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1장 고인돌밑의 인생들


비천한 노예 우마


2


비천한 노예 우마는 며칠만에 죽지 않고 다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참은 우마가 죽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그를 구리터로 보냈다.

우마가 없는 며칠간 구리돌이 나오지 않아 구리돌을 받으러 왔던 놋부리터주인들이 거의 빈손으로 돌아갔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참은 성이 나 마교차를 몰고 구리터로 나갔다. 듣던바대로 노예들이 태만하여 구리통들이 텅텅 비여있었다. 독이 오를대로 오른 참은 자기가 직접 채찍을 들고 노예들을 몰아대고싶었으나 나라의 대신이라는 체면이 있는지라 먹이를 덮치려는 이리의 상이 되여 험상궂게 감독을 불렀다. 채찍을 들고 웃동을 벗어제낀 털보가 달려와 참앞에 넙적 엎드렸다.

《주인님, 부르셨소이까?》

《너 이놈, 밥 처먹고 일하는 처신이 그게 다냐. 채찍은 두었다 뭘하는것이냐. 채찍에 피가 묻지 않고야 무슨 구리가 나온다는것이냐.》

참은 소리를 낮추었으나 그속에는 속이 섬찍할 정도로 독기가 풍기고 있었다.

《알겠소이다. 내 채찍이 마르지 않게 주인님의 분부에 충실하겠소이다.》

털보의 말상이 악마도 무색할 정도로 무섭게 이그러졌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털보놈은 구리짐을 지고 굴입구로 비청비청 기여나오고있는 서너명의 노예들에게 달려갔다.

《 이 무지렁이같은놈들, 다리에 쥐가 뻗쳤다더냐. 왜 빨랑빨랑 나오지 못하느냐. 이 무지한놈들…》

털보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러댔다.

얼굴에 채찍을 맞은 노예가 악―소리를 치며 두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였다.

손가락짬으로 붉은 피가 슴새여나오고 그밑으로는 빠져나온 생눈알이 힘줄에 매달려 데룽거렸다.

마교차안에 비스듬히 몸을 젖히고앉은 참의 얼굴에 느슨히 웃음이 피여올랐다.

(이래도 구리를 안지고 나올테냐. 미련하긴 하늘소 뒤발통같은놈들…)

참은 못내 만족하여 껄껄 웃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노예들이 겁을 먹어선지 아예 굴밖에 나타나지 않았다.

당황한 털보놈은 등뒤로 서리발같은 참의 눈길을 느끼며 어슬렁어슬렁 다가오는 감노를 사정없이 조겨댔다.

《이놈아, 노예를 부리라고 감노시켰지 이렇게 어슬렁거리라고 시킨줄 아느냐.》

채찍을 맞은 감노가 허둥지둥 굴속으로 달려들어갔다. 뒤이어 띠염띠염 굴아구리로 노예들이 기여나왔다. 기여나오는 노예들의 구리질통을 보면 시꺼먼 버럭들뿐이였다.

《이 개자식들아, 왜 이렇게 구리돌이 한심하냐.》

털보놈은 채찍으로 소나 말을 후리듯 노예들을 조기며 악을 썼다.

사정없는 매질에 얼굴을 싸쥐며 노예들이 토설했다.

《구리돌이 없소이다.》

《 이 짐승만도 못한 놈들아, 구리돌이 안나오면 다른 굴을 파면 될게 아니냐! 아직 혼들이 덜 났구나.》

또다시 털보의 채찍이 노예들의 등우에 사정없이 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봤어야 노예들은 버티는 황소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구리터의 형세를 보고 돌아온 참은 속이 타서 죽을 지경이였는데 우마가 왔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노예들이 주인들의 말은 잘 안들어도 어떻게 된 노릇인지 대노인 우마의 말은 수걱수걱 잘 들었다.

참은 짐승무리의 길잡이처럼 노예들을 잘 끌고다니는 우마를 내심 귀하게 여기게 되였다.

