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아버지와 딸

6

 

맑은 아침이다.

라경숙은 춘천으로 뻗어간 간선도로를 따라 달리는 뻐스에 몸을 싣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열려진 차창으로 봄꽃향기가 실린 선들바람이 불어왔다.

김현철에 대한 걱정으로 밤새 시달린 라경숙의 속마음도 약간 개운해지는듯싶었다.

(그애한테 무슨 일이 생겼길래 제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을 마신걸가?)

어제는 마음이 불안하여 잠시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방금전에 현철과 통화가 이어졌다. 호텔방에서 잤는데 웬 사내가 자기를 데려다 눕히고는 숙박비용도 다 처리하고 갔더라는것이였다. 세상에 이런 선량한 사람도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혹시 현철이를 좀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처럼 각박한 세상에 누가? … 그는 언제나 현철에게 행운만이 따르기를 밤낮으로 기도하고있었다.

어느새 춘천시내로 들어선 뻐스는 강변의 북쪽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다리를 건너섰다.

아침의 춘천은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짙은안개에 휩싸여있었다. 끝도 없는 물의 련속이였다. 짙은 해감내와 물비린내에 페부가 젖어드는것만 같았다.

춘천은 물의 도시였다. 그리고 안개의 도시이기도 하였다. 소양호와 의암호에서는 늘 새벽안개가 피여올라 공지천일대를 뽀얗게 뒤덮군 하였다. 북한강줄기의 신연강을 막아 의암언제가 생겨났을 때 안개는 구름이 내려앉은듯이 더 짙어졌다. 그리고 소양강언제가 완공되면서 춘천은 사시사철 안개에 잠겨있는 도시가 되고말았다.

춘천의 토배기들에게는 이 안개가 답답하고 짜증나는 기후현상이였다. 그런데 타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게는 이 안개가 몽환적인 서정과 랑만의 표상인 모양이다. 하긴 부익부, 빈익빈의 생활론리가 뼈속까지 배인 이 사회에서 정신육체적으로 시달리고 지쳐버린 이들로서는 비몽사몽간이나 다름없는 안개속에서 뭔가 나름의 위안을 찾는것인지도 모른다.

이윽고 도시중심부를 벗어나 소양강언제가 보이는 마적산 동쪽기슭녘에 이르자 라경숙은 뻐스에서 내렸다. 그곳에는 단층이였던것을 2층으로 개축한 작은 성당이 있었다. 라경숙은 이곳에서 몇십년을 살고있었다. 그는 원래 카톨릭교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평범한 가정의 맏딸로 태여났다. 그러나 민족이 당한 수난의 파도는 라경숙의 화목하고 단란했던 가정을 마치도 작은 난파선마냥 쪼각내버렸다. 종가집 맏자식이였던 라경숙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일제의 창씨개명을 반대하다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자금을 조달한 사실이 들통나 재판을 받고 옥살이를 하였다. 그러다가 할아버지는 감옥에서 세상을 떠나고 해방을 맞아 풀려나온 아버지마저 혹독한 고문의 여독으로 해방된 이듬해에 끝내 숨을 거두고말았다.

그후 라경숙의 모친은 본가가 있는 인천으로 내려와 자수제품을 파는 작은 가게를 하나 마련하였다. 어머니는 성실하고 꾸준하게 그리고 이악하게 가게를 경영하며 생활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지난 전쟁시기 인천으로 상륙하는 미군의 함포탄에 명중되여 가게와 그곁에 붙어있던 집은 순식간에 재가루가 되고 어머니와 외가친척모두가 한날한시에 멸살되였다.

매캐한 포연이 평온과 안정을 깡그리 휩쓸어버린 재더미같은 거리, 포탄구뎅이만 남은 집터…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뒤늦게 돌아온 라경숙은 억이 막혀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열살이였다. 전재고아로 거리를 떠돌아다니며 쓰레기통을 뒤지고 구걸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인천거리의 역스러운 하수도에서 꼬부리고 새우잠을 자야 하는 방랑소녀… 이렇게 몇달이 지났는지 알수 없던 어느날 그는 검은 옷에 은십자가를 매단 한 수녀를 만났다.

라경숙이 의지가지할데가 없는 고아라는것을 안 수녀는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그를 데리고 수녀원으로 갔다. 그곳에 가니 비록 따스하지는 못해도 찬바람을 막아주는 벽이 있는 작은 방이 차례졌고 부지런히 일을 하면 굶지 않고 살수 있게 먹을것도 주었다. 처음에는 청소를 하고 수녀들의 뒤거둠질을 돕던 라경숙은 점차 자기의 가냘픈 운명을 하느님에게 맡기고 그의 은총을 바라는 수도의 길을 걷게 되였다.

