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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6 회


제3장 장원급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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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생은 어둑시근한 옥안에 혼자서 덩그렇게 앉아있었다. 반정신이 나간 그는 며칠동안 자기 몸도 의식하지 못하였다.

제정신이 좀 들자 리생은 드디여 참혹한 현실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두꺼운 판자로 된 보기만 해도 스산한 묵직한 칼이 목에 걸려있었다. 그 칼의 무게는 사정없이 량어깨를 짓누르고있었다. 몸을 조금 놀리거나 움직이려 하여도 가느다란 목에 억세게 걸려있는 칼이 놓아주지 않았다. 늘 그 무거운 칼을 두손으로 받들고 앉아있어야 했다. 발은 또 어떠한가. 기다란 두개의 나무토막사이에 난 구멍이 그의 발목에 끼워져 조금만 움직이려 해도 뼈만 남은 발목을 예리하게 자극하군 하였다. 그 차꼬에 채워진 묵직한 자물쇠만 보아도 소름이 끼쳤다.

(으흐흐- 이게 지옥이나 한가지이지 무어냐. 그야말로 이건 속세에 있는 지옥 한가지이노라.)

정말로 기박하기 그지없는 운명이였다. 잔등에서는 전률이 일었다. 저도 모르게 몸이 우들우들 떨렸다.

리생은 개시시한 눈을 깜짝이며 자기의 생각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런 꼴이 되였는가?)

다만 지금 추측할수 있는것은 로중례와 허주부, 서장원이 작당하여 자기를 감옥에 처넣었다는것뿐이였다.

리생은 아직까지도 자기에 대한 죄의식을 가지고있지 못했다. 가짜 명나라약을 팔아먹었으면 어쨌단 말인가? 자고로 장사군치고 거짓을 일삼지 않는자가 있는가?

리생은 이렇게 자기의 행실을 합리화하였다.

또다시 며칠이 지나갔다. 시간이 갈수록 리생의 고통은 더하여갔다. 목전의 고통이 참을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리생의 머리속에서 다른 생각은 다 뒤전으로 밀려나고말았다. 지금에 와서 제일 크게 자기의 심중과 신경을 자극하는것은 제 몸 하나 주제할수 없는 옥안의 고통스러운 상황이였다.

온몸이 지긋지긋 쏘고 쑤시며 너무도 한자리에만 앉아있어 엉치가 다 문드러지는듯 하였다. 몸을 조금만 편안한 자세로 움직이려 해도 목에 걸린 육중한 칼과 발목에 매달린 차꼬가 가차없이 구속하군 하였다.

(아! 세상에 이런 고통스러운 형색도 있느뇨.)

넌더리가 날 지경이였다.

리생은 옥안에 중죄인들이 차는 칼과 차꼬가 있다는 말을 들어왔으나 여태까지 그런것은 보지도 못하였었다.

밥도 옥사쟁이가 칼우에 놓아주는 보리밥 몇숟갈을 개처럼 핥아먹어야 하였다. 리생을 고통스럽게 하는것은 그것뿐이 아니였다. 하루종일 가도 말 한마디 건넬 사람이 없었다. 리생은 인간에게 있어서 끝없이 계속되는 고요한 침묵이 이런 모진 고통을 가져다준다는것을 새삼스럽게 자각하였다. 이러다가는 입이 다 붙어버리고 말하는 법도 잊어버릴것 같았다. 고요한 침묵이 날에 날을 이어 계속될 때면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귀청을 따갑게 지지는듯 하였다.

(아! 이건 효수를 당하는것보다 더 괴로운 일이로구나. 제발, 제발 날 좀 풀어주렴.)

그러나 허주부와 라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절망에 빠진 리생은 속으로 부르짖었다.

(이젠, 이젠 절대로 명나라약재라는 말을 입에다 올리지 않겠소. 향약도 팔지 않겠소. 아니, 아예 의원질을 싹 걷어치울터이니 제발 이 칼과 차꼬만이라도 좀 풀어주.)

이제는 재물도 신물이 났다. 돈도 역겨웠다. 오직 하나, 칼과 차꼬만 벗기여주면 억만의 금전이라도 다 개여바치고싶었다.

