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아버지와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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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는 한강의 노들나루와 영등포앞에 자리잡은 섬이다. 옛시절 이 일대는 실버들이 칠칠 늘어져 봄바람에 흐느적거렸고 여름이면 매미들이 복사같은 배와 꽁지를 달싹거리며 매암매암 울어댔다. 하얀 갈매기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훨훨 날았고 샘처럼 맑은 물속에서는 팔뚝만한 물고기들이 검은 지느러미를 흔드적거리며 한가로이 노닐었다. 그러나 지금은 젖줄기같은 강물마저 거멓게 오염되여 봄버들이 늘어지고 매미들이 울고 흰 갈매기가 너흘너흘 날아예던 풍경은 옛 시인들의 시가에서나 찾아볼수 있었다.

원래 여의도는 밤섬이라는 섬과 나란히 있었다. 그중에서도 여의도는 메마른 모래땅이여서 농작물조차 잘 자라지 못했다. 모래땅에 파종이 가능한것이라고는 락화생정도가 고작이였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하잘것없는 섬이니 《너나 가져라》라는 뜻에서 《너 여(汝)》자에 《주비 의(矣)》자 그리고 《섬 도(島)》자를 써서 《너의 섬》 다시말하여 여의도라 불리웠다는 속설이 있었다.

밤섬은 여의도가 개발되면서 그의 희생물로 사라졌다. 섬을 폭파하여 그 흙과 모래를 몽땅 파다가 여의도에 방뚝을 쌓았던것이다. 이제는 밤섬이 있던 자리는 철새들이 머무는 서식처로 되여버렸다.

이렇게 꾸려진 여의도는 항간에서 《여의주》로 불리웠다. 여의주란 룡의 턱아래에 있다는 신비한 구슬을 가리키는 말이다. 사람이 얻으면 온갖 천지조화를 마음대로 부릴수 있다는 보물중의 보물이였다.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만이 아니라 방송, 금융 등 여러 주요기관들과 고층건물들도 자리잡고있었다. 그래서 이 여의도를 지배하게 되면 룡의 여의주를 얻는것과 같다는 말이 나돌았다.

저물녘이 되여 태양이 서해바다의 물갈기에 흐트러지며 식어가는 탄덩어리마냥 뿌연 물속으로 사라져갈 때면, 어둠이 검은 락하산을 타고내려 북악산을 닁큼닁큼 삼켜갈무렵이면 여의도를 장식하고있는 각양각색의 간판들은 현란한 자태와 무늬를 번쩍거리며 사람들을 유혹했다.

빨간 장미무늬로 호화로운 불장식을 한 장미식당도 례외로 되지 않았다. 동화적인 이름을 가진 이 식당은 비교적 점잔을 빼는 언론계의 인물들이 드문히 찾군 하였는데 이날은 명동일보사의 한 패거리가 중심탁을 성처럼 빙 둘러싸고있었다.

마치 바람난 사내마냥 여기저기를 쑤시며 기자라는 생업에 허위단심 쫓겨다니던 사람들이 술기운이라도 빌어 자기들의 가긍한 처지에 반발이나 하려는듯 허세를 돋구고있었다.

허위와 진실을 가리고 사회의 부조리를 밝혀낸다는 나름의 명분을 세우기는 하였으나 종당에는 그것마저 저버리고 권력과 재력에 아부하거나 빈곤한 사람들의 설음을 외면하지 않으면 안되는 모순과 울분이 그대로 우울증으로 루적되여있는 그들이였다.

신입기자의 입직축하연에 참가한 사회부 기자 김현철은 매 맥주잔우에 작은 술잔들을 조심스레 올려놓는 부장의 토실토실 살진 손가락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있었다.

술잔마다에는 술이 채워져있었다. 부장은 우리의 새 식구가 늘었다는 말을 서두로 판에 박은 일장의 연설을 시작했다.

깜찍하고 교활하다는 정평을 받는 부장의 축사에 격동되여있는 신입기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김현철은 3년전 입직할 때의 자기 모습을 상상해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장황한 연설이 끝나는것과 동시에 부장이 오른쪽끝의 첫잔을 슬쩍 건드려 넘어뜨리자 술잔들이 묘하게 부딪쳐 좌르르 소리내며 맥주잔들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눈깜짝할새에 불그레한 맥주가 흰 거품을 부글부글 끓어올렸다.

