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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 3 회


제 1 장


3


수정이 녀학교를 졸업하던 해 봄이였다. 그는 우울하였다. 최우수의 성적으로 졸업을 하면서도 상급학교에 가지 못하고 취직도 할수 없기때문이였다.

겨우 락제나 면하는 아이들, 그것도 돈을 먹여서 졸업하는 아이들도 서울이나 도소재지의 무슨 고등학교, 무슨 대학 하고 시험을 치기도 하고 어디어디 취직들도 하는데 수정은 상급학교는 물론 취직을 시켜줄만 한 배경도 없는 처지였다.

그는 음악련습도, 무용련습도 다 시들하게만 생각되여서 마지막종만 울리면 집으로 와버리군 하였다. 학교도 가깝지 않았다. 강을 하나 건느고도 십리길이 더 되였다.

날마다 다닐 때는 아무 생각도 없던 길들이 이제는 다닐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느끼자 3년동안에 겪은 갖가지 추억들이, 심지어 너구리를 만나서 놀라던 일까지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살아나는것이였다.

또한 그것들은 어느 한가지도 딸에 대한 아버지의 정성과 떼여놓을수가 없었다.

수정의 아버지 한만달이 딸을 녀학교에 넣는다고 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 무모한 생각에 놀라고 뒤에서 걱정도 해주었다. 그 딸이 하도 똑똑하니까 그러는것이라고 동정도 하였었다. 수정은 국민학교때부터 그렇게 아이가 곱고 공부도 잘하였다.

한만달은 촌에서 흔히 말하는 낫놓고 기윽자도 모르는 사람이였다. 그앞에 수정이가 우등의 성적표를 갖다주면 글자는 모르면서 그것을 오래도록 보는것이 락이였다.

겨울날 늦게 밝고 빨리 어둡는 때는 아침저녁 어두운 길을 딸을 앞세우고 다녔다. 봄, 가을 같은 때 사공이 없으면 직접 노를 저어 강을 건네주었다.

수정이 할아버지가 옛날에 너무도 무식하여 토지세부측량때 왜놈들에게 속아서 많지는 않아도 땅을 빼앗긴 뒤로는 가난을 면치 못하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하여 자식들의 눈만은 틔워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수정을 공부시켰던것이다.

수정은 아버지의 그 3년동안의 고생과 또 그때의 집형편을 생각하면 상급학교를 꿈꾸는것조차도 철없고 부질없는 일인줄 알았다.

그러나 속은 상하였다. 어느날 수업이 끝난 후 타박타박 걸어서 강변나루터까지 왔다.

보지 못하던 웬 점잖은 신사가 안해인듯 한 말쑥한 녀자와 그들의 아이들로 보이는 세 남매를 데리고 배를 기다렸다. 배는 수정의 동생 수일이가 노를 저어 강심을 지나 이리로 오고있었다.

《덕환네 아저씬 어디 가셨니?》

수정이가 동생에게 물었다.

《소여물 끓인다구 나보고 건늬라고 그랬어.》

덕환네 아저씨란 배사공이였다. 나루터라 하지만 강을 건느면 높은 산맥이 앞을 막는 지대여서 사람사는 마을도 드물고 나루손님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사공도 늘 붙어있지 않았다.

날마다 시간을 맞추어 강을 건너야 되는 수정은 아버지가 일쑤 잘 건늬워주었으며 수일이도 어느 틈엔가 노젓는 법을 배웠다.

《강 건너가는 손님들이예요?》

수일이가 물었다.

《그렇다.》

신사가 대답하였다.

《그럼 타세요.》

수일이는 삿대로 흘러내리는 배를 고정시키고 타기를 재촉하였다. 아이들이 먼저 뛰여오르려고 하였다. 신사는 아이들의 앞을 막고 타기를 주저하였다.

《네가 절줄 알겠니?》

《지금 저어오는거 보지 않았어요?》

《올 땐 빈배니까 그렇지만 이렇게 여러 사람이 타고도 되겠니?》

수일은 열두살 꼬마였다. 신사가 걱정하는것도 무리는 아니였다.

