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아버지와 딸

3

 

김현철이 신문사에 도착한것은 공교롭게도 조회가 한창 진행되고있는 시각이였다. 그는 조심히 문을 여느라고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마치 폭탄터지는 소리처럼 들렸던 모양인지 장내의 눈길이 일시에 그에게로 쏠렸다.

《죄송합니다.》

변명을 하였으나 국장은 별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중단되였던 욕설을 계속했다.

《하여간에 좀더 정확히 조사를 하고 발표하란 말이요. 이번에 아무런 증거도 없는 기사를 실었다가 얼마나 곤욕을 치른줄 아오? 모두들 알았소? 알겠는가?》

《예.》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며 굳은 얼굴로 국장의 번들거리는 벗어진 이마를 쳐다보았다.누군가가 한 유명짜한 예술인의 치정생활을 까밝힌 기사를 신문에 냈는데 오보로 밝혀졌다는것이였다. 명예훼손으로 법정에 기소된다는 말들도 있었다.

《쯧쯧, 그저 돈벌이광고가 아니면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사들에만 코를 벌름거리더니…》

옆사람이 두덜거렸다. 마치 말썽을 빚어낸 필자를 탓하는것 같았지만 실은 신문사의 중진들을 야유하는것이였다.국장은 그 말을 못 들은척 하며 마치도 오보의 원인이 기자들에게 있는듯 랭담하게 말을 잘랐다.

《오늘 조회는 이것으로 끝내고 당장 일들을 시작하시오.》

이젠 끝이 난가보다싶었는데 부장이 《김기자!》 하고 현철을 찾았다.

《오늘 대휴인데 왜 나왔소?》

《좀 찾아볼 자료가 있습니다.》

《잘됐소. 그러지 않아도 손이 딸렸는데… 이제 곧 프라자호텔로 가보오. 거기서 한양백화점의 주식분양과 관련된 총회가 있다고 하니까.》

자료를 챙기려고 자기 자리에 돌아오니 이번에는 옆자리의 장필성이 물었다.

《부장이 왜 찾았소?》

《일감이 있답니다.》

《한양백화점 분양건 맞지?》

김현철은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돌아보았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장필성은 눈을 끔쩍거렸다.

《김기자도 내 나이만큼 살면 손짓, 발짓, 눈짓을 보고도 부장이 뭘 원하는지 알게 될게요.》

또 나이타령이다. 김현철이 입을 비죽거리는데 장필성은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물었다.

《그건 그렇고… 어제는 언제 갔소? 집에 들어와 차라도 한잔 마시고 갈게지.》

대뜸 연희라는 처녀의 서리돋친 얼굴이 떠올랐다. 어제 밤 그리고 새벽에 이어 또다시 눈앞에 얼른거리면서 기분을 잡쳐놓는 모습이다. 그런줄도 모르고 장필성은 느긋한 목소리로 묻는다.

《우리 딸을 만나봤소? 그래 어떻소?》

《예, 예. 정말 대단한 따님을 두셨습니다. 인물곱고 깨끗하고… 말씨또한 깔끔하고… 따님의 목소리가 얼마나 맑은지 취기가 휘딱 가셔졌습니다.》

김현철의 대답이 칭찬같지만 그속에 심한 야유가 섞여있음을 장필성은 인차 눈치챘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구차한 변명같은것이 새여나갔다.

《그애가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참 제딴에는 불행을 아는 아일세. 내가 어미잃은 설음에 겨울세라 어자어자했더니만 이젠 제 밥 먹고 컸다고 내 말도 잘 안 듣는다오. 그래도 말이요. 마음은 참 고운 아이라네.》

그 말을 귀등으로 흘려듣는지 김현철은 고개를 건성으로 끄덕끄덕하더니 서둘러 취재가방을 챙겨들었다.

장필성은 그에게 취재를 잘하라고 손을 흔들어보이며 속으로 탄식했다.

(제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군. )

부장에게 제출할 기사를 정리하면서도 장필성의 마음은 온통 딸에게 가있었다. 그가 새벽에 눈을 떠보니 창밖에는 아직 달이 휘영청 떠있는데도 딸의 모습은 방안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서둘러 전화로 찾자 어느 한 보험의뢰인이 사고를 당해서 그곳으로 달려가고있다는것이였다.