《자, 용기를 내라구.》

《어서 본때를 보이라구.》

벌써 주기가 오른 벌건 얼굴들이 위세를 부리고있었다. 신입기자가 첫 잔, 둘째 잔, 셋째 잔으로 이어갈수록 동료들의 환성이 커져갔다. 불과 한두시간전까지만 해도 생존이라는 악마에게 쫓기우던 사람들답지않게 일확천금이라도 한 기분들이였다.

김현철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가지고 목숨을 건듯이 맥주잔을 들고 꿀꺽꿀꺽 넘기는 신입기자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에게서 3년전의 자화상을 찾아보는것이 흥미도 있었고 괴롭기도 했다. 그가 신문사에 입직할 때로 말하면 《외환위기》라는 파국속에 모든것이 휘감겨들어 이르는 곳마다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의 칼바람이 일어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 아우성을 치던 때였다.

당시 서른살이였던 그는 그런 아비규환의 수라장속에서 신문사에 입직한것이였다. 잔을 입가에 가져가던 김현철은 슬쩍 옆에 앉은 반백의 기자를 쳐다보았다. 신문사의 한부서에서 그리고 한방에서 함께 일하는 장필성이라는 오랜 기자였다.

김현철이 신문사에 입직하기 위한 마지막 인물심사를 받을 때 장필성은 심사위원으로 참석하여 이렇게 물었었다.

《세상에 직업과 직종이 하도 많은데 왜 꼭 기자가 되려고 합니까?》

그때 김현철은 창황중에 《제가 꼭 기자가 되려는 리유는…》 하고 더듬다가 이렇게 대답했다.《사람들에게 정의와 량심에 대해 알리고 거짓과 진실에 대해 밝히고싶어서입니다.》 누군가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얼결에 횡설수설한 김현철도 멋적기 짝이 없었다. 심사도중에 고동구호를 웨친 꼴이 돼버린것 같았다. 아마 심사원들이 싱거운 녀석이 굴러들었다고 시답지 않아할것이라고 생각하며 슬그머니 표정들을 살피니 아니나다를가 심사석에 나란히 앉아있던 5명의 심사원들의 얼굴은 각양각색이였다. 어떤 사람은 책에 있는 소리를 듣는다는듯 외면하였고 또 다른 사람은 재미있는 구경을 하듯이 우습강스러운 눈짓을 하였다. 그중 질문의 당사자인 장필성은 찌르는듯 한 예리한 시선으로 김현철을 뚫어지게 바라볼뿐이였다.

《듣기 좋은 대답이로군.》

비꼬는듯이 들려오는 장필성의 말이였다. 김현철은 수수떡처럼 얼굴이 붉어지면서 고개를 떨구었다. 그 찰나 흘러가버린 자기의 유년시절과 소년기, 사춘기 그리고 대학시절이 번개처럼 머리속을 스쳤다. 결코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평범하지 않은 슬픈 과거였다. 그래서 생각날적마다 가슴 한구석이 송곳으로 허비는것 같았다. 찌르는듯 한 아픔이기에 잊을수도 지울수도 없는 과거였다. 그 슬프고 서러운 일들이 그를 기자라는 운명의 길로 떠민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숫제 신문사를 대표한다는 이 심사원들이 맞은편 의자에 소심하게 앉아 번갈아 쏟아지는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을 하고있는 젊은 청년의 가슴속에 지금 어떤 고통이 소용돌이치는지 알고나 있단 말인가! 김현철은 잠재되여있던 격통을 또다시 느끼며 반발하듯 얼굴을 들었다.

