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1 장 아버지와 딸

13

 

신문사의 자료실에서 1987년의 문태석《랍북미수》사건과 관련된 기사와 자료들을 받아쥔 김현철은 어슬무렵에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책상우에 자료들을 올려놓고 신문들을 펼쳐든 그는 이미 알고있는 내용들을 다시 찬찬히 따져보면서 취재방향을 연구하고있었다. 이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그는 고개를 문쪽으로 돌리고 눈살을 찌프렸다.

(누굴가?)

누군가와 만나자고 한 약속이 없었는가를 속으로 따져보았지만 아무도 짚이지 않았다. 그래서 못 들은척 하고 잠자코 있는데 다시 문을 두드렸다. 아마도 그가 집에 있는줄을 알고 찾아온 손님인 모양이다. 김현철은 손에 쥐였던 연필을 책상우에 내려놓고 속으로 투덜거리며 일어났다.

《누구요?》 하며 문을 벌컥 열던 그는 놀랐다.

뜻밖에도 연희가 서있었던것이다.

푸른 양복을 입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마주보고있는것이 무엇인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약속도 없이 돌연히 나타난 그를 멍히 바라보며 김현철은 《어떻게 여길? …》 하고 중얼거렸다.

연희가 새침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항상 손님을 문밖에 세워둔채로 이야기를 나누시는가요?》

김현철은 입을 다시고는 한옆으로 비켜서며 들어오라고 했다. 연희는 보험가입자를 찾아 하루에도 숱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만나는게 직업이라 방안으로 상큼상큼 들어서면서 주위를 깔끔하게 살폈다. 단칸방이였다. 창문곁에 크지 않은 편수책상이 있었는데 서류들이 되는대로 쌓여있고 여러권의 책들과 신문들이 펼쳐놓은채로 있었다. 한복판에는 탁자와 그우에 빈 꽃병이 있었다. 벽쪽에는 쏘파와 옷장이 있고 그곁에 일인용침대가 있었는데 침대보도 없이 모포가 되는대로 구겨져있었다. 독신자의 체취가 단번에 느껴졌다. 김현철은 연희에게 쏘파에 앉으라고 권하고는 자기는 책상과 마주한 의자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무슨 일입니까?》

연희는 기다린듯이 주저없이 톡 내쏘았다.

《돈을 내요.》

(아닌밤중에 무슨 홍두깨야?)

김현철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무슨 돈입니까?》

《보험재판과 관련한 수속료말이예요.》

《수속료요? 그걸 왜 내가 내야 합니까?》

《보험재판을 바란다면서요?》

김현철은 웃었다. 그러니 변호사와의 부정당한 합의는 그만둔 모양이다.

《거기선 보험재판에 증인으로 나서라는 말을 꼭 그렇게 합니까?》

연희는 한순간 김현철이 자기의 내심을 빤히 들여다본것 같아 속이 뜨끔했다. 사실 김현철을 찾아 이곳으로 오면서 첫 꼭지를 어떻게 뗄지 여러가지로 궁리해본 그였다. 연희가 그를 만나려는 목적은 사실 보험재판과는 상관이 없었다. 단지 아버지때문이였다. 그렇다고 여직껏 쌀쌀하게 랭대해온 사내에게 무턱대고 아버지와 신문사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묻기에는 객적은노릇이였다. 입술을 살며시 깨물었던 연희는 시치미를 뚝 따고 매정스럽게 말했다.

《아뇨. 내게 필요한건 돈이예요.》

김현철은 짜증이 났다. 확실히 사람의 신경을 돋구는데는 특이한 재주를 가진 처녀였다.

《글쎄, 보험재판과 관련한 수속료를 왜 내가 내야 합니까?》

《왜 리해 못하세요? 피해자가족측이 보험금전액에 해당한 돈을 당장 받게 된것을 반대하셨지요? 보험재판도 걸자고 했죠? 그러니 어느 정도 부담을 하셔야지요. 재판에 필요한 변호사비용까지 다 내세요.》

정말 역증난다. 먹자는 귀신은 빨리 먹여서 보내라고 했던가.

