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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회


3


방금 잠든 남규의 얼굴에 땀이 빠직빠직 돋아난다. 어머니 서씨가 조심조심 땀을 씻어주고 부채를 부쳐주는데 밖에서 대문소리가 났다.

에구, 내 정신 좀 보지, 대문두 안 걸었구나.

흠칫 놀라며 내다보니 문규가 들어온다. 어머니는 안도의 숨을 돌리며 말했다.

《조용히 들어오너라. 방금 잠들었다.》

문규는 대낮에 웬 잠이예요 하고 물으려다가 무춤했다. 어머니의 수심어린 얼굴과 동생의 터진 이마, 그것이 무슨 불상사가 생겼음을 알려주었다.

《대학에서 무슨 회합을 하다가 저렇게 됐다는구나.》

묻기 전에 어머니가 간단히 일러주었다.

워낙 말이 적고 조용한 어머니다. 작년 봄 남규가 교련반대시위를 하다가 잡혀갔을 때도 진종일 아들의 사진만 바라보면서 말이 없었다. 책상우의 액틀속에서 남규는 싱긋 웃고있었다. 그 웃음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여 어느 차디찬 세멘트바닥에 쓰러져있는 모습을 그려보고있었으리라. 20여일만에 아들이 석방돼나왔을 때는 흰 오리가 약간 섞여있던 어머니의 머리가 거의 반백이 돼버렸다.

후에 문규가 동생에게 말했다.

《어머니생각을 해서라도 제발 다시 그러지 말어.》

그러나 남규는 형의 당부를 듣지 않았다. 롱성이다, 시위다 하고 뛰여다니더니 가을에도 한차례 잡혀갔다가 근 한달만에야 풀려나왔다.

오늘일도 물어보나마나 뻔하다. 또 반《정부》학생집회 같은것을 하다가 기동경찰의 습격을 받았을것이다.

《많이 다쳤는가요?》

문규는 가슴속에 짜릿한 아픔을 느끼며 물었다.

《저 옷을 봐라.》

어머니는 방구석에 벗어놓은 남규의 남방샤쯔를 가리켰다. 어깨가 뿌욱 찢어져있었다.

《일없을가요, 의사를 부르지 않아두?》

《아까 의대생하구 같이 들어왔는데 한잠 푹 자고나면 괜찮을거라고 하더라.》

세 형제중의 맏이인 최영규대위가 당도한것은 그로부터 약 1시간후였다. 그는 몸에 딱 들어붙는 군복차림에 걸음걸이도 군대의 제식훈련에 익숙된 사람임을 알리는 그런 걸음걸이였다. 머리도 모자밑까지 바싹 올리추었다. 한일자로 꾹 다문 입매는 엄격한 성미의 일단을 보여준다.

《아니, 네가 웬 일이냐?》

맏아들이 올줄을 모르고있은 어머니가 저으기 놀라며 물었다. 최영규대위는 어머니와 문규에게 수인사를 하며 방으로 들어오다가 누워있는 남규를 보자 미간을 찌프렸다.

《어디 앓니? 아니, 이마는 왜 저렇니?》

《네, 좀… 저…》

문규는 뒤말을 잇지 못하고 외면했다.

그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아까처럼 간단히 설명했다.

《대학에서 무슨 일이 좀 있었나보더라.》

최대위는 담배를 붙여물며 문규를 돌아보았다. 힐난의 빛이 어린 눈길이다.

《애가 잘 자라니? 애어미는 별일없구?》

맏이가 둘째에게 무슨 말을 하리라는것을 알고 그것을 미리막으려는듯 어머니가 얼른 화제를 돌렸다.