그때까지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장필성은 그가 머리를 꼿꼿하게 쳐들자 알릴듯말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 어떤 사람들은 정의와 진리에 대해 망각하고 살지. 아니, 어쩌면 잊기 위해 모지름을 쓰는지도 모르지.》

혼자 중얼거리는 그의 말에 김현철은 그만 얼떠름해졌다. 이 늙은 심사원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갈피를 종잡을수 없었던것이다. 그때 심사석의 중심위치에서 의자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심사과정을 심상하게 지켜보던 신문사의 중진인듯 한 사나이가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군말을 보태는 장필성을 언짢게 흘겨보며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러나 장필성의 그 모습은 김현철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번뇌할줄 아는 인간은 반성할줄 알며 반성할줄 아는 사람은 최소한 철면피하지 않는 법이다. 이런 장필성의 모습을 보아서인지 처음 신문사에 출근하여 서먹하였던 김현철은 서로 야유하고 비꼬는데서 직업의식을 찾는 동료들과는 달리 늙은 장필성에게서만은 친근감같은것을 느꼈다. 그래서 기사를 한편한편 쓸 때마다 부장이나 다른 동료기자들보다도 장필성의 조언을 은근히 기대하게 되였고 어느새 그것이 습관으로 굳어졌다.

3년이라지만 무척 많은 세월이 흐른것 같았다. 그 세월은 장필성의 얼굴과 목에 조글조글한 흔적들을 얽어놓았다. 머리가 벗어진 넓은 이마에도 고랑같은 주름이 푹 패였다. 옛 시조에 한손에 막대 잡고 또 한손에 가시 쥐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 했더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고 노래했듯이 몇해사이 눈에 띄게 잔주름이 많아진 그였다.

술잔을 쥐고 김현철의 곁으로 다가온 부장이 금이발을 드러내며 말을 건넸다.

《그새 고생했소. 김기자가 택시회사에 몰래 취직해서 직접 손님들을 태우며 쓴 기사여서인지 독자들의 인기가 대단하더군.》 부장의 칭찬에 김현철은 씁쓸히 웃었다.

지난번 《국회》본회의에서는 공공려객운수와 관련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제안이 상정되였다. 한마디로 침체상태에 빠진 택시업계를 살리기 위해 그 규모를 축소해야 한다는것이였다. 한켠에서는 《개인택시제도가 생긴 이후 공급과잉으로 공멸위기에 처해있는 택시업계를 구원》할수 있는 묘안이라고 떠드는가 하면 또 다른켠에서는 유명무실한 법안에 지나지 않을거라느니 하면서 의원들은 두패로 갈라져 옥신각신했다. 하지만 법안이 개정되든말든 이 싸움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자기만이 옳다고 피대를 돋구며 고함을 지르는 《국회》의 거룩한 나으리들이 아니라 온종일 쉬지 않고 뛰여다녀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든데다가 그나마 빈약하기 그지없는 밥그릇마저 빼앗길지 모를 불쌍한 택시운전사들이였다. 이런 문제점을 포착한 김현철은 택시운전사들의 실생활과 요구를 파악하기 위해 림시적이지만 《위장취업》의 방법으로 그들속에 뛰여들것을 결심했던것이였다.

아흐레전 택시회사로 첫 출근을 하던 목요일의 새벽은 꽤나 쌀쌀했었다.

이른새벽인데도 시장부근과 그 가까이의 거리들은 생존에 부대끼는 남녀로소들로 북적거렸고 변변한 직업이 없는 남정네들이 어깨를 축 떨어뜨리고 길가에서 서성거리는 모습들이 자주 눈에 띄웠다. 그런가 하면 날품팔이군들로 보이는 로동복차림의 사내들이 무리를 지어 어디론지 걸어가는데 별로 활기를 찾아볼수가 없었다.

세계적인 경제불황이 예상외로 장기화되고 나라마다 자국시장보호를 위한 움직임이 강화되면서 워낙 해외의존도가 높은 남조선의 수출주도형의 경제는 여전히 헤여날수 없는 침체의 늪속에서 계속 허우적거리고있었다.

극심한 수출부진상태를 종시 이겨내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무리로 파산되고 한다하는 대기업들까지도 숨차게 삐꺽거렸지만 그 출로는 막연하기만 했다.

당국은 각종 《경제개혁》이요, 《경기부양책》이요 하며 경제를 호전시킨다는 명분아래 막대한 자금을 퍼부었지만 그것은 속탈에 고약처방격으로 되여 오히려 채무만 산더미같이 불어나게 되였다. 《정부》의 재정파탄은 그대로 무서운 조세증가로 이어져 백성들의 숨통을 더욱 옥죄였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전반을 더욱 황페화시킨것은 미국의 조종하에 몇해동안이나 실시되여온 국제통화기금주도의 신탁통치가 강요한 무차별적인 외자도입과 구조조정이였다. 원료난, 자재난, 판매난으로 부실상태에 있던 기업들은 엄청난 부채를 이겨내지 못하고 해체, 병합되는 방식으로 종말을 고했고 많은 경우 미국을 비롯한 외국기업들에 헐값으로 팔리웠다. 짧은 기간에 몇배나 폭발적으로 늘어난 외국기업들은 악착스레 긁어낸 많은 리익금을 본국으로 빼내여갔다.

