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특종기사를 찾아서

15

 

라경숙은 마당을 거닐고있었다.

마당에는 정문수위를 겸한 늙은이가 부지런히 쓸고 닥달질을 하여서인지 검불 한점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아침마다 마당을 거닐며 모든것을 살펴보는것이 라경숙의 습관처럼 굳어진 일과중의 하나였다. 마당이라고는 하지만 손바닥만 했다. 그러나 이곳은 라경숙의 반생이 묻힌 곳이였다.

마당에는 아담하게 꾸려놓은 화단이 있었고 그곳에는 물기를 머금은 갖가지 꽃들이 곱게 피여있었다. 소담하게 자란 정향나무에는 연보라색의 꽃들이 수줍게 피여있었다. 노란 꽃가루를 뽀얗게 묻힌 꿀벌들이 부지런히 날개를 붕붕거리며 꽃잎사이를 날아다니고있었다.

라경숙이 화단앞에 쭈그리고 앉아 갓 돋아나기 시작한 잡풀들을 손으로 잡아 뽑고있는데 늙은 수위의 뒤를 따라 경찰복을 입은 한 사내가 들어왔다. 관할파출소에 있으면서 마을에 찾아올 때마다 라경숙에게 들리군 하던 낯익은 경찰이였다.

라경숙은 수위를 돌려보내고 방으로 들어가자고 하였으나 경찰은 손사래를 치며 사양하였다. 그리고는 화단의 꽃들이 아담하고 예쁘다는 등의 인사말을 건네다가 말했다.

《수녀님께 미안한 말이라 어떻게 꼭지를 뗄지 모르겠습니다.》

라경숙은 말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입술주변에는 흘러가버린 세월의 자취인양 잔주름이 새겨져있었다.

경찰은 어색스럽게 손을 맞비비더니 말했다.

《웃기관에서 한사람의 신상에 대한 조회가 왔습니다.》

《누군데요? 마을사람인가요?》

《마을사람은 아닌데… 수녀님이 아주 잘 아는 사람입니다.》

잠시 말을 끊고 머리를 외로 돌렸던 경찰이 다음 말을 이었다.

《수녀님의 양아들인 현철군에 대한것입니다.》

《우리 현철이요? 무슨 사고라도 쳤어요?》

라경숙의 얼굴은 대번에 컴컴해졌다. 꼭 강변에 아이를 놔둔것만 같아 걱정스러운 심정이였다. 하루종일 가도 전화 한통이 없었다. 또 전화를 해도 무슨 바쁜 취재를 다니는지 통 받질 않았다. 어쩌다가 통화가 이어져도 현철은 미안하다고, 바빠서 전화를 못하였다고 제편에서 먼저 사과하여 더 다른 말을 못하게 하군 하였다. 이젠 장가갈 나이도 되였는데 그애의 사생활에 너무 간섭하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의 지나친 로파심으로 치부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끝내 일이 난것 같았다. 젊은 혈기에 무슨 큰일을 저지른것은 아닌지…

《사람 간을 말리지 말고 어서 말해요.》

라경숙이 다그쳐서야 경찰은 나직한 목소리로 이었다.

《현철군이 무슨 사고를 친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현철군에 대한 신원확인이 제기되였을뿐입니다.》

《신원확인이라면… 내가 알아요. 피덩이였던걸 제가 이전에 춘천시내에 있던 마리아영아원에 안아갔어요. 그후에는 얼마동안 고아원에 가있었는데 애가 예닐곱살 났을 때엔가 내가 데려다 살았어요. 그애가 다닌 학교들은…》

《아닙니다.》 하고 경찰이 성급해하는 그의 말을 막았다.

《그건 문건에도 자세히 기록되여있습니다. 문제는 다른겁니다. 수녀님께 참 안된 일이지만… 그의 친부모와 관련된 일입니다.》

라경숙은 금시 심장이 뚝 멎는것만 같았다. 파릿해지다 못해 거멓게 질리는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피며 경찰이 말했다.

《그와 관련해서 우에서 지시가 있었습니다. 전 단지 한가지 사실만 알아보면 됩니다. 잠간이면 됩니다.》

경찰은 주위를 잠시 휘둘러보고는 주머니에서 두장의 사진을 꺼냈다.

흑백색사진이였다. 방금 제작했는지 반들거리는 사진속에서 연한 줄무늬양복을 입은 끼끗한 젊은이가 올려다보고있었다. 그 젊은이의 서글서글한 눈매며 선이 또렷한 입술은 그야말로 현철과 판박이여서 라경숙의 가슴이 졸아들게 하였다.

