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17

 

김현철은 김춘삼의 집에서 하루밤 묵고 다음날 떠났다.

김춘삼은 신경통으로 잘 걷지 못하는 안해를 부축하고 대문밖에 나와서서 손을 저어주었다. 가식을 모르는 솔직한 사람들이 그처럼 억울한 불행을 당한것이 마음에 맺혔다. 세상에 이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으랴싶기도 했다. 김현철은 떠나기 전에 집주인에게서 넘겨받은 사진에서 본 김춘옥의 얼굴을 머리속에 떠올렸다. 김춘삼은 그 사진은 누이가 서울에서 뻐스차장을 할 때 찍은것이라고 하면서 사진속의 한 녀인을 서울의 어느 식당에서 본적이 있다고 했다. 갑자기 전화기의 호출음이 울렸다.

연희였다.

《지금 어디 있어요?》

《무슨 일입니까?》

《보험재판과 관련해서 실무면담을 해야겠어요.》

잠시 머리를 굴리던 김현철은 자기가 가고있는 목적지를 알려주었다.

… 강서구의 갈비집은 서울의 흔하디흔한 음식점들과 마찬가지로 꼭같은 일과로부터 시작된다. 집세라도 뽑아볼가 하여 이 음식점에 취직한 한명숙에게는 하루 12시간의 고역에 시달려야 하는 고달픈 일이였다. 남편이 운영하던 작은 회사가 사기를 당해 부도가 난 후 한동안 쫓기는 신세가 되자 하는수없이 찾아온 곳이 여기였다. 영업시간이 되기 바쁘게 기다렸다는듯이 음식점의 앞뒤문이 활짝 열렸다. 문에 매달린 종이 쉴새없이 울렸다. 직원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손님은 별로 없는데도 직원들을 잠시도 가만 놔두지 않고 정신없이 들볶는것이 주인의 경영방식인듯싶었다.

《걷지 말고 뛰여다녀.》

이 말은 주인의 입에 버릇처럼 붙어있었다.

어느 틈에 주방안에 나타난 주인이 몇명 되지도 않는 접대원들을 빙 둘러세우고 《손님이 들어온다싶으면 인사를 크게 해야지!》라고 하더니 큰 목소리로 《어서 오십시오!》 하고 시범을 보였다. 일단 식탁에 앉은 손님에게는 최고의 만족을 주어 단골손님을 늘여야 한다는것이 그의 주장이였다. 한번에 한가지 일만 해서는 주인에게서 욕을 얻어먹기가 일쑤였다.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날라가면서 동시에 다른 식탁의 손님이 요구하는 커피도 접대해야 했다.

주방안은 고래고래 지르는 소리, 식탁종이 울리는 소리,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에 부산스러웠다. 모르는 손님들은 음식점이 흥성거린다고 착각하기 십상이였다.

식사를 끝낸 손님들이 나가자 잠시 허리를 펴는가 했는데 웬 손님이 찾는다고 알려주었다. 홀로 나가보니 거의 텅 빈 식사실안의 창문쪽 식탁에 낯선 청춘남녀가 앉아있었다. 한명숙이 가까이로 다가갔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말에 열중하고있었다. 무슨 보험금이요, 재판이요, 증인이요 하는 말이 오가고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를 찾아왔습니까?》

한명숙이 다가가자 남자가 일어서며 인사했다.

《혹시 사람을 헛갈린게 아닙니까? 저에게 무슨 취재거리가 있겠다구요.》

순간 그는 혹시 자기 남편의 사업과 관련한 취재가 아닌가싶어 긴장해졌다.

(뿌리쳐야 하는데… 만나서는 안되는 사람들인데…) 하고 생각하면서 다시 물었다.

《헌데 주인님을 찾지 않고 왜 저를…》

김현철은 다른 말은 하지 않고 사진을 꺼내여 내밀었다.

연희는 그의 취재를 방해하고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얼핏 사진을 보았다. 나란히 미소를 짓고있는 세명의 녀인중에서 한 녀인의 모습이 눈에 익었다.

(김춘옥?!)

오래전에 아버지의 책상에서 보았던 얼굴이였는데 아직 기억에 남아있었던것이다. 연희는 호기심이 동했다. 그가 이 사진으로 뭘 하려고 하는지 알고싶었다. 그래서 일어섰던 참에 제잡담 구석의 음료수통으로 다가가 물을 마시고나서 돌아와 앉았다.

