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회)

제 1 장 아버지와 딸

2

 

… 바람에 외등이 떨고있다. 얼음같이 차거운 달빛아래 홀로 선 외등이 꺼질듯말듯 연한 빛을 뿜고있다. 그 외등곁으로 낯선 처녀가 다가선다.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 서리가 비낀듯 한 날카로운 표정… 흑진주처럼 까만 눈동자는 금시라도 속을 꿰지를듯이 쏘아보고있다. 상큼한 코날은 예리하다 못해 손가락을 가져가면 금시 베일듯 한 섬찍한 느낌을 준다. 장미처럼 빨간 처녀의 입술이 열렸다.

《가세요!》

김현철은 몸서리를 쳤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살뜰한 그 무엇을 기대하고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욱 당황하고 얼떠름해졌다.

《가세요. 다시는 이 집 문앞에 얼씬도 하지 말아요!》

김현철은 그 처녀가 자기가 술에 취했다고 못마땅해한다는걸 깨달았다. 자신을 변명할 맞춤한 구실을 주어섬기려 중언부언했다. 그러나 처녀는 매몰차게 내뱉았다.

《주정뱅이! 고주망태! 쓰레기! …》

껌벅거리던 외등이 끝내 꺼지고 어둠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처녀의 허상이 사라지고있다. 김현철은 날아가는 처녀의 소매깃이라도 거머쥐려고 손을 내뻗쳤다.

(난 주정뱅이가 아냐! 나 기자야… 가더라도 내 말을 듣고 가라니까. )

그는 고래고래 소리치고싶었으나 목이 꽉 잠겨 도무지 말이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있는 힘을 배에 모았다가 단숨에 내뿜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그 서슬에 눈이 번쩍 띄였다. 눈부신 해빛이 비쳐들고있었다.

(꿈이였구나. )

안도의 숨이 나갔다.

다음순간 에쿠- 하고 외마디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났다. 해가 중천에 떴으니 틀림없이 지각을 했다. 침대에서 내려서자바람으로 옷장문을 벌컥 열었다.

그런데 거기에 마땅히 걸려있어야 할 외출복이 보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에 있어?)

장아래에 떨어졌는가싶어 허리를 구부리던 김현철은 그제서야 자기가 외출복도 벗지 않은채 잠자리에 누웠다는 사실을 알았다. 뒤미처 오늘은 대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긴장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허청허청 탁자로 다가간 그는 물병을 들고 찬물을 벌컥벌컥 마시였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났다.

쏘파에 털썩 주저앉는데 좀전의 꿈이 생각났다.

(대체 누구지?)

기억을 더듬었다. 초기에는 갈피를 잡을수 없더니 점차 어제 밤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뻐스에서 내려 장필성의 집이라는 곳에 당도하니 집대문까지는 백걸음정도 언덕길로 올라가야 하였다. 비틀거리며 그의 집앞까지 도착했는데 장필성이 불쑥 집열쇠를 사무실에 놔두고 왔다는것이였다. 아직 그의 딸이 퇴근을 하지 않았기때문에 장필성은 딸에게 전화를 했다. 그리고는 대문앞에 펄썩 주저앉더니 김현철에게도 곁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의 곁에 앉았는데 장필성은 주정인지 모를 소리를 자장가처럼 웅얼거리며 딸에 대한 자랑을 한껏 늘어놓는다. 그런대로 김현철은 술을 과음한데다가 아흐레째 새벽부터 뛰여다닌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들어 고개방아를 찧다가 솔곳이 잠든것 같다.

누군가가 어깨를 툭툭 건드리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푸른 목수건을 두른 처녀의 큰 눈이 말끄러미 내려다보고있었다.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자 장필성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대신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김현철이 주섬주섬 일어서서 그 문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처녀의 팔이 빗장처럼 가로막았다. 의아해 쳐다보니 처녀는 고개를 외로 틀고있었다. 그의 눈길은 외등이 켜있는 백걸음아래의 도로쪽으로 향하고있었다.

