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아버지와 딸

4

 

《지금 어디 있소?》

다급한 말투였다. 김현철은 호텔에서 곧장 전송한 기사에 문제라도 생겼나싶어 무슨 일인가고 되물었다. 아마도 부장에게는 그의 현재 위치가 그닥 중요치 않은 모양이였다. 어디 있느냐고 급하게 물을 때는 언제인데 당장 강릉방향의 어느 도로로 달려가라고 지시하는것이였다.

《무슨 일입니까?》

김현철이 물었다. 부장의 빠른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밤 야경인지 아니면 오늘 새벽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그곳에서 차충돌사고가 일어난 모양이요. 김기자가 빨리 가서 사고의 전모를 알아보고 기사를 준비하오.》

부장은 그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를 끊었다.

김현철은 은근히 부아가 났다.

(내가 소나 말이야? 이젠 기자생활을 한지도 3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머슴아이 부리듯 한단 말야! 그 잘난 차사고! 뻔해. 이 서울바닥에 교통사고없는 때가 한시나 있느냐 말이야. 새벽에 있었다고 해도 지금이 대체 몇시야. 어쩌다 최형과 점심이나 같이할가 했는데… 한번 배짱을 부려볼가? 가도 점심이나 먹고 갈테다!)

속으로 그렇게 투덜대고있었으나 최세진에게 한 말은 정반대였다.

《신문사에 일이 생겼습니다.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

어느새 문가로 향하던 김현철이 되돌아섰다. 그의 눈길은 책상우에 놓여있는 신문철에 머물렀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최세진에게 부탁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좀전에 제가 읽은 랍북미수사건과 관련한 후속기사들이 발견되면 알려주십시오.》

긴급취재인것만큼 택시를 리용하지 않을수 없었다. 잠시후 택시에 오른 그는 생각했다.

이제 사건현장에 가봐야 볼트쪼각 하나도 남김없이 말끔히 정돈되여있을것이다. 그러니 이제 사건의 전모를 알아내자면 경찰서로 가는것이 제일 빨랐다.

김현철은 여전히 부장에 대한 불만을 토했다.

(젠장, 그 경찰서주변엔 기자출입실이 없는가? 그래그래… 사정이야 있겠지. 따져묻지 않아도 뻔해. 우리 신문사의 지역담당 기자가 앓고있다던지 아니면 결원상태던지… 다망한 인생사에 무슨 일인들 없겠어. 하지만 이건 너무해. 대휴라는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침에 한건 하기 바쁘게 또 몰아대니. 젠장! …)

경찰서에 도착한 그는 곧장 교통계를 찾아갔다.

신분증을 내보이고 새벽에 있었다는 차사고에 대해 묻자 경찰은 이미 많은 기자들의 단련을 받아서인지 시끄럽다는듯 턱으로 대기실 책상쪽을 가리켰다. 그우에 장부 비슷한것이 놓여있었다. 교통사고일지였다.

김현철은 번개같이 일지를 훑었다. 사건번호는 뛰여넘고 피해자와 목격자, 신고자, 사건내용, 조치내용, 처리결과, 범인검거, 특기사항 등을 재빨리 읽어내려갔다.

새벽녘에 강릉으로 가는 도로에서 택시와 자가용승용차가 충돌하였는데 사고의 원인은 택시운전사가 운전도중에 깜박 졸았기때문이였다. 마침 목격자가 있어 택시운전사와 묘령의 녀인이라는 피해자는 병원으로 이송 되였다. 그런데 사고가 발생한지 2시간만에 택시운전사는 숨이 졌고 피해자는 현재 치료중이다. 피해자가 이름과 주소를 밝히지 말아줄것을 강력히 요구하여 경찰은 동의했다고 하였다.

잃은 시간을 보충하자면 남이 뛸 때 날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인차 사건을 파악한 그는 그 자리에서 짤막한 객관보도기사를 써서 본사로 전송했다.

(흔히 있는 교통사고로군!)

일을 마치자 김현철은 약간의 피로를 느꼈다. 오후에 사무실로 돌아오니 부장이 아주 만족해하였다.