《누… 누구예요?》

라경숙이 떨리는 음조로 물었으나 경찰은 대꾸는 하지 않고 다음 사진을 올려놓았다. 치마저고리를 입은 녀인의 곱살한 둥근 얼굴이였다. 눈가에 비낀 선량한 웃음이 무척 인상적이였다. 라경숙은 신음소리가 입새로 흘러나갈가봐 입술을 꼭 옥물었다.

《수녀님은 모두 모르는 사람들입니까?》

마치도 그러기를 바라는듯 한 경찰의 목소리였다. 라경숙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끄덕하였다.

《그럼 됐습니다. 이거 실례했습니다.》

라경숙은 얼른 경찰의 팔소매를 잡았다.

《안에 들어가 차라도 한잔 하고 가세요.》

《그러고는싶은데 시간이 없습니다.》

경찰은 다시금 주위를 살피고나서 사진속의 인물들을 가리키며 라경숙의 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들이 현철군의 친부모라는 사람이 나타난것 같습니다. 만약 사실이라면 앞으로 일이 좀 복잡해질것 같습니다. 이 사진속의 사내는 30여년전에 이북간첩으로 처형된 사람입니다.》

《?!》

경찰은 혀를 끌끌 차면서 말을 계속했다.

《사실 수녀님을 찾아오기 전에 제가 무슨 일인가 해서 줄을 놔서 좀 알아보았습니다. 현철군이 그 무슨 기사를 쓴다면서 이전에 처리된 간첩사건들에 대해 파고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나니 이런 어망처망한 일에까지 말려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튼 수녀님이 보증하시는데 다른 일이야 있겠습니까.》

경찰은 제가 불을 질러놓고도 걱정하지 말라는듯 눈웃음을 치면서 돌아갔다. 한동안 볕이 뜨거운지도 모르고 서있던 라경숙은 허청거리며 현관쪽으로 간신히 몇걸음을 옮겼다.

그의 입술사이로 탄식이 터져나왔다.

《성모마리아이시여,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입니까!》

라경숙과 헤여진 경찰은 오백여메터쯤 떨어져 보이지 않는 곳에 대기하고있는 검은 승용차의 앞좌석에 올랐다.

뒤좌석에 앉아있던 리기철은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며 말했다.

《수고했소. 시킨대로 했겠지?》

《이를데 있겠습니까.》

《어떻던가?》

《수녀가 까무러치려는줄 알았습니다. 지시대로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는데 일이 커지는줄 알고 속이 한줌만해졌댔습니다.》

《사진속의 사람들을 알아보는것 같았소?》

《사내는 모르겠는데 계집은 낯이 익었던것 같습니다. 눈이 확 뒤집어지더군요.》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군.》

리기철이 혼자말로 중얼거리자 경찰이 물었다.

《그런데 이들이 정말 현철군의 친부모들입니까?》

《음- 자네는 그쯤 알고있는것이 좋아. 그리고 사진을 돌려달라구.》

차는 곧 움직이기 시작했다. 얼마후 파출소앞에 이르자 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주며 리기철은 못을 박았다.

《오늘일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되오. 파출소장은 물론 당신 부인에게라도 말이요. 무슨 뜻인지 알겠지?》

《감사합니다. 그리고 념려마십시오. 저도 다 알고있습니다.》

《좋소. 그럼 믿겠소.》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주십시오.》

경찰이 내린 후 차는 서울을 향하여 고속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리기철은 일이 이쯤되면 잘된것이라고 쾌재를 올렸다.

(뭐, 수녀의 아들이라고? …)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뜬한 사설탐정에게 김현철에 대한 료해를 맡겼던 자기가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그 얼치기가 강정웅신부에 대해 알려준것이 다행이였다. 부하들을 시켜 강정웅신부와 관련된 이전 중앙정보부의 감시대상목록까지 샅샅이 뒤지게 하였더니 라경숙의 이름을 곧 찾아냈다. 그 기록으로부터 시작하여 라경숙에게 갓난애기를 맡기고 떠난 녀인과 남편에 대해 알아낼수 있었다. 만일 김현철의 친아버지가 북의 《간첩》이라는 사실이 공개되면 그녀석의 기자생활도 막을 내려야 할것이다. 봄꿩이 제 울음소리에 죽는다는 말은 아마도 이녀석을 두고 한 말인지도 몰랐다.

한편 라경숙은 그길로 뻐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오는 도중에 김현철에게 전화를 하였더니 지금 출장중인데 하루 있어야 돌아온다는것이였다.