《치이, 그럼 그만두세요. 이따가 사공아저씨가 나오거든 그때 건느세요. 누나나 타!》

수일은 삿대를 노로 바꿔 잡으며 수정을 보고 말하였다. 수정이가 배에 올라서 노를 들고 고물에 가서 두어번 젓자 배머리는 강자갈우를 버시럭 소리를 내며 뭍으로 기여올랐다.

《타세요!》

수정은 알지 못하는 신사와 그의 가족들에게 권하였다. 꼬마 수일이와는 달라서 17~18살 되여보이는 수정이가 노를 잡고 서있는 모습은 진짜사공이나 다름없이 믿음직스러웠다.

신사부처는 아이들을 앞세우고 배에 올랐다.

강에 저녁노을이 비꼈다. 그 노을을 얼굴에 받으며 침착하게 노를 젓는 수정은 귀엽고 건강해보였다.

신사내외는 한폭의 그림이라도 보는듯 이윽토록 그를 보았다. 신사가 물었다.

《너희들 이 마을에 사니?》

이 마을이란 그들이 강을 건느고 선바위가 부부같이 쌍으로 서있는 산모퉁이를 돌아들어가면 남향으로 앉은 마을을 뜻하였다. 마을이름도 바위의 모양을 따서 쌍바위 혹은 쌍암리라고 하였다.

《네.》

수정이 대답하였다.

《너희들 아버지가 누구냐?》

수일이가 이상하다는듯 수정을 쳐다보았다. 수정도 조금 망설이다가 대답하였다.

《한만달어른입니다.》

《오, 한만달이! 만달이가 너희들 아버지냐? 만달이가 딸을 잘 뒀구나!》

수정은 자기에 대한 칭찬보다도 그 신사가 만달이 만달이 하고 자기 아버지를 마구 부르는 그 말투가 귀에 거슬렸다. 수정의 아버지 한만달은 쉰을 넘은데다 고생으로 겉늙어서 로인같았다. 하지만 신사는 아직도 젊어보였다.

《우린 서울에서 온다. 치원씨가 우리 사촌형님이다. 치원씨 너 알지? 집에 가면 아버지헌테 얘기해라.》

수정은 그제서야 그가 누구인지 짐작하였다. 오치원의 사촌 오동원이였다. 수정은 그를 처음 보지만 그 이름은 너무도 유명하였다. 마을에서는 오치원이 제일가는 부자로서 사람들이 그를 부러워하나 실상 알고보면 그의 재산은 거의 그의 사촌동생 오동원의것이였다.

수정이네 집에서 일부 위탁으로 농사를 짓는 땅도 명의는 오치원으로 되여있어도 오동원의 돈을 갖다가 사놓은 땅에 소작살이를 하는데 지나지 않았다. 농촌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도회지의 부유층에 대하여 부러워하던 나머지 신화같은 이야기를 돌리는게 보통이지만 오동원도 쌍암리에서는 그러한 존재로 되여있었다.

그가 교통부의 국장으로 있을 때 자기의 관직외에도 단양강일대의 경치좋은 곳을 사서 장차 관광지로 만든다는 소문이 떠도는가 하면 단양탄광을 크게 《개발》한다는 그럴듯한 풍문도 나돌았다.

그것은 노상 헛소문만도 아니였다. 장차 큰 재벌로 등장해보려는 오동원은 계획도 많았고 경륜도 컸다. 그러한중에 지금은 후지노를 만나서 그의 허리띠에 매달리고있지만 수정이 중학을 졸업하던 그해까지는 아직 그렇지 못해서 관광지《개발》이며 탄광《개발》을 연고지와 관련시켜 구상해보던 때였다.

한편으로는 박정희밑에서 관리노릇하기란 칼물고 뜀뛰기같아 언제 망할지 모르는 일이여서 여차하면 락향하여 살 곳도 찾아두려는 생각을 늘 가지고 단양에 오는 일도 있었다.