저녁에 늙은 옥사쟁이가 들어오자 리생은 기여들어가는 모기소리로 애절하게 간청했다.

《이보슈, 허주부어른께 여쭈어 제발 이 칼과 차꼬만이라도 좀 벗기여달라고 하슈. 그러면 내 백년이래도 이 옥안에 있겠소. 그것도 안되면 이 목에 걸린 칼이라도…》

늙은 옥사쟁이가 리생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늘 순응에 습관된듯 한 그의 고요한 눈에 서늘한 빛이 서려들기 시작했다. 리생은 놀라운 눈길로 옥사쟁이를 바라보았다.

《리의원, 날 모르겠수?》

《?…》

《아마 모를수도 있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상대했겠소. 내 삼년전에 우리 모친이 급병을 앓을 때 정신없이 리의원네 집에 달려갔댔소. 헌데 리의원은 어쨌소. 온 가산을 다 털어낸 돈으로 삼일분의 첩약밖에 지어주지 않았댔소. 내가 너무 기가 차서 왜 이렇게 약값이 비싼가 들이대니 리의원은 명나라약재로 지은것이여서 약값이 비싸며 우리 향약은 맹물과도 같아 전혀 효험이 없다고 땅땅 을러멨지요. 모친은 그 약을 삼일동안 쓰다가 좀 낫는듯 하더니 종시 비명횡사하고말았수다. 그런데 이번에 보니 그 모든 약들이 가짜 명나라약재로 지은것이라 하지 않소.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런짓을 해댔소? 내가 알기에도 백명나마는 되오다. 그래 이게 사람이 할짓이요? 이게 천벌을 받을짓이 아니란 말이요? 그래가지고도 칼과 차꼬를 벗겨달라는 소리가 나오우?》

어리숙하게 보이던 옥사쟁이의 입에서 준절한 꾸짖음이 흘러나왔다. 그리 높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말은 리생의 뇌리를 호되게 후려쳤다.

리생은 멍하니 옥사쟁이를 쳐다보았다. 귀에서는 윙- 하는 줄피리소리가 울렸다.

그는 옥사쟁이가 언제 나갔는지도 느끼지 못하였다. 지금까지는 육체적고통에만 시달리였다면 이제부터는 정신적고충이라는 커다란 괴로움이 리생의 여윈 몸에 사정없이 덮쳐들었다.

그날부터 리생은 불면증에 시달리였다. 며칠을 꼬박 밝히다가 잠시 잠간 끄덕거리며 졸고있는 리생의 뾰족한 턱이 칼판을 쫏고있었다. 리생은 몽롱한 꿈세계와 현실세계와의 중간에서 오락가락하고있었다. 눈앞에서는 흐릿한 안개가 흐르고있었다. 잠시후에는 시꺼먼 구름이 머리우에 덮이고있었다. 그 스산한 구름장우에서 귀익은 목소리가 울려왔다.

《흐흐- 이보게 리의원, 날 모르겠나? 조진사일세. 자네 가짜 명나라약재로 지은걸 팔아먹다가 옥살이를 한다면서? 그 참, 잘됐네. 그러지 않아도 내 자넬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이렇게 오는 참이야. 자넨 이승에 있을 사람이 못돼. 자네 나한테도 가짜 명나라약재로 지은 약을 팔아먹었지? 그래서 나도 제명을 다 살지 못하고 이렇게 저승에 올라간거구. 자, 이젠 그 값을 치르어야지? 어서, 어서 이리 와 내 손을 잡으라구. 저승에서 염라대왕님께서 기다리고계셔. 어서.》

시뻘건 괴물같은 기다란 조진사의 손이 리생의 앞으로 쭉 뻗쳐들었다.

리생은 허우적거리며 소리쳤다.

《아니아니, 난 싫어. 저승엔 안 갈테요. 칼과 차꼬를 차고있는 한이 있더라도 난 이승이 더 좋아. 아직 죽고싶은 생각은 없어.》

《으하하, 죽고싶지 않다. 그럼 나한테 진 빚은 어떻게 하구?》

《아니야, 아니-》

리생이 몸부림치고있는데 또 다른 목소리가 울렸다. 마치 항아리안에다 대고 말하는듯 한 웅글은 목소리였다.