그리고도 성차지 않아 검질긴 피거마리같이 달라붙어 당국을 매수, 공갈하여 방대한 토지까지 사들여 자기 소유로 만들어버렸는데 그 절반이상이 미국기업들의 수중에 장악되여있었다.

하여 이 땅의 경제라는것은 나날이 외세의 롱락물로 전락되고 파산과몰락, 빈부차이의 격화로 민중의 삶은 피페와 몰락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수 없는 처지에 이르고말았던것이다.

봄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찬 기운에 오싹해지는 몸들을 추스르며 치렬한 생활전선에 뛰여들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들의 심정을 새기며 첫 출근을 한 김현철은 직업적인 운전경력이 없다는 리유로 페차나 다름없는것을 배차받았다.

그래도 천만다행이라싶어 그는 그 거덜거덜한 낡은 차를 몰고 아흐레동안 부지런히 서울시내를 메주밟듯 다녔다. 그런데도 진짜 택시운전사들의 하루평균수입에 도달한 날은 하루밖에 되지 않았다.

일을 끝내고 차청소까지 마친 택시를 차고에 넣고 회사앞쪽으로 가로 건너간 구름다리를 건너갈 때면 김현철은 발밑이 붕붕 소리내며 흔들리는듯 한 느낌을 받군 하였다. 하숙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워도 온몸이 허공에 떠올라 소용돌이에 감겨든듯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어지럼때문에 인차 잠들수 없었다. 택시운전초년생은 30대의 젊은 나이라고 해도 3개월이 지나가야 그런 현상이 없어진다고들 했다.

김현철이 택시운전을 하는 동안 가장 두려웠던것은 손님들이 적은것이였다. 이전에 자기가 타려고 할 때는 많아보이던 손님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리 어렵지 않게 대답을 찾을수 있었다. 수입은 계속 줄어만 드는데다가 실업난까지 겹쳐 택시를 리용할수없을 정도로 사람들의 생활이 더욱 빈곤해진탓이였다. 그러니 택시운전사들의 처지도 같이 령락될수밖에 없는것은 당연했다. 어느 하루도 기분이 울적해있지 않은 날이 없었다.

김현철이 일을 끝낸 첫날 회사로 돌아올 때 손에 쥔 돈은 몇푼 되지도 않았는데 입금하고 연료값 등을 빼고나니 순수입은 령에 가까웠다. 동료운전사들이 이제 시일이 흐르느라면 좀 나아질거라고 위안을 해주었지만 그에게는 도저히 가망이 없어보였다.

김현철은 지난 9일동안 각이한 사람들을 택시에 태웠었다. 입으로 돈을 물어뜯어 던져주던 술취한 늙은이, 도착할 때까지 계속 전화에다 욕만 해대던 장발의 사나이, 길이 막혀 차비가 많이 나왔다면서 료금을 깎던 중년부인… 그러나 가장 기억에 남는것은 진짜 택시운전사들의 모습이였다. 교대받을 차가 조금만 늦게 들어와도 걱정하며 안절부절 못하던 나이지숙한 최씨, 사고를 내 면허정지를 당하고 앞일이 막막하여 숨도 크게 못 쉬던 쌍둥이아버지, 택시운전사라는 직업이 고달프고 힘들지만 이나마 유지하고있는것도 호사라고 말끝마다 외우던 배차원… 지금껏 막로동판에 비해보면 그런대로 괜찮을것이라고 생각해온 택시운전사들의 처절한 모습들이 꿈속에서도 갈마들었다.

김현철이 그 가긍한 모습들을 되새기며 술잔을 기울이는데 누군가가 혀꼬부라진 소리로 다른 식당으로 옮기자고 소리쳤다.