《잘했소. 정말 일처리 하나만은 번개불이라니까. 아마 지금쯤 석간에 실려 배포중일게요.》

《한양백화점 분양건말입니까?》

《아니, 교통사고건이요. 분양건은 보류되였소.》

뜻밖이였다. 교통계에서 기사를 대충 정리하여 전송하면서도 김현철은 설마 그게 실리랴 했다. 그런데 분양건은 밀리우고 교통사고건이 실리다니?! 택시운전사의 이름은 있지만 피해자의 전모에 대해서는 전혀 파악도 없는 그야말로 설익은 열매나 같은것인데… 어쨌든 한건 했다는 만족감이 뒤따랐다. 그런데 두시간이 지나 그 설익은 열매가 부메랑(오스트랄리아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활등처럼 굽은 나무막대기모양의 사냥도구)이 되여 날아왔다. 그사이에 아무래도 번개불에 콩닦듯이 얼렁뚱땅 기사를 써낸것이 마음에 걸려 피해자가 치료중이라는 병원을 찾아갔던 김현철은 환자가 이미 다른 병원으로 옮겨간 뒤라 허탕을 치고말았다.

맥이 빠진 걸음으로 신문사로 돌아와 현관으로 들어서는데 웬 늘씬한 처녀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김현철기자이시죠?》

생각에 잠겨 걸어오던 김현철은 깜짝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처음에는 처녀가 기둥뒤에서 갑자기 나타난데 놀랐고 말투도 시비조여서 기분에 거슬렸다. 그래서 눈살을 찡그리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소. 내가 김현철이요.》

처녀는 오른손을 쑥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싸한 인쇄잉크냄새가 채 빠지지 않은 석간신문이 쥐여져있었다.

애되면서도 날선 목소리가 김현철의 귀를 따갑게 지졌다.

《이 기사, 기자선생이 쓴게 맞습니까?》

김현철은 처녀가 내민 신문을 얼핏 내려다보았다. 오전에 취재한 교통사고와 관련된 기사가 눈에 띄였다. 김현철은 실눈을 짓고 처녀를 쳐다보았다.

(이 처녀는 누구인가? 택시운전사의 가족인가 아니면 피해자녀성의 친구인가? 대체 무엇이 불만일가?)

김현철은 애써 태연하게 물었다.

《예, 내가 썼습니다.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그의 태연자약한 자세가 아마도 처녀의 부아를 돋구어놓은듯싶었다. 별안간 처녀의 청높은 목소리가 현관을 울렸다.

《어쩌면 사실을 이렇게 날조할수가 있어요?》

김현철의 목소리도 따라 높아졌다.

《말조심하십시오. 날조라니요?》

《사실을 그릇되게 보도했으니 날조가 아니고 뭐란 말이예요.》

처녀는 손에 들었던 신문을 김현철의 발치에 탁 집어던졌다.

김현철은 아연실색했다. 아마 피해자녀성측이 아니라 사망한 택시운전사의 가족측인 모양이다. 아무리 설음이 크다고 한들 무슨 처녀가 이렇게 무례할수 있단 말인가!

주위를 지나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며 힐끔거렸고 몇은 아예 걸음을 멈추고 지켜보았다. 수군거리는 동료들의 시선을 인식하자 김현철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대신 처녀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니 더욱 기세가 오르는것 같았다. 처녀의 하얀 얼굴과 크고 검은 눈동자에 마치도 파충류를 보는듯 한 타매와 경멸의 기운이 한껏 내돋쳐있었다.

《하긴 밤새 술이나 마시고 만취되여 남의 집 문앞에서 고개방아나 찧는분이니 아무리 열성껏 글방아를 찧어야 그따위 쓰레기밖에 더 나오겠어요?》

모욕적인 그 말은 곁의 사람들이 가려듣지 못할 정도로 나직했으나 김현철은 마치도 구정물을 들쓴것만 같았다. 갑자기 남의 문앞이며 고개방아는 또 뭔가. 아차하는 다음순간 그는 이 처녀가 전혀 낯설지 않다는것을 느꼈다.