《이보슈 리의원, 난 박생원의 마누라올시다. 두상이 명나라약재바람을 잔뜩 불어넣어 우리 해장이가 가져온 향약도 못쓰게 했지요? 만일 그때 내 제때에 향약을 썼으면 이 황천에 오지 않았을게요. 나한테 진 죄는 어떻게 청산하시려우? 자,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황천길에 오르시우.》

《아니, 그건 내가 그런게 아니우. 박생원이… 아니, 저 로중례가…》

이때 벽력같은 고함소리가 울렸다.

《이놈,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주둥이질이냐?》

추상같은 고함소리가 울리는쪽을 바라보니 박시언이 두눈을 뚝 부릅뜨고 불이 펄펄 이는 눈으로 쏘아보고있었다. 그옆에는 박해장도 서있었다.

《이놈아, 썩 이실직고하지 못할가? 그 죄로 옥살이를 하는 주제에 아직도 변명하려들어? 네놈의 죄는 릉지처참해도 다 씻지 못해. 어서 목을 썩 내놓아라.》

어디선가 번뜩이는 장검이 리생의 목을 향하여 획 날아들었다.

《으악-》

비명소리와 함께 눈을 번쩍 뜨니 침울하고 어둑시근한 옥안의 정경이 안겨들었다.

《후유-》

리생은 긴 한숨을 내쉬였다. 온몸은 땀으로 화락하니 젖어들었다.

리생은 다시금 늙은 옥사쟁이의 말을 되새겨보았다. 분명 그랬었다.

조진사와 박시언, 자견이… 허주부와 서장원 등은 빙산의 일각이였다. 얼마나 많은 병자들을 속여왔던가.

리생은 이제 와서야 겨우 죄의식의 마당에 조심스럽게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리생은 자기의 지난날을 더듬어보았다. 사실 리생도 열네살까지는 피죽이나 겨우 먹던 집에서 근근히 살았었다. 늘 얼굴이 새까매서 논밭에 나가 돌아가야 했던 자기의 곤궁한 처지를 한탄하던 리생의 머리속에는 외가의 할아버지가 의원이라는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며칠동안 고심하던 리생은 드디여 결심하고 탈가하여 외가집에 얹혀 살면서 이를 악물고 의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성장하여 의원을 하면서 병자들에게서 약값과 치료비를 걷어들이게 되자 리생은 차츰 돈맛을 알게 되였다. 권모술수의 머리가 곧잘 도는 리생은 그것에 만족할수 없었다. 차츰 어벌이 커지기 시작했다. 재부가 늘어나자 그는 돈없는 사람들을 인간이하로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끝없는 욕심은 수많은 권모술수를 낳았다. 이렇게 오늘에까지 이른 리생이였다.

(아, 이제는 영낙없이 감옥귀신이 되고말았구나. 누구도 나를 동정해주지도, 쳐다보지도 않으니 이제는 여기서 죽을수밖에…)

리생은 절망과 죄의식으로 몸부림쳤다. 처음에는 자기의 위신이나 명예가 단번에 뚝 떨어졌다고 한탄하였으나 지금은 제 목숨마저도 기약하기 힘든 형편이였다.

바로 이러한 때에 뜻밖에도 옷가지들과 음식들이 간간이 차입되여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허주부가 매정하게 옥바라지를 허용하지 않았다는것을 안 로중례가 다시금 그에게 청하여 그것이 실현되였던것이다.

설진이와 연미는 그것만 해도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리생은 아직 이런 내막까지는 다 모르고있었다.

리생은 옥살이를 하는 과정에 옥사쟁이를 통해 자기의 죄행이 어떻게 되여 서장원의 앞에서 적라라하게 폭로되게 되였는가도 알게 되였다. 처음에는 로중례와 서장원이 짜고들어 자기의 죄행을 까밝혔다고 생각하였는데 듣고보니 그것이 아니였다.

입이 가벼운 허주부는 자기가 로중례를 속이면서 솜씨있게 서장원의 집에 끌어들여 그가 리생의 가짜 명나라약재건을 밝히도록 했노라고 옥사쟁이에게 자랑거리로 말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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