그때도 그의 삼촌인 오치원의 아버지 3년상에 참가한다는 명목상으로 그렇게 단양에 왔지만 그 여러가지 목적을 겸해서 나타났던것이다.

수정은 집에 와서 오동원이 만난것을 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에게 이야기하였다. 아버지는 별반 신통하게 듣지 않았다.

《네 어머닌 어디 갔냐?》

《제사집 갔어요.》

수일이가 대답하였다.

《제사집은 가서 뭘 해?》

그것도 조금은 못마땅해하는 말투였다.

《두부콩 갈아요.》

《수정이 넌 오늘도 일찍 왔구나.》

한만달의 이야기는 펄쩍 비약해버렸다.

수정은 아버지가 말하는 그 뜻을 짐작할수 있었다. 그가 상급학교에 가지 못하는데 락심을 하여 졸업기념음악회의 합창련습에도 빠지고 일찍 돌아온것을 걱정하는것이였다.

《아버지, 제가 래일부터는 합창련습에도 참가하고 늦게 올게요. 인젠 웃학교 가는거 단념했어요. 녀학교도 아버지 고생으로만 다녔는데 과남해요. 그대신 수일이도 이담에 어떻게 하든지 중학까지 꼭 보내요.》

《아, 아까 그 아이 중학교모자 썼더라.》

수일이가 오동원의 아들이 썼던 모자를 두고 말하였다.

《수정이 네가 그렇게 맘을 고쳐먹었다면 됐다. 수일이도 중학에야 보내야지. 다른건 다 제쳐놓더라도 그거 한가지만은 내가 꼭 맘먹는거다.》

한만달은 딸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나서야 그럴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담배대에 담배를 담으며 물었다.

《그래 오동원이가 무슨 말 안하던?》

《다른 말은 안하고 자기 온걸 아버지보고 말하라고만 해요.》

밤에 오치원네 집에서는 만달에게 와달라는 기별을 보냈다.

수정은 아버지의 헌옷이 마음에 걸리여 농짝을 열고 한번 입었다가 개여둔 저고리를 꺼냈다. 구김살이 많이 갔다. 그는 얼른 다리미에 뜬숯을 담아 피워서 다리미질을 시작하였다.

《아버지, 우리가 오동원이 그 사람네 빚을 졌나요?》

《넌 아직 그런건 몰라도 된다. 사람이 너무 일찍 그런걸 알면 돌밑에 자라는 풀같이 제대로 꽃도 못 피고…》

《그래도 뭐 인젠 학교도 졸업을 했으니 그런것도 알아야죠.》

수정이네는 네 남매였다. 수정이우로 두 언니는 출가를 하였다. 그리고 아래로는 수일이, 어머니는 딸만 삼형제를 낳고 아들은 못 낳는줄 알았더니 터울이 뜨게 수일이가 태여나서 막내이자 외아들로 되였으며 딸로는 수정이 막내딸인셈이였다. 그는 동기들가운데서 자기 위치를 생각해보는 일이 간혹 있었다. 언니들은 이미 출가하여 외인이 되였고 막내인 수일이가 커서 아들노릇을 할 때까지는 자기가 부모를 받들어야 된다고 다짐하였다. 출가한 언니들때는 그렇지 않았지만 자기대에 와서는 부모들이 로년기에 들어서게 되므로 더욱 그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그래서 오동원과의 부채관계도 알아두어 안될것은 없을것 같았는데 아버지는 그것을 피하려들었다.

《아버지, 수일이가 클 때까진 내가 우리 집에서 아들이예요.》

《뭐?》

한만달은 얼른 그 뜻을 알아듣지 못하였는지 묻고나더니 스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네가 아들이였더라면 좋았을걸 그랬다. 재주도 그만하면 있고…》

수정은 다리미질한 저고리를 아버지에게 입혀주었다.