장필성은 한숨을 내쉬였다. 이런 때 밥상밑을 네발로 발발 기여다니는 손주녀석이라도 있으면 위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라자호텔에서 취재를 마치고난 김현철은 S대학 도서관으로 걸음을 돌렸다.

대학선배인 최세진을 만나려는것이였다. 김현철은 택시회사에서 운전을 시작한지 이틀째 되던 날 우연히 그를 태웠었다.

그는 김현철보다 나이가 세살우였다. 그러나 김현철은 언제나 그를 선배로서가 아니라 스승처럼 존대했다. 김현철이 대학에 입학할 때 최세진은 이미 대학 총학생회의 핵심이였고 학생운동의 선봉적인 인물로 대다수 학우들의 존경을 받고있었다.

그는 이미 1987년 6월민주항쟁을 앞둔 때에 대학에서 공개기자회견을 가지고 독재타도, 학원의 민주화, 미군철수 등을 위한 투쟁에 백만학도가 총궐기할것을 호소한것으로 하여 경찰에 련행되였었다. 하지만 동료학생들과 대학의 진보적인 교수들, 시민들의 석방투쟁에 이어 항쟁이 고조되자 군부독재《정권》은 최세진을 비롯하여 련행한 학생들의 일부를 부득이 석방하지 않으면 안되였다고 한다.

물론 최세진은 구치소 철문을 나서자 곧바로 박종철고문학살사건과 관련한 당국의 은페조작을 규탄하고 민주헌법쟁취를 요구하는 범국민대회연단에 뛰여올랐다.

지금도 김현철은 고등학교졸업시기에 직접 목격한 항쟁시위의 장면들을 똑똑히 기억하고있었다.

낮이나 밤이나 노도쳐흐르는 항쟁의 물결, 이르는 곳마다 화염에 휩싸여 불타고있는 경찰차량들과 관공서들, 시위대렬이 한번 지나가면 마치 전장터를 방불케 하듯 콩크리트쪼각들과 몽둥이, 찢어진 현수막들과 겨울날의 눈처럼 삐라들이 하얗게 깔려있던 도로들… 당시 김현철은 학급동료들과 시위현장으로 돌들을 날라오기도 하고 포석을 깨서 항쟁자들의 손에 나눠주기도 하면서 크나큰 희열에 휩싸였었다. 때로는 《지랄탄》이라고 불리우는 악성최루탄을 미친듯이 쏘아대는 경찰들이 밉살스러워 돌을 던지기도 했다.

비록 사회물정은 다 알수 없었지만 분명 세상이 뒤집히고 변하고있다는것만은 명백했다. 서울과 부산, 대구, 광주, 원주, 춘천 등 큰 도시들과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전역에서 파쑈당국의 모진 탄압을 박차고 수십여일동안 계속된 항쟁에는 청년학생들뿐만이 아니라 로동자, 농민, 지식인, 종교인들과 재야인사, 중소기업가, 상인들은 물론 일부 공무원들까지 합류해나섰다.

후날 기록에 의하면 당시 민정당에서 군사독재의 연장으로서 군부출신의 《대통령》후보를 선출한 6월 10일 당일에는 50만명, 26일에는 180여만명이 시위에 떨쳐나선것을 비롯하여 20일동안 항쟁에 참가한 각계층 군중은 무려 300여만명에 이른다고 했다.중경상을 입은 경찰의 수가 6 300여명에 이르고 구속된 시위자수는 근 2만여명에 달했으며 수백대의 경찰차량이 파괴, 소각당했다. 그러나 당국이 내린 《갑호비상경계근무령》으로도, 10여만명에 이르는 경찰병력으로서도 거세찬 항쟁의 불길은 막을수 없었다.

부득불 군부《정권》은 집권연장을 위해 내둘렀던 《4. 13호헌조치》의 철페와 《직선제개헌》, 구속자석방을 내용으로 하는 《특별선언》과 《특별담화》라는것을 련이어 발표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이것은 군부파쑈독재와 그를 배후조종하는 미국에 대한 심대한 타격이였고 수백, 수천만의 근로민중이 고귀한 피와 희생의 대가로 쟁취한 결실이였다.