《얼마입니까?》

액수를 듣고보니 엄청났다. 눈이 빠져나올 정도였다.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냅니까?》

《그런 재력도 없이 보험재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나야 그게 정당하다고 믿었으니깐요.》

《정당한 일은 다 무료인가요?》

큰 눈을 한번 깜빡하지 않고 빠른 말을 내쏘는게 꼭 싸움닭을 련상시켰다.

피동에 빠진 김현철은 대꾸할 말을 찾을수가 없었다. 연희의 말에도 일리가 없지는 않았다. 보험재판이 한두번으로 끝나지 않을수도 있고 그동안 가족측의 피해를 보상해야 할 의무가 그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치 가해자처럼 취급하면서 무턱대고 나타나 돈을 내놓으라는것은 무리가 아닌가. 거기에 변호사비용까지 감당하라는것은 과도한 요구이다. 하지만 보험재판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였던 그로서는 처녀에게 돈이 궁한 내색을 보이는것이 참으로 멋적은 노릇이였다. 그가 타결책을 찾지 못해 갑자르는데 연희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목이 마른듯 마실물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김현철은 마침이라고 생각하며 부엌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자 연희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다가갔다. 아니나다를가 책상우에는 문태석《랍북미수》사건과 관련된 신문기사들이 놓여있었다.

사실 며칠전 아버지의 방에서 그 기사들을 본 이후로 연희는 련일 생각이 착잡했다. 스스로 찾은 결론은 아버지의 주위에서 틀림없이 뭔가 범상치 않은 변화들이 생겨나고있다는것이였다. 그렇다고 당사자인 아버지에게 직접 물을수도 없었다. 그래서 최근에 아버지와 가장 가깝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꼽아보았다. 제일먼저 짚이는 사람이 아버지의 둘도 없는 술친구인 김현철이였다.

《뭘 합니까?》

언제 들어섰는지 김현철이 연희의 뒤로 다가서며 물었다. 흠칫 놀란 연희는 신문을 손에 쥐고 돌아서며 되물었다.

《이건 뭐예요?》

김현철은 책상우에 들고 온 물고뿌를 놓았다. 그리고 연희와 신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선배님이 보냈습니까?》

《우리 아버지가 넘겨준게 아닌가요?》

연희가 그의 물음을 되받아 넘겼다.

김현철은 실눈을 지었다.

《나를 찾아온 진짜리유가 그 기사인가본데…》

《아니예요. 보험재판때문에 왔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연희의 까만 눈동자가 허둥거리다가 아래로 향했다.

김현철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따졌다.

《왜 거짓말을 합니까?》

《천만에요. 난 거짓말을 안해요.》

《정 아니라니 믿겠습니다.》

김현철은 다시 자리를 권했다. 연희는 주춤거리다가 쏘파에 앉았다.

《그럼 말해보십시오. 연희씨는 왜 그 사건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건 내가 묻고싶은 말인데요.》

《내 말을 듣고싶습니까? 좋습니다. 그러니 나의 솔직한 대답을 듣고싶다면 먼저 대답하십시오.》

김현철은 연희가 숨돌릴 틈을 주지 않고 급히 다몰아댔다. 취재도 하나의 심리전이다. 그는 어느 사이에 탐방기자의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주도권을 쥐고 례의도 잊어버린채 상대를 궁지에 몰아넣고있었다.

하지만 연희는 김현철에게 자기의 의도가 로출되였다는 당황함과 옛 추억이 몰아오는 괴로움에 잠겨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는듯싶었다.

