씨가 다시 다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

하기에 그는 김현철의 두손을 모아잡고 애원했다. 더이상 이 사건을 추적하지 말자고! 그도 어쩔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었다.

《하고싶어도 길이 없습니다. 문태석은 이 사건의 진실을 증언할수 있는 유일한 증인이였습니다. 그런 사람이 저런 상태가 되였으니 이 사건의 진실은 영원히 암흑속에 파묻히고말았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니 연희씨도 너무 속쓰지 말기를 바랍니다.》

본인에게서 직접 들은 말이지만 연희는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침대에서 부스럭거리며 다시 일어나 전등을 켰다. 이른새벽이라도 잠을 자기에는 이미 코집이 틀렸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해야지 마음이 산란하여 도무지 견딜수가 없었다.

아침에 회사로 출근하였던 연희는 곧 보험가입과 관련하여 사람들을 만나려고 거리로 나섰다. 그가 대학을 졸업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한데는 일반회사원들과 꼭같은 리유가 있었다. 높은 경쟁률을 누르고 대학에 입학했고 졸업까지 하였으나 실업난이 최고조에 이르고있는 때여서 온전한 직업을 구할수 없었던것이였다. 《대학졸업은 곧 실업》이라는 류행어의 참뜻을 직접 실감하고있을 때 대학시절에 친했던 어느 동창생이 그를 보험회사에 소개해주었다. 그만하면 자기가 노력한만큼 대우를 받을수 있는 몇몇 안되는 직업중의 하나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여 들어갔지만 초기에는 정말 힘들었다. 《보험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아무리 입이 닳도록 진지하게 말해주어도 생돈 빼앗기는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의 박대에 홀로 눈물도 흘렸다. 처음에는 계약자와 눈도 못 맞추고 긴장하여 말까지 더듬던 그였지만 자신감을 키우자는 강심을 가지고 아침저녁 거울을 마주보며 혼자 《뻔뻔해지는 련습》에 여러달동안 몰두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날도 주택과 시장, 주식회사들을 다녔지만 겨우 두건의 계약을 간신히 성사시킨 연희는 점심시간이 퍽 지나서야 사무실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책상에 마주앉아 새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의 개인정보를 기입하고 다음날 계획까지 점검하고나서 밖으로 나왔다. 고달픈 하루였다. 그래서인지 쓸쓸하고 기분이 좋지 않아 거리 한복판에서 손전화기의 번호를 누르다가 와뜰 놀라고말았다.

(또 그 잘난 기자선생을 찾고있네?!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이때 불쑥 새벽의 불길한 꿈이 다시 떠올랐다. 연희는 무작정 현철의 신문사로 향했다. 그곳에 이른 그는 김현철과 같은 사회부에 있으면서 자기와 친분이 있는 한 녀기자를 불러냈다. 그리고는 김현철의 행적을 자기에게 얼마동안만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귀염성스럽게 생긴 녀기자는 쌍까풀진 눈을 생글거리며 물었다.

《왜 그 총각기자에게 관심이 있어요?》

연희는 두볼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인차 수습했다.

《아닙니다. 사실은… 현철씨가 제게 빚진게 있어서요.》

《빚이요? 그게 뭔데요? 그게 뭔지 알아야 나도 마음편히 도와줄수 있어요.》

상대는 일부러 심술을 부리는건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값을 올렸다.

《그게 뭐냐면… 저 보험과 관련된 일인데… 시간상 구체적으로 설명할수는 없지만 어쩌면 보험재판에 증인으로 나서주어야 할지도 모른답니다. 그런데 외국출장이라든가 아니면 먼 지방에 나가있다든가 하면 랑패거든요.》

재미있게 듣던 녀기자가 보험재판이라는 말에 약간 심중해지는것 같았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러니 김기자가 만약 외국출장을 떠나려고 한다면 미리 알려달라는거예요?》

《꼭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현철씨가 이 사실을 전혀 모르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두말할게 있나요. 누군가가 자기를 몰래 감시한다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러니 나도 부탁하는데 후날이라도 내가 김기자의 행처를 알려주군 했다는걸 이야기하면 안됩니다.》

《그런 일은 없을테니 마음놓으십시오.》

녀기자와 헤여진 연희는 밤거리를 타박타박 걸었다. 뻐스를 타고 갈수도 있었으나 연희는 기분이 심란하여 걷고싶었다.

고개를 수그리고 걷는 연희의 속은 개운치 않았다.

(내가 왜 신문사까지 갔던걸가? 또 녀기자는 왜 만났지? 보험재판이요, 증인이요 하는 구차한 구실을 왜 댔고…)

참으로 모를 일이였다. 까닭없는 충동으로 여기로 달려왔다. 녀기자를 만나 괴이한 부탁을 하고 돌아서서야 자기의 행동을 다시 돌이켜보게 되였다.

연희는 걸음을 멈추고 곰곰히 따져보았다.

(내가 왜 거짓말까지 한걸가?)

언제나 주도세밀한 행동은 연희가 가지고있는 장점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었다. 무슨 일을 한가지 해도 반드시 목적과 계획을 세운 후 몇번을 따져보고서야 실행에 옮기군 하였다. 보험회사의 직원이라는 직업적인 의심이 이런 장점을 보태준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좀전의 행동은 실로 뜻밖이였다. 감성적인 충동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뿔리 움직인것이였다. 연희는 자기가 고수해온 고유한 생활리듬이 현저히 파괴되고 모든것이 뒤죽박죽이 되여버린것 같았다.

(대체 나한테서 무슨 일이 일어난걸가?)

연희는 랭정하게 흘러간 시간들을 따져보았다. 아마도 이런 심리가 생겨나기 시작한것은 김현철이 병원에 입원하였던 때부터인것 같았다. 그때 머리에 붕대를 감고 팔에 키브스를 한채로 불편하게 잠든 그가 저려드는 통증에 어린애처럼 신음소리를 낼 때마다 옆에서 밤새 간호하던 연희는 쏘는듯 한 아픔을 내심 함께 느꼈다. 그때는 단지 동정과 련민때문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어느새 그가 연희의 가슴속에 살며시 들어와 돌부처처럼 든든하게 틀고앉은것이다.

연희는 가슴이 활랑거렸다. 별안간 거리의 간판들에 온통 김현철의 얼굴들을 새겨놓은듯 한 환각이 일었다.

(왜 이러지? 내가 왜 이러는걸가?)

연희의 심장은 금시 바깥으로 튀여나올듯 콩콩 높뛰였다. 그 소리가 곁에서 무심히 지나가는 행인들의 귀에도 들릴것만 같았다. 연희는 능금알처럼 빨갛게 익은 얼굴을 수그리고 총총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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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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