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25

 

이른아침에 일어나자바람으로 김현철은 장필성에게 전화를 하였다. 연희가 말한 그대로였다. 벌써 자기는 인천앞바다가의 어느 방파제우에서 낚시대를 드리우고있다는것이였다. 김현철은 대충 요기를 하고 길을 떠났다. 인천의 방파제입구에서 미끼를 사든 그는 장필성을 찾아 목을 길게 빼들었다. 형형색색의 모자를 쓰고 잠바를 걸친 사람들이 띄염띄염 서있었는데 낚시대를 드리우고 서로 등을 돌려대고있어 누가 누구인지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전화를 하니 방파제 맨끝에 있는 섬으로 오라고 하는것이였다. 섬에 당도하자 이번에는 등대가 있는 곳으로 올라오라고 하였다. 돌층계를 밟으며 등대턱밑까지 올라갔다. 나무그늘속에 있는 서늘한 돌의자에 장필성이 홀로 앉아 담배를 피우고있었다.

《그새 건강하셨습니까?》

《오래간만이군.》

《그런데 바다에 나왔으면 고기를 낚아야지 왜 이런데 앉아계십니까?》

《바다낚시는 처음이요. 그래서인지 고기들도 날 숫보는것 같아. 어디 한놈이라도 걸려들어야지.》

《그래도 기다려야지요. 낚시질의 매력은 기다림이라는데…》

김현철은 시치미를 따고 방파제에서 들은 풍월을 뇌이였다.

《어- 아는구만. 등에 진것두 꽤 좋은 도구 같은데?》

《웬걸요. 아래도리가 부실한 놈이 좋은 낚시대를 쓴다고 하더군요.》

김현철은 빙그레 웃으며 그의 곁에 앉았다.

《방금 여기로 오면서 훔쳐들은 말을 옮겨보았습니다. 실은 이 도구도 친구에게서 빌린겁니다.》

장필성은 김현철을 의아쩍게 다시 훑어보며 말했다.

《김기자가 여기에 나타나리라고는 생각 못했소.》

《며칠째 선배님을 만나지 못했더니 오늘따라 별스레 보고싶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전화를 했었습니다.》

《그뿐이요?》

《예.》

《정말 다른 일은 없소?》

《무슨 일이 따로 있겠습니까.》

《그래?! 그럼 다행이구만.》

장필성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러지 않아도 김현철이 갑자기 자기를 만나러 오겠다기에 한동안 긴장했었다. 그래서 등대가 있는 섬우로 올라온것이였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아니!》

《그러면 요 아래 작은 식당이 하나 있던데 거기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저도 아침을 설쳐서 그런지 출출합니다.》

《그래, 우리 오래간만에 같이 밥이나 먹기요.》

장필성이 기뻐했다.

김현철은 장필성의 낚시도구도 함께 둘러멨다.

바다기슭에 자리잡은 식당은 아직 이른 시간이여서 그런지 손님이 없었다. 그들은 온돌방에 앉은뱅이밥상을 놓고 마주앉았다. 김현철이 부어주는 술을 쭉 들이킨 장필성은 사기주전자를 잡고 그의 잔에도 부었다.

《달구만. 참 오래간만이야.》

장필성이 즐거워했다. 김현철도 기분이 좋았다. 탁한 서울공기를 마시다가 맑은 바다바람을 쐬서 그런지 씻은듯이 상쾌했다.

《나말이요.》

장필성은 세번째 잔을 비우면서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좀전에 김기자 생각을 했소.》

《정말입니까?》

《그럼!》

《좋군요. 자주 내 생각 해주십시오. 선배님이 날 생각할 때마다 불쑥불쑥 찾아오겠습니다.》

《그럼 나야 좋지. 그런데 아직도 그 취재… 계속하나?》

잔에 련이어 술을 따르며 장필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사를 썼습니다.》

김현철은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말했으나 장필성은 흠칫 놀라는 기색이였다.

김현철은 씁쓸히 웃었다.

《그런데 기각되였습니다. 온통 의혹과 정황뿐이라던지…》

장필성은 아무 말도 없었다. 그는 저가락만 만지작거리고있었다.

《부장은 증거물을 내놓으라는데… 혹시 선배님한테 뭐 증거가 될만 한게 없습니까?》

장필성은 머리를 저었다. 김현철은 지꿎이 물었다.

《그래도 이 사건을 초기부터 파고들었던 선배님이 아니십니까?》

《그땐 나도 의혹과 정황만 제시했었네.》

《그래요? 정말 아무런 증거도 못 쥐였었습니까?》

장필성의 눈길이 꼿꼿해졌다.

《그때문에 여기에 온게 아닌가?》

사실 비둘기마음은 콩밭에 가있다고 김현철은 온통 그 사건에 대한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침밥을 먹으면서도 자연히 그 곬으로만 사색이 뻗고있었다. 그런데 장필성의 눈길이 긴장해지는것을 보자 그 순간 연희의 토라진 얼굴이 총알처럼 날아오는것 같았다.