《한 불쌍한 소녀가 있었어요.》

《잘 아는 사이입니까?》

《예, 고등학교시절의 친구였어요.》

《그랬군요. 그 친구는 이 사건과 어떤 련관이 있는가요?》

《홍콩에서 죽은 녀인이 그 친구의 이모예요.》

《그렇군요. 지금 그 친구를 만날수 있을가요?》

김현철의 물음에 연희는 슬픈 기색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군 두견새가 되였어요.》

《무슨 뜻입니까?》

《죽었단 말이예요. 이모때문에 고민하다가 그해 봄에 한강대교에서 스스로 몸을 던졌어요. 지금도 그애가 밤마다 남산의 숲속에서 쉬임없이 울며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는것만 같애요.》

김현철은 억울하게 죽은 소녀를 위해 묵상이라도 하는듯 고개를 숙이고 잠시 침묵했다. 가슴이 아팠다. 신문사에서 일하느라면 자살과 관련된 소식에 자주 접하게 된다. 자살자는 각이했지만 태반이 리유는 대개 엇비슷했다. 극심한 생활고로 인한 비관과 보이지 않는 앞날에 대한 허무였다.

병원에서 요구하는 막대한 치료비를 마련하지 못해 목숨을 끊었다는 로인, 실업을 당하고 가정을 먹여살릴 힘이 없어 고층건물에서 몸을 던졌다는 세대주, 당국의 쌀수입개방조치로 인해 빚더미우에 올라앉게 되자 더이상 살아갈 희망을 잃고 농약을 먹고 가족과 동반자살한 농민, 아직 죽음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애젊은 학생들까지도 등록금때문에 혹은 우심해가는 교내 폭행에 견디여내지 못하고 목숨을 내던지고있었다.

동기가 어찌되였든 모든 자살현상의 뿌리는 인간성을 무참히 짓밟고 말살해버리는 무서운 사회악에 있었다.

김현철은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였다.

자신도 대학시절에 등록금을 내기 어려워 방과후면 음식점에서 그릇닦기도 하고 대학입학시험을 앞둔 부자집자식들의 개인수강도 하면서 어려운 고학생활을 겪어보았던것이다.

어느때인가는 대학측의 숨가쁜 독촉에 못이겨 모자라는 등록금을 보태려고 혈액은행에서 피를 팔고 나오다가 눈앞이 핑 돌아 복도에 쓰러진적도 있었다. 한참후에 정신을 차리고나니 이렇게나 대학을 다닐바에는 차라리 《하나님》을 찾아 천당에나 빨리 가서 근심과 걱정이라는걸 아예 잊어버리는것도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야 자살이 곧 평온이고 안식이라는 론리가 하나의 생활신조로 인식되여있고 그것이 온갖 불행과 고통을 영원히 잊는 《명약》으로 류행되고있는 부패하고 이지러진 삶의 불모지가 바로 그가 발을 디딛고 숨을 내쉬며 살고있는 이 땅이였다.

김현철은 울적한 기분으로 아직 꽃망울도 펼쳐보지 못하고 두견새가 되여버렸다는 한 미지의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그린듯이 앉아있었다.

연희에게서 그 무슨 실마리라도 얻는가싶었는데 그런 비극이 있을줄은 미처 몰랐던것이다.

《이젠 제가 물을 차례예요. 왜 갑자기 오래전의 사건을 파고드는가요?》

갑자기 연희의 목소리가 울렸다. 대답이 궁해졌다. 뭔가 대답을 해야 했지만 할 말이 없었다.

불쑥 연희의 아버지 장필성에 대한 불만과 사건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안타까움, 꽃나이시절에 부모와 작별하고 죽음의 길을 택하지 않으면 안되였던 알지 못할 소녀에 대한 애달픔, 예쁜 처녀앞에서 연거퍼 당하는 수치심 같은것들이 그의 머리속에서 마구 뒤엉켜돌아가기 시작했다.

못 견딜것만 같은 괴로움에 고개를 숙였던 김현철이 갑자기 머리를 쳐들었다. 별안간 그의 입에서는 뜻하지 않게 고함이 터져나갔다.

《더이상 이 세상에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 석자도 모르는 고아들과 망울도 채 피우지 못하고 이슬처럼 지고마는 꽃송이들이 없기를 바래섭니다!》

《예? 그건 무슨 왕청같은 얘기예요?》

연희가 어리둥절해졌다. 김현철은 그제서야 자기가 가당치 않은 대답을 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일단 쏟아놓은 말은 주어담을수 없었다.