수녀의 첫 생활은 아침부터 밤까지 기도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라경숙은 사랑하는 부모들이 지어준 자기의 본명대신에 《쏘피아》라는 괴이한 이름으로 불리웠다. 수련기간이 끝나자 그는 소양강기슭에 자리잡은 이 산골마을로 옮겨왔다. 물론 그때에는 여기에서 평생을 보내게 될줄을 라경숙자신도 몰랐다.

… 진눈까비가 내리고있었다. 수녀원의 마당은 온통 눈과 비물에 버물려진 진창으로 질쩍거리고있었다. 라경숙은 대문이 깨져나가라고 두들겨대는 소리를 듣고 고무신을 탈탈 끌며 마당에 내려섰다.

《문지기는 대체 어디로 갔지?》 하고 토달거리며 대문으로 다가서니 놀랍게도 빗장은 걸려있지 않았다. 단지 한쪽문을 고정시켜놓았는데 성급한 누군가가 그쪽만 밀어보고는 문이 걸린줄 알고 두드리는것 같았다.

진눈까비에 머리수건이 어느새 후줄근하니 젖어버렸다.

라경숙이 은근히 짜증을 내며 문을 삐쿵 열자 뜻밖에도 수녀원의 벙어리문지기가 밖에 서있었다. 흰자위가 번뜩거리는게 실성한 사람 같았다. 게다가 엄동설한에 웃동을 벗어 한 체소한 녀인을 감싸안고 한손에는 한무지의 옷꾸레미같은것을 안고 서있었다. 그런데 적동색의 가슴과 훌쭉한 배부위는 온통 빨간피로 매닥질해있었다. 에구머니! 하며 라경숙은 뒤걸음질을 치다가 궁둥방아를 찧었다. 문지기는 발로 대문을 또다시 걷어찼다. 아마도 녀인을 부축하고 나란히 들어서기에는 문이 좁다는 불만인것 같았다. 몹시 무서웠지만 라경숙은 이를 악물고 일어나 대문가로 다가가 바닥에 고정한 녹쓴 쇠쪼각을 뽑아냈다. 쇠쪼각에 심히 긁힌 손가락에 피가 내배였으나 라경숙은 두려움에 아픈줄도 몰랐다.

문지기는 그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녀인을 부축하며 현관을 지나 어느한 방으로 다급히 들어갔다.

눈과 비물에 흠뻑 젖고 흙탕이 게발린 라경숙은 초췌한 꼴을 해가지고 그 방으로 다가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그는 그만 악 하고 비명을 질렀다. 방안에는 치마저고리를 입은 웬 녀인이 실신하여 누워있는데 옷보따리인줄 알았던 보짐에서는 빨간 피덩이가 옴지락거리며 빽빽 울고있었다.

그 어린 생명의 배에서 녀인에게로 그냥 이어져있는 태줄이 눈에 띄웠다.

문지기는 라경숙의 손을 무턱대고 잡아끌었는데 그는 너무도 당황하여 어쩔바를 몰라 헤덤볐다. 그러다가 우선 태줄부터 끊어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망결에 가위를 들고 다가가다가 소독을 해야 한다는것을 깨닫고 초대를 켜들고 불소독을 하고나서 태줄을 잘랐다. 아기의 몸을 헝겊으로 꼼꼼히 싸매고 문지기에게 손짓하여 더운물을 가져오게 했다. 많은것이 의문스러웠지만 그보다 급한것은 사람의 생명구완이였다. 더운물로 아이몸을 깨끗이 씻어주고 다시 낡은 옷가지로 바람이 새들세라 꽁꽁 여며주고난 라경숙은 산모에게로 돌아앉았다. 실신해있는줄로만 알았던 녀인은 놀랍게도 가늘게 눈을 뜨고 미소를 짓고있었다. 라경숙의 행동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긴장하게 살핀듯 한 시선이였다. 그속에는 미안해하면서도 무척 고마워하는 빛이 어려있었다.

라경숙은 녀인의 언 볼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걱정말아요. 아이는 건강해요. 성모마리아의 축복을 받아 모든 일이 다 잘될겁니다.》

라경숙은 두손을 모아 산모와 아이를 위해 기도를 올리고 십자를 그었다.

다음날 오후쯤이 되자 그 녀인이 라경숙을 찾았다. 그는 당장 이웃군의 누군가를 급히 만나야 한다면서 인차 돌아오겠으니 아이를 좀 봐달라고 부탁했다. 라경숙은 얼떠름해지고말았다.