《네 어머니가 다린거보다 잘됐다.》

수정은 아버지의 저고리입은 모양이 좀더 돋보이도록 봐주면서 오동원앞에 가서 아버지가 떳떳하기를 속으로 바랬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아버지의 팔에 매달려보고싶었다.

《아버지, 난 아버지가 언제나 좋아요.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야.》

한만달은 딸의 심정을 알아내려는듯 덤덤히 수정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오늘 선생님헌테 꾸중을 들은게로구나.》

《아니예요. 제가 왜 꾸중을 들어요. 아버지가 좋아서 그래요. 가셨다가 얼른 돌아오세요.》

《오냐, 일찍 온다. 오라는데 안 가지도 못하고…》

그날 밤 오치원네 집에서는 수정에 대한 칭찬이 자자하였다.

먼저 미라가 집에 들어가서 서로 인사도 끝나기 전에 어떤 녀학생이 강을 건늬워주어 잘 왔다는 말로부터 시작되여 그것이 수정이였다는것이 알려지자 헛간에서 두부콩을 갈던 수정이 어머니가 미라앞에 불리워가서 치사를 받기까지 하였다.

《저런 어미속에서 어떻게 그런 고운 딸이 나왔을가. 참, 딸이 곱게 생겼습디다. 서울 갖다놔도 누구헌테 짝지지 않아요.》

수정이 어머니는 《저런 어미》라고 깔보는 말도 허물치 않고 딸을 칭찬하는것만 고마와서 《뭘요. 가르친게 없어요.》라고 해두었다.

그 자리에 있던 녀자들은 수정이가 쌍암국민학교에 다닐 때에 공부도 잘했을뿐아니라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던 이야기를 벌려놓았다. 수정이 지금은 중학교에 가서 성량도 더 좋아지고 무용도 제대로 배워 국민학교시절때의 그가 아니지만 마을의 아주머니들은 읍내 중학교에는 가보지 못했기때문에 국민학교때 이야기만 하였다. 수정이 졸업한 후에는 그만큼 잘하는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사랑에서도 한만달이 오동원에게 인사를 하자 곧 그 말이 나왔다.

《한서방, 거 딸을 잘 뒀습디다. 중학교 다니는것 같더군.》

《예.》

한만달은 오치원을 거쳐서 쓰기는 하지만 결국 오동원의 빚을 갚지 못하고있는 처지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오동원앞에서 딸을 학교에 보내고있는 사실을 자랑할 처지가 못되였다.

도리여 오치원이 옆에서 그를 추어주었다.

《한서방이 장하지, 직심 하나로 딸을 녀학교에 보냈으니, 개천에서 룡난셈이요.》

오동원도 고개를 끄덕이였다. 방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오동원의 종형제들의 말에 깃을 달아주며 모두 그렇다는 바람에 한만달은 더욱 거북하였다.

《녀학교를 졸업하면 또 상급학교에 보내요?》

오동원이 물었다.

《아뇨, 녀학교도 겨우 나왔는걸요.》

한만달은 꾸밈없이 실토를 하였다.

《녀학교나 나와서야 소용이 없지.》

오동원의 말이 한만달의 아픈 곳을 찔렀다. 수정이 그날 아버지앞에서 상급학교를 단념한다고는 했지만 딸의 그 아픈 마음을 한만달도 모르지 않으며 자기도 그런 마음이였다. 오직 그 아픈 마음들을 수일의 장래에 걸어보며 억지로 달래고있던터이다.

《그래서야 쓰겠소.》

오동원은 무슨 생각이 들었던지 걱정을 해주었다.

《한서방, 거 딸을 우리 집에 보내오. 낮엔 일이나 좀 시키는체 하고 밤엔 학교에 보내주리다. 우리 집엔 식구가 식모로부터 서사, 운전사, 정원사, 개의 조련사 뭐 열댓명도 넘어요. 집의 딸애 하나 온다 해도 어느 구석에 있는줄도 모르오. 맘에 있걸랑 보내오.》

방안에서는 환성이 올랐다.