사진을 들여다보던 한명숙이 물었다.

《누굴 찾으시는지…》

《이분이 어디에 계시는지 아십니까?》

김현철은 김춘옥의 왼쪽에 앉은 해사하게 생긴 녀인을 짚으며 물었다.

한명숙은 한동안 김현철을 빤히 보다가 되물었다.

《알지요. 이 언니가 홍정실이고 가운데 있는 녀자가 춘옥이예요. 참 오래간만에 보는 사진이군요. 내게도 한장 있었댔는데 어디에 건사했는지 알수가 없어요. 춘옥이를 생각하면 정말 불쌍해요. 홍콩에서 죽었어요. 헌데 이 사진은 어디서 얻었는가요?》

《김춘옥씨의 동생 김춘삼씨가 이 사진을 주었습니다. 부인을 만나면 누이에 대해 잘 알게 될것이라더군요.》

《그래요?》

한명숙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사진을 다시 보았다. 잠시후 사진을 돌려주는 그의 얼굴에는 짙은 의혹이 비껴있었다. 상대방의 의도를 묻는것이였다. 김현철은 말을 시작했다.

《한때 서울에서 김춘옥씨와 함께 일하였다고 하던데요.》

《글쎄, 함께 일했다고 할려나. 그게 1년도 채 못되는 기간이였으니까. … 그러니 김춘옥에 대해서 알려고 하는가요?》

《김춘옥씨의 사건을 료해하는 과정에 많은 의문점을 느끼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전 그가 어떤 녀성이였는지, 과거에 어떤 일을 하였는지 모두 알고싶습니다. 도와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한명숙이 주저하는듯싶었다. 옆에 앉아있던 연희도 한마디 거들었다.

《김춘옥씨가 살해된 후 온 가정이 파산몰락하였답니다. 제 동기들중에 소연이라는 친구가 그의 조카였는데 그애도 한강대교에서 떨어져… 죽었지요.》

한명숙은 약간 울먹거리는듯 한 연희의 목소리를 듣고는 한숨을 들이쉬였다.

《춘옥씨의 어머니도 불행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지금 시골에 있는 춘옥씨의 집엔 남동생부부가 억울한 루명을 벗지 못하고 고통속에 살아가고있습니다.》

김현철이 덧붙였다.

《그걸 왜 모르겠어요? 사실 춘옥이 어머니의 장례식에 홍언니랑 같이 가자고 했었는데 간첩련루자라고 해서 포기했던겁니다.》

죄책감에 잠겨 낮은 목소리로 변명하듯 한명숙이 중얼거렸다.

《다른것은 더 바라지 않겠습니다. 다만 김춘옥씨의 비극적인 죽음의 내막을 밝히고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주고싶을뿐입니다.》

김현철은 숙연한 자세로 당부했다.

얼마간 생각에 골똘해있던 한명숙이 불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후 나타난 그는 외출복차림이였다.

《함께 가십시다.》

김현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제 먼저 출입문쪽으로 향했다. 그들이 앉아있는 식탁을 아까부터 힐끔힐끔 곁눈질해보던 아래배가 처지고 볼살이 늘어진 음식점주인이 소리쳤다.

《아니, 일이 이제 시작인데 대체 어디로 가? 지금 다른 사람 일하는게 안 보여? 일할 생각이 있어 없어? 그만두려면 당장 나가!》

그러거나말거나 못 들은척 하며 한명숙이 사라져버리자 주인의 고성이 이어졌다.

《일하기 싫으면 당장 그만둬. 나이도 많은 주제에 어디 가서 일할데를 구해봐! 구해지나. 고마운줄은 모르고…》

택시에 오른 김현철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로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한명숙은 그 어디에도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이였다. 이윽토록 흘러가는 차창밖의 광고들을 내다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젠 모든게 지겨워요. 석달째 하루도 휴식을 못했어요. 하루일을 마치고나면 온몸의 뼈마디들이 모두 물러나는것 같애요. 내 손을 좀 봐요. 손바닥의 주름마저 지워져서 손금을 구분하기도 어려워요. 이젠 이 손으로 뜨거운것도 더러운것도 다 만질수 있어요. 더는 무서운것두 없구요.》

이어 허거픈 웃음소리가 뒤따랐다.