그는 달아오른 얼굴을 홱 돌렸다. 혹시 무례하다는 비난을 받더라도 일단 터진 이상 속을 확 드러내지 않고서는 견디여낼것 같지 못했다.

《난 이 세상의 모든 비밀이라는걸 증오합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그 비밀이라는것엔 반드시 피해자가 따르는 법입니다. 그런데 그 피해자란 언제나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이지요. 자기에게 왜 그런 운명이 차례진줄도 모르고 고스란히 죽어야 하는 불쌍한 인생들… 오직 신의 섭리를 따르는것밖에 모르고 그것을 생의 전부로 알고있는 순진한 어진 양들…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는게 내가 이 세상을 사는 리유입니다.》

《그게 무슨 황당한…》

그러지 않아도 커보이는 연희의 눈이 아예 휘둥그래졌다.

김현철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황당합니까? 괴물같습니까? 바로 그게 납니다.》

그의 돌변적인 행동은 그러지 않아도 혼자 자취하는 사내의 방에 문득 뛰여들어와 마음이 조마조마하던 처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 연희는 엉겁결에 소스라쳐 일어나 문가로 냉큼 뛰여갔다.

쾅하는 문소리가 나서야 연희는 정신이 들어 언성을 높였다.

《손님을 쫓아내는군요. 이런 무례한짓이 어디 있어요? …》 하고 종알거리던 그는 문이 이미 닫겼고 아무도 들을 사람이 없다는것을 깨닫자 머쓱해지고말았다.

자신을 수습하고나니 슬그머니 부아가 치밀었다.

(괴물! 무뢰한! 저게 바로 진짜모습이였어!)

연희의 마음은 번거로웠다. 결국 그가 알아낸것은 몇가지뿐이였다. 아버지의 방에 있던 신문과 꼭같은 신문이 김현철의 집 책상우에 놓여있다는것과 그들은 이 사건을 놓고 서로 협력하는것이 아니라 야릇한 갈등속에 있는것 같다는것이였다.

며칠전에는 마치도 의형제나 되는듯이 취해 서로 다정히 머리를 마주대고 곯아떨어졌던 두사람사이에 10여년전에 발생한 《랍북미수》사건을 둘러싸고 필경 어떤 편안치 않은 일들이 벌어진것 같았다. 그것이 무엇일가?

연희는 아버지에 대해 그만하면 자상히 알고있다. 그러나 김현철이라는 기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것이 없었다.

그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무엇때문에 이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있을가. 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름 석자도 모르고 살다가 죽는 불쌍한 고아들이란 대체 누구를 가리키는걸가. 이 왕청같은 말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연희는 난생처음으로 한 청년의 신상에 대해 관심이 갔다.

김현철은 과연 어떤 연고로 연희의 사춘기시절에 가장 아픈 상처를 남긴 그때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있는걸가. 거리에 나선 연희는 김현철의 하숙집 창문쪽을 올려다보았다. 마치도 실바람에 날리듯 창가림이 슬쩍 움직이는것 같았으나 잘못 본것일수도 있었다.

연희는 한숨을 길게 한번 내쉬고는 스적스적 걸음을 옮겼다.

한편 창문으로 연희의 모습을 몰래 내려다보는 김현철의 마음속은 례사롭지 않았다. 불쑥 자기의 슬픈 과거가 떠올랐기때문이였다. 라경숙이 고아원에서 자기를 데려내오고 밤새 살뜰히 품어안아 재워줄 때 김현철은 그가 틀림없이 자기의 친엄마라고 믿었다. 수녀의 검은 옷을 입었기에 의혹은 없지 않았지만 그에게서 친엄마의 살뜰한 정을 느꼈다. 그래서 학교에서 아이들이 수녀의 아들이라고 따돌리고 모두매를 안겨줄 때도 라경숙의 속을 태울가봐 말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자기가 보고 느껴온것이 모두 천진스러운 착각에 지나지 않았다는것을 깨닫는 순간 그는 정처없이 뛰쳐나와 밤거리를 달렸다.