길잡이만 잘 내세우면 구리돌이 버쩍 나와 쌓인다.

참은 자기의 무자비한 채찍보다 더 위력한 길잡이노예를 신비하게 여겼다.

그래서 그만큼 우마를 귀하게 대하고 우마가 하자는것은 거의 그대로 내버려두었던것이다.

참의 집을 나선 우마는 한낮전으로 구리터에 가닿으려고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갔다.

그동안 떨어졌던 날승이며 구두막 등 노예들이 그리웠다.

날승이며 구두막은 몰론이고 구리터의 모든 노예들이 자기들을 위해주고 대해주는 우마를 몹시 따랐다.

죽음에 처했던 노예들도 우마가 참에게 간청하여 살아난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노예들은 우마를 맏형처럼 여기며 그를 위해 하늘에 주문을 외우고 빌기도 했다.

(그네들이 내 없는동안 어떻게 지냈을가.)

우마는 궁금한 마음을 달래이며 발걸음을 다그쳤다.

우마의 생각이 복잡해지는것만큼 발길에서는 불이 일었다.

눈앞에는 노예들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빨리 가서 만나보자. 그리구 그동안 있었던 가슴아픈 일들을 모두 이야기하자.)

바람이 불며 나무잎들이 우수수 설레였다. 어디선가 마교차의 방울소리가 바람에 실려왔다. 우마는 그 소리에 아랑곳없이 부지런히 걸음만 옮겼다.

방울소리는 점점 더 커지더니 바로 우마 등뒤에서 들렸다. 우마는 저도 모르게 불안한 생각이 들었으나 어떤 주인이 마교차를 타고가겠지 하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마교차가 뒤에 바투 다가들자 우마는 길을 비켰다. 그의 옆을 지나치던 마교차가 문득 멎어섰다. 보통 주인집나인들이 타고다니는 덮개를 얹은 화려한 마교차였다.

우마가 길을 잘못 비켜섰나 해서 좀 더 숲속으로 들어서는데 마차에 드리운 휘장이 들리우며 아릿다운 나인 하나가 방실 웃으며 얼굴을 내밀었다. 함함이 내리드리운 검은 머리, 새벽하늘에 반짝이는 별같이 아릿다운 눈매, 앵두를 문것 같은 생신하고 탄력있는 작은 입술… 우마는 대번에 주인집 귀동딸 나리를 알아보고 그앞에 머리숙여 례를 표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니계상어른의 분부를 받고 급히 온것이 아닐가?! 나에게 무엇인가 엄한 신칙을 하려는것이 아닐가?)

가슴을 조이는데 은방울 굴리는듯한 나리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어찌 머리를 숙이고 섰소이까. 어서 타오이다. 나도 놋부리터에 볼 일 있어 가오이다.》

우마는 깜짝 놀라 한걸음 더 숲속으로 발길을 들여놓았다.

(어찌 천한 노예가 주인집나인의 화려한 마교차에 오른단말이냐.)

우마는 더럭 겁까지 났다.

《어서 오르오이다. 나도 갈 길이 바쁜 사람이오이다.》

나리는 여전히 방실거리며 재촉했다.

《비천한 노예가 어떻게 감히 마교차에 발을… 무섭소이다.》

우마가 우들우들 떠는데 제비들이 높이 뜬 하늘가로 가인의 쟁쟁한 웃음소리가 터져올랐다.

《노예도 같은 사람이온데 어찌 마교차에 발을 올려놓지 못하겠소이까.》

나리가 웃음을 거두며 더 높이 포장을 걷어올렸다.

《어서 타오이다. 아씨의 성의를 마다하면 되겠소이까.》

시종나인이 마음놓으라는듯 방긋이 웃으며 재촉했다. 우마는 나리가 노예들을 동정하는것을 많이 목격한지라 더 사양하면 오히려 나리에게 불쾌감을 줄것같아 마교차에 올랐다.

