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28

 

새벽녘에 춘천에서 서울로 향한 뻐스에 몸을 실은 라경숙은 흘러가는 차창밖을 흥심없이 바라보고있었다.

(내가 현철이와 만나지 못한지 대체 얼마나 되였던가? 마치 일년은 더 지난것 같이 느껴지누나.)

라경숙은 속으로 혀를 찼다. 친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전후사연을 자세히 알아본 다음에 현철에게 전해주는것이 좋겠다는 강정웅신부의 충고를 새겨들은 그는 그날로부터 지금껏 현철과 만나지 않았다. 전화통화도 부러 피해왔다. 혹시 실언이라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한편으로는 갓난 현철이가 강보에 싸여 새 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살라는 편지와 함께 성당의 문밖에 놓여있었다고 지어낸 거짓말이 속에 걸렸다. 만일 라경숙이 현철의 출생으로부터 시작하여 이날이때껏 친부모에 대해 말해주지 않은 사실을 그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나올가? 그 충격이 어떤 돌발적인 일들을 빚어내지는 않을가? 상상하기조차도 두려웠다. 그는 자기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것을 말해주었을 때 야밤삼경에 문을 박차고 뛰여나가 근 한해동안이나 거지꼴로 헤매이면서도 되돌아오지 않던 어린 현철의 모습을 너무나도 아프게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그리고 그 추억은 영원히 녹지 않는 차거운 얼음장이 되여 그의 심장우에 얹혀있었다.

그러나 과거의 그 얼음같은 추억보다도, 미래의 두려움보다도 더욱 간절한것은 그리움이였다. 이 몇주동안 라경숙은 밤새도록 현철의 얼굴이 눈앞에 얼른거려 참을수가 없었다. 그의 명랑한 목소리와 깊은 숨소리, 도도한 표정이 들리고 보일것만싶어 몇시간씩이나 전화기가 닳도록 쓸어만졌다. 백년 묵은 감질이라도 만난듯싶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에 식음을 전페하다싶이 하고 시도 때도 없이 현철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러다 끝내 숨어서 얼굴이라도 보아야 살것 같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꼭두새벽에 서울로 오고있는것이였다.

뻐스주차장에 내린 라경숙은 여전히 조급한 심정으로 신문사로 향했다.

막연한 기대를 안고 두시간이 넘도록 신문사정문 건너편에 있는 다방 창가에 앉아 출근하는 기자들의 모습들을 살펴보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김현철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지방출장을 간걸가?)

고개를 기웃거리던 라경숙은 끝내 신문사로 찾아가 물었다. 그런데 접수실에서는 현철이가 며칠전에 크게 상해서 병원에 입원했다는것이 아닌가! 라경숙은 정신없이 접수실 직원이 알려준 병원으로 황황히 달려갔다.

(제발, 제발 현철아! 무사해다오.)

병원에 당도하여 입원환자들의 명단에서 김현철이라는 이름을 찍자 좀전에 퇴원을 하였다고 알려주었다. 아쉬운대로 마음을 좀 가라앉힌 그는 현철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의사를 만났다. 그런데 의사는 더 놀라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폭행을 당한 상처가 채 완쾌되지 못했는데 환자가 너무 우겨서 퇴원조치를 취했다는것이였다.

라경숙은 가슴이 찢어지는것만 같았다.

(누가? 어느 괘씸한 놈들이 그런 몹쓸짓을 했단 말인가!)

분노와 안타까움에 눈물로 손수건을 푹 적시며 현철의 하숙집으로 달려온 그는 문을 열었다.

침대에 누워있던 김현철은 깜짝 놀라 서두르며 일어나려고 했다. 애써 웃음을 지으려고 했으나 가슴뼈를 울리며 밀려오는 통증에 보기 흉하게 이그러졌다. 피를 많이 흘렸는지 해쓱한 얼굴과 조갈든 입술이 마냥 라경숙의 가슴을 발가내는것만 같았다.

《아이구, 이게 어찌된 일이냐? 무슨 일이야? 대체 어떤 사탄의 무리들이 이런 몹쓸짓을 한거냐?》

라경숙은 한달음에 김현철을 부둥켜안았다. 다친 팔을 잡는 바람에 김현철은 어쩔수없이 신음을 토했다. 그 소리에 라경숙은 와뜰 놀라며 한발자국 물러섰다. 눈을 크게 흡뜨고 현철의 이모저모를 살피던 그는 부르짖듯이 웨쳤다.

