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26

 

김현철은 어슬녘에 집으로 뻗은 골목길에 들어섰다.

장필성을 바래주고 돌아오는 길이였다. 은연중 그를 대문앞까지 데려다주며 연희가 마중나오기를 기대했으나 아직 퇴근을 하지 않은 모양이였다. 그런대로 연희의 부탁을 성의껏 들어주었다는 생각으로 코노래가 흥얼흥얼 흘러나왔다. 어쩌면 래일 아침에 일찌기 연희가 고맙다고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른다. 왜서인지 그의 토라진 모습이 다시 보고싶어졌다. 싸움끝에 정이 들고 볼수록 정이 깊어지는 사람이 있다더니 김현철에게는 연희가 꼭 그런 처녀처럼 느껴졌다.

(지금 뭐나 하는지? …)

김현철은 아버지를 집까지 모셔왔다고 전화로 알려주고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다. 괜히 생색을 내는것 같아 어색했던것이다. 집으로 향한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어둠속에서 여러명의 사나이들이 불쑥 앞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저 지나가려니 했는데 그들의 손에 쥐여진 야구방망이며 쇠파이프 같은것들이 무심히 보이지 않았다.

김현철은 긴장한 걸음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어이구 선생님, 이제 오십니까?》

그들중에서 누군가가 시까스르는 투로 말을 건넸다.

김현철은 태연해지려고 애썼다.

《당신들, 날 기다렸습니까?》

《그럼, 이젠 지루해서 돌아가려던 참이였소.》

《사람을 잘못 본것 같은데…》

《허튼수작말아. 우린 사람을 잘못 보는 일이 없어!》

《그래도 모르잖아. 한번 확인해봐야지.》

개중에 누군가가 주의를 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뭐.》

김현철은 틈을 노렸지만 워낙 좁은 골목이라 빠질 길이 없었다.

《당신 명동일보사 김현철기자 맞지?》

한 녀석이 째진 눈귀로 노려보며 물었다.

김현철은 획 돌아서서 달아났다. 맞받아나가기에는 너무도 머리수가 많았던것이다. 이런 때에는 줄행랑이 최고였다. 그런데 뒤쪽에서도 한무리의 패거리가 나타났다. 그는 그제서야 왜 이 골목길에 들어선 뒤로 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고 별로 괴괴하였는지 리해가 되였다. 은밀하게 계획을 짜고 앞뒤로 협공해오고있다.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으니 어떤 일이 있어도 돌파해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달리던 속도그대로 각목을 들고 마주오는 사내를 걷어찼다. 옆의 녀석의 발길질을 잽싸게 피하였으나 역시 적수가 너무 많았다. 뒤쪽으로 달려온 어느 녀석의 발길질에 허리가 채웠다. 비칠거리는 순간에 앞쪽에서 굳센 주먹들이 날아들었다. 눈에서 불찌가 벙끗했다. 그는 주먹과 발길질과 방망이를 피해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쥐며 바닥을 뒹굴었다.

《그만, 그러다 죽이겠다!》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발길질이 뜸해졌다. 김현철은 정신이 혼미해지는 속에서도 그 목소리의 임자를 찾아보려고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종시 떠오르지 않았다.

 

날씨는 찌는듯이 무더웠다. 그러나 골프장의 푸른 잔디우를 걷는 한 무리의 사내들은 이 더위를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것 같았다. 운동복에 골프채를 손에 쥔 사나이는 조대풍 한명뿐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넥타이를 반듯하게 졸라맨 양복차림이였다.  첫눈에도 그들이 운동을 위해 이곳에 있지 않다는것이 알렸다.

골프채를 쥔 조대풍이 앞서가고 한걸음 뒤져서 리기철이 따라갔다. 그 뒤로 여럿이나 되는 사나이들이 마치도 병풍처럼 빙 둘러서서 따르고있었다. 몸을 수그리고 공을 겨누었다가 채를 힘껏 휘두른 조대풍은 아롱거리는 해빛속에 눈을 쪼프리고 포물선을 그으며 날아가는 작은 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뒤의 사나이들이 기다린듯 탄성을 올리며 박수를 쳤다.