김현철은 이 처녀가 장필성이 좀전까지 그토록 귀아프게 자랑하던 사랑스러운 따님인 장연희이고 지금의 자세는 그만 돌아가라는 요구임을 대번에 알아차렸다. 픽 선웃음을 짓고난 김현철은 허청허청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까지 대문앞에 서서 지켜보던 처녀는 비난의 눈길을 돌려 뭐라고 종알거리며 대문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는다. 그 종알거리는 소리가 마치도 《주정뱅이!》라는 욕지거리인듯싶어 김현철은 취기와 함께 울화가 머리끝으로 몰켜드는것 같았다. 그렇다고 맞대놓고 성을 낼수도 없어 상처입은 자존심에 발만 탕탕 굴렀다. 취기와 노여움이 한데 엉켜서 오는 길에 집근처의 술집에서 또 한차례의 화술을 마시고서야 하숙집으로 올라온것 같은데 어떻게 열쇠를 열고 들어와 침대에 어푸러졌는지는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처녀의 표표한 눈빛이 그의 가슴을 찔러 상처를 낸듯싶다. 꿈에서 본 앙칼진 모습의 처녀는 틀림없이 연희일것이다.

김현철이 지끈거리는 골머리를 싸쥐고있는데 따르릉하고 전화종이 울렸다. 수화기로 양어머니인 라경숙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손전화기의 전원이 꺼져있길래 혹시나 해서 집으로 한다. 오늘은 출근 안해도 돼? 휴식이라고… 그래, 잘됐다. 좀전에 네 기사를 봤어. 정말 잘 썼더라. 어쩌면 택시운전사들의 불행한 생활을 그렇게 방불하게 쓸수 있을가. 정말 불쌍하고 동정이 가더구나.》

라경숙의 칭찬을 듣느라니 시틋한 꿈때문에 사위스럽던 기분이 다소풀리는것 같았다.

김현철은 살뜰한 정을 담아 말했다.

《어머니, 제 그새 바빠서 전화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며칠후 짬을 내서 춘천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요새 날씨도 변덕스러운데 몸건강에 신경쓰십시오.》

라경숙은 늙은이 걱정말고 너나 몸간수 잘하라고 당부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김현철은 탁자우의 물고뿌를 들고 찬물을 또 들이켰다. 그리고는 의자등받이에 허리를 쭉 기대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의 어린시절에서 제일먼저 떠오르는것은 뽀얗게 먼지가 오른 고아원의 검은 쇠울타리였다. 교회에서 운영하는 그 고아원의 늙은 수위는 한쪽다리를 절었다. 그러나 《용의주도하게》도 뼈가 앙상한 아이들이 그 쇠울타리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단속을 곧 잘했었다.

잠자리나 메뚜기를 후려잡아 버석버석 씹어넘기며 그 비릿한 곤충으로 주린 배를 달래면서 때먼지가 딱지처럼 더덕더덕 늘어붙은 쇠울타리에 껌처럼 붙어서서 짬새로 내다보는 바깥세상은 그래도 넓고 자유로워보였다.

일부러 인가와 떨어져 지은탓인지 아니면 버림받은 인생들임을 시시각각 깨닫게 하려는것인지 한주일이 지나도록 행인의 그림자조차 얼씬하지 않는 정문밖의 외통길에는 대낮에도 음산하고 쓸쓸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도 고아들에게는 그 길을 벗어나면 주린 배를 채울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때로 녹쓴 철문이 삐걱삐걱 열리며 젊은 부부들이 오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여윈 고아들은 막연하면서도 간절한 기대를 품고 주춤거리면서 그들의 가까이에 다가서려고 애썼다. 그들이 여러달을 두고 그렇게 오가다가는 한 아이를 양자로 데리고 어디론가 사라지리라는것을, 그리고 그들을 따라가면 음침한 고아원에서보다는 배불리 먹을수 있으리라는 천진한 기대때문이였다.

물론 개중에는 양자로 갔다가 몇달후에 병약해진 몸으로 도로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았으나 김현철은 그런 애들마저 무등 부러웠었다.

간혹 구청에서 나왔다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주런이 세워놓고 키가 좀 크다거나 비교적 몸이 괜찮아보이는 애들을 골라 데려가군 했다. 후에 돌아가는 말이 그애들은 외국에 간다고 했다. 거기에 가서 돈많은 부자들의 양자가 되여 호사를 누린다는것이였다. 너나없이 그 축에 들려고 애쓴것은 물론이였다. 김현철도 몇번이나 그속에 끼울번 했다. 일부러 구청직원들앞에서 발뒤축도 몰래 세워보고 등이 휘도록 배도 내밀어보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양어머니와 친하다는 원장이 《넌 몸이 너무 허약해서 안돼.》라고 하며 쫓아버리는것이였다. 뽑혀가는 애들이 부러워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외국에 간 아이들이 돈에 팔려갔다는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당국에서 《외화획득》을 위해 장려하고있는 《해외입양》이라는것이였다.