(그래, 장선배의 딸 장연희다!)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처녀는 어느새 현관문을 나서고있었다. 김현철은 발밑에서 신문을 걷어쥐고 다급히 뒤를 쫓아갔다.

노여움이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이보시오!》

김현철은 계단을 내려가는 처녀를 불러세웠다.

《말 좀 나눕시다.》

처녀는 뒤돌아보지도 않고 잘랐다.

《전 더이상 마주서고싶지 않아요.》

김현철은 그냥 따라가며 소리치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도 일방적으로 이렇게 떠들고 가는것은 례의가 아니지요. 이건 중상모독죄에 속합니다.》

《그럼 고소하세요.》

《난 그 사건을 취급하고 종결한 교통사고일지의 내용을 기사화했단 말입니다!》

처녀가 불쑥 멈춰서며 획 돌아섰다.

그바람에 김현철은 하마트면 그와 정면으로 얼굴을 부딪칠번 했다.

처녀가 차겁게 물었다.

《그래서요?》

《모든게 사실입니다.》

《난 죽은 택시운전사를 생명보험에 들게 했던 보험회사의 직원이예요. 사고직후 운전사는 내게 전화를 했고 나는 곧 현장으로 달려가면서 우리 회사의 사건조사원과 련락했어요. 나와 조사원은 차를 타고 경찰보다 10분이나 앞서 현장에 도착하여 촬영을 했고 증거물에 토대하여 조사일지도 작성했어요. 우리가 사고현장과 경위를 파악분석한데 의하면 기사의 내용과 정반대랍니다. 이젠 어떤 일을 저질러놓았는지 아시겠어요?》

처녀의 눈초리가 싸늘해졌다.

《당신…》 하고 그는 나직하지만 매서운 말씨로 못박았다.

《당신 그 사람을 두번 죽였습니다!》

순간 김현철은 오싹하고 솜털이 곤두서며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왜?) 한방망이 얻어맞은것 같이 얼떠름했던 그는 인차 정신을 차렸다.

(내가 그 사람을 죽였다구? 과장해도 분수가 있지!)노기와 창피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가 그냥 돌아서서 빨리 걷는 처녀를 다급히 쫓아가려는데 웬 억대우같은 사내가 앞을 막아섰다. 사내의 오른쪽턱밑에 길게 째진 칼자리같은것이 눈에 띄였다.

《당신은 누굽니까?》

김현철이 물었으나 사내는 고압적인 자세로 한번 흡떠볼뿐이였다. 앞을 막아선 그를 에돌아가려는데 이번에는 낯선 두 청년이 바투 다가서며 량팔을 잡았다.

《이거 왜 이래?》 하며 김현철은 몸을 틀어 간신히 팔을 뽑았다.

그들중 한 사내가 말했다.

《누님이 더이상 나눌 얘기가 없는것 같은데 물러서십시오.》 경어속에서 위압감이 풍겼다. 저쪽에서 처녀가 차에 오르다말고 소리쳤다.

《동수오빠, 그만하고 우린 가요.》

처음 김현철의 앞을 막아섰던 사내가 마뜩지 않은 눈길로 다시한번 거들떠보고는 아무말없이 돌아섰다. 그뒤로 호위원인듯싶은 두 청년이 둬걸음 떨어져 따랐다.

《저건 또 뭐야? 깡패 아냐?》

너무도 어이없이 당한듯 한 느낌이 들어 김현철은 혼자 중얼거렸다.

주위의 동료들이 아직도 흘낏흘낏 쳐다보고있어 여간만 거북스럽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도 마음은 당황스러웠다. 허나새나 처녀의 기세로 보아 거짓은 아닌듯싶은데 만약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런 난사가 또 어데 있는가. 아무래도 현장을 돌아보지 않은것이 속에 걸렸다. 그런데 피해자라는 녀성은 당장 행처를 알수 없다. 잠시 골머리를 앓던 김현철은 전화기를 들고 사고기록을 보여주었던 경찰을 찾았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통사정을 하던 끝에 당시 현장을 처음 발견하였다는 교통순경의 이름과 집주소,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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