《후에 하자던 얘긴데… 솔직히 그 음식점에서는 얘기가 잘되지도 않아요. 손님들이 계속 들락날락하고 주인은 눈살이 꼿꼿해서 간참하고…》

김현철은 그의 깊은 사려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잠시 숨을 돌린 한명숙이 말을 이었다.

《춘옥인 뻐스료금을 가로챘다고 나와 함께 일하던 뻐스회사에서 쫓겨났어요. 사진에 있던 정실언니도 함께 나오고말았죠. 그 정실언닌 지금 괜찮아졌어요. 고급료정의 주인이 되였으니까요. 혼자 무척이나 애를 쓰더니만… 그래도 생활이 고달프기는 나와 별차이가 없죠.》

택시는 강남구의 어느 미용소곁의 골목길로 빠져 작은 다방 비슷한 건물앞에서 멎어섰다. 밖에서는 보통 수수한 차집처럼 보였다. 이런 구석진곳에 차집을 꾸려놓으면 사람들이 찾아오나 하는 의문을 가지고 문가로 다가서는데 스르륵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2중으로 된 자동문이였다. 안에 서있던 녀접대원은 이미 련락을 받은듯싶었다.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십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김현철은 대뜸 겉보기와 달리 여간 고급스러운 식당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홀에서는 너덧명의 악사가 음악을 연주할수 있는 무대가 있었고 몇개의 식탁이 놓여있었다. 그리고 안쪽으로는 방음장치가 달린 문으로 이어진 몇개의 개별방들이 보였다. 첫눈에 그는 자기가 선배들이 술좌석에서 흔히 말하던 고급료정에 들어섰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한 선배가 당대에 내노라 하는 정치인들의 술자리에 끼였던 자랑을 하던것이 생각났다. 그 료정은 전에 강남에서도 꽤 비싼 축이라는 정도로만 알던 곳이였다. 원체 그런 술자리라는게 중심에 앉은 인물들이 화제를 독점하다싶이 하는것이 상례여서 선배는 말석에 앉아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술잔을 들 때마다 호응하는것으로 례의를 차려야 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웃사람들앞에서 실수를 할세라 너무 긴장해있다보니 술을 마셨는지 물을 마셨는지 알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또렷해졌다. 한참 시간이 흐르도록 관청에 온 촌닭흉내만 낼수 없어 용기를 내여 옆에서 시중하는 아가씨에게 술 한잔을 권했더니 《차를 몰아야 하므로 사양하겠다.》고 했다.

한갖 롱담으로 받아들인 선배가 술자리가 끝난 다음 뻐스정류소로 걸어가는데 곁으로 한대의 고급승용차가 씽 지나갔다. 눈여겨보니 운전하는 사람은 다름아닌 방금전에 술시중을 들던 그 아가씨였다. 부유한 가정환경에도 불만족스러워 변태적이고 방탕한 생활을 추구하는 녀자임이 틀림없었다.

《월급쟁이는 가까이 할 곳이 못되는 집이로구나.》

이것이 선배의 골을 때린 결론이였다.

대개 이런 료정일수록 입구가 작았다. 고급하면 할수록 간판은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작게 만들어지는것이였다.

《즐길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 오라.》는 무언의 암시였다. 이곳의 손님치고 간판만 보고 들어가서 차나 한잔 마시자고 했다가는 문전거절을 당하기가 일쑤였다. 적어도 마담과 친분이나 안면이 있어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누구를 만나시렵니까?》 혹은 《손님이 다 차고 빈자리가 없습니다. 다른 차집을 찾으십시오.》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권유가 아니라 명령에 가까웠다. 손님이 기분이 거슬려 침을 뱉고 돌아서도 꿈쩍을 않는다. 이런 곳은 철저하게 인적관계에 의해 운영되였고 그만큼 신분보장과 비밀유지에도 유리했다. 고위관료들이나 경제인들, 문화계의 유명인사들이 이런 곳을 애용하는 리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김현철이 이런 생각을 하는데 대리석장식을 한 계단으로 한 중년부인이 마주 내려왔다.

《꽤 오래간만이다.》

세월이 흘렀으나 사진에서 본 애젊은 시절의 모상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었다. 부인은 접대원들을 물리치고 직접 응접실로 안내하며 한명숙에게 말하였다.