조대풍은 골프채를 리기철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

《그러니 때가 되였단 말이지?》

《황금계절이 그야말로 가까이 박두했습니다.》

《정황은 어떤가?》

리기철은 《대통령》선거를 앞둔 정국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물론 조대풍의 심기를 맞추기 위해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말만 골랐다. 선거일이 가까와오면서 정당들과 후보들의 움직임이 헨둥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어떤 당은 《일일당원》이라는것을 만들어가지고 가상선거라는것을 펼쳐놓았는데 누구든 바라기만 한다면 하루동안 당원자격을 가지고 《경선》에 참가하여 투표를 할수 있다고 공시했다. 무직업자들과 소일거리를 찾는 사람들의 심리를 모아 당원수를 부쩍 늘이려는 속임수였다. 대가는 하루동안의 무상급식과 약간의 기념품이였다. 많은 돈을 뿌려 유명대학의 교수들로 선거참모진을 꾸려놓고 위기존망의 순간이 다가오고있는데 통치자가 아니라 옳바른 경영자를 선택해야 한다면서 자기측 후보를 대대적으로 선전하는 수법도 썼다. 아직 선거유세는 정식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선거전쟁은 막이 오른 상태였다.

이젠 조대풍도 출마를 선언해야 하였다. 조사된 지지률을 보면 모두 합해도 3. 8%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형세를 보면 인구의 70%이상이 《지지정당이 없다.》고 응답하고 그들중의 반수이상이 무소속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다고 하고있는 실정이였다. 절대다수 민중의 요구와 리익을 외면한채 민생은 망하건말건 아랑곳없이 당파싸움에만 몰두하고있는 《국회》와 후보들에 대한 민심의 정당한 판결이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조대풍은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여론조사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선거라는것은 알고보면 선택과 결정이였다. 모든것은 하루동안에 결정된다. 그 하루를 위해 조대풍은 이미 몇년동안이나 주도세밀한 작전을 펼쳐놓았던것이다.

이제 몇달후에 펼쳐질 선거라는 서로 물고뜯는 아비규환속에서 승자는 단연코 누구일것인가? 조대풍은 멋스럽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제는 결단을 보여주실 때입니다.》

조대풍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먼 하늘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정동쪽의 분위기는 어때?》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을 가리키는것이였다. 조대풍은 오래전부터 이 땅에서 권력을 쥐자면 미국의 지지가 있어야 한다는것을 뼈저리게 체험했다. 비록 정치경륜이나 대중의 인기는 없어도 미국만 손을 들어주면 만사는 오케이였다. 그자신이 오래동안 섬겨온 《각하》도 배운것은 살인기질뿐인데다가 광주라는 한개 도시를 《피의 목욕탕》에 잠그었어도 백악관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는 덕에 옥좌에 앉아 버틸수 있었던것이다. 아니, 그 《각하》만이 아니라 이 땅의 절대권력을 차지했던 력대 인물들이 다 그러했다. 때문에 조대풍도 《대선》을 앞두고 미국의 전적인 지지를 얻기 위한 공작에 절대적인 의의를 부여했던것이다. 해마다 정기적으로 미국에 건너가 백악관과 국무성, 국방성과 CIA의 고위관리들을 만나 의사교환을 진행하면서 친미반공으로 일관된 자기의 정치동향과 구상에 대해 부지런히 아뢰이는 한편 막대한 금전을 뿌려가며 인맥을 두터이 해온것이였다.