《한서방, 올해 신수가 터졌소.》

《가다가다 사람이 이런 일도 있어야 산다니까.》

《지성이면 감천이라더니, 한서방을 두고 한 말이요.》

오동원의 제의는 그 혼자의 뜻만은 아니였다. 저녁때 강을 건느고 마을에 들어서서 수정과 헤여진 다음 그들부부가 의논한것이였다.

그렇게 외모도 깨끗하고 강을 건늬워준것으로 보아 마음씨도 고울상싶으니 하녀로 데려갈수 있으면 좋겠다고 미라가 먼저 발설하였다. 오동원은 쌍바위에 자기 돈이 적어도 천여만원이나 와서 깔려있는데 계집애 하나 못 데려가겠느냐고 장담을 했었다.

그들이 수정을 데려가려는 목적은 여러가지였다. 현재 있는 식모들가운데 마음에 맞지 않는 녀자와 바꿀 생각이였다. 봐서 수정이 정말 똑똑하면 식모 겸 접대원을 시킬수도 있었다. 접대원으로 녀자를 한명 따로 고용해야 될만큼 손님이 요즘 날이 갈수록 늘어만 갔다. 식모를 겸할만 한 녀자가 있으면 제일 좋겠는데 수정은 얼굴도 고와서 그렇게 쓸수 있음직도 하였다. 또 제 집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게 해도 좋은 일이였다. 그 집 아이들은 모두 머리가 좋지 않았다. 숙제 하나 제대로 해가지 못해서 미라도 그 점에 있어서만은 학교에 찾아갈 때에도 치마바람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가정교사를 두기도 여러번 해보았지만 두달안팎에 나가버리는것이였다. 수정을 시켜서 애들의 숙제도 해주게 하자. 그들은 수정을 두고 여러가지로 계산을 해보았다. 결국 데려다가 마구 부려먹자는것이였다.

오동원이 수정을 학교에 넣어준다는 그 《호의》는 금방 오치원네 사랑방에서 안방으로 날아들어가고 그것은 또 지체하지 않고 그날 밤으로 수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수정이는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어머니는 밤을 새야 된다고 하였다.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그다지 좋아하는 기색이 아니였다. 그래서 수정은 먼저 묻게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저고리를 헌것으로 바꿔 입고 담배만 피울뿐 말이 없었다. 수정은 갑갑증을 참지 못하였다.

《아버지, 괜한 소리야요?》

아버지는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벌써 네 귀에까지 와닿았구나. 빠르기도 하다.》

《그런 말이 있긴 있었어요?》

《있었다. 허지만 난 잘 생각해보고서 어머니허구두 의논해본 다음 너헌테 얘기할려고 했다. 그런데 네가 먼저 들었으니 얘기한다만 난 지금까지 공것이란걸 세상에서 보지 못했다. 혹시 도둑들이나 투전군들은 그런걸 바란다더라만 우리네 농사군들은 공것을 모르고 산다. 그런데 오동원이의 말이 너무 헤픈것 같다. 그래서 내 좀 생각해본다.》

《그 사람이 어떻게 헤퍼요?》

《널 데려다가 낮에는 일을 시키는체 하고 밤에 학교엘 보내준다는데 낮에 일을 시키는체 한다는 말이 난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수정은 잠시나마 품었던 꿈이 허망하게 날아나고 앞날에는 단양강물소리만이 있는것 같았다. 그는 아버지를 믿었다. 어떤 아이들은 농사짓는 아버지들을 구식이니, 봉건이니 하고 흉을 보지만 수정은 아버지의 웅심깊은 속을 그 어느 책의 구절보다도 더 믿었다.

《아버지, 난 아버지가 하라는대로 할게요. 그 일 가지고 걱정마세요. 어머니는 밤에도 안 오시나봐요.》

수정은 얇은 이불을 시렁에서 내려 아버지에게 깔아주었다.

《주무세요.》

그러나 아버지는 독한 담배만 꾸르륵 소리가 나게 빨았다.