《자주 련락하고 다니라고 했잖아?》

《내가 이곳에 올 주제가 되니.》

한명숙은 분위기에 위압되여서인듯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누구도 네가 여기로 오는걸 막지 않는다. 넌 나에게 하나밖에 남지않은 친구야. 네 남편의 수배가 전주에 풀렸지?》

부인이 한명숙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

《그래, 고마워.》

《돈이 없는게 죄야. 돈이 없으면 수배자가 되고 돈만 있으면 수배가 금방 풀리지.》

《그래 얼마니, 뿌린 돈이?》

《좀 비싸. 네가 꽤 갚을수 있을가?》

《어떻게든 갚을게.》

《네가 항상 나를 잊지 않고 생각하는것이면 충분해. 춘옥이를 잊지 않듯이!》

《춘옥이야 너무 불쌍한 애지. 우리가 아니면 기억해줄 사람조차도 없을거야.》

《난 행복해보여?! 천만에, 나도 어느 순간에 춘옥이처럼 사라져버릴지 모르는걸.》

《오래간만에 만났는데 방정맞는 소리만 하는구나. 고급료정의 주인이라는 인기마담이…》

응접탁을 놓고 둘러앉자 한명숙은 부인을 가리키며 홍정실이라고 소개했다. 김현철에게 잠시 머물렀던 홍마담의 눈길은 인차 연희에게로 옮겨갔다. 그는 빤드름히 그리고 꼼꼼한 눈길로 여겨보았다.

《그러니까 저 남자분은 김현철기자, 아가씨의 직업은 뭐예요?》

따지고드는 물음에 그러지 않아도 초면의 어색한 분위기가 더 서먹해졌다. 한명숙이 대신 대답했다.

《무슨 실례되는 말이야. 같은 기자이시겠지.》

《아냐. 매일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라 첫눈에도 알려. 저 남자분은 이곳까지 오면서도 여기저기 쑤셔보는데 호기심이 꽤 많어. 명함을 내보이지 않아도 직업이 알려. 헌데 아가씨는 느낌이 달라. 어쩐지…》

연희는 고개를 약간 숙여 례를 갖추며 말했다.

《보험회사에서 일합니다.》

《보험회사요?》

《예.》

《마침이예요. 여기 우리 애들이 보험회사의 방조를 받을 일이 있는것 같은데 이왕 오셨던김에 잘 도와주세요.》

김현철은 저도 모르게 속이 편안해졌다. 어쩌면 이 홍마담과 자기들사이에 호상 리해관계가 성립되는가싶고 따라서 취재가 아주 잘될수 있다는 예감이 뒤따랐다.

홍마담의 눈길이 김현철에게로 돌아섰다. 그 눈빛은 은근하고 부드러웠지만 실력자들과 교제하면서 터득한듯 상대를 제압하는 야릇한 기운이 다분히 느껴졌다.

《그 사진을 보여주세요.》

김현철이 사진을 내밀자 마담은 마치 보물을 받아안듯이 소중히 쓰다듬고나서 두손우에 올려놓았다.

《이게 얼마만이냐?》

《20년도 넘지 않았니.》

그들은 마주보며 말하였다.

《참 잊을수 없는 시절이였지. 동전을 달랑거리며 뛰여다니던 이때가 엊그제만 같애.》

《그래, 돈이 없어 눈물개나 흘렸는데 생활은 단순했지.》

옛시절을 추억하던 홍마담은 김현철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김기자, 우리 거래합시다.》

《무슨 말씀인지요?》

《이 사진 이젠 용도가 지난것 같은데 날 주세요. 대신 당신의 질문에 다 솔직히 대답해주겠어요. 물론 우리 단골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는 례외로 하고요.》

《그 사진은 제 소유물이 아닙니다.》

《거래를 안하겠다는 소리인데 그럼 그냥 돌아가시지요.》

한순간에 눈빛과 어조가 홱 바뀌였다. 예상밖이라 김현철은 잠시 당황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마침내 그는 고개를 끄덕이였다.

홍마담은 장난감을 받은 소녀처럼 좋아했다.