《아이가 대장염 걸려서 혼자 왔습니다.》

《저런! 심하냐?》

《입원시켰더니 한고비 넘기더군요. 오늘 처랑 데리구 오려 했는데 며칠 더 치료받아야 된다고 해서…》

《앓는 애를 왜 억지로 미리 퇴원시키겠냐. 애어미두 서울구경 못했다구 이 더운 때에 나다니겠니.》

최대위는 어머니의 생일에 처를 데리고 오지 못한데 대한 변명을 하는데 어머니는 여태 오늘이 자기 생일이라는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애들의 여름배앓이를 조심해야 하느니라. 퇴원한 다음에도 음식이랑 잘 가려먹이구… 젖은 벌써 뗐다지?》

《예.》

《거기 물은 어떠냐? 여름배앓이는 물탓이 많으니라.》

《우물물이니까 그저 그렇지요 뭐…》

최대위는 건성으로 대꾸하고 문규에게 말머리를 돌렸다.

《또 무슨 롱성을 했다던? 데모를 했다던?》

성난 어조였다.

이번에도 문규가 얼굴이 뻘개져서 어떻게 대꾸했으면 좋을지 몰라 어물거리자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에구, 제발 후환이 또 없겠는지… 그러나저러나 너무 떠들지 말아라. 남규가 깨겠다. 한잠 푹 자게 해주어야지.》

최대위의 시커먼 눈섭이 가볍게 푸들거렸다. 말은 더하지 않고 담배를 새로 한대 붙여문다.

《더운데 그 저고리 벗으려무나.》

어머니의 말이다.

최대위는 방금 붙여문 담배를 재털이에 비벼끄며 문규에게 물었다.

《남규도 오늘이 어머니생일이라는걸 알고있었다면서?》

그런데 하필 오늘 같은 날에 이런 꼴을 하고 들어온 법 어디 있어 하는 꾸중이 그의 입술끝에 매달려있었다.

《뭐, 오늘이 내 생일이라구? 참, 그렇구나.》

어머니가 뜻밖의 사실을 깨달은듯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자식들의 생일을 잊는 법은 없어도 해마다 자기 생일이 오는것은 모르고 사는 어머니다. 그래서 세 아들이 더욱 어머니생일을 잊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고 뭐 요란한 잔치를 차리는것도 아니다. 최대위가 장가들기 전엔 어머니를 거리의 조촐한 음식점으로 모시고 나갔다. 그날만은 동자수고를 덜어드리고 구미에 맞는 음식을 대접해드리기 위해서였다. 최대위가 장가든 다음부터는 처를 데리고 와서 집에서 생일식탁을 차리게 했다. 그러나 오늘은 처를 못 데리고 왔으니 동생들과 함께 어머니를 모시고 식당에 갈 생각이였을것이다.

《내 좀 나갔다 오겠어요.》

최대위는 불쑥 일어서며 말했다.

《저녁때가 다 돼오는데 어디루 나간다구 그러니?》

어머니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저대루 그냥 내버려두면 어떡해요. 의사라두 데려와야지요.》

《한잠 푹 자구나면 일없겠다구 하더라.》

《누가요?》

《아까 같이 온 의대다닌다는 제 동무가 그러더구나.》

《그것들이 알기는 뭘 안다구. 보나마나 타박상입었겠는데 뇌진탕이나 걸렸으면 어떡해요. 확실한 진찰을 받아봐야지요.》

최대위는 밖으로 나가면서 눈짓으로 문규를 불렀다.

《내 식당에두 들려서 저녁식사를 배달해달라구 주문해두겠다. 남규가 저 꼴인데 어머니 모시구 나갈수 없잖니. 그동안 어머니가 부엌에 나가시지 않게 해라.》

《네.》

《너의 그 처녀 몫두 시키겠다. 왜 같이 오지 않았니? 나중에 혼자 오겠다던?》

《저… 사실은…》

문규는 뭐라 대답했으면 좋을지 몰라 어물거렸다.

《왜? 무슨 일이 있었니?》

《아녜요. 그저 좀…》

최대위는 선뜻 말을 못하는 동생의 립장을 자기나름으로 해석했다.