6월항쟁을 통하여 민중은 깨달았다. 이제는 이 땅에서 민주통일세력이 위력한 력량으로 등장했으며 자주, 민주, 통일은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써도 되돌려세울수 없는 대세로 되였다는것을, 각계층의 민중이 단합된 힘으로 일떠선다면 그 어떤 파쑈독재의 보루도 무너뜨리고 진보민주세력의 결정적인 승리를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하지만 그때 민중이 피와 희생으로 거둔 승리가 완전한것이 아닌 일시적인것이며 그들의 투쟁은 시작에 불과한것임을 알고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못했다. 후에 깨달은것처럼 이 땅에서 군사파쑈통치가 완전히 종식된것은 아니였던것이다.

물론 그 당시로서는 이 모든것을 알수 없었던 김현철에게 있어서 항쟁의 기수로 나섰던 최세진과 같은 인물들은 마땅히 선망의 대상이 아닐수 없었다. 더우기 항쟁이후 대학을 졸업한 일부 운동권출신들이 당국의 회유기만에 유혹되여 투쟁리념과 리상을 거리낌없이 포기할 때에도 최세진은 밑바닥에서부터 시민운동을 벌려나갈 결심을 품고 전국련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련합의 략칭)에 몸을 실었던것이다. 그는 인차 조직의 주요인물로 등장했다.

전국련합이 강령으로 내세운 민중생존권수호와 외세의 간섭배격, 조선반도의 평화보장과 자주민족통일추진, 민족민주세력의 통일단결 등은 민중들속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도 그럴것이 조직이 토대하고있는 발판자체가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지식인, 종교인 등 각계층으로 이루어져있었으니 그들을 대변하는 강령이 달리될수는 없는것이였다.

그처럼 민중이 바라는 강령이고 민족을 위한 길이건만 자유민주주의가 보물처럼 넘쳐흐른다는 이 땅에서는 걸음마다 수난의 십자가를 걸머지지 않으면 안되였다.동족이 그리워 그들과 마주앉아 통일론의를 해보자고 북에 잠간 다녀온 상임고문인 70고령의 로목사마저 《탈출잠입죄》로 오라를 져야 하는 세월이니 이미 당국의 요시찰대상으로 지목되여있는 최세진에게 있어서 령어생활은 별로 새로운것도 아니였고 놀랄만 한 일도 아니였다.

그가 한동안 좀 보이지 않는다고 김현철이 생각할 때쯤이면 어김없이 최세진은 《보안법》위반행위로 재판정에 서있지 않으면 《옥중서한》을 발표하는것으로 자기의 존재를 시위하군 했다. 그럴 때마다 정비례하듯 그의 인기는 더욱 높아지군 했다.

김현철이 신문사에 입직한 직후에도 최세진은 당국의 불허를 무시하고 전국련합과 범민련 등 진보민주세력들이 공동주최하는 통일행사를 주도한것으로 하여 징역형을 언도받았었다. 그러던 그가 바로 올해초에 형기를 마치고 풀려난것이였다.

택시안에서 최세진은 몹시 반가와하며 김현철에게 물었다.

《아니, 이건 어떻게 된거지? 언론계의 별을 꿈꾸는 기자선생이 갑자기 택시운전이라니… 웬 일인가?》

김현철도 반색하며 그의 말을 받았다.

《이게 바로 최형이 나에게 요구한게 아닌가요? 민중의 마음을 늘 머리밑에 베고있어야 한다, 민중의 아픔을 느껴야 한다! 하하하, 왜 내게는 잘 어울리지 않는 모양입니다?!》

김현철에게서 사연을 듣고난 최세진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민중의 목소리에 항상 귀를 기울이는 정의로운 기자가 되라고 격려하고난 그는 지금 바빠서 그러니 시간이 나면 찾아오라고 했다. 그리고는 요즘 일이 있어 S대학 도서관에 나가있다고 하면서 그곳으로 오면 된다고 귀띔했었다.

김현철은 여유가 좀 생기자 선참으로 최세진의 꺽두룩한 모습을 떠올렸다. 그를 만나 회포와 정을 나누고 이야기도 듣고싶었다. 사전통보도 없이 오는 그였지만 최세진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의자를 권하고난 그는 정겨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침부터 어딜 그리 바삐 다녀오나?》김현철은 겸손하게 대답했다.