《사실 춘옥에 대해 별로 아는건 없어요. 하지만 아는껏 이야기하지요.》

《우선 김춘옥씨를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알게 되였는지 알고싶습니다.》

《그게 언제더라… 1970년대 중엽쯤 됩니다. 나와 명숙이가 서울의 어느 한 뻐스회사에서 차장으로 일할 때였어요. 그때 그애가 차장으로 취직하여 315호를 탔어요. 내가 314호, 명숙이가 316호를 탔고요. 그때 우리는 이름으로 불리우지 않고 14호, 15호, 16호 하고 불리웠어요. 출근하여 감독에게 보고를 할 때도 <314호 나왔습니다.> 하고 말했고 동료들끼리도 15호야, 16호야 하고 불렀어요.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건 손님들과 싸우고 밀고당기던 일들이 아니예요. 소란스러운 입금실의 동전 세는 소리예요.  쫘르르, 쫘르르… 동전을 주머니에서 털어쏟던 소리가 지금도 들리는것만 같애요. 꿈속에서도 황금이나 만원짜리 지페가 아니라 돌돌 굴러가는 동전이 보여요.》

그러던 홍마담이 별안간 몸을 꼿꼿이 세우며 목소리를 높였다.

《좀 있으면 은행앞입니다. 내릴 손님 계세요? 안 계시면 통과합니다.》

몸에 배인 차장흉내가 얼마나 신통한지 모두 따라웃었다.

《그 동전…》 하며 한명숙이 말을 이었다.

《그 동전때문에 춘옥이가 하차했지.》

《그래, 너도 잊혀지지 않는게로구나.》

홍마담의 얼굴에 옛 추억이 실리는듯싶었다.

《하루는 내가 정류소들을 한바퀴 돌고 들어오는데 춘옥이가 감독에게 단속되였다더군요. 아침에 교대하자마자 청소당번이라고 차장옷도 벗지 않고 입금실을 청소하는데 감독이 어떻게 냄새를 맡았는지 그애의 속주머니에서 현금을 찾아냈어요. 춘옥이는 얼결에 꾼 돈이라고 하였지만 통하지 않았어요. 춘옥이가 관할파출소로 넘겨졌다는 말을 듣고 가보려고 했지만 대기차장이 없어 밤에야 겨우 짬을 냈어요. 마침 그때 춘옥이가 풀려나오더군요. 하루종일 굶은 그애를 데리고 우린 식당으로 갔어요. 춘옥이는 새파랗게 언 입술로 쓸쓸히 웃으며 재수가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때까지 그앤 회사에서 말이 없고 일에 성실한 모범차장으로 꼽혀있었어요. 다른 차장들이 차비를 좀 잘라내는것을 알면서도 그러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다나니 그애와 함께 일하는 운전사가 소득이 없다고 항상 불평을 해왔고 은근히 그를 설득하였어요. <그렇게 회사에 충실해보았자 월급 한푼이라도 더 주니? 요즘은 도적질을 자랑하는 세상이야. 지금 운전사나 차장질을 하면서 차비를 잘라먹지 않는 놈이 어디에 있어?> 그 전날 공납금을 바치지 못해 울면서 학교에서 쫓겨왔다는 동생의 소식을 들었던 춘옥은 순간적으로 <나도 그래야 산다. 그러되 꼭 한번만!>하고 생각했던겁니다. 그래서 함께 일하던 운전사에게 빼돌린 돈을 새벽에 받아 속주머니에 넣었는데 감독이 어떻게 귀신같이 알아냈는지 쑤셔냈지요. …》

홍마담의 말이 끊어지자 김현철이 말을 받았다.

《그랬군요. 70년대에 도시에 온 시골처녀들이 흔히 공장이나 뻐스회사에 들어갔다는 말은 들어봤습니다만… 김춘옥씨가 그런 일이 있어 회사를 떠났군요.》

홍마담은 김현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어쩔수없이 과거의 불미스러운 이야기를 꺼내놓았으나 상대의 반응이 그닥 시원치 않은 모양이였다.