수정은 학교라는 말을 듣고 그동안 보지 않던 책들가운데서 꺼내보던 수학문제풀이책을 한쪽으로 밀어놓았다. 웃방에 올라가 자리에 누웠으나 잠은 오지 않았다. 자기 생각보다 아버지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그것이 더 마음씌였다.

다음다음날 저녁 한만달은 또다시 오치원네 사랑으로 불리워갔다. 그동안 오동원이 《낮에는 일을 시키는체 한다.》는 내용은 식모일이라는것이 알려졌다. 오동원은 래일 떠난다고 하면서 수정의 이야기를 또 꺼냈다.

《생각해봤소?》

《아직 철없는게 돼서요.》

《철이 없다니, 그날 부탁도 안했는데 배로 강을 건네주는걸보니 철이 다 들었습디다. 녀학교도 나왔겠다.》

《그래도…》

《하여튼 내가 사람 만들어줄테니 나를 믿거든 보내오. 믿지 못하겠으면 보내지 말고. 난 우물쭈물하는걸 제일 싫어해요. 그런 사람들과는 상종하기도 싫다니까. 그런 사람들은 뭘 생각하는지 알수가 있어야지.》

오동원은 거기 와 앉아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자기의 처세훈도 말하고 깨끗한 량심을 펴보이듯 손바닥을 펴보이였다. 그앞에 까닭없이 머리를 끄덕이며 경의를 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가지고있는 돈의 힘이였다.

《가보오. 가서 딸과도 잘 말해봐요. 사람이란 지내보면 기회라는게 다 있습디다.》

한만달은 집에 돌아왔다. 마누라와 수일이는 피곤한지 벌써 잠들었고 수정이는 학교에서 아직 오지 않았다. 합창련습에 참가하고 오는 모양이였다.

읍에서 통금예비시간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멀리 들리였다. 급히 나루터로 나가보았다.

《수정이 왔니?》

강건너에 대고 소리쳐보았다.

《아버지!》

《오래 기다렸냐?》

《아뇨.》

《합창 하구 왔니?》

《네.》

《곧 간다!》

한만달은 닻줄을 풀어 배를 띄웠다.

그들부녀는 배를 타고 건너오는 동안 오동원네 집에 가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수정도 식모라는게 무엇인지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사람 저 사람의 말을 들어보았다. 아버지에게 가겠노라고 주장해나설만 한 직업은 아니였다.

그후 오동원은 자기들 종형제간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하고 갔는지 모른다. 오치원이 자주 수정이네 집으로 찾아와서 딸을 졸업식이 끝나는 차제로 곧 서울에 보내라고 하였다.

사람은 서로 믿는 신의가 제일이라고 하며 땅을 위탁해서 농사를 짓게 하는것도 모두 신의가 아니냐고 나중에는 점점 로골적으로 나왔다.

마을의 모든 시선이 수정에게 집중되였다. 그는 그것을 몸에 따갑게 느끼였다. 식모로 가느냐, 아니냐. 동창생들속엔 벌써부터 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식모 수정씨!》

그리고 까르르 웃었다.

놀리려는 심보보다는 가지 말라는 충고라고 할수 있었다.

그는 잠 못 자는 밤이 많았다. 그날 밤도 어머니, 아버지는 매양 같은 문제를 가지고 걱정을 하였다. 아마 수정이 잠든줄 알고 하는 말들이였을것이다.

《제 동무들은 취직도 한다는데 우린 부탁할데도 없고, 농사래야 저애 아니래도 짓는건데…》

어머니가 긴 한숨을 내쉬며 하는 말이였다.

《장차 수일이는 뭘로 어떻게 공부를 시킨다?》

아버지는 앞날까지 걱정하였다.

수정은 수일이가 중학교에 가지 못하는 일은 상상할수도 없었다.

다음날 아침 수정은 아버지앞에 단정히 꿇어앉았다. 그들의 소탈한 가풍에서는 그러한 일은 별로 없는 일이였다. 수정이 비상한 결심을 말하는것이였다.