동료들은 기다렸다는듯이 호응하며 우르르 문밖으로 몰켜나갔다. 래일은 굶든 혹은 집에서 쫓겨나든 상관없이 어쩌다 모처럼 차례진 기회이니 맘껏 즐기고보자고 작정한듯싶었다. 김현철은 맨 나중에야 밖으로 나섰다.

밤이 이슥했지만 거리는 아직 소란스러운편이였다. 그가 불쑥 엄습해오는 랭기를 의식하며 코트깃을 바로잡는데 뒤켠에서 웅근 목소리가 들렸다.

《옛 조선시대에도 말이요. …》

소리나는쪽을 돌아다보니 장필성이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서있었다.

《허참례라는게 있었지. 새로 과거에 급제한 선비가 처음 관직에 나가면 신래라 불렀는데 신래는 관원들에게 상견례와 같은 인사를 해야 하였소. 이를 허참이라 했지. 말그대로 함께 일하게 된것을 허락한다는거요. 뢰물도 상납해야 했는데 바치는 물건이 물고기이면 룡이라 했고 닭이면 봉이라고 했다던가. 술이 청주이면 성, 탁주이면 현, …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소. 노래까지 불러야 했는데 한림별곡이 신래들의 애창곡이요.》

《3년만에 다시 듣습니다.》

김현철은 담박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신문사에 취직하여 동료들에게 오늘과 같은 첫 세례를 겪고났을 때 직장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목숨을 내걸만 한 가치는 없다면서 장필성은 아까처럼 말을 했었다. 아마도 신입기자를 축하하는 의식이 있을 때마다 버릇처럼 떠올리는 말인지도 모른다.

《벌써 집으로 돌아가려나?》

장필성이 물었다. 김현철은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아직은 이른 시간인것 같았다. 그렇다고 동료들과 함께 밤새도록 술집들을 돌고싶지는 않았다.

《저랑 함께 가시겠습니까?》 김현철이 묻자 장필성은 눈을 한번 끔벅이고나서 되물었다.

《김기자랑 함께? … 어디게?》

《가보시면 압니다.》

《그러지 뭐.》

별로 깊이 생각하지 않고 장필성이 응했다.

김현철은 인사동 네거리옆에 있는 《은마차》로 불리우는 이동식간이술집으로 장필성을 데려갔다. 수입이 넉넉치 못한 술군들이 모여드는 곳이였다. 장필성은 주위를 휘둘러보았다.

《품들여 오자고 하기에 어느 요란한 곳인가 했더니 고작 여긴가?》

그러거나말거나 김현철은 제 먼저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술에 취한 두명의 손님이 있었다. 뽀얀 담배연기속으로 풍겨오는 남새볶음냄새속에는 해산물의 비린내도 섞여있었다.

김현철은 불빛이 희미한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으며 소리쳤다.

《소주 두병 주십시오.》

장필성은 좁은 식탁사이로 어정어정 걸어왔다. 김현철은 장필성의 잔에 술을 부으며 물었다.

《여기가 기억나지 않습니까?》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더듬어보던 장필성은 술을 쭉 들이키고는 고개를 저었다.

《정말입니까? 하긴 저도 3년만에 다시 옵니다. 설마 아직 그대로 있겠나 했는데 하나도 변한게 없습니다.》

김현철은 제 흥에 떠 이야기하고있었으나 장필성은 웬 수작이냐는듯 물끄러미 바라볼뿐이였다.

《3년전에…》 하고 김현철은 바투 다가앉았다.

《선배님이 신문사에 입직해서 동료들의 축하주에 푹 취한 나를 여기로 데려와서 마감장식해주지 않았습니까. 정말 생각나지 않습니까? 난 빠짐없이 다 생각나는데…》

무슨 중요한 얘긴가 하여 귀를 강구던 장필성은 데설웃음을 지었다.

《내 나이가 돼봐라. 아마 제가 방금 들어온 문도 기억나지 않을게다. 더구나 삼년전의 일을…》

장필성이 나이타령을 하며 혀를 끌끌 찼다. 하지만 김현철은 흥이 나서 주절거렸다.

《선배님은 그때도 바로 그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제게 한 첫소리가 뭔지 압니까?》

《좋은 기사를 내라고 격려했겠지.》

《천만입니다. <술엔 장사가 없어. 내 친구들이 하나둘씩 쓰러지는데 술 잘 먹는 순서대로야!>라고 훈계하였습니다.》

김현철은 장필성의 말투까지 그대로 흉내냈다.