서울에 도착한 그는 김현철의 하숙집열쇠를 가지고있었지만 부디 교외에 있는 수녀원으로 갔다. 무성한 나무숲사이로 난 길을 따라가느라니 낯익은 수녀원의 그리 크지 않은 대문이 보였다.

옹이 박힌 낡은 나무대문앞에 이르니 전쟁시기 처음 이곳으로 찾아오던 때가 느닷없이 떠올랐다.

전쟁의 포연에 까맣게 그슬린채 주리고 꿰진 옷을 걸치고 떨던 여윈 몸으로 이 문을 넘어선 때부터 라경숙은 자연이 인간에게 안겨준 혜택중의 많은것을 버려야 했다. 그래도 주리지 않고 떨지 않는것만도 최대의 위안으로 삼았던 연약한 라경숙에게 있어서 작은 생명체였던 현철은 세상에서 처음으로 맛보는 생의 희열을 안겨주었었다. 그런데 그의 기쁨이고 희망이고 사랑이였던 현철에게 바야흐로 고통과 불행의 먹구름이 밀려오고있는것이였다. 라경숙은 온몸이 전률하듯 무섭게 떨리는것을 어찌할수 없었다.

라경숙은 깊고도 슬픈 한숨을 내쉬며 문을 두드렸다. 성당내부는 원형이였다. 천정도 둥글었고 안도 둥글었다. 한쪽벽에 사제용의 연단이 있었고 그 연단을 중심으로 말굽을 눕혀놓은 모양으로 7~8렬의 긴 의자가 놓여있었다.

성당안에는 엄숙한 적막이 흐르고있었다. 라경숙은 두손을 모으고 속으로 기도했다. 침침한 성당안에 무덤같이 무거운 침묵이 드리워있었다.

라경숙은 눈을 지그시 감은채 허리를 반듯하게 폈다. 뿌연 안개가 휘감기는 속으로 불쑥불쑥 사람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현철의 친부모에 대해 묻던 경찰의 모습이 확대되여오더니 그의 검붉은 입술만이 오래도록 오물거리며 눈앞을 맴돈다. 그러다가 문득 썰물처럼 밀려나가듯 사라지고 현철의 밝게 웃는 모습이 다가온다. 그런데 그 얼굴이 자기의 앞으로 가까와올수록 땅속으로 잦아들어가는지 작아진다. 마침내는 엷은 아기옷자락속에 들어가 새빨간 주먹을 높이 쳐들고 빽빽 울고있다. 좀 있더니 울음을 딱 그치고 깜찍스러운 특유의 동자가 비낀 큰 눈으로 라경숙을 빠금히 올려다본다.

라경숙의 지그시 감은 눈가에서 눈물이 솟구쳐나와 서서히 흘러내렸다.

그는 온밤 그렇게 앉아있었다. 어느덧 새벽이 밝아와 문이 열리고 관리자가 들어와 청소를 하고 기도곡이 울려도 꿈쩍을 안했다. 그렇게 얼마간 시간이 더 흐른 뒤 라경숙은 눈을 떴다. 그리고 쇠잔한 몸을 추스렸다. 문뒤에서 두명의 수녀가 나타나 그의 몸을 거들어주었다.

라경숙은 두손을 모아 기도를 하였다. 나른한 몸을 끌고 밖으로 나오는 그의 마음은 몹시도 슬펐다. 끝내 아무런 대답도 찾지 못했다. 그토록 구원의 손길을 뻗쳐줄것을 애타게 기원했건만 한치한치 다가오는 어둠으로부터 어떻게 하면 현철을 보호할수 있는지 아무런 예언도 듣지 못했다.

라경숙은 의자사이를 빠져나오다가 현기증에 비칠거렸고 끝내 주저앉았다. 물론 라경숙은 이런 날이 올수 있다는것을 예견했었다. 그러나 실지 눈앞에 박두하고보니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수가 없었다. 미리 현철에게 과거에 대해 알려주었더라면 이다지도 속이 답답하고 떨리지 않을지도 몰랐다. 친아버지가 《간첩》이라는 사실은 그야말로 현철에게는 청천벽력으로 될것이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라경숙의 공포는 점점 커가고있었다. 어떻게 하나 이 공포감에서 벗어나고싶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한때 그는 현철이가 과거의 모든것과 인연을 끊고 신학교에서 새로운 생을 시작하기를 바란적도 있었다. 그러나 현철은 그의 희망을 꺾고 신학이 아니라 기자라는 운명의 길을 택했다.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르는 법이다. 이제는 그가 현철이와 함께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건너야 할 강이 남아있을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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