《내 신문사에도, 병원에도 들려 다 듣고 오는 길이다. 그래 누구냐? 널 이 꼴로 만든 놈들이? … 내 절대로 용서치 않으마!》

분노의 시퍼런 불길이 펄펄 이는 그의 눈빛과 격노한 표정은 입고있는 검은 수녀복과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김현철은 아무런 대답이 없이 다정스레 웃을뿐이였다.

《밥은 먹었니? 뭘 먹고싶냐?》

라경숙은 그의 얼굴에서 눈길을 돌리다가 침대옆의 탁자우에 놓인 낡은 신문들을 발견했다.

《아니, 이런 몸상태로 또 일을 벌리는거냐?》

혀를 차며 신문을 집어들던 그는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듯 와뜰 놀랐다.

《이게 어떻게 여기에?! …》

자기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사람의 얼굴을 발견했던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현철의 친아버지 김지우였다. 죄수복의 가슴에 붙은 수인번호는 너무도 또렷했다.

《대체 이게 왜 여기에?! …》

라경숙은 신음을 토하며 중얼거렸다. 삽시에 혼신의 기운이 몸밖으로 깡그리 빠져나간듯 맥없이 나른해졌다.

김현철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리는 그의 표정을 놀랍게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그럼 어머니도… 알고계셨습니까?》

라경숙은 그 목소리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 문태석을 만나고 돌아온 후 김현철은 마음이 뒤숭숭하여 더이상 병원침대에 누워있을수가 없었다. 그래서 퇴원수속을 마친 후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로부터 얼마 안되여 신문사의 부장이 병문안을 왔다.

《아직 몹시 아플테지?》

부장은 누런 금이발을 드러내보이며 물었다. 그리고는 제손으로 직접 과일을 깎아 권하면서 물었다.

《대체 이런짓을 한게 어떤 녀석들이요?》

《저도 모릅니다.》

《참, 괘씸한 놈들 같으니. 사람을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부장이 혀를 끌끌 찼다.

《병원에 좀더 있을게지 왜 퇴원했소?》

《갑갑해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그러다 몸상태가 악화되는건 아니요?》

《괜찮습니다. 며칠후엔 출근할수 있습니다.》

《그래, 빨리 출근을 해야지. …》

잠시 머뭇거리던 부장은 자기의 가방을 끄당겼다.

《그런데 그전에 김기자가 해명해야 할 사건이 하나 있소.》

부장은 가방에서 오래된 신문을 꺼내들었다. 그가 펼쳐보이는 지면에는 공판기록과 함께 죄수복을 입은 사나이의 사진이 실려있었다.

(이건 뭐야?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다는데 새로운 기사거리를 맡으라는건가? 부서안에 기자가 나 혼자도 아닌데…)

부장은 그의 속생각 같은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웅얼거렸다.

《자네 69년 겨울에 태여났다고 했지? 이 공판도 그해말에 있었소. 본명은 김지우, 일본에서 잠입한 이북간첩으로 판결되였고 인차 사형을 당했소. 들어본적이 있소?》

김현철은 묵묵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겠지.》

부장은 긍정인지, 부정인지 모를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말이요. 이 사람이 김기자의 친아버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나타났소.》

한순간에 얼떠름해진 김현철이 물었다.

《어느 김기자말입니까?》

《음- 하긴 신문사에 김씨성을 가진 기자들이 많기는 하구만. 그게 어느 김기자인가 하면… 바로 지금 내앞에 누워있는 당신이란 말이요.》

《예?!》

김현철은 다급히 몸을 일으켜세우다가 주춤했다. 가슴이 결리면서 못견디게 아파났던것이다. 손으로 아픈 부위를 슬며시 누르며 그는 허허 맥없이 웃고말았다.

《무슨 롱담을…》

《롱담?! 내가 지금 롱담을 하는것 같아?》

《그게 무슨 황당한…》

《황당하다?! 그래, 김기자의 심정은 알만 한데… 이름도 생전처음 들어본다니 참 황당하겠지.》

부장도 쓰겁게 웃었다.