《그랬던가.》장필성은 별로 흥심이 없는듯 했다.

김현철은 사뭇 심중하게 말을 이었다.

《그 다음엔 계속 욕을 하셨습니다.》

《내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니 생사람을 잡는구만. 내가 처음 만난 김기자에게 까닭없이 욕을 했을리가 없지.》

《욕도 얼마나 심하게 했게요.》

김현철은 웃으며 추억했다.

그때 그는 거불거리는 눈을 내리감고 깜박 졸고말았다. 별안간 물쩍한것이 입술에 게발리면서 물렁물렁한 그 무엇이 이몸을 쑤시고 들어왔었다. 싸한 냄새가 코를 내질렀다. 생파였다. 장필성은 청하지도 않은 생파를 그의 입에 쑤셔넣었던것이다.

생파라면 냄새조차도 질색하던 김현철은 노기가 술기운과 함께 머리끝으로 치솟았다. 벌겋게 충혈된 눈이 저도 모르게 흡떠졌다. 그런데 장필성은 도리여 대가리를 뜯어먹은 생파를 그의 눈앞에 내둘렀다.

《임마, 너 나쁜 자식이다. 정말 나쁘다니까.》

장필성은 눈살이 꼿꼿해서 노려보며 제잡담 소리쳤다.

《넌 이제 사에 입직하는데… 난 삼년후 이맘쯤에 퇴직수속을 하게 된다. 생존경쟁에서 밀려난단 말이다.》

그의 침방울이 김현철의 술잔앞에 튕겨났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3년후라면 아직도 많은 날과 시간이 남아있지 않는가. 그리고 세월이 가는게 새로 입직한 자기의 잘못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김현철은 선배앞에 리유를 불문하고 죄스러운 표정을 지어야만 했다.

《전 그런 사정은 전혀 몰랐습니다. 죄송합니다.》

김현철이 술병을 쥐자 장필성은 술잔의 남은 소주를 목구멍에 털어넣고는 그의 앞으로 내밀었다. 공손히 술을 찰랑찰랑하게 붓고나니 그는 잔을 당겨쥐며 김현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그의 의도를 짐작한 김현철은 침을 꿀꺽 삼키고나서 자기 술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였다.

《좋아!》

그가 네모난 유리잔을 쭉 비우자 장필성은 술병을 기울여 거기에 가득 술을 부었다. 빈 소주병이 탁자우로 다르르 굴렀다.

《이건 말이다.》 하며 장필성은 자기의 검은 머리칼을 움켜쥐였다.

《염색한거다. 이발도 완전히 틀이이고… 난 늙었어. 세월은 류수와 같이 흐르고… 정말 눈깜박할새라니까. 나도 처음 기자로 취직할 때 같아선 하늘이 엽전만 해보였는데… 너처럼 <정의와 량심을 위하여!> 하고 큰소리도 쳐보았었는데…》

그렇게 시작도 끝도 없이 횡설수설하다가 왕청같이 물었다.

《너 <기레기>가 뭔지 알아?》

《알고있습니다.》

《그래도 다시 새겨들어. 쓰레기같은 기사를 쓰는 놈팽이들을 보고 <기레기>라고 한단 말야. 너나 내가 사는 이 땅은 온통 쓰레기범벅이야. 정치도 신문도 사람도 오염될대로 오염되고 변질될대로 변질됐지. … 그렇다고 우리가 쓰레기기사를 쓰겠는가?》

장필성은 탁자를 탕 두드리며 기염을 뽑았다.

김현철은 취중에도 장필성의 말이 비수처럼 느껴졌다. 그때 장필성은 별안간 상체를 쑥 내밀었다. 서슬에 잔이 넘어지고 맑은 술이 주르르 상에서 흘렀다.

《너두 특종기사를 쓰고싶겠지?》

두손으로 탁자를 벌려잡고 얼굴을 김현철에게 바투 가져다 댄 장필성의 머리가 앞뒤로 흔들리고있었다.