제잡담 서울로 올라온 그는 이름 석자도, 얼굴도 모르면서도 부모를 찾을수 있다고 믿었다. 어쩐지 어디에선가 가까운 곳에서 그들이 자기를 조용히 지켜보는것 같았던것이다. 그는 인파가 번잡한 거리에서 자기의 부모를 찾아 헤매였다.

교회의 울타리안에서 자라서 사회물정을 너무도 모르는 철부지소년의 고통이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는 밤에 길거리에서 자면 순경들이 와서 궁둥이를 걷어차며 붙들어간다는걸 알았고 구두닦기통이라도 들고있으면 건드리지 않을수 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구두닦이가 되여 1년가까이 서울과 인천, 대전, 대구를 떠돌며 부산으로 갔다. 부산으로 내려온 첫날에 토박이 구두닦이소년들에게 붙잡혀 몰매를 맞고 구두닦기통까지 빼앗긴 현철은 나들나들해진 거지꼴차림으로 바다가로 나갔다. 그곳에는 기다리는 사람도, 쓰레기통에 내버려진 한그릇의 쉰 밥도 없었건만 기를 쓰고 걸었다. 바다가 보고싶었던것이다!

길게 뻗어간 방파제로 향하는 현철의 눈은 저도 모르게 기슭을 더듬고있었다. 주린 창자를 달래일 조개나 미역줄기따위라도 간혹 눈에 띄울것 같아서였다.

부산앞바다는 바다라기보다 도회지의 쓰레기오물장을 물우에 띄워놓은것 같았다. 그 꼴불견을 주리고 피발이 선 눈으로 주시하는 까만 동자로 무엇인가 언뜻 안겨들었다. 눈여겨 살펴보니 누군가가 내버린 작은 양배추였다.

그는 정신없이 바다물속에 뛰여들었다. 양배추를 향해 헤염쳐가 그것을 움켜쥐고 환희에 넘쳐 돌아섰을 때 기슭은 너무도 멀리 있었다. 방파제를 향해 손발을 힘껏 저었으나 양배추를 움켜쥔 상태라 별로 전진이 없었다.

죽음의 공포가 전신을 휘감았다. 굶고 지칠대로 지친 몸에 기력은 더 남아있지 않았다. 쓰디쓴 짠물을 어쩔수없이 삼키면서도 현철은 손에 쥔 한쪽이 누렇게 썩어들어간 양배추를 더욱 꼭 그러쥐였다. 혼미해지는 머리속으로 웬 낯선 녀인이 어렴풋이 다가왔다가 까마득하게 멀어져가고있었다.

(내 엄마다. 엄마!)

그는 끝내 의식을 잃고말았다. 그가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교회의 아늑한 방이였다. 웬 어부가 그를 구원했고 지나가던 목사가 사람들을 시켜 교회로 날라온것이였다. 다음날 한낮이 되여 황황히 달려온 라경숙의 눈물이 가득히 어린 얼굴을 보면서 현철은 이게 내 운명이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실로 다시는 상기하고싶지 않은 그의 불행한 추억의 한토막이였다.

그런데 문태석《랍북미수》사건과 관련된 연희의 가슴아픈 이야기가 느닷없이 그 추억의 닻을 올려준것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김현철은 말하고싶은것이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자기 부모들의 이름 석자만 알려주었어도 어쩌면 부산의 방파제에서 썩은 양배추에 운명을 거는 그런 터무니없는 일은 없었을것이라고…

그는 돌에서 삐여져나오지도 않았고 바람에 날려오지도 않았다. 인간에 의해 인간의 목숨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여났다.

리유가 어쨌든 인간의 생명은 가장 고귀한것이다. 하지만 비렬한 인간들은 자기들의 리익을 위해 뭇생명들을 길가의 조약돌마냥 차던지기도 하고 한포기의 풀처럼 짓뭉개버리기도 한다. 이것은 범죄이며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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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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