《프라자호텔에 다녀옵니다.》

《호텔에? 왜 무슨 기사거리라도 있은게지?》

《한양백화점의 주식분양과 관련한 주주총회가 있었습니다.》

《그거 흥미있었겠군.》

《흥미는 무슨?! 현실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재산과 상속에 관한 시시껄렁한 일들입니다.》

《꼭 그렇지만은 않네.》

최세진은 차를 권하며 말을 이었다.

《추락하는 한양그룹의 실체를 알자면 오래전으로 거슬러올라가야 하겠지만 전번 대통령선거가 시작이였다고 할수 있지. 우익보수세력이 내세운 후보를 로골적으로 지지하여 막대한 재정지원까지 했던 한양그룹으로서는 자기들의 기대가 물거품으로 되여버리자 비상이 걸렸어. 게다가 현 정부가 집권후 강력한 재벌개혁정책을 선언하고나서자 살아남기 위한 모지름으로서 당국과의 관개개선을 위한 인맥구축에 나섰지. 그러나 이미 경쟁력이 만만치 않은 다른 재벌들에게 치워 근근득식하지 않을수 없었어. 그런데 화는 홀로 오지 않는다고 최근 몇년사이 크고작은 비행기사고가 련달아 발생한데다가 한양항공회장이 거액의 횡령혐의로 구속되였네. 아직도 국세청이 한양의 회계처리에 의문을 갖고 은밀히 내사작업을 벌리고있는데다가 한양그룹일가의 비리를 고발하는 투서까지 손에 넣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있지.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한양해운사장 역시 기소될 정황이라 주가가 폭락하게 되였다고 하더군. 결국 몸통을 살리기 위해 팔다리를 잘라야 할 형편이니 한양백화점을 내던지는것이겠지.》

김현철은 빙그레 웃었다. 최세진이 그동안 구속되여있었다고 하지만 경제계의 사말사까지 예리하게 꿰들고있었기때문이였다.

주도세밀하고 빈틈이 없는 그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도 변한게 없었다.

김현철은 그가 잠시 숨을 돌리는 기회를 리용하여 말을 이었다.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양은 서울 프라자호텔에 대책본부를 마련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있습니다. 변호인단도 전 법무차관, 전 대검차장, 전 대검형사부장, 전 서울지검장 등 거물급들로 꾸렸다고 합니다.》

《흥!》 하고 최세진은 너절하다는듯 코웃음을 쳤다.

《구린 곳에 파리들이 모여들기마련이지.》

《어찌겠습니까. 그게 바로 황금만능주의에 젖을대로 젖은 이 사회의 생리가 아닙니까.》

《물론 지금은 권력과 재력이 판을 치는 세상이지만 반드시 근로민중이 주인이 되는 그런 날이 올거네. 진리와 량심을 생명보다 귀중히 여기고 민중과 겨레를 위해 자기를 바치는 정의로운 사람들의 단결된 힘과 투쟁이 꼭 그런 세상을 안아올거라고 난 믿네. 이 길에 자네나 나의 존재가치와 사명감이 있는거지.》

최세진의 과분한 기대에 마음이 부풀어오른 김현철은 방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그런데 최형은 이곳에서 뭘 합니까?》

최세진은 담담하게 웃었다.

《일이 잔뜩 밀렸지. 당장은 머지않아 있게 될 6월민주항쟁과 관련한 기념강연을 준비하느라고 옛 자료들을 보고있는중일세.》

《흥미있는데요.》

김현철은 책상앞으로 다가갔다. 그우에는 두툼한 신문철들이 놓여있었다. 얼핏 보니 1987년초에 발행된 신문들이였다.이 땅에 또다시 6월이 오고있다.

손에 잡히는대로 신문을 펼치자 항쟁당시의 보도기사들이 선뜻 눈앞에 다가들었다. 김현철은 10여년전 서울시청앞을 꽉 메웠던 항쟁시위대오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나날에 목쉬게 웨쳤던 구호들이 귀전을 울리는듯 했다.

감회가 새로와진 김현철은 신문의 아래우를 훑었다. 불쑥 중간부분에 있는 기사에 눈길이 꽂혔다.