조대풍에게 만약 힘이 있고 든든한 날개가 있다면 바로 이것이였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을 등에 업으려는 《대선》후보가 그자신만이 아니라는것이였다. 이제 미국이 누구에게 손을 들어줄것인가? 이것은 미국의 한개 주나 다름없는 이 땅의 《대통령》선거에서 승부를 좌우하는 결정적인 관건이였다. 이곳에서 미국의 견해와 립장을 공식적으로 대표하는것은 미국대사관이였다. 하기에 조대풍은 어제도 자기의 오른팔인 리기철을 거기에 보냈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가고싶었으나 불과 며칠전에 다녀온 그로서는 미국대사관의 집사노릇이나 하라는 항간의 비난여론을 무시할수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지금 대통령선거에 나선 모든 후보들이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있으며 미국을 절대적으로 지지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내뱉던 구미여우같은 미국대사의 말이 저으기 마음에서 내려가지 않았고 불안스러웠다.

리기철이 속삭이듯 말했다.

《대사는 대통령선거에 개입할 리유가 없다고 발을 뽑는듯이 말했지만 분위기를 살펴보니 어르신을 적극 지지하는 눈치였습니다.》

조대풍의 긴장한 표정이 슬며시 풀리며 가벼운 미소가 번져갔다.

《그러니 이제 내가 준비할것은 뭔가?》

리기철은 즐겁게 노래하듯 말했다.

《우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서 후보자등록을 하셔야 합니다. 저희들이 필요한 서류들은 이미 준비해놓았습니다.》

조대풍은 고개를 끄덕이였다.

《그 다음엔 기자회견을 가지시게 됩니다. 그때 하실 발언문도 이미 준비해놓았습니다. 회견에서 왜 대통령이 되시려는지를 잘 설명해야 합니다. 물론 그게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매우 심중하게 말씀하셔야 합니다.》

《나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이 질문이 그렇게 중요한가?》

《왜 다른 사람이 아니고 반드시 내가 대통령이 되여야 하는가? 이 물음에 답을 준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물론 이 대답은 발언문에 이미 밝혀져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이전에 유럽에서 TV뉴스방송시간에 한 방송기자가 대선에 나선 한 상원의원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의원은 예견치 못했던 질문이라 당황하여 횡설수설했고 결국 대통령이 되겠다는 꿈을 초기에 접어야 했습니다.》

《그렇군. 나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

조대풍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리기철에게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알아? 내가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

《기자회견 발언문을 보시렵니까?》

《아니아니, 내가 왜 한사코 룡상에 오르고싶어하는지 자네가 아는가 말야.》

《그래야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가 수호되고 우리의 만년행복의 기틀이 든든해지기때문입니다.》

《듣기 좋군. 공약도 그렇게 되여있나?》

《보다 구체화하였습니다.》

《그래, 나는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가?》

다시금 중얼거리던 조대풍이 푸념조로 말을 이었다.

《이봐, 난 말이야. 권력의 2인자는 이미 되여봤어. 권력이라는게 뭔지 그 생리를 누구보다도 잘 알지. 이번에는 1인자가 되고싶어. 이 나라를 내 구미에 맞게 료리해보고싶거던. 날 구치소에 감금했던자들이 나와 같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나와 같이 아침과 밤을 보낸다는것이 도무지 참을수가 없어. 그녀석들에게 본때를 보여주어야지. 권력이 얼마나 무섭고 매력적인가를 뼈저리게 체험하도록 말이야. 내가 대통령이 되면 후임은 리기철이 자네야!》

그는 리기철의 등을 툭툭 두들겨주며 말했다.

《그럼 떠나보세.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가서 후보등록을 해야 한다지?》

그 순간을 천년만년 기다린듯 뒤의 사나이들이 두손을 번쩍 들고 와- 와- 소리치며 기세를 올렸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조대풍이 《대통령》후보로 등록하였다는 소문은 순식간에 파다하게 퍼져갔다. 식당과 차집, 시장과 뻐스정거장 등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는 의례히 조대풍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의 이름은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군부파쑈독재의 기억과 망령들을 되살리고있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도서련재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6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5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4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3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2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1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0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9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8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7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6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5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4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3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2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1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0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9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8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7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6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5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4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3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2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1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0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9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8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7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6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5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4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3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2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1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0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9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8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7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6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5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4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3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2회 두견새는 잠들지 않는다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