그렇게 입양된 아이들은 말도 통하지 않고 정도 없는 낯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하루종일 주인집 아이보개를 하거나 어른들도 힘에 부치는 집청소 혹은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한다고 했다. 때로는 모진 매를 맞기도 하고 어떤 애들은 불치의 병을 앓는 외국어린이들을 위해 장기이식수술대상으로 된다고도 했다. 마치 옛말에서 나오는 무시무시한 장면처럼 느껴져 차마 믿을수가 없었는데 후에 외국잡지들에 실린 사진들을 보니 더 끔찍했다. 그 사진속에는 《입양아》라는 사내애가 방안이 아니라 집마당에 림시로 가설해놓은 개우리같은데서 목에 쇠사슬까지 매여있는 모습이 담겨져있었다.

그후부터 몸서리치는 사실에 놀란 많은 아이들이 그곳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고아원을 뛰쳐나갔다가는 경찰들에게 붙들려 끌려와서는 끝끝내 노예살이, 죽음의 길로 떠나가군 했다.

김현철은 훨씬 세월이 흐른 후에야 자기가 그처럼 바랐던 《해외입양》이 당국에서 밑천을 별로 안 들이고 큰돈을 벌기 위해 집요하게 추구해온 고아수출, 현대판인신매매라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리고 자기가 그속에 기적적으로 끼우지 않을수 있은것은 심한 영양부족으로 인한 허약때문이기도 하거니와 라경숙과 가까운 원장이 남몰래 도와주었기때문이라는것도 깨닫게 되였다.

어쨌든 김현철은 태여나서부터 부모의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부모들의 사진 한장, 엽서 한장도 남은게 없었다. 김현철이라는 이름마저도 그를 영아원으로 안아온 《쏘피아》라는 세례명을 가진 라경숙이라는 수녀가 원장과 토의하여 지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현철은 자기가 부모를 찾지 못할것이라고 생각한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는 밤마다 고사리같은 두손을 모아잡고 꽃봉오리같은 입술을 오물거리며 하루빨리 자기의 친부모를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군 하였다. 라경숙은 그를 자주 찾아와 안아주었다. 그러다가 7살이 되였을 때는 아예 데려오고말았다.

남의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였고 또 주변사람들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그래서 자녀가 없는 부부가 입양을 원할 경우에는 아는 사람이 없는 도시로 이주하여 이웃들이 사실을 모르도록 하군 했다. 지어 새 동네로 이주해 수개월간 아래배를 불룩하니 만들어 가짜 임신상태를 보여주고 썩 시일이 흐른 후에야 입양하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라경숙은 현철을 데려오는것을 별로 서슴어하지 않았다.

그는 1960년대말 강보에 싸인 현철이를 누군가가 자기네 성당앞에 놓고 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가 아이를 발견하였을 때 몇장의 마른 기저귀와 함께 《부디 좋은 엄마를 만나 행복하게 잘살거라.》라는 글이 적힌 쪽지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라경숙은 김현철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이애를 자기가 처음 발견했기때문에 응당 돌봐야 한다고 하였다. 김현철이 13살 났을 때 라경숙은 그에게 아예 자기의 호적에 올리는것이 어떠냐고 물은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도 현철은 그를 양엄마라고 불러왔던것이다.

김현철은 단도직입으로 되물었다.

《제게 진실을 말해주십시오. 참말로 수녀님은 저의 친어머니가 아닙니까?》

순간 라경숙은 번개불이라도 맞은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참 넋을 잃고있더니 진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미안하다. 난 네 친엄마는 아니다.》

《맹세할수 있나요?》

《맹세코… 아니란다.》

라경숙은 현철의 작은 어깨를 감싸쥐고 조심스럽게 되뇌였다. 그러나 영원히 아물지 않을 상처를 입은 김현철은 입술을 피나게 앙다물었다.  귀뚜라미가 슬피 울던 그날 그믐밤, 김현철은 자기의 어린시절의 추억이 깃들어있는 집을 결단코 뛰쳐나왔다.

그밤 성당 참회실의 검은 십자가 아래에서 어린 현철이가 맹세다진것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제스스로 자기 부모를 반드시 찾아내겠다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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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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