《나도 처음엔 황당했소. 그런데 문제는 이 황당한걸 증명할 사람이 자네뿐이라는거요. 신문사에 이북간첩의 씨종자가 사회전반을 혼란시키는 적색선전을 하고있다는 신고가 들어왔소. 신고자는 증거도 있다면서 김기자를 리력기만죄로 당장 경찰에 넘겨야 한다는거요. 그가 주장하는 증거가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오. 그러나 중요한건 이 신고로 해서 인사과가 발칵 뒤집혔다는거요. 불순한 리력을 기만한 자네를 당장 인사조처하겠다는걸 그동안 신문사에 기여한 공로와 중환자인 점을 고려해서 치료가 끝날 때까지 그리고 진실여부가 정확히 밝혀질 때까지 당분간 미루기로 했소. 그러나 이건 림시조치요. 만일 이 사실을 다른 신문사에서 알고 떠들어대면 그땐 어쩔 도리가 없지. 그러니까 매사에 조심하면서 은밀하게 알아보오. 요는 김기자의 진짜 친부모를 정확히 알아내는것이요.》

가뜩이나 번거로운 김현철의 심중에 폭탄을 던지듯 하고나서 부장은 떠나갔다. 김현철은 침대에 누워 천정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친부모가 나타나다니? 그것도 지금 이러한 때에?!)

어이가 없었다. 그가 30여년을 살아오도록 여적 못 찾은 친아버지였다. 그런데 부장이라는 량반은 밑도 끝도 없이 다 닳아빠진 옛날 신문 한장을 달랑 들고 와서 너의 친아버지니 옳은지 그른지를 며칠내로 증명하라는 판이다. 이건 꼭 서푼짜리 연극의 한 대목 같았다.

한동안 억이 막혀 천정만 멀뚱멀뚱 올려다보던 김현철의 눈길이 부장이 놓고 간 신문의 흐릿한 사진으로 향했다. 과연 이 사람이 내 아버지인가? 아니다! 그럴수가 없다. 그 신고자라는 녀석은 나도 모르는 친아버지를 어디서 찾아서 무슨 근거로 확인했다는것인가? 이런것을 두고 도발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김현철은 자기가 성당에 버려졌다는 그날을 어쩔수없이 자기의 생일로 기억하고있었다. 그는 그날과 공판날자를 비교해보았다. 신문에 찍힌 날자를 보면 그가 교회의 대문가에 버려질 당시에 이 사람은 구속되여있었을것이다. 만일 이 사람이 내 아버지라고 해도 그때 당시로서는 나를 성당에 내버릴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 문제는 신고자다. 그는 진실의 여부를 알것이다. 누구일가? 부장도 인사과도 아직은 그 신고자의 신분을 확인하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이런 때 신원불명의 신고자가 나타난것일가? 《간첩》사건을 취재하는 나를 《빨갱이간첩》의 씨종자라고 몰아대는 리유는? …

이런 생각으로 침대우에서 궁싯거리고있을 때 느닷없이 라경숙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바람에 신문을 미처 치우지도 못했던것이다. 그런데 놀라운것은 라경숙의 류다른 기색이였다. 처음엔 신문사에 들려온다기에 거기서 얻어들었는가 했는데 가만 보니 그런것 같지 않았다.

라경숙의 돌발적이며 과민한 반응은 김현철에게 있어서 실로 뜻밖이였다. 하지만 그가 의아해있는 사이에 라경숙이 서서히 무너져내리듯 주저앉았다.

《어… 어머니!》

제꺽 부축이라도 하려고 상한 팔을 내밀었으나 이미 때늦은것이였다.

《어머니!》

황급히 침대에서 내려 라경숙의 몸을 간신히 부둥켜안은 김현철은 어쩔바를 몰랐다. 눈을 감은 라경숙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있었다. 숨결도 고르롭지 않았다. 김현철은 손발을 부지런히 주물러주는 한편 계속 소리쳐불렀다.

이윽해서야 겨우 피여난 라경숙은 얼나간 표정으로 넋없이 앉아있었다. 그러다가 별안간 곡성을 터뜨리며 부르짖었다.

《용서해라, 현철아! 이 어미를 부디 용서해다오! 너에게 죄를 졌구나. 하늘도 정말 무심하지.》

김현철은 몽둥이에 후려맞은듯이 머리가 뗑해졌다.

(대체 무슨 일인가? 이게 무슨 일이야?)