산모의 몸도 정상이 아닌데 지극한 만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떠나가는것을 보니 여간 심중한 일같지 않아보였다. 그렇게 떠나간 녀인은 그후 몇달이 지나도록 나타나지 않다가 겨울이 가고 다음해 이른봄 눈이 녹은 후에 뒤산 벼랑밑에서 변사체로 나졌다.

이삼일이면 돌아온다던 녀인이 한달째 돌아오지 않자 라경숙은 아기를 영아원에 맡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리고 녀인의 사망이 확인된 후에는 할수없이 부모대신 원장과 협의하여 김현철이라는 이름도 달아주었다. 아이가 예닐곱살 났을 때 라경숙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집으로 데려왔다.

그를 데려오던 때의 일들이 지금도 어제처럼 생생했다. 힘들다는 말 한마디 없이 타박타박 걸어온 어린이가 처음 보는 성당이 이상스러웠던지 별안간 십자가를 가리키며 저게 무엇인가고 물었다.

라경숙은 애가 아마도 카톨릭교와 인연이 있는가싶어 깊은 신앙심을 담아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 불행한 죽음의 길을 스스로 택하고 부활한 예수에 대해 자상히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듣고난 현철은 《아니요. 제가 묻는건 저게 쇠인지 나무인지 묻는거야요.》 하고 야무지게 말하는것이였다. 그 말이 라경숙을 섬찍하게 하였다.

그가 열살에 잡히자 기숙학교에 보낸 라경숙은 방학때 집에 돌아올 때마다 선을 따르고 악을 멀리하도록 말해주었다. 하지만 현철은 별로 흥미가 없는듯 했다. 그래도 라경숙은 양아들과 카톨릭교와의 인연을 맺게 해주려고 무진애를 썼다. 그후 자기의 이름을 라경숙의 호적에 올리려고 하자 현철은 오돌차게 물었었다.

《참말로 수녀님은 저의 친어머니가 아닙니까?》

라경숙은 너무도 천만뜻밖의 물음이여서 깜짝 놀랐다. 당황하여 어쩔바를 모르다가 서글픈 어조로 말했다.

《미안하다. 난 네 친엄마는 아니다.》

《맹세할수 있나요?》

《맹세코… 아니란다.》

그러자 현철은 획 돌아서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그때 라경숙은 자기가 수녀가 아니라 애의 친어머니였으면 하는 생각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다음날 애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사처에 련락을 띄우고 신발바닥이 닳도록 찾아다녀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근 1년이 되여서야 부산의 어느 교회에서 련락이 와서 가보니 완전히 거지꼴을 한 현철이가 뼈에 가죽만 남아가지고 기다리고있었다.

라경숙은 기가 막혀 곡성을 터뜨렸다. 하건만 녀석은 아무런 대꾸도 없이 입술을 꾹 앙다물고있었다. 그런 현철을 다시 춘천으로 데려오며 라경숙은 말했다.

《아마도 우린 모자의 인연이 없는게구나. 그러나 명심해라. 난 이 세상에서 그 누구보다도 너를 사랑한다. 넌 내가 심장으로 낳은 자식이니까.》…

성당이 바라보이는 길목에 다달으자 라경숙은 어제 밤의 일이 다시 떠올랐다. 김현철이 다 자라 성인이 되였다고는 하지만 그의 곁에는 자기외에 아무도 없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는데도 다 자란 사내라는게 시골에 있는 자기밖에는 따로 련락할 곳이 없다는 사실이 그것을 증명하고있었다. 사실 라경숙은 김현철도 자기처럼 과거와 속세의 인연을 모두 끊고 인생의 전부를 예수에게 의탁하고 신학의 길을 걷기를 바라마지않았다. 그래서 김현철의 출생과 관련한 비밀을 함부로 로출시키지 않았으며 하느님의 아들로 축복을 받아 잘살라는 편지와 함께 갓난 현철이가 성당의 대문앞에 놓여있었다는 거짓말도 꾸며내게 되였다. 그러나 무정하게도 양아들은 라경숙의 간절한 희망을 마다하고 끝끝내 기자의 길을 택하였다. 라경숙은 고아의 설음과 외로움으로 이어진 자기의 어릴적 추억과 지금껏 보아온 양아들의 성격과 인품으로 보아 욕망과 번뇌라는 속세에서 그의 인생행로가 결코 탄탄대로가 아닐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털어버릴수 없었다.

그애가 가야 할 운명의 길은 아직 멀고도 험난한데 이제 자기마저 하느님의 부름을 받고 이 세상을 하직하고나면 대체 누가 거들어준단 말인가. 서둘러 그에게 안해를 얻어주고 늦었지만 먼 친척들이라도 찾아주어야겠다는 결심이 라경숙의 가슴속에서 고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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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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