《랍북탈출 문태석씨 어제 귀국》이라는 표제우에 수염이 더부룩하게 자란 방랑자같은 행색의 사나이의 모습이 안겨왔다.

《9일 오후 귀국한 문태석씨는 <서울땅을 밟으니 정말 살았다는 기분이 든다. >며 악몽같은 당시를 설명했다.》

이 설명문밑에는 그 사나이의 기자회견내용이 게재되여있었다.

간단한 내용을 보니 문태석의 처 김춘옥이라는 녀성이 북의 《녀간첩》으로 흡수되여 남편을 《랍치》하려고 하는 속에서 본인이 구사일생으로 탈출했다는것이였다.

《뭘 그리 보나?》

김현철이 한동안 말이 없자 최세진이 천천히 책상옆으로 다가왔다.

《뭔가?》 하고 김현철의 손에 들린 신문을 내려다보던 그는 인차 말을 이었다.

《아- 그거, 강연제강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어쩐지 좀 이상한 사건이더군.》

《그래요?!》

이상한 사건이라는 말에 호기심을 느낀 김현철은 신문철을 번졌다.

(안해가 남편을 랍치하려고 하다니? …) 대체 어떻게 벌어진 일인가 궁금하여 이 사건과 관련한 다음 기사들을찾아보는데 인차 눈에 띄웠다.

《홍콩에서 발견된 변사체-누가 김춘옥을 죽였나?》라는 물음을 표제로 한 기사에는 사건의 주요인물인 김춘옥이 홍콩에 있는 자기의 집에서 변사체로 나타났다고 했을뿐 구체적인 해명은 없었다. 관련기사들은 그것이 전부였다.

김현철은 신문철을 책상우에 내려놓고 최세진에게 그후 사건결과에 대해 물었다. 최세진은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없네.》

《없다니요?》

《그게 다야.》

《명색이 간첩사건인데 그럴수 있을가요?》

《그렇게 흐지부지 종결되였더군. 그래서 더욱 이상하네. 처음 이 기사를 발견했을 때 나도 1987년의 소용돌이치는 정국속에서 이런 사건도 있었는가 하고 참으로 놀랐었네. 그래서 시간이 나는대로 대체 어떻게 벌어진 일인지 차근차근 알아볼 계획이네. 사실말이지 이 땅엔 이런 이상한 사건, 종잡을수 없는 수수께끼들이 수다하네. 그것들은 그 성격과 본질에 관계없이 독재권력을 절대적으로 유지, 비호하고 동족을 적대시하는 촉매제의 역할을 감당해왔지. 이제는 이 의문의 수수께끼들을 하나하나풀어 력사의 진실을 밝힐 때가 되였다고 보네. 지금 시민단체들이 과거 독재시기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불행과 고통을 강요한 비극적인 공안사건들에 대한 해명을 요구해나서고있는 사실도 결코 이와 무관하다고 볼수없네. 이것은 자기자신과 직접적으로 련관이 있든없든 다시는 그러한 암흑의 시대를 용납할수 없고 또 용납해서도 안되는 우리 민중에게 있어서 오늘날 더는 미룰수 없는 력사적과제가 아니겠나. 여기서는 자네나 나나 례외가 될수 없는거지.》

김현철은 눈살을 쪼프리고 생각을 모았다. 기자특유의 직업적인 호기심이라 해야 할지 혹은 최세진이 말한 의무감때문인지 딱히 찍어 말할수는 없지만 벌써 그의 정신은 사건의 와중속으로 깊숙이 휘말려들고있었던것이다.

(한 사내의 《랍북미수》사건, 그의 처는 북의 《간첩》… 그런데 집에서 살해된 녀주인의 변사체가 발견되였다?! …)

찬찬히 더듬어볼수록 더욱 궁금해졌다. 《랍북미수》사건이라는데 북에서 추구한 목적은 무엇이였을가? 더구나 랍치자가 안해였다는데 이런 해괴한 일도 있는가? 그런데 녀인은 왜 죽었을가? 대체 어떻게 죽은것일가? 왜 그 녀인의 죽음을 해명한 기사는 없는것일가?

머리속으로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기사를 다시 자세히 보려고 신문철을 번지려는데 전화종이 울렸다. 부장의 호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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