《다툰게로구나.》

《다투긴요. 공장일이 몹시 바쁜가봐요.》

문규는 거짓말을 한다는 생각에 낯이 화끈거렸다.

《늦게라두 와주면 만나보겠는데… 하여간 내 갔다올게 남규를 잘 돌봐라.》

그런데 남규 당자는 왕진의사가 오기 전에 눈을 떴다.

《그냥 누워있거라. 큰형이 의사선생 모시러 갔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남규의 어깨를 가볍게 누르며 어머니가 말했다.

《큰형이 왔어요? 아, 어머니생일때문에 왔군요… 아니, 근데 의산 왜 불러요?》

《왜라니, 너때문이지.》

《내가 어쨌다구 그래요, 원 형두 참…》

그 의대생의 말대로 한잠 푹 자고나자 몸이 가뿐해진걸가, 남규는 조금도 탈이 있는 사람같지 않았다. 형들과는 달리 갸름한 얼굴에 홍조가 엷게 피여나고 총명하게 반짝이는 눈에도 생기가 넘쳐흘렀다.

《머리는 아프지 않니?》

어머니가 걱정이 채 놓이지 않은 소리로 물었다.

《머리가 왜 아파요?》

남규는 별걸 다 묻는다는 투로 반문하다가 문득 벽시계를 본다.

《아니, 벌써 다섯시야! 이거 늦겠는데…》

《늦다니?》

문규가 되묻는 말엔 아무 응대도 않고 시계를 다시 쳐다보았다. 얼굴엔 초조한 기색이 떠돌았다. 어디 가볼데가 있는 모양이였다.

《왜 누구하구 만나기로 했니?》

이윽고 어머니가 넌지시 물었다.

남규는 어머니를 힐끗 쳐다보며 어줍게 미소했다.

어머니는 조용히 머리를 끄덕였다. 알만 했다. 그냥 빈둥빈둥 놀러 다니는 남규가 아니다. 겉보기에 무척 얌전한것 같은 이 막내아들이 기실은 이만저만한 고집쟁이가 아니란것도 이미 알고있다.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이면 기어이 끝까지 내미는 성미다. 그 성미로 학생운동에 나섰으니 어머니나 형들이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을것도 뻔하다. 오늘도 무슨 집회를 하다가 기동경찰의 습격을 받아 파탄됐다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을리가 없다. 필경 또 무슨 집회나 시위 같은걸 조직할 의논들을 하려고 제 친구들과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했을것이다. 그러나 이 어미의 생일이라고 선뜻 나가겠다는 소리를 못하는 아들의 그 마음, 어머니는 불현듯 따뜻한 물기 같은것이 가슴속에 스며드는듯싶었다.

만약 남규가 남아있어준다면 오늘 저녁엔 세 아들을 한상에 마주앉히게 될것이다. 셋이 다 시원한것을 좋아하니 오이랭국이라도 많이 풀어주어야지.

어머니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피여났다. 자식들을 다 한상에 둘러앉혀놓고 제손으로 끓인 음식을 먹이는것도 어머니에겐 하나의 기쁨으로 되는것이였다.

하지만 그 자그마한 기쁨마저 좀체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맏아들은 따로 살림을 났으니 할수 없다지만 집에 있는 둘째와 셋째도 저녁상에 마주앉는 경우가 드물었다. 문규는 사흘이 멀다하고 직장에서 밤일을 하고 퇴근하는 날에도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일정치가 않았다. 직장에 다른 일감이 있어서 그런지 아니면 명희를 만나고 오는지 늦은 밤에야 대문을 두드렸다. 남규도 대학에서 공부가 끝난 다음에 곧장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 거의 없었다. 도서관에 남아있었다, 혹은 친구네 집에 들렸다 하면서 통금고동소리가 울릴 림박해서야 들어오군 했다. 아들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저녁시간은 언제나 쓸쓸하고 시름겨웠다. 찌개가 식을사 하면 탄불우에 올려놓았다가 지내 졸아버릴것 같으면 또 내려놓았다간 다시 덥히군 하면서 시계만 연방 쳐다보군 한다. 이것들이 배고픈줄도 모르구 여태 어디서 뭘 하나, 자식들을 가볍게 나무라기도 한다.