《아버지, 저를 서울로 보내주세요.》

그는 자기 말에 스스로 격앙되여 울먹거렸다.

어느 틈엔가 어머니도 옆에 와 섰고 수일이도 방안의 긴장한 공기에 굳어져있었다.

아버지는 오래동안 말하지 않았다. 수정은 고개를 숙이고 기다렸다.

《식모로 말이냐?》

아버지의 목소리는 역정스러웠다.

《아버지, 숱한 녀자들이 식모로 갑니다. 다들 집사정들때문이예요. 저라고 왜 못 갑니까! 우리 집사정도 그 길밖에 없지 않아요.》

그의 처음 울먹거리던 말소리는 점차 또렷해졌으나 눈물이 방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어머니는 긴 한숨을 쉬던 끝에 밖으로 나갔다.

《남의 집 식모로 보낼려고 내가 널 녀학교에 보내지는 않았다.》

한만달은 자기의 그 정성으로 봐서도 녀학교라는것을 대단한 학교로 알고있었다. 그러나 랭혹한 현실앞에서 녀학교가 대체 무엇이랴. 수정은 그 말을 하고싶었으나 아버지의 정성을 생각하니 차마 그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수정은 오동원네 집으로 가게 되였다. 그는 아버지앞에 자기 결심을 말하고나서도 아버지가 좀처럼 승낙하지 않자 자기도 일단 생각을 달리해보았지만 결국 그 길밖에 없었다. 출가한 언니들을 찾아가보아도 별수가 없었다.

수정은 가정의 어렵고 무거운 짐을 지고 오동원의 집으로 가게 된것이다.

서울로 가는 날이였다.

읍에서 서울 가는 차시간도 그렇게 빨랐지만 수정으로서도 남들 보지 않는 시각에 일찍 떠나고싶었다.

어머니와 함께 새벽 나루터로 나왔다.

아버지는 모르는체 하였다.

수정은 학교에 다닐 때와 같이 배의 닻줄을 풀었다. 되도록이면 아무런 사연도 없이 읍내에 갔다오는 날같이 례사롭게 떠나고싶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집을 떠나보내는 딸이였다. 자기가 아끼고 입지 않던 치마랑 넣어 한보퉁이 해서 이고 따라나섰다. 어머니의 다심한 생각은 많았다.

숱한 처녀들이 옛날부터 그 강을 건너서 타관으로 많이도 갔다. 그러나 잘돼서 그 강을 건너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녀자들은 어머니 기억에는 하나도 없었다.

더우기 어머니에게는 지금도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앉아서 밤을 밝히는 아픈 추억이 그 강변에 있는것이다.

수정이의 고모가 열아홉의 나이로 왜정때에 일본군성노예로 끌려나가서 지금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생사를 모르고있는것이다. 집을 떠난지 한달만에 만주 목단강에서 편지가 왔고 다음은 남방으로 간다는 간단한 군용엽서가 왔을뿐 소식을 몰랐다. 그것이 벌써 30년전일이건만 어느 하루도 잊어버릴수가 없는 아픈 추억이여서 언제나 어제일같이만 생각되며 시누이(수정의 고모)가 끌려갈 때 입고있던 분홍저고리의 그 빛갈까지도 눈에 선하였다.

그런데 수정은 왜 그렇게도 저의 고모얼굴을 닮았는지 모르겠다.

수정은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닻줄을 풀고는 배를 밀고 껑충 뛰여오르며 말하였다.

《어머니, 인젠 들어가세요!》

《아이도! 난 네 고모생각을 했다.》

《어머니도, 하필 왜 고모생각을 하세요?》

《네가 이렇게 집을 떠나니까 그렇구나.》

《어머니도, 그때는 나라가 없었으니까 그랬죠. 아무것도 걱정마세요. 어서 들어가세요.》

수정은 학교교과서에 자주 나오는 그 《나라》라는 낱말에 힘을 주어 말하고 노를 저어 벌써 강을 건느고있었다. 강물의 한복판에 이르러 어머니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이자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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