김현철은 호인같은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머리도 복잡하고 해서 하루 시간을 받았습니다. 좀 쉬려구요.》

《그럼 그냥 놀다 가지.》

《방파제를 좀 거닐지 않겠습니까?》

《그럴가?!》

식사를 마친 그들은 잔파도가 밀려와 물방울을 날리는 방파제를 거닐었다. 낚시군들은 멀리 떨어져있고 길게 뻗어간 방파제우를 거니는 사람은 그들 두사람뿐이였다.

시원한 바다바람에 온몸을 맡기고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느라니 장필성은 울적했던 기분이 얼마간 풀리는것 같았다. 그러나 곁에서 함께 걷고있는 김현철을 의식하자 다시 마음이 착잡했다. 나이가 서른을 넘겼다고는 하지만 아직 눈밑에 잔주름도 생기지 않은 청춘이다. 자기처럼 인생의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것도 아니다. 지나온 생보다 앞으로 맞이할 생이 더 길지도 모를 젊은이이다. 그런 청년이 자기가 두려워 포기한 그 사건을 밝히려 범의 아가리에 머리를 들이밀려 하고있다. 잠자는 호수에 폭풍이 몰아치면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 있는것은 반드시 수면밑으로 가라앉기마련이다.

(말려야 해. 젊은 혈기에 눈에 뵈는게 없을테지. 들어가라고 했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있었으나 장필성은 그런 자신이 타매스럽고 경멸스러워졌다. 그때 자기가 끝까지 그 사건을 추적했어도 10여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이 젊은 친구가 증거를 찾아 돌아치는 일은 없었을것이다.

이 친구가 아니라도 후날 누군가가 장필성이 대신 죽지 않는다는 담보는 없었다. 그러나 이 친구만은 아끼고싶었다.

《앞으로 어쩔려구?》

《뭘 말입니까?》

《그 기사… 이젠 포기했소?》

《아닙니다. 좀 미루어놓았을뿐입니다.》

《미루어놓았다?!》

《현장에 가보렵니다.》

《오래전 일이요.》

《그래도 현장에는 뭔가 남아있을거라고 귀띔하더군요.》

《누가?》

《어느 검사가요.》

《그도 이 사건에 대해 아오?》

《아니요.》

장필성은 긴숨을 내쉬였다.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새겨듣게. <유권무죄 무권유죄>라는 말이 있네. 권력이 있으면 무죄이고 권력이 없으면 유죄라는 말이네. 이건 봉건왕조의 오랜 세월을 넘어오면서도 오늘까지도 사라지지 않은 말이요.

흔히 언론은 왕관을 쓰지 않은 제왕이라고 하네만 그건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소. 일전에도 강조했지만 내가 겪은바에 의하더라도 이 사회의 언론은 권력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아. 권력자의 말을 듣지 않는 형리는 사형수를 겨누었던 칼에 제가 죽기마련이지. … 퍽 오래전에 나도 그런 시절이 있었소. 그땐 자네같이 물불을 모르고 정의와 량심을 부르짖고 거짓과 진실을 가리겠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지. 그런데 소리가 높은 사람부터 하나하나 사라져갔네. 그들의 죄는 하나뿐이요. 힘은 없으면서 권력에 도전한게 죄지. 진실을 알리겠다고… 그런데 그들이 밝히려고 한 작은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몇십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과거로 묻혀있다네.》

《선배님은 그 진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두려워서 입을 다물고있어서 그렇지.》

《그렇지도 않아. 나도 자네나 다를바없지. 내가 아는건 의혹과 정황뿐이요. 증거들은 모두 권력자들이 가지고있거나 이미 없애버렸으니까.》

장필성은 한숨을 토했다.

《사실상 인간은 하나의 생물체에 지나지 않는다네. 생도 한번뿐이지 두번다시 돌아오지 않아.》

그의 자포자기에 빠진 맥없는 소리를 듣노라니 김현철의 젊은 피가 달아올랐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바다를 향해 긴 휘파람을 불며 시구절을 외웠다.

《육체는 사멸되여도 그 정신 불멸하나니…》

《그만하게!》

장필성이 노여운 어조로 말했다.

《늙은이의 충고를 명심하게. 그 무엇도 자네의 생명보다는 중요하지 않네.》

《제 생명이 어떤겁니까?》

별안간 김현철이 되물었다.