간혹 둘이 일찍 들어와서 함께 저녁을 먹게 되는 날이면 흡사 자식들한테서 무슨 은혜라도 입은듯이 기쁘고 고맙다. 오늘은 맏아들까지 왔으니 이제 남규가 집에 남아있어준다면 오래간만에 세 형제가 한상에 둘러앉게 될것이다. 참으로 오래간만의 일이다. 작년 오늘 그래보고는 처음이다.

그러나 자식들이 언제나 어머니생각만 하면서 살기를 어찌 바랄수 있겠는가. 이젠 다 큰 자식들이니 어차피 자기들의 생각이 따로 있고 제각기 제 일도 가지기마련이다. 섭섭하지만 할수 없는 일이다.

《남규야!》

《네?》

어머니는 부드러운 눈매로 아들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볼일이 있으면 가봐야지 어쩌겠니, 어서 가봐라.》

《아니, 어머니!》

어머니말에 남규가 오히려 당황했다.

《오늘만은 집에 있어라. 어머니를 위해서…》

문규가 은근한 어조로 동생에게 당부했다.

그러자 어머니가 그를 쳐다보았다.

《왜 또 내 생일이야기냐? 그만해라.》

어머니의 말에 남규는 가볍게 떨리는 소리로 조용히 불렀다.

《어머니!》

《원 녀석두…》

《이내 돌아오겠어요.》

《오냐, 오늘은 큰형두 왔으니 꼭 집에 와서 자도록 해라. 이 어미속을 너무 태우지 말구.》

《네. 그럼 다녀오겠어요.》

동생이 나가자 문규는 혼자소리로 걱정했다.

《형님이 오면 뭐라구 한다?》

어머니는 무겁게 한숨만 지었다.

《도서관에 갔다구 해야지. 오늘중으로 꼭 봐야 할 책이 있어서 간거라구…》

문규는 자신없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아니나다를가 최대위는 그의 서툰 거짓말에 속지 않았다. 의사를 데리고 돌아온 그는 《환자》가 없어진것을 보자 깜짝 놀라기부터 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문규가 도서관소리를 했지만 최대위는 의사를 돌려보내자마자 문규에게 눈총을 쏘았다.

《도서관이 다 뭐야! 또 데모 모의하러 갔겠지.》

단호하고 확신에 찬 어조에 어머니도 문규도 더 거짓말을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최대위는 계속 문규를 꾸짖었다.

《넌 집에서 대관절 뭘 하구있니? 데모바람에 들떠서 나다니는 동생 하나 잘 단속 못하구 뭘 하구있냐 말이다.》

《그만해라. 남규가 어디 누가 이래라 해서, 이러구 저래라 해서 저럴 애냐. 저두 그만큼 자랐으니 다 생각이 있어서 하는 일이겠는데 문규가 어떻게 그걸 말리겠니.》

어머니가 문규를 두둔해나섰다.

최대위는 어머니말엔 응대를 않고 계속 문규를 꾸짖었다.

《그게 틀렸단 말이다. 제 형들의 말두 안 듣는 그따위 버릇을 왜 진작 고쳐주지 못하는거냐? 그래 우리가 데모학생이나 되라구 그놈을 대학에 보냈단 말이냐? 공부 잘해서 성공하라구, 그걸 바라구 허리띠 졸라매구 공부시키는게 아니냐!》

하긴 최대위가 장교로 된 동기중의 하나가 동생을 공부시키려는데 있었다. 그가 사병복무를 마치고 만기제대를 하게 된 해에 남규는 중학교졸업반이였다. 졸업반중에서도 성적이 단연 으뜸이였다. 교사들의 말에 의하면 공부를 더 시키면 크게 성공할 수재라 했다. 그러나 가정형편은 그를 상급학교에 진학시킬 여유가 없었다. 맏형은 아직 군대에 있었고 둘째형 문규는 신체검사에서 불합격딱지를 받아 징집은 면했지만 취직자리가 없어서 쩔쩔매고있었다. 여전히 혼자 살림을 떠맡고있는 어머니의 힘으로는 도저히 아들을 상급학교에 보낼수 없었다. 중학교에 보낸것만 해도 기적이라 해야 옳을것이였다.