그의 눈길이 바닥에 떨어진 신문에 꽂혔다. 사진속의 죄수복을 입은 사나이의 얼굴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호소하듯이 올려다보고있었다. 눈부신 섬광이 그의 머리속을 갈랐다. 온몸에 짜릿한 경련이 일었다. 김현철은 다친 팔이 저려나는것도 감감 잊은채 라경숙을 와락 그러안으며 소리쳤다.

《어머니,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사람은 누구예요? 어머니는 알지요? 이 사람을 알지요? 그렇지요? … 이 사나이가 내 아버지란 말입니까? 진짜 이 사람이 제 친아버지입니까? 예?》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된 라경숙은 흐리멍텅한 동공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끝내 정신을 잃고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누구도 몰랐다. 김현철은 무서운 악몽속을 헤매이고있었다. 꼭 미칠것만 같았다. 라경숙은 강정웅에게 급히 와달라는 전화를 하고나서 김현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또다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김현철은 그를 부축여 의자에 앉히고는 계속 가드라드는 손을 열심히 주물렀다. 하얗게 질린 그 얼굴앞에서 과거의 일들을 물을 용기가 좀처럼 나지 않았다. 그래서 속이 거멓게 타들었고 애간장이 말랐다.

(김지우! … 신문속의 이 사나이의 이름을 김지우라고 했다. 그가 과연 나의 친아버지인가?)

강정웅이 도착하자 라경숙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마주 가더니 그의 손을 잡으며 펄썩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그를 간신히 진정시키고난 강정웅은 김현철과 마주앉았다.

《대체 무슨 일이냐?》

강정웅이 침착한 어조로 물었다.

김현철은 어떻게 말을 떼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말없이 부장이 놓고 간 신문을 내밀었다. 강정웅의 눈이 커졌다. 마침내 강정웅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미안하구나. 이미전에 말해주었어야 하는건데… 사실 나도 일이 이렇게까지 번질줄은 정말 몰랐다.》

김현철은 비로소 과거사의 전말을 속속들이 알게 되였다. 그야말로 땅이 푹 꺼져내리는듯 한 체념의 순간이였다.

그는 머리가 텅 비여버리는것만 같았다.

《그러니… 이 신문의 내용은… 그대로 사실이라는거군요.》

강정웅이 괴로운듯 갈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도 얼마전에야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되였다. 경찰에서 별안간 너의 친부모들에 대해 조사한다면서 라경숙수녀님을 만나고 간 후 그에 대한 부탁을 받고 전후사연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워낙 30여년전의 일이라 생존해있는 관련자들도 만나기 어려웠고 재판문건들도 엉망이여서 헐치 않았다. 하지만 물러서지 않고 완강히 노력한 끝에 비교적 자세한걸 알게 되였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만 내가 파악한바로는 판결내용이 사실과는 전혀 달랐다. 그 사건을 변호한 사람도 너의 아버지는 무고한 사람이라고 했다. 사형선고를 받고 상고를 준비하면서 네 아버지는 변호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누나. 자기는 도꾜, 빠리, 워싱톤, 베를린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녔는데 평양만은 가보지 못했다고, 그런데 평양을 다녀왔다는 터무니없는 죄명을 쓰고 사형판결을 받고보니 참으로 원통하다고, 만일 기적이 일어나 석방되여 나가게 된다면 만사를 제치고 평양부터 다녀오겠다고 말이다.제 나라, 제땅인데도 가볼수 없고 설사 가본대도 죄가 되여 죽어야 하는것이 민족분렬의 이 땅에서 태여난 사람들의 숙명이라고 가슴을 치면서 한 말이 네 아버지의 마지막유언이 되였다. 상고는 기각되였고 인차 사형이 집행되였으니까.》

김현철은 까딱도 하지 않고 바위처럼 굳어져있었다. 강정웅은 그의 한쪽어깨에 손을 얹으며 일렀다.

《내 아들아, 수녀님을 원망하지는 말아라. 그는 너를 지켜주려고 했을뿐이다.》

《…》

김현철은 처연한 눈길로 두사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물은 나오지않고 가슴만 화약의 불심지마냥 타들어가고있었다.