《혹시 그렇다고 춘옥이를 무슨 상습범으로 생각진 말아요. 흔히 바늘도적이 소도적이 된다고 하지만 나는 뻐스회사에서의 그 일은 춘옥이에게서 찾아볼수 있는 유일한 과실이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창피스럽기는 하지만 당신이 우리 춘옥이에 대해 좀 자세히 알길 바래서 털어놓았어요. 그때는 뭐랄가, 도적질이 수치가 아니라 자랑으로 되던 시대였으니까요. 대통령으로부터 장관들은 물론이고 지방관청의 하바닥수위에 이르기까지 별반 차이가 없었어요. 차이가 있었다면 누가 얼마나 크게 떼먹는가였지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코흘리개축에도 못 든셈이예요. 물론 지금도 다를바없지만… 돈을 위해서는 생사를 걸어야 하는 그런 세상이 아닌가요. 황금이 만능으로 통하고 분분초초가 돈으로 계산되는게 바로 이 땅의 현실이란 말이예요.》

김현철은 동감이라는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춘옥이는 어찌 보면 나도 감동될만큼 때가 묻지 않은 순진한 애였어요.》

마담은 차로 목을 추기였다.

《그애가 이 유흥업계에 발을 들여놓게 한건 나였지요. 어쩌면 내가 춘옥이를 죽음의 길로 인도한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김현철은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실례이지만 부인은 하많은 직업중에서 어떻게 이런 유흥업을 택하셨는가요?》

《저까지 취재대상이 되는건 아닐테지요? … 실은 제가 녀고 3학년 시절에 우리 아버지가 이런저런 일들로 가산을 다 탕진해버리고 행방을 감춰버렸어요. 어머니는 몸져눕고 언니는 선천적장애자여서 누군가 늘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 상태였어요. 결국 돈을 벌어올 사람이 저밖에 없었답니다.》

《그러니 녀고시절에 벌써 생활전선에 뛰여들었습니까?》

《우선 급한대로 뻐스회사에 차장으로 취직했어요. 거기서 명숙이랑 춘옥이를 만났어요. 그러나 차장월급으로는 약값은커녕 방세도 못 물겠더군요. 그런 때에 한사람을 만났었는데 일이 생기면 자기를 찾아오라고 명함장을 주었어요. 술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였지요. 결심을 못 내리고있었는데 춘옥이가 회사에서 쫓겨나게 되였어요. 그애 일이 너무 딱해서 데리고 그 사람을 찾아갔다가 함께 눌러앉은거예요.》

《그때의 형편을 좀 이야기해주겠습니까?》

《1970년대 중반에는 주로 맥주를 팔던 술집들이 후반기에는 양주를 팔기 시작했어요. <밀페된 공간에서 양주를 파는것>, 이것이 당시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고급료정들의 기본운영방식이죠. … 우린 운이 좋았어요. 그때만 해도 10평이 좀 넘는 크기의 술집이면 접대원은 5~6명정도였는데 대개가 대학생이나 무명의 연예인, 모델들이였어요. 몸가짐이나 례의, 화술이 뛰여나지 않으면 예뻐도 받아주질 않았으니까요.》

마담은 나직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나도 그러했지만 춘옥이도 이 유흥업소에서 오래 일하고싶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제스스로 몸단속을 한다고 해도 유흥업소에서 굴다보면 매춘이나 방종한 생활에 빠지기가 례상사니까요. 그리고 녀자로서 술집에서 일한다는게 무슨 자랑이겠어요. 어쩔수없어 들어왔으니 열심히 일해 빨리 털고 나가는것이 상수였지요. 그래서 나와 춘옥이는 사치하고 방탕한 생활을 애써 피했어요. 그렇게 어느 정도 돈이 모아지자 나와 춘옥이는 고속뻐스시발역의 지하에 수입품가게를 차렸어요. 하지만 그게 큰돈을 벌수 있는 장사가 아니여서 가게를 하면서도 간혹 돈이 궁할 때가 많았어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카페를 열 료량이였는데 사기군에게 속아 고스란히 다 날려버리고말았어요.》

《김춘옥녀인이 홍콩으로 떠난게 바로 그때쯤이겠지요?》

지금까지 주의깊게 듣던 김현철은 모를 박아 물었다.

《예, 그때가 1982년 봄이였던지… 아마 내 기억에 의하면 그때 춘옥의 나이는 25살이였어요. 춘옥이는 몸집이 체소해서 그런지 제 나이보다 항상 어려보였답니다.》

마치 그때를 그려보는듯 홍마담의 눈가에 련련한 빛이 어리고있었다.