《선배님이 제 생명을 마음대로 규정하십니까? 그럴 권리를 가졌습니까? 한 소년이 날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죽자고 던진게 아니라 살자고 던졌습니다. 그애가 애오라지 바라보며 헤염쳐간게 무엇때문인지 압니까? 썩고 쪼그라든 양배추 한쪼각때문입니다. 왜 소년은 그 양배추쪼각에 자기의 생명을 걸어야 했습니까? 누가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대체 생명이란게 뭡니까? 누군가는 자기가 살자고 갓난아이를 성당에 버렸다고 합니다. 과연 어떤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생명을 희생시킬수 있다고 봅니까? 생명의 가치를 천평에 올려놓고 잴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만하지 못할가?》

장필성은 서운했다. 그래도 김현철을 생각해서 조언을 준것인데 그는 예상외로 격한 반응을 보였던것이다.

김현철은 열이 뜬김에 내처 물었다.

《그럼 간단히 묻겠습니다. 선배님은 지금의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나말인가?》

갑자기 장필성은 오한이 나는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축 처진 눈시울을 들어 김현철을 보았다. 빛이 바랜 그 눈동자에는 40년에 가까운 언론생활의 고뇌가 그대로 비껴있는듯싶었다.

(대체 나의 인생을 어떻게 규정할수 있을가?)

장필성은 그의 돌연적인 물음에 속이 후들후들 떨려났다. 무릎관절에 남아있던 기운이 깡그리 빠져나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을듯싶었다.

(나는 누구인가?!)

장필성은 먼바다로 눈길을 돌렸다. 흘러가버린 평생의 나날들이 머리속을 스쳤다. 철없던 유년시절과 소년기 그리고 탐구와 항거의 대학시절… 머리에 흰 천을 동여매고 동료들과 어깨를 겯고 독재타도를 웨치며 거리를 누벼가던 그 청춘시절… 가슴에 흉탄을 맞고 붉은 피를 내쏟으면서도 손에 쥔 포석쪼각을 넘겨주며 끝까지 싸워달라고 당부하던 친구의 마지막절규! 리승만이 하야한 소식을 듣고는 승리의 만세를 부르던 그날의 광경…

그때는 정녕코 몰랐다. 장필성자신의 운명이 이렇게 나약하고 무맥하게 흘러갈줄을 진정 알지 못했다.

(난 다 산 늙은이다. 인생의 시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다. 정말 내 소중한 인생을 허무하게 마무리할수는 없지 않는가!)

그 순간 장필성은 김현철을 돕고싶었다. 그토록 위험하다고 말려도 끝까지 진실을 밝혀내려는 그의 의지가 돋보였고 마음에 꼭 들었다. 이 젊은이와 손잡고 앞으로 내달린다면 당장 죽는대도 지금과 같은 후회는 없을것 같았다.

(그래, 얼마 남지 않는 인생이다. 그 짧은 시간만이라도 후회가 없게 살아야 한다. 나의 죄많은 인생을 반성해야만 한다!)

장필성은 마음을 굳히려 했다. 그러나 이 순간 낚시대를 쥐여주며 활짝 웃던 연희의 아릿다운 모습이 눈에 밟혔다.

가슴속에서 애써 쌓았던 의지의 탑이 졸지에 와르르 무너져내리는것 같았다.

(아니다. 아니다! 나에게는 딸이 있다. 나이만 먹었을뿐이지 아직 철부지어린애같은 딸… 시집조차 가지 못한 나의 딸… 의지가지할데 없는 그 불쌍한 딸! …)

장필성의 주름진 얼굴우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김기자, 미안하네.》

그의 목소리는 떨렸다.

《난… 나자신이 추하고 경멸스럽소. 나자신의 나약성에 정말 실망할뿐이요. 끝없이 증오스럽소.》

김현철은 걸음을 멈추고 굳어진듯이 서있는 장필성의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바다바람에 흰머리칼을 흩날리는 그 모습이 별로 초췌하게 느껴졌다. 이미 장필성의 표정에서 만감이 교차되는것을 포착한 그였다. 어떤 비장한 기색이 비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끝내는 처음보다 더 늙고 처량한 모습으로 돌아와버렸다. 김현철은 서글펐다. 일종의 기대를 품었었기에 실망도 컸던것이다.

《김기자, 부디 조심하고… 생을 아끼라구.》

장필성은 등을 돌려댄채로 쓸쓸히 마지막말을 하였다. 김현철은 입술을 깨물었다. 죽은 정승이 산 개만 못하다는 속담이 있지만 그래도 살아도 죽은것만 못한 삶이 있는가 하면 죽어도 살아있는 그런 존경받는 생도 엄연히 존재한다. 과연 인간의 존재나 가치를 생의 부귀영화나 그가 산 세월의 길고 짧음으로 잴수 있을가.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인간은 영원히 인간으로 남아있게 되는가. 김현철은 속으로 의지를 가다듬었다.

(선배님, 전 선배님처럼은 못삽니다. 정말이지 인생을 후회하며 살고싶지는 않습니다. 한번밖에 없는 나의 생! 자신에게도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살겠습니다. 지금의 선배님처럼 인생을 후회하지는 않을것입니다.)

시원한 바다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김현철의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씻어내는것 같았다. 그는 어깨를 쭉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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