《여기 와 편히 앉소이다.》

나리가 우마를 손수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

동백꽃냄새같은 야릇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어서 가자.》

나리가 재촉하자 《끼랴》하고 시종이 말을 몰았다. 멎어섰던 마교차가 짤랑짤랑 경쾌한 방울소리를 울리며 미끄러져갔다.

나리는 어찌해야 할지 몰라 머리를 짓숙이고있는 우마를 바라보더니 낯색을 흐렸다.

함박꽃이 핀듯 환한 얼굴이 고통스럽게 이그러졌다. 그의 눈길은 우마의 벌거벗은 잔등우로 뱀처럼 꿈틀거리며 건너간 상처자국에 멎어있었다.

《아프오이까?》

나리의 꽃같은 손이 우마의 상처자국을 조심히 쓸어만졌다.

《아프지 않소이다.》

우마는 왜 그런지 목구멍이 뭉클하여 머리를 떨구었다. 그처럼 다정하던 소부루의 얼굴이 어른거려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아, 나의 소부루는 지금 어디에 있을고? 그 혼백이라도 찾을수 있다면 이 마음 이다지도 아프지 않으련만. 주인도 없는 그 혼백이 그 어느 거치른 산기슭에서 헤매이고있는것일가.)

바싹 말라든 우마의 두볼을 타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우마, 소부루를 생각하고있소이까?》

나리는 젖어드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마는 놀라왔으나 아무말없이 흐느끼기만 했다. 그 어떤 고통속에서도 눈물을 모르던 우마였다. 살뜰한 눈길을 받아봤다면 오직 낳아준 어머니와 소부루의 눈길이였고 따뜻한 손길을 느껴봤다면 역시 어머니의 손길이였고 소부루의 손길이였다.

이 세상엔 살뜰한 손길이란 그 하나뿐인줄 알았던 우마는 상처에 동정의 손길을 받고보니 대장부의 그 억센 가슴도 눈물을 삭일수가 없었던것이다.

《주인아씨, 고맙소이다. 헌데 아씨가 어찌 비천한 소부루를 아오이까?》

우마가 눈물을 삼키고 의혹의 목소리로 물었다. 나리는 조용히 한숨을 그으며 차일사이로 내비쳐보이는 푸른 숲을 이윽히 바라보았다.

고달픈 인생을 싣고 달리는 마교차의 덜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듯하던 나리가 입을 열었다.

《왕협장군이 아버지에게 이르는 말을 듣고 아오이다. 소부루는 알지 못할 괴한에게 잡혀갔는데 간곳은 우마만이 알수 있다 했소이다. 그런데 우마는 입을 열지 않았다하오이다.》

나리는 동정의 눈길로 우마를 바라보았다.

《…》

꺼지게 한숨을 짓는 우마의 얼굴이 비장하게 이그러졌다.

《내가 아픈 마음 허비지 않았소이까?》

《아니오이다. 헌데 주인아씨의 마음속에도 말못할 아픔이 깃들어있지 않소이까?》

우마가 아픈 마음을 누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먼 숲가를 바라보는 나리의 어글어글한 눈에 눈물이 고여올랐다.

《나도 근본은 비천한 노예오이다.》

나리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건 무슨 당치 않은 말이오이까?》

우마가 깜짝 놀라 나리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리는 더 말을 이으려 하지 않았다. 나리의 가슴속에는 불쌍한 노예였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못견디게 갈마들고있었다.

오직 이 세상에 노예로 태여난 죄아닌 죄로 하여 어머니는 죽었지만 나리는 유모의 젖을 먹으며 대노예주의 딸로 자라게 되였다. 나리가 열살이 잡히던 해 그의 유모는 불쌍한 노예 나리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부터 나리에게는 눈물이 많아졌고 자기 집 노예들에 대해 무심히 보지 않았다.

비단옷과 금, 옥치레거리로 장식한 대노예주의 외딸 나리는 가슴속깊이에 비통한 설음을 안고 누구도 모르는 눈물의 바다를 헤쳐가고있었다.

우마는 나리의 가슴속에 녹아흐르고있는 이 설음을 알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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