《사기군에게 피땀으로 번 돈을 깡그리 협잡당하고나서 나와 춘옥이는 뿔뿔이 살길을 찾아다녔어요. 어느날 나를 찾아온 춘옥이는 며칠후이면 홍콩으로 떠난다는것이였어요. 사실 사기를 당했을 때 춘옥이는 눈 감으면 코 베가는 서울을 떠나 차라리 일본이나 홍콩으로 건너가 가게를 운영해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군 하였답니다. 그래서 애를 쓰더니 끝내 외국으로 가는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당시는 외국인을 만나 위장결혼을 하고 이 땅을 떠나는게 류행이였으니 별다르게 생각지 않았고 또 문태석이라는 사람이 연줄을 놓았다기에 그렇거니 했어요. 그때는 나도 직업을 찾아 넋나간 사람처럼 다니던 때라 춘옥의 일에 깊은 관심을 돌릴 형편도 못되였답니다. 춘옥이가 떠난지 둬달후에 난 길가에서 이전에 도움을 받았던 술집경영주를 다시 만났고 그를 계기로 이 일에 본격적으로 뛰여들게 되였어요. 그렇게도 피하고싶던 <물장사>였는데… 운명인가 봅니다.》

《그후 김춘옥씨와는 련계가 있군 하였습니까?》

《초기에 편지가 드문히 오가군 했어요. 춘옥은 문태석이라는 사람이 대부를 주어서 홍콩에서 작은 식당을 하나 꾸려놓았다고 했어요. 서울보다는 장사하기가 편하다면서 나더러 건너오라고 당부하기도 하였는데 그때 나는 이미 <물장사>를 다시 시작한 때라 발을 뽑을수가 없었어요. 그후 이렇다할 련계가 없이 지냈는데 1987년 정월에 느닷없이 웬 사내들이 나타나 나를 끌고 갔어요. 그들은 춘옥이가 이북간첩이라면서 그에 대한 진술을 요구했어요. 청천벽력같은 소리였는데 그때는 앞뒤가 보이지 않았어요. 겁에 질려 그들이 하라는대로, 그들이 쓰라는대로 썼어요. 뭐라고 말했던지도 생각나지 않아요. 단지 그때는 이 지옥의 마굴에서 어떻게든지 벗어나고봐야 한다는 생각뿐이였지요. 그러다가 춘옥이가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고… 그 다음다음날엔가 풀려나왔어요.》

《정말로 김춘옥씨가 이북의 간첩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야 아는게 있나요. 나와 함께 있을 때는 아니였어요. 그런데 홍콩으로 간 이후의 생활은 내가 증언할수 없어요.》

김현철은 녀인의 얼굴을 찬찬히 여겨보았다. 결코 꾸며내거나 거짓말을 하는것 같지는 않았다. 예상했던것보다는 그도 김춘옥에 대해 아는바가 많지 못한것이 아쉬울뿐이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김춘옥은 단지 불우하고 빈곤한 보통녀성에 지나지 않았다. 특징적인것이라면 아련한 미모를 타고난것으로 하여 유흥업계에 한동안 머물렀고 홍콩사람과 위장결혼을 해 홍콩으로 이주해간 경력뿐이였다.

김현철은 취재를 마치려고 주위를 둘러보며 습관적으로 물었다.

《김춘옥씨에 대해 더 생각나는건 없습니까? 그후에 김춘옥을 찾아다닌 사람이 있다던가, 아니면 그에 대해 무슨 말들을 한다던가…》

별로 기대를 하지 않고 던진 질문이였는데 기억을 더듬던 홍마담이 불쑥 말했다.

《한사람이 생각나요. 영화제작자예요. 이름이 민도진이라던가… 춘옥이를 만난적이 없는 사람 같은데 춘옥이사건이 터지자마자 홍콩에서 활동한 이북녀간첩에 대한 짧은 드라마를 찍어 방영했어요. 그때 춘옥이사건이 사람들속에 큰 여운을 남긴것도 그 드라마의 방영때문이였어요. 그 사람에 대해 알고싶은것이 있다면 곧 련락해드리지요.》

김현철은 뜻밖의 횡재에 다급해졌다.

《그 제작자를 곧 만날수 있습니까?》

《누구요? 민도진이라는 사람말인가요? 그는 이미 별세한 사람인걸요.》

《그럼 금방 련락하겠다던 사람은 누굽니까?》

《글쎄, 어쨌든 그와 잘 아는 사람이예요.》

어정쩡한 대답이였다. 사건의 결말이 신문과 드라마로 요란한 광고처럼 소개된것과는 달리 그 과정은 시간이 흐를수록 안개속을 걷듯이 묘연해지는것이 김현철의 신경을 돋구게 했다.