영규가 제대한다 해도 뾰족한 수가 없을것이 뻔했다. 제대장병에게 실업자딱지나 주는것이 가혹한 사회현실이였다.

자신의 그 암담한 앞날에 대한 위구와 함께 그렇듯 앞날이 촉망되는 막내동생을 상급학교에 보낼수 없는 사실을 두고 고민하던 영규를 인사장교가 부른것은 만기제대를 앞둔 어느날이였다. 인사장교가 묻기를 장교후보를 지망할 의향이 없느냐고 했다. 영규는 은연중 귀가 솔깃했다. 장교가 되면 막내동생의 학비를 대줄수 있지 않겠는가. 세 형제중에서 막내 하나라도 제대로 공부시켜 성공하도록 도와준다면 그것은 온 가족의 자랑으로 될것이다.

군대에 싫증이 나기는 했으나 동생을 공부시키려면 딴 길이 없었다. 영규는 여러날을 두고 생각한 끝에 장교후보를 지망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단기교육을 마치고 장교로 임관되자 매달 봉급을 집에 보내여 남규의 학비로 쓰게 했다. 그후 문규가 호텔접대원으로 취직하긴 했으나 그 무렵부터 어머니가 고령탓에 더 벌이를 할수 없게 되여 그의 월급은 살림에 쓰고 남규의 학비는 계속 맏형이 담당했다. 재작년에 결혼한 다음에도 살림은 여러가지 가내부업을 하는 안해의 수입으로 꾸려나가고 영규의 봉급은 태반 동생의 학비로 보냈다.

한편 다년간의 장교생활은 그에게 장교로서의 체모와 일종의 직업의식 같은것을 형성시켜주었다. 자신의 사병시절을 생각해서 결코 무지한 기합을 가하는 일은 없었지만 부하통솔은 엄하게 했다. 부하들이 작전교육이나 사역에서 꾸물거리면 막 화를 냈다.

하지만 그에게도 내심의 불만이 전혀 없는것은 아니였다.

륙사출신의 장교가 아니여서 승급이 뜨고 륙사출신패거리들의 멸시까지 받는것이 우선 아니꼬왔다. 이건 아무래도 좀 무리가 있는데 하는 판단이 가는 경우에도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요구하는 군기에 얽매여 상부의 그 명령을 그대로 집행하지 않으면 안될 때의 불만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장님이 아닌 이상 사회에 만연될대로 만연된 부정부패와 집권층의 횡포도 보지 않을수가 없었다. 때로는 그에 대한 울분이 가슴속에서 끓어번졌다. 그럴 때면 학원의 자유와 사회적정의를 위해 싸우는 젊은 학도들이 얼마나 장해보이는지 몰랐다. 그러나 옳은 일이라 해서 다 용납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또 하나의 엄연한 사실앞에서도 눈을 감을수가 없었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 법이라지만 현실은 불의가 득세하는 경우도 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였다. 현 《정권》에 대한 인민들의 지탄이 아무리 하늘에 닿아도 그것이 《국군》과 방대한 정보사찰망의 호위속에 군림하고있는 한 학생들이 제아무리 항거의 홰불을 높이 들어도 쉽사리 붕괴되지 않을것 같았다. 학생들에게 차례지는것은 곤봉과 철창뿐이였다. 그것이 오늘의 현실이였다. 그 뚜렷한 실례가 남규의 수난이다.