《특종을 내고싶지 않은가 말이다.》

《제가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김현철은 넘어진 장필성의 잔을 바로세우며 겸손하게 말하였다. 장필성은 쳇 하고 코방귀를 뀌였다.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앉는 법.》

그리고는 다시 흰 대가리를 뜯어먹은 생파를 흔들면서 말하였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선량하고 나약한자는 밀리우고 악하고 강한자만 생존하거던. 서로마다 강자가 되겠다고 해. 그러니 사회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렬해지겠지? 기자사회도 마찬가지다.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든지 특종을 내야지 그렇지 못하면 인차 밀려나고 밀리우면 굶어죽는다. 목숨을 걸어라, 운명을 걸어라, 이 얼뜬한 자식아!》 …

김현철은 그때를 추억하며 웃고있었다. 어쩌면 장필성의 그런 세례와도 같은 격려가 없었더라면 그의 3년간의 기자생활이 달리 흘렀을지도 모른다. 택시운전사들의 쓰디쓰고 고달픈 생활을 몸으로 체험하는 일도 없었을것이다.

김현철이 3년전의 추억, 좀전의 부장의 칭찬 그리고 술기운에 더해진 자기과신에 흥이 떠 혼자 웃고있을 때 장필성은 조는듯마는듯 내리감은 눈으로 슬며시 그를 찬찬히 뜯어보고있었다.

곱슬곱슬한 고수머리, 하얀 낯빛, 훤칠한 이마, 우뚝한 코마루, 약간 예리해보여도 인정미가 느껴지는 눈, 고집스러워보이는 입술… 곁에 두고 3년을 함께 지냈지만 지금처럼 그의 얼굴을 세세히 여겨보기는 처음이였다.

(그래, 이녀석정도면 괜찮지 않을가? 솔직하고 다정다감한데도 있고 마음씨도 곱고… 그런대로 인간냄새가 난단 말이야. )

김현철과 술을 권커니작커니 하면서 장필성은 그의 곁에 자기의 딸 연희를 나란히 세워보고있었다. 어려서 어미를 잃은 외동딸을 금지옥엽처럼 키워온 장필성이였다.

비가 오면 집필중이던 기사도 제쳐놓고 비옷을 쥐고 학교로 뛰여가 교복에 흙물 한방울 튕길세라 안아왔고 어쩌다가 동무들과 들놀이를 갈 때면 어미없는 설음을 느낄세라 없는 돈을 써가며 꼼꼼히 챙겨주기도 했었다. 그런 딸이였건만 사춘기부터는 아비의 조언을 아예 들을념을 안했다. 아득바득 애를 쓰며 등록비를 꼬박꼬박 대주어 대학을 졸업시켰더니 팔자에도 없는 보험일을 한다고 천방지축 뛰여다니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더니만 요즘은 중년의 사내를 꽁무니에 차고 다닌다. 그 사내가 자주 눈에 띄길래 은밀히 알아보니 곽동수라는 이름을 가진 어느 건설회사의 과장이라지만 실상은 폭력조직의 작은《형님》으로서 전과경력도 있다는게 아닌가. 인간의 정이라는게 물과는 다른것이여서 한번 들어붙으면 엿가락처럼 떼기 힘든 법이라 어떻게든 딸년과 그녀석사이를 갈라놓아야 하겠는데 실은 녀석보다도 딸년의 마음을 돌리는게 우선이였다.

요즘 들어 아비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쓴다고해도 믿을념을 하지 않으니 말이다. 불은 불로 다스리랬다고 남자에게 홀린 녀자의 마음을 돌리는데는 역시 남자의 애정이 첫째가는 약이여서 장필성은 은연중에 김현철을 중떠보았다. 그가 자기 딸의 배필로는 그런대로 짝질것 같지 않았던것이다.

(그래, 소뿔은 단김에 빼랬다고 한번 맞세워보아야겠다. )

장필성은 우정 혀꼬부라진 소리를 냈다.

《내가 좀 많이 마셨나? 어질어질한게 여느때와 달리 골이 아프군.》

김현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쳐다본다.

《몹시 괴로운가요?》

《아니 아니, 좀 과했겠지.》

장필성이 비틀거리며 일어서자 그가 따라서며 부축했다.

《괜찮아.》

장필성이 마다했으나 김현철은 다시 그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휘청거리는 그를 바로세웠다.

《그럼 집까지 바래다드리지요.》

《그러던지.》

기다리던 말이라 장필성은 마다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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