홍마담은 잠간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긴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나가자 지금껏 잠자코 오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있던 연희가 입술을 김현철의 귀에 가져다 대며 나직이 물었다.

《민도진이라는 사람은 누구예요?》

김현철은 그제서야 연희를 의식한듯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흠칫 놀랐다. 연희의 빨간 입술이 금시 볼에 맞닿을것만 같았던것이다. 처녀의 몸에서 풍기는 향내가 그의 마음을 야릇하게 하였다.

연희도 어색한듯 어줍은 미소를 띠며 약간 물러났다. 김현철은 한동안 말을 고르지 못했다. 크게 놀란것도 아닌데 이상하게도 가슴이 울렁거려서였다.

그는 숨을 한번 길게 내쉬고나서 말했다.

《내가 아는바로는 8. 15해방후 월남한 사람인데 60년대말에 급작스럽게 영화제작자로 등장하였습니다. 주로 반공영화를 제작한 사람으로 알려져있죠. 이번 사건을 취재하던 과정에 김춘옥씨가 녀간첩이라는 신문기사가 발표된 후 한달도 못되여 홍콩과 일본 등지에서 활약하는 이북의 공작원들을 형상한 드라마가 대대적으로 방영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습니다. 그 제작자가 바로 민도진이였습니다.》

《그러니 그도 김춘옥씨의 사건과 련관이 있어요?》

《아직은 두고봐야 하겠지만 직접적이기보다 간접적인 련관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연희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홍마담이 달라는 저 사진은 주인인 김춘옥의 동생에게 되돌려주어야 하지 않나요?》

《사진보다 중요한건 진실입니다. 김춘삼씨도 그걸 바랍니다.》

연희는 그의 옆모습을 슬며시 뜯어보았다. 그의 말이 진심인것 같았다.

처음 그가 사진을 꺼내들었을 때만 해도 연희는 그 사진이 아버지에게서 넘겨받은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했었다. 그런데 전후사연을 듣고보니 그는 제나름대로의 길을 톺아 여기까지 왔던것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정말로 아버지는 이 사건의 진실을 다시 파헤칠 용기가 없단 말인가. 지금 곰곰히 생각해보니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많은 면에서 류사하다고 확신했던 이 사람이 확실히 어딘가 남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 사내는 어떤 사람일가. 왜 오래된 사건의 내막에 대해 그토록 알고싶어하는걸가. 기자라는 직업적인 의무감때문일가. 이런 후배를 제일 가까이에서 보고있을 아버지의 심정은 지금 어떠할가. 착잡한 심정에 빠져 김현철의 옆모습을 살피는데 갑자기 괴이한 질문이 날아왔다.

《절 유심히 훔쳐보는 리유가 뭡니까?》

김현철이 여유작작한 웃음을 지으며 던진것이였다.

약간 당황했으나 그렇다고 맥없이 피동에 빠질 연희가 아니였다. 내심을 슬쩍 감추고 야무지게 내쏘았다.

《진실을 위한다는 명분밑에 수단과 수법을 가리지 않겠다는건가요? 고명한 기자선생, 이런 말이 있어요. 성서를 읽기 위해 은초대를 훔치지 말라. 지금 자기가 너무 거침없이 행동한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은연중 연희에게서 어떤 살가운 칭찬 비슷한것을 기대하였던 김현철은 메사해지고말았다. 그래서 무뚝뚝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럼 휴회는 이만하고 또 시작해볼가요?》

《무엇을요?》

《보험재판을 위한 실무접촉을 말입니다.》

연희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쩐지 자기가 피동에 몰리는감이 들었던것이다. 사실 실무접촉은 김현철이라는 인간을 알자고 내건 명분인것만은 틀림없었다. 그런데 《랍북미수》사건의 진상을 파헤칠수 있는 새로운 정황과 아울러 자기의 연구대상에게서 새로운 인간상을 찾아보게 되여 잠시 얼떠름해진 기회에 상대방에게서 역습을 당한것이였다. 이것이 어느 사이에 연희의 해맑은 두볼을 빨갛게 물들여놓았다. 하지만 대답만은 거침이 없었다.

《좋아요. 그렇게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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