최대위는 동생이 그 수난을 겪는것을 볼적마다 형으로서의 어쩔수 없는 본능에서 가해자들에 대한 의분을 느끼는 동시에 동생의 그 무모한 저항에 짜증이 나는것도 막을수가 없었다. 그럴수록 집에서 동생을 잘 타이르고 단속하지 못하는 문규가 더욱 원망스러워지는것이였다.

《형이면 형구실을 해야지!》

최대위는 점점 어성을 높였다.

《저러다가 퇴학이라도 맞으면 어떡할테냐? 요새 데모학생들을 군에 붙잡아보내는걸 너도 알지? 그런 아이들이 더 지독한 기합을 받아. 그래 남규가 그 꼴이 되는걸 봐야 속이 시원하겠니?》

문규는 변명할 말을 얼른 찾을수 없었다. 듣고보니 형의 말이 다 옳은것 같았다. 남규에게 형구실을 제대로 못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니, 애당초 형구실을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하는것이 옳은지도 모른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에서도 수재소리를 듣는 동생에게 중학공부도 제대로 못한 자기가 구태여 무엇을 가르치랴 했던것이다. 동생이 하는 일이 다 장하고 옳아보였고 그러한 동생을 둔것을 못내 자랑스럽게 여겨왔을뿐이였다.

그러나 형의 말을 듣고보니 또 그것이 다 옳은것 같이 느껴지는것이였다. 특히 형의 꾸중속에 스며있는 동생에 대한 사랑과 걱정이 그의 가슴을 쳤다.

《더더구나 오늘이 무슨 날이냐! 하필 오늘 같은 날에 그 꼴로 들어온것만 해두 기막힌 일인데 또 뛰여나가는것을 그냥 두다니…》

최대위는 뒤말을 잇지 못하고 숨을 씩씩거렸다.

이때 식당의 배달부가 주문받은 음식을 가지고 왔다.

《아니, 이게 뭐냐?》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최대위는 배달부에게 부탁했다.

《방안에 놓구 가시오. 그릇은 한시간후에 찾아가구…》

《예, 그럽죠.》

최대위는 어느새 얼굴에서 노기를 가시고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오늘이 어머니생일 아닙니까. 식당에 모시구 나가려구 했는데 남규때문에 못 나가실것 같애서 주문해왔습니다. 남규까지 있으면 더 좋을걸 그만…》

어머니는 잠시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음식그릇들에 시선을 돌렸다. 별의별 료리가 다 있었다. 어머니에겐 그야말로 진수성찬이였다. 어머니생일을 위해 큰마음 먹고 돈을 아끼지 않은 맏아들의 정성을 그대로 생생히 보여주는것이였다.

《너의 정성은 고맙다만…》

어머니는 물기어린 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내가 이제 생일을 쇠서 뭘 하겠니. 그래두 꼭 내 생일을 차려주겠다면 하나 소원이 있구나. 너희들 세 형제가 언제나 마음이 맞아서 웃고 지낸다면 그게 나에게는 이 진수성찬보다 더 기쁘겠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최대위의 목소리가 흐느끼듯 가볍게 떨렸다. 어머니앞에서 자제력을 잃고 큰소리를 친것이 뉘우쳐지는 동시에 서로 웃으며 의좋게 지낼수 없는것이 못내 안타까왔다. 자신에 대한 막연한 불만이 울컥 치밀기도 했다. 문규를 꾸짖느라 했지만 어쩌면 그것이 스스로 자기자신을 꾸짖은 소리가 아니였던가싶었다. 뭐라 딱히 찍어말할수 없는 불만과 수치감이 자꾸만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랐다.

문규도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머니의 그 설음도, 형의 그 노여움도 다 자기의 잘못탓인것만 같은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찔렀다.

《다 제 잘못입니다.》

《누구 잘못이랄게 있니. 다 세월탓이라는걸 나두 안다…》

어머니는 꺼지게 한숨지으며 문밖으로 멀리 저녁노을이 퍼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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