《전 지금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단지 자기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어이하여 전 남과 북으로 분렬된 이 땅에서 태여났습니까?》

피타는 분노의 목소리였다. 김현철의 가슴속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김춘옥이라는 불쌍한 녀인만이 아닌 이 땅에서 원통하게 숨진 모든 령혼들의 피의 절규가 넘쳐나고있었다.

 

서산너머로 지는 태양은 피같은 잔광을 대지에 휘뿌리고있었다. 김현철은 그 빛발을 밟으며 공동묘지로 오르고있었다. 그곳으로 통하는 길은 유난히도 잡풀이 무성했다. 크고작은 돌들이 배겨있어 우둘투둘한 길을 걸어가는 그의 걸음은 무거웠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묘비없는 봉분들사이를 지난 그는 몇걸음 떨어져 외로이 있는 펑퍼짐한 무덤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그렇게 애타게 찾던 아버지가 여기에 누워있는것이였다.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을 당한 뒤 그 시신을 넘겨받을 사람조차 없어 이곳 한귀퉁이 언땅에 대충 거적때기에 싸여 묻혔다고 하였다. 잔에 술을 부은 그는 큰절을 올리고나서도 오래도록 땅에 엎드려 서럽게 흐느꼈다. 내막을 알게 된 첫 순간에는 몰랐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어디서 샘솟는지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그가 자기의 얼굴에 기초해서 콤퓨터화상전문가에게 부모의 모색을 형상한 사진을 제작해줄것을 청탁한것은 그들을 찾을수 있다는 희망에서 출발한것이였다. 그는 결코 자기의 부모들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성을 물려준 아버지는 묘주도 모르는 이 쓸쓸하고 외진 곳에 세상의 버림을 받아 누워있고 자기에게 젖도 제대로 물려보지 못한 어머니는 춘천의 성당주변 공동묘지에 잠들어있다는 사실에 그는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어쩌면 피덩이인 나 혼자 남겨두고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무정한 길을 떠날수 있단 말인가!

고아원의 철문안에서 한적한 외통길을 내다보며 하루해가 넘도록 지루감도 잊고 일년을 하루맞잡이로 손꼽아 기다리던 아버지와 어머니건만 이제 더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통분했다. 무덤앞에 퍼더버리고 앉은 김현철은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일어설념을 몰랐다. 피빛으로 가득찼던 하늘도 이제는 어두워지고 태양은 풀벌레들이 기여다니는 공동묘지에 마지막잔광을 던지고 사라져버렸다. 어둠속에 앉아있는 그는 마치 키낮은 망두석같아 보였다. 울분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마음이 다소 진정되기 시작했다. 그는 신문에 실린 사진속의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33살… 참으로 젊은 나이였다. 지금의 자기와 같은 나이였다. 강정웅신부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애젊은 나이에 파쑈권력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생명을 잃어야 했던 아버지의 애석함이 가슴을 허벼왔다. 아마도 아버지는 눈조차 감지 못했을것이다. 아버지의 생명을 구원하고저 위험도 무릅쓰고 외로이 밤길을 떠났다가 시체로 나타난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가? 라경숙은 어머니의 시신을 처음으로 발견한 산지기의 말을 상세히 들려주었다. 산지기는 머리를 설레설레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하였다.

《내가 목격한바로는 말이지요. … 비록 경찰이 자살이라고 발표는 했지만 그게 아닌것 같다는겁니다.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고 하는데 추락한 사람치고는 누워있는 자세가 너무나 반듯했지요. 또 수십길이나 되는 높고 험한 곳에서 굴러떨어졌다는데 외모도 지내 단정해보였지요. 꼭 누군가가 시신을 날라다 놓은것이 분명했습니다. 하기사 이제야 지나간 일인걸… 그런다고 이미 저세상에 간 사람이 살아 돌아오겠습니까? 그나저나 눈이 채 녹기 전에 발견되여 그런대로 시신을 제대로 거둘수 있어 다행이였죠.…》

아리숭해보이던 모든것의 형체가 확연해지는것 같았다.

김현철은 30여년전의 성당 대문앞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공동묘지 무덤앞에 정말로 홀로 내버려져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부모들이 이곳에서 한많은 생을 마친 뒤 일본에서 산다던 얼마 안되던 친가, 외가켠 친척들은 모두 북으로 갔다고 했다. 결국 그는 외로이 이 땅에서 그토록 증오와 멸시의 대상인 알짜 《빨갱이》의 씨앗으로 남아있는셈이였다.

그의 머리속으로는 흘러간 세월과 세상을 경악케 한 비극적인 사건들이 캄캄한 어둠과 함께 밀려오고있었다. 군사쿠데타와 《반공국시》의 공약, 그 제물로 바쳐진 《하나일보》와 정영수사장, 그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저 하였던 아버지의 처형과 진상은페를 위한 어머니의 모살, 그리고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도 의혹의 《랍북미수》사건취재를 둘러싸고 이어지는 물리적 및 정신적위협… 한가지 새롭게 발견된것이 있었다. 1987년 《랍북미수》사건이 있은 그 해에 이 땅에서는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하나일보》사건이 일어난 1961년에는 권력을 찬탈한 쿠데타가 일어났었다. 그리고 아버지가 사형당한 1969년에도 《유신정권》의 연장을 위한 《3선개헌》을 전후로 하여 많은 《간첩단》사건들이 일어났다고 강정웅신부는 말했었다. 왜 《대통령》선거나 정국의 혼란사태가 일어날 때마다 이 땅에서는 《간첩》사건들이 그 어느때보다도 폭발적으로 일어나는것인가? …

어둠속에서 허옇게 형태로만 보이는 좁은 길을 따라가느라니 발이 걸채이기도 하고 바지가랭이에 묻어나는것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현철은 생각에만 옴해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다. 수십년전에 세상을 떠난 친부모에 대해 자식보다 더 잘 알고있는 신고자는 누구인가? 분명 정보기관 사람이거나 그와 련계된 인물이 분명했다.

문태석의 주변에서 한시도 눈길을 떼지 않고 인형마냥 계속 조종하고있는 미지의 사나이도 같은 부류일것이 틀림없다. 깡패들을 동원하여 그의 육신을 공격한것도, 때아니게 친부모를 로출시켜 정신적타격을 가해오는것도 모두 상대방을 깊이 파악하고 약점을 정확히 노린 치밀하고 세련된 모략공작수법이라고 할수 있다. 시기도 대상도 사건형태도 다르지만 일치되는 목적은 단 하나뿐이였다. 은페된 진실이 제대로 밝혀지는것을 가로막기 위해서였다.

김현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어둠속에서 너털웃음을 짓고있을지도 모를 그자들을 그려보았다.

이런자들의 음모에 의해 그의 친부모나 가엾은 김춘옥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횡사의 운명을 당했을것이다. 그 추악한자들은 년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오늘도 잔악한 죄행을 답습하고있다. 이제는 더이상 그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의와 량심을 지향하는 후대들이 또다시 피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쳐야 할것이다. 아버지도 그때문에 너무나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은것이리라!

김현철은 이를 사려물었다. 모략군들은 그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겼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자기자신도 그들을 통해 얻은것이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일보》사건과 아버지의 사형, 그때로부터 근 20년후에 있은 문태석의 《랍북미수》사건과 김춘옥의 살해… 이 모든것은 세대는 비록 다르지만 호상 긴밀한 련관성을 가지고있으며 거의 류사한 맥락으로 흐르고있다는것이였다.

그는 두주먹을 꽉 그러쥐였다.

(결코 나는 장선배님처럼 여기서 물러서지 않을것이다. 또 아버지처럼 진실을 품은채로 죽지도 않을것이다. 반드시 이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것이며 만천하에 고발할것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김현철은 격정을 누르며 사색을 집중했다. 검사는 모든 조사를 사건현장에서 시작하라고 했다. 사건현장이라면 홍콩이다. 그곳에는 시체를 발견한 즉시 현장을 조사한 형사들이 있을것이고 최초의 사건현장기록이 있을것이다. 제아무리 이곳에서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권세를 지녔다고 해도 외국에서는 잘 통하지 않을것이다. 그래, 기어이 홍콩으로 가서 그 기록을 찾아낼것이며 필요한 사람들을 만날것이다. 나의 일거일동을 은밀히 감시하며 결정적순간에는 생명까지 앗으려고 달려들지도 모를 보이지 않는 음모군들과의 대결에서 주저하지 않고 과감히 맞서 반드시 승리할것이다. 결코 이 일을 끝맺기 전에는 쓰러질수도 없으며 또